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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포커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거대한 야망 - “이윤 늘리려 고용 안 줄여 … 3년 안에 ‘아시아 톱10’ 간다” 

93세의 ‘총괄’ 신격호 회장의 확고한 신임 얻어 … 월드타워 성공 동력삼아 전 세계로 ‘롯데 유통왕국’ 수출 

신동빈 회장의 롯데그룹이 올해 분수령적 전환기를 맞고 있다. 볼륨과 질 양면에서 재계 순위 5위에 걸맞은 사업 내용을 확보하는 일이다. ‘외화내빈’의 모양새를 극복해야 하는 것이 과제인데, 역시 출발점은 제2롯데월드 저층부 개장의 동력을 내년 완공 때까지 이어가는 일이다. 신동빈의 축적된 내공과 세계시장 전략, 그 입구와 출구를 해부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경제성장률 둔화와 유통업 출점규제 등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결코 뒷걸음치지 않는 ‘확장경영’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올해 행보가 심상치 않다. 내수경기 침체 등으로 거의 모든 기업이 투자와 고용을 줄이고 있는 상황에서 사상 최대 규모인 7조5천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롯데그룹의 지난해 투자액 5조 7천억원보다 30% 이상 늘어난 수치다.

올해 채용 인원도 지난해보다 오히려 늘어난 1만5800명으로 정했다. 지난 2010년 이후 해마다 채용규모를 늘리는 추세를 좀처럼 거둬들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는 최근 사석에서 “고용과 성장은 동전의 양면”이라면서 “고용을 줄여 이윤을 지키려는 것은 기업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행위로 결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경제성장율 둔화와 유통업 출점규제 등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결코 뒷걸음치지 않는 그의 ‘확장 행보’다. 2018년까지 매출을 두 배로 늘리고 아시아 톱10 기업 반열에 오르겠다는 신 회장의 야망이 깃든 출사표이기도 하다.

부친에게 헌정하는 ‘보은의 랜드마크’


▎신동빈 회장에게 제2롯데월드 타워는 3중적 의미의 랜드마크다. 서울의 랜드마크이며, 롯데그룹의 랜드마크이자 신 회장이 부친에게 헌정하는 ‘보은의 랜드마크’이기도 하다.
어려운 고비를 여럿 넘기며 일단 숨 고르기에도 성공했다. 제2롯데월드(정싱명칭 롯데월드몰·타워, 이하 월드타워) 영화관과 아쿠아리움이 우여곡절 끝에 재개장했고, 갑(甲)질 논란으로 퇴출 위기에까지 몰렸던 롯데홈쇼핑도 정부의 사업 재승인을 받았다. 신 회장은 올해 롯데가 분수령적 전환기를 맞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볼륨과 질 양면에서 재계 순위 5위에 걸맞은 사업 내용을 확보하는 일이다. ‘외화내빈’의 모양새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인데, 역시 출발점은 제2롯데월드 저층부 개장의 동력을 내년 완공 때까지 이어가는 일이다.

신 회장 개인 입장에서도 올해는 중요하다. 93세의 ‘총괄’ 신격호 회장의 확고한 신임을 바탕으로, 자신으로의 ‘유일승계’를 확정하는 일을 염두에 둘 것이다. 올해가 그룹 승계의 원년이 될 것이란 징후는 이미 나타난 바 있다. 친형 신동주 전 부회장의 연초 ‘낙마’가 꽤 깊은 상흔을 남기면서 그의 재기불능설이 유력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신 회장에게 월드타워는 3중적 의미의 랜드마크다. 서울의 랜드마크이며, 롯데그룹의 랜드마크이자, 신 회장이 부친에게 헌정하는 ‘보은의 랜드마크’가 될 전망이다. 그룹 승계의 세리모니가 열릴 상징적 공간이 될 것이란 얘기도 들린다.

