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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소설가 함정임의 ‘바닷가 서재] 어머니 언어의 아름다움 - 사람은 문학 없이도 살 수 있는가 

 

함정임 소설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어둠 속의 시> <고백의 형식들> <끝나지 않는 대화> 이성복 | 열화당
나는 모른다. 언제 그것이 내게 왔는지. 아마 열서너살의 어느 화창한 봄, 아니 열일곱여덟 살의 어느 안개 낀 가을인가. 그때가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할 순 없지만, 분명한 것은 어느 날 그것이 내게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그것은 이런 것이었다.

“안개 속에서 나는 왜 행복한지 몰랐다/ 떡갈나무가 떡갈나무를 불렀다 누이는/ 보이지 않고….”(이성복, ‘안개 속에서 나는 왜 행복한지 몰랐다’ 중, <어둠 속의 시>)

나는 몰랐다. 그것이 무엇인지. 누군가는 그것을 안개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사랑이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시라고 했다. 내게 그것은 문학 이전의 어떤 세계였고, 그것이 내게 온 이후, 내 삶은 이전과는 다른 것이 되었다. 내가 보는 모든 것, 내가 만지는 모든 것, 내가 생각하고, 내가 쓰는 모든 것이 그것으로 향했고, 다시 그것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은 소설가가 되기 전까지, 아니 소설가로 사는 오랫동안 송두리째 나, 나라는 존재, 나라는 의식 전부를 앗아갔다. 그것으로 나는 외국 언어의 숭배(보들레르, 렝보)로부터 깨어났고, 그것으로 내 어머니 언어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그것은 이런 것이었다.

“그 여자는 어쩔 줄 몰라 버스를 집어탔고, <문화촌-중랑교> 나는 뒤따라 올라탔다. 비좁은 차내. 그 여자는 말없이 팔꿈치로 나를 밀치고. 왜 그래, 제발, 내가 잘못했어. 그 여자는 나를 피해 뒷자리 어떤 남자 곁에 앉았고. 무안해 하는 나는 버스를 내렸다. 그날 밤 나는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냉랭한 방바닥, 두꺼운 초록 이불. 나의 잠은 어지러웠다. 나의 잠은 언덕과 벼랑을 지나 돌에 부딪히고. 그 여자에게 부딪치고. 그 여자는 한결같은 표정. 내가 잘못했어, 제발….” (이성복, ‘첫사랑’ 중, <어둠 속의 시>)

그런 것인가, 시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어느 날 맹렬히 사로잡혀서 청춘의 어둠 속을 초조하게 흔들리며 꾸역꾸역 지나온 기록들인가. 나의 스무 살 어름은 온통 시 이전의 끄적임, 시적인 어떤 것–단상·일기·편지–으로 충만했다. 그것으로 나는 밤마다 누군가를 갈망했고, 누군가를 부르고, 다가갔다. 그것, 그런 마음, 그런 행위가 무엇이었는지 알아보기에는 많은 세월이 필요했다. 돌아보니, 그것은 뜨거우나 대상이 뚜렷하지 않은 미정형의 사랑이었고, 충동적인 이끌림과 섣부른 판단과 무모한 투신과 황당한 좌절, 그리고 절망을 일부러 지은 옷인 양 걸치고 과장하던 청춘의 자화상이었다. 그것은 이런 것이었다.

“연애는 안 되고, 연애는 잘 안 되고/ 우리는 집을 떠났다/ 우리가 짐 꾸릴 때, 담 큰 녀석은/ 지붕에서 뛰어내렸다”(이성복, ‘연애는 안 되고’ 중, <어둠 속의 시>)

그런 것인가. 인생이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지나가기에 급급해서 잃었다가, 아니 잊었다가 한참 멀어진 뒤에야 얼떨결에 꺼내 보는 흑백사진 한 장 같은 것. 색이 바래고, 귀퉁이가 말리고, 피사체의 형상이 희미해졌지만, 그날 그 순간의 숨소리, 감정만은 오롯이 손에 잡히듯 생생하다가 이내 아득해지는 것. 서랍 속에 뒹굴던 종이조각들, 부러지고 뭉툭해진 연필들, 바스락 부서져 먼지가 된 건초와 꽃잎들,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인생이란… 그것은 이런 것이었다.

