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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광장] 제5회 연천DMZ국제음악제 9일의 향연 

분단 70년, 이제는 평화의 음악 연주할 때 

전 세계인에게 자유와 평화, 화합의 소중함 일깨우는 음악축제 … 거장에게 배우는 원포인트 음악레슨, ‘뮤직아카데미’도 성황

▎제5회 ‘연천DMZ국제음악제’가 7월 25일부터 9일간의 공연에 들어간다. 사진은 지난해 제4회 음악제에서 바이올린 주자 권혁주가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하는 모습.
2011년 8월 탄생한 ‘연천DMZ국제음악제’가 올해로 5회째를 맞아 7월 25일부터 8월 2일까지 경기도 연천군 일원에서 열린다. 군이 주최하고 DMZ국제음악제 조직위원회가 주관하는 연례행사다. 해가 갈수록 이 음악제의 수준과 규모는 풍성해진다. 9일간에 걸쳐 열리는 이 대규모 평화 콘서트는 광복 70주년을 맞는 올해 그 의미가 더욱 깊다. 국내외 유명 아티스트가 참여하는 국제 수준의 콘서트가 여럿 열리고, 학생음악회와 마스터클래스 등 다양한 음악프로그램 44개가 마련됐다. 전체 공연은 모두 무료로 즐길 수 있다. 조직위원장은 이수성 전 국무총리가, 예술 감독은 박숙련 순천대 교수가 맡았다.

DMZ 평화공원의 중심은 연천


▎이번 음악제에 초청된 세계적 거장 피아니스트 외르크 데무스. 바흐의 ‘평균율 피아노곡집’ 전곡을 연주한다.
연천군은 휴전선과 맞닿아 있는 땅으로, 전쟁의 상흔을 좀처럼 지워내지 못한다. 분단 70년, 이제 음악을 들으며 쉬어야 할 나이다. 싸울 의지와 기력도, 싸워야 할 이유도 없다. 음악제는 먼저 연천의 상흔을 치유해야 한다. 연천에 사는 실향민들은 산 하나만 넘으면 보일 고향을 두고 속절없이 망향가만 불렀다. 그렇게 부른 망향가의 파동은 철책 넘어 고향 땅에 잠시 들렀다가 10초도 채 안돼 메아리로 돌아왔다. 연천 음악제는 전쟁과 분단을 아픔으로 여기는 모든 사람을 불러 위로하고 다독인다. 올해의 테마는 ‘공존’이다.

DMZ는 기적의 공간이다. 수십 년간 인간이 살지 않았던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됐다. DMZ 일원의 면적은 서울의 약 10배, 남한 전체 면적의 8.1%를 차지한다. 전문가들은 한국산 멸종위기종의 약 3분의 2가 비무장지대 인근에서 서식하는 것으로 본다. 전쟁의 사생아가 생명을 살리는 귀중한 터전이 되었으니 아이러니다.

연천의 DMZ는 특별하다. 그곳엔 광활한 연천평야가 잠겨 있다. 분단 이전엔 이 땅에서 난 쌀이 개성시민 전체를 먹여살렸다고 한다. 과거에 논이었던 까닭에 수위가 높고 물이 많다. 물이 풍부하니 생물이 살 수 있는 서식 공간이 잘 형성돼 있다. DMZ에 대한 연천 사람들의 자부심이 남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DMZ 평화공원의 중심도 당연히 연천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동서를 횡단하는 DMZ 구간 중 너른 평야가 있는 곳은 오직 연천뿐이라는 것이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7월 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성공개최염원’ 콘서트도 성황을 이뤘다. 피아니스트 박종화와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이 마에스트로 정치용의 지휘와 KBS교향악단 연주로 각각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3번,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다.

