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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분석] 2015년 2월 세금폭탄의 진실 - 세금폭탄 피하려면 복지우산 걷어라? 

소득 고저(高低) 가리지 않고 직장인에게 세금 십자포화… 민심 이탈하자 복지 구조조정으로 전선 이동 

매해 2월은 직장인들에게 ‘13월’로 불린다. 열두 달치 월급 외에 또 다른 수입이 들어오니 말이다. 바로 연말정산에 따른 환급금이다. 그런데 올해 13월을 맞이한 직장인들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연말정산 기준이 바뀌면서 돌려받을 돈보다 토해내야 할 돈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거의 한 달치 월급에 맞먹는 경우가 속출했다. 연봉 인상은 수년째 멈춰섰고, 담뱃값은 갑절 가까이 올랐다. 직장인들의 생활은 어느 때보다 팍팍해졌다. 정부는 올해 연말정산이 중·저소득 직장인들에게는 혜택이 크다고 말한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직접 느끼는 효과는 정반대다. 정책과 현실의 괴리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와 정치권은 대중의 관심과 분노를 돌릴 새로운 대상을 찾는 데 골몰하고 있다.

▎‘13월’로 불리던 2월이 직장인들에게 악몽이 됐다. 두둑한 월급봉투 대신 세금폭탄을 떠안았다. 고소득자와 저소득자를 가리지 않는다.
서울의 한 중견 기업에 다니는 김재환(41·가명) 씨는 올해 집을 마련하려던 계획을 뒤로 미뤘다. 최근 전셋값이 집값에 맞먹을 정도로 오른 데다 대출이자가 낮아져 집을 마련할 적기라고 생각해 서울 근교로 알아보던 중이었다. 계획이 물거품 된 건 연말정산 때문이었다.

김씨는 연봉 7500만원으로 또래에 비해 비교적 소득이 높은 편이다. 아내는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를 돌보느라 김씨의 소득만으로 생활한다. 올해 연말정산은 작년과 바뀌어 고소득자가 불리할 거란 소식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정부 발표로는 변동폭이 그리 크지 않다고 했다. 정부 발표가 그러할 테니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을 크게 빗나갔다. ‘결정세액 513만원’이란 문구에 눈을 의심했다. 지난해보다 70만원 이상 오른 것 같았다. 정부가 발표한 예상치보다는 두 배 많은 액수다. 환급은 고사하고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처지가 됐다. 13월의 월급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월급은 3년째 그대로다. 성과급도 작년보다 반으로 줄었다. 타격이 예사롭지 않았다. 아내와 의논한 끝에 집을 마련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다. 김 씨는 “각종 세금과 공과금 인상분을 감안하면 작년보다 1천만원 이상 소득이 줄어든 거나 다름없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2014년도 귀속분 연말정산이 끝난 뒤 예상을 웃도는 세금 부담을 떠안게 된 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세금폭탄’은 고소득자로부터 저임금 근로자에 이르기까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물가와 각종 공공요금은 꾸준히 오르는데 임금은 오르지 않아 사실상 임금 삭감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데 세금까지 오르니 정부 발표와 체감경기의 간극은 더 넓고 깊어졌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연말정산을 통해 돈을 돌려받는 근로자는 900만 명으로 추정된다. 환급인원은 매해 감소하고 있다. 2012년 1015만 명이 4조8888억원을 돌려받았으나 이듬해 989만명으로 떨어졌고, 환급액도 4조6681억원으로 2200억원가량 줄었다. 지난해에는 938만 명이 4조5339억원을 돌려받았다. 올해 전체 환급액은 4조1천억원으로 예상된다. 전체 근로소득자가 약 1600만 명이니 절반 정도가 돈을 돌려받는 셈이다.

