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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MD정책의 기원과 미국의 한반도 사드 배치 전략 - ‘만들어진 신’ ... 미사일 방어 체계 

MD는 성패와 무관한 미국의 패권을 뒷받침하는 군사적 토대이자 집단 의지… 동맹국 연결하는 네트워크로 미국 지배력 유지하는 군사적 담론으로 고착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미 해군의 이지스 미사일 구축함 디케이터함에서 미사일 방어 실험용 SM-3 요격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지난세기에 미국은 자신이 스스로 만든 공포의 포로였다. 1945년 세계 최초로 열핵 전쟁을 수행한 미국은 핵무기로 공격당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가장 극심하게 시달린 장본인이었다. 트루먼 이래 미국의 모든 대통령은 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임박한 핵전쟁의 파국이라는 종말론적 악몽에 시달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여기서 핵무기는 극단적인 두 개의 상징성을 갖는다. 구소련과 같은 적국이 가진 핵무기는 극단적 공포이고, 자신이 가진 핵무기는 신격화된 숭배의 상징이다. 실제로 미국의 복음주의 신학은 신이 안보를 위해 미국에 선물한 가장 고귀한 자산이 바로 핵무기라는 인식하는 신학적 권위까지 동원했다.

한순간에 몇 백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는 핵무기는 냉전의 홀로코스트라는 악마의 속성과 위험에 처한 미국을 지켜주는 가브리엘 천사의 속성을 모두 가졌다. 이 점에서 냉전시대 핵 군비경쟁은 다분히 신학적이며 세계를 양분하는 핵심적 이데올로기였다.

이 점은 소련도 마찬가지였기에 공포이자 구원이라는 핵무기의 야누스적 이미지는 양극화된 국제질서를 규정하는 강대국 공통의 원리로 정착되는 데 무리가 없었다. 역설적으로 미국과 소련은 똑같은 모습의 신을 숭배했고 똑같은 모습의 악마와 대항했다.

두 초강대국의 이러한 공통점은 서로에 대한 극단적 도발을 자제하는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역사학자 존 루이스 개디스는 냉전시대를 미·소간에 핵전쟁이 일어나면 공멸한다는 ‘공포의 균형’으로 유지 된 ‘긴 평화’의 시대라고 규정한다. 핵전쟁 일보 직전까지 간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과 소련의 후르시초프 서기장은 공히 세계를 파멸시킬지도 모르는 매듭의 양쪽을 하나씩 쥐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이 두 지도자 간에 막후협상을 촉진하여 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한 바탕이 되었다.

1972년에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이 체결한 탄도탄요격 미사일제한조약(Anti-Ballistic Missile Treaty; ABM Treaty)은 바로 그런 맥락이다. 이 조약은 핵무기로 한쪽이 상대방을 선제공격하면 상대방으로부터도 핵 보복 공격을 당하게 되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만일 상대방이 보복했을 때도 남은 핵무기로 상대방을 재차 공격을 하는 ‘제2격 능력’을 갖게 되면 핵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기 때문에 핵전쟁을 도발할 가능성이 더 커지게 된다. 이 조약은 만일 한쪽이 상대방의 핵공격을 방어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면 제2격 능력을 보유한 것이니 그러면 핵전쟁의 위험성이 더 커진다는 논리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미국과 소련은 핵미사일에 대한 방어능력으로서 요격미사일체계를 아예 포기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보복이 두려워서 상대방에게 핵무기로 선제공격을 하지 못한다는 전략적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것을 ‘공포의 균형(MAD Mutual Assured Destruction)’ 상태라고 한다.

