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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비교연구 | 1995년 일본 對 2015년 한국 - 거품경제의 붕괴, 가족해체 20년 전 일본은 한국의 미래 

일본과 비슷한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 올해가 장기불황의 원년 될 수도… 줄이면서도 얼마나 행복하게 사느냐가 앞으로 닥칠 시대의 가치이자 상식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1995년 고베와 오사카를 잇는 한신(阪神)고속도로가 고베 대지진으로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일본의 ‘안전신화’도 무너졌다.
“일본, 별것 아니네?”

21세기 들어 한국인이 갖기 시작한 새로운 일본관이다. ‘극일(克日)’은 20세기 때까지만 해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민족적 이데올로기쯤에 해당된다. ‘별 것 아니네’는 극일의 반대편에 선 ‘하일(下日)’로서의 일본관이다. 배우고 따라잡는 대상으로서의 일본이 아닌, 한국이 피해가야 할 루저(Loser)나, ‘반면교사(反面敎師)’로서의 일본관이다.

‘하일’로서의 일본관은 크게 볼 때 두 가지 배경에서 설명될 수 있다. ‘잃어버린 20년’을 둘러싼 논쟁이 첫째 배경이다. ‘잃어버린’으로 시작되는 말은 패자로 전락한 것처럼 보이는 일본적 불황을 상징하는 관용구다. 10년이 되더니, 20년까지 이어진다. 경제성장률 1% 미만 시대가 무려 20여 년 동안 지속되면서 ‘선진국 모델’로서의 일본의 위상도 사라진다. 배우고 따라잡고 싶지만, ‘별 것 아니네’로 전락한 열등국가로 비쳐진다.

때마침 일본의 빈 공간은 중국에 의해 빠르게 채워진다. 일본에는 잃어버린 20년이지만, 중국에는 용(龍)으로 승천한 20년이다. 지정학적·문화적·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은 중국과 일본 사이의 중간자 역할을 해왔다. 두 나라의 변화에 가장 민감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중국 경제신화가 20년 계속되는 동안, 극일에 근거한 한국인의 일본관은 ‘별 것 아니네’로 변해간다.

한국 신문의 고정란으로 자리 잡은, 일본 전자제품 쇠망사(衰亡史)와 한국 모바일 제품의 세계 석권 소식은 ‘별 것 아니네’의 배경이 된 둘째 원인이다. 일본 IT산업의 쇠락과 한국 모바일의 승천(昇天)이란 역설적 비교를 통해 일본을 대하는 한국의 눈도 달라진다. IT문화에 민감한 2030세대의 경우 특히 ‘별 것 아니네’의 주도세력이 된다. 때마침 일본인들의 심금을 울렸다는 ‘한류(韓流)붐’도 도쿄(東京)발 뉴스로 전해진다.

한국의 살벌한 현실과 ‘일본교훈론’


‘별 것 아니네’, 나아가 루저와 반면교사로서의 일본관은 2015년 들어 새로운 양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 나타난 급박한 상황 변화가 가장 큰 이유다. 한국의 경우 모바일을 통한 성장신화가 눈에 띄게 급락하게 된다. 한국산 제품을 응원하는 애국적 성원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중국산 짝퉁과 모바일 문화의 원조인 애플로 흘러가고 있다. 모바일을 중심으로 한 IT산업만이 아니라, 한국경제의 성장동력이던 자동차, 조선산업의 상황도 악화된다. 단기적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이어질 악성상황이란 것은 한국과 국제사회 경제 전문가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적극적 경기부양책과 엔화 약세에 힘입어 급부상하는 일본과 환경문제와 인건비 증가로 인해 성장동력이 식어가는 중국의 쇠퇴를 통해 한국경제의 내우외환(內憂外患)이 표면화되고 있다.

3월 5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한국이 저물가 속 경기침체라는, 이른바 디플레이션에 들어설 우려가 있다고 ‘고백’한다. 일본관의 변화는 바로 이 같은 어두운 상황 속에서 나타난다. “앞으로 한국인이 직면할지도 모를 잃어버린 10년, 아니 20년의 모습이 과연 어떤 식으로 나타날 것인가?”,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어떤 식으로 대응했고 어떻게 극복해왔는가?”

