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봄의 전령 배추흰나비 

새끼와 어미의 삶터가 겹치지 않아 먹이싸움을 피해가는 영리한 동물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배추흰나비는 한국에 17종이 서식한다.
이른 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나비 중의 하나가 ‘배추흰나비’다. 배추·무·양배추와 같은 배추과 또는 겨자과라고도 부르는 십자화과(十字花科) 작물을 먹이식물로 삼기 때문에 양배추나비(cabbage butterfly)로 불리고, 흰나비과 중에서 작은 축에 들기에 ‘작은흰나비(small white butterfly)’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해 봄 ‘흰나비를 먼저 보면 엄마 죽는다’는 말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그래서 눈을 꼭 감고 머리를 잘래 잘래 흔들면서 ‘아니야, 아니야, 노랑나비 봤어’라면서 고함을 질렀었지. 어쨌거나 엄마 죽는다는 말이 어찌 그리 무서웠는지 모른다. 그런데 올해는 난생 처음 천만다행으로 노랑나비를 먼저 만났으니 아마도 운수대통 할 점괘(占卦)가 아닌가 싶다.

배추흰나비(Pieris rapae)는 나비목(인시목, 鱗翅目) 흰나비과의 절지동물(곤충)이다. 이 과(科)에는 배추흰나비·흰나비·노랑나비 등이 있고, 전 세계에 1천여 종, 한국에는 17종이 있다. 비슷비슷한 놈들을 분류할 때 날개 맥(시맥, 翅脈)이 중요한 검색 자료(열쇠, key)가 된다.

배추흰나비는 앞날개 길이가 19∼27㎜이고, 날개 편 길이가 32~47㎜이다. 앞날개에 2개의 점이 있으면 암컷이고, 점이 하나면 수컷인데 둘 다 뒷날개에는 1개의 점이 있다. 한반도 전역에 분포하고, 배추흰나비과 중 가장 넓게 퍼져 살며 개체수가 많은 우점종(優占種)이다.

이들은 발생 시기에 따라 모양이나 크기가 다르니 이를 계절변이(季節變異, seasonal variation) 또는 계절형(季節型, seasonal type)이라고 하고, 여름형은 가을형보다 몸의 빛깔이 곱고 덩치도 크다. 유충이나 성충 모두 주행성이고, 암컷은 3주 동안 산다.

한데 나비 한 쌍이 살랑살랑 스치듯 말듯하면서 나는데, 이는 결코 밀월여행이 아니라 수컷의 항문 근처에 있는 연필 지우개 닮은 돌기로 암놈 더듬이에 사랑의 향수(성페로몬)를 묻혀주는 짓이다. 그렇게 1시간 넘게 전희(前戱)를 하다가 이윽고 후미진 곳에 사뿐히 내려앉아 너부죽이 날개를 펴고는 짝짓기를 한다.

배추흰나비 암컷은 알을 정해진 숙주식물(宿主植物, host plant)의 잎 아래에 몇 개씩 뭉치로 낳는다. 알은 원기둥꼴로 노르스름하고 폭이 0.5㎜, 길이 1㎜이며, 세로로 12개의 홈이 있고 총알을 닮았으며, 암컷은 평생 300~400개를 낳는다. 산란 1주일에 애벌레가 깨이고, 갓 부화된 배추벌레는 알껍데기를 먹어 치운다. 애벌레는 네 번의 허물을 벗으면서 5령(五齡, fifth instar)이 되는데 2~3주 기간이 걸리며, 그 뒤에 번데기가 된다.

애벌레(배추벌레)는 짙은 연두색이고, 잔털이 빽빽하게 나며, 다 자란 것은 몸길이가 3㎝ 남짓이다. 또 배추벌레를 ‘청벌레’라고도 하는데 이들은 몸 빛깔이 배춧잎 색과 흡사해 포식자의 눈에 잘 띄지 않으니 이를 보호색(保護色, protective coloration)이라 한다. 사실 필자도 살충제인 농약을 치지 않고 눈으로 대충 보고 잡는데 배추밭에서 애벌레를 찾는 일은 잔디밭에서 바늘 찾기만큼 어렵다. 배추흰나비의 천적은 기생파리·침노린재·배추벌레기생벌·사마귀·거미·개구리 따위다.

