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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긴급 인터뷰] 알렉산드르 티모닌 주한 러시아 대사 - “사드 배치로는 북핵문제 해결 난망, 6자회담 진전이 유일한 정답” 

생명공학·생화학·핵물리학 등 혁신적 기술개발 분야 한국과 협력 가능… 사드의 한국 배치는 러시아에서 최고 수준의 주목받는 이슈 


▎알렉산드르 티모닌 주한 러시아 대사는 “사드의 한국 영토 내 배치가 미국 MD체계의 전 세계 추가 확대로 이어질 것이란 점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5월 9일 러시아의 제70주년 2차대전 전승기념일 행사에 박근혜 대통령이 불참한다는 입장을 세웠다. 대신 윤상현 대통령 정무특보를 특사 형식으로 참석시킨다고 밝힘으로써 참석 거절의사를 완곡하게 전달했다. 박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에 큰 기대를 걸었던 알렉산드르 티모닌 주한 러시아 대사에겐 대단히 실망스런 일이었다.

불참 이유에 대한 해석은 3가지다. 박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의 러시아 회동 조율이 불발됐을 가능성이 우선 제기된다. 악수만 하고 헤어지는 이벤트는 안 하는 것만 못하다. 더 큰 가능성은 핫 이슈로 돌출한 사드(THAAD) 배치 문제를 놓고 정부가 조심스러운 입장에서 관망 태도를 유지하려는 의미다. 중국과 러시아가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깊이 우려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도 사드 배치 문제는 의제에 오르지 않았다. 한미 양국이 매우 조심스럽게 사드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드 배치에 극력 반대하는 러시아 방문에는 상당한 부담이 따른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서방의 러시아 제재가 취해지면서, 최대 동맹국 미국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도 불참의 유력한 배경이다.

반면 4월 13일 로두철 북한 내각 부총리가 모스크바를 방문하면서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만약 김정은이 5월에 러시아를 찾게 된다면 그의 첫 국제외교 무대 데뷔인 동시에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까지 가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그동안 고립 상태였던 북한 입장에서는 외교적 숨통을 트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과거 김일성이 비동맹회의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국제 외교무대에 등장했던 행보를 손자인 김정은이 재현할 수 있겠느냐는 궁금증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티모니 대사는 김정은의 전승절 참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푸틴-김정은 정상회담이 과연 열릴 것인가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않았다. 아직 조율되지 않았다는 점을 드러냈다기 보다 양국 정상회담의 극적인 효과를 반감시키지 않겠다는 제스처로 읽힌다.

그간 러시아는 공식·비공식적으로 미국과 서방이 주도하는 제재에 한국이 참여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 고마움을 나타냈다. 승전 기념행사에 한국 대통령의 참가에 큰 기대를 걸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전승절은 70주년이라는 기념비적인 의미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들이 생존해 있는 동안에 마지막으로 개최되는 대규모 국제행사로 자리매김한 의미가 있다. 미국이 중국·러시아와 날카로운 군사정치적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가운데, 어쨌거나 우리 정부는 중국·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정책기조를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4국 관계가 머금은 균열과 갈등이 미묘한 파열음을 내고 있는 시점에서 티모닌 대사의 입장을 서면 인터뷰를 통해 들어봤다.

3개의 민감한 질문에는 답변 유보


▎지난 2월 12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티모닌 대사로부터 신임장을 받은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윤병세 외교부 장관.
티모닌 대사는 다음과 같은 3개의 민감한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을 유보했다. ▷만일 한국과 미국 정부가 사드 배치 추진을 강행한다면 러시아 정부는 어떤 조치를 취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나? ▷김정은 제1 위원장의 남북대화 의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과연 그의 의지를 진실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들이 있나? ▷사드의 한국 배치에 반대한다면, 러시아가 북한에 대해 핵무기 개발의 중단을 적극적으로 요청하거나 설득할 수 있을 것으로 보나?

사드 배치 강행 이후의 러시아의 전략적 대응, 김정은의 남북대화 의지의 진정성 등은 대사가 언급하기엔 부적절한 내용일 수 있다. 또한 사드의 한국 배치에 반대하며 러시아가 내놓을 수 있는 카드는 결국은 6자 회담의 진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은 중국의 입장과 거의 일치하는 대목이다. 러시아와 중국 모두 6자회담의 진전을 통해 북핵문제 해결의 물꼬를 트고, 이 카드로 남한 내 사드 배치를 막아야 한다는 공통인식을 갖고 있다.

