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심층취재

Home>월간중앙>특종.심층취재

[단독취재] 미래창조과학부의 ‘이상한’ 채용 논란 

‘갑-을’ 겸직, 내가 다하겠다? 

김포그니 월간중앙 기자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한국물리학회장 겸직한 김승환 포스텍 교수의 행보에 학계 불만 증폭… 미래부의 선택은?
미래창조과학부 산하의 준정부기관장이 예산 문제로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학회의 회장을 겸임하자 관련 학계에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각종 사업 추진에서 특정 학회에 특혜가 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감독해야 할 미래부의 석연찮은 인사원칙에도 비판이 쏟아진다.


▎2013년 4월 미래창조과학부 현판식 장면. 창조경제를 위한 ‘ 야심작’으로 평가받으며 세간의 관심 속에 출범됐던 미래부가 최근 산하 준정부기관장 선임과 관련해 인사 논란에 빠졌다.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가 한국물리학회 회장 당선자를 미래부 산하 준정부기관인 한국과학창의 재단의 이사장으로 선임해 논란이 일고 있다.

2014년 10월 29일 미래부는 김승환 한국물리학회 26대 회장 당선자(55)를 한국과학창의재단(이하 ‘창의재단’) 이사장직에 선임했다. 문제는 올 초 김승환 창의재단 이사장이 한국물리학회 회장 임무도 함께 수행하기 시작한 데서 출발한다. 미래부가 2015년 4월 초 김 이사장의 한국물리학회 회장직을 정식 승인하면서 창의재단 이사장이 물리학회장까지 겸임하게 된 것이다.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일까?

한국물리학회(이하 ‘물리학회’)는 미래부 관할 학술단체(사단법인)로 학회장 당선자는 미래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한 이 학회는 미래부 관할 단체로서 미래부의 위탁기관인 창의재단으로부터 주요 사업의 예산을 지원받는다. 다시 말해 창의재단과 물리학회는 사실상 ‘갑-을’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학계 일각에서는 “미래창조과학부가 문제의 소지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갑-을’의 수장을 겸임하도록 허용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그 대강은, 미래부가 물리학회 회장에 뽑힌 김승환 당시 포스텍 교수를 곧바로 산하기관인 창의재단 이사장직에 선임한 일이 부적절했다는 주장이다. 그 내막을 <월간중앙>이 들여다보았다.

‘김승환이 김승환에게’ 1인 협약서 등장(?)


창의재단은 1967년 고(故) 박정희 대통령이 설립한 한국과학기술후원회의 후신으로 2008년 9월 현재의 명칭으로 출범한 국내 유력 준정부기관이다. 창의재단은 미래부의 위임을 받아 과학분야 주요 기금사업을 운영해오고 있다. 미래부가 창의재단에게 지급하는 한 해 예산은 대략 1천억원(2014년 기준·교육부 위임 예산 약 300억원 포함)에 달한다.

이 재단의 주요 사업으로는 과학 연구활동 지원, 한국국제 과학올림피아드 수상자 연구 장려금 지급, 대한민국과학문화상 선정, 우수과학도서 인증 및 보급 등이 있다. 교육부의 위탁을 받아 수학과 과학 교과서 검정작업도 진행한다. 이 밖에도 창의재단은 매년 ‘국제과학올림피아드’를 지원한다. 국제물리올림피아드도 그 사업 중 하나다. 국제물리올림피아드의 경우 물리학회가 주관하고 창의재단이 예산을 지원하는 형식을 띤다.

이처럼 물리학회 회장은 국제물리올림피아드 지원을 받기 위해 창의재단 이사장과 일종의 ‘갑-을’ 계약관계에 서게 된다. 다시 말해 창의재단 이사장이 물리학회 회장을 겸임할 경우 자신이 속한 학회의 사업(국제물리올림피아드 등 물리학회 업무)에 유리하도록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와 관련 김승환 창의재단 이사장 측은 6월 1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국제물리올림피아드 (예산)지원은 공모선정 사업이 아니라 이미 1992년 과학재단 때부터 20년 이상 계속 지원하고 있는 ‘계속사업’이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계속사업’도 매년 협약을 새로 체결한다는 점에서 동일인이 두 기관을 대표해서 계약한다는 구조에는 변함이 없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물리학회가 주관하는 국제물리올림피아드 사업에 관한 예산지급 체결 협약서에 ‘김승환 창의재단 이사장’과 ‘김승환 물리학회장’이란 동일인의 이름이 ‘갑-을’ 관계로 동시 기재되는 황당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점이다. 동일 인물이 계약 당사자로 나서는, 사실상 민법에서 금하는 ‘쌍방대리’와 유사한 모양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기관 “한 명의 수장을 모셨더니…”


▎미래부의 전경. 미래부는 올 초 제 26대 한국물리학회의 회장직 승인을 놓고 약 2~3개월간 숙고를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창의재단과 물리학회 측은 이런 논란을 피하고자 계약 주체를 김승환 이사장이 아닌 제 3자로 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감한 사안이라는 이유로 익명을 요구한 물리학회 관계자 A씨는 “이번 물리학회 회장단도 주변의 눈을 의식했는지 국제물리올림피아드 협약 시 학회의 실무이사장 또는 교육위원장이 협약 주체로 나서는 방법을 고려했다. 그러나 규정 상으로 불가했다”고 말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올해 국제물리올림피아드 예산 지원 부문에서 갑과 을이 동일 인물로 적시된 협약서를 토대로 국가 예산이 집행되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는 셈이다. 이에 대해 김 이사장 측은 6월 16일 “법인인 한국과학창의재단과 한국물리학회의 협약으로 돼있다. 법인 간의 협약이므로 대표자가 같다고 해서 자기계약은 아니라는 법리적 검토도 받았다”고 해명했다. 그 말이 사실일까?

