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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새정연, 野性 부활하나 - 독점 인터뷰 |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2월 중 개헌특위 즉각 구성하고, 연내 분권형 개헌 완료해야” 

한기홍 월간중앙 기자 사진 김현동 팀장
‘노무현의 호남배신’이라는 말은 ‘분열의 언어’로 동의할 수 없어 … 4·29 광주 재보궐선거, 당 지도부의 자의적 공천은 없을 것

▎자신의 색깔만으로 대권을 거머쥔 노무현 대통령과는 달리 문재인 새정연 대표는 오직 변화를 담보해야만 대선 승리를 바라볼 수 있는 운명이다.
전당대회 직후부터 상종가를 치고 있는 욱일승천의 남자 문재인. 당대표에 집중된 권한 포기, 투명한 공천 시스템 정착이 그가 말하는 당 개혁의 핵심이다. 계파의 ㄱ자도 나오지 않게 계파를 초월한 인사를 이어가겠다지만, 그런 순수한 무공해정당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또한 현실론자들의 지적이다.


▎2월 13일 대한상의를 방문한 문재인 대표(왼쪽)가 박용만 회장과 복도를 나란히 걷고 있다. 두 사람은 향후 정례적인 만남을 약속했다.
문재인 신임 새정치민주연합의 차기 대선 출마는 기정 사실인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그는 당의 혁신과 화합, 내년 총선 승리가 목표일 뿐 아직 대선을 운위할 단계는 아니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가 언젠가 대선 출마의사를 선언할 때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바로 2012년의 패배에 대한 정치적 교훈과 책임을 어떤 방식으로 내면화하고 극복하느냐다.

대통령제가 확고히 정착된 미국의 경우 한번 본선에서 패배한 후보는 좀처럼 다음 대선 후보로 선출되지 않는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1880년대의 그로버 클리브랜드, 1950년대의 애들레이 스티븐슨, 1960년대의 리처드 닉슨이다. 그로버 클리브랜드는 재선에 실패했지만 4년 뒤 출마해 당선된 유일한 미국 대통령이다. 그래서 그는 22대, 24대 대통령이 되었다. 애들레이 스티븐슨은 1952년, 1956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에 맞서 모두 패배한 민주당 대선후보다. 아이젠하워의 인기가 워낙 압도적이어서 두 번 모두 스티븐슨의 당선을 점치는 사람은 드물었다.


▎여야의 유력한 대권 후보인 문재인 새정치 민주연합 대표(오른쪽)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경남고 1년 선후배 사이다. 두 사람이 2월 11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경남중고 재경동창회장에서 만나 담소하고 있다.
문재인 대표가 주목할 정치인은 1960년 존. F. 케네디에 패했다가 와신상담, 1968년 선거에서 민주당 휴버트 험프리를 물리친 리처드 닉슨이다. 닉슨이 8년 동안 성취한 변화와 자기 혁신의 진폭을 과연 문 대표가 이룰 수 있느냐가 포인트다. 도덕성이나 정치이념의 문제와는 별개로, 1968년의 닉슨은 1960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김영삼·김대중 두 대통령이 패배를 딛고 승리를 거뒀지만 YS의 3당합당, DJ의 DJP 지역연합이 없었으면 두 사람의 대선 승리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연합할 이념적, 지역적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양김(兩金) 집권 때와는 다른 문 대표의 핸디캡이다. 집권을 함께 도모할 세력상의 파트너가 없기 때문에, 매우 혹독한 변신의 요구에 문 대표가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노무현은 오직 자신의 색깔만으로 대권을 거머쥐었다는 점에서 행복한 정치인이었다. 문재인은 오직 변화의 담보를 통해 대선 승리를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노무현과 다르다. 이것이 바로 한번 패배를 맛봤던 문재인의 운명이라면 운명일 것이다. 이번 호 [월간중앙] 인터뷰를 통해 문 대표에게 고언한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2012년 문재인의 모습은 너무도 충분히 각인돼 있고, 유권자는 식상한 후보에겐 표를 잘 주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장 적절한 사례를 우리는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3차례나 실패한 이회창의 대권행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문 대표가 짊어져야 할 ‘변화와 혁신’이란 짐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어쨌거나 문 대표와 ‘새정연’의 지지율은 수직 상승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이완구 총리 후보자에 대한 부정적 여론, 컨벤션 효과까지 버무려진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선 이후의 행보, 즉 친노를 배제한 당직 인선과 이승만·박정희 묘소 참배가 중도·보수층의 호감을 산 측면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전면전 선언은 대선주자로서 문재인의 존재감을 부각하고, 강한 야성을 각인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당을 바로 세우고 큰 정치인다운 역량을 과시하며 내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면, 그에게도 기회가 올지 모른다. 현재의 지지율상 그는 대권에 가장 근접한 후보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언제나 고지로 향하는 길목의 산은 높고 골짜기는 깊다. 호남의 정치민심은 아직도 그에게 흔쾌하지 않고, 지난 대선 때 그와 경합했던 안철수의 마음도 토라진 상태다. 2012년처럼 진보연합의 대표선수 자격만으로는 패배할 가능이 크고, 우클릭해서 중도층에 구애하는 단순한 전략으론 집권 보수세력의 압도적인 구심력에 수렴되고 말 확률이 높다. 뭔가 판을 뒤흔드는 비상한 노력이 필요한데, 그 노력으로 노무현의 그림자를 뛰어넘고 초월하여 더 큰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뛰어넘느냐, 걸려서 넘어지느냐. 판을 흔드느냐, 판에 매몰되느냐다. 이완구 총리 후보자의 인준 문제로 정국 전체가 어수선했던 지난 2월 13일과 14일, 문 대표에게 당 개혁의 청사진과 정국 구상의 핵심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총리 얻으려다 민심 잃는다”


