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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인물탐구│정치인의 기질과 운명론] 박원순 서울시장 

소음인의 치밀함으로 대권까지 거머쥘까 

조용헌 원광대 불교학 박사 / 사진 전민규 월간중앙 기자
실수하지 않고 차분하게 디테일을 챙기는 데에는 ‘달인’… 인간적인 매력 더 드러내고 카리스마 구축하는 일이 과제

▎서울시청 옥상에서 포즈를 취한 박원순 서울시장. 메르스 사태 이후 대권주자 선호도 1위에 오른 그가 2017년 대선에서 멀리 보이는 청와대의 주인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21세기는 ‘소음인의 시대’다. 오버하지 않고 실속 있고, 크게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되는 미디어의 시대가 21세기 아닌가. 옛날에는 카리스마 넘치는 액션이 있어야 지도자가 되었지만, 지금은 TV 화면 앞에서 친구들에게 얘기하는 것처럼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사람이 대중의 지지를 받는다. 과연 소음인 박원순이 21세기형 뉴리더로 대중의 부름을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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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오랜 시간 사람을 겪어보지 않고 몇 시간 인터뷰해서 그 사람의 정체성과 속마음을 과연 알 수 있단 말인가? 인터뷰라는 것은 피상적인 질문이나 몇 가지 하고 끝나는 요식행위가 될 수 있다. 특히나 인터뷰를 많이 해본 사람. 즉 인터뷰를 많이 당해본 상위 레벨의 사람은 이미 답변이 준비되어 있는 수가 있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와 질문의 각도가 훤히 예상된다. 모범 답안을 반복하면 되는 것이다. 인터뷰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은산철벽(銀山鐵壁)을 느낀다. 모기가 은산철벽에 부딪쳐서 구멍을 낼 수 있단 말인가. 자기 몸만 망가지는 것 아닌가!


▎박원순에게는 소음(주기), 소양인(객기)의 특징이 엿보인다. 꼼꼼하고 차분하며 부지런한 기운을 타고났다. 실제 시장직을 수행할 때도 그의 이런 면이 잘 드러난다.
필자가 이 은산철벽의 장벽에 대비해서 구축한 인터뷰 프레임이 있다. 첫째는 그 사람의 관상을 보는 방법이다. 관상에도 문파마다 각기 초식(招式)이 다르다. 오행으로 보는 초식이 있다. 얼굴 모양이 목형(木形)인가, 금형(金形)인가, 토형(土形)인가 등등을 따지는 방식이 그것이다. 동물관상 법도 있다. 그 사람이 어느 동물에 해당하는가를 추론하는 방식이다. 저돌적인 멧돼지 상(相)인가, 사자 상인가, 쥐 상인가, 얼룩말 상인가, 소상인가 등등이다. 동물관상의 장점은 이해가 쉽다는 점이다. 일단 동물로 환원시키는 것이 어렵지, 환원만 제대로 시켜놓으면 그 사람의 다음 행동이나 결정적인 순간에 그 사람이 어떻게 나올지를 미리 예측할 수 있다.

사주팔자 제대로 보려면 영발(靈發) 있어야


▎박원순 시장의 집무실에는 그 공간을 위엄 있게 만드는 어떤 치장도 없다. 사방 벽면이 모두 자료 파일로 채워져 연구소 소장실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멧돼지는 결국 돌격하게 되어 있다든가, 쥐 상은 가장 먼저 난파선에서 뛰어내릴 거라고 예측된다. 구렁이는 친친 감는다. 관상을 제일 먼저 본 뒤 그 다음은 사주팔자다. 생년월일시를 보고 그 사람의 특징을 잡아본다. 몇 살쯤 그 사람이 대운을 맞이하고, 언제 몰락하는가 등을 어슴푸레 짐작해본다. 이 사람이 돈을 풀 사람인가, 아니면 구두쇠 사주인가, 배우자 복이 있는가 없는가 등등. 사주팔자도 제대로 보려면 영발(靈發)이 있어야지, 글자 몇 자 해석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동양학은 막판에는 영발이 작용한다. 최종 판단은 영발이 있어야 제대로 판단이 되지, 이론 가지고, 책 많이 보았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필자도 40대 중반에야 깨달았다. 그전까지는 책 많이 보면 되는 줄 알았다. 물론 책도 필요하지만 어디까지나 보조수단이다.