일본을 한국과 무관한 우주 밖의 나라로 대하거나, 한국인의 눈 아래로 대하는 ‘하일’로서의 일본관은 사라진다. 곧 들이닥칠 한국의 ‘살벌한 현실’을 일본의 어제를 통해 살펴보려는, 이른바 ‘일본교훈론’이 고개를 든다.

구체적인 시기와 관찰영역에 관한 논의는 일본교훈론을 언급할 때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시기란 언제, 다시 말해 몇 년도의 일본을 교훈론의 범주에 둘 것인가라는 부분에 귀착된다.

2015년 한국의 상황을 고려할 때, 20년간의 일본교훈론을 통해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시기는 언제일까? 결론은 1995년이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1980년대 중반부터 불기 시작한, 이른바 버블경제의 종언이 1995년이라는 점은 첫째 이유다. 물론 이론(異論)이 있지만, 대부분의 일본 경제학자는 1995년을 버블경제 종언의 해(年)라 분석한다. 다시 말해 잃어버린 20년의 원년(元年)이 바로 1995년이다. 1995년은 일본이 전쟁에서 패한 지 반세기가 흐른 시점이기도 하다. 전후 50년 만에 승전국인 미국을 누르고 전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급성장한다.

그러나 승전고(勝戰鼓)의 메아리는 한순간에 끊어진다. 최경환 부총리의 디플레이션 발언에서 보듯, 경제전문가들은 2015년이 한국에 닥칠 장기불황의 원년이 될지 모른다고 말한다. 한국은 일본과 비슷한 경제구조를 가진 나라다. 일본식 경제모델을 통해 근대화·현대화에 ‘빠르게’ 성공한 나라가 한국이다. 20년이란 시간차는 있지만, 한국의 2015년은 일본의 1995년 상황에 비견될 수 있다.

2015년 한국인의 1인당 국민소득(GDP)이 3만 달러에 달할 것이란 소식은 1995년 일본교훈론을 부각시키는 둘째 이유다. 사실 GDP 3만 달러 소식은 반가워해야 할지 여부가 망설여진다. 국제경쟁력 때문이 아닌, 원화절상 덕분에 3만 달러 선진국에 진입하기 때문이다. 앉아서 GDP부자가 되는 것은 한국만이 아니었다. 1995년 일본에서도 볼 수 있는 상황이다. 1995년 일본의 1인당 GDP는 무려 4만2516달러에 달한다(명목소득 기준). 1992년 3만972달러로 3만 달러 선에 진입한 이래, 불과 3년 만에 4만 달러 선에 들어선다. 같은 기간 일본 엔으로 나타난 1인당 GDP를 살펴보자. 1992년 392만 엔, 1995년 399만 엔이다. 달러당 엔 가치가 종래의 100엔 대에서 70엔 대로 급상승하면서, 가만히 앉아서 1만 달러 이상의 돈을 벌어들인다. 엔으로 계산된 GDP는 불과 7만 엔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득 4만 달러 선진국으로 진입한 것이 1995년 일본이다.

무당파 정치가 풍미한 1995년의 일본


▎1995년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투수 노모 히데오는 철저한 자기관리로 마흔 살까지 메이저 리그에서 활약했다.
잃어버린 20년을 통과한 뒤 일본의 GDP는 어떨까? 2014년을 기준으로 할 때, 일화 384만 엔과 미화 3만7539달러로 나타났다. 1995년 당시와 비교할 때 일화는 15만 엔, 미화는 약 5천 달러 정도가 줄어들었다. 원화절상 덕분에 3만 달러 선진국에 오를 한국의 모습은 바로 20년 전에 나타난 일본의 ‘황당한 현실’에 비견될 수 있다. 1995년 도쿄와 2015년 서울이 왜 비교될 수 있는지에 대한 근거다.

