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Home>월간중앙>히스토리

[웹툰으로 본 세상⑮] 백투더 ‘과거’ - 지나온 시간이여, 부활하라! 

역사를 소재로 한 웹툰도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김성훈 만화평론가

▎타임머신이 없더라도, 만화는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해준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 속으로 떠나보자!
<대장금> <주몽> <불멸의 이순신> <정도전> 등 역사를 소재로 한 TV 드라마는 거의 대부분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이 같은 사극(史劇)의 인기는 ‘역사가 허구보다 더 극적’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사실로 입증해 보이는 것이다. 그만큼 사람들은 지나온 시간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웹툰에서도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은 크게 다를 바 없다. 많은 소재 가운데서도 우리 역사를 컷 속으로 옮긴 이야기가 인기몰이를 한다. 그중에서도 요즘 가장 ‘핫’한 역사소재 웹툰 네 편을 모았다. 우리 몸 속에 저장돼 있는 과거의 기억을 반추해보자.

조선시대 ‘가무’를 엿보다 - 채한율(글) & 오은지(그림)의 <화음의 정원>


▎장악원의 절세미남 무현은 모든 무희에게 ‘아이돌’처럼 사랑받는다. 어찌 생겼는지 궁금증이 인다.
‘장악원’은 조선시대에 궁중에서 음악과 무용을 담당했던 관청을 지칭한다. 이것은 곧 우리 역사에서도 예술을 장려했던 공식 기관이 존재했음을 증명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화음의 정원>은 그러한 공간을 배경으로 권력과 음모 그리고 로맨스를 그려나간다.

주인공 ‘명연주’는 원래 노비신분이었지만, 아픈 동생의 치료를 위해 주인집을 뛰쳐나와 도둑질로 연명해나가고 있다. 비천한 신분이 그를 막다른 길로 몰아세웠지만, 그에게는 한 가지 비범한 재능이 있었다. 바로 남들보다 예민한 귀를 가졌다는 점이다. 그는 멀리서 다가오는 사람의 인기척도 파악할 수 있고, 남들이 알 수 없는 미세한 소리의 차이까지 들을 수 있다. 그런 그의 능력을 알아본 유장백은 그를 주종소(종을 만들어 궁에 납품하던 곳)에서 일하도록 한다. 유장백이 치매에 걸려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주종소의 사람들은 제대로 종을 만들지 않게 되고, 그러한 사실을 지적한 연주는 결국 주종소에서 쫓겨나고 만다.

한편, 유장백의 손녀인 일월은 궁에서 무희로 일하는데, 그녀의 춤 실력은 무희들 가운데서도 손꼽힐 만큼 출중하다. 이 소문을 들은 남자 악사들이 그녀의 자태를 훔쳐보다가 높은 관원들에게 혼쭐나기도 한다. 일월이 남자 악사들에게 ‘장악원의 아이돌’이라고 한다면, 악사들 가운데 무현은 무희들의 우상이다. 같은 남자들의 마음마저 설레게 만드는 외모를 지녔으니, 그저 훔쳐보는 것으로 사모하는 마음을 달래야 하는 무희들의 연정은 오죽하였겠나. 더욱이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장악원의 부전악에 오를 만큼 실력도 겸비하고 있어서 자타공인 조선시대 최고의 아티스트인 셈이다.

이처럼 주목받는 예능인들 틈바구니에 도적단 ‘한적회’의 두목이 등장한다. 장악원의 군졸 출신인 그는 신분사회에서 가장 큰 불평등이 ‘유희(遊戱)’에서 비롯된다고 정의한다. 먹고 살기도 힘겨운 시절, 그래서 병에 걸려도 적절한 치료조차 받기 어려운 것이 이름없는 백성의 처지라면, 이들에게 음악을 듣고 여흥을 즐기는 것은 누릴 수 없는 궁극의 사치였을 것이다. “천민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들어 볼 수 없는 신비롭고 웅장한 음악과 무희들”은 그 자체로 권력을 상징하는 것이니, 오로지 왕만이 누릴 수 있었던 유희였다. 한적회의 두목은 그러한 왕의 소유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그 욕망은 부하들로 하여금 세간의 귀중한 악기들을 훔쳐오게 만든다. 마침 도둑질을 하던 연주와 엇갈린 부하들이 연주를 대신해 포졸들에게 잡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두목은 연주를 잡아들인다. 동생까지 볼모로 잡힌 연주는 두목으로부터 왕의 유희거리, 즉 ‘편경’을 훔쳐오면 살려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저잣거리도 아닌 궁에서 편경을 가져와야 하는 연주는 과연 그 일을 이뤄낼 수 있을까.

