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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납치범은 인질에게 왜 거액의 돈을 보냈나 

일본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최신작 … 사회부 기자보다 더 치밀한 취재로 일본 사회 저변의 악과 부조리 파헤쳐 


올 여름 휴가 때 미야베 미유키의 신간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을 백에 넣어가면 어떨까? 책이나 스마트폰을 깡그리 무시하는 무심한 여행도 좋겠지만, 잘 만들어진 미스터리는 휴가의 즐거움을 배가하는 필수 휴대품이란 점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흥미 만점의 추리 소설은 스포츠로 비유해 말하자면 백업 선수가 아니라 선발 요원이다.

한국 독자에게 미야베 미유키는 사회파 미스터리 작품을 줄기차게 쓰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모방범> <화차> <솔로몬의 위증> 등 그의 대표 작품을 읽은 독자들은 이렇게 감탄한다. ‘소설 한 편을 쓰기 위해 이렇게 치밀한 취재가 필요한가?’ 대부분의 그의 소설이 그 어떤 사회부 기자의 기사보다 더 치밀한 취재의 바탕 위에 구성되었다는 점에 놀라게 되는 것이다.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은 미야베 미유키의 ‘행복한 탐정’ 시리즈의 세 번째 사건이다. ‘악은 과연 전염되는가’라는 테마를 다뤘다. ‘행복한 탐정’ 연작은, 미스터리에서 흔히 나타나는 기민한 사립탐정 대신 소심한 편집자가 탐정 역으로 등장한다. 그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 예컨대 뺑소니·환경오염·다단계 사기 등의 문제를 풀어간다. 위험에 빠진 재벌가의 딸을 구해준 인연으로 결혼까지 하게 된 스기무라 사부로는 미야베 미유키가 유일하게 시리즈로 구축해온 탐정 캐릭터다. 스기무라는 결혼 이후 대기업의 총수인 장인의 회사에 들어가 사보를 만드는 일을 한다.

어느 날, 버스가 통째로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범인은 권총을 든 노인이다. 버스 안에는 인터뷰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던 스기무라도 타고 있었다. 인질 전원이 무사한 채로 사건은 종결되는 듯 보이지만 진짜 수수께끼는 이제부터다. 인질이었던 승객들 앞으로 죽은 범인이 보낸 거액의 위자료가 도착한 것이다. 죽은 노인은 어떻게 이토록 큰 금액을 인질들에게 보낼 수 있었을까. 대관절 왜 보냈을까.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는 주장과 ‘정당한 대가이니 그냥 가져도 된다’는 주장으로 나뉘어 동요하는 승객들 사이에서 스기무라는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추적을 시작한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압도될 만큼 많은 소설을 썼지만, 질적으로도 어느 하나 떨어지는 작품이 없다는 게 미야베 미유키의 뛰어난 점이다. 특히 사회적 약자의 존재를 부각하는 이야기 전개 능력은 발군이다. 진부함, 센티멘털리즘, 평범함은 당연 배제된다. 우리나라에 이런 추리작가가 세 명 정도만 있어도 얼마나 행복할까? 이런 솔직한 심정을 지인에게 말한 적도 여러 번이다.

일본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작가적 위상은 무라카미 하루키와 비슷하다. 1991년 <용은 잠들다>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하며 ‘전후 엔터테인먼트 문학계에 느닷없이 나타난 귀재’, ‘무엇을 써도 걸작을 만들어 내는 터무니없는 작가’라는 찬사를 들었다. 1992년 마침내 그녀를 대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두 편의 작품, <스나크 사냥>과 <화차>가 세상에 나왔다. 한국에서는 2006년 이후 지금까지 40종 이상의 작품이 번역돼 출간됐다. <모방범>과 <이유> 두 작품 중 하나만 읽어봐도 대부분의 독자는 미야베 미유키의 열렬한 지지자가 된다. 그 정도로 탄탄한 작품성을 담보하고 있는 것이다.

-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201508호 (2015.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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