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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미국 대선 이슈의 블랙홀 인종차별, 총기 휴대 

백인 우월주의자의 흑인교회 총기 난사 사건으로 흑백 갈등이 최대 현안으로 부상… 남부연합기 퇴출, 총기 규제 등 100년 넘은 해묵은 쟁점이 정치권과 사회 짓눌러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인종차별에 따른 증오범죄는 미국 사회에 균열을 가져온다. 지난 4월 백인 경관의 총격에 숨진 흑인 희생자를 추모하고 범죄를 규탄하는 노스찰스턴 시위대. / 사진·중앙포토
미국에서 한 백인 우월주의자가 저지른 흑인교회 총기 난사 사건으로 흑인 9명이 사망하면서 해묵은 난제인 흑백 인종갈등의 민낯이 또다시 드러났다. 이번 사건으로 미국 사회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으며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흑백 인종갈등 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수사 당국의 조사에 따르면 백인 우월주의자인 딜런 루프(21)는 지난 6월 17일 오후 9시5분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 있는 이매뉴얼 아프리칸 감리교회의 지하 예배실에서 클레멘타 핑크니(41) 담임 목사를 비롯해 목사 2명과 신자 9명을 권총으로 사살했다.

루프는 오후 8시쯤 범행 장소인 교회에 자동차를 타고 도착해 곧장 지하 예배실로 내려갔다. 당시 예배실에선 목사와 신자들이 모여 앉아 성경 공부를 하고 있었다. 루프는 1시간 가량 앉아 있다가 바로 옆에 있던 핑크니 목사를 제일 먼저 사살했다.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은 루프가 총을 쏘면서 “당신들은 우리 여성들을 성폭행했고, 우리나라를 차지했다. 당신들은 이 나라에서 떠나야 한다. 나는 흑인에게 총을 쏘러 왔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사망자들 중에는 여성이 6명, 남성이 3명인데 87세 할머니도 포함됐다. 핑크니 목사는 23세 때 흑인으로는 최연소 사우스캐롤라이나 주하원의원에 당선됐고, 지난 2000년에는 주상원의원이 됐다. 지난 2010년이 교회에 부임했으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도 친분이 있는 유명 인사였다. 루프는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유유히 교회를 나와 자신의 자동차를 몰고 도주했다. 경찰은 대대적인 검거작전을 벌인 끝에 범행 14시간 만인 18일 오전 11시쯤 루프를 체포했다.

피로 얼룩진 찰스턴, 대선 예비 후보들의 단골 유세장


▎미국 여성들이 6월 18일 찰스턴 이매뉴얼 아프리칸 감리교회 앞에서 총기 난사사건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사건이 발생한 이매뉴얼 교회는 흑인 저항운동의 상징적 장소라는 점에서 미국 국민의 충격이 더욱 컸다. 1816년 세워져 199년의 역사를 간직한 이 교회는 흑인교단인 아프리카 감리감독교단(AME) 소속 교회로는 미국 남부에서 가장 오래됐다. 더욱이 이 교회를 세운 해방노예 출신의 덴마크 베시(1767∼1822)는 1822년 찰스턴에서 흑인 노예봉기를 기도했다가 실패한 뒤 처형당했고 교회도 불태워졌다. 하지만 신자들은 지하 신앙생활을 하며 신앙공동체를 유지해 나갔고 남북전쟁이 끝난 뒤인 1872년 2층 목조건물로 재건됐다가 1886년 지진으로 다시 불타자 1891년 고딕양식 석조 건물로 지어져 현재에 이른다. 이 교회는 흑인 민권운동 당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흑인 민권운동가인 마틴 루서 킹 목사가 1962년 이 교회에서 연설하기도 했다.

흑인 교회는 과거에도 증오범죄의 표적이 된 적이 많다. 1963년 9월 15일 미국 앨라배마주 버밍엄에서 침례교회에서 폭탄이 터져 흑인 소녀 4명이 숨진 사건은 흑인 민권운동의 도화선이 됐고, 1964년 민권법 통과와 지난 1965년 흑인 참정권 쟁취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찰스턴은 과거 흑인 노예시장이 번성했던 항구도시로, 아프리카 일대에서 잡혀온 흑인 노예들이 미국에 제일 먼저 도착하는 기착지였다. 남북전쟁의 시초가 됐던 섬터요새 전투가 발발한 곳이기도 한 찰스턴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무대로도 유명하다. 공교롭게도 미국 양당의 유력 대선후보들이 이번 사건 발생 시점을 전후로 찰스턴에 머물렀거나 머물 예정이었다. 민주당 예비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국무장관은 6월 17일 찰스턴을 방문해 선거유세를 폈다. 공화당 예비 후보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도 하루 뒤인 18일 찰스턴에서 선거유세를 벌일 예정이었으나 사건 발생 직후에 취소했다.