18세기 후반, 조선 영조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화음의 정원>은 이처럼 교과서에서나 접했을 법한 소재를 가져와 흥미로운 스토리를 이어간다. 만화적 재미와 함께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질 수 있으니 더 이상 바랄 바가 없다.

현대인과 미래인의 요절복통 시간여행기 - 이윤창의 <타임인조선>


▎미래에서 온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들어간 주인공. 당장 그는 자신이 민속촌에 와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주인공 ‘장준재’ 앞에 어느 날 비행선이 나타난다. 비행선의 정체가 필시 UFO일 것이라고 확신하는 준재 눈에 몸 전체가 파란색인 인물이 들어온다. 자신을 ‘김철수철수’라고 소개한 그는 외계인이 아니라 미래에서 온 지구인이라고 밝힌다. 그러니 UFO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비행선은 사실 타임머신이었다. 호기심 넘치는 준재는 철수철수에게 타임머신을 한번 타볼 수 없겠느냐 물었고, 철수철수는 흔쾌히 허락한다. 그저 탑승만 해보려던 호기심은 섣부른 버튼조작으로 이어져 타임머신을 작동하게 만드니, 결국 두 사람은 시간을 거슬러 조선시대에 도착한다. 영화 <백투더퓨처>에서도 만나보지 못했던 요절복통 시간여행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눈앞에 펼쳐진 초가집과 한복차림의 사람들 모습에 ‘민속촌’이라며 ‘진짜 같다’라고 감탄사를 내뱉는 준재의 의식은 여전히 21세기에 있다. 조선시대에 어울리는 맞춤형 행동거지가 따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단 옷차림부터 문제다. 바지와 점퍼차림으로 거리를 돌아다니게 되니 두루마기와 저고리 차림의 당대 사람들은 준재와 철수철수의 이질적인 모습에 누구나 한 번씩 쳐다보게 된다. 브랜드 로고가 박힌 준재의 옷차림은 필시 21세기였다면 친구들 사이에서 ‘먹어주는 옷’이겠지만, 주막집 주인이 보기에는 누빈 저고리보다 못하다. 물론, 조선시대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해도 주인공의 처지가 별반 달라질 것은 없다. 무엇보다 21세기에서라면 생각지도 못할 일들이 연거푸 닥쳐온다. 싸리나무로 만든 담장이 무너져서 직접 나무를 해와 쌓아 올려야 하며, 씻고 먹는 물도 매번 동네 우물에서 길러다 써야 한다. 부엌 불씨는 한 번 꺼지면 매운 연기를 들이마시며 다시 살려내야 하니 독자들은 새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가 얼마나 편한 세상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처음 해보는 물지게질로 인해 주인공이 겪는 고생을 지켜보며 독자로서는 박장대소와 안타까움이 공존하게 되겠지만, 분명 그러한 상황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역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리라. 주인공이 ‘타임인조선’이라고 제목을 붙인 공책에 매일매일의 경험을 일기처럼 기록해나가는 것 역시 생경한 ‘체험, 삶의 현장’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1. 밥값을 치르라는 주모에게 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 주는 주인공. 미래로부터 온 파란색인간 철수철수와 현대 인간 준재의 조선시대 적응기는 마치 ‘덤앤더머’를 보는 듯하다. / 2. 타임머신이 산산조각 나는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하는 주인공. 그는 과연 21세기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한편 고장 난 타임머신이 자동복구 프로그램으로 수리 완료되기까지 수일은 걸린다고 하니, 준재와 철수철수는 어쨌거나 한동안은 조선시대에 맞춰 살아가야 할 판이다. 당장 일용할 양식도, 제 한 몸 누일 공간도 없던 두 사람에게 허드렛일을 거들며 주막집에 머물러도 된다는 주모의 허락은 그야말로 하늘이 도운 셈이다. 덕분에 준재는 주모의 딸 대례와의 아슬아슬한 ‘썸’도 타게 되니, 이것이야말로 시공을 초월한 로맨스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사람들에게 발각된 타임머신이 고을 관아로 옮겨져 산산조각 나게 되니, 어쩐지 로맨스나 즐기고 있을 상황은 아닌 듯싶다. 과연 주인공은 다시 ‘컴백홈’ 할 수 있을까.

