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업

Home>월간중앙>경제.기업

[재계이슈] 10년 동안 ‘갇혀 있는’ 가석방제도 풀어달라 

 

기준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엄격, 발상의 ‘대전환’ 필요성 대두… 전문가들 “형 집행률 50~70% 넘으면 과감히 대상에 포함시키자”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1월 29일 설을 앞두고 서민 생계형사범과 교통위반사범 등 290만여 명에 대해 특별사면과 행정처분 특별감면을 단행했다. 경기 의왕에 있는 서울구치소를 나오고 있는 특사 대상자들. / 사진·중앙포토
5월 25일은 불기 2559년 ‘부처님 오신 날’. 부처님이 자신의 삶과 말씀을 통해 가르쳐준 ‘자비’와 ‘공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날이다. 중생들이 이날 붕어·거북이 등을 방생하거나 살생을 삼가는 것은 ‘자비’와 ‘공생’의 의미를 새기기 위함이다. 또 이날을 맞아 정부가 재소자를 사면하거나 가석방해주는 것도 공생(共生)의 의미를 실천하는 차원이었다. 인간과 미물 모두에게 제공된 ‘갱생(更生)’의 기회는 큰 선물임이 분명하다. 새로운 삶에 대해 감사하고, 그 은혜를 널리 보답하면서 살아가라는 의미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10년간 ‘부처님 오신 날’에는 재소자를 위한 ‘자비’는 없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사면이 단행되거나 대규모 가석방이 이뤄진 것은 2005년이 마지막이었다. 올해까지 10년째 ‘공생’을 통한 ‘갱생’의 기회가 원천적으로 막혀 있는 셈이다.

이런 현상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특별사면’에 대한 외부 통제가 강화되면서 벌어진 현상으로 풀이된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특별사면 제한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사면은 단행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니 이번 정권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 이나 ‘성탄절’ 같은 전통적 기념일에도 사면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최근에는 대통령 스스로 사면을 법으로 통제하는 법안까지 마련하겠다고 나섰으니 2014년 1월 단행한 특별사면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특별사면은 그렇다 치더라도 가석방까지 기회가 막혀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 법조계 안팎에서 제기되고있다.

가석방은 특별사면과 달리 행정절차로 보장된 재소자의 권리에 가깝다. 형법 제72조에 따르면 형기의 3분의 1 이상이 지난 재소자는 가석방을 신청할 수 있다. 대통령이 결정하는 특별사면과 달리 가석방은 ‘일정 형기’가 지나면 자동적으로 가능한 법적 장치다.

법조계 “가석방 기회 원천봉쇄는 심각한 문제”


교도소장 등이 가석방을 신청하면 법무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가석방심사위원회를 열어 ‘교정성적’, ‘건강상태’, ‘재범 위험성’ 등을 감안해 대상자를 선정하고, 법무부 장관이 가석방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방식이다.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정(矯正)당국의 의지가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가석방 흐름을 보면 ‘높은 장벽’에 가로막힌 채 지나치게 엄격하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거나, 교정당국이 가석방에 대해 의지가 없다고 해석될 정도로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 교정분야 전문가들도 이런 해석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5월 14일 동국대에서 열린 한국교정학회에서는 “형기의 3분의 1 이상이 되면 가석방이 가능하다는 규정은 유명무실하다. 실제 가석방은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운용되고 있어 가석방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한국교정학회가 개최한 ‘사회 내 처우제도의 개선과 전망’이라는 춘계학술대회에서 조준현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는 ‘가석방의 이론적 토대와 현실적 어려움’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가석방 기준이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엄격해 ‘개방적 행형’이 대세인 해외 흐름에도 역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가 법무부 교정통계연보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출소자 10명 가운데 가석방으로 출소한 사람은 1명에 불과하다. 가석방 출소자의 비율도 매년 줄어들고 있다. 전체 출소자 중 가석방 출소자는 2011년 12.9%, 2012년 12.2%, 2013년 11.4%로 집계됐다.

척박한 가석방 실태는 다른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교정기관에 수감된 재소자 수는 최근 5년간 큰 변화가 없는데 반해 가석방 대상자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법무부 교정연보(2014년도)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간 1일 평균 수용인원은 3.1% 소폭 감소한 데 반해 가석방 인원은 26.1%가 급감했다. 교정기관에 수감돼 있는 재소자는 약간 줄었지만 가석방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재소자가 줄어든 정도에 비해 가석방이 상대적으로 단행되지 않은 이유는 교정 당국이 교화보다는 수감에 초점을 맞춰 교정행정을 펴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 형기 종료로 교정기관을 나서는 재소자는 24.3%에서 30.2%로 꾸준히 늘어난 반면 가석방을 통한 형기 종료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최근 5년간 2011년 최고치(12.9%)를 기록한 뒤 줄어들고 있다. 특히 가석방을 통한 형기 종료는 11%대에 머물고 있어 출소자 10명 중 1명꼴로 가석방 ‘혜택’을 입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게다가 가석방 출소자의 형기집행률(수형자가 복역한 형기비율)도 상당히 높다.