‘한국과학창의재단 위탁지원사업 운영요령’에 따르면 창의재단 이사장은 승인된 기금사업에 대해 수탁기관의 장과의 협약을 원칙으로 한다. 국제물리올림피아드 협약을 수차례 진행한 바 있는 전 창의재단 관계자는 “창의재단이 기관장이 없는 유령기관인가? 기관은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에 장이 없이는 협약이 불가능하다. 그럼 협약에 대표 서명은 누가 했나?”라고 반박했다.

미래부가 승인한 ‘1인 2수장’ 겸직 논란은 비단 국제물리올림피아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앞으로 있을 각종 과학관련 정책 수립, 예산분배에서도 잡음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창의재단이 주로 정부의 입장을 대변한다면 물리학회는 과학계의 여론을 전달하는 창구인 까닭에 사안별로 협조와 견제를 반복하게 된다. 그동안 정부의 사업이나 교육 방향이 학계의 중론과 배치될 경우 통상 창의재단은 정부 쪽, 학회는 학계 쪽의 입장을 대변해왔다. 특히 회원 수 1만8천 명으로 국내 최대 규모 학회로 분류되는 한국물리학회는 정부에 과학계 입장을 대변하는 중추 역할을 해왔다. 사안에 따라서는 양쪽이 배치되는 입장을 나타낼 수도 있다. 때문에 두 조직을 이끄는 이가 동일인이란 데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물리학회 관계자 B씨는 “창의재단과 물리학회가 모든 사안을 두고 대치만 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협력도 한다. 다만 정부의 사업이나 교육 방향이 과학계의 반발을 살 경우 창의재단은 정부의 대변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라며 우려감을 나타냈다.

재단과 학회를 동시에 대표하는 이중적 지위로 인해 전례가 없는 일이 생겨났다. 최근에 열린 연세대 물리학과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김 이사장의 호칭을 놓고 주최 측이 혼선을 빚은 것이다. ‘김 이사장’, ‘김 회장’ 중 어떤 호칭으로 예우를 해야 할지 몰라 잠시간 소동이 일었다. 비슷한 예로 여타 학회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내 과학계에서 물리학회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한화학회의 한 관계자는 “화학회가 정부 예산을 지원받으려 재단이사장으로 있는 물리학회장을 통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창의재단은 교육부의 위임을 받아 수학과 ‘과학(물리·화학·생물 등)’ 교과서 검정도 맡고 있다. 국내 이공계 대학의 한 교수는 “과학 교과서는 물리·화학·생물·환경 등 과학 전반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면서 “특정학회를 대변하는 물리학 회장이 창의재단 이사장으로 이런 일을 총괄하는 모양새가 과연 바람직한가”라고 반문했다. 이에 김 이사장 측은 “물리·화학·생물학회 등 다양한 과학계와 과학교육계의 의견을 두루 수렴하여 교과서를 검토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지난해 물리학회장 선거에서 김 이사장(당시 포스텍 교수)이 제시한 약속은 다른 학회의 심기를 거스르기에 부족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그는 “정부출연연구소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회원들의 힘이 (물리)학회로 결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리학회 회장 취임 소감에서도 “물리학회가 다양한 연구성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문제제기에 대해 김 이사장은 “현장 과학자 출신으로서 재단의 고유 업무인 과학문화 창달과 창의적 인재 육성을, 과학기술계의 관심과 기여 확대를 이끌어내는 연결고리가 된다는 긍정적 시각도 많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물리)학회장은 비영리법인의 순수 봉사직”이라며 “상징적 역할을 수행할 뿐 학회의 실질 업무는 수석부회장인 실무이사장이 업무관련 회의와 이사회를 운영한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 국제물리올림피아드 외에는 창의재단 사업을 수행하는 게 없다는 입장도 함께 밝혔다.