영발은 타고 난다. 유전이 90%다. 후천적으로 계발하려면 그야말로 피나는 고행을 겪어야 하는데, 요즘 사회에서 영발 계발한다고 누가 피나는 고생을 하겠는가! 타고난 영발과 후천적인 독서를 겸비하면 쌍권총을 찬다. 필자는 독서는 어느 정도 했다고 생각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타고난 영발이 부족하다는 점을 절감하고 있다. 사주팔자를 보고 대강의 흐름을 파악했으면 그 다음 질문이 태몽이다. 그 사람이 잉태될 때 또는 출산에 임박해서 부모나 가족이 꾼 태몽이 있는가를 물어본다. 태몽은 기억이 선명해서 다른 꿈과는 구별된다. 태몽은 사주팔자를 하나의 그림으로 압축한 것이다. 숨은 그림 찾기와도 같다. 그 그림 속에 그 사람이 살아갈 운명과 컬러가 압축되어 있다. 한 방으로 보여준다. 태몽은 자세한 해석이 어렵다. 그렇지만 좋다 나쁘다는 대강 알 수 있다.


▎1.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서 당선이 확정되자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가 부인 강난희 여사와 함께 서울 종로5가 자신의 캠프 사무실에서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 2. 박원순 서울시장(왼쪽)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대권 라이벌인 두 사람이 6월 9일 서울시 방역대책본부 상황실에서 메르스 확산 방지를 위한 보고를 받기 전 인사를 나누고 있다.
태몽 다음에 보는 것은 체질론이다. 체질론은 한국의 한의학에서 말하는 사상체질(四象體質)을 가리킨다. 구한말에 이제마 선생이 창안한 사상체질론은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는 방법론이다. 한국에서만 독특하게 유행하는 체질론이다. 태양인, 소음인, 태음인, 소양인이라는 4가지 체질로 그 사람의 성격과 기질을 분류해 보는 방법이다. 물론 이 체질론도 어디까지나 가설(假說)이라고 생각한다. 100% 완벽한 이론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상체질론은 관상과 사주가 포착할 수 없는 영역을 탐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인터뷰할 때 먼저 관상을 보고, 그 다음에 사주를 보고, 세 번째로 태몽을 묻고, 마지막으로 사상체질론으로 분석해 보는 것이 필자의 인터뷰 법이다. 이게 이판(理判)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그 사람의 생각과 의도를 꼬치꼬치 따져 묻는 것이 사판 인터뷰라고 한다면, 이런 류의 초식(招式)을 이름 붙인다면 ‘이판 인터뷰’라고나 할까.

박원순 서울시장을 인터뷰하면서 제일 먼저 떠 오른 이미지는 소음인(少陰人) 체질이라는 점이었다. 소음인의 특징은 꼼꼼하고 치밀하다는 점이다. 덤벙덤벙 넘어가는 법이 없다. 하나하나 세밀하게 짚고 넘어가는 스타일이다. 부지런하다. 책상에 오래 붙어 앉을 수 있다. 그래서 고시에 합격한 사람들 만나보니까 60∼70%가 소음인 체질이다. 고시 합격은 일단 책상에 오래 앉아서 고시과목을 공부해야 한다. 관건은 책상에 오래 앉아서 시험공부를 할 수 있는 끈기와 집중력이다. 여기에 소음인의 경쟁력이 있다. 소음인의 가장 큰 장점은 ‘오버’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개 오버하는 바람에 평소 쌓아놓은 마일리지를 까먹는데, 소음인은 차분하고 조리 정연하게 말을 한다.

박원순은 왜 소음인인가?


