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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정부세종청사 공무원들은 ‘지금 출장중’ 

서울·과천·대전 찍고 세종 오면 퇴근 시간? 

박지현 월간중앙 기자
잦은 출장이 신속한 메르스 대응 못한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 세종-서울 출장비만 하루 4천만원, 업무 비효율·피로누적에 골머리 앓는다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의 야경. 2012년부터 정부 부처가 차례로 이전을 시작해 현재까지 18개 부처와 18개 소속기관, 14개 국책연구기관에 1만6194명의 공무원이 옮겨왔다. 세종시 출범 3주년을 맞아 행정도시로서의 구색을 갖췄지만 행정 이원화로 출장이 잦아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세종청사가 문을 연 지 올해로 3년째다. 지난해 말 중앙행정기관의 3분의 2가 이전해 행정중심도시로서 구색을 갖췄지만 세종시의 행정기능은 여전히 서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메르스 사태가 청사 이원화의 비효율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긴박하게 대응해야 할 순간에 결정권자들은 길 위에서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공무원들은 세종시와 서울을 오가는 자신들의 처지를 ‘길 국장’, ‘길 과장’이라고 부른다. 서울에서 세종까지 300리 출퇴근길을 동행했다.

7월 6일 오전 6시 반 서울역. 서울발 기차와 전철 1·4호선이 교차하는 서울역은 이른 아침부터 직장인들로 붐볐다. 1주일 중 월요일 아침은 대중교통 이용자가 가장 많은 날이다. 부산행 6시40분 출발 KTX 109호를 기다리는 플랫폼엔 양복을 입고 서류가방을 든 직장인들로 북적댔다. 이들의 발걸음은 한 곳, 11호 객차로 향했다. 11호 객차는 공무원 출퇴근 전용의 전세객차다. 공무원들에겐 요금 절반이 할인된다. 객차는 이미 만원이었다.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공무원들은 일반객차의 빈자리에 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기차를 놓칠까 봐 아침부터 뜀박질을 한 탓이다. 자리 주인이 나타날까 봐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했다.

경제부처의 김모 주무관은 피곤한 기색으로 앉자마자 의자를 뒤로 젖혔다. 세종시와 가장 가까운 충북 오송역까지 약 한 시간. 쪽잠으로 부족한 잠을 보충하려는 것이다. 김 주무관의 집은 서대문구 신촌동이다. 그는 “주로 통근버스를 이용하지만 월요일은 도로가 막히곤 해서 KTX를 이용한다”며 “이 기차를 타려고 집에서 새벽 5시에 일어나 서둘러 나왔다”고 말했다. 김 주무관은 이내 의자에 몸을 묻고 잠을 청했다. 기차가 출발하자 객차 안은 고요했다. 깨어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7시35분. 오송역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마자 우르르 내린 사람들이 빠른 걸음으로 한 방향으로 빠져나갔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뛰어서 개찰구를 빠져나갔다. 기자도 덩달아 마음이 조급해지며 뜀박질 행렬에 가담했다. 옆에서 달리던 국책연구기관의 노모 씨에게 물었다. 아직 일과가 시작되려면 한참 여유가 있는 시간인데? “청사로 가는 셔틀버스가 대기 중이라 자리에 앉으려면 서둘러야 해요.” 그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역사 앞에 있는 버스 승강장에는 앞 유리창에 ‘정부청사’라고 적힌 푯말이 붙은 버스가 정차해 있다. 채 5분도 되지 않아 좌석이 모두 찼다. 다음 버스는 20분을 기다려야 한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잠시 숨을 돌리더니 이내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청했다. 청사까지 가는 15분도 이들에겐 무척 귀중해 보였다. 늘 잠이 부족해 쉬는 시간 10분 동안 단잠을 자는 수험생들의 나른한 표정이 이들에게서 묻어났다.