“미래부의 ‘겸임’ 승인은 법률상으로도 문제”


▎지난 5월 말 최양희 미래부 장관은 김승환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의 한국물리학회 회장 겸직을 둘러싼 내부 잡음에 대한 보고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복수의 물리학회 관계자에 따르면 교과서편수·과학 문화보급·융합인재육성 등 창의재단 사업을 물리학회가 수탁 받아왔다. 학회 수석부회장(실무이사장)이 학회의 실질 업무를 운영한다는 김 이사장의 주장도 모든 협약 및 계약은 회장 명의로 진행된다는 물리학회의 정관(13조)에 비춰볼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

산하 준공공기관 관리 감독을 해야 할 미래부도 김승환 이사장의 겸임 ‘논란’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김 이사장 측이 “물리학회장과 창의재단 이사장겸직에 대한 지적은 미래부의 승인을 받았으므로 문제될 게 없다”고 강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과학창의재단 규정’의 ‘공기업, 준정부기관의 인사운영에 관한 지침’과는 사뭇 다른 주장이다. 이 지침에 따르면 창의재단 이사장의 선정은 이사장 후보자가 갑을 관계, 계약 관계(금전급부가 있는 용역 등)에 있는지 또는 있었는지, 자기 사업에 유리하도록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지, 그 밖에 기관의 특성 및 영위사업 등 이해관계 유무를 판단해 결정토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용민 변호사(법무법인 양재)는 “사전에 쌍방 대리의 가능성이 예견됐는데도 창의재단과 물리학회의 대표직 겸임을 미래부가 승인한 것은 법률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창의재단은 물리학회 외에 수학·생물·화학 등 다른 학회에도 국가예산을 공정한 절차에 따라 지원해야 하는 준정부기관이다. 그런데 이들 학회와 동등한 지위를 갖는 특정 학회의 대표가 사실상 ‘갑’인 준정부기관장을 겸임한다는 건 해석에 따라 이해가 충돌할 소지가 높다는 것이다. 이수희 변호사(법무법인 한별) 역시 “창의재단이 국제물리올림피아드 등에서 물리학회에 예산을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 충분히 예견되는 만큼 미래부는 김 이사장을 선임할 당시 물리학회 회장직 사임을 권고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른바 ‘부적절한 겸임’을 두고 미리 결단을 내려야 할 미래부가 현재까지도 이를 해결할 의지가 없는데 대해 학계 일각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미래부는 왜 학계에서 잡음이 예상되는 겸직을 승인해줬을까? 미래부 관계자는 “창의재단은 국가기관이 아니다”며 “재단 이사장직 또한 국가 공무원이 아니라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창의재단은 엄연히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준정부기관으로 분류된다. 지난해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가 미래부로부터 제출받은 ‘소관 준정부기관 기관장 현황 및 선임절차’ 자료에는 창의재단이 미래부 산하 49개 기관 중 한 곳으로 등장한다. 또한 한국과학창의재단 정관에 따르면 창의재단 이사장은 임원추천위원회가 복수로 추천한 사람 중에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임명한다. 더구나 이 재단이 한 해 동안 주무르는 예산 가운데 정부출연금이 820억원에 달한다.

물리학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래부의 소속기관 직제 시행규칙에 따르면 물리학회는 미래부의 승인 없이는 등기조차 불가능하다. 소관 법인, 단체의 임원선임·승인이 미래부 소관이기 때문이다.

김 이사장의 거취 관련, 미래부도 고심 중


▎박근혜 정부의 ‘트레이드마크’ 미래부가 최근 제기된 ‘1인 2수장’ 인사 논란을 비롯해 과학계를 둘러싼 주요 쟁점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국물리학회는 지난해 10월 7일 회원 투표를 통해 김승환 당시 포스텍 교수를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고, 미래부는 지난 4월 이를 승인했다. 이 과정에서 김 교수는 지난해 10월 10∼20일에 진행된 창의재단 이사장 공개모집에 지원했다. 이어 그는 미래부의 심사를 거쳐 10월 29일 창의재단 이사장직의 임명 통보를 받았다. 논란의 씨앗은 이때 싹을 틔운 것이다.

취재 결과 미래부도 사전에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학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미래부는 물리학 회장 승인 문제를 놓고 2~3개월간 숙고를 거듭했다. 보통 물리학회 회장이 선출되면 임기 개시일인 1월 1일 무렵 미래부에 승인을 요청한다. 그리고 승인은 2월 초까지 마무리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올해는 이례적으로 승인 여부가 4월 중순이 돼서야 결정됐다. 익명을 요구한 물리학회 관계자는 “재단과 학회 겸직이라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지자 미래부도 한동안 고민했던 것 같다”면서 “승인 당시 미래부 측 관계자가 물리학회 집행부에 전화를 걸어와 분위기 파악을 하더니 뒤늦게 승인을 내줬다”고 과정을 설명했다.

미래부도 좌불안석인 눈치다. 자칫 관리·감독의 책임을 제대로 못했다는 불똥이 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래부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최양희 미래부 장관은 김승환 이사장 겸직을 둘러싼 내부 잡음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익명을 요구한 미래부의 관계자는 “최양희 장관이 최근 김승환 이사장 겸직 논란 건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며 “잡음이 생기면 미래부 입장에서는 일종의 감독 소홀인 만큼 최종 판단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는 당선인 시절부터 ‘창조과학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포부를 강조한 바 있다. 이 포부를 실체화하기 위해 박근혜정부가 공들여 설립한 게 바로 미래부다. 박근혜 정부의 ‘트레이드마크’인 미래부가 이번 인사 논란과 같은 과학계를 둘러싼 주요 쟁점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 김포그니 월간중앙 기자

201507호 (2015.06.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