연말정산 세금폭탄 맞은 직장인 속출


▎연말정산 파동이 휩쓸고 지나간 2월 28일 서울역광장에서 시민들이 모여 ‘서민증세’를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말정산제도는 2012년부터 ‘적게 내고 적게 돌려받는’ 쪽으로 조금씩 바뀌어왔다. 그 이전까지는 ‘많이 걷고 많이 돌려주는’ 방식이었다. ‘13월의 월급’이란 말이 나올 만큼 꽤 큰 목돈을 돌려받았다. 그러나 2012년 9월에 간이세액표가 조정되면서 환급 대상자 1천만 명 이하 시대가 시작됐다. 여기에 더해 올해에는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뀌었다.

소득공제 방식은 소득에서 공제 대상 금액을 빼고 남은 금액에 구간별 세율을 적용한다. 교육비와 의료비, 부양가족 등 공제 대상이 많을수록 환급액이 많아진다. 자녀 교육과 건강 등에 관심이 높고 지출이 많은 중산층 이상의 성향 때문에 이들이 저소득 근로자보다 실질적으로 유리했다.

이런 불합리를 개선하려고 세액공제 방식이 도입됐다. 기재부는 연봉 5500만원 이상 근로자의 세 부담은 다소 높아지겠지만 그 이하 소득 근로자는 부담이 줄거나 변화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정부 기대와 다른 상황이 나타났다. 5500만원 이하 근로자들의 부담도 늘어난 사례가 속출한 것이다.

특히 공제할 게 별로 없는 미혼 직장인의 경우 세 부담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연봉 3천만원을 받는 이영훈(31) 씨는 소득세 부담이 작년보다 20만원가량 늘었다. 부양가족이 없고 미혼이어서 공제 대상이 본인뿐이지만 연봉이 동결돼서 지난해 수준과 비슷하리라 여겼다. 연봉이 높지 않아 추가 부담이 없을 거라던 정부 발표를 믿었던 터였다. 이씨는 추가 환급을 받기 위해 연말정산 작업을 다시 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그는 “연말정산 논란이 벌어졌을 때 ‘싱글세’니 ‘독신세’가 생길 거라는 얘기를 그저 루머로만 여겼는데 지금 와서 보니 용어만 쓰지 않을 뿐 독신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으려는 속셈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의 부담이 늘어난 것도 소득공제액이 줄었기 때문이다. 지난해의 경우 근로소득공제액이 1125만원이었지만 올해는 975만원으로 크게 줄었다. 그만큼 과세 기준이 되는 소득금액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소득세액 공제액도 46만여 원에서 53만원 정도로 늘긴 했지만 소득공제 축소 규모를 따라잡지 못해 세금이 늘어났다. 다른 공제가 없는 미혼 근로 소득자에게 사실상의 ‘독신세’를 부과한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

고소득근로자와 개인사업자 형평성 논란


▎연말정산 논란으로 촉발된 증세 논란이 보편적 복지에 대한 구조조정 논란으로 확대된다. 복지 관련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국회 앞에서 연말정산 파동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말정산제도 변경으로 세금폭탄을 직격으로 맞은 고소득 근로자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깊다. 개인사업을 하는 또래 보다 세금 부담이 훨씬 커졌기 때문이다. A씨(56)는 서울의 한 중견기업 임원으로 연봉이 1억2천만원에 달한다. 얼마 전 경기도의 한 대학교 앞에서 원룸 임대사업을 하는 친구를 만났다가 기분만 상해서 돌아왔다. 연말정산이 얘깃거리로 나왔는데 임대사업자인 친구와 비교해보니 직·간접적으로 내는 각종 세금이 무려 1천만원 넘게 차이가 나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연간 소득은 비슷했다. 홀어머니를 부양하고 있고, 아내가 전업주부인 점, 대학생 자녀 두 명을 키우는 점 등 거의 모든 조건이 똑같았다.