아침마다 출근전쟁 서울-세종 300리길


▎이른 아침 통근버스에서 내린 세종청사 공무원들이 각자의 사무실로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창 밖으로 펼쳐진 들판을 지나는가 싶더니 우뚝 솟은 신식 건물들이 위용을 드러냈다. 정부세종청사의 모습이다. 청사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8시. 주변은 조용했다. 분양이 덜 된 상가들과 드문드문 간판이 달린 커피숍과 식당들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새벽에 출근하느라 아침을 챙겨먹지 못한 이들은 한두 곳 문을 연 식당과 제과점에서 김밥과 빵으로 간단히 요기를 했다. 기자와 함께 출근한 노씨도 빵집에 들렀다. 그는 “새벽부터 깨어서 아침을 먹지 않으면 허기가 져서 일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청사 입구에는 커다란 안내지도판이 서있다. 모두 15개 동의 청사를 둘러볼 계획이었다. 그런데 지도를 보자마자 막막해졌다. 건물 내로 갈 경우 국무조정실이 있는 1동에서 가장 끝에 있는 15동(문화체육관광부)까지 거리가 무려 3.5㎞였다. 십리 길이다. 노씨는 “차가 없으면 이동하기가 굉장히 힘들 것”이라고 했다. 시내버스가 다니지만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고작 30분에 한 대씩이다. 청사 내부만 운행하는 청사순환버스는 한 방향으로만 다닌다. 노씨가 일하는 국책연구기관은 더 멀다. 청사 내 주차장에 둔 개인 승용차를 몰고 다리를 건너가야 한다. 그의 연구실 동료 8명 중 7명이 차를 샀다고 했다.

별수 없이 노씨의 차를 얻어 타고 그의 출근길을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노씨가 국책연구기관에 도착한 시각은 8시50분. 출근을 위해 일어난 때부터 사무실에 도착할 때까지 꼬박 4시간이 걸렸다. 일산에서 출퇴근하는 경제부처의 함 사무관은 “세종에 집을 구하려다 시기를 놓쳐 올해 말까진 계속 서울에서 출퇴근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의 출근길도 4~5시간 거리다.

세종시는 7월 1일로 출범 3주년을 맞았다. 2012년부터 정부 부처가 차례로 이전하기 시작해 지금은 외교·통일·법무·국방·행정자치·여성가족부 6개 부처만 서울에 남고 국무총리실을 비롯한 나머지 부처는 모두 세종시에 입주했다. 외형은 행정수도로서 위상이 갖춰졌다. 18개 부처와 18개 소속기관, 14개의 국책연구기관에 1만6194명의 공무원이 이곳으로 옮겨왔다.

청사가 이전하면서 세종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고 있다. 정부청사 출범 전 세종시 인구는 10만 명에 불과했다. 지금은 3년 만에 무려 87%가 늘어난 18만7천 명이다. 2012년에는 열일곱 번째 광역자치단체로 지위도 한 단계 격상됐다. 한 해 예산은 3700억원에서 1조2천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41대뿐이던 시내버스는 BRT 27대를 포함해 125대로 3배가 됐다. 지난 3년간 인구증가율과 땅값 상승률이 전국 최고를 달렸다.

긴박한 순간에 장거리 출장으로 시간 허비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국회와 세종청사 간 화상회의시스템의 예약 건수는 2013년 8월 시범운영부터 올해 6월 말까지 49건으로 월평균 2.2회에 그쳤다.
하지만 세종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의 표정은 달갑지 않다. 출퇴근도 문제지만 업무 강도가 서울에 있을 때보다 훨씬 높아졌기 때문이다. 가장 큰 원인은 행정력의 분산이다. 청와대와 국회, 관련 기관과 협의를 위해 서울을 오가는 일이 잦아져 순수하게 일할 시간이 그만큼 부족해졌다. 5, 6월 전국을 강타한 메르스 사태 때 행정의 비효율성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메르스 사태에 관련 부처들이 제때 대응하지 못한 것을 두고 공무원들 사이에 ‘세종시 리스크’라는 말이 나왔다. 정부가 대책기구를 늘리고 총괄본부를 격상할수록 피로는 가중되고 업무 집중도는 떨어졌다.

이런 문제를 방증하는 건 관련 부처 공무원들의 출장 기록이다. 정보공개청구시스템을 이용해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 국민안전처에 관련 공무원들의 출장내역 공개를 요구했다. 메르스 사태 기간에 공무원들은 얼마나 자주, 얼마나 먼 거리를 이동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메르스 사태가 불거진 5월 20일부터 6월 20일까지의 출장 횟수와 목적을 분석했다.

