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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중국이 보는 ‘차이나 쇼크’의 실체 

인위적 부양책으로 인한 3대(과잉설비·과잉재고·과잉채무) 과잉에 발목 잡혔다! 

예영준 중앙일보 베이징 특파원
요소투입 위주의 성장모델 한계에 부딪혀… 매출 기준 중국 GDP의 67%를 차지하는 국유기업 개혁이 관건

▎‘세계의 공장’을 자처하며 초고속 성장을 거듭해온 중국경제에 적신호가 켜졌다. 전문가들은 천문학적인 금액의 경기부양 정책이 오히려 독이 됐다고 평가한다. 중국 선전시의 마천루 숲.
20세기 역사가 남긴 기적 중의 하나로 중국혁명을 들 수 있다. 1921년 상하이 조계 뒷골목에 모인 13명의 비밀당원이 만든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의 혹심한 탄압과 대장정, 항일전쟁과 국공내전을 거쳐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웠다. 마오쩌둥(毛澤東)을 비롯한 혁명 지도자들에겐 강철 같은 신념이 있었다.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구한다.”


1991년 구 소련이 해체되고 강고해 보이던 사회주의 체제가 차례로 무너지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났다. 지구상에 남은 사회주의 국가는 손가락을 꼽을 지경이 됐다. 중국 지도자들의 신념은 이렇게 바뀌었다. “중국만이 사회주의를 구한다.”

그 무렵 중국이 선택한 길은 정통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먼, 이른바 사회주의 시장경제였다. 결코 사회주의를 버린 게 아니었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말은 못했지만, 공산당 간부를 포함한 많은 중국인은 이렇게 믿고 행동으로 옮겼다. “자본주의만이 중국을 구한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쇼크로 촉발된 금융위기가 터졌다. 세계 경제는 오로지 중국만을 쳐다보았다. 중국 지도자들은 이렇게 호언했다. “중국만이 자본주의를 구한다.” 4조 위안(당시 환율로 약 680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금액을 경기부양에 쏟아부었다. 실제로 중국은 휘청거리던 자본주의를 구해냈고 곧이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미국을 추월하는 것도 시간문제로 여겨졌다.

그로부터 7년이 흐른 지금, 세계 경제는 또다시 중국을 쳐다보고 있다. 달라진 건 세계 경제의 성장엔진이 아니라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시한폭탄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중국경제가 무너지면 세계 자본주의에는 걷잡을 수 없는 쓰나미가 일어날 것이다. 과연 중국발 경제위기가 세계를 덮칠 것인가? 아니면 이런 위기를 극복하고 중국경제는 소프트랜딩(연착륙)에 성공할 것인가?

세계 경제의 성장엔진에서 시한폭탄으로


▎※자료:중국국가통계국
중국경제에 빨간불 신호가 켜진 건 약 2년 전쯤이었다. 2013년 경제전문가들은 중국의 부동산 거품과 함께 그림자 금융(비은행권의 고금리 상품), 지방정부의 채무과다로 인한 리스크를 경고했다. 그런 상황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 중국발 위기론이 급속히 피부에 와 닿게 된 건 지난 8월 21일의 블랙먼데이 이후다. 이날 상하이 주가지수가 8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자 전 세계 증시는 동시 폭락했다. 중국 당국은 금리와 지급준비율 동시 인하란 카드를 꺼냈지만 폭락은 멈추지 않았다. 전 세계의 투자자는 중국경제의 미래에 대한 비관론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중국경제의 기초 체력(펀더멘탈)은 취약하지 않다는 분석도 나왔지만 한 번 돌아선 투자자들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9월 4일부터 터키 앙카라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는 중국에 대한 성토장으로 변했다. 중국 당국자들은 중국경제의 하강 국면을 인정하면서도 극한 위기로까지는 치닫지 않을 것이란 점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저우샤오촨(周小川) 인민은행 총재는 “6월까지 주식시장엔 거품이 끼었고 그 후 세 차례의 조정이 있었지만 중국 정부의 조치로 주가 폭락은 억제됐고 실물경제에의 영향도 없다”고 말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도 나섰다. 9월 10일 중국 동북지방의 항구도시 다롄(大連)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회의, 이른바 ‘여름판 다보스 포럼’의 개막 연설에서다. 리 총리는 “중국경제가 단기적으로 기복이 있으며 이를 가볍게 보지 않지만 현재 시의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있어 경착륙은 없을 것”이라며 “이는 결코 빈말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위안화 환율 문제, 주가 폭락, 채무과다 등 외부 세계의 우려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을 붙여가며 해명했다. 이처럼 정책당국자들이 사태 진정에 나섰지만 시장의 반응은 ‘글쎄…’에 가깝다.