신 회장이 내년 말 월드타워로 집무실을 옮긴다는 지난 4월 발표도 배수진적 의미가 서린 것이다. “이 거대한 역사(役事)를 반드시 성공시킨다”는 의지가 담긴 결정이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집무실도 같이 옮긴다는 방침도 아울러 발표했다. 두 회장의 집무실 위치를 구체적으로 공개하진 않았지만 개인 사무실 구역인 108~114층의 ‘프라이빗 오피스(Private Office)’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114층이 유력하다. 이 구역 어디를 쓰더라도 국내에 100층이 넘는 건물이 없는 만큼 ‘한국 최고층 회장 집무실’이 될 전망이다. 부자의 경영승계 과정이 이토록 장엄하게 이뤄지기도 힘든 일이다. “높이 올라 멀리 보겠다”는 신 회장의 야망이 상징적으로 가시화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 결정은 지난 4월 신 회장이 월드타워 관련 보고를 받으면서 직접 내린 것이라고 그룹 측은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신 회장은 “월드타워는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로 한국 건축사의 자부심이 될 것”이라며 “세계 최고의 기술력으로 안전 시공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신격호 총괄회장 역시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는 격언을 상기시키며 “서두르다 낙마하는 일이 절대로 있어선 안 된다”는 조언과 당부를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2롯데월드의 주축을 이루는 월드타워는 착공 4년5개월 만인 지난 3월 24일 100층을 넘었다. 올해 말까지 123층(555m)에 이르는 외관 공사가 끝나고, 1년 동안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거쳐 내년 말께 완공한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생일(음력 10월4일) 이전에 월드타워를 개장하는 것이 아마도 신 회장의 목표일지도 모른다.

월드타워는 신격호 총괄회장 부자의 꿈이 집결된 성전과도 같은 곳이다. 신 총괄회장이 터를 잡았고 신 회장이 그룹의 역량을 총동원해 마무리하는 숙원 사업이다. 신 총괄 회장 입장에서는 사업인생을 마무리하는 거대한 화룡점정의 의미가 있다. 전통적 의미로 보면 그의 업적을 기리는 하나의 ‘송덕비’라고도 볼 수 있다.

부자(父子)는 같은 듯 다르다. 신 총괄회장은 껌을 팔아 번 돈으로 부동산을 통해 롯데그룹을 일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만큼 롯데그룹의 과거는 부동산 재벌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신동빈 회장은 부동산 신화를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스타일의 차이라기보다 세상의 변화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봐야 옳다. 전 세계적으로 부동산은 버블의 의미가 짙다. 인구는 감소하고, 부동산 공급은 과잉이다. 최신 금융기법을 오래 공부한 신동빈 회장이 그 같은 흐름을 모를 리 없다. 부동산보다 금융기법으로, 국내보다 해외에서 활로를 찾으려는 경향이 그는 강하다.

지난해 기준으로 롯데그룹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자산은 10조원이 넘는다.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에 이어 국내에서 셋째로 많다. 한때 토지자산 13조원을 넘으며 1위 자리를 몇 년 동안 지키기도 했다. 롯데그룹은 그래서 기업활동에 투자하는 금액보다 부동산에 더 많이 투자해 비생산적이라는 이미지를 얻기도 했다. 이런 성향은 신격호 회장의 신념에서 비롯됐다. 시대상이 반영된 신념이다. 땅이 가장 가치 있는 자산이라고 믿었고 실제 땅으로 개인재산을 불려왔다. 또 좋은 자리에 자리 잡아 백화점과 호텔을 세워 키우며 지금의 롯데그룹을 만들었다.

신동빈 회장은 내수침체가 장기화하고 부동산시장 흐름도 밝지 못한 상황에서 땅과 건물에 막대한 돈을 묶어두는 것은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고 여긴다. 부동산을 팔아 현금을 확보한 뒤 이 돈으로 인수합병과 같은 새로운 투자처를 찾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2010년부터 계열사 소유의 부동산을 팔아 투자자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이 돈으로 공격적인 인수합병에 나서면서 롯데그룹의 사업영역을 넓혔다.