올해 연말정산이 끝난 뒤 A씨의 근로소득 결정세액은 1316만원이었다. 작년(973만원)보다 35%나 올랐다. 친구는 작년에 소득세 확정신고를 통해 100여만원을 냈는데 올해도 그와 비슷할 거라고 했다. 무려 열두 배나 차이가 난다. 세금뿐만이 아니다. 국민연금 납부액도 A씨가 훨씬 많다. A씨의 국민연금 납입액은 220만원에 달하는데, 친구는 180여만원에 불과했다. 건강보험료도 친구가 더 적게 낸다. 이것저것 다 따져보니 친구와 차이 나는 금액이 1200만원을 넘었다.

A씨의 불만은 일면 ‘가진 자의 푸념’으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과세정의의 형평성의 문제로 보면 그의 불만이 단지 푸념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정부가 단행한 세제 개편의 목적은 크게 보면 과세정의를 바로 세우는 데 있다. 고소득자에게 상대적으로 더 많은 세금을 걷어서 부의 재분배를 노리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다. 근로소득자들 사이의 형평성을 맞추다 보니 자영업자나 개인사업자들은 과세정의의 칼날을 피해간다. 고소득 근로자에게는 형평성이란 명분아래 곱절의 희생을 강요하는 셈이다. A씨는 “임금 근로자와 개인사업자 간의 형평성을 맞추지 못하면서 근로자에게 세금 부담을 늘리는 게 무슨 과세 정의냐”며 “과세정의란 명분으로 세금 걷기 편한 임금근로자에게만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환급금 증감의 기준으로 정한 5500만원 수준의 근로자들은 어떨까? 이들도 실질소득은 크게 감소했다. 여의도의 한 금융회사에 다니는 이지수(34·가명) 씨의 연봉은 5924만원이다. 그의 연봉은 3년째 동결돼 있다. 경제침체와 금융계의 한파 때문이다. 근처의 증권회사에 다니는 친구는 연봉이 삭감됐다고 했다. 동결된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속이 편하다. 돈 관리를 꼼꼼히 하는 이씨는 요즘 살림살이가 예전보다 빠듯해진 걸 실감하고 있다. 임금은 그대로인데 물가와 세금, 각종 사회보험료가 오른 탓이다.

이씨의 임금이 동결된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2%, 1.3%, 1.3%씩 각각 올랐다. 이씨의 소득을 기준으로 하면 총 628만여 원의 임금가치가 떨어진 셈이다. 국민연금은 3년간 17만100원이 올랐다. 건강보험과 고용보험도 각각 11만469원, 5만9245원이 올랐다. 소득세도 2만3682원 늘었다. 이씨의 실질소득 감소분은 연간 약 665만원이 된다. 이씨는 “내년에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면 아내와 맞벌이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서민과 중산층의 세금 부담을 키워 실질소득을 감소시키고, 이것이 소비와 성장을 위축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임금근로자의 세 부담 증가를 정부의 정책 실패로 해석한다.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과도 관련이 있다.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증세 없는 복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하자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24.7%로 추정된다. 박 대통령은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5년간 27조2천억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제조세정의네트워크 자료에 따르면 해외로 빼돌려진 한국의 자산 규모는 870조원에 이른다. 5만원 권의 환수율은 지난해 30% 아래로 떨어졌다. LG경제연구원의 2013년 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자영업 부문 지하경제 규모는 약 130조원이었다. 이는 과세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자영업자의 소득탈루율을 적용해 추정한 규모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성과를 올렸다는 소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은닉재산 약 5억원을 미국에서 찾아내 몰수했다는 소식이 거의 유일한 성과였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세수부족을 메우기 위해 증세를 주장하지만 이에 앞서 지하경제 양성화 노력이 우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하경제 양성화는 복지 확대의 필수 전제였다. 전제가 무너지면 핵심 공약들이 줄줄이 무너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신뢰를 강조해온 박 대통령과 정부·여당에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면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증세다. 문제는 ‘얼마나 티 나지 않게 올리느냐’일 뿐이다.

“세금폭탄은 없다”는 정부의 해명이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건 바로 이런 배경 때문이다. 연말정산 대혼란과 반발은 예견된 결과다. 세액공제가 사실상 증세라는 비판도 억지는 아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중산층 이상 근로소득자와 저소득층의 형평성 유지라는 명분을 정부가 해명으로 내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담뱃세 인상이 더해지면서 이런 명분조차 전혀 설득력을 갖지 못하게 됐다. 담뱃세 인상의 가장 큰 부담은 저소득층이기 때문이다.