과연 중국경제는 어떤 상태에 있나? 중국 정부가 발표한 올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분기에 이어 연속 7%를 기록했다. 이는 2014년 같은 기간의 7.5%에 비해 떨어진 것이긴 수치이긴 하지만 중국 당국이 연초 발표한 목표치엔 부합한다. 지난해부터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뜻하는 용어로 내걸고 있는 ‘신창타이(新常態·New Normal)’로의 진입, 즉 고속성장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중고속 안정성장으로의 연착륙에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7% 성장이라 해도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는 셈이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중국 정부는 거듭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표면적인 숫자를 보고 안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정부의 성장률 발표 자체에 대한 불신이 뿌리깊다. 궈타이췬안(國泰君安) 증권의 애널리스트 런저핑(任澤平)은 “실제로는 5%대”라고 추정했다. 시장에는 “이미 마이너스 성장에 돌입한 게 아니냐”는 억측도 나돈다. 그만큼 각 분야별 실적이나 경제 상황을 보여주는 통계 수치가 나쁘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경기 향방을 점치게 해주는 예측 지표도 좋지 않긴 마찬가지다.

다른 통계를 찾을 것도 없이 ‘리커창 지수’란 지표를 살펴보자. 리 총리가 “중국의 GDP 통계는 신뢰할 수 없는 인위적 숫자”라고 말했다는 사실이 위키리크스에 폭로된 적이 있다. 2007년 랴오닝(遼寧)성 서기로 재직할 때 주중 미국 대사에게 한 말이다. 대신 그는 철도화물 수송량, 전력소비량, 중장기 대출 잔고 등 세 개의 지표로 실물경제를 판단할 수 있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리커창 지수는 해외의 연구기관들이 이 세 지표를 통해 산출하는 수치다.

중국 성장률, 정부 7% vs 리커창 지수 2.8%


▎1. 중국 정부의 생산 인프라의 투자과잉 현상은 심각하다. 특히 부동산 거품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 중국 상하이의 한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가 작업하고 있다. / 2. 2009년 4조 위안의 돈이 풀린 곳은 고속철도 등 대형 인프라 공사 현장과 신도시 사업이었다. 중국 허베이성 우한의 차량 기지에 수십 대의 고속철 차량이 줄지어 있다.
잠시 리 총리의 지론에 따라 경기를 평가해보자. 3가지 지표의 증가율 추이를 나타낸 그래프를 통해 보면 중국경제가 올해 들어 급속히 하강 국면에 접어들었음이 두드러진다. 중국 철로총공사가 발표한 1~7월 화물수송량은 전년 동기에 비해 10%포인트 가까이 감소했다. 해마다 두 자릿수 증가세를 보이던 전력 소비량 증가율은 올 들어 가파르게 떨어졌다. 위안화 대출잔고도 증가세가 현저히 둔화됐다. 지난해부터 계속 실시되고 있는 금융완화의 효과가 그다지 눈에 띄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기본 데이터를 토대로 시산한 올해 성장률 예상치는 2.8%. 정부 목표인 7%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중국 기업이 스스로 느끼는 경기 지표도 좋지 않다. 명문 경영대학원인 창장(長江)상학원 간제(甘潔) 교수가 1998개 기업을 조사해 집계한 경기동향지수(DI)는 1분기 50에서 2분기 47로 떨어졌다. 이는 1분기에서 2분기로 접어드는 동안 경기가 전환점을 돌아 하강국면으로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지난 30년간 평균 9.8%의 고성장을 구가하며 세계 경제를 떠받쳐 온 중국이 어쩌다 위기의 진원지로 지목될 지경에 이르렀을까? 전문가들은 “중국식 성장모델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진단한다. 또 고도성장을 이뤄내 중진국에 진입한 나라들이 겪게 마련인 ‘중진국의 함정’에 빠졌다고도 진단한다. 이 함정을 탈출해 나오기 위해선 새로운 동력이 필요하다. 중국 지도부 역시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는 재직 당시 “중국경제는 불안정·불균형·부조화·지속불가능의 사불(四不) 상태”라고 토로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나온 게 신창타이, 바꿔 말해 구조개혁론이다.

