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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대한민국 사교육의 ‘무한도전 ’ 

강남에서 노는 법도 과외로 가르친다?! 

김상훈 월간중앙 인턴기자
‘착하게 보이는 법’ 부터 ‘명작을 보는 법’, ‘아이들과 어울리는 법’까지 천태만상 ... 올해 7월 21일 ‘인성교육진흥법’ 시행 앞두고 지·덕·체 교육 민간업체 돈벌이 대상으로 전락

▎‘지·덕·체’를 두루 갖춘 인재상을 요구하는 시대가 왔다. 2015년 7월 ‘인성교육진흥법’이 시행되면서 국·영·수 과목의 선행학습을 향한 일부 학부모의 과외 욕구는 ‘인성 과외’열풍으로까지 진화한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의 모습.
7월 6일 월요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한 스피치 학원. 반 쯤 열린 강의실 문을 통해 한 여학생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또래로 보이는 초등학교 학생들을 자리에 앉힌 채 연단에 선 여학생이 뭔가 연설을 한다.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미소를 잔뜩 머금은 얼굴로 발성을 하려다 보니 여학생의 안면 근육은 살짝 떨리는 듯도 했다. 중요한 대목에 이르러서는 목소리를 낮게 깔고, 또박또박 차분하게 논리를 전개하는 등 마치 아나운서 지망생을 보는 듯하다.

강의실 뒤쪽에 강사로 보이는 안경 쓴 젊은 여성이 여학생의 잘못된 발음이라든가, 음성의 높낮이, 얼굴 표정에 이르기까지 디테일한 부분까지 교정을 해준다. 이 수업의 목표는 ‘아이들을 착하게 보이도록 만들기’다. 다시 말해 초등학교 아이들이 아나운서 출신 강사로부터 ‘이미지 메이킹(Image Making)’ 수업을 받는 곳이다. 교과 과정도 아나운서 지망생 교육을 뺨친다. ‘언어순화, 바르게 말하기’, ‘매력적인 음색 만들기’, ‘당당하게 말하기’ 등등…. 반장선거가 치러지는 시즌에는 연설문 작성, 스피치 연습, 포스터 제작까지 일대일 맞춤형으로 지도해준다. 세상에는 사교육으로 가르칠 수 없는 일이 없는 듯한 풍경이다.

“아이들의 인성 수준은 비슷합니다. 중요한 건 자신의 착한 품성을 어떻게 드러내느냐에 달렸어요.” 아나운서 출신의 이 강사는 “인성과 역량을 표현하는 데도 공식이 있다”며 수업이 주는 효과를 친절하게 설명한다. “어릴 적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자신의 성격, 가치관, 장점 그리고 단점까지도 일목요연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러자면 먼저 웃는 표정, 입꼬리, 눈웃음에서부터 표준어 구사, 나아가 앉은 자세와 태도 등을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걸 세세하게 교정해줍니다. 올해 7월 21일부터 시행되는 인성교육진흥법에 따라 면접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추세에 있습니다.”

“대학입시는 마라톤, 어려서부터 준비해야죠”


▎인성면접에 대비하기 위한 ‘이미지메이킹’ 수업의 인기도 크게 늘었다.(사진은 기사의 특정사실과 무관함)
인성교육진흥법에 따라 초·중·고에서 인성교육이 강화될 조짐을 보이자 덩달아 사교육 시장이 들썩인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인성지도사 등 인성교육 민간 자격증은 총 250여 종에 이른다. 지난해 95건, 올해만 101건의 자격증이 새로 생겨났다. 진흥법 시행을 겨냥한 자격증이 우후죽순 격으로 등장한 것이다. 법 취지와 달리 민간업체의 ‘돈벌이’로 악용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몇몇 대입학원에서는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인성면접 대비반이 생겼다. 강남에는 주 6회 수업에 70만원가량의 수업료를 받는 학원도 입소문을 탄다. 이 학원 관계자는 “인성교육진흥법 시행에 따라 많은 대학이 신입생 선발에 인성 관련 항목을 다수 반영할 전망”이라며 “이제는 인성면접이 당락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사교육이 그러하듯 선행학습이 권장된다. 그는 “대학입시에 임박해서 준비하면 이미 때가 늦다”며 “인성교육, 면접도 어릴 때부터 미리미리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등학생 아이를 둔 학부모들도 행여 뒤쳐질세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학원 문을 두드린다. 어린 시절 자신도 웅변학원을 다녔다는 주부 김모(44·서울 서초구 반포동) 씨는 이번 여름방학에 아이를 스피치 학원에 보낼 참이다. “내 경험에 비춰봐도 어려서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면 나중에 입시와 취업 면접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더불어 자신감도 키워줄 수 있고요.” 학원에 함께 왔다는 주부 임모(41·서울 방배동) 씨도 “아이가 내성적이고 표현력이 부족해서 걱정”이라며 “앞으로는 입시에서도 인성 면접을 본다는 데 불이익을 받을 거 같아 찾아왔다”며 학원에 상담을 신청했다.