이날 연주에서 박종화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과시하며 라흐마니노프의 3번 협주곡 피날레를 완성했다. 청중은 전율하며 이 용맹한 피아니스트에 10분 가까이 박수를 보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직접 편곡한 ‘우리의 소원’을 앙코르 연주해 청중의 마음을 한번 더 뜨겁게 데웠다. KBS교향악단은 콘서트의 오프닝과 피날레로 각각 시벨리우스 ‘핀란디아’와 차이콥스키 ‘1812년 서곡’을 연주했다. 두 곡 모두 핀란드와 러시아 민족의 ‘운명’을 다룬 곡으로, 청중은 오케스트레이션의 강한 소용돌이에 몸을 잠시 맡기며 즐거워했다.

음악제 첫날인 7월 25일 오프닝 공연은 다채로운 레퍼토리로 꾸몄다. 연천군 전곡읍 연천문화체육센터에서 열리는 이날 콘서트에는 코스타리카 전 문화부장관이자 재즈 피아니스트인 미뉴엘 오브레곤 로페즈가 무대에 선다. 프랑스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프레드릭 모로의 연주, 국민가수 조영남과 신효범이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합동공연도 기대를 모으는 빅카드다.

모스틀리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비발디 사계를 협연할 프레드릭 모로는 기교와 카리스마를 겸비한 연주자다. 매년 100회 이상의 공연을 소화하며 전 세계 도시를 순회하는 젊은 거장이다. 바이올린의 전설 파가니니의 작품을 대중 앞에서 연주하길 좋아한다. 뮌헨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녹음한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은 발매된 해인 지난 2000년 평론가들로부터 그해 최고의 명반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이날 비발디 사계는 ‘여름’과 ‘겨울’의 전 악장이 연주된다.

외르크 데무스가 연주하는 바흐 평균율 전곡


▎1. 지난해 음악제 때 연천군 전곡고등학교에서 열린 ‘찾아가는 음악회’ 삼중주 공연. 드보르작의 피아노 트리오 4번이 연주됐다. / 2. 음악제의 예술감독 박숙련 순천대 교수. 음악제의 취지를 잘 살리면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청중의 참여도를 높인 기획력을 보여줬다.
7월 26일부터 29일까지 열리는 아티스트콘서트 시리즈에서는 국내외 초청 연주가들이 출연해 이번 페스티벌의 슬로건인 ‘공존’에 어울리는 레퍼토리를 선사한다. 특히 27일과 29일에는 세계적 거장 피아니스트 외르크 데무스가 바흐 평균율 전곡을 두 번에 걸쳐 연주할 예정이다. 데무스는 2차 대전 이후 프리드리히 굴다, 파울 바두라 스코다와 함께 ‘빈 삼총사’로 불리며 스타로 떠올랐던 연주자다.

11세에 빈 음악원에 입학한 그는 14세에 빈 악우협회(무지크페어라인) 무대에 데뷔했다. 1956년에는 부조니국제콩쿠르에 입상하고 뉴욕 데뷔를 시작으로 미국과 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순회 공연을 가졌다. 왕성한 녹음 활동으로 지금까지 350여 장의 음반을 발매했다.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테너 페터 슈라이어 등 거장급 리트 가수들과 함께 낸 음반만으로도 주목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바흐와슈만, 프랑크, 드뷔시의 음악을 독창적으로 해석해 자신만의 색깔로 연주하는 데 정평이 나 있다. 잘츠부르크 근교에 그를 기념하는 ‘피아노의 역사’ 박물관이 존재할 정도로 그의 실력과 명성은 출중하다. 이번 공연에서 모차르트와 슈베르트, 베토벤의 명작을 연주한다. 기품 있고 섬세한 피아노 선율로 관객을 매료시킬 것이다. 이 거장이 연주하는 바흐 평균율 연주를 특히 고대하는 음악팬들이 많다고 한다.