“부동산으로 돈 벌던 시대는 지났다”


▎1. 우여곡절 끝에 재개장에 성공한 제2롯데월드 영화관과 아쿠아리움 등이 있는 저층부. 저층부 재개장으로 롯데그룹은 어려운 고비를 넘기며 일단 숨고르기에 성공했다. / 2. 작년 5월 롯데월드 타워 현장점검에 나선 신동빈 회장·현장 관계자에게 “세계 최고의 기술력으로 안전 시공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부탁했다.
신 회장은 일본 노무라증권 출신이다. 신 총괄회장이 부동산 불패신화를 믿고 그 혜택을 입었다면 신 회장은 노무라증권에서 금융과 자금관리의 중요성을 익혔다. 그는 “부동산으로 돈 벌던 시대는 지났다”며 “선진 금융기법을 통해 그룹의 재무구조 건전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신 회장은 지난해 8월에도 점포 7곳을 매각하는 자산유동화 계약을 체결했다. 매각방식은 ‘세일 앤 리스백(매각 후 재임대)’으로 건물을 팔더라도 백화점과 마트 점포는 유지하는 방식이다. 2008년과 2010년에도 같은 방식으로 백화점과 마트를 매각해 각각 2200억원과 6400억원가량의 자금을 확보했다.

선택한 곳에 확실하게 몰아주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그는 선호한다. “국내에서나 해외에서나 그룹의 각 부문이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월드타워는 신 회장의 말대로 롯데가 만든 새로운 가치, 즉 시너지의 방정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룹은 모든 역량을 총동원했다. 백화점·명품관·영화관 등 모든 계열사가 최고 수준의 사양을 갖추고 그곳에 들어서게 돼 있다.

이런 전략은 해외사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난해 5월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에 롯데백화점 선양점을 열었다. 백화점 옆에 2017년까지 순차적으로 마트, 쇼핑몰, 테마파크, 호텔 등이 들어선다. 중국판 롯데타운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그룹 계열사 7곳이 참여한다. 총 투자비만 3조원에 이르며, 그룹의 중국진출 가운데 최대 규모다. 연면적 116만㎡ 규모로 제2롯데월드의 1.4배 크기다. 신 회장은 중국의 성(省)마다 한 개씩 이 같은 복합쇼핑타운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거대한 땅에서 일구는 거대한 야망이다.

지난해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 개장한 65층 규모의 초대형 건축물 ‘롯데센터 하노이’ 역시 그룹의 모든 역량이 총집결됐다. 이곳 역시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롯데리아 등 롯데그룹의 주요 점포가 입점해 있다. 신 회장은 이 건물을 동남아 진출의 교두보로 삼으려 한다. 이미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관광명소가 됐다. 2013년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복합쇼핑몰 롯데쇼핑 에비뉴점을 열었다. 롯데백화점, 롯데면세점, 롯데리아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 연면적 53만7800㎡ 규모로 지하 3층부터 지상 50층까지의 대형 복합단지다. 국경을 넘어 그룹의 역량을 총동원해 글로벌 롯데월드를 구축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이 투자를 꺼리고 있는 러시아에도 공격적으로 진출한다. 모스크바에 7성급 호텔을 지은 데 이어 생트페테르부르그에도 호텔을 짓는다. 그는 “멀리 보고, 오래 기다리는 것이 투자”라는 말로 러시아로의 진출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월드타워 건설과정에서의 사고와 잡음이 그치지 않았던 지난 연말, 그룹엔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12월 26일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60)이 일본 롯데상사 대표이사직과 롯데상사·롯데아이시스 이사직에서 해임된 것이다. 1월 8일엔 일본 롯데홀딩스 임시주주총회에서도 신 전 부회장의 전격 해임이 결정됐다. 그는 일본 롯데 내에서 맡고 있던 모든 임원직을 잃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왜 낙마했나?


▎지난해 9월 2일 신동빈 회장은 베트남 롯데센터 하노이 오픈 세리모니에 참석해 테이프를 끊었다. 센터에는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롯데리아 등 롯데그룹의 주요 점포가 모두 입점해 있다
재계 전문가들은 ‘자진사퇴’가 아닌 ‘해임’은 사실상 일본 롯데 경영에서 그가 완전히 퇴출된 것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신동주 전 부회장이 그룹 경영진에서 추방됐다”며 “향후 경영 체제 위상이 불투명해졌다는 견해가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신동주, 한국=신동빈’이라는 롯데가의 암묵적 규칙이 깨진 것은 거의 확실시된 것처럼 보였다.