남북한을 통틀어 한국 민족 전체에 대해 갖는 이미지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현재 나의 모든 외교 활동은 한반도를 향해 있다. 러시아 대사로 서울에 오기 전 2년 6개월간 북한 대사로 평양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덕분에 한반도의 상황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폭 넓은 시야를 갖게 되었다고 자부한다. 남한과 북한은 서로 비슷한 것 같아도 많은 측면에서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반대도 성립한다. 다른 것 같지만 공유하고 있는 요소도 또한 많다. 두 나라 국민은 공통의 역사와 문화로 결집되어 있고, 하나의 언어를 사용한다. 양쪽 국민 모두 정이 많고 재능이 풍부하며 국가의 일원으로서 강한 긍지와 자부심이 있다. 또한 오랜 기간의 분단 상황을 인내심을 가지고 잘 견뎌내고 있다. 평화, 번영, 협력과 상호교류, 궁극의 목표라 할 수 있는 통일을 향해 진심 어린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에 감동하게 된다. 양국민 모두 러시아에 대해 우호적이다.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러시아의 진실된 노력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란 긍정적 기대감이 있다. 남북한 양쪽에서 대사를 지낸 나의 경험이 양국 협력의 미래에 도사리고 있는 거대한 잠재력을 일깨우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러시아 전승기념일의 전통과 성격을 설명한다면?

“나치 독일이 동부전선으로 전력의 75%를 보내 소련을 파괴하려고 했을 때, 당시 소련 국민이 전례 없는 무력과 용기로 이에 저항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적을 격파할 것인가 혹은 노예가 될 것인가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승리를 위해 약 2700만 국민이 목숨을 바쳤다. 러시아에는 사실상 모든 가정에 전쟁 중 실종자, 부상자, 봉쇄작전으로 인한 아사자,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어 사라진 가족 구성원이 있다. 화해도 망각도 어려운 상황이다. 러시아에서의 제2차 세계대전 승전은 ‘러시아’와 ‘다른 국가’의 것으로 나뉘지 않는다. 이 승리는 반히틀러 연합 모든 국가의 협력으로 가능했다. 러시아는 1945년 8월 100만 명의 일본 관동군을 격파했으며, 중국의 북동지역과 한반도를 해방하는 데 기여했다. 한반도에서 관동군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3500명의 소련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사망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러시아 구상과 흡사

전승기념일에 맞춰,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 간의 정상회담은 확정된 것이라 봐도 되나?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에게 승전 70주년을 기념하는 모스크바 행사에 참가해달라고 초대했다. 이 초대에 평양은 이미 긍정적인 답변을 보냈지만, 러시아-북한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논하기는 아직 이르다. 다만 러시아가 북한과 상호 존중, 상호 호혜 및 평등 원칙에 입각한 우호선린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확언할 수 있다. 양국 관계는 핵 문제 등 한반도 현안을 논의하는 정치적 대화를 포괄하고 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10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제안한 것으로 이는 남북한과 아시아, 유럽으로 연결되는 유라시아 대륙을 단일경제권으로 발전시켜나가자는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평가와 기대를 설명한다면?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교통 및 운송 경로를 만드는 것은 2012년 APEC 정상회담 당시 러시아가 제안한 우선순위의 프로젝트였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다. 지난 10년간 러시아는 두 대륙을 연결하여 자유로운 재화, 서비스 및 인적 교류를 촉진하는 인프라 시설 증대를 옹호해왔다. 박근혜 대통령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러시아의 구상과 상당부분 일치한다. 두 국가의 정책이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과정을 통해 더 많은 협력 분야를 창출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푸틴 대통령의 ‘아시아 중시 정책’과 어떻게 상응할 수 있다고 보는가? 지난해 러시아 야쿠티야 공화국에서 첫 삽을 뜬 엄청난 규모의 ‘시베리아의 힘’ 파이프라인도 아시아를 향하고 있다. 러시아와 아시아의 경제는 어떤 측면에서 서로 협력할 수 있다고 보나?