조선시대 판타지 수사극 - 산타의 <월야에 우는 새>


▎1. 판타지물이지만, 작품 곳곳에 조선시대의 배경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 2. 임금이 각 종족의 수장에게 의견을 구하고자 전서구를 띄우는 장면이다. 임금의 옷과 배경에서 전통적인 느낌이, 임금 곁을 지키는 반수반인(半獸半人) 캐릭터의 모습에서는 판타지적 느낌이 묘하게 어우러진다.
이 작품 역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다만, 특정 시기를 따로 정해놓지는 않는다. 그것은 곧 조선시대가 작품의 주요한 모티브이기는 하지만,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를 둠으로써 상상력이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을 무한히 확보시킨다는 특징과 이어진다. 즉, 이 작품에서 ‘조선’은 시간이 아닌 공간으로서만 존재하며, 역사적 맥락이 아닌 배경으로서만 등장하게 되는 셈이다.

작품은 한양의 어느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으로부터 출발한다. 범인을 쫓는 과정에서 인간과 더불어 기린족·천시족·수인족·월야족 등 여러 종족이 등장하는데 이 작품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판타지가 가미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임금은 기린, 천시 그리고 수인족의 수장을 불러 모아 회의를 연다. 참석한 이들은 모두 월야족의 소행이라 결론을 내린다. 월야족은 흡혈을 통해 목숨을 부지하는 종족으로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유일한 생존자 ‘노야’만이 봉인되어 따로 관리되고 있는 상태다. 이에 조정에서는 수사관을 사건현장으로 급파하게 되니, 그가 이 작품의 실질적인 주인공 ‘여오’다. 그는 여러 증거와 증언들을 채집한 결과 월야족이 소행이 아닌 또 다른 누군가가 개입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마치 월야족의 소행인 것처럼 증거를 꾸민 점과 봉인이 해제된 월야족이 사라진 점으로 미뤄 월야족이 깊이 관여된 사건임을 깨닫는다. 때마침 현장으로 내려온 임금에게 이러한 사실을 고하고, 사건의 전모를 밝히기 위한 수사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한편, 임금의 전갈을 받은 각 종족의 수장은 월야족에 대한 수사에 모두 동의하고, 그에 따라 종족의 수장들로부터 천거를 받은 자들이 한곳에 모인다. 이름하여 특별수사부가 설치된 것이다. 갓 쓰고 도포자락 휘날리는 특별수사관의 자태와 댕기머리와 치맛자락에 무공을 실어 나르는 호위무사 자산홍의 몸놀림에 하급사령 효선, 기린족 무녀 초이, 의금부도사 백강 등의 합류는 이야기 흐름에 속도를 더한다. 때마침 붙잡힌 노야가 여오로부터 사건이 마무리되면 자유의 몸을 허락해주겠다는 약조를 받고 수사부에 합류하게 되면서 인간과 나머지 네 종족의 의기투합은 이야기의 향방을 더욱 예측 불가능하게 만든다.

조선을 다섯 종족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땅으로 설정했지만, 당대 최고권력자인 임금은 역시 인간이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사건 수사에 있어서 인간만이 독단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족들로부터 협조를 구하는 모습을 통해 서로 헐뜯거나 반목하는 것이 아닌 균형과 조화가 소중한 시대적 가치임을 새삼 보여준다. 하지만 그러한 평화와 질서를 깨는 사건이 등장했으니 다섯 종족이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는 점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조선시대에 피어난 판타지 수사극의 활약상을 기대해본다.