신 총괄회장은 국내에서 생존해 있는 몇 안 되는 창업 1세대 중 한 명이다. 그가 첫 번째 부인 노순화 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72)이다. 노씨의 요절 이후 결혼한 두 번째 부인 다케모리 하쓰코 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이 신동주 전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이다. 일본에서 나고 자라 집안에서는 각각 ‘히로유키’와 ‘아키오’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신동빈 회장은 1955년 일본에서 태어나 아오야마 가쿠인(靑山學院)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마치고 1981년부터 88년 2월까지 일본 노무라증권의 런던 지점에서 일하며 국제금융 감각을 키웠다. 롯데가 아닌 다른 회사에서 평사원으로 먼저 근무하게 한 것은 경험을 쌓고 겸손을 배우도록 한 신 총괄회장의 배려인 동시에 일종의 경영수업이었다. 신 회장은 이때를 선진 기업의 재무관리와 국제금융 시스템을 피부로 접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1988년 일본 롯데상사 입사에 이어 1990년에 롯데케미칼에 입사하며 한국롯데와 인연을 맺었다.

형인 신동주 전 부회장은 재계에서 ‘순수한 학자와 같은 품성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생과 마찬가지로 아오야마가쿠인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후 1978년 미쓰비시상사에 입사했다. 1987년 롯데상사에 입사했고 2001년 롯데상사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일본 롯데의 미국법인 지사장으로 나가면서 만난 조은주(50) 씨와 1992년 결혼했고, 2009년 롯데홀딩스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11년 일본 롯데의 핵심 회사인 롯데상사 대표이사 겸 부회장에 취임하면서 ‘일본 롯데의 후계자’로 인정받았다.

신 전 부회장의 낙마 배경은 아직 정설이 없다. 추측만 무성한 상황이다. 크게 ‘대립설’과 ‘실적설’로 나뉘어 회자되고 있지만, 롯데 측은 확대 해석의 여지를 원천봉쇄하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신동주 전 부회장과 일본 전문경영인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 간에 대립이 있었고, 신 총괄회장이 쓰쿠다 사장의 손을 들어준 것 같다”고 보도했다.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은 1943년생으로 와세다 대학 상학부를 졸업했다. 일본 롯데의 주거래 은행인 스미토모 은행(현 미쓰이스미토모 은행)에 입사한 후 스미토모 은행 전무, 로열호텔 사장과 회장을 거쳐 2009년 롯데홀딩스 사장으로 취임했다. 최근 3~4년간 경영 방식 등을 두고 신 전 부회장과 대립했다는 설이 끊이지 않았다.

재계에서는 “실적을 떠나 신동주 전 부회장이 신 총괄회장의 신임을 잃은 계기가 있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 관측에 입각해 판단한다면 신 전 부회장은 롯데의 경영에서 배제된 것으로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룹에서는 부인하고 있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신 전 부회장이 경영권이나 지분 소유와 관련하여 신 총괄회장에 ‘역린’했다는 말이 나돈다. 그래서 신 총괄회장이 둘째 아들(신동빈 회장)에게 ‘밀어주기’를 시도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 ‘역린’의 내용이 무엇인지 재계의 촉각이 곤두서 있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막강한 존재감은 여전


▎지난해 5월 31일 중국 랴오닝성 선양에 개점한 롯데백화점. 중국 5호점으로 지하 1층, 지상 7층, 연면적 12만2천㎡(매장 면적은 7만3천㎡) 규모다
바로 이 대목에서 2013년부터 두 형제가 경쟁적으로 벌인 한국 롯데 계열사 지분 매입 현황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신동빈 회장은 2013년 5월 롯데케미칼 주식 6만2200주를 매입해 보유 지분을 0.3% 늘렸고, 이후 6월에 롯데제과와 롯데칠성, 9월에는 롯데손해보험 주식을 사들였다. 신동주 전 부회장도 지분 경쟁에 나섰다. 2013년 8월 롯데제과 지분을 취득한 후 지난해 9월까지 롯데푸드를 비롯한 계열사 주식을 계속 매입했다. 재계 관계자는 “신 전 부회장이 2013년 후반부터 한국 롯데 계열사 주식을 사들인 것을 신 총괄회장이 못마땅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두 형제의 균형 경영이 이뤄지던 상황에서 형인 신 전 부회장이 욕심을 부렸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고 전했다.