조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형기집행률이 80~90% 수준인 가석방자는 2011년 65.9%, 2012년 61.4%, 2013년 61.6%로 조사됐다. 90%를 초과한 가석방자는 같은 기간 23.3%, 30.1%, 30.8%로 나타났다. 이는 10명 중 9명이 출소를 코앞에 두고 가석방이 된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가석방 허가율이 높은 것도 아니다. 교정당국이 신청하는 가석방 건수는 매년 줄어들고 있으며, 허가율도 떨어지고 있다. 교정행정이 가석방이라는 사회 내 처우를 통한 교화보다는 수감에 초점을 맞춰 지독히 폐쇄적으로 운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 교수는 “교정당국이 말하는 형기 3분의 1 이상이면 가석방이 가능하다는 것은 유명무실한 규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형기집행률이 80%에 달했을 때 가석방해주는 경우가 드물다. 오히려 우리나라와 확연한 차이를 보이며 개방적이고 탄력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가석방 출소자 90%가 형기 거의 다 채워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오른쪽)이 지난 5월 5일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특별사면제도 개선 관계기관 회의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사진·뉴시스
영국은 지난 1968년 형사사법법(The Criminal Justice Act 1967)에 따라 가석방 제도를 도입한 뒤 재소자 중심으로 가석방제도를 확대·적용해 왔다. 가석방제도 도입 직후에는 형기의 3분의1 또는 3분의 2에 해당하면 가석방 심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 1970년대에는 전체 수형자의 50% 이상이 가석방으로 사회에 복귀하기도 했다.

또 4년 이하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재소자가 형기의 절반을 경과하면 자동적으로 가석방이 되는 제도를 도입했고, 2005년에는 ‘절반형기제(Half way point)’를 통해 모든 재소자가 형기의 절반이 넘으면 가석방될 수 있도록 했다.

독일은 형기의 4분의 1 이상, 미국은 마약범죄와 아동성폭력범죄 등 일부 범죄를 제외하고는 형기의 5분의 1 이상을 채우면 가석방 심사 대상이 되도록 하는 등 우리보다 개방적인 기준을 취하고 있다.

조 교수는 “우리나라의 가석방 현실은 형기집행률이 75~80%가 돼야 가능하다”면서 “형기집행률이 50~70%를 넘으면 재범 가능성과 교화 정도를 고려해 과감하게 가석방 시키는 교정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자리에 토론자로 참석했던 고려대 정승환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조 교수의 발표에 공감을 표시했다. 정 교수는 “가석방제도가 도입된 지 70여 년이 됐음에도 우리나라 가석방제도는 큰 변화가 없다”면서 “사회 내 처우를 강화하는 개방적 행형이 세계적 추세인 만큼 가석방 기회의 확대와 탄력적인 운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가석방이 교정에 도움이 된다는 통계수치도 있다. 가석방 출소자는 다른 형태의 출소자에 비해 재복역률이 현저히 낮다. 가석방 출소자의 재복역률은 11%인데 반해 출소자 전체의 재복역률은 22%다.

그만큼 사회 내 교우(交友)를 통해 충분히 교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가석방이 사법부의 권위를 침해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다는 반론을 내 놓고 있다. 최근 법원은 양형위원회 설치 이후 범죄의 심각성을 고려해 높은 형량을 선고하고 있다. 특히 권력자와 경제인 등 소위 ‘가진 자’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강력하게 처벌했기 때문에 법원이 노린 ‘징벌적 효과’는 충분히 달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교정기관에서 충분히 반성하고 교화된 개전(改悛)의 정이 있는 재소자에 대해서는 과감한 사회 내 처우로 ‘갱생’의 기회를 제공하는 절차가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 교정 분야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들은 가석방을 ‘제2의 선고’로 보고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가석방 기준을 완화해 ‘수형자의 사회복귀를 위한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을 촉진한다’는 본래 취지를 살려야 한다는 의미다.

박상열 한국교정학회장(광운대 교수)은 지난 5월 언론 인터뷰에서 “일부 판사들은 수형자의 조기 가석방이 양형을 침해한다는 의견을 내는데 양형과 가석방의 목적과 기준은 다르다”면서 “양형은 그 자체만으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다시는 죄를 짓지 않도록 엄중 경고하는 징벌의 효과를 지니는 것이고 수형자가 형기를 채우는 것은 개정의 효과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이어 “지금처럼 형기의 80% 이상을 채워야 나갈 수 있다는 것은 수형자들이 조기에 개정될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라며 “법원이 최근 형량을 높여 선고하기 때문에 형기의 3분의 1을 복역한 시점에 가석방해도 양형효과를 떨어뜨린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개전의 정 있으면 갱생의 기회 줘야

최근 병환이 난 모친을 병문안하기 위해 귀휴(歸休)한 무기수가 자살한 것도 ‘제2의 삶’의 기회를 봉쇄당한 교정행정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익명을 원한 형사사건 전문 변호사는 “사면을 옥죄는 정부의 선명성 정책과 이에 동조해야 한다는 교정당국의 눈치 때문에 정작 재소자들이 누려야 하는 가석방 권리조차 보전받지 못하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점에서 최근 가석방 확대가 필요하다는 교정 분야 전문가와 법학자들의 의견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이용식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5월 28일 <중앙일보> 시론에서 가석방은 재소자에게 “더 일찍 사회에 복귀할 수 있다”는 자극제가 될 수 있으며 출소 후 재범률을 낮추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가석방을 국가 또는 교정시설이 베푸는 일회성 시혜로 격하시켜서는 안 되며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결정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교정기관 관계자는 “현 정부에서는 가석방 대상자가 더 줄어들어 연간 6천여 명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충분히 개전의 정이 느껴지고, 반성하면서 사회복귀가 필요한 이들에 한해서는 ‘삭풍’보다는 ‘햇볕’을 통해 갱생의 기회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images/sph164x220.jpg
201507호 (2015.06.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