▎2월 11일 오전 신임 최고위원들과 함께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을 방문한 문재인 대표가 이희호 여사와 덕담을 나누고 있다.
이완구 총리후보자의 국회 인준 문제와 관련하여, 그에 대한 국민 여론이 악화된 가운데 새누리당의 단독처리가 가져올 정치적 후폭풍에 대해 어떤 전망을 갖고 있는가?

“총리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준을 정부여당이 단독으로 강행 처리한 경우는 없었다. 그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일이다.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만 보더라도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반대가 절반이 넘는다. 사실 우리 새정치민주연합은 인사청문회를 시작하기 전만 하더라도, 그 전에 두 번의 낙마가 있었고 이번이 세 번째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넘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병역비리, 부동산 투기, 논문표절 의혹에 이어 녹취록 파문까지 이어지면서 국민들의 시선이 싸늘해졌다. 새로 뽑히는 총리는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사회대통합을 추진해야 할 사람인데, 이미 많은 국민이 등을 돌린 상황에서 그런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총리 얻으려다 민심을 잃는다면 정권차원에서는 엄청난 손해일 것이다. 국민의 마음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과 같다. 안 그래도 지금 대통령 지지도가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야당이 반대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국민이 반대하는 게 문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대통령은 민심을 더욱 잘 듣고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

문 대표의 책무와 관련하여, 언론이 한목소리로 지적하는 점은 대선주자 이미지 제고가 아니라 당의 재건이라는 것이다. 통합의 정신, 조직의 기율이 살아 있는 당, 지도력을 갖춘 대안정당을 만드는 일이다. 총선 승리를 목표로 제시했는데, 총선 전까지 당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국민과 당원이 변화를 선택하셨다. 첫째는 당을 바꾸고 혁신하라는 명령이고 둘째는 새누리당 집권 7년 동안 나날이 어려워지는 서민경제의 현실을 바꿔달라는 요청이다. 무기력하고 지리멸렬한 모습, 사분오열하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걷어치우고 야당다운 야당이 되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를 위해 역대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당을 변화시키는 당대표가 될 것이다. 혁신하고 또 혁신할 것이다. 우선 당대표에 집중되어 있는 권한부터 제 손으로 내려놓겠다. 강력한 공천 혁신과 당의 분권화를 통해 투명한 공천 시스템을 정착시키겠다. 그래서 계파갈등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길을 열겠다. 또 박근혜 정부의 꼼수 증세와 복지 축소에 맞서 민생을 지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13월의 세금으로 분노한 봉급 생활자들, 삶의 무게에 짓눌린 50대 가장들, 취업난에 꿈을 잃은 청년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자영업자들, 늘어만 가는 아이들 교육비와 은행 빚에 걱정이 태산 같은 주부들, 건강과 노후 준비에 위태로운 노년층 등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하는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하겠다.”