공포를 소비하는 냉전체제


▎1973년 미국을 방문한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이 공동성명에 서명하고 있다. 두 사람은 탄도요격미사일제한조약 체결의 주역이다
조약에서는 탄도탄요격(ABM)시스템을 비행 중인 전략탄도미사일, 또는 그 구성요소에 대항하는 시스템으로 규정한다. 요격미사일·발사대·레이더 등이 그 구성요소라고 할 수 있는데, 조약에서는 탄도탄 미사일 방어체계에 대해 수도와 대륙간탄도탄 기지 중심 반경 150㎞ 이내에 각 하나의 ABM 체계만 배치가 가능하며, 총 100기 이상의 요격미사일과 발사대 배치를 금지하고 있다. 또한 요격 시스템 구축은 한 지역으로만 제한하며 영토 전역에 배치하는 것은 금지된다.

헨리 키신저는 이 ABM 조약에 대해 “냉전시대 군비 경쟁을 제한하고 전략적 안정을 이룬 실질적 규범”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상대방의 핵에 대한 공포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이 이상한 조약은 바로 ‘절대 무기’로서 핵무기의 권위에 대한 무한한 신뢰의 산물이기도 했다. 따라서 냉전시대는 열핵무기라는 신이 그 막강한 억지력으로 지구를 통치하고 있었고, 미국과 소련은 그의 충실한 신민이었다.

그런데 이 조약은 무기체계 진화의 역사에서 어김없이 보여지는 하나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처럼 보였다. 창이 나타나면 방패가 따라서 나오게 마련이고, 그러면 그 방패를 뚫는 더 날카로운 창이 개발되는 순환의 과정을 통해 방어 무기와 공격 무기는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한다.

그런데 방어체계를 갖지 말자고 약속하면서 미·소는 상대방에 대한 전략적 우위를 달성하기 위해 미친 듯이 더 핵탄두를 증강했다. 상대방의 핵무기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없으니까 더 많은 핵탄두 수로 압도하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압박수단이라고 본 것이다. 방어를 포기하고 더 많은 공격 능력을 보유하려니까 핵무기도 단순히 장거리 미사일에 탑재하는 방식만이 아니라 전략폭격기, 핵잠수함에 탑재하는 전략적 억지력으로 그 유형이 다양화되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순항미사일과 야포용 소형 핵탄두뿐만 아니라 핵배낭에 이르기까지 전술적 용도로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었다.

이제 핵무기 없는 재래식 전쟁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워졌다. 다양화된 핵무기는 적으로부터 핵공격을 받아도 강인한 생존력으로 상대방을 효과적으로 보복할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냉전시대는 방어를 포기하고 공격 일변도로 핵 전력을 증강하는 아주 이상한 시대였다. 여기에는 방어가 불가능하다는 핵무기의 절대성 때문에 양국이 방어 무기를 갖추지 않았던 점도 있지만, 이 공포는 너무나 신비한 나머지 모든 전략가들을 강력한 힘으로 매료시킨 결과이기도 했다.

1983년 1월이 되자 미국은 이미 비축한 핵탄두를 제외하더라도 전 세계에 배치한 핵무기가 이미 6천 개를 넘기는 사태를 발생시켰다. 그것은 히로시마를 100만 번 넘게 파괴할 수 있는 인류 역사상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가공할 힘이었다. 미국에서만 매일 5개의 새 핵무기가 생산되고 있었다. 이 종말의 이미지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은 인류는 전 세계에서 핵무기 폐기 운동에 동참했다. 마침내 미국에서도 1983년 5월 하원 결의로 더 이상 핵무기를 생산하지 말자는 핵 동결 결의안이 통과될 정도로 이제 핵에 대한 인류의 반감은 도를 넘고 있었다. 그해 3월에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소련을 ‘현대 세상의 모든 악마의 중심지’라고 비난하며 전 세계에서 일어난 핵 동결운동은 소련의 악마적 계책이라고 몰아세우던 터였다. 그런 그마저도 보수적인 개신교 목사들까지 핵 동결운동에 동참하는 조짐을 보이자 매파로서 자존심도 버리고 평화의 사도로서 자신을 개조해야 했다. 그것이 그해 시작된 그의 재선운동에 절실하게 요구되는 정치적 변신이었다.