‘티 안 나는 증세’ 골몰하는 정부


▎1. 담뱃값 인상은 곧 흡연자들에 대한 증세를 뜻한다. 간접세 증가는 소득불평등 심화로 이어진다. / 2.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연말정산과 담뱃값 인상 등 증세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2005년 당시 노무현 정부가 담뱃값을 올리려 하자 노 대통령과 영수회담에서 “소주와 담배는 서민이 애용하는 것”이라며 반대 의견을 밝혔다. 2004년 12월 국회의원이었던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담뱃값을 올리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되자 반대표를 던졌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마찬가지로 반대표를 던졌다. 당시 담뱃값 인상폭은 500원이었다.

지난 연말 담뱃값을 한 번에 2천원 올리면서 정부가 내세운 명분은 ‘국민 건강’이었다. 담뱃값을 올려야 담배 소비가 줄어든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지난해 9월 11일 정부는 범정부 금연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담뱃값 인상과 포괄적 금연 정책이 시행되면 담배 소비량이 2020년까지 3분의 1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문창용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2천원을 올리면 담배소비량이 단기적으로 34% 감소할 것으로 예상돼 세수 증가액은 2조8천억원 정도 될 걸로 예상한다”고했었다.

4500원짜리 담배 한 갑에 포함된 세금과 건강증진부담금은 담뱃값의 73.7%인 3318원이다. 하루 한 갑씩 1년을 피우면 121만원의 세금을 내는 셈이다. 담배에 붙는 세금은 개별 소비세(국세)와 건강증진부담금(간접세), 지방교육세(지방세)로 나뉜다. 지난 2월의 물가상승률은 0.52%였는데, 담뱃값 인상에 따른 물가상승률은 0.58%였다. 담뱃값 인상 요인을 제외한 나머지 물가상승률은 마이너스였던 것이다. 한국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어 생활하고 있는 취업 준비생 강모(27) 씨에게 캔커피와 담배 한 모금은 그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다. 하루에 담배 한 갑씩 피운다. 끼니는 편의점에서 판매기간이 지난 즉석식품을 얻거나 라면으로 대충 때우는 경우가 많다. 대신 담배만큼은 아직 양보할 생각이 없다. “이마저 안 피우면 지금의 처지를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다. 담배 연기를 들이켰다가 내뿜는 시간만큼은 모든 시름을 잠시 내려놓는 꿀맛 같은 휴식이다.

강씨는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로 월 120만~130만원가량을 번다. 한 달에 담뱃값으로 나가는 돈이 10만원을 넘는다. 대개 하루에 한 갑 정도를 피우니까 월급의 10분의 1을 담뱃값으로 쓰는 셈이다. 이 돈을 1년으로 따지면 120만원이 넘는다. 강씨의 한 달 치 소득이다.

강씨가 담배를 피워서 내는 세금은 연봉 4745만원을 받는 회사원의 근로소득세(125만원)와 비슷하다. 또 시가 9억원짜리 아파트의 재산세와도 비슷하다. 본인의 선택이라곤 하지만 소득에 비해 강씨의 세금 부담액은 지나치게 높다. 기초노령연금과 정부지원금 등 한 달에 40만원으로 살아가는 홀몸노인이라면 연간 국가 보조금 480만원 중 120만원을 다시 국가에 반납하는 셈이다.