안철수·박지원·이인영 의원 등 당내 비주류 측의 협조와 지원은 어떻게 이끌어낼 생각인가?

“당대표로 선출됐지만 혼자 당을 이끌어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많은 분이 함께 힘을 모아주지 않으면 누가 당대표가 되더라도 어렵다. 그래서 정치 현안이 있을 때마다 많은 분과 항상 의논하고 상의드릴 생각이다. 전당대회 과정에서도 수차례 강조했지만, 안철수의 새정치, 박원순의 생활정당, 안희정의 분권정치, 김부겸의 전국정당을 향한 헌신을 앞세워 함께 이기는 정당을 만드는 길로 갈 것이다. 또한 박지원 의원의 경륜과 이인영 의원의 패기와 열정도 잘 모아서 시너지효과를 발휘하도록 노력하겠다. 우리가 정말 미워해야 할 것은 주류니 비주류니 하는 분열의 언어다. 하나로 뭉쳐 통합정당으로 나아가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하겠다.”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개헌의 경우 권력구조보다는 지방분권을 더 강조하는 듯한 느낌이다.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자는 개헌 방향에 대한 의견은 어떤 것인가? 권력구조 측면에서의 개헌 방향에 대한 소신이 궁금하다.

“개헌 논의의 기본 방향은 ‘분권’이다. 첫째는 대통령에게 집중된 제왕적 권한을 나누는 분권이고 둘째는 중앙에 집중된 권한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분권이다. 개헌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었고, 또 저의 공약이기도 했다. 경제를 핑계삼아 개헌 논의를 가로막는다면 개헌 논의는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로 인한 폐해를 극복하고 시대적 변화에 맞는 권력구조 재편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개헌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개헌을 비롯한 정치 혁신의 실천, 지방 분권과 국토균형 발전에 앞장설 것이며, 이에 대한 국민적 여론을 적극 모아나가겠다. 그러나 개헌보다 더 절실하고 필요한 것은, 지역주의 정치구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선거제도 개편이다. 이번에 선거구 재획정을 하게 되는데 이것을 계기로 권역별 정당명부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 등 지역주의 정치구도를 완화하는 선거제도 개편까지 전향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지난 대선 패배는 국민에게 죄송”


▎2월 14일 오후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을 방문한 문재인 대표가 실종자 가족을 만난 후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침통해 하고 있다.
개헌 논의는 언제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정부여당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국회 개헌특위는 아직 구성도 되지 못했다. 빠른 시일 내에, 가능하면 2월 중으로 개헌특위를 구성해야 한다. 올해는 총선이나 지방선거와 같은 전국선거가 없는 개헌의 최적기이다. 이런 기회는 앞으로 15년 동안 오지 않는다.”

대통령제 전통이 확고하게 정착된 미국의 경우, 본선에서 한 번 패배한 후보는 다시 대선 후보에 선출되지 않는다. 패배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이다. 이 같은 대선 패배책임론에 대하여 어떤 반론이 가능한가?

“미국에서 본선에 패배한 후보가 다시 대선 후보에 선출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1960년 케네디에게 패배한 닉슨의 경우 한때 정계은퇴를 했다가 1968년 험프리를 누르고 대통령이 됐다. 2012년 오바마에게 패한 롬니도 현재 대권에 도전하고 있지 않은가.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의 정권교체 열망을 받들지 못한 것에 대해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국민을 무시하는 박근혜 정부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상실감이 얼마나 클까 생각하니 책임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정권교체를 이뤄내지 못해 민생파탄과 민주주의 후퇴를 가져왔다. 그렇기 때문에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 국민에게 정치적으로 책임지는 길이라 생각한다.”