일본교훈론 속의 관찰영역은 여러 각도에서 논의될 수 있다. 경제지수나 통계를 통한 미시·거시 경제학적 관점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관찰 대상이다.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미시·거시 경제학적 차원의 일본교훈론과 무관하다. 수치와 통계로 나타나는 경제상황 이전에 등장하는, 개인·가족·사회에 대한 관찰도 중요하다. 정치를 포함하는, 사회·문화학 차원의 관찰이 일본교훈론 속의 주된 관찰영역이다. 당시의 사회분위기와 현상, 나아가 개개인의 세계관이 일본교훈론의 중심 소재다. 1995년 일본인들은 과연 어떤 자세로 버블 경제 종언에 답했을까? 그 같은 사회·문화학 차원의 관찰이 1995년 일본교훈론의 주된 영역이다.

항상 강조하지만, 일본만큼 ‘공기(空氣)’에 빠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대응하는 나라도 드물 듯하다. 어떤 현상이 나타나기를 전후해,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매년 등장하는 유행어는 공기에 신속·정확하게 대응하는 일본인의 또 다른 초상화에 해당된다. 지난 2월호 <월간중앙>에 기고한 ‘2015년 일본의 자화상’에서 보듯, 일본의 공기와 상황을 압축한 것이 바로 유행어다. 버블경제가 터지고, 잃어버린 20년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1995년. 당시 구체적으로 어떤 유행어가 등장했을까?

유행어 대상(大賞)은 매년 12월 1일, 일본 신문·방송의 핫뉴스로 취급되는 연례 이벤트다. 출판사인 자유국민사(自由國民社) 주관으로, 1984년 이래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 해의 유행어만이 아니라, 신조어도 선발한다. 1995년 대상으로 선정된 유행어는 세 개다. 먼저 무당파(無党派). 1995년은 만년 여당이던 자민당과 야당과 무관한 제3의 당이 일본인들의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도쿄도지사 선거에 당선된 코미디언 출신의 정치가 아오시마 유키오(青島幸男)에 의해 탄생된 말이다. 같은 시기에 오사카부(大阪府) 지사로 당선된 요코야마 노크(横山ノック)도 무당파 정치인의 대열에 들어간다. 일본의 제1, 제2의 대도시가 무당파의 손에 접수된 것이다. 아오시마는 작가이자 배우로, 요코야마의 경우 코미디언으로 일해온 대중스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무당파는 기존의 정치세력과 무관하거나 아예 초월한 개념이다. 인류 역사상 예를 찾아보기 어려운 버블경제가 낳은 후유증을, 정치와 무관한 무당파 시민들의 힘으로 해결하자는 의미에서 탄생된 유행어다. 시민이 주도하는 무당파 정치라는 포스트모던 스타일의 유행어와 함께 일본 전역이 무당파 붐에 휩싸인다. 때마침 나타난 영국의 미남정치가 토니 블레어가 ‘제 3의 길(Third Way)’을 주창하면서 무당파의 정통성은 한층 더 강화된다.

1995년 일본은 무당파의, 무당파에 의한, 무당파를 위한 나라로 ‘우뚝’ 서게 된다. 그러나 그 축제는 오래가지 못한다. 무당파의 대표주자이던 아오시마와 요코야마가 실정에 실정을 거듭하다가 5년 뒤 재선에서 탈락한다. 두 사람이 지사에 당선된 지 불과 1년 뒤, ‘무당파=무책임’으로 통용된다. 기존의 정당에 대한 실망보다 무당파가 보여준 무책임과 무관심에 한층 더 좌절한다.

대지진 당시 고베를 불태운 자들


▎1995년 고베대지진 당시 고베시내 유흥가 나카야마 데도리 모습. 보험금을 노린 방화가 빈발했다.
정치적으로 볼 때 2015년 한국은 무당파를 낳은 1995년의 상황과 비슷하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르는 이념 분출형 좌(左)도 문제지만, 1960년대 개발시대의 흑백필름을 재탕삼탕 우려먹는 우(右)의 무능력도 한심하다. 현상만을 볼 때 2015년 여의도 정치를 대하는 한국인의 감성은 불황의 긴 터널로 들어가기 직전인 20년 전 일본 정치의 재판에 해당된다.