할리우드 영화와 공상적 방어무기


▎미국 알래스카 포트 그릴리 기지에 조성된 미사일 방어(MD)용 요격 미사일 지하 격납고. 사진·중앙포토
여기서 젊은 시절 배우로 활동한 레이건은 방어 장치가 하늘에서 비행기를 공격해 떨어지게 하는 장면이 나오는 그가 출현했던 1940년의 영화 <하늘에서의 살인(Murder in the Air)>의 이미지로 돌아섰다. 레이건은 또한 1966년 폴 뉴먼이 주연으로 나오는 <찢어진 커튼(Torn Curtain)>의 대사에 나오는 ‘모든 핵무기를 무효로 만드는 방어 무기’에 대해 몰랐을 리가 없다. 지상과 공중, 바다에서 벌어지는 핵전쟁을 우주로 옮겨버리면 어떻게 될까? 날아오는 핵무기를 무력화하면서 우주에서 전쟁을 종결지으면 이 지긋지긋한 핵전쟁의 공포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것 아닐까? 이것은 결코 합리적 추론이라고 할 수 없는 황당한 발상이었지만 당시 할리우드는 그런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정책결정자들에게 제공했다. 몇몇 연구는 레이건이 이런 영화적인 구상에 홀딱 빠져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이를 과학자들이 열성적으로 뒷받침했다는 증언도 있다.

그러나 루 캐넌(Lou Cannon)은 <대통령 레이건>이라는 연구에서 그 과정을 보다 상세히 분석한다. 이 연구는 당시에 그다지 알려진 바 없는 대통령 안보 부보좌관인 해병 장교 출신 로버트 맥팔레인(Robert McFarlane)의 역할에 주목한다.

맥팔레인에게 있어 미사일 방어의 최초 구상이라고 할 수 있는 ‘전략방위구상(SDI)’은 소련의 미사일로부터 미국의 도시를 보호한다는 개념이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SDI는 교착 상태에 빠진 차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만일 미사일 방어가 이뤄진다면 한물간 것으로 여겨진 대륙간탄도탄도 더 보유할 수 있는 나름의 가치를 확보하게 된다. 그러려면 이 미사일 도입 예산을 책정하는 데 의회를 설득할 수 있는 논리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미사일 방어였다.

맥팔레인은 합참의 와킨스(James Watkins) 해군총장에게 이 점을 설명하여 설득했다. 그리고 와킨스의 도움으로 다른 총장들의 지지도 확보했다. 그들은 기실 미사일 방어가 아닌 차세대 ICBM을 원했던 것이다. 그 직후에 백악관에서 레이건이 주재한 회의에서 맥팔레인과 와킨스가 대통령에게 미사일 방어의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레이저 빔으로 소련의 날아오는 미사일을 없애버린다는 주장에 대해 국방장관인 와인버거는 “믿을 수 없는 계획”이라고 일축했다.

이 백악관 회의가 있기 직전인 1982년 11월에 와인버거 장관은 X-레이저 빔으로 미사일을 우주에서 요격하자는 아이디어를 전파하는 정치적 로비그룹인 ‘하이프론티어’의 대니얼 그레이엄에게 “전문기술자들이 아주 빠른 시간 안에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는 귀하의 낙관론에는 정말 경의를 표합니다만, 이 나라를 그런 불확실한 길로 이끌 수는 없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입니다. 어쨌거나 그것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능력 아니겠습니까? 물론 역사를 보면 전문가들의 예측보다 기술이 훨씬 빨리 발전한 사례도 많습니다만, 전문가들의 예측보다 훨씬 느리게 발전한 사례도 적지 않았습니다”라며 이 비현실적 계획에 선을 그은 바 있다. 그러나 “5년 안에 탄도미사일 방어를 위해 완전 무기화된 X-선 레이저를 개발할 것”을 설득하는 ‘하이프론티어’나 ‘위기대처위원회’ 같은 로비 집단은 “레이저 사출장치 하나가 별개의 목표를 가진 10만 개의 광선을 발생시킴으로써 고속 미사일 1천 개 이상을 파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허황된 이야기에다가 “소련이 미사일 방어용 레이저 무기 분야에서 앞서가고 있다”는 이른바 ‘빔 갭(beam gap)’이라는 협박까지 가해지자 백악관의 맥팔레인이 이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면서 이를 핵무기 증강의 논리로 역이용했다.