현재 차기 주자 지지율 1위다. 반기문을 넘어선 것은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당과 개인 지지율이 모두 높아졌다. 여론조사 전문가 중엔 박정희·이승만 묘소 참배를 지지율 상승세 유지의 원인으로 보기도 한다. 지지하는 국민의 마음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나?

“박근혜 정권의 서민경제 파탄과 불통의 폭주를 막아달라는 절박한 마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치하는 사람으로서 기쁜 일이기는 하지만 관심사는 개인의 지지율이 아니라 당이 국민의 지지를 얻는 것이다. 국민이 정부여당에 왜 실망했고 저와 우리당에 무엇을 바라고 계신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금 기대를 걸어주신 국민 한 분 한 분께 감사드리고, 그 간절한 희망을 저버리지 않도록 더욱 열심히 하겠다.

‘소득불평등과 싸우겠다, 소득주도 성장으로 경제정당을 만들겠다’는 저와 우리당의 의지에 국민들이 기대를 갖기 시작한 것으로 여긴다.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박정희·이승만 묘소 참배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공과를 떠나 모두가 대한민국의 역사이며 국민을 통합하는 데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가 역대 대통령의 과를 비판하더라고 제도로서의 대통령은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이 어렵고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유능한 경제정당, 국민의 희망이 되는 수권정당이 되어 더 많은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박근혜 대통령에 실망감을 느끼는 국민이 많아졌다. 제대로 하는 것이 없지 않느냐는 혹평도 있다. 그러나 임기는 3년이나 남았다. 박근혜 정부에게 하고 싶은 충고가 있다면?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이다. 그러나 지난 2년에 대한 평가는 후하게 할 수 없어 안타깝다. 집권 3년차에 접어들 때까지 뭐하나 제대로 해놓은 것이 없다는 게 문제고, 지금 뭐가 잘못되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는 게 진짜 문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 속상한 일이다. 지금처럼 민심을 외면하고 서민경제를 파탄지경으로 내몬다면 박근혜 정권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대대적인 국정쇄신으로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아야 한다. 무너진 민주주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재벌 대기업 중심이 아니라 민생 중심의 경제 기조로 전환해야 한다. 국민과 약속한 공약을 이행해야 한다. 서민경제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셔야 한다. 더 이상 국민을 편 가르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정치를 해야 한다. 민심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하고 국민과 더욱 소통하셔야 한다. 대선 때의 마음 자세로 돌아가면 되지 않겠는가?”

일각에서 문 대표의 ‘정치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여기서 정치력이란 여의도 정치에서 필요한 리더십을 말한다. 국가를 이끄는 리더십 이전에 제1야당을 이끄는 정치력이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어떤 공부와 준비가 필요하다고 보나?

“제가 초선이고 정치경험은 짧기 때문에 충분히 그런 지적이 있을 수 있다. 겸허하게 그런 지적들을 받아들이며, 말씀하신 대로 더욱 배우려 노력하겠다. 그러나 정치에 뛰어들자마자 곧바로 야권 대통합으로 민주통합당 창당을 이끌고, 부산 지역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우리당의 대선후보와 범야권 단일 대선후보가 된 것은 정치력이 아닌가. 이번에 당대표가 된 것은 정치력이 아닌가. 여의도 정치에서 능수능란한 것이 정치력이고 리더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제1야당을 이끄는 정치력도 특별하지 않다. 공정하고 사심 없이 당을 운영하면 된다. 야당다운 야당이면서 대안능력을 보여주어 정권교체의 희망을 준다면 그 이상의 정치력이 없을 것이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참배에 대한 당내외의 비판이 제기된다. 정청래 최고위원의 경우는 히틀러와 일본 천황 참배에 비유하며 강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참배 결단, 과연 어떤 고민 끝에 이뤄졌나?