다 자란 유충은 잎 뒷면이나 근처에서 실을 뽑아서 몸을 꽁꽁 묶은 뒤 번데기가 되고, 번데기는 회황색(灰黃色)이고, 머리와 가슴 부위가 모나고 뿔이 난다. 번데기가 된 후 7∼10일이면 등 쪽 부분이 세로로 갈라지며 접힌 날개돋이(우화, 羽化)하면서 마침내 배추흰나비로 탄생한다. 환경조건이 좋으면 1년에 3∼4회 발생하고, 겨울이 되면 식물체·담장·처마 등에서 번데기로 겨울나기를 한다.

보고도 못 본 체하는 눈짓 ‘나비눈’

그리고 배추흰나비애벌레는 배추·무·양배추·케일(kale)·브로콜리(broccoli) 등 겨자과(mustard family) 식물에 심각한 피해를 끼치는 해충(pest)으로 잎맥만 남기고 송두리째 먹어 버리니 ‘배추밭의 악동’이라 부른다. 이렇게 배추벌레는 해충(害蟲)이지만, 성충은 꽃가루받이(수분, 受粉)를 하여 식물의 번식을 돕는 익충(益蟲)이다.

배추흰나비는 아무 꽃물을 먹지 않고 숙주식물이 정해져 있다. 눈으로 보거나 냄새로 꽃을 찾아가 앉아 빨대를 펴서 꿀샘에 꼽고 꿀을 빤다. 그리고 배추흰나비는 꽃이 붉거나 푸른색, 노란색을 좋아한다. 그런데 배추는 배추흰나비가 꿀물을 찾기 쉽게 도움을 주는 수도 있다. 배춧잎은 자외선을 반사하지만 꽃의 중앙부는 그것을 흡수하여(나비눈에는 검은 점으로 보임) 나비의 눈에 잘 띄게 해준단다. 서로 없어서는 안 되는 꽃과 나비의 의존관계를 말한다. 또한 못마땅해서 눈알을 굴려 보고도 못 본 체하는 눈짓을 ‘나비눈’이라 한다지.

다른 곤충들이 다 그렇듯이 꼬물꼬물 잎사귀 위에 사는 배추벌레와 공중을 훨훨 날아 다니는 하얀 배추흰나비 사이에서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딴 생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애벌레가 풀잎을 갉아 먹는다면 어른벌레는 무·배추·냉이·아욱·망초·엉겅퀴·메밀 등 여러 꽃에서 꽃물(nectar)을 딴다. 그래서 새끼(유충)와 어미(성충)가 삶터인 공간과 먹잇감이 겹치지 않아 터나 먹이싸움을 피해간다. 어느 생물이나 다 삶의 공간(space)과 먹이(food)를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하니, 사람도 하나 다르지 않다. 공간을 넓게 차지해야 더 넉넉하게 먹이를 얻고, 따라서 종족번식도 많이 할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데 옛날 사람들이 화려하고 현란한 색상과 무늬를 뽐내는 나비비늘(인분, 鱗粉)에서 물감을 뽑으려 했는데 과연 성공했을까? 꽃잎을 따서 손가락으로 꽉 눌러 으깨보면 손에 색소가 묻어나지만, 쓱 문지른 나비날개에서는 무색가루만 묻는다. 도대체 어찌 노랑·빨강·파랑의 그 영롱한 비늘빛깔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걸까.

그렇다. 꽃잎은 나름대로 색소가 빛을 내지만 나비비늘은 물씨 없이 색깔을 내는 구조색(構造色)이다. 다시 말하면 꽃의 색소가 발하는 색깔은 모든 각도에서 봐도 같지만 인분은 나노 구조(nanostructure)라 다른 각도에서 보면 색다르게 보인다. 따라서 손가락에 묻은 나비비늘이 무색인 것은 나노구조가 파괴되어 본래의 빛이 사라진 탓이다. 진주조개·오팔·공작꼬리깃털·딱정벌레의 찬란한 빛깔도 화학색소가 아니고 물리적인 나노 구조다.

다 알다시피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E. Lorentz)의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란 것이 있다. 브라질의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텍사스에서 토네이도를 일으킨다는 이론으로, 어떤 일이 시작될 때의 아주 작은 차이가 결과에서는 매우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이론이다. 마땅히 사소한 일도 나중에 커다란 결말을 가져오니 모름지기 대수롭잖고 미미한 것이라도 낮잡아 보지 말 것이다.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1505호 (2015.04.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