개혁개방 이래 중국의 고도 성장을 이끌어 온 두 가지 축은 투자와 수출이었다. 외자든 내자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본을 끌어들여 공장을 짓고 물건을 만들어 내다팔고, 그렇게 번 돈으로 도로를 닦고 댐을 만들어 경기를 부양하고 일자리를 창출해내는 방식이었다. 이를 지탱해온 건 13억 인구가 끊임없이 공급해 내는 저임 노동력이었다. 농업국가 중국은 단기간에 세계의 공장으로 거듭났고 가격 경쟁력를 무기로 한 물량 공세로 해외시장을 잠식하며 수출대국이 됐다. 정부는 국유은행을 통해 축적된 자본을 필요한 분야에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9년 4조 위안을 투입한 경기부양책이다. 돈이 풀린 곳은 고속철도 등 대형 인프라 공사 현장과 중국 대륙 곳곳의 농촌을 도시로 탈바꿈시킨 건설 현장이었다.

요소투입 위주의 성장 모델은 필연적으로 한계에 봉착하기 마련이다. 인건비가 상승하자 노동집약산업의 비교우위가 사라졌다. 더구나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노동력은 활력마저 잃어가는 중이다. 임가공 생산 위주의 제조업 경쟁력이 떨어지자 세계의 공장 중국대륙에 둥지를 텄던 글로벌 기업들이 베트남과 미얀마로 생산근거지를 옮겨가고 있다.

인위적 부양책을 쓰면서 남발된 물량 공세식 투입은 곳곳에서 소화불량 현상을 일으켰다. 지금 중국경제의 가장 큰 짐이 되고 있는 과잉설비와 과잉재고, 과잉채무의 3대 과잉 문제는 2009년 4조 위안의 경기부양이 낳은 부산물이다. 생산 인프라의 투자 과잉 현상은 심각하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기·화학 분야의 생산시설 이용률은 70%대, 철강의 생산기반 이용률은 60%대 수준이다. 30~40%의 공장 설비가 가동을 멈추고 있거나, 혹은 쓸 데 없이 돌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680조원의 투자, 결과는 빚더미


▎리커창 중국 총리(왼쪽)가 9월 10일 중국 다롄에서 개막한 ‘세계경제포럼(WEF) 하계대회’에서 환율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은 클라우스 슈바프 WEF 회장.
이런 식으로 생겨난 자산 거품 가운데 특히 부동산 거품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 베이징(北京)을 벗어나 고속도로나 고속철도를 달리다 보면 곳곳에서 유령도시(고스트 타운)을 볼 수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고층 빌딩과 아파트 단지를 번듯이 지어놓고도 입주자가 없어 텅 빈 단지를 말한다. 연안과 내륙, 북방과 남방을 가리지 않고 중국 대륙 전역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신도시로 들어가는 고속도로까지 잘 닦아 놨지만 차량 통행은 한산하다. 이런 개발 사업을 주도한 지방정부나 불필요한 설비투자를 한 기업들은 고스란히 빚을 껴안게 됐다. 4조 위안의 거금을 뿌리면서 일시적으로 GDP 통계는 올라갔지만, 투자의 과실은 온 데 간 데 없고 채무에 허덕이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을 벗어나려는 근본적인 체질 개선책이 바로 신창타이다. 투입(인풋)과 수출 위주의 경제를 소비 주도의 내수 경제로 탈바꿈시키고 성장의 양보다 질을 중시하는 경제로 전환하겠다는 전략이다. 내수는 2011년부터 시작된 제12차 5개년 계획의 핵심 키워드였다. 하지만 12차 계획이 끝나가는 지금, 내수가 활성화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소비의 활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 지표인 자동차 판매량은 최근 들어 급전직하 상태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가 발표한 8월 신차판매대수는 166만4500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포인트가 하락했다. 이 때문에 중국 시장에 진출한 글로벌 업체들은 서둘러 가격 인하와 감산에 들어갔다.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는 폴크스바겐은 주력 모델 파사트 등을 15%가량 할인해 판매 중이다. 현대자동차의 타격은 더욱 심각하다. 현대·기아차의 중국 합작법인의 판매실적은 26.6%가 떨어졌다. 매출 부진으로 기존 공장의 생산라인마저 놀려야 할 판인데, 문제는 올 들어 허베이(河北)성 창저우(滄州)와 서부 내륙 충칭(重慶)에 잇달아 새 공장을 착공했다는 점이다. 차가 없어 못 팔 때 세워둔 생산라인 증설 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판매 부진이 이대로 간다면 공장이 완공되는 내년엔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4천만 명 이상을 고용하고 전체 공업생산액의 10%를 차지하는 중국의 자동차 산업은 이처럼 후진 기어를 넣고 달리는 중이다.