전략의 혁명, 레이건의 변신


▎1985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왼쪽)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스위스 제네바의 한 호텔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레이건 재임시 MD의 시초라 할 전략방위구상(SDI)이 수립된다.
백악관 회의에서 와킨스가 이미 각 군 총장을 설득한 줄 모르는 레이건은 총장들에게 하나하나 의견을 묻자 그들은 맥팔레인의 의견에 동조했다. 이것이 최초로 SDI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경위다. 우주에서 소련의 핵미사일 요격한다는 SDI는 ‘별들의 전쟁’으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레이건이 여기에 홀딱 반했다는 건 인간의 전쟁 역사에서 가장 유토피아적이고 급진적인 발상의 전환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도약이 있었다. 맥팔레인과 와킨스는 미사일 방어가 단지 핵무기의 억지력을 증강하는 보완적인 수단으로 보고 이를 말한 것이라면, 레이건은 거꾸로 미사일 방어를 전략적 우위를 달성하는 주된 것으로 보고, 필요하다면 핵무기를 폐기할 수 있다는 반대의 입장으로 간 것이다. 마침내 1983년 3월 23일에 레이건은 핵무기의 억지력보다 한층 진보된 전략방위구상을 발표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그해 5월에는 미 의회가 MX미사일의 개발 및 시험발사비용 6억2500만 달러의 지출을 승인하게 된다. 이 구상이 나오고 3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X-레이저 빔으로 적국의 미사일을 요격한다는 개념은 적의 미사일을 무력화하지도 못했고, 그 허황됨을 조금도 반감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개념은 레이건에 의해 과거 핵무기가 갖고 있었던 신학적 권위를 계승하는 하나의 교리로써 그 영향력은 더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레이건이 미사일 방어라는 혁명적 개념을 구상한 것은 그와 또 다른 한편으로 지구상의 핵무기를 전부 폐기하자는 대 소련 협상의 개념과 짝을 이룬다. 초기 SDI 구상은 미사일 방어에 투입되는 기술과 개발계획을 소련과 공유한다는 것이고, 그 결과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의 억지력이 소용없어지면 핵무기를 전부 폐기하자는 또 하나의 유토피아적인 발상과 연결돼 있었다. 이 점에서 레이건은 스스로를 핵무기의 독을 제거하는 해독제라고 했다. 그러나 이를 접한 고르바초프는 소련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천문학적 개발비가 투입되는 계획이라는 점에서 고려할 수 없었고, 이것이 ABM 조약 위반이기 때문에 더더욱 수용할 수 없었다.

고르바초프는 그런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문제가 되는 핵무기가 있으면 바로 폐기하면 된다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유럽에 배치된 중거리 핵미사일을 일방적으로 철수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미국의 전략가들은 어떻게든 핵 감축을 저지하고자 소련 영토에 배치된 중거리 미사일이 있으므로 효과가 없는 소련의 계략이고 했다. 그러자 고르바초프는 “소련 영토의 핵무기가 문제인가? 그럼 그것도 폐기하자”고 했다.

그러자 1985년 1월 20일 두 번째 취임 연설에서 레이건은 ‘핵무기의 완전 제거’를 소련에 요구했다. 그 자신은 계속 신형 대륙간탄도탄을 개발하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여기서 레이건이 핵무기 없는 세상을 꿈꿨다고 보기에는 다소 석연치 않은 점이 있고, 다만 SDI는 소련의 핵위협을 제거하는 데 유력한 협상수단이었다고 보는 쪽이 합리적인 해석이다. 결국 냉전시대 핵무기라는 창의 권위는 냉전이 종식되면서 미사일 방어라는 방패로 옮겨가는 역사적 변곡점을 형성했지만, 그것은 결국 핵무기의 완전 폐기라는 비전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라고 할 만했다. 레이건이 이 방패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강했는가는 심지어 핵무기를 폐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미사일 방어만은 해야만 한다는 주장으로 나아가기에 이르렀다.