‘스펙 쌓기’는 더 이상 대졸 취업 준비생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초등학생들도 미리부터 스펙을 관리하며 각종 자격증과 교양을 쌓는다. 또래들과 어울려 학교 운동장을 뛰놀고, 만화를 보며 상상력을 키우거나, 학교 수업을 통해 기초 지식을 쌓아야 할 초등학생들이 조기 과외 시장에 내몰린다. 세상 물정에 눈을 채 뜨기도 전에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일찌감치 ‘대학입시’라는 긴 트랙에 올라서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학입시라는 장거리 레이스의 ‘페이스메이커’는 바로 학부모다. 자녀가 중도에 포기하거나 옆길로 새지 않고 결승점까지 통과할 때까지 지켜본다.

교육정책이 바뀌면 입시 관련 ‘엄마의 전략’은 더 빨리 바뀌는 게 오늘날 사교육 시장의 특징이다. 사교육 시장이 교육 당국을 이끌어가는 본말이 전도된 시대라는 이야기다.

‘지·덕·체를 다 갖춘 사람’이 요즘 세상이 요구하는 인재상이다. 예전의 사교육이 ‘지’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덕’과‘체’분야까지 확산된다. 이미 수학·영어·과학 같은 전략 과목의 선행학습으로 무장한 극성 학부모들의 과외 욕구는 전방위로 확장된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서 중3 딸과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키우는 김은숙(가명·45) 씨는 매주 화요일 전문체육강사를 집으로 불러 초등학교 아들과 시간을 보내게 한다. 맞벌이부부인 관계로 아이들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는 까닭에 아예 체육강사를 아들의 친구이자 교사로 붙였다. 체육강사는 일주일에 한 번 집을 방문해 아이와 1시간 정도 시간을 함께 보낸다. 기초체력을 다지는 매트 운동과 테니스, 줄넘기 등을 가르치는데 월 15만원의 수업료가 든다. 학교에서 실기평가가 있는 주간에는 종목별 집중 트레이닝도 받는다.

김씨가 처음부터 이런 사교육에 매달린 건 아니다. 2년 전 인천에 살 때만 해도 아이들은 방과후 학교에 남아 친구들과 어울려 축구 등 구기 경기를 하거나 놀이터에서 어스름질 녘까지 동네 꼬마들과 시간을 보내기가 다반사였다. 방배동으로 이사온 뒤로는 아이가 먼저 보챘다고 한다. “같이 놀 아이도 없을뿐더러 학원에 가야 또래를 볼 수 있는 지역이라 아이가 학원 수업을 자청했다”고 김씨가 전했다. 김씨의 아들은 전학 온 뒤로 친구들과 별로 어울리는 것 같지도 않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 약골로 크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고 한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체육 방문과외였다. 김씨는 지금의 선택에 꽤 만족해 하는 듯하다. “주변에서 권유를 하더라고요. 체력도 키울 수 있고 공부 스트레스도 풀 수 있다는 거예요. 체육교과 내신도 챙기는 장점도 있어요.” 그는 “기회가 되면 축구나 농구를 하는 그룹에도 아이를 보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잘 노는 것도 친화력, ‘체육과외’ 성행


▎1. 체육교과 내신을 대비해 체육과목 종목을 가르치는 전문과외나 고무줄놀이나 공기놀이를 하는 과외도 생겼다. / 2. 미술관·전시회 견학이나 유적지 탐방도 과외 범주에 들어간다. 명작을 보는 관점도 배우고 지식과 교양을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사진은 기사의 특정사실과 무관함)
“장난감 기차가 떠나간다~ 과자와 설탕을 싣고서~.”

7월의 한적한 주말. 서초구에 있는 한 근린공원에 아주 오래된 고무줄놀이 노래가 울려퍼진다. 초등학교 5∼6 학년 정도로 보이는 여자 아이 세 명이 고무줄 놀이를 한다. 도시 아이들도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으니 신기하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선생님께 배웠다”고 한다. 학교에서 이런 걸 가르치는구나 하고 감탄하고 있을 무렵 인솔자로 보이는 여성이 다가왔다. 그는 자신을 운동을 기피하는 여자 아이들에게 고무줄놀이, 공기놀이를 가르치는 전문체육강사로 소개한다.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학부모 박현정(가명·39) 씨가 말을 이었다. “우리 어렸을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죠. 교실에서 하던 고무줄 놀이, 공기놀이를 지금은 체육 과외시간에 하잖아요. 그런데 요즘 애들은 이런 놀이를 잘 몰라요. 저 노래의 의미도 잘 모를 걸요. 아이의 사교성을 길러주고자 이런 기회를 만들어주는 거예요.”