“지금 민주주의와 민생, 한반도 평화에 이르기까지 위기 아닌 게 없다. 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 이런 위기상황을 돌파해야 하는데, 박근혜 정권 2년 동안 대한민국은 둘로 나뉘어 분열과 반목만을 거듭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박정희· 이승만 묘소 참배는 야당 대표로서 국민 통합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것이다. 다만 전당대회 다음날 참배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당내에서 충분히 논의할 시간이 없었다. 최고위원들도 다수는 찬성했지만, 반대하는 분들도 계셨다. 그래서 논의 끝에 누구는 참배하고 누구는 참배하지 않기보다 당대표, 원내대표, 비대위원장만 참배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친노 좌장’이란 말은 나를 가두려는 프레임


▎2월 9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찾아 분향하는 문 대표.
지난 대선 때 대선 승리라는 목표를 앞에 두고도 친노 배제, 의원직 사퇴와 같은 승부수를 던지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연함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하여 어떤 반론을 제기하고 싶은가?

“여의도식 정치논리라고 생각한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상대편 사람이라도 데려와서 더해야 하는 시기에 누구누구는 배제하라는 것이 맞는 얘기인가? 국회의원에 당선된 지 불과 네 달 만에 대선후보가 됐는데 국회의원을 사퇴해야 한다는 것이 맞는 얘기인가?”

취임 후 당직 인선은 대체적으로 지역과 계파를 안배했다는 평가다. 앞으로 당내 계파 극복, 나아가 ‘친노의 좌장’이란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어떤 구체적인 노력을 지속할 생각인가?

“지난 대선 때 당내 경선에서 호남을 포함한 모든 지역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대선에선 48%의 지지로 우리당의 역대 후보 가운데 최다 득표를 기록했다. ‘친노의 좌장’이란 나를 가두려는 프레임일 뿐이다. 하지만 당내 혁신과 계파청산이 절체절명의 과제인 것은 틀림없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대탕평인사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통합과 혁신의 힘으로 이기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다. 계파의 ㄱ자도 나오지 않게 계파를 초월한 인사를 이어가겠다. 그리고 꼭 국회의원이 아니더라도 원외 인사나 외부 인사에게도 가급적 많은 기회를 주려 한다. 지켜봐주시길 바란다.”

4·29 광주 서구을 보궐선거는 갓 출범한 문재인 대표 등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의 당 쇄신과 관련한 실험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어떤 원칙으로 공천할 것인가?

“국민과 당원들께 이기는 정당, 신뢰의 정당, 희망의 정당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4·29 재보궐선거 역시 이기는 후보, 신뢰받는 후보, 국민께 희망이 되는 후보를 공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당 지도부의 자의적인 공천은 결코 없을 것이다. 특히 광주 서구을 보궐선거의 경우 당원과 광주시민의 의견을 최우선의 원칙으로 삼아 공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필승카드가 될 수 있다. 민주적인 방식으로 광주 시민들이 원하는 후보를 확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국민들로부터 박수받을 수 있는 좋은 공천을 하겠다고 약속드린다.”

호남의 전략적 선택이 그간 대선의 향방을 결정했다. 그러나 현재 ‘호남 정치’는 침체돼 있다. ‘노무현의 배신’이란 호남의 트라우마가 여전히 존재한다. 이번 전당대회 과정에서도 나타난 현상이다. ‘호남과 진보적 개혁’이란 테마는 야권을 떠받치는 수레의 두축인데, 이를 과연 어떻게 온전히 살리고 수렴할 것인가?

“‘노무현의 배신’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분열의 언어라고 본다. 이번에 호남을 다니면서 정말 많은 말씀을 들었다. 가장 많이 말씀하시는 것은 분열하지 말고 단합해서 야당다운 야당이 되라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는 정권교체의 희망이 되어달라는 요청이었다. 호남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 한반도 평화를 함께 실현해온 운명공동체다. 시대정신인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 실현을 위해 함께 길을 걸어온 정치적 동반자다. 호남이 걸어온 정의의 길은 우리당의 정신이었고, 우리당이 걸어온 혁신의 길은 호남의 명령이었다. 호남의 가치가 실현되는 정치로 호남의 정신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계파 청산이 단지 측근 인사들의 당직 배제나 비주류 인사 몇몇을 발탁하는 보여주기 식 탕평책으로 완성될 리 없다. 10년 넘게 이어오며 기득권화된 소위 ‘열린우리당 체제’의 잔영을 뿌리부터 걷어내는 역동적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어떻게 당의 ‘본질적 개혁’을 추진할 것인가?