롯데쇼핑 지분은 신 전 부회장이 13.45%, 신 회장이 13.46%다. 롯데제과 지분 차이도 1.38% 포인트에 불과하고, 롯데푸드 지분율은 1.96%로 같다. 롯데상사·롯데칠성 등 롯데 계열사 지분 차가 미미한 상황에서 신 전 부회장의 해임 자체를 ‘후계 구도에서 밀린 것’이라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견해도 있다.

롯데그룹 측은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취재 중 만난 롯데그룹의 한 임원은 “신 전 부회장의 지분 매입 정도의 사안으로 과연 총괄회장이 격노했겠느냐?”고 반문했다. 신 전 부회장이 한국 쪽 지분을 좀 더 매입했다고 해서 지배구조가 흔들릴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그는, 신 전 부회장이 지분 매입과 관련해 해명한 대목을 이렇게 들려줬다.

“원래 신동주 전 부회장은 제과 쪽의 전문가이고, 한국 제과사업에도 관심이 많았다. 지분 매입에 대해 물어보니 한국롯데의 제과 쪽 주식이 굉장히 저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해서 여윳돈으로 조금 샀다는 것이다. 갑자기 해임된 이유에 대해서는 총괄회장과 신 전 부회장은 알고 있겠지만 나머지 사람은 그 이유를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해임 배경이 ‘실적’ 때문일 것으로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본 롯데의 매출액이 5조7천억원 정도로 한국 롯데의 실적(83조원)에 비해 크게 떨어진 것이 신 전 부회장의 ‘문책 인사’ 배경이 됐다는 것이다. 기업분석 업체 재벌닷컴이 1월 13일 공개한 바에 따르면, 일본 롯데홀딩스는 2013 회계연도(3월 결산 기준)에 전년(4조2872억원) 대비 34.3% 증가한 5조7572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같은 기간 한국 롯데그룹 성장률(11%)의 3배다. 지주회사의 주요 수입원이 계열사로부터 받는 배당금인 것을 볼 때 일본 롯데의 실적이 전반적으로 좋아졌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롯데그룹 관계자는 “이 수치는 일본 회사의 한국 지분까지 합산해 나온 결과이기 때문에 순수한 일본 롯데의 성장률로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 전 부회장이 한국롯데와 비교되는 저조한 사업 실적에 대한 압박을 받았고, 신 총괄회장이 이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는 가설은 여전히 설득력이 있다는 얘기다.

그룹 승계문제가 불거지면서 새삼 확인된 것은 신 총괄 회장의 건재, 막강한 존재감이다. 취재에 응한 롯데그룹의 임원은 “지지난해 수술을 받았지만 요즘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한 회사씩 경영과 관련한 보고를 직접 받고 챙긴다”고 말했다. 수술을 받기 전에는 오전 오후로 나눠 하루에 2개 회사씩 보고를 받았다. 지금은 과로를 피하기 위해 조심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신 총괄회장이 건재한 상황에서는 누구도 후계문제를 논의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신동빈 회장이 일본 롯데까지 경영을 맡는다는 등의 말이 아직 성립되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일본 롯데 경영권에 관련해서는 어디까지나 신 총괄회장과 일본 법인과의 문제일 뿐, 신동빈 회장이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신동빈 회장은 2011년 2월, 롯데그룹 정기임원 인사에서 국내 재계 5위 그룹의 회장이 됐다. 1997년 부회장 승진 이후 14년 만이었다. 1990년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 상무로 롯데그룹에 참여한 지 21년 만이다. 신 회장이 1990년 런던 노무라증권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사건은 한국 롯데그룹의 결정적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노무라증권 6년 경험을 통해 그는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까? 신 회장은 이때를 선진 기업의 재무관리와 국제금융 시스템을 피부로 접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사업확장을 위해 반드시 은행에서 돈을 빌릴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회고한다. 금융 부문에서의 선진적 기법 도입이 아버지의 시대와 다른 측면이다. 그는 최근 러시아 언론과의 회견에서 그 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20년 전 롯데그룹에 입사했을 때, 계열사들은 상장되어 있지 않았고 우리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 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많은 계열사가 상장돼 있는 지금은 적은 비용으로 자금을 모으고, 많은 금융옵션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이 롯데가 지난 20년 간 놀라운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이다.”