7월 26일부터 30일까지 한탄강 어린이 교통랜드 특설무대에서는 프린지콘서트가 열린다. 공모를 통해 선발된 20여 개의 공연 단체가 꾸미는 무대다. 어쿠스틱 팝, 록 밴드, 국악, 재즈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공연이 펼쳐진다. 30일 승진전망대에서는 25사단 예하부대가 꾸미는 나라사랑콘서트, 다국적 아티스트로 구성된 ‘DMZIMF앙상블’의 미니피스 콘서트가 열린다. 한국 바이올리니스트 피호영과 미국 첼리스트 슈렌 바그라투니, 러시아 바이올리니스트 막심 페도토프와 피아니스트 갈리나 페트로바, 중국 피아니스트 손 리 초이로 이루어진 앙상블이다. ‘DMZIMF 앙상블’은 한국전쟁과 관련 있는 아티스트로 구성돼 아직도 남아 있는 전쟁과 분단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31일에는 피아니스트 외르크 데무스가 다시 슈베르트, 베토벤 소나타를 선보이는 스페셜 게스트 콘서트가 청중을 기다리고 있다.

피서지에서 듣는 음악은 더 황홀해

8월 1일에는 연천 수레울아트홀에서 모스틀리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음악제 참가 아티스트 전원이 ‘영화 속 클래식’을 주제로 한 시네마뮤직을 연주한다. 아쉽게도 이 연주가 음악제의 대단원이다. 축제 기간 연천 허브빌리지에서는 ‘뮤직아카데미’가 열린다. 성장기의 음악도가 명망 있는 아티스트에게 가르침을 받고 음악적 견해를 주고받을 수 있는 기회다. 더불어 연천군에 살고 있는 초등학생 45명으로 구성된 ‘연천YES오케스트라’가 지휘자 서홍준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모차르트 세레나데 중 가장 밝고 희망적인 곡인 ‘세레나데No.13 in G Major’를 연주한다. 동심이 펼치는 맑은 선율이다.

며칠간의 여름 휴가를 연천에서 보내며 밤마다 음악회의 청중이 되어보는 것도 멋진 피서법이다. 등산을 좋아한다면 연천군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고대산부터 가라. 예부터 광범한 산록과 울창한 산림으로 경기 북부의 명산으로 잘 알려졌다. 산이 깊어 늦여름부터는 약초 냄새가 진동한다. 도라지 냄새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역에서 산행 들머리까지 걸어서 불과 10여분 정도의 거리라 철도 산행지로 입지가 좋은 산이다.

기암절벽과 맑은 계곡이 인상적인 열두개울도 연천의 대표적인 피서지다. 선녀바위, 무장소, 보안소, 만장바위, 평바위, 도라소, 돌묵소, 봉바위, 쌍무소, 용수골소 등의 명소가 십리에 걸쳐 펼쳐진다. 구불구불한 개울이 12개가 이어져 있어서 열두개울 계곡이라 불린다. 오염원이 거의 없어서 수질이 좋고 강폭도 넓다. 잘 갖춰진 급수 시설과 야영장이 음악제 여행객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자연경관이 뛰어난 낚시터 백학저수지도 찾는 이가 많다. 낚시터로 개방된 지 오래지 않아 고기가 잘 잡힌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60만㎡의 드넓은 면적의 계곡으로 기암 괴석과 자연림이 잘 어우러진 연천군 내산리의 동막골도 유명하다. 이곳에선 가족과 함께 견지낚시로 고기를 잡는 재미가 쏠쏠하다. 연천은 임진강과 한탄강을 끼고 있어 전국적으로 유명한 민물매운탕 집이 많다. 고추장과 고추가루를 섞은 듯한 양념 국물은 집에서는 결코 낼 수 없는 감칠맛이다. 30만 년 전에 형성됐던 전곡리 선사유적지, 연천군 곳곳에 산재한 고인돌 유적을 돌아보는 역사여행 코스도 있다. 무엇을 택하든 저녁시간 다양한 음악제 프로그램과 잘 어울리는 여정이다.

조직위원장을 맡은 이수성 전 국무총리는 “인간의 고통이 집약된 휴전선 상에서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소통 도구인 음악으로 사랑과 평화를 염원한다”며 이 국제음악제의 가치를 설명했다. 여러 차례 이 음악제의 예술감독을 맡은 박숙련 순천대 교수는 “아름다운 음악의 향연이 남북한은 물론 전 세계인에게 자유와 평화, 화합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DMZ음악제의 보편성과 확장성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감독의 바람이다.

-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201508호 (2015.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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