“러시아 극동지방의 급격한 경제 개발과 아시아-태평양 경제 체제로의 통합은 러시아의 정책 우선순위 중 하나다. 현 시점에 소위 ‘가속(급속) 발전 영토’는 경제 성장의 엔진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 지역에 외자 유치에 우호적인 환경을 만들고자 러시아는 노력하고 있다. 한국 기업이 참여해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것에도 관심이 많다. 러시아 극동지역의 경제적 잠재력, 빠르고 지속가능한 성장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도 이롭기 때문이다. 러시아 극동지역은 경제 협력의 중요한 연결고리로, 양국 무역의 41.2%를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는 조선, 에너지, 기반시설, 어업 및 천연자원과 같은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화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또한 생명공학, 생화학, 핵물리학과 같이 러시아와 한국이 혁신적 기술 개발을 촉진할 수 있는 분야에서도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부산에서 유럽까지 철로로 연결해 아시아와 러시아, 유럽을 하나로 잇는 경제권으로 만들자는 것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전략이다. 그러기 위해선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이 필수적인데 러시아는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러시아는 항상 남북한 관계에서 일관된 입장을 취해왔다. 평화적이고 자주적인 통일을 목표로 하는 모든 건설적인 계획을 지원한다. 러시아는 통일 한국이 민주적이고, 평화적이며 러시아에 우호적일 것임을 확신한다. 통일 한국은 러시아의 믿음직한 파트너가 될 것이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믿는다. 남북간의 현존하는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신뢰 분위기를 구축하고, 상호 존중의 대화를 여는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남북간 협력과 교류의 장애물을 제거해나가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러시아와 남북한 3자 공동 프로젝트의 의미는 굉장한 것이다. 시베리안 횡단 열차와 한반도 횡단 열차의 연결, 남북한의 전기·가스 파이프라인을 연결하는 공사는 실행되기만 한다면 엄청난 경제효과가 창출된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고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매우 유익한 조건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란 핵 문제의 성공적인 타결이 시금석”


▎남북한과 러시아의 물류협력사업인 ‘나진-하산 프로젝트’ 시범사업이 시작됐다. 지난해 12월 1일 시베리아산 석탄 4만5천t을 실은 화물선이 경북 포항항에 입항해 하역작업을 하고 있다.
북한과의 경제협력, 지금까지 어떤 단계에 와 있다고 평가하나?

“지금까지 질문의 맥락으로 볼 때 한국인들은 북·러 경제협력보다 북한을 포함한 남·북·러 3각 경제 협력에 더 많은 관심이 있을 것으로 본다. 앞서 언급한대로 시베리안 횡단열차와 한반도 횡단 열차의 연결, 남북한의 전기·가스 파이프라인을 연결 공사는 상당한 경제적 효과에 더불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도 굉장한 기여를 할 것이다. 그중 ‘러시안 레일웨이’사의 나진-하산 철도 재건설 및 나진항 제 3부두 개선 사업이 가장 규모가 크다고 볼 수 있다. 2014년 12월 1일 러시아에서 나진을 거쳐 포항으로 가는 유연탄 시험운송도 이미 성공했다. 러시아는 앞으로 나진-포항간 물류 이동이 정기화되길 기대한다. 러시아는 이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를 희망한다.”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의 한국 배치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사드라는 시스템을 어떤 것으로 파악하고 정의하고 있나?

“사드의 한국 배치 관련 최근 언론 보도는 현재 러시아에서 최고 수준의 주목을 받았다는 점을 숨기지 않겠다. 사드의 한국 영토 내 배치가 미국의 전 세계 미사일 방어 체계의 추가적인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그 같은 사태는 불가피하게 전 지구적 차원의 전략적 상황에 영향을 미치며, 한반도의 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또 다른 걸림돌이 된다. 또한 대 미사일 방어체제를 구축하려는 미국의 독자적인 행동은 그간 지속적으로 세계 전략 안정성 및 무기 통제 프로세스를 위협해왔고, 사드의 남한 배치는 추가적으로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해 보인다. 러시아는 한국 정부가 사드 배치가 국가 안보에 미치는 모든 결과를 면밀하게 분석할 것을 기대한다.”

북한 핵무기 개발과 보유를 막기 위한 프로세스 중 6자 회담 외에 더 유용한 압력수단이 존재하나? 아니면 6자 회담을 보완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현재 상황에서 6자 회담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확신한다. 비록 지금은 대화가 사실상 교착상태에 빠져있지만, 6자 회담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노력에 가장 적합한 방식이다. 이란 핵 문제의 성공적인 타결이 가장 좋은 사례 아닌가? 아무리 복잡한 문제라 할지라도 오로지 정치 및 외교적 수단에 의거해서, 그리고 이해당사자의 합법적인 이익의 존중을 통해서 해결의 길이 열린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고 생각한다.”

- 글 한기홍 선임기자

201505호 (2015.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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