‘노모(Nomo)’는 1995년을 풍미한 또 하나의 유행어다. 1995년 메이저리그(MLB)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진출한 투수, 노모 히데오(野茂英雄)의 이름을 딴 유행어다. 노모에 앞서 1994년 박찬호가 LA에 진출한다. 한국 역사상 첫 번째 MLB진출이다.

노모는 일본 야구 역사상 두 번째로 미국 MLB에 진출한 인물이다. 1944년생으로 1964년 샌프란스시코 자이언츠에 진출한 무라카미 마사노리(村上雅則)가 MLB 진출 1호 일본 선수다. 야구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과 집착은 유별나다. 고등학교 야구팀만해도 전국에 약 5천여 개가 존재한다. 한국의 경우 50여 개에 불과하다. MLB진출은 선수 개개인만이 아닌, 일본인 모두가 응원하는 국민적 관심사다.

노모는 투수로 MLB에 진출한다. 당시 계약한 연봉은 10만 달러에 불과하다. 일본에서 받던 연봉 200백만 달러의 20분의 1 수준이지만, MLB 진출에 모든 것을 걸면서 금전적 보상도 포기한다. 1968년생인 노모는 이후 마흔 살이 되던 2008년까지 MLB에서 활동한다. 미국 MLB에서 활동한 최고령 선수 중 한 명이다.

1995년 노모가 미국 MLB에 진출한 것은 일본의 경제력과 무관하지 않다. 국내에서 볼 때 버블경제가 끝나던 시기지만, 외국에 비치는 일본의 이미지는 버블대국 그 자체였다. 박찬호가 100만 단위의 LA 한국 교민을 배경으로 한 선수라 볼 때, 노모는 버블대국 일본을 대표하는 인물에 해당된다. 버블대국을 통해 광고와 후원을 늘리고, 열성팬들도 확보하자는 것이다. 야구를 비롯해 모든 스포츠가 그러하듯 실력이 전부가 아니다. 경제력은 스포츠 이벤트를 지탱하는 중요한 변수다. 노모는 그 같은 상황에서 탄생된 버블투수다. 그러나, 노모는 최선을 다해 좋은 성적을 남기면서 MLB에서 살아남는다.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말하지만, 적어도 일본은 극단적인 추락은 하지 않았다. 현재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20%가 넘는 실업률도 경험하지 않았다. 잃어버린 20년 동안 보여준 일본 경제의 저력(?)은 40세라는 고령이 되도록 MLB 무대에서 살아남은 노모에 견줄 수 있다.

운이 안 좋을 때는 불행이 한꺼번에 밀어닥친다. 좋게 볼 수 있던 것들도 화(禍)로 변해 상황을 꼬이게 만든다. 일본인에게 1995년은 두 가지 엄청난 사건으로 점철된 해다. 도쿄 한복판에서 사린가스 살해사건을 자행한 옴진리교(オウム真理教)의 광기와 일본 남부를 강타한 한신대지진(阪神大震災)이 주인공이다. 옴진리교를 정신적 충격이라 할 때, 한신 대지진은 물리적 충격에 해당된다.

1995년 1월 17일 아침 5시46분, 진도 7.3 규모의 지진이 효고현(兵庫県)을 중심으로 오사카와 교토(京都)에 발생한다. 사망자 6434명과 부상자 4만3792명이란 엄청난 피해에 직면한다. 도로와 건물이 파괴되거나 불길 속에 사라진다. ‘열심히 합시다 고베(がんばろうKOBE)’는 당시 참사와 관련해 탄생된 유행어다. 고베(神戸)는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지역이다. 도시 하층민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나무로 된 건물들이 화재로 거의 대부분 사라진다.