전통적으로 중국경제를 떠받쳐온 수출 역시 부진하긴 마찬가지다. 8월 중국의 수출과 수입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6.1%, 14.3% 감소했다. 수출 감소세의 영향으로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4.7%로 한달 전보다 0.5%포인트 하락했다. 내수와 외수 모두 부진한 이중고를 치르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면 중국은 중진국 함정을 헤어날 수 없게 된다. 중진국 함정이란 성장동력이 약화되면서 선진국에 들어서지 못하고 장기간 중진국에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 2006년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한 개념이다. 아르헨티나가 이 함정을 벗어나지 못한 대표적 나라고 러시아·브라질·터키·남아프리카 등은 아직 중진국의 함정 속에 갇혀 있다. 고도성장을 이룬 나라 가운데 이 함정을 돌파한 것으로 평가 받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대만·이스라엘 등 손을 꼽는다. 중국은 어떨까? 러우지웨이(樓繼偉) 재정부장은 지난 5월 한 강연에서 “앞으로 5년에서 10년 사이 중국의 연간 성장률이 5%대로 미끄러지면서 중진국 함정에 걸려들 가능성이 50%”라고 말했다. 중국이 이 함정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첨단산업과 서비스산업 등 고부가가치 산업 위주의 구조 재편이 필수적이다.

중국경제 성장동력에서 경제위기 주범으로 전락한 ‘양치’


▎중국발 위기론이 급속히 피부에 와 닿게 된 건 지난 8월 21일의 블랙먼데이 이후다. 중국 상하이에서 한 투자자가 증시 모니터를 내려다보며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중국이 힘을 쏟고 있는 분야가 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진두지휘하고 있는 국유기업 개혁이다. 국유기업을 개혁하지 않고선 중국경제의 구조개혁이 있을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현재 중국에는 약 11만개의 국유기업이 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 시절부터 내려온 유물이다. 개혁개방 이전의 중국은 모든 기업, 심지어는 동네 식당까지 국유·국영이었다. 사회주의 중국에서 국유는 곧 전민소유(全民所有) 즉 모든 국민의 공동소유를 의미했다. 덩샤오핑(鄧小平) 집권기에 시장경제를 도입한 이후에도 에너지·인프라 등의 국가 기간산업과 금융분야에선 국유체제를 유지해왔다. 그뿐만 아니라 외식업체·소비재 업체에 이르는 광범한 분야에 여전히 많은 국유기업이 존재한다. 국유기업의 매출이 중국 GDP의 67%를 차지한다는 통계 하나로 중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알 수 있다.