▎박원순 시장이 5월 5일 서울시청 다목적 홀에서 열린 어린이날 기념식에서 동화 ‘오즈의 마법사’ 속 양철나무꾼으로 변신해 어린이들을 즐겁게 했다.
이런 자질 때문에 TV토론에 나가면 점수를 많이 받는다. 흥분하지 않고 차분한 목소리로 자기 주장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재주가 소음인에게 있다. 소양이나 태양인 체질들은 TV토론에 잘 맞지 않는다. 감정이 쉽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21세기는 ‘소음인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오버하지 않고 실속 있고, 목소리를 크게 높이지 않아도 되는 미디어의 시대가 21세기 아닌가. 옛날에는 자기 목소리를 크게 내고, 카리스마 넘치는 액션이 있어야만 지도자가 되었지만, 지금은 TV 화면 앞에서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듯이 조곤조곤 얘기하는 사람이 더 대중의 지지를 받는다. 흥분하면 점수를 까먹는다.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소음인. 여기에 소음인의 21세기적인 특장(特長)이 있다. 21세기에 최적화된 체질이 소음인 체질이다. 더군다나 주위 환경이 보수로 둘러싸인 상황에서 유일하게 진보 쪽의 시장이 박원순이다. 약간이라도 실수하면 집중포화를 받는다. 꼬투리 잡힐 일은 절대 하면 안된다. 사면보가(四面保歌)의 상황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실수하지 않고 차분하게 디테일을 챙기는 방법밖에 없다. 박원순이 소음인이니까 이런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것이다. 그가 소음인이라는 내 나름대로의 근거는 이렇다.

첫째, 인터뷰를 하면서 자기 감정을 드러내는 대목이 거의 없다.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자신의 실패담, 혹은 성공담을 강조하지 않는다. 대개 지자체장들은 자신이 이룩한 업적을 반복해서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럴 때는 약간 흥분이 되면서 목소리 톤이 올라가는 법이다. 박원순은 이런 대목이 거의 없었다. 시종 차분하고 미리 검토해본 듯한 내용을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은 장점이면서 또한 단점이다. 공공정책을 집행하는 공인의 측면으로서는 장점이지만, 다른 사람을 따르도록 하는 인간적인 매력이 없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매력은 느슨하고 감정적이고 적당한 허점이 나타날 때 반짝 발생하는 그 어떤 무엇이다. 어떻게 보면 카리스마는 오버에서 나온다. 오버는 낭떠러지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지만, 정치라는 공간에서 연때가 맞으면 카리스마로 승화될 수 있다. 정치는 종합예술이다.

둘째, 박원순은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공부를 잘했다. 모범생이었을 것 같다. 학교 규칙 잘 따르고, 시험공부 열심히 하고, 딱지치기나, 수업 빠지고 농땡이 치는 말썽은 절대 안 부렸을 것 같다. 중학교를 경남 창녕에서 마치고 서울로 고등학교 시험을 치러 왔다. 경복고를 응시했지만 낙방했다. 그래서 1년 동안 재수를 했는데, 돈이 없어서 독서실에서 먹고 자며 공부했다.

1년간 독서실에서 지냈던 이야기를 해달라.

“집이 가난해서 돈이 없었다. 따로 방을 얻어서 자취를 하거나, 하숙을 할 형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칸막이가 있는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엎드려 잠을 잤다.”

밥은 어떻게 해결하였는가?

“단팥빵을 먹고 때울 때도 있었다. 1년 재수해서 경기고에 들어갔다.”

세 번째는 서울시장실의 파일이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시장실에 들어가니까 분위기가 아주 이상하다. 사방 벽면에 모두 자료파일이 어림잡아 수백 개나 빽빽하게 꽂혀 있다. 어수선할 정도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시장실을 위엄 있게 만드는 어떤 데코레이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건 시장실이 아니고 무슨 싱크탱크 소장실 같은 분위기이다.

저것이 다 무슨 파일이란 말인가?

“재래시장 골목상권에 관한 자료, 협동조합 서울, 보행친화도시, 자전거도시, 공공임대주택, 상습침수지역, 공원을 만들 곳, 도시철도 노선 등등에 대한 정책 파일들이다.”

이런 파일을 한두 개도 아니고 수백 개씩 들여다보려면 우리 같은 사람은 머리에 쥐가 난다. 어떻게 이런 일을 견딘단 말인가! 워커홀릭 수준 아닌가! 소음인이 아니면 실천할 수 없는 삶의 방식이다. 이것도 팔자로구나! 우리 같은 사람은 시장 시켜줘도 못하겠구나. 시장 같은 자리 안 하는 게 평화로운 삶의 길이구나.