점령군 많을수록 한국의 미래 밝아


▎일본 오사카에 있는 고층 빌딩 ‘아베노 하루카스’. 300m 높이의 빌딩 안에는 호텔·백화점·박물관· 전망대가 있어 늘 인파로 붐빈다.
‘열심히 합시다 고베’는 일본 특유의 집단의식에 기초한 ‘화(和)’의 슬로건이다. 어려울 때 함께 나서서 돕자는 아름다운 미덕이 유행어에 들어있다. 그러나 현실은 아름답지 못했다. 고베 참상을 상징하던 화재의 상당수가 보험금을 노린 의도적인 방화였다는 것이 나중에 드러났다. 재난을 이용해 오히려 돈을 벌어보겠다는, 추악한 버블심리가 지진 피해지역에까지 만연된다.

당시 현장에 갔던 수많은 자원봉사자는 현지에서 벌어진 황당한 현실에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약자라는 이유로 고베의 비행(非行)이 밖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텔레비전에 거의 매일 비치던 고베의 화재는 금전만능주의로 무장된 버블심리의 이면(裏面)에 해당된다. 절제되지 못한 욕망의 불길이 고베의 화재현장에 퍼져 나간다. ‘열심히 합시다 코베’는 버블경제에 물든 버블심리의 추한 모습을 가리는, 아름다운 포장지로서의 슬로건에 불과했다.

1995년 공기의 흐름은 유행어 가작에 해당되는, 톱 텐(Top 10) 입상작을 통해서도 확인될 수 있다. 인상 깊은 유행어는 닛산(日産)자동차가 수상한 ‘변하지 않으면 안돼(変わらなきゃ)’란 말이다. 닛산에 불어닥친 위기를 극복하자는 것이 ‘변하지…’란 유행어에 포함돼 있다. 노모와 함께 당시 막 등장한 야구 스타 스즈키 이치로(鈴木一郎)를 내세운 텔레비전 광고다. 1990년대 들어 닛산은 기존의 모든 모델을 바꾼다. 그러나 야심 찬 계획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판매량이 급감한다. 내부개혁을 부르짖으면서, 일본을 엄습한 버블의 단 맛과 쓴 맛을 동시에 경고하는 광고 시리즈로 평가된다.

닛산은 광고 시리즈를 통한 다짐에서도 불구하고 이후 경영악화로 치닫는다. 버블경제 종언과 함께, 1933년 탄생된 닛산의 존폐 여부가 논의된다. 1999년 3월 프랑스의 르노자동차와 자본 제휴를 맺으면서 부도의 위기를 넘기지만, 프랑스 점령군(?)을 통한 경영참여는 피할 수 없게 된다. 르노가 닛산 주식의 43%를 차지하면서 사실상 프랑스 기업으로 변해간다. 전후(戰後) 일본의 제 1호 경영 점령사령관이라 불리는, 카를로스 곤이 닛산의 최고경영자로 파견된다. 각종 부서를 아예 없애거나 축소하고, 노동조합과도 정면 대결하면서 일본식 종신고용제에 칼을 댄다. 버블 당시 일본은 화(和)에 기초한 종신고용제가 21세기 세계경영의 나침반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하버드대학 MBA과정을 비롯한 미국의 일부 지식인도 그 같은 생각에 동의했다. 카를로스 곤은 일본식 경영방식을 ‘근거 없는 소설’로 규정해, 대수술을 단행한다. 닛산이 강조했던 ‘변하지…’라는 말은 결국 현실로 나타난다. 프랑스에서 파견된 외국인 경영자를 통해, 닛산만이 아닌 일본식 경영 전체가 난도질을 당하게 된다.