사실 1986년 10월에 고르바초프와 레이건은 하마터면 “모든 핵무기를 폐기한다”는 합의를 할 뻔했다. 그러나 SDI에 반대하는 고르바초프에 대해 레이건이 SDI 시험을 계속하겠다고 고집해서 이 합의는 실패한다. 고르바초프는 SDI가 또 하나의 군비경쟁의 서막이라고 인식했고, 그 인식은 옳았다. 핵무기가 문제가 된다면 폐기하면 그만이지, 없어질 핵무기를 방어하는 시스템을 왜 만들어야 할까? 이 회담이 실패하고 소련이 일방적인 핵 감축으로 돌아선 1987년에 미국은 또 하나의 고고도방어체계인 사드(THAAD) 개발을 결정하게 된다. 지금 한반도 배치 문제로 시끄러운 그 사드다.

미국의 힘에 대한 믿음의 집합


▎지난해 3월 크림자치공화국 수도 심페로폴에서 ‘우리는 전쟁에 반대한다’는 등의 피켓을 들고 반전시위를 벌이는 시민들. 당시 미국이 핵 추진 미사일 구축함을 흑해로 배치하자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동쪽 국경에서 대규모 훈련에 들어갔다.
레이건 이후의 지난 20여 년은 미국의 달 착륙 이후 과학적 열정의 집합체인 미사일 방어에 대한 끊임없는 논쟁의 기간이었다. 프랜시스 피츠제럴드의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인간이 달에 간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미쳤다고 말했다. 지금 당신네 이야기는 과학자들이 미사일 방어망을 건설할 수 없다는 소리인데, 이 나라에서 불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과학은 마술이 아니며 미국의 기술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있다면, 그들은 애국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비난받아도 싸다.”

이 같은 주장은 지난 30여 년간 미사일 방어계획이 성공하지 못했음에도 오히려 지금에 와서 더 힘이 실리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의문이 있다. 우선 소련의 핵미사일에 대한 대비 차원에서 미사일 방어가 추진된 것이라면 소련이 붕괴한 지금에 와서 왜 미사일 방어가 오히려 확대되었느냐는 점이다. 전면적인 핵전쟁의 위협이 줄어들었다면 당연히 미국의 핵무기도 폐기돼야 하는데 미사일 방어에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클린턴 대통령 시절에 미사일 방어국(MDA)로 확대 개편된 미국의 미사일 방어 조직은 개발 인력만 10만여 명을 넘게 거느리고 있다. 여기에는 록히드마틴, 레이시언과 같은 주요 방위산업체의 개발 인력은 포함조차 되어 있지 않다. 이 많은 사람에게 그동안 2천억 달러를 투자한 미사일 방어는 실패할 수도 없고 실패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역사는 더 이상 핵무기의 억지력만으로 미국의 패권을 보장해주지 않는 시대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에는 세계의 유일 패권국 미국만이 오직 압도적인 군사력의 우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 믿음 자체를 버릴 수 없기 때문에 MD는 미국의 패권을 뒷받침하는 군사적 토대이자 집단의지로서 하나의 생명력을 부여받았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MD는 거대한 탐욕의 공장이다. 미국의 국방비를 지탱하는 핵심 명분이면서 수많은 일자리와 연구개발 자금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이다. 여기에다가 클린턴은 레이건이 추진하던 핵무기 감축 및 폐기에 대한 정책마저 폐기 처분했다. 그가 만든 핵태세검토(NPR)는 핵무기를 감축하기는커녕 사실상 더 증강하는 것을 전략적 목표로 하고 있었다. 소련이 해체된 상황에서 핵무기를 더 정교하게 가다듬으면서 국가 미사일 방어(MND)와 전역 미사일 방어(TMD)를 모두 추진한다는 점에서 클린턴은 군비가 감축되던 시대의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가장 이단적인 모습을 보였다.