미국 연방검찰은 범행을 저지른 루프를 증오범죄 혐의로 기소했다. 증오범죄(hate crime)란 소수 인종이나 소수민족, 동성애자, 특정 종교인 등 자신과 다른 사람 또는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이유 없이 증오심을 갖고 불특정한 상대에게 테러를 가하는 범죄행위를 말한다. 올해에만 마약과 무단침입으로 두 차례 기소됐던 루프는 고교 1학년을 중퇴했고 현재 직업이 없으며, 친구도 별로 없는 ‘외톨이’였다. 루프는 앳된 얼굴과 달리 가슴속에 흑인을 향한 분노를 품어왔다. 루프는 범행동기에 대해 “인종 전쟁을 시작하기 위해 이번 사건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이번 범행도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한 고교 친구는 “루프가 6개월 동안 범행을 계획해왔다”고 증언했다. 루프는 범행에 사용된 45구경 권총을 직접 구매했으며, 사전에 교회를 직접 방문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교회는 매주 수요일 저녁 성경 공부모임을 열어왔는데 루프는 이 사실도 미리 알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수사당국은 루프가 만든 ‘마지막 로디지아인’이라는 이름의 웹사이트도 찾아냈다. 이 웹사이트에는 백인 우월주의를 조장하는 ‘선언문’ 성격으로 2500개 단어 분량의 글이 올라와 있다. ‘로디지아(Rhodesia)’는 로디지아 공화국(The Republic of Rhodesia)을 말한다. 영국의 아프리카 식민지였던 로디지아가 1965년 11월 11일에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하였을 때 채택했던 이름이다. 로디지아 정부는 소수 백인에 의한 흑인차별 정책을 펼쳤다. 영국은 흑백 인종차별 철폐를 요구했지만 로디지아 정부는 이를 거부하고 백인 우월주의자들을 용병으로 고용해 흑인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하기도 했다. 로디지아는 1978년 흑인 차별에 반발한 짐바브웨아프리카민족동맹애국전선(ZANU-PF)이 봉기하면서 내전에 돌입하게 된다. 이후 내전이 종식되고 1980년 실시된 총선으로 애국전선이 압승하면서 짐바브웨라는 국가가 세워졌다.

현재는 접속이 차단됐지만 이 사이트에는 흑인을 열등한 존재로 비난하고 백인의 비겁함을 탓하며 백인 우월주의를 조장하는 내용의 글이 대거 올라와 있었다. 선언문은 “트레이번 마틴 사건이 나를 일깨웠다”면서 “지머먼이 옳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백인 상대 흑인 범죄를 검색하게 된 것이고, 그날 이후 나는 예전의 나와 같을 수 없었다”고 밝힌 내용도 있다. 플로리다주에서 자경단원으로 일하던 조지 지머먼은 2012년 2월 플로리다 샌퍼드에서 당시 17세였던 비무장 흑인 청년 트레이번 마틴과 다투던 중 마틴에게 총격을 가해 숨지게 한 인물이다. 선언문은 또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찰스턴은 내가 사는 주에서 가장 역사적인 도시이고, 한때는 흑인이 가장 많이 사는 동네였기 때문에 선택했다”고 밝혔다. 선언문과 함께 이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60여 장의 사진은 모두 남부연합과 관련이 있는 장소와 노예 박물관 등에서 찍은 것들이었다. 루프가 성조기를 불태우거나 남부연합기와 총을 든 사진들, 흑인 노예 밀랍 인형을 배경으로 하거나 과거 흑인 노예들이 일한 농장을 찾아 찍은 사진들도 들어있다.