주기는 소음인, 객기는 소양인 체질


▎변호사 시절의 박원순.(오른쪽) 1983년부터 91년까지 변호사 개업을 통해 번 돈의 일부를 털어 ‘역사문제연구소’ 설립과 운영에 앞장섰다.
보행 친화도시라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걸어야 한다. 인간은 직립보행이다. 먹고, 마시고, 놀고, 쇼핑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이 과정이 모두 걷는 행동이다. 걸어야 품격 있는 도시가 된다. 걷는 것이 곧 명상이고, 치유다. 자동차로 지나쳐버리면 그 도시는 품격 없는 도시다. 서울은 걷기에 아주 좋은 지형 조건을 갖춘 도시다. 왜냐하면 산길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대도시들은 넓은 평지에 조성되었다. 산이 별로 없다. 서울은 산이 많다. 배산임수 아닌가. 서울의 외곽 산길이 157㎞다.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관악산, 우면산, 아차산이 서울의 외산(外山)이다.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이 내사산(內四山)이다. 이 산길을 연결하면 대단한 명상의 길이 된다. 세계 어느 대도시에도 이러한 산길이 없다. 서울이 지닌 축북이다. 이 산길을 잘 조성하면 시민들에게 큰 서비스가 된다. 서울의 성곽을 따라가는 성곽길만 하더라도 186㎞나 된다.”

넷째, 박원순은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등의 시민운동가 출신이다. 2000년대 초반 한국의 시민운동가로서 환경재단의 최열 대표, 유한킴벌리의 문국현, 그리고 박원순이 내가 꼽는 3인방이었다. 이 시민운동가 3인방은 TV토론의 단골 출연 멤버였다. 이 중에서도 박원순이 제일 단골손님이었다. 콘텐트가 풍부하고 겸손한 화법이 시청자에게 어필할 수밖에 없었다. 풍부한 콘텐트와 열을 내지 않는 차분하고도 겸손한 화법. 이것이 소음인의 최대 장기 아닌가. 박원순은 이 시절에 가장 적합한 토론자였다. TV토론은 소음인을 위한 무대이다.

사상체질을 깊게 들어가다 보면 주기(主氣)와 객기(客氣)의 개념이 있다. 자기의 중심 체질이 주기(主氣)라고 한다면, 외곽을 둘러싼 개운을 객기라 한다. 주기가 음기이면 객기는 양기가 배치된다. 반대도 성립된다. 필자는 소음인이 주기이고 태양인이 객기이다. 글을 쓸 때는 소음인의 치밀함과 내성적인 면이 작용하고, 바깥에 가서 강연하고 답사 다닐 때는 태양인의 기질이 작용한다. 태양인은 바람 같은 기질이다.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주유천하를 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방랑벽이다. 필자도 객기를 사용해서 답사를 많이 다녔다. 답사 다니면서 섭취한 영양가를 집에 돌아와서 하나씩 칼로 잘라서 글로 쓰는 셈이다.

박원순은 주기가 소음인이라고 한다면 객기는 소양인 체질이다. 태양인 객기는 약간 게을러서 자기가 보고 싶은 데만 가서 보지만, 소양인 객기는 피곤하더라도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어디든지 가서 보는 활동성이 더 있다. 객기를 너무 사용하면 주기가 훼손된다. 주유천하를 하고 나면 일정 기간은 집에 틀어 박혀서 운기조식(運氣調息)을 취해야만 한다. 운기조식 없는 방랑은 병으로 연결되어 중간에 사망한다. 사람은 이처럼 음양이 표리의 관계를 이룬다. 어디까지나 중심은 음인이지만 바깥에 배치된 기운은 양인의 기운도 있다.

소양인의 기운은 무엇인가? 부지런함이다. 부지런함도 자료를 꼼꼼하게 앉아서 정리하는 부지런함은 소음인의 부지런함이지만, 바깥에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면서 자료수집을 하는 활동성은 소양인의 부지런함이다. 박원순에게는 이러한 소양인의 객기도 포진되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박원순은 외국을 많이 다녔다. 여행 다니면서 콘텐트 축적을 하였다. 카메라에 선진국의 건물, 중요한 공공정책 장소, 도로 상태, 공연장, 광장, 디자인 등등을 엄청나게 모아 놓았다. 박원순 경쟁력의 핵심은 콘텐트이고, 이 콘텐트는 여행에서 나왔다. 그냥 여행도 아니고 싱크탱크 투어에 가깝다.

언제 이렇게 외국을 많이 다녔는가? 주로 어떤 나라의 콘텐트가 많은가?