“맥주가 고작 폭탄주 제조의 원료라고?”


▎신격호 총괄회장은 93세의 고령임에도 매일 1개 그룹사의 경영보고를 받는 등 아직도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신 회장이 롯데 정책본부 본부장에 취임한 것은 2004년 10월이다. 그룹 경영의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이 이때부터다. 평소 차분하고 말수가 적지만 사업적으로는 대단히 적극적이다. 공격적이란 표현이 더 적절할지 모른다. 2006년 롯데쇼핑을 한국과 영국 증권시장에 성공적으로 상장시킨 성과가 눈에 띈다. 정책본부장을 맡아 하이마트, 말레이시아 타이탄케미칼, 중국 대형마트 타임스 등 국내외 30여 건의 크고 작은 M&A를 성공시켰다. 지난해 4월에는 롯데주류에서 ‘클라우드’를 출시하며 숙원사업이던 맥주시장에도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신 회장은 폭탄주 마시는 관행엔 질색하는 스타일이다. 맥주가 고작 폭탄주 제조의 원료로 사용되는 현실에 대해 평소 개탄했다고 한다. 그는 “한국맥주는 밍밍하니까 위스키나 소주를 타 먹게 된다”면서 깊고 풍부한 맛의 독일식 맥주 개발을 지시했다.

증권가는 롯데칠성에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주가를 보면 알 수 있다. 롯데칠성 주가는 하이트진로의 100배에 달한다. 5월 11일 종가가 239만4천원이다. 4∼5월 한달 새 하이트진로는 주르륵 내림세지만 롯데칠성은 거침없는 상승세를 이어갔다. 증권가는 그래서 롯데칠성을 성장주로 꼽는다. 음료부문도 있지만 국내 맥주시장에서 ‘진한 맛’ 붐을 일으킨 클라우드의 성장세 때문이다.

롯데칠성은 지난해 1공장 증설에 이어 2017년까지 제2공장의 20만㎘의 클라우드 맥주 생산시설을 추가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수입맥주를 제외한 국내 맥주 수요의 18%에 이르는 물량을 클라우드가 공급할 수 있다. 여기에 클라우드 후속 브랜드를 새로 내놓을 가능성도 높다는 게 증권가 분석이다. 이러한 적극적인 경영활동이 계속되면서 정책본부장에 취임할 당시인 2004년 23조이던 그룹 매출은 2013년 83조원을 넘어섰다.

동물적인 국제 금융감각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물론 신동주 전 부회장도 갖추지 못한 신 회장 만의 능력이다. 노무라증권 7년 근무경력이 배양한 감각인지도 모른다. 그리스 재정위기가 잠잠해진 것 같았던 2011년 상반기, 신 회장은 임원들에게 그리스와 유럽의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며 미리 자금을 확보해 둘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롯데쇼핑은 전환사채 발행을 추진했고 약 1조원(달러화 표시 5억 달러 + 엔화 표시 325억엔)의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당시 1조원이라는 규모도 놀라웠지만 더욱 이슈가 되었던 것이 금리조건이었다. 5년 만기인 달러화 표시 CB의 표면 이자율은 0%. 엔화 표시 CB의 경우는 -0.25%였다. CB의 만기 이자율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만기 때 투자자에게 원금보다 덜 준다는 의미다. 이후 유럽발 금융위기가 더욱 심각해진 것을 고려한다면 한두 달만 늦었어도 불가능한 거래였다. 이 거래는 각계의 호평을 받으며 홍콩의 금융전문매체 가 2011년도 최우수 증권연동 거래(Best Equity Linked Deal)로 선정하기도 했다.