담뱃값 포함 세금은 9억 아파트 재산세 수준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무상급식을 중단하면서 증세 논란은 보편적 복지에 대한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결로 치닫고 있다. 무상급식 중단을 비판하는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고, 박근혜 정부를 비난하는 전단지가 도심에 뿌려지는 등 민심이 양분되고 있다.
흡연이 오롯이 금전적 부담을 담보로 한 개인의 선택에 의한 것이기에 그 책임은 전적으로 본인의 몫이라고 한다면 기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커피나 음주 등 다른 기호식품의 경우 얼마든지 대체재가 존재하는 반면, 담배를 대체할 충분한 대체재가 없다는 점에서 동일선상에 놓고 단순비교하기 어려운 면도 분명 존재한다. 담배 수급이 정부의 통제 아래 이뤄지고 있고, 담배 판매를 통해 정부가 어느 정도 재정을 충당한다는 객관적 사실만 놓고 보면 담뱃세 부담을 순전히 흡연자가 감수해야 할 책임으로 돌리는 건 다소 불합리한 면이 있다. 한 경제학 교수는 “예를 들어 기름값이 오르면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된다. 대체할 수단이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담배는 피우거나, 끊거나 둘 중 하나다. 대체재가 확보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똑같이 놓고 정책을 결정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과거에 담뱃값 인상을 반대했던 이유도 여기서 기인한다.

또 하나. 담뱃값 인상은 간접세의 비중과도 관련이 있다. 한국납세자연맹에 따르면 2007년 총국세수입 중 간접세 비중은 48.3%였다. 그런데 2010년에 53%를 넘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2년에는 49.7%로 여전히 과거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담뱃값이 오르면 다시 50%를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담뱃값이 오른 직후 50% 넘게 줄었던 편의점 판매량은 2월 말에 20%로 회복된 것으로 나타났다. 담뱃값 인상률이 80%이고, 원가 인상보다 대부분 세금인 점을 고려할 때 담배를 판매해 얻는 세금 수입이 인상 전보다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간접세 증가는 직접세 즉 소득세와 법인세, 상속·증여세, 종합부동산세 등이 그만큼 낮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간접세는 부가가치세와 개별소비세, 교통세, 주세 등으로 소득이 아닌 소비하는 만큼 부과되기 때문에 간접세가 오르면 그만큼 저소득층의 체감 세금부담이 커진다. 이를 ‘역진성’이라고도 하는데, 소득불평등과 빈부격차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소득에 비례한 과세가 이뤄지면 총국세비율 중 직접세 비율이 늘고 간접세가 낮아진다. 이명박 정부 때 간접세 비율이 높아진 건 기업 세금 감면과 ‘부자감세’의 영향 때문이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은 “간접세 비중이 여전히 높은 상태에서 담뱃세 인상은 소득재분배 악화를 가속화할 것”이라며 “증세가 필요하다면 대기업들이 주로 혜택을 보는 법인세 감면 축소를 통해 법인세 실효세율을 먼저 올리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세금폭탄 문제는 복지와 증세 논란으로 전선을 넓히고 있다. ‘복지 증세’가 비판에 직면하자 보편적 복지정책에도 구조조정이 필요하단 목소리도 나온다. 첫 타깃은 무상급식이다. 무상급식은 진보진영의 대표 상품이다.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이 2009년 경기도교육감 보궐선거에서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차별 받지 않고 굶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당위성 앞에 반대할 명분도 딱히 없어 보였다. 보편적 복지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지지 여론에 묻혀 버렸다. 결국 새누리당도 내키진 않지만 여론에 떠밀려, 혹은 정치적 이익을 위해 그 동안 수용해왔다.

그런데 홍준표 경상남도 도지사가 무상급식을 중단하면서 꺼져가던 논쟁의 불씨를 되살렸다. 홍 지사는 무상급식을 '선별적 복지’라고 비난했다. 지난 3월 자신의 SNS를 통해 “가진 자의 것을 거둬 없는 사람들 도와주자는 게 진보좌파 정책의 본질이다. 세금을 거둬 복지가 필요한 서민 계층을 도와주는 선별적 복지가 진보좌파정책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에선 홍 지사를 두둔하고 나섰다. 무상급식 논쟁이 한창이던 3월 12일 울산에서 현장최고위원회의를 연 것도 의미심장하다. 울산 동구는 올해부터 초등학교 5학년 급식지원을 중단했다. 권명호 울산 동구청장은 “굳이 급식비 지원이 필요치 않은 계층에 제공되던 무상급식 예산을 절감해 예산지원이 꼭 필요한 곳에 사용하려는 진정 어린 결단이었다”고 밝혔다. 권 구청장은 “무상급식은 겉으로는 공짜로 보이지만 사실 다른 곳에서 그 누군가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도 했다. 이어 부산광역시도 무상급식 확대 계획을 포기하면서 PK(부산경남) 지역이 선별적 복지 논쟁의 불을 댕긴 모양새가 됐다.