“미국, 독일, 일본, 영국이다. 영국에서는 런던대학에 1년 있었다. 미국에서는 아이젠하워 재단 초청으로 하버드대에 1년 머물렀고, 독일에는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에서 초청하여 3개월간 머물렀던 적이 있다. 일본에서는 재팬 파운데이션 기금을 받아서 3개월 있었다. 이 기간에 그 나라 시스템의 장점이 무엇인가를 발견하려고 자료도 부지런히 모으고, 사진도 찍고 전문가를 찾아가 보았다.”

이렇게 이삭줍기를 통하여 축적한 내용들이 그의 자산이 되었던 것이다.

태양인은 주역점, 소양인은 통계점


▎1980년 사법고시에 합격한 직후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 박원순은 1982년 대구지검 검사를 잠깐 한 후 이듬해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음인과 양인 체질을 구별하는 기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점(占)이다. 음인은 점(占)을 믿지 않는다. 허황된 것으로 간주한다. 음인은 철저한 리얼리스트에 가깝다. 리얼리스트에게 점(占)은 황당한 콘텐트다. 음인은 일단 자기가 확보한 것을 가지고 그 안에서 최대한 활용하고 증식하는 데에 관심이 많다. 점은 미래를 알고 싶고, 미래를 선취하려는 양인에게 관심 대상이 된다. 도박사, 점쟁이, 혁명가는 모두 양인이 한다. 태양인이 가장 점에 적극적이고 관심이 많다. 소음인이 가장 점을 믿지 않고, 태음인이 그 다음으로 안 믿는다. 태양인이 미래를 내다보고 싶어하는 기질이 있기 때문에 주역이나 팔자, 그리고 각종 예언가와 만나는 것을 즐겨 한다.

소양인은 점을 어떻게 보는가? 중간이다. 소양인도 미래를 변화시키고 싶어한다. 그래서 점에 무관하지 않다. 단 점은 점이라도 통계점(統計占)을 친다.

주역점(周易占)이 태양인이라면 소양인은 통계점을 좋아한다는 차이가 있다. 사회변화의 단초는 어디에서 나타나는가? 각종 통계다. 요즘에 유행하는 빅데이터도 따지고 보면 사회점의 영역에 해당한다. 모든 데이터는 미래를 예측하는 데에 필요한 자료라는 점에서 점의 변용이다. 박원순은 객기가 소양인이므로 사회점(통계점)을 좋아한다. 법률가는 법률이라는 틀에 갇히기 쉽다. 그러다 보면 상상력이 부족해진다. 수학만 하다 보면 국어를 못할 수 있는 것이다. 변호사 박원순이 법률이라는 틀을 벗어나 강호에 나와서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게 된 내공은 바로 통계점에서 나왔다.

통계점을 치는 방법은 무엇인가? 무조건 통계만 보는가?

“3가지를 종합해야 한다. 첫째, 외국의 사례를 잘 보아야 한다. 외국에서 이미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우리가 겪었던 문제를 겪어 보았다. 선진국 사례를 보면 우리의 갈 길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먼저 문제를 풀어보았던 나라가 선진국이다. 기출(旣出) 문제를 풀어보면 정답 파악에 유리한 것 아닌가. 영국·독일·일본·미국의 사례는 많은 참고자료가 된다.

둘째는 여러 가지 통계를 잘 보아야 한다. 인구센서스, 서울연구원의 조사 통계를 본다. 통계를 보면 사회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구나를 짐작하게 한다. 예를 들면 최근에 우리나라 1인 가구가 24%다. 2인 가구는 25%쯤 된다. 합치면 50%에 육박한다. 전체 인구의 50%가 혼자 살거나 아니면 단 둘이 산다. 이렇게 되면 집안 가구에도 변화가 온다. 커다란 옷장이나 소파 등이 필요 없다. 1인 싱글 여자 독신이 무슨 커다란 가구가 필요하겠는가. 일본의 ‘무지’처럼 가격이 싸고 스타일리시한 가구제품이 인기를 얻는다. 가구에도 변화가 와야 하고, 밥솥 크기에도 변화가 온다. 1인가구가 늘어나면 동물도 늘어난다. 혼자 사는 사람은 대부분 애완견을 키우게 되어 있다. 동물이 가족이 되는 셈이다. 애완견을 위한 정책도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아파트 평수도 줄어들어야 한다. 서울시내 개포 1단지와 5단지 재건축 논의가 있었다. 처음에 주민들은 대형평수를 고집했다. 그때 내가 30%는 소형 평수를 지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러자 일부 주민이 반발했다. 그러다가 다시 소형 평수로 돌아왔다. 이게 다 인구 통계에서 나온 예측력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영등포구 대림동에는 중국인이 많이 거주한다. 동대문구에는 몽골, 중앙아시아 사람이 많이 모인다. 보따리 장사가 많다. 여기에서 물건도 사다가 포장해서 자기 나라로 운송한다. 이런 곳에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를 만들어주는 것도 아이디어다. 짐 싸는 일이나, 운송을 편리하게 도와주는 일을 도와주는 센터를 만들어주면 훨씬 활성화된다.