“‘열린우리당 체제’의 잔영이라는 말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당의 기득권과 열린우리당이 무슨 상관인가? 공천 혁신이 가장 근본적인 해법이다. 당내 질서와 리더십이 무너지고 계파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것은 당 운영과 공천에 분명한 원칙이 없기 때문이다. 지도부 스스로 공천권을 내려놓고 예측 가능한 시스템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정해진 시스템에 따라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면 특정 계파에 줄을 서도 아무런 소용이 없고, 줄을 설 필요조차 없어진다. 이것이 계파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방법이다. 저부터 스스로 노력하겠다. 당대표에게 주어진 권한부터 제 손으로 모두 내려놓겠다. 강력한 공천 혁신과 당의 분권화를 통해 투명한 공천 시스템을 정착시키고 예측 가능한 정당으로 거듭날 것이다.”

“재벌 감세 철회와 법인세 정상화부터 이뤄야”


▎2012년 대선 약 한 달 전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전주시 전북도당 대통령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손을 흔들어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영국 노동당의 집권 전략을 참고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어떤 교훈이 내재돼 있다고 보는가?

“영국 노동당은 1979년 마가렛 대처의 보수당에 정권을 빼앗긴 이후로 무려 18년 동안 야당 생활을 전전해야 했다. 그 사이에 당의 일부 세력이 뛰쳐나가 사회민주당을 창당하는 분열도 겪었고, 의석의 대부분을 잃어 당의 존립 자체에 위기가 오기도 했다. 시대정신을 읽지 못해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 결과였다. 그런 노동당이 재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영국의 시대정신인 실용주의 노선을 채택해 당의 정책에 적극 반영했기 때문이다. 물론 영국의 사례를 한국의 상황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국민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일 때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건 좋은 교훈으로 남는다.”

증세와 복지를 둘러싼 논란이 불붙고 있다. 보편적 복지 확대를 당론으로 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이 향후 증세가 불가피할 때 국민과 기업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박 대통령은 ‘증세는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라고 했지만, 이미 많은 국민은 박근혜 정부의 꼼수 증세에 분노하고 있다. 담뱃값을 4500원으로 올린 것은 증세가 아닌지, 연말정산이 세액공제로 전환돼서 월급쟁이들이 13월의 세금을 걱정하고 있는 상황은 증세가 아닌지 되묻고 싶다. 은근슬쩍 증세를 해놓고선 증세가 없다고 이야기하니 국민들은 의아해 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부자감세는 놔두고 서민증세만 하니 많은 국민이 분노하는 것이다. 심지어 정부여당은 세수가 부족하니 복지를 줄이자고 한다.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서민의 삶은 지금도 충분히 고단하다. 지금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국민의 가계부담은 조금이라도 줄이고 복지는 어떻게든 늘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국민이 원하는 방향은 딱 한가지라고 생각한다. 국가 재정과 복지 모두를 튼튼하게 하는 것이다. 재벌 대기업 중심의 낡은 조세체계에서 벗어나 정의롭고 선진화된 방향으로 조세체계를 혁신해야 한다. 더이상 서민들의 유리지갑을 털어 세수를 메우려 할 게 아니라, 재벌 감세 철회와 법인세 정상화부터 이뤄야 한다. 우리 새정치민주연합은 재벌 감세 철회와 법인세 정상화를 포함해서 소득보장 체계와 복지재정 확충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 기구 설치를 제안한 바 있다. 국가재정이 확충되고 가계 경제가 살아나면 결국 내수 활성화로 이어져 기업의 이익도 늘어날 것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앞으로 조세정의 실현과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조세 개혁에 적극 나설 것이다.”

경제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활력을 잃었다. 정부여당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지만 피폐한 민생을 살리기 위한 제1야당의 역할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박근혜와 전면전을 벌이겠다’는 문 대표의 발언에 지지를 보내는 국민도 많지만 일부는 그런 투쟁적 태도가 자신들의 구체적인 삶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회의한다. ‘성숙한 견인’의 자세가 필요하단 지적이다. 투쟁과 견인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가?