우선 메르스 발생 초기에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양병국 질병관리본부장은 서울과 세종, 질병관리본부가 있는 오송을 수시로 오갔다. 질병본부가 있는 오송생명과학단지에서 복지부 세종청사까지는 자동차로도 30분 정도 거리다. 30일 중 27일을 외부 출장에 쏟았다. 청와대와 국회보고, 기관 협의, 중앙대책본부 회의 등을 위해서다. 여기에 대전·평택 등 메르스 발생 현장 방문까지 쉬지 않고 돌아다녔다. 질병관리 본부의 전문 실무진과 머리를 맞대고 대응책을 고민할 시간이 거의 없었던 셈이다. ‘사스(SARS)’를 막아냈던 질병관리본부 실무팀이 메르스 앞에서 우왕좌왕하며 타이밍을 놓친 것은 컨트롤타워 부재의 영향도 컸음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보건복지부도 사정은 비슷하다. 실무부서인 질병정책과 이모 과장(4급 서기관)은 메르스 전문가회의를 비롯해 상임위 현안보고, 전문가·지자체·관련 부처 협의, 대책회의를 위해 서울만 7일, 현장점검차 인천 하루 등 8일을 장거리 출장을 다녔다. 같은 부서에 있는 사무관(5급) 5명은 각각 평균 4회 꼴로 서울 등지에 출장을 다녔다. 1주일에 하루 이상 부서장과 중간관리자들이 자리를 비운 셈이다. 문형표 복지부 장관은 5월 17일부터 23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보건기구(WTO) 총회를 다녀온 뒤 줄곧 서울에 머물렀다.

지난 6월 12일 메르스 취재를 위해 복지부 질병정책과로 전화를 건 적이 있다. 관련 업무로 보이는 7개의 번호로 전화했지만 부재중이거나 실무 주무관이 받아 담당이 아니라고 했다. 책임 있는 답변을 할 수 있는 부서장이나 팀장급 연결을 요구했지만 모두 출장 중이었다.

반대로 서울에 청사를 둔 국민안전처는 지방으로 출장이 잦았다. 장관은 부산·대전·세종·수원·포천 등으로 현장점검과 관계부처 브리핑, 지자체장 간담회를 위해 9일 동안 출장을 다녔다. 차관도 경기도 성남시, 세종시, 충북 청주시 등을 다섯 차례 방문했다. 재난관리실장(1급)은 국회 메르스 비상 대책특위 전체회의 참석, 예결위 결산 현안 업무보고 등을 위해 국회를 분주히 오갔다. 안전처 주요 간부들이 한 달간 출장을 다닌 일수는 20일이 넘는다.

장·차관, 국장 등 주요 간부들의 출장이 잦아지니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일주일에 1급은 하루, 2급은 이틀, 3급은 3일 세종시에서 근무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돈다.

일반적으로 정부 부처의 업무보고는 주무관-팀장-과장-국·실장-기관장 순으로 결재가 이뤄진다. 중간에 보고할 결재권자가 부재 중이면 업무가 지연된다. 서면이나 원격화상, 전자결재는 활용성이 떨어진다. 상위직급으로 갈수록 대면 보고를 선호해서다. 결국 메르스 사태 때에도 부서장과 고위직의 잦은 출장 때문에 긴급한 결재 사안이 있어도 심사숙고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말이 된다.

장거리 출장의 비효율성 문제가 제기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국무조정실은 세종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출장 효율성 점검에 착수했다. 서울과 세종을 오간 출장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상반기 세종시의 중앙행정기관 공무원들이 서울 출장에 쓴 예산은 75억6926만원이었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150억원이 넘는다. 이를 365일로 나누면 하루에 4147만원이 길거리에 뿌려지는 셈이 된다. 기관별로는 국토교통부가 9억7126만원을 지출해 가장 많았고, 환경부(8억8815만원), 보건복지부(7억2985만원)의 순이었다. 고용노동부에서 근무하는 김모 주무관은 “아마 그 이후 출장 예산은 몇 배는 늘어났을 것이다. 각 부처마다 회의가 더 많아진 것 같다”며 “특히 금요일 오후 (KTX가 정차하는) 서울역, 용산역 회의실은 한 달 전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 꽉 찬다”라고 말했다. 코레일에서 운영하는 회의실은 2시간 기준으로 15만원에서 20만원 사이로 접근성이 용이해 공무원들이 선호하는 곳이기도 하다.