증오범죄 피해는 흑인·인디언·히스패닉 순


▎미국에서의 인종차별 증오범죄는 남북전쟁 시기까지 거슬러올라가는 뿌리깊은 병리 현상이다. 백인우월주의 비밀결사단체는 극단적인 범죄도 마다하지 않았다. / 사진·중앙포토
남부연합기(confederate flag)는 남북전쟁(1861~65년) 당시 노예제를 인정한 남부연합의 공식 깃발이다. 붉은 바탕에 푸른 띠를 대각선으로 교차시키고 13개의 흰 별을 그려 넣은 모양으로, 지금도 남부 지역의 일부 주민이 ‘역사적 정체성’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백인 우월주의자를 비롯해 인종주의 단체들도 이 깃발을 상징으로 삼고 있어 말썽을 빚어왔다. 반면 흑인들에겐 남부연합기는 인종차별을 의미한다. 루프는 자동차에도 남부연합기가 새겨진 번호판을 달고 다니는 등 자신이 백인 우월주의자라는 점을 공공연히 과시해왔다. 루프가 유서 깊은 흑인교회를 범행 장소로, 이 교회 담임목사와 신자를 범행 대상으로 선택한 것은 자신의 잘못된 신념을 합리화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미국 사회는 ‘인종의 용광로(melting pot)’라고 불리지만 인종의 다양성을 거부하는 증오범죄는 그동안 계속돼왔다. 특히 미국의 해묵은 난제인 흑백 인종차별이 남북전쟁이 끝난 지 150여 년이나 지난 지금도 상존하고 있다. 실제로 증오범죄의 피해자를 인종으로 따지면 흑인이 가장 많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자료에 따르면 2012년 증오범죄의 피해자가 된 흑인은 100만 명 가운데 55명이었다. 북미 원주민(인디언)이 100만 명 가운데 30명으로 그 다음을 차지했고 히스패닉 10명, 아시안 9명, 백인 4명 등의 순이었다. 또 증오범죄는 최근 10년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미국사법통계청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2년까지 연간 20만∼30만 건의 증오범죄가 꾸준히 발생해왔다. 또 증오범죄가 남부나 인구가 적은 북부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빈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찰스턴이 속한 사우스캐롤라이나를 비롯해 앨라배마, 조지아 등 남부 주에선 아직도 흑백 인종갈등이 자주 벌어지고 있으며 이에 따른 증오범죄가 빈발한다.

루프가 남부 연합기를 자신의 ‘정체성의 상징’이라고 생각해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흑인교회 총기 난사사건의 파장은 남부연합기 퇴출 운동으로 비화되고 있다. 미국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를 필두로 아마존·이베이·구글·타깃·시어스 등 온·오프라인 유통업체가 줄줄이 남부기 상품 판매중단을 선언했다. 전자 상거래 사이트인 엣시와 달러 트리, 패밀리 달러 스토어, 달러 제너럴 등 1달러 이하의 저가 생활용품을 파는 미국의 3대 달러 스토어도 남부연합기 퇴출에 합류했다. 애플도 앱스토어에서 남부연합기를 제거했다. 미국의 인기 자동차 경주대회인 내스카(NASCAR·미국개조자동차경주대회)도 남부연합기 퇴출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의 관을 장식한 깃발을 만들었던 애닌도 남부연합기 생산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남부연합기 퇴출 운동은 단순히 깃발을 내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문화 청산(Cultural Cleansing)’ 운동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남부의 여러 주 정부는 역사공원과 기념비, 학교 등에 남아 있는 남부연합 출신 영웅들의 이름이나 관련 상징물을 제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찰스턴에선 강력한 노예제 옹호자였던 정치인 존 캘훈(1782∼1850년)의 동상이 훼손됐다. 텍사스주에서는 텍사스 대학에 있는 남부연합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의 동상 철거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지방 의원들은 로버트 리 남부연합 장군의 이름을 딴 공원의 이름을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남부 지역의 일부 백인은 이런 운동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남북전쟁에 참전한 이들의 자손들로 구성된 단체 ‘남부연합 전사들의 후예’는 “남부연합기 퇴출은 우리 선조를 모욕하고 비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선 앞둔 공화당의 애물단지 ‘남부연합기’


▎이매뉴얼 교회 총기 난사사건 이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의회에 게양된 남부연합기의 퇴출을 요구하는 시위대. / 사진·중앙포토
흑백 인종 차별과 남부연합기 퇴출 문제는 내년 미국 대선에서 쟁점으로 부상할 것이 분명하다. 공화당 대선 후보들은 이 문제에 될 수 있는 한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공화당 핵심 지지층인 남부 백인 유권자들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0년 대선에서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남부연합기가 인종주의 상징이라고 비판했다가 백인 보수층의 표를 얻기 위해 다시 이를 번복했던 적이 있다. 그 때문에 공화당 후보들에겐 남부연합기가 곤혹스러운 문제일 수밖에 없다.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흑백 인종차별을 비판하면서도 남부연합기를 퇴출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고 있다. 테드 크루즈(텍사스주) 상원의원은 “깃발에서 인종차별과 노예제가 아닌 조상의 희생과 남부 주의 전통을 기억하려는 이들도 있다”고 강조했다.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은 “사우스캐롤라이나주가 주민들을 위해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면서도 깃발 퇴출에 대한 찬성 여부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공화당 후보 경선에 나선 칼리 피오리나 전 휴렛팩커드(HP) 최고경영자는 “남부연합기는 인종차별의 상징”이라고 언급했지만 퇴출 여부에 대해선 견해를 밝히지는 않았다.