숙적 소련 대신해 북한·이란 등 ‘악의 축’ 지목

소련이라는 숙적이 사라지자 이제 미사일 방어는 북한과 이란이라는 깡패국가의 핵미사일 위협으로 그 추진 명분이 옮겨갔다. 클린턴이 이란의 미사일 위협을 명분으로 추진한 유럽미사일 방어계획(EPAA; European Phased Adaptive Approach)이 대표적이다. 이 계획은 이란의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유럽을 방어하고자 독일에 미사일방어지휘통제센터를 두고, 터키에 사드 요격체계, 루마니아에 스탠더드 미사일을 배치하며, 2018년에는 폴란드와 체코에도 레이더와 요격미사일을 배치하는 것으로 돼 있다. 클린턴 시기에는 북한과 활발한 대화를 하면서 원만한 핵 협상이 이뤄지고 있었고 2000년까지는 한반도 비핵화가 무리 없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문제는 이란의 핵이었고 이것이 MD를 추진하는 현실적인 명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러시아는 미국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이란 핵은 표면적 명분에 불과하고 유럽의 MD는 나토(NATO)의 동진, 즉 러시아를 고립·압박하기 위한 술책으로 비쳐졌다. 21세기에 들어오자 사정이 크게 변해서 조지 부시가 이란, 이라크, 북한을 핵미사일을 개발하는 ‘악의 축’으로 지목하고 이들로부터 미국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MD를 적극 추진하는 것으로 상황을 변화시켰다. 부시의 MD 추진에 대해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은 “미사일 방어의 완성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그렇게 말렸는데도 MD 추진에 대한 충동은 통제가 불가능했다. 다만 부시가 마음껏 MD를 추진하지 못한 것은 9·11테러로 촉발된 테러와의 전쟁에 발목이 잡힌 탓도 있고, 이라크 전쟁 실패로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물러나고 그 후임으로 등장한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이 MD 회의론자였기 때문이다. 게이츠는 2009년에 “사드는 기술적으로 실패한 무기”라고 보고 개발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그러나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가브리엘 천사의 선한 이미지와 중첩되어 있는 MD의 매력에 깊이 중독되어 있다. 이미 MD는 군비경쟁의 종식을 차단하는 쐐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미국이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그 동맹국을 연결하는 거대한 네트워크로서, 또 전 세계에서 미국의 패권이 유지되는 군사적 담론으로 생명을 부여 받았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열핵 전쟁의 이미지를 창조한 근엄한 징벌자로서 미국의 권위가 부활하는 또 하나의 신학적 사건이다.

MD 시스템이 성공할 것인지, 실패할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미국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는 강고한 믿음체계, 그것이 천문학적 돈을 쏟아붓는 토양이 되고 미 동맹국을 결속시키는 지도력의 원천이라는 데 있다. 악마를 징벌하는 천사의 이미지는 MD 아니고서는 발휘되기 어려운 것이다. 이점에서 MD는 ‘만들어진 신’이었다. 최근 새누리당의 유승민 원내대표가 아직 성능이 확실치도 않고, 금방 배치되지도 않으며, 미국 내에서도 의심의 대상인 사드에 대해 맹목적으로 배치를 주장하고 나선 것도 바로 그런 종교적 신념과 연결된 것이다. 이 점에서 미국의 MD에 대해서는 “믿는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미국과 이란 사이에 핵 협상이 타결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러자마자 MD에 사활을 걸고 있는 미 공화당이 “이 핵협상은 무효”라며 강력히 반발하는가 하면, 이제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MD의 표면적인 명분인 북한에 대해 일제히 “ICBM을 실전배치하고 있다”며 악마적 공포를 확산시킨다. 그들에게는 천사가 존재해야 할 선악이 양분된 현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념론 없이 이 기독교 문명은 존재할 수가 없다. 내세의 신은 반드시 신의 무기를 통해 육화(肉化)되어야만 한다.

-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201505호 (2015.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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