심야버스 문제도 그렇다. 서울 교외에서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교통이 불편하다. 늦은 시간이 문제다. 택시로 가려면 요금이 너무 많이 나온다. 이때는 심야버스가 필요한데, 과연 어느 노선에다가 심야버스를 배치해야 가장 효율적인가? 이걸 알기 위해서는 밤12시에서 새벽 5시 사이에 핸드폰을 어디서 가장 많이 걸고 있는지를 조사해봐야 한다. 심야에 움직이는 사람은 핸드폰을 걸게 되어 있다. 그리고 핸드폰을 거는 사람의 집이 어디인지도 같이 조사해야 한다. 그러면 심야에 어디서 어디로 움직이는지 동선이 파악된다. 여기에다 심야버스를 배치하면 된다. 이런 것도 다 통계에서 나온다. 어디에 공원을 만들어야 하는가, 도시철도 노선, 상습침수지역에 대한 대책, 공공 임대주택 등의 문제도 그 해결책은 통계와 밀접하다.

빅데이터 활용, 공유경제 도입에 적극적


▎경기고 재학 시절의 박원순. 고입 재수 시절 가정형편이 어려워 칸막이가 있는 독서실에서 숙식하며 시험준비를 했다.
세 번째는 그 분야의 전문가들 의견을 경청하는 일이다. 예를 들면 미래세대위원회가 있다. 미래세대를 배려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다. 여기에 <중앙일보>의 이규연 논설위원이 활동하는데, 이 양반으로부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는다. 자동차를 위한 도로 대신에 지하철, 자전거, 보행자를 위한 정책과 시설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암스테르담은 자전거 비중이 엄청 높다. 선진국은 자동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에너지 고갈에 대비하는 차원이다. ‘역사 도시 서울’ 플랜을 세우면서 우리나라 여러 학회의 의견을 청취했다. 한국고대사학회, 중세사학회, 성곽학회, 조선시대사학회, 한국건축역사학회장을 초청해서 하루 종일 그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가 하면 여러 싱크탱크로부터도 조언을 듣는다. 컨설팅업체인 매킨지, 한국능률협회 같은 전문기관으로부터도 분석을 받아본다. 샌프란시스코에 ‘INSTITUTE FOR THE FUTURE’라고 하는 미래연구소가 있다. 예측이 전문이다. 연구원은 15명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연구소인데 아주 내공이 있다. 여기에서는 10년 주기로 사회변화를 예측한다. 예측의 내용을 10가지 사진으로 간단하게 설명한다. 1가지마다 사진 하나로 압축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사람, 공간, 관행, 마켓, 틀(도구)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한다. 이 연구소에서 제시한 사례가 공유경제(共有經濟)라는 개념이다. 공유경제가 무엇인가? 아파트의 주차장이 아침 출근 시간이 지나면 비게 된다. 근처에 기업이 있는데, 이 기업에서는 주차장 부지를 확보하려면 돈이 든다. 기업에서 출근 시간 이후에 비어 있는 아파트 주차장을 사용한다는 아이디어이다. 그렇게 되면 서로가 좋다. 물론 비용도 지불한다. 기업과 아파트 주차장의 비어 있는 상황을 수시로 체크하기 위해서는 컴퓨터로 체크 시스템을 개발해서 적용하면 된다. 기업에서는 새로운 주차장을 짓지 않아도 된다. 샌프란시스코가 이 공유경제가 잘된 지역이다. 서울의 공유경제도 여기에서 많이 배웠다.”