반면 민주당의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가장 적극적으로 이슈화하고 있다. 클린턴 전 장관은 “흑백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해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면서 “남부연합기도 퇴출 시켜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흑인들은 전통적으로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선호해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힐러리 전 장관이 흑인 유권자들로부터 몰표를 받을 수도 있다.

흑인교회 총기 난사사건은 또 다른 해묵은 과제인 총기 규제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3년 한 해에만 1만1천 명 이상이 총기 범죄에 희생됐다”며 “총기 범죄는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나라에 엄청난 대가를 요구하는 위협적인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오바마 대통령은 총기 규제법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샌디 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사건 이후 총기 규제법을 부결시킨 의회를 강력히 비난한 바 있다. 샌디 훅 사건은 2012년 12월 코네티컷주 뉴타운에서 애덤 란자(당시 20세)가 어머니를 총으로 살해하고 샌디 훅 초등학교로 가서 학생 20명과 교사 등을 죽인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말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총기 규제법이 의회를 통과했었다면 찰스턴에서 벌어진 일을 막을 수 있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장례식에 참석하는 일은 더 적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동안 총기 규제를 위한 수십 개의 행정 명령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총기 구매자의 신상 조사를 위한 법안 등 강력한 총기 규제 법안은 의회에서 통과돼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주장처럼 미국에선 대형 참사사건이 자유로운 총기 휴대에 따라 발생해왔다. 루프도 마약 소지 혐의로 기소됐었는데도 불구하고 총기를 구매할 수 있었다. 미국에선 중범죄에 해당하는 혐의로 기소된 사람에게는 총기를 판매할 수 없도록 연방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루프의 마약 소지 혐의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선 경범죄로 분류된다. 때문에 루프는 아무 제약 없이 합법적으로 권총을 구매할 수 있었다.

마약사범에게 누가 총기를 팔았나


▎총기 난사사건에 사용된 총기와 탄약들. 미국은 미성년자와 범죄자도 총기를 합법적으로 소지할 수 있다. / 사진·중앙포토
미국의 민간인이 소유한 총기는 3억1천만 정 정도로 추정된다. 산술적 수치만 놓고 보면 미국인 1명 당 총기 1정은 갖고 있는 셈이다. 미국은 인구 당 무기 보유 수가 세계 1위다. 미국에서는 주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합법적인 경로를 통한다면 10대들도 총을 구입하고 소지하는데 별 문제가 없다. 총기 소지에 대해 나이 제한을 두고 있는 곳은 20개 주와 워싱턴에 불과하며, 뉴욕은 16세, 몬태나는 15세로 주마다 다양하다. 또 나이 제한을 두지 않는 30개 주에서는 초등학생조차 총기를 보유해도 법률적인 문제가 없다. 특히 버몬트주에서는 16세 학생이 성인영화를 보는 것은 금지되어 있지만 총기류는 법률상으로 부모 허락 없이도 소지하는 게 가능하다. 이처럼 많은 총기를 보유하다 보니 이에 따른 각종 사건과 사고가 끊이질 않고 발생해왔다. 선진국들 가운데 총기 살인 사망률도 가장 높다. 인구비례로 따져도 총에 맞아 숨지는 미국인이 일본인보다 297배, 프랑스인보다 49배, 이스라엘인보다 33배나 많다.