1995년 이후 20년이 지난 2015년,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스토리가 닛산에서 시작된다. 엔저 덕분으로 닛산 자동차의 수출과 내수 모두 급증한다. 2014년 미국 내 수출물량은 전부 138만6천여 대에 달한다. 2013년보다 11.1% 증가한 규모다. 닛산은 점령군에 해당되는 르노의 적자를 보충하고도 남는, 초우량기업으로 변신한다. ‘변하지…’는 기업이 통상적으로 부르짖는 주기적 슬로건에 해당된다. 아무리 대단한 글로벌 스타를 내세운다 해도, 슬로건 하나만으로는 변화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변화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최적의 증거는 무엇일까? 외국인 경영진이다. 들러리 경영진이 아니다. 칼을 휘두를 수 있는 자리에 외국인이 얼마나 있는지 여부가 진짜 변화를 가늠하는 열쇠다. 2015년 한국 기업들도 예외 없이 변화를 외친다. 재벌 2세, 3세도 모자라 재벌 4세와 5세로 내려가는 족벌경영 체제에서는 그 어떤 변화도 의미 없다. 한국이 일본판 장기불황에 들어간다는 것은 금발의 최고경영 책임자가 서울에 온다는 의미라 볼 수 있다. 자존심도 상하고 힘도 빠지겠지만, 칼질을 하는 점령군이 많으면 많을수록 한국의 미래도 밝다. 1995년 닛산의 광고와 이후의 ‘점령사태’는 그 같은 평범한 진리를 증명해 준 본보기다.

1995년 일본의 유행어 가운데 2015년 한국에 그대로 작용될 수 있는 것도 있다. 세계가 경탄하는 성형대국 한국을 격려하는 듯한 유행어로, 당시 인기 탤런트 아사카 세토(瀬戸朝香)가 도전적으로 내뱉은 말이다. “겉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 왜 나쁘다는 거야?(見た目で選んで何が悪いの)”라는 유행어다. 인스턴트 코닥카메라 선전광고에 등장하는 말로, 여고생 조회 훈시에 나선 교장에게 던지는 ‘안하무인(眼下無人)’ 대사다. 보기에도 앙증스러운, 작고 간단한 인스턴트 코닥카메라에 대한 평가지만, 사회전반에 흘러 넘치는 버블심리를 빗댄 말로도 해석된다. 내용에 관계없이, 겉만 번지르르해도 가치가 있다는 식의 버블심리를 대변한 말이다. 한국에서 유행한, “괜찮아, 예쁘니까!”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광고 속에서 아사카 세토는 반발로 교장에게 다가가서 ‘겉만 보고…’를 외친다. 교장은 존경어로 “나쁘지 않습니다”라고 꼬리를 내린다. ‘내면보다 표면’이 버블시대의 상식이란 것이 교장의 답 속에 드리워져 있다.

12세 소녀가 본 버블의 이면


▎지난해 9월 삼성전자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가전전시회 (IFA2014)에서 세계 최고의 커브드 TV 기술력을 자랑했다.
드라마, 특히 부모, 자식 모두가 볼 수 있는 가족 드라마는 당시의 공기를 읽을 수 있는 좋은 증거다. 1994년에 이어 1995년까지 이어진 최고 인기의 텔레비전 드라마 <집 없는 아이(家なき子)>는 좋은 예다. 버블 종언 당시의 사회분위기를 알 수 있는 좋은 토요 드라마로, 일본 텔레비전(N-TV)이 방영했다. 1994년 만들어져 공전의 인기를 누리자, 영화로 만들어진 뒤 1995년 제 2부로 재연장된다. 드라마 속의 대사인 “동정하려면 돈을 달라 말이야!(同情するなら金をくれ)”라는 말은 1994년 유행어 대상을 차지한다.

‘동정하려면…’이란 유행어는 당시 일본사회의 신드롬으로까지 발전된, 버블 말기의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놀랍게도 ‘동정하려면…’이란 말은 드라마 주인공인, 12세 소녀가 내뱉은 대사다. 학교 급우의 물건을 훔치던 중 적발되자, 담임선생에게 큰소리로 당당하게 외치는 말이다. 어머니 병치료를 위해 ‘당장’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변명이다. 소녀는 아버지의 가정폭력과 어머니의 병환 속에서 살아가는, 사실상 문제아에 해당된다. 버블경제라 하지만, 돈도 없고 가족관계도 엉망이다. 배신과 좌절 그리고 빈곤이 12세 소녀가 본 버블의 초상화다. 사회 전체가 돈에 광분하던 추한 모습이 12세 소녀의 눈에 비친다.