평일 업무시간에 서울까지 KTX를 이용한 공무원은 월 평균 5천 명 이상이었다. 코레일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세종시 중앙행정기관 공무원 5037명이 평일 업무시간(오전 9시-오후 6시)에 세종시(오송역)에서 서울까지 KTX를 탄 것으로 집계됐다. 세종시 입주 초기인 2013년 1월에 업무시간 중 KTX 이용 공무원은 1456명에 불과한 데 비해 약 3.5배 가까이 늘어났다. 1월부터 7월까지 이용자는 총 3만2096명으로 하루 평균 이용자 수는 223명이었다.

출장 목적 중에는 꼭 필요치 않은 업무도 꽤 있다. 국회가 열리는 기간에 장관과 차관, 국장 등 주요 간부들은 수시로 국회로 출장을 다닌다. 이들은 하루 종일 보고할 차례를 기다리며 대기실에서 시간을 보낸다. 어떤 날은 온종일 대기만 하다가 돌아가기도 한다. 보건복지부의 한 직원은 “국회 출석 시간이나 날짜를 정확히 지정해주고 일정을 지키면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는데 지나치게 국회 편의적으로 진행한다”며 “업무보고 중에도 반드시 출석하지 않고 원격회의로도 충분한 일도 많은데 무조건 부르고 본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다양한 업무 협의를 위해 수시로 만나야 하는 공공기관과 공기업들은 전국의 혁신도시로 뿔뿔이 흩어져 있다. 세종시에 있는 산업통상자원부는 에너지 관련 협의를 위해 한국전력, 전력거래소 관계자를 만나려면 전남 나주시까지 내려가야 한다. 교육부의 관련 기관인 교육개발원, 한국교총,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등은 서울에 있다.

정부 행정기능의 이원화는 지자체에도 큰 부담이 된다. 강원도는 올해 1월 세종시 도담동에 세종합동사무소를 설치했다. 춘천·원주·정선 등 강원지역 10개 시·군이 합동으로 사용하는 곳이다. 광주·전남·경북·제주 등 4개 광역자치단체도 세종사무소를 설치했다. 기존에 있던 서울사무소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국회와 아직 서울에 남아 있는 정부 부처들과 협력을 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50여 개 시·군이 세종사무소를 설치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세종-서울 출장으로 하루에 4147만원 예산 써


부처 협업이 강조되면서 보고라인은 더욱 복잡해졌다.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겠다며 부처 간 협업을 도모하는 정책이 추진됐는데, 오히려 회의가 많아지고 의사결정구조가 분산돼 결재 과정이 길고 복잡해진 것이다. 국책연구기관에서 일하는 최모 연구원은 “경영지원실, 기획평가실, 연구지원실 등 행정지원부서와 협업이 많아져 회의 준비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고 전했다. 같은 기관 안에서의 협업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다른 기관과 협업을 하려면 회의와 출장으로 업무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아 정상적인 일과 중 업무 처리는 먼 이야기다.

이렇게 출퇴근과 장거리출장으로 피로가 누적되는 탓에 세종시 공무원들은 업무집중도가 떨어진다고 호소한다. 교육부의 한 사무관은 “왕복 서너 시간씩 버스나 기차를 타고 오가다 보니 허리나 목에 통증이 생겼다”고 말했다. 세종청사 안에 있는 한방병원과 가정의학과에는 만성피로와 통증을 치료하려는 공무원들로 늘 붐빈다.

꼼수도 등장했다. 금요일 오후에 서울 출장을 잡는 것이다. 금요일 퇴근시간에 차편이 없을 경우를 대비해서다. 오전에 일을 마치고 오후에 회의를 한다며 서울로 올라가 현지에서 퇴근하는 식이다. 또는 월요일에 서울 출장계획을 잡아 여유 있게 서울에서 업무를 본 뒤 오후에 세종시로 내려가는 경우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한 공무원은 “굳이 출장이 필요치 않은데도 출퇴근을 편하게 하려고 일부러 출장 일정을 잡는 경우도 꽤 있는 걸로 안다”고 귀띔했다.

