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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책 읽는 영화관’] 슬픈 기로… 영화 <은밀한 유혹> 

“그녀의 하룻밤을 팔아요” 

강유정 영화·문학평론가
돈과 행복의 함수관계에 놓인 아이러니… 아내를 죽여서라도 얻고픈 신데렐라의 꿈, 우리 삶이 지닌 욕망의 어리석은 단면 속으로

▎돈과 행복의 관계는 수많은 작가의 탐구 대상이었다. 돈과 행복의 양면적 균형을 맞추는 것이 바로 우리네 인생이다. 또한 평범한 이들의 삶이 갖고 있는 아이러니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잘나가는 소설이 드라마나 영화화되는 일은 흔하다. 실패한 경우도 많지만 폭발적인 흥행 성공을 거둔 사례도 적지 않다. 원작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테크놀로지와 콘텐트의 다양한 변주가 이뤄진다.

<은밀한 유혹>하면 애드리언 라인이 연출했던 동명의 영화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데미 무어와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을 맡았던 바로 그 영화다.

서로를 지독하게 사랑하지만 젊은 부부에게는 ‘돈’이 너무나 절실하다. 이때 거부인데다 매력적인 매너와 외모까지 갖춘 남자가 그들이 처한 경제적 위기를 해결해주겠다며 은밀한 제안을 한다. 거래의 조건은 단 하나. 바로 아내를 하룻밤만 빌려주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제안처럼 여겨지지만 젊은 부부는 고민한다. 만약 남자가 아예 아내를 갖겠다고 말했더라면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룻밤, 하룻밤이라….” 이 단순성이 부부를 혼란스럽게 한다.

만일 당신이라면 이런 제안을 받고 어떤 선택을 할까? 게다가 심각한 경제적 위기에 놓여 있을 때 라면 말이다. 그렇게 거래는 시작된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어땠을까? 젊은 부부는 아내의 하룻밤을 빌려주고 경제적 위기를 넘기지만 행복 역시 달아나 버린다.

아내를 죽인 어부의 속사정 “돈 때문에”


▎영화 <은밀한 유혹>은 우리가 꿈꾸는 상류층의 삶을 보여주고자 한다. 어쩌면 돈에 대한 관음증 자체가 우리 모두에게 숨겨져 있는 신데렐라의 욕망일지도 모른다.
소설 <연을 쫓는 아이>에는 한 가지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어부가 있다. 어느 날 어부는 마법의 잔을 건져 올린다. 마법의 잔은 눈물을 흘려 담으면 진주로 바뀌는 기적의 도구이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어부는 별로 울 일이 없다. 하지만 진주에 욕심이 생긴 그는 눈물 흘릴 구실을 마련하다 결국 아내를 죽이고 만다. 아내를 죽인 후 눈물을 펑펑 흘리며 그 눈물을 마법의 잔에 받아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다. 과연 돈과 행복은 필연적인 함수관계일까? 아니면 우연적인 관계일까? 즉 행복에 돈이 필수인 것일까? 아니면 돈이 행복에 도움 되는 것일까?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어부는 결국 부유하지만 불행한 남자가 되고 만다. 영화 <은밀한 유혹>의 두 부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가난했지만 행복했다. 그리고 이제 가난에서 벗어났지만 행복하지도 못하다.

그동안 돈과 행복의 관계는 수많은 작가의 탐구 대상이었다. 돈과 행복의 함수관계에 놓인 아이러니는 결국 우리 삶이 지닌 아이러니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 <은밀한 유혹>도 바로 이런 질문에서 시작된다. 경제적 위기에 처한 사람에게 행복의 계단은 어떤 모습으로 형상화될까? 지긋지긋한 빚 독촉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일 테다. 행복을 위해서는 그 어떤 것보다 돈 문제의 해결이 급하다는 의미다.

이 영화의 여주인공 지연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다. 돈 때문에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지연 앞에 갑자기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문제는 세상에는 절대 우연한 행운 혹은 기회란 없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기회 앞에 서게 되면 사람들은 이면의 위험을 애써 못 본 척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런 위험이 피해가리라는 행운의 도미노가 자신의 인생에 펼쳐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그렇게 위험한 제안의 매혹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짜 은밀한 유혹은 단순히 성적인 유혹이 아니라 그 깊은 욕망을 건드리는 제안, 바로 그런 제안일 것이다.