버블에 편승한 승자와 버블에 들지 못한 루저(Loser)와의 격차, 돈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사회풍조, 추락한 부권(父權)을 어린이 학대와 가정폭력으로 해결하려는 아버지, 어른들의 약육강식 논리를 본떠 약한 급우를 공격하는 어린이들의 집단왕따, 부모에 대한 반발에 자살로 치닫는 자식, 결혼이나 이혼도 금전논리에 따라 행하는 젊은이들…. 12세 소녀 주인공은 세상과 인간은 서로를 배신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동정하려면 돈을 달라”고 절규한다.

가정 내 집단자살과 존속살해, 어린이와 노인 학대, 가정 폭력, 돈으로 결정되는 결혼과 이혼…. 언제부턴가 한국 신문에 하루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막장 스토리들이다. 12세 소녀의 눈에 비쳐진 1995년 일본의 모습은 2015년 한국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동정하려면…’이란 대사는 당시의 12세 일본 소녀만이 아닌, 2015년 한국 소녀와 소년들의 요구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20년 전 드라마와 비교할 때 크게 다른 부분도 하나 있을 듯 하다. 12세 일본 소녀의 경우 어머니의 병 치료를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입원 중인 어머니를 위한, 절대적 인륜을 지켜내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돈이다. 한국 소녀와 소년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돈이 필요할까?

올해의 한자어는 유행어와 더불어 일본의 공기를 알 수 있는 확실한 증거다. 올해의 한자 발표는 매년 12월 2일 한자의 날을 맞아, 교토의 키요미즈테라(清水寺)에서 발표된다. 2014년도에 발표된 올해의 한자어는 ‘세(稅)’다. 아베 수상이 단행한 소비세 8% 인상에 따른 여파로 결정된 한자어다. 1995년은 무엇일까? ‘진(震)’이 정답이다. 한신대지진의 참화가 1년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결정된 한자어다. 그러나 ‘진’은 지진을 통한 물리적 현상에 국한되지 않는다. 버블경제가 낳은 모순이 일본 전역을 흔들고 있다는 사회심리적, 형이상학적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한순간 흔들리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1995년을 기점으로 20년 동안 계속 흔들릴 것이란 전망이 ‘진’이란 한자어 속에 투영돼 있다.

얼마나 많게가 아닌, 적지만 얼마나 행복하게의 시대로

한국의 명절은 살인이나, 자살 관련 뉴스로 채워지는 시기다. 어머니에게 10만원 용돈을 부치고 자살한 40대 남성에 관한 뉴스가 올해 설날 뉴스로 전해졌다. 생활고를 비관한 자살이다. “많이 못 부쳐드려 죄송하다”는 것이 마지막 유언이다. 일본의 경우 버블종언과 함께 수많은 사람이 자살대열에 끼어든다. 회사에서 강제 퇴직된 사람들은 아예 집을 나와 홈리스로 전전한다. 달리는 지하철에 몸을 던지는 자살형 태도 1995년부터 나타난다.

잃어버린 20년은 경제만이 아닌, 인간의 건강한 혼을 부식시키는 정신적 고문으로 작용해왔다. 빵 때문이 아니라 외로움과 패배감에 빠져 신음한다. 교훈론으로서의 일본을 보면, GDP 4만 달러나 10만 달러가 정답이 될 수 없다. 얼마나 늘리면서 살아가는가가 아니다. 줄이면서도 얼마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느냐가 앞으로 닥칠 시대의 가치이자 상식이다.

잃어버린 20년 동안에 탄생된 100엔 숍(百円ショップ)과 저가 의류의 대명사인 유니클로(ユニクロ)는 그 같은 가치관 속에서 탄생된 서바이벌 키트(survival kit)다. ‘인터넷’은 1995년 탄생한 유행어 중 하나다. 20년 절망의 터널로 들어가던 순간, 희망의 씨앗이 유행어로 등장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희망은 있다. 그 어떤 모진 바람에 만나도 싸워 이겨낼, 건강하고 밝은 한국의 미래를 확신한다.

-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201504호 (2015.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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