행정 비효율성 문제에 전혀 대비책이 없던 것도 아니다. 세종청사에는 2013년 2곳이었던 화상(영상)회의실을 4곳으로 늘렸다. 국회와 청와대 등 주요 기관들과 원격 회의가 가능하다. 이용실적은 미미하다. 국회사무처에 확인한 결과, 국회-세종청사간 화상회의 시스템의 사용 예약 건수는 시범운용을 시작한 2013년 8월말부터 올해 6월말까지 총 49건에 불과했다. 월평균 2.2회다. 세종청사에 국회 전용 회의장도 만들었지만 국회의원들이 이곳까지 내려와 회의를 한 적은 거의 없었다.

일각에서는 세종시에 국회 분원(分院)을 만들자는 주장이 제기된다. 국회의 일부를 쪼개 세종시로 보내자는 말이다. ‘세종시사회지표’에서도 세종시민 63.3%가 세종시에 청와대 제2집무실을, 65%가 국회분원 설치를 원했다.

“기존 인프라와 제도 활용하면 업무 비효율 줄일 수 있어”


▎정부세종청사 조감도. 국무조정실이 위치한 1동부터 문화체육관광부가 있는 15동까지 모든 부처가 연결된 청사건물 내부의 거리는 3.5km. 부처 간 회의 때 차량을 이용하지 않으면 불편함이 따른다.
오후 6시가 되자 세종청사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입구를 나서자마자 아침과 마찬가지로 버스 정류장을 향해 또 뜀박질 경쟁이다. 통근버스가 한 자리에 모여 있는 제2, 3주차장은 마치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의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목적지가 쓰여있는 버스를 향하는 이들의 잰걸음이 수없이 교차했다. 남편의 직장과 자녀의 학교 때문에 서초에서 출퇴근을 하는 문체부의 이모 서기관은 “‘칼퇴근’을 하지 않으면 좋은 자리에 앉지 못한다”며 “어느 새 업무보다 출퇴근 시간을 지키는 게 더 큰 관심사가 돼버렸다”고 했다.

행자부가 세종청사에 배치한 통근버스는 33개 노선에 75대. 하루 평균 1900여 명이 이 통근버스들을 이용한다. 세종청사 근무자의 15%다. 그러나 갈수록 통근버스 예산이 줄어들고 있다. 공무원들의 세종시 정착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올해 세종청사 통근버스 예산은 98억원으로 지난해보다 42억원(30%) 감소했다. 당초엔 월요일과 금요일만 운행하고 평일에는 운행하지 않는 것도 검토했지만 공무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당분간 매일 운행하기로 했다. 하반기에는 이용자가 적은 노선들을 통폐합해 전체 운행 규모를 줄일 방침이다.

다른 사람들이 퇴근길에 나선 시간에 교육부의 이모 과장은 사무실로 들어섰다. 1주일에 두세 번씩 서울로 출장을 다니는데 이날 오전에도 현안보고 때문에 국회에 들렀다가 복귀하는 길이라고 했다. 이 과장은 청사 근처 원룸에서 자취를 한다. 평소 그가 청사에서 밀린 업무를 마치고 썰렁한 원룸에 몸을 뉘는 시각은 밤 10시쯤이다. 내일 오전에는 교육 개발원에서 회의가 잡혀 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서울에 가야 하는데 왜 굳이 세종시로 내려왔느냐고 묻자 그는 “오늘 사무실에서 결재해야 할 기안이 있는데 미룰 수 없어서 밀린 업무를 보려고 내려왔다”고 말했다.

균형발전을 향한 행정중심도시 세종시의 공무원들은 더 무거워진 어깨로 오늘도 서울로, 대전으로, 과천으로 이동 중이다. 처리되지 않아 밀린 결재 보고서는 세종청사의 책상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이미 조성된 청사를 다시 합칠 수도 없다. 결국 ‘전국 청사’ 시대에 걸맞은 업무방식의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 김성배 숭실대 행정학과 교수는 “행정의 비효율이라는 게 당장의 결과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 누적이 되면서 국가경쟁력에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며 “우리나라 국가경쟁력 지수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부분은 항상 평균보다 낮은 점수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지방 분권화가 되면 물리적인 이동과 함께 권한도 함께 내려가야 했지만 중앙집권화 된 국가 운영 시스템 그대로 갖고 있다”며 “업무 비효율을 줄이기 위해서 국회 분원 등의 방안들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 박지현 월간중앙 기자

201508호 (2015.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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