옴니채널 구축에 미래사업 사활 걸려


▎3월 2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난 롯데 신동빈 회장(오른쪽)과 존 필립 키(John Phillip Key) 뉴질랜드 총리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보다 앞서 신 회장은 2007년 가을부터 미국 서브 프라임 사태가 알려진 것보다 심각하게 번져갈 것이라 예측했다. 그래서 2008년 초부터 운영자금을 미리 확보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호텔롯데를 비롯한 계열사들은 우량한 조건으로 외화표시 회사채를 발행했다.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로 기업의 자금난이 심화되었지만 롯데 계열사들은 미리 확보한 운영자금 덕에 비교적 무난하게 글로벌 금융 사태에 대처할 수 있었다.

신 회장의 이러한 국제 금융감각은 2006년 주력 계열사인 롯데쇼핑의 상장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당시 풍부한 현금이 있는데 왜 이런저런 간섭을 받을 수 있는 상장을 하느냐는 내부의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신 회장은 결국 상장을 이끌어냈다. 런던과 서울에서의 동시 상장을 통해 확보한 3조5천억원의 자금은 이후 롯데의 활발한 인수합병의 시드머니가 되었다.

신 회장이 최근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그룹의 핵심 과제는 그룹 내 온·오프라인 유통망을 바탕으로 한 옴니채널 구축이다. 옴니채널은 온라인·오프라인·모바일 등 소비자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쇼핑 채널들이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전략이다. 고객 입장에서 마치 하나의 매장을 이용하는 것처럼 느끼도록 매장의 쇼핑환경과 사용자 경험을 융합하는 것이다. 글로벌 오프라인 유통업계는 앞다투어 옴니채널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롯데는 국내 유통시장 역시 가까운 시점에 옴니채널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신동빈 회장도 옴니채널 구축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슈퍼마켓, 백화점사업에서 온라인 유통업에 이르기까지, 여기에 IT 솔루션과 금융기반까지 더해진 것을 롯데의 강점으로 본다.

신 회장은 일본 정계, 재계와의 인연이 각별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도 친분이 깊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1950~1960년대부터 아베 총리의 부친인 아베 신타로 외무상,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총리 등 일본의 정계 거물들과 인맥을 다져왔다. 이에 힘입어 신 회장도 동갑내기인 아베 총리와 친분을 쌓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일본 정계와의 인연으로 후쿠다 다케오 전 일본 총리가 신동빈 회장의 결혼 중매를 서고 주례를 맡았다. 결혼식에는 나카소네 당시 총리와 기시 전 총리 등 전·현직 총리가 3명이나 참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 신 회장이 현재 구단주 대행을 맡고 있는 롯데 마린즈도 기시 전 총리의 부탁을 받은 신격호 총괄회장이 1968년 인수했던 인연이 있다. 기시 전 총리는 미국 프로야구단의 사례를 들며 “과자를 홍보할 때는 프로야구단 운영이 가장 좋다”는 말로 신 총괄회장을 설득했다고 한다. 두 집안은 도쿄 시부야 구에서 가까이 살았던 인연도 있다. 2013년 1월 17일에는 신 회장이 총리 공관을 찾아 아베 총리와 약 15분간 면담하기도 했다. 이 같은 사실은 당시 <아사히신문>이 아베 총리의 동정을 전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1985년 6월 2일 열린 신 회장의 결혼식 피로연은 롯데가의 힘과 권위를 보여준 상징적인 이벤트였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 일본 잡지기자의 취재수첩을 토대로 재구성해봐도 연회의 규모와 참석자의 면면은 대단한 것이었다. 피로연은 ‘아카사카프린스신주쿠’에서 열렸는데 마침 그날 호텔 오쿠라에서는 도요타자동차 회장의 아들 결혼식 피로연도 열렸던 모양이다. 도요타 쪽은 고야마 고로 미쓰이은행 고문, 모리타 아키오 소니 회장 등 일류 재계 인사가 참석했으나 초대객은 400명뿐이어서 “도요타 집안 자제치고는 의외로 간소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이에 비해 롯데 쪽은 훨씬 화려했다. 정계에선 나카소네 총리를 비롯해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후쿠다 전 총리, 가와모토 국무대신 등 자민당의 실력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재계에서도 최고의 요인들이 참석했음은 물론이다. 신랑측의 내빈이었던 당시 이나야마 요시히로 경단련 회장은 “이 나이 먹도록 여러 피로연에 참석했지만 이렇게 기라성 같은 인물이 한꺼번에 모인 피로연은 처음”이라고까지 말했다고 한다. 현역 총리대신이자 주빈이었던 나카소네의 피로연 인사말도 인상적이었다. 그는 신격호 회장과 롯데그룹을 이렇게 추켜세웠다.

