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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 수산물 교류사 깊이 파고든 흥미만점의 취재수첩 

우리가 잘 몰랐던 한국의 수산물 이야기 ‘진진’… 일제시대의 명태잡이를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하기도 


▎한일 피시로드, 흥남에서 교토까지 / 다케쿠니 도모야스 지음 / 오근영 옮김 / 따비 / 1만8,000원
일본 저널리스트는 대체로 꼼꼼하다. 그들은 현장을 확인하는 습관에 익숙하다. 기자의 기본을 잘 지킨다. 정치부 기자도 사회부 기자처럼 현장을 중시한다. 매일 의원 사무실을 순회하듯 취재하는 정치부 기자가 많다. 다케쿠니 도모야스가 쓴 이 책에도 일본 저널리스트의 그런 특성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한국과 일본의 수산물 교류 과정을 살피는 과정에서 두 나라의 생활 풍습, 역사, 경제구조까지 드러낸다. 한국인도 몰랐던 한국 수산물 이야기도 진진하다.

근대국가는 망망한 바다에 금을 그었다. 처음엔 3해리(약 5.5㎞)까지 영해로 간주하더니, 나중엔 바다 밑 대륙붕의 소유권이나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두고 서로 다투기 시작했다. 이 다툼은 차츰 치열해지고 있다. 이 와중에 바다 생물도 국적을 얻었다. 같은 바다의 꽃게라도 한국 배가 잡으면 한국산, 중국 배가 잡으면 중국산이다. 태평양을 회유하는 명태가 러시아에서 잡히면 러시아산, 북한에서 잡히면 북한산이다.

부산항 국제여객 부두의 활어 적재 작업을 묘사하면서 글이 시작된다. 일본에서 온 페리의 해치가 열리면 대형 활어차가 부두로 내려온다. 후쿠오카, 오이타, 미야기 등 일본 번호판이 달린 트럭의 수조에는 살아 있는 어패류가 담겨 있다. 트럭은 일본에서 적재한 멍게, 해삼 따위를 내려놓은 뒤 전라남도 완도에서 트럭에 실려온 넙치를 받아 싣는다. 일본 트럭은 때로 부두에서 어패류를 내리는 대신, 곧바로 한국 도로를 달려 목적지로 향하기도 한다. 일본 트럭은 한국에서도 달릴 수 있도록 한국법이 허용하기 때문이다. 한국 도로에 어두운 일본 운전사를 위해 한국 측에서 보조 차량을 붙여주는 경우도 있지만, 몇 차례 왕래로 익숙해지면 일본 운전사가 알아서 찾아간다.

지금 한국인이 소비하는 명태는 대부분 러시아산, 일본산이다. 갯장어는 일본인이 즐기는 보양식이자 축제음식이지만, 정작 현지에선 한국산이 더 인기를 끈다. 한국 갯장어는 일본산에 비해 기름기가 잘 배어 있고 뼈가 부드러워 요리하기 좋기 때문이다.

일제시대의 명태잡이를 조명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개발론 대 수탈론’의 대립 구도를 허물었다. 1920년대 일본 어민들이 기선저인망을 동원해 명태를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일본 어민들은 애초엔 가자미 잡이에 주력했는데, 생각지도 않은 명태가 대량으로 잡혔다. 식민지 조선에 팔기 위해 본격적인 명태잡이에 나선 것이다.

조선 어민들은 저인망을 쓰지 못해 곤경에 빠졌지만 일부 어민들은 재빨리 새 기술을 받아들였다. 일본인 명태잡이가 조선인에게 새 기술을 전수하거나(개발론), 명태 자원을 고갈 시켰다(수탈론)는 시각을 모두 소개하면서도, 본질은 이때부터 명태가 단순한 상품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에 있다고 본다. 일본인들은 새 기술을 동원해 자신들은 먹지도 않을 명태를 최대한 잡아들이는 데만 전력했다. 이는 자연의 자원화이자 어업의 자본주의화였다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 갑남을녀의 인터뷰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을 대신 전한다. 한 한국인에게는 이런 질문을 한다. “한국의 제사에 빼놓을 수 없는 황태를 러시아산 명태로 만든다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국인은 답했다. “물론 명태가 다시 동해로 돌아와주면 더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러시아산이면 어떻습니까. 명태는 명태지요.”

-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

201503호 (201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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