미국에서 총기 보유가 쉬운 이유는 헌법상 자위를 위한 무장권리가 보장돼 있기 때문이다. 1791년에 비준된 수정헌법 제2조는 “규율 있는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요하므로 무기 소지 및 휴대에 관한 인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수정헌법 2조가 채택된 배경에는 미국이 영국과의 독립전쟁을 벌일 때 민병대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었다. 당시 민간인들이 집에 보관하고 있던 총으로 스스로 무장해 민병대를 결성, 영국군과 싸웠다. 독립 이후에도 미국 국민들은 영국의 식민 지배 아래에서 탄압 당했던 기억 때문에 혹시라도 연방정부의 군대가 자신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수정헌법 2조가 채택된 것이다. 또 서부개척 시대에선 총기는 인디언들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했다. 때문에 총기 보유가 미국의 독특한 문화로 자리 잡게 됐다. 미국인들은 수정헌법의 1조 종교와 표현의 자유, 2조 무장할 수 있는 권리를 절대 침해 받을 수 없는 기본권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미국에서 총기를 규제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총기규제법이 1968년에서야 처음으로 제정된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동생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 킹 목사 등이 잇따라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의회는 마지못해 총기규제법을 만들었다. 당시로선 획기적인 조치였지만, 그 내용을 보면 주간 총기 거래 금지, 거래인 면허제, 전과자·정신질환자 등에 대한 판매금지 등을 규정한 정도였다. 이후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암살미수 사건 때 백악관 공보비서 제임스 브래디가 머리에 유탄을 맞아 반신불수가 된 후 의회는 1993년 총기 규제를 강화한 이른바 ‘브래디법’을 제정했다. 그 내용을 보면 총기를 구입한 이후 5일간의 신원조회기간을 의무화하고, 총기 구입자의 전과기록, 정신병력 등을 조사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과기록을 조회하는 건 헌법에 위배된다는 연방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브래디법은 사실상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미국 의회 정치 자금줄 전미총기협회의 파워


▎이매뉴얼 교회 총기 난사 희생자 장례식에 참석한 오바마 대통령이 추모연설 도중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자 6천여 명의 추모객이 함께 따라 불렀다. / 사진·중앙포토
이후 의회를 비롯해 정치권에선 그동안 강력한 총기규제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왔지만 그때마다 좌절됐다. 그 이유는 전미총기협회(NRA)의 막강한 로비 때문이다. 전미총기협회는 지난 1871년 설립된 조직으로, 남북전쟁 뒤 북부 출신 장교들이 병사들의 형편없는 사격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꾸린 단체였다. 이 단체는 지난 1970년대부터 총기 소유자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총기 규제에 반대하는 로비를 펼치기 시작했다. 이 단체는 워싱턴 D.C.에 본부를 두고 있고, 회원이 무려 450만 명이나 된다. 미국에서 정치헌금을 가장 많이 내고, 영향력도 가장 강력한 로비 단체라는 말을 들어왔다. 민간 싱크탱크인 선 라이트 파운데이션의 조사에 따르면 2012년 공화당 의원의 88%와 민주당 의원들의 11%가 전미총기협회의 정치자금을 지원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NRA는 그동안 흑인교회 총기난사 사건 등 대형 총기사건이 발생했을 때마다 언급을 회피해왔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흑인교회 총기난사 사건 이후 의회에선 총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정치권의 무반응은 공화당에서 두드러진다. 당 지도부는 말할 것도 없고 여론의 흐름에 민감한 대선 주자들조차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심지어 루비오 의원은 “내가 대통령이라면 수정헌법 2조를 보호할 법무장관을 임명하겠다”면서 정반대의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는 총기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법안에 서명까지 했다. 위스콘신주에서는 충동적 구매 뒤 이상행동을 방지하기 위해 ‘총기 구매 시점으로부터 48시간 뒤 총기를 받도록 대기 기간을 두는 법’을 시행하고 있는데, 이를 폐지한 것이다. 반면 클린턴 전 장관은 총기 규제에 대한 보기 드문 강경 발언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클린턴 전 장관은 “가정폭력범이나 정신질환자, 심지어 테러리스트 감시 명단에 올라 있는 사람들이 총기를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문제를 놓고 우리가 협력할 수 없다는 것은 도무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총기 규제 문제는 이처럼 미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이지만, 결코 쉽게 해결될 수 없을 듯하다.

흑인교회 총기 난사사건 이후 미국 사회에선 그 어느 때보다 통합의 목소리가 크게 나오고 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이 6월 26일 핑크니 목사의 영결식장에서 추모사를 하던 중 찬송가인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를 부른 장면은 많은 미국 국민에게 통합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미국 전역에 TV로 생중계된 오바마 대통령의 예상치 못한 찬송가에 영결식장을 가득 채운 6천여 명의 참석자는 피부색에 상관없이 모두 일어나 대통령과 함께 찬송가를 불렀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 대통령은 백인 주류 사회에 대한 성토보다는 신의 은총을 거론하며 이번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대다수 미국 국민에게 통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범인은 희생자 유족이 자기를 용서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을 것이며, 이는 신의 은총”이라면서 “상처를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단지 추모하는 데 그치지 말고 미국 사회 전체가 변화를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추도사와 찬송가처럼 미국 사회가 앞으로 흑백 인종갈등을 극복하려면 무엇보다 ‘신의 은총’이 필요할 듯하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201508호 (2015.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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