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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책갈피] ‘보통사람의 세기’는 어떻게 무너졌나 

‘영광의 미국사’ 뒤안의 어두운 그림자에 주목… ‘제국의 세기’로 돌진한 아메리카니즘의 허위의식 고발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현대사 1, 2 / 올리버 스톤 외 지음┃이광일 옮김 들녘┃각권 2만2000원
진보와 보수 세력 간의 ‘교과서 논쟁’은 한국이나 일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도 있다. 작년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시 학생과 학부모들은 고등학교 미국사 교과서 때문에 큰 홍역을 치렀다. 덴버시 교육위원회가 보수적 애국심을 고취하고 시민 불복종 관련 내용을 삭제한 미국사 교과 과정 수정안에 대해 교사와 학생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2013년 선거에서 보수 성향이 강한 인사들이 덴버시 교육위원회에 대거 진입하면서 사단은 시작됐다. 수정안에는 마틴루터 킹 주니어 등 흑인 인권 운동가에 대한 언급이 축소되고, 원주민(인디언)에 대한 학살 대목 등이 대거 제외됐다.

미국 역사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관점 역시 착잡하다. 그 역사는 천사와 악마의 모습으로 동시에 다가온다. 평균의 한국인이 미국사를 통해 배운 것, 또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포장돼 전 세계에 전달되는 미국의 모습은 이타주의, 자선, 아량, 자유와 정의, 소명과 헌신, 아메리칸 드림 등이다. 일반적으로 미국, 또는 미국의 역사에는 높은 가치가 부여된다. ‘최고의 가치’는 아니라 해도 ‘정의의 길’을 가기 위해 때로는 실수하고 때로는 악행에 가담하는 미국의 ‘안타까운’ 모습이 투영된다. 미국사에 점철된 악의 흔적은 아무리 나쁘게 평가해도 ‘필요악’이라는 시각이다.

‘영광의 미국사’에 반발하는 미국 학계의 흐름은 그러나 면면하다.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1928∼)의 지칠 줄 모르는 미국 대외정책 비판, 보스턴대의 ‘명물’ 역사학자 하워드 진(1922∼2010)의 ‘미국사 거꾸로 읽기’도 그 흐름 안에 있다. 촘스키는 <불량국가> 등을 통해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미국을 고발했고, 하워드 진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미국민중사>를 통해 역사에 헌신한 미국 노동자 계급의 희생과 고통을 그렸다.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과 아메리칸대학교 피터 커즈닉 역사학과 교수도 그 전통의 계승자를 자임한다. 대부분의 미국인이 지금까지 배워온 역사의 내러티브에 반기를 들었다. 미국에 대한 온갖 의문이 가득하다. 누구라도 가질 수 있는, 그러나 쉽게 제기하지 않는 의문이다.

왜 미국은 세계 모든 지역에 군사기지를 보유하고 있는가? 왜 전 세계 나머지 국가를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국방비로 쓰는가? 왜 더 이상 위협 세력이 없는데도 아직도 수천 기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가? 왜 미국은 다른 어떤 선진국보다 빈부 격차가 큰가? 왜 선진국 중에서 유일하게 전국민 의료보험이 안 되는가? 왜 대다수의 미국인은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기가 그토록 어려워졌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가장 근접한 현대사의 배경과 함께 제시된다.

두 저자는 ‘보통사람의 세기’를 주창했던 존 F. 케네디를 그리워한다. 케네디는 재직 마지막 시기(쿠바 미사일위기 이후)에 인식의 대전환을 보여줬던 대통령이다. 그가 암살당한 후 ‘보통사람의 세기’는 맥없이 무너졌고, 이후 미국은 제국의 길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왔다고 본다. 케네디의 대통령직을 이어받은 린든 존슨의 광기 어린 베트남전 확대 비하인드 스토리가 백미다. 존슨은 확전을 반대하는 합참과 육군의 고위 장성들을 신병 다루듯 욕하고 비난했다. ‘텍사스 카우보이’ 존슨의 좌충우돌 마초 기질이 초래한 엄청난 비극에 저자는 전율한다.

-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201505호 (2015.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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