“롯데가 팔고 있는 옷에 부착하는 일회용 손난로 ‘호카론’을 레이건 부인에게 선물했다. 그러자 레이건 대통령이 ‘이건 천재적인 발명이다’라고 칭찬해 독일 콜 총리에게도 선물했더니 그 역시 매우 신기해 하며 좋아했다. 롯데 제품은 일본과 미국, 일본과 독일의 관계까지 우호적으로 만들었다.”

당시 신동빈은 미국 컬럼비아대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하고 노무라증권에 입사, 런던 노무라인터내셔널에 근무하고 있었다. 취재수첩에는 신부 마나미에 대한 신상정보도 빼곡히 적혀 있다.

“신부 마나미는 다이세이건설 부사장 오우고 요시마사의 차녀로 올해 26세다. 가쿠슈인대 재학 중 이토 소이치로 전 방위청 장관의 비서로 일을 시작해 졸업 후에도 이 사무실에서 2년 간 근무했다. 운전도 잘해서 장관의 차를 운전한 적도 있는 활발한 아가씨다. 키가 170㎝가 넘는 모델 같은 신체비율의 여성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히로노미야(나루히토 황태자)의 친구였다. 미치코(美智子) 왕비(아키히토 천황의 부인)가 예뻐해서 종종 동궁으로 불려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체구가 작은 히로노미야와는 키 차이가 너무 나기도 해서 아쉽게도 ‘황태자비 후보’로는 전혀 오르내리지 않은 듯하다.”

젓줄 뗀 신동빈은 어디로 비상할까?


▎3월 16일 부산창조경제센터 출범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을 현장에서 맞아 안내하고 있는 신동빈 회장. 가운데는 서병수 부산시장.
호텔롯데는 일본 롯데가 100% 투자한 기업이다. 호텔을 건립할 당시엔 국내법상 외국인은 49% 이상의 지분 보유가 불가능했다. 경영권 행사도 불가능하다. 상대국의 상황이 이럴 경우 일본 대장성도 신격호의 한국 투자를 승인해줄 수 없었다고 한다. 이 문제를 신격호 회장은 해결했다. ‘재일교포 신격호’가 ‘대한민국 국민 신격호’에게 경영권을 위임하는 형식이었다.

이 사례 이후 신격호 회장은 일본 롯데 자금으로 한국에 투자하는 데 있어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게 됐다. 일본에 한 번도 투자금 회수 목적의 송금을 하지 않고 한국 롯데 그룹을 계속 확장해갈 수 있었다. 신동빈 회장의 결혼식 주례를 맡았던 후쿠다 다케오 전 수상이 당시 신격호 회장의 투자를 승인해줬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을 기반으로 한국에 진출한 롯데는 일본의 모체보다 더 크게 성장하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전직 일본 총리와 같은 젓줄을 뗀지는 이미 오래다. 아시아 톱텐 기업으로의 도약을 꿈 꾸는 롯데의 중심엔 역시 신동빈 회장이 있다. 그의 야망이 과연 현실이 될지, 월드타워의 완공 때까지 천천히 지켜보며 그 전도를 점쳐보는 일이 남아 있다.

-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201506호 (2015.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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