중학교에선 체육점수도 핸드볼·축구 등과 같은 운동경기로 평가하는지라 미리부터 체육과외를 붙여주게 됐다고 박 씨가 말한다. “좋은 게, 시간 나면 어떤 종목이든 다 해주더라고요. 체육 얘기만 들어도 진저리를 치던 애가 이제는 즐길 줄 아는 단계에 접어들었어요.” 아이들에게 고무줄 등 체육을 가르치는 김정은(가명·39) 씨는 “친구관계도 좋아지고 체력도 키우는 좋은 계기가 된다”면서 “무엇보다 요즘은 잘 노는 게 중요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예전 같으면 부모 손에 이끌려 한번 휙 둘러보거나 현장 안내인의 설명에 만족했던 미술관·전시회 견학이나 유적지 탐방도 이제는 과외 범주에 들어간다. 명작을 보는 관점과 느끼는 방법도 배우고, 정확한 지식과 교양을 습득할 수 있거니와 중학교 수행평가에도 이롭다는 판단 때문이다. 초등학생인 김가연(가명·9) 양은 지난해 여름방학 주말마다 미술강사가 짜준 스케줄에 따라 친구들과 미술관, 전시회 견학을 다녀왔다. 주말이면 미술강사는 사전에 현지 답사하거나 조사한 현장으로 아이들과 인솔한다. 가연이는 “주말마다 전시회도 구경하고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게 좋았다”며 방긋 웃었다.

2017년 대학입시에 한국사가 필수과목으로 지정되면서 충분히 예견된 현상이기는 하지만 사교육 현장에서의 ‘역사 과외 바람’도 상상을 뛰어넘는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둔 주부 김지은(41·서울 강남구 개포동) 씨는 지난 3월부터 대치동에 있는 역사학원에 아이를 등록시켰다. 물론 역사공부도 선행학습 대상이다. 김씨는 “아이가 역사공부에 흥미를 붙이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내친 김에 역사과외 강사를 구해 그룹과외팀을 만들까도 생각 중이다. 주변의 친한 학부모 세 명만 모으면 가능한 일이다. “한국사에 대한 아이의 관심이 부쩍 커졌을 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자격증을 따게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이유를 댔다.

사교육 태풍의 핵, 역사과외


▎반장선거 시즌에는 선거용 포스터(좌)를 만들어주거나 연설문 작성법, 스피치 등을 가르치는 전문 컨설팅업체들이 대목을 맞는다.
그동안 한국사는 사회탐구영역의 한 과목으로 문과생 중 선택한 사람만 응시했으나 2017년도부터는 문과뿐만 아니라 이과를 포함한 모든 학생이 한국사에 응시해야 한다.

역사과외의 유형도 다양하게 진화한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대비반은 대개 가정에서 그룹과외로 꾸려지며, 학생들을 인솔해 유적지를 탐방하는 역사탐방과외도 등장했다. 이는 주로 사설 역사교실이라 불리는 역사탐방 단체를 통해 이뤄진다. 역사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원 원장은 “30~40명 단위로 답사를 진행하며 역사를 전공한 인솔강사가 지도한다”고 밝혔다.

물론 교육부는 학교 교과과정만 잘 따라가면 수능시험에서 어떤 불이익도 없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수능에서 한국사 시험은 절대평가로 진행된다”면서 “수업을 충실히 들은 학생이라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출제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역사과외 사교육 시장은 보다 세분화된 영역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서울 대치동의 한 역사논술학원 관계자는 “교육부가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한 이후 학원을 찾는 학생 수가 급격하게 늘었다”고 확인했다. 이들 학원은 초등학교에서 미리 한국사를 공부하면 고교 진학 후 역사 공부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홍보하고 그 말에 학부모들의 귀가 솔깃해진다.

새 학기가 시작하면 또 다른 사교육 시장이 활개를 친다. 3월에는 반장 선거, 4월에는 과학의 달을 맞아 과학탐구대회 등 각종 행사가 월별로 줄을 선다. 매 행사별 맞춤형 특별반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요즘 초등학교 학급 임원 선거는 정치인 선거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전문화돼 있다. 전교 회장, 반장 경력이 상급학교 진학에 필요한 스펙이 되기 때문이다.

많은 스피치 학원에서는 반장 선거 대비 특별반을 운영하기도 한다. 일대일 맞춤 수업으로 할 경우 1회 수업료가 15만원, 연설문과 당선 소감문을 작성해주고 50만원을 받는 곳도 있다. 강남의 유명 학원을 찾아 멀리서 찾아오는 학생도 눈에 띈다. 인천에 사는 정종민(12) 군은 전교 회장 선거를 앞두고 1주일간 강남의 스피치 학원을 오가며 일대일 과외를 받았다고 한다. “선생님이 말하는 요령이나 어조, 톤 조절, 그리고 떨지 않는 요령까지 모두 가르쳐줘서 좋아요. 학원을 오고 가는 것이 피곤하지만, 당선될 것만 같은 자신감이 생기니까 좋습니다.” 스피치 학원 말고도 선거용 포스터와 피켓, 그리고 명함까지 만들어주는 전문 홍보업체들도 이 시기에 대목을 누린다.