진짜 평범한 시골소녀 이야기? - 이무기의 <곱게 자란 자식>


▎작품 속에서 일본순사는 ‘나으리’라는 대명사를 가진다. 나으리의 등장을 먹구름에 비유하여 그 공포감을 주는 장면은 만화적 연출의 백미라 할 만하다.
‘진짜 평범한 시골 소녀 이야기’라는 소개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평범한 시골 소녀가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힘겨운 시간을 어떻게 감당해야 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고스란히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로 이어지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공간적 배경은 남쪽의 작은 시골마을이다. 그 풍경 속에 주인공 간난이와 동갑내기 개똥이, 그리고 동네 언니 순분이 등이 등장한다. 들에 올라온 나물을 뜯으며 재잘거리는 그녀들의 대화에는 어린 소녀들이 지닐 만한 호기심과 수줍음 그리고 희망사항이 고루 담겨 있다. 살랑거리는 나비의 날갯짓 또한 그녀들의 일상적인 수다와 제법 어울리니 평화롭다는 말 이외에 더 적절한 말은 없을 듯하다. 거기에 더해진 정감 어린 사투리와 예상치 못한 표정연기는 분명 독자들로 하여금 웃음을 짓게 할 것이다.

그러한 평화로움도 잠시, 일본 순사의 등장은 이 작품의 배경이 ‘일제 강점기’라는 사실을 환기시켜준다. 그리고 주인공이 일본순사를 지칭하는 ‘나으리’에 대한 소개를 이어갈 때쯤에는 작품의 긴장감은 순식간에 숨통을 틀어막는 답답함으로 바뀐다. “나으리가 나타나면, 멀찌감치 내빼거나 숨어있어야 한다고 했다. 마주쳐서 좋을 일도, 몸 성할 일도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른들로부터 들은 내용을 전하는 주인공의 시선에서도 두려움이 전해져 온다. 말단 순사의 등장이 마을 사람들에게 이 정도의 공포감을 심어준다면, 당시 조선을 지배하는 ‘일제’의 수탈과 압제는 과연 어떠했을지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만의 특징은 토속적인 배경에서 비롯된다. 한국적 감수성이 진하게 배어 있는 초가집, 황톳길, 앞산 등이 고스란히 작품으로 옮겨졌다. 독창성과 전형성을 겸비한 캐릭터의 조합도 시선을 끈다. 즉, 질펀한 남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인물들의 모습에 더해진 몸 개그의 향연이 웃음을 담보해주는 것이다. 악인과 선인에 대한 명확한 구분은 작품의 주제의식을 확고히 만든다. 이러한 특징은 독자로 하여금 어떤 컷에서는 포복절도하게 하다가 이어지는 컷에서는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반전의 장치로 작용한다. 작품은 해학과 현실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독자들을 쥐락펴락 한다. 그리고 웃음과 먹먹함에 익숙해질 때쯤 우리는 또 다른 감정이 솟구침을 느끼게 된다. 반성 없는 이웃나라의 뻔뻔함에 치를 떨게 되는 ‘분노’라는 감정 말이다. 동시에 그 감정은 우리에게 지나온 과거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현실이 아무리 힘들어도 일제강점기 때 핍박받던 조상들에 비하면 우리의 삶은 행복하다. 그리고 그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곱게 자라고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곧 곱게 자란 우리들이 다음 세대에도 곱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물려줘야 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물론 그 의무를 다하려면 앞선 세대의 아픔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도 깔려 있다.

김성훈 - 대학 졸업 후 만화잡지 기자, 만화편집자, 만화사이트 운영자, 만화웹진 편집위원, 만화평론가, 만화기획자 등 만화를 접두어로 둔 다양한 일을 해오고 있다. 쓴 책으로 <만화 속 백수 이야기>(살림출판사, 2005), <한국 만화비평의 선구자들>(한국만화영상진흥원, 2007) 등이 있다. 현재 만화규장각, 네이버 캐스트 등에 글을 연재하고 있다.

201505호 (2015.04.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