“박근혜 정권과의 전면전은 서민경제 파탄과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전면전이다. 지금 서민경제가 얼마나 어려운가. 국민은 빚내서 전세 옮겨 다니고, 빚내서 아이들 가르치고, 빚내서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또 민주주의는 얼마나 후퇴되었나. 새누리당 정권 7년 만에 이 땅의 민주주의와 대한민국 헌정질서가 근간부터 뒤흔들리고 있다. 서민경제가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민주주의가 처참히 무너져 내리는 현실을 그냥 두고만 본다면 우리당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정권이 민생과 민주주의를 끝내 파국으로 내몬다면, 야당과의 전면전이 아니라 국민과의 전면전을 걱정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서민과 중산층의 편에 서서 구체적인 삶의 문제, 민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만약 박근혜 정부가 국정기조를 대대적으로 전환하여 실의에 빠진 민생을 챙기기 위해 발벗고 나선다면, 우리는 정부여당과 싸울 이유가 전혀 없다. 우리당은 민생을 살리기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협조할 것이고, 그 반대라면 적극 맞서 싸울 것이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성장 없이 풍요와 경제정의를 이루기 어렵다’는 소득 주도 성장론을 들고 나왔다. 최저임금도 대선 때는 노동자 평균 임금의 50% 수준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했지만 이번 경선에선 ‘1만 원대 급격 인상은 현실성이 없다’며 상대 후보의 정책을 비판했다. 일견 우클릭으로 보이는 경제정책의 변화, 일각에서는 대선용이란 비판도 있다. 어떤 고민의 결과물인가?

“매사 너무 진지해서 탈인 사람이다. 국민 앞에 이야기하는 것 중에 무엇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나오는 것은 없다. 소득 주도 성장론은 서민의 실질적인 소득을 높여서 가계 경제와 국가 경제를 함께 살리자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은 재벌 대기업에 각종 특혜와 규제완화, 세금 면제 혜택을 줌으로써 서민경제에도 낙수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새누리당 정권 7년이 지나도록 그런 효과는 전혀 없었고 실패한 경제기조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소득 주도 경제성장으로의 기조 전환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그런 성장을 위해서는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생활비 부담은 낮추고 의료나 교육, 보육 등 국민 생활에 밀접한 영역들에 대한 복지를 확충해야 한다. 서민과 중산층의 지갑을 두툼하게 해주어야 그것이 실질적인 소비로 이어지고 내수활성화로 이어져서 국가의 경제성장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최저임금 1만원은 속도조절 필요해”


▎문재인 대표는 인터뷰를 통해 박근혜 정부에 대한 자신의 선전포고를 “서민경제 파탄과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전면전”이라 정의했다.
예를 들면 우리당 전병헌 최고위원은 가계 통신비 부담을 낮추기 위한 법안을 발의했고, 민병두 의원은 자동차 수리비를 낮추기 위한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노력들은 모두 실질적인 가계소득을 조금이라도 늘려주기 위한 것이다. 앞으로도 우리가 이런 노력들을 계속해서 이어갈 때 민생을 챙기는 대안정당, 유능한 정책정당으로 변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저임금을 1만원대로 인상시키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 속도에 대한 염려를 말씀드린 것이다. 현재 5580원인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1만원대로 인상시킨다면 자영업자들과 중소기업들에 큰 타격이 되어 오히려 경제를 어렵게 만들고 일자리를 줄이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모든 정책에는 양면성이 있기 때문에 이쪽저쪽을 두루 살펴야 한다.”

올해는 광복 70년, 분단 70년이 되는 해다. 극단적으로 경색된 남북관계의 해법은 무엇인가? 5·24 조치를 일단 풀거나, 한미 군사훈련의 잠정적 보류 등 특별한 대책을 현 정부에 요구할 생각은 없나?

“분위기 조성을 위한 유화조치는 긍정적으로 여러 가지를 검토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남북 간 민간교류를 막아온 5·24조치의 해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군사훈련 등 정치군사적 조치는 외교적 문제가 포함되어있고 안보와 결부된 문제이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 없다. 북한도 한미군사훈련을 선결조건으로 내걸지 말고 대화의 장에 나와주길 바란다. 풀고 해결해나갈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맞다.”

- 글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사진 김현동 팀장

201503호 (201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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