과외시장에선 치열한 정보전쟁이 벌어진다. 좋은 강사와 학원은 소수만 배타적으로 공유해야 아이의 경쟁력이 배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교육 정보에 훤하고 우등생 자녀를 둔 학부모에게는 주위에 다른 학부모를 몰고 다닌다 해서 이른바 ‘돼지엄마’란 별명이 붙었다. 자칭 선수라고 하는 돼지 엄마들끼리도 경쟁하기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라고 한다. 특히 자기 아이들이 남들에 뒤쳐지는 건 용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강남에서 유명한 돼지엄마로 통하는 양모 씨가 아이들에게 시킨 사교육의 종류는 두 자릿수다. 수학·영어·과학 등 학과 위주의 과외부터 스케이트·수영·스키·서예·발레·피아노·바이올린·미술 등 예체능까지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했다. 이런 물결을 타고 일부 인기 과외 강사는 성공사례로 회자된다. 입소문이 난 강사는 자신이 사는 단지의 아이들에게만 수업을 하는 식으로 물리적 활동범위를 줄인다. 집중 과외를 통해 번 돈으로 강남의 최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에 입주하고 또 그 안에서 과외를 증식하는 사실상의 기업형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벼락치기’보다는 ‘선행 과외’가 유리하겠죠

초등학교 과외시장은 학생, 학부모, 강사, 학원까지 두루 아우르는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한다. 감성발달과 사회성 향상을 위한 놀이교육부터 10년 뒤에 필요한 자격증까지 초등학교 과정에서 다 마무리하겠다는 과욕이 부른 기현상이다. 그 중심에는 역시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 서울 강남이 자리한다.

학부모의 과다경쟁과 넘치는 의욕, 사교육 업체들의 잇속이 교육 현장을 왜곡시키는 상황임에도 교육당국은 시장에 대한 통제권을 잃은 지 오래다. 학부모들에게 대학입시는 마라톤과 같다. 12년 이상 달리는 초장거리 레이스다. 출발부터 전력질주 할 필요는 없지만 대열에서 한번 이탈하면 영영 멀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은 학부모가 두려움을 느끼는 듯하다.

한 입시학원 강사는 “막판 스퍼트를 올리려고 하는데 상대방은 이미 결승점을 통과한 경우를 많은 학부모들이 우려한다”며 조기 과외 열풍의 배경을 짚었다. 초등학교 4학년 딸아이를 둔 한 학부모도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아이의 잠재성을 해칠까 봐 선행학습이니 과외를 하는 사교육 시장을 일부러 멀리했다. 하지만 막상 아이가 학급에서 하위권을 맴돌면서 뒤늦게라도 속성 과외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 생겼다”고 토로했다.

과외에도 ‘졸부’와 ‘명문가’가 따로 있는 걸까? 한 방에 모든 걸 해결하려는 학부모는 미리 서두르는 학부모를 당해내지 못한다. 수능 만점자 딸의 엄마이자 현재는 대치동에서 입시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는 이미애 씨는 “강남 아이들은 대부분 중학교 3학년이면 고등학교 과정을 끝내놓는다. 그다음에 비(非)교과 스펙을 쌓고 수능공부를 한다. 선행학습이지만 단계를 차근차근 밟기에 기본기가 튼튼하다. 이것이 명문대 진학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입시에 임박해서, 남들이 이미 끝낸 후에 뛰어들면 낙오하게 마련이라는 말이다. 이 씨는 “몇 달짜리 속성과외에 수천만 원 들여봤자 명문대 문턱을 넘어서기 어렵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지식습득용 속성 과외로 입시에서 승부를 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지·덕·체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시대다. 이는 단기일 안에 이룰 수 없는 소양이다. 충분한 여유를 두고 꾸준하게 스펙을 관리하고 노력을 경주하는 게 마라톤을 가장 빨리 완주하는 방법이라고 이씨는 강조한다.

이처럼 사교육 시장은 나름의 체계적 분석과 명분을 앞세워 학부모들의 불안심리를 파고든다. 선행학습은 ‘한탕주의 입시 교육’과 차별화되는 자기 준비 과정이라는 논리 앞에 지금도 많은 학부모가 흔들린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게 그래서 고되고도 서글픈 일인지 모른다.

- 김상훈 월간중앙 인턴기자

201508호 (2015.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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