“숨겨둔 용기를 하나씩 꺼내는 일은 자기를 추하게 만든다 아버지가 그랬다 아버지는 늙어 귀밑털이 희어질 때부터 내 방과 누이 방의 책들을 하나씩 꺼내 읽기 시작했다 죄와 벌, 부활, 전원 교향악… 쓸데없는 짓이다 나도 쓸데없는 짓을 시작했다.”(이성복, ‘병장 천재의 사랑과 행복’ 중, <어둠 속의 시>)

청춘의 자화상, 흑백사진 같은 시편들

내가 모르고, 몰랐던 것에서 조금은 알고, 알아가는 것. 그것은 이성복의 시를 읽어온 궤적과 다름없다. 시인 이성복은 1980년부터 2013년까지 7권의 시집을 출간했고, 시집 한 권마다 성좌(星座)가 되었다. 나는 아마 열서너 살, 아니 열일곱여덟 살 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시 세계를 따라왔는데, 위에서 인용한 시의 연대기가 나의 여러 시기와 일치한다.

그리고 그것은 올봄 내가 벚꽃 만발한 사월의 바닷가 서재에 초대한 내 순정의 실체, 이성복의 세계이다. 이번에 나는 오래전 생의 비의(秘意)와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준 결정적인 시편들(<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 <남해금산> <그 여름의 끝>)과 삶의 눈부심과 그 이면의 슬픔을 체득하게 해준 시편들(<호랑가시나무의 기억> <아, 입이 없는 것들>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래여애반다라>), 그리고 삶과 예술을 오가며 때로는 명징하게, 때로는 살갑게 살게 해준 산문들(<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했다> <타오르는 물>), 그러니까 ‘이성복이라는 공식 문학사’는 괄호 속에 묶고, 거꾸로 이 문학사의 이면과 저변에 흐르는 파편들과 사유와 육성들과 함께했다. 날 것의 이성복, 사람 이성복을 만나고 싶었다. 오직 시에만 헌신했던, 가장 행복했던 시절에 씌어진 미발표 시편들 <어둠 속의 시>와 산문집 <고백의 형식들>, 그리고 대담집 <끝나지 않는 대화>가 그것이다. 산문집 <고백의 형식들>의 말미에 수록된 <일기>의 어느 대목들을 읽다가 흠칫 놀라곤 했다. 평소 내 버릇, 나의 문학 현실과 현장이 고스란히 거기에 있었다.

“2010년 7월 5일. 오늘 잠깐 <마담 보바리>의 아무 페이지나 펼치고 읽다. 책 뒷표지에 ‘플로베르가 있고 나서 말라르메와 보르헤스가 있게 되었다’는 푸코의 말에 잠깐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은 여섯 시 반, 집에 갈 시간이다.”(이성복, ‘일기’, <고백의 형식들>)

봄날은 갔다. 이성복은 고백의 형식들을 통해 질문한다. 사람은 시 없이 살 수 있는가.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시의 자리에 무엇을 놓든 대답은 하나다. 처음 이성복 시에 심하게 흔들렸던 열서너, 아니 열일곱여덟 살 이후 봄이면 어김없이 앓곤 했던 병이 살아갈 힘이었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는 사월이다.

함정임 - 소설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이화여대 불문과와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쳤다. 소설집 〈버스, 지나가다〉 〈네 마음의 푸른 눈〉, 장편소설 〈춘하추동〉 〈내 남자의 책〉, 예술기행서 〈인생의 사용〉 〈나를 사로잡은 그녀, 그녀들〉 〈소설가의 여행법〉 〈먹다 사랑하다 떠나다〉, 번역서 〈불멸의 화가 아르테미시아〉 〈행복을 주는 그림〉 등을 썼다.

201505호 (2015.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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