이성과 통계를 신뢰하는 통계점의 박원순은 직관과 영발(靈發)을 중시하는 필자와 같은 주역점 신봉자를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우리 같은 사람은 주역점을 너무 신뢰하는 사람을 만나도 부담스럽다.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상응하는 점괘를 뽑아줘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뽑아줘서 문제 해결이 안 되면 이 또한 난감한 상황에 직면한다. 반대로 주역점을 전혀 믿지 않고 미신이라고 단정하는 이성주의자를 만나면 약간의 부아가 솟는다. 사람은 자기 말에 호응하지 않으면 기분이 섭섭하기 마련이다. 이때는 공자님이 말씀한 ‘人不知而不慍이면 不亦君子乎’(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화를 내거나 성내거나 괴로워하지 않는다)를 머릿속에 떠 올린다. 박 시장을 인터뷰하러 시장실에 들어가니까 필자에게 한마디 던진다.

“그때는 나 시장 될 줄 몰랐죠?”

“몰랐네요.”

그때라는 것은 2007년 여름 무렵이다. 당시 대선을 몇 달 앞둔 시점에 환경재단에서 주관한 ‘피스 앤드 그린보트’ 크루즈 행사에 필자도 동승한 적이 있었다. 그린 보트를 타고 일본 고베 항을 출발하여 쿠릴 열도를 따라 캄차카, 사할린, 블라디보스톡을 도는 행사였다. 한국 측 600명, 일본 측에서 600명이 참석하여 한 배를 타고 대양을 돌아다니는 독특한 체험이었다. 이 배에 당시 시민운동가로 유명했던 환경재단의 최열, 유한킴벌리의 문국현, 아름다운 재단의 박원순도 동승했다. 당시 문국현은 대선에 출마할 것인가를 놓고 그 타이밍을 고심하던 시절이었다.

큰 절의 주지스님 같은 관상에 호감


▎박원순 시장의 수첩. 무엇이든 메모하기 좋아하고, 메모를 통해 저장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데 능하다. / 사진·중앙포토
15일을 배타고 돌아다니는 행사였기 때문에 그린 보트 안에서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었다. 배에 동승한 초청강사들의 강의와 슬라이드, 그리고 음악 연주가 있었고, 필자는 시민운동가 박원순의 강연시간에 참석해 보았다. 강연은 선진국의 여러 가지 사례를 사진으로 찍어 슬라이드를 보여주면서 진행되었다. ‘저 양반은 언제 저렇게 외국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어 놓았나!’ 하고 감탄하였다. 그 부지런함과 꼼꼼함, 지칠 줄 모르는 문제의식의 소유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때 관상을 보니 큰 사찰의 주지스님 같은 느낌을 주었다. 우선 표정이 편안했다. 상대방에게 편안한 느낌을 준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상당히 수양을 해야만 이런 표정이 나온다. 그리고 말하는 방식이나 억양이 겸손했다. 조리 있고 설득력이 있었다. 겸손하게 말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은 다 피력하는 스타일. 그때 사주팔자를 물어보았다. 乙未, 戊寅, 癸卯, 乙卯가 나왔다. 여기에서 묘(卯)는 문창성(文昌星)에 해당한다. 한마디로 머리가 아주 좋고 공부 잘하는 팔자다.

문창성이 이렇게 2개나 되면 대개 수석한다. 최치원의 시호가 문창제군(文昌帝君) 아닌가! 학문의 별인 문창성의 제왕이라는 뜻이다. 더군다나 식신(食神), 상관(傷官)이 발달한 사주팔자다. 식신, 상관이 이처럼 발달하면 상대방이 지금 뭐가 필요한지, 어떤 심리상태인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능력이 탁월하다. 가려운 데를 정확하게 긁어 준다. 그리고 자기 표현을 잘한다. 머리가 좋지만 식신, 상관이 없으면 표현을 잘 못한다. 그러나 박원순 팔자처럼 이런 구조이면 자기의 생각을 대중에게 설파하는 데에 뛰어나다.

2007년 당시 박원순의 팔자를 보고 ‘고아원 원장이나 사회사업가’ 팔자로구나 하고 짐작했었다. 왜냐하면 식신, 상관이 아주 발달한 이런 사주는 남에게 뭘 주는데 익숙하다. 자기 개인적인 물욕은 없는 사람인 것이다. 종아격(從兒格)이다. 애들에게 젖 먹이느라고 자기 실속은 없는 경우가 많다. 머리가 안 좋으면서 종아격이면 고아원 원장인데, 머리가 아주 좋은 종아격이니까 시민운동가를 하는구나! 하고 짐작했었다. 시장이 될 줄은 몰랐다. 식신, 상관이 발달하면 벼슬하고는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주팔자를 가지고는 그 사람 운명을 100% 알 수 없는 것이다. 물욕이 없는 팔자라서 요즘과 같은 검증 시대에 적합한지도 모른다.