순진한 소녀가 ‘정부(情婦)’가 된 까닭

<은밀한 유혹>은 카트린 아를레의 1954년 작 <지푸라기 여자, Le Femme de Paille>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원작자인 카트린 아를레는 매우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다. 1935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나이부터 연극과 영화에서 배우로 활동하며 경력을 쌓았다. 10대 때 한 실업가와 결혼했던 그는 1953년에 이혼한 후 소설 <곧 죽을 거요>라는 데뷔작을 선보인다. 1954년 겨우 스무 살의 나이에 발표했던 소설 <지푸라기 여자>는 그에게 작가로서의 유명세를 가져다 줬다.

<지푸라기 여자>의 느낌은 패트리시아 하이스미스의 소설이자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원작인 <리플리, The Talenred Mr. Ripley>와 닮아 있다. 지중해를 배경으로 상위 1퍼센트에 속하는 부유한 상류층의 문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그 높고 먼 생활에 대한 동경을 가진 가난한 젊은이가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요트, 햇살, 그리고 보기 좋게 그을린 피부, 사실 이런 요소들은 매우 배타적인 서구 상류층 문화의 표식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원작 <지푸라기 여자>에서 주인공이 독일 함부르크 출신의 번역자라는 점도 이것과 연관된다. 예측하기 힘든 날씨와 회색빛의 항구 도시 함부르크에 살고 있는 힐데가르트는 가족에게 친밀한 애정을 받고 자라지 못한다. 소설 속 여주인공 힐데가르트의 삶은 그저 고만고만하다. 특별히 빚에 쪼들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생계를 잊어도 될 만큼의 여유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에서 광고를 보게 된다. “칸 비치에 정박된 요트에서 일할 간병인을 구함. 비록 힘든 일이지만 화려하고 한가한 삶을 보장함.” 이 간단한 문구에 그녀는 깊이 매료당한다.

순진한 소녀는 아니었던 힐데가르트는 이 광고를 보고 냄새 나고 성미 지독한 노인의 정부가 돼야 할지도 모른다고 짐작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한 기회비용을 치르고 화려하고 한가한 삶을 얻을 수 있다면 모든 것을 감내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힐데가르트는 자기 쪽에서 먼저 적극적인 의사를 보이는 편지를 써서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며 전전긍긍한다. 비로소 답장이 왔다. 여러 지원자 중 한 명이 된 것을 축하하며 면접에 응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그녀는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서는 어떤 표정으로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 연구한다. 즉 힐데가르트는 우연히 기회를 잡은 신데렐라가 아니라 ‘화려하고 한가한 삶’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세속적인 여성인 셈이다. 말하자면 그녀는 스스로 세상 물정에 대해 좀 알고 있는 여자로 등장한다. 힐데가르트는 남자의 제안에 잠시 망설이기도 하지만 제법 담담하게 범죄에 끼어든다.

소설과 영화에서 가장 다른 점은 바로 여주인공의 캐릭터다. <은밀한 유혹>의 그녀, 지연(임수정 役)은 힐데가르트에 비해 훨씬 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상황만 놓고 보자면 원작의 힐데가르트보다는 할리우드 영화 <은밀한 유혹>의 그녀와 더 닮아 있다.

동업을 하던 친구는 사업 자금을 가지고 도망갔고 심지어 지연의 명의로 사채까지 얻어 썼다. 친척 하나도 없는 그녀는 낯선 땅 마카오에서 이국의 언어로 위협받고 독촉받는다. 마카오의 조직폭력배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지연을 찾아와 협박한다. 그렇게 벼랑끝에 선 그녀에게 매혹적인 제안이 나타난다. 매력적인 상류층 남자는 마카오 카지노의 절반을 가진 거부의 간호사로 그녀를 원한다. 하지만 사실 그 남자가 원하는 것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노인의 배다른 아들이자 비서이기도 한 김성열(유연석 役)은 위험한 음모를 제안한다. 제안을 듣는 것만으로 1천 달러, 만일 그 제안에 응해 성공한다면 유산의 절반을 주겠다는 유혹이다. 그러니까 마카오 카지노의 4분의 1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김성열은 그녀에게 회장의 마음을 빼앗아달라고 주문한다. 그의 아내가 되어 유산을 받고 그 유산의 절반을 나눠 갖자는 것이다. 마치 영화 <프리티 우먼>의 호텔 지배인처럼 김성열은 그녀를 상류층의 문화에 어울리는 여자로 조각해낸다. 거기에 약간의 우연이 덧보태져 각색은 더욱 완벽한 이야기로 완성되어간다.