최근 불거진 무상급식 논쟁은 과거와 양상이 조금 다르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서민 증세’ 논란으로 곤경에 처했다. 증세를 안 할 수도 없고, 더 확대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 전통 지지층인 중산층 이상 고소득 계층의 민심마저 이탈하는 상황이다. 상황을 타개하려면 두 가지 계책이 필요하다. 성난 민심을 달래주는 회유책과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이슈 개발이 그것이다.

민심 무마? 정치권의 ‘붉은 청어 오류’

정부와 정치권이 최근 잇따라 꺼내든 보완대책들은 민심 달래기용 회유책에 가깝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3월 3일 납세자의 날 행사에서 “3월 말까지 연말정산과 관련한 구체적인 보완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중산층과 서민 생활이 안정되도록 세제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사업자의 세금 부담도 최소화하겠다고도 했다. 기재부는 소득구간별 세부담 경감 규모 등을 분석해 공제 항목과 수준을 조정하는 보완작업에 착수했다. 연금보험료 공제율을 높이고 자녀세액공제 확대와 표준세액공제 상향 조정 등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담뱃값 인상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선 ‘저가담배’ 도입안을 내놨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민생현장에서 수렴한 의견”이라며 원내대책회의에서 밝힌 아이디어다. 담뱃값 인상을 위한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에 일부 동조한 연대책임을 지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도 맞장구를 쳤다. 전병헌 새정연 최고위원은 봉초담배(직접 말아서 피우는 담배)에 한해 세금을 일부 감면하자는 제안도 했다.

홍 지사를 비롯한 새누리당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무상급식 축소 혹은 중단을 잇따라 발표한 것은 전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전략적 포석일 가능성이 높다. 논리학 용어로는 ‘붉은 청어 오류’라고도 한다. 사냥개를 훈련시킬 때 냄새가 고약한 훈제 청어를 끌고 다니며 냄새를 퍼뜨리고 여우냄새를 찾도록 하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대중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데 효과적인 전략이다. 여의도의 한 정치 컨설턴트는 “무상급식 논쟁을 끌어내 지지계층의 이탈을 막자는 취지라면 상당히 효과적인 전략”이라며 “증세 논란에 쏠린 시선을 분산시킨 뒤 진보와 보수로 재편성한다면 현 정부와 여당에 쏟아지는 비판과 불만을 잠재우고 정책 동력인 보수진영의 단결을 다시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의도야 어쨌든 정부와 여당, 정치권이 민심 달래기에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과 달리 기재부는 요지부동이다. 기재부는 한국납세자연맹이 2014년 귀속분 연말정산 세법 개정 때 사용한 세수 추계 방법을 공개하라며 신청한 정보공개청구를 거부했다. 연말정산 혼란 사태의 원인을 찾고 처방을 내리려면 세수 추계 산출근거가 반드시 공개돼야 하는데 기재부는 두 번의 정보공개청구를 모두 거부했다. 납세자연맹은 3차 정보공개청구도 거부하면 연말정산 파동의 원인파악을 고의로 방해한 책임을 물어 기재부 관련자들을 직무유기와 정보공개법 위반으로 고발할 방침이다. 김선택 회장은 “지금이라도 세수추계 산출근거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올바른 대안을 찾아 국민적 합의를 구해야 잠재적 조세저항과 정부에 대한 불신이 해소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201504호 (2015.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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