박원순은 1983년부터 91년까지 변호사를 했다. 이때 돈을 벌었다. 돈을 벌어서 어떻게 할 것이냐? 계속 돈을 버는데 집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재물은 ‘다다익선’이기 때문이다. 변호사로 돈을 버니까 그 돈으로 ‘역사문제연구소’ 창립에 앞장섰다. <역사비평>이라는 잡지를 이 연구소에서 펴냈는데 필자도 이 잡지가 나오면 꼭 사서 보았던 잡지였다. 언젠가 <역사비평>에 실렸던 한국 개신교의 전개과정에 대한 연구논문을 아주 인상 깊게 보았던 기억이 난다. 평양에 있었던 평양신학교가 일제 때 신사참배에 협력함으로써 오히려 인재를 길러낼 수 있었다는 내용이 흥미로웠다. 신사참배를 거부했으면 학교 문을 닫았을 것이고, 문 닫았으면 조선의 뜻 있는 인재들이 어떻게 공부할 수 있었겠는가. 약간 비굴하지만 그 비굴을 참고 견딤으로써 인재들이 공부할 수 있어서, 1970∼80년대 한국 민주화를 이끌었던 인재들이 평양신학교에서 배출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역사비평>은 <주역>에만 경도되어 있었던 필자에게 사회학적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내용들이 많았다. 박원순이 변호사를 해서 번 돈으로 ‘역사문제연구소’ 설립에 앞장 섰다는 사실은 종아격(從兒格) 팔자의 증거다. 연구소 사무실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자 박원순은 자기가 갖고 있던 집을 한 채 팔아서 그 돈을 댔다고 한다. 박원순의 부인 강난희는 이때 흔쾌히 동의했다고 한다.

‘창천동 마담’ 강난희와 역사문제연구소

부인 강난희에 대해서 반대파 측에서 공격이 많았다. 소문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가지고 있던 자기 집 한 채 팔아서 역사문제연구소 지원한 부분은 크게 평가하고 싶다. 돈 안 아까운 사람 누가 있는가? 이때 강난희도 동의했다는 것은 다른 세평(世評)을 상쇄시키고도 남는 공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2013년 역사문제연구소가 새로운 장소로 이사하게 되었을 때 가지고 있던 건물의 공시지가만 26억원이 되었다. 1989년에 박원순이 사준 건물이 올랐던 것이다.

26억원 가운데 일부를 연구소 측에서 돈 떨어진 박원순 부부에게 되돌려주려고 했을 때 부부가 사양했다고 전해진다. 박원순 팔자를 보고 서울시장 되는 것은 못 맞혔지만, 이런 부분은 사주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1980년대에 창천동에 있었던 박원순의 집은 지인들 사이에서 ‘창천옥’으로 불렸다. 시도 때도 없이 사람들이 이 집에 모여 밥 먹고 술 먹었다. 이부영, 박계동, 장기표, 이호웅, 김성동(작가), 박범신 등이 모여 놀았다. 심지어는 밤 12시에도 문 두드리고 쳐들어와서 해장국을 끓여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강난희는 ‘창천옥 마담’이라고 불리웠다. 창천옥 마담의 주특기는 잡채 요리라고 한다. 남편이 잡채를 좋아한 탓이다. 공덕을 쌓아야 사람이 잘된다. 우리나라 선비 집안에 전해오는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 틀린 말이 아니다.

- 조용헌 / 사진 전민규 월간중앙 기자

조용헌 - 원광대 불교학 박사. 지난 20여 년간 한·중·일 3국의 1천여 사찰과 고택, 영지(靈地)를 답사하는 과정에서 재야의 수많은 기인, 달사를 만나 교유했다.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천문·지리·인사 등 강호동양학의 3대 과목을 한국 고유의 문화 콘텐트로 자리매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조용헌의 사찰 기행> <5백 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 <방외지사> 등이 있다.

201507호 (201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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