파멸로 치닫는 ‘신데렐라의 꿈’


▎영화<은밀한 유혹>의 한 장면. 주인공 지연은 이국에서 불미스러운 일로 재산 전부를 탕진한다. 그런 그녀에게 갑부의 비서 김성열은 “회장을 유혹하면 거액을 주겠다”며 은밀한 제안을 한다.
원작과 <은밀한 유혹>, 두 작품의 뼈대는 신데렐라 신화로 압축된다. 평범하다 못해 비루했던 재투성이 여자가 어마어마한 부를 지닌 노인의 아내가 되어 단숨에 신분상승을 이루는 이야기 말이다. 하룻밤 만에 인생이 바뀌는 이야기, 지독한 밑바닥 인생에서 벗어나 하루아침에 모두가 고개를 들어야 볼 수 있는 높은 위치의 사람으로 변신하는 것, 말하자면 두 여자가 꿈꾼 신데렐라의 꿈은 현대 사회의 신화와도 같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행운에는 대가가 따른다. 새옹지마, 전화위복과 같은 말은 불운에 위로가 되지만 세상엔 호사다마도 많다. 그저 좋기만 한 일은 없다. 심지어 소위 ‘눈먼 돈’이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찾아 올 리 없다. 행운의 가면이 벗겨지면서 두 여자는 치밀하게 계획된 연극의 단역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신데렐라는 동화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적어도 어른들의 사회에선 신데렐라란 있을 수 없다. 소설과 영화는 이 불가능성을 보여준다.

소설과 영화는 이 반전 이후 급속하게 다른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소설은 희망의 풍선을 빼앗는 게 아니라 아예 터뜨리고 만다. 다시는 불 수 없도록 말이다. 이야기 내내 제법 영악하게 굴었던 힐데가르트는 철저한 계획 속에서 완전히 파멸하고 만다. 그녀는 우연한 기회를 믿었다는 대가로 한가하고 화려한 삶이 아니라 파멸을 얻게 된다. 아무리 영악하게 군다고 해도 그녀는 혈혈단신의 순진한 여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영화는 사뭇 다르다. 원작의 결말을 여러 번 반전으로 위배하면서 다른 도착점을 향해 간다. 음모를 짠 사람과 음모에 걸린 사람, 두 사람은 이제 공모자가 아니라 공격하는 가해자와 수비하는 피해자로 나뉜다. 로맨스나 에로틱한 긴장도 사라진다. 돈 앞에서 그런 감정적 유희는 사치일 뿐이라는 듯이 말이다.

이 다른 결말은 지연의 캐릭터와 연결된다. 지연은 회장을 감동시킬 만큼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며 도도하다. 비록 그녀는 가난하지만 자존심을 지킬 줄 아는 여자로 묘사된다.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순진할 뿐만 아니라 고용인들의 인권을 부르짖을 만큼 올바르다. 지연은 욕망에 비해 너무 착하고 순진하다.

영화 <은밀한 유혹>은 우리가 꿈꾸는 상류층의 삶을 보여주고자 한다. 화려한 요트의 내부란 곧 상류층의 속살과 다를 바 없다. 어쩌면 이 관음증 자체가 우리 모두에게 숨겨져 있는 신데렐라의 욕망일지도 모른다.

반세기가 지나서도 이 이야기가 힘을 잃지 않았다면 아마도 우리 대부분이 힐데가르트만큼 기회를 기다리고 지연만큼 절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어부가 결국 아내를 희생하고서라도 진주를 얻듯이 우리는 그것이 불행의 지름길임을 알면서도 자꾸만 얻으려고 한다. 신데렐라의 꿈, 그것은 인간이 꿈꾸는 바보 같은 욕망의 그림자일지도 모르겠다.

강유정 - 영화·문학평론가. 강남대 국문과 교수. 2005년 <조선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동시 당선돼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KBS <박은영, 강유정의 무비부비2>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저서로 <스무살 영화관> <사랑에 빠진 영화, 영화에 빠진 사랑> 등이 있다.

201507호 (201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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