국유기업은 중앙정부가 관할하는 중앙기업과 성(省)·직할시 등 지방정부가 관할하는 지방기업으로 나뉜다. 흔히 ‘양치(央企)’란 약자로 불리는 중앙기업은 전체 11만개 업체 가운데 112개 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들 양치가 전체 국유기업 매출의 60%를 차지한다. 112개 양치 가운데 86개 업체는 <포춘>이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에서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이 양치는 중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특혜 금융으로 자금력을 키워 한때 중국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2008~2009년 세계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4조원을 들여 조기에 경기를 부양하는 데 성공한 것도 양치를 통해서였다.

하지만 불어난 덩치는 비효율의 원인이 됐고, 금융 특혜는 과도한 채무로 이어졌다. 심지어 수익의 10%를 정부 관리 등에 대한 접대비로 소진하는 도덕적 해이도 팽배했다. 결국 올 7월까지 중국의 민간기업은 매출과 순익이 각각 전년대비 5.2%와 6.5% 증가한 데 반해 국유기업은 7.5%와 22.1%가 감소하는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중국경제위기의 주범이란 비판을 사게 된 것이다.

중국 국무원은 9월13일 ‘국유기업 개혁 심화에 관한 지도의견’이란 이름의 개혁안을 확정 발표했다. 이튿날 그 내용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장에는 중국 거시경제의 사령탑인 국가 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와 재정부·공업정보화부 등 5개 부처의 차관급 고위관료가 한자리에 모였다. 시 주석이 얼마나 국유기업 개혁에 공을 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도의견’은 정식 법령으로 공포돼 각급 기관과 지방 정부에 대해 구속력을 갖는다. 5년이란 목표 시한도 설정했다.

개혁안의 골자는 ▷혼합소유제 ▷대폭적 인수·합병 ▷전면적 상장 추진 등이다. 혼합소유제는 중앙정부 혹은 지방정부가 가진 지분을 민간자본에 일부 개방한다는 의미다. 롄웨이량(連維良) 발개위 부주임(차관)은 이날 회견에서 “석유·전력·철도·통신·자원개발 등 진입장벽이 높은 영역에 비국유 자본을 끌어들이고 이에 맞는 산업정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경쟁원리와 민간의 효율성, 창의성을 국유기업에 도입하기 위한 것이다. 전면적 민영화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중국이 사회주의 체제를 표방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그 의미가 작지 않다.

민간자본 도입의 우선 대상으로는 중국석유화학(시노펙)과 중국석유화학천연가스(페트로차이나)가 꼽힌다. 두 회사 모두 <포춘>이 선정한 글로벌 10안에 들어가는 공룡기업이다. 시노펙의 경우 주유소에 딸린 편의점 사업과 석유제품 판매 등을 독립시켜 최대 30%의 민간자본을 도입할 예정이다. 발개위는 지난해 7월 시노펙과 페트로차이나 이외에도 식품업체인 중량(中糧)그룹, 환경기술업체인 중국에너지환경보호그룹 등 6개사를 민간자본 개방 대상으로 선정한 상태다.

인수·합병을 통한 구조조정도 추진된다. 양치 112개사를 인수·합병을 통해 약 40개로 줄인다는 게 정부 목표다. 양치의 합병은 이미 시작된 상태다. 지난해 철도차량 생산업체인 남차(南車)와 북차(北車)가 중차(中車)로 합쳐졌고 중국원양운수(코스코)등 해운업체도 하나로 합쳐질 예정이다. 철도시설 업체인 중국중철과 중철이국은 합병을 위해 증시거래가 중지된 상태다.

향후 5년간 구조전환의 진통기는 불가피

국유기업의 상장도 대폭 확대된다. 주룽지(朱鎔基) 총리 시절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준비의 일환으로 주요 국유기업들이 상장사의 대열에 합류했지만, 대부분 우량자산만 골라 별도로 상장하는 부분상장이었다. 이를 대폭 확대해 동일한 기업집단 전체의 상장을 촉진시켜 자본조달의 효율성과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시 주석이 국유기업 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확정한 것은 2013년 공산당 3중전회 때였다. 그로부터 개혁 가이드라인인 ‘지도의견’ 확정까지 2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중국 지도부 내에서도 보수 세력의 상당한 반발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중국은 국유기업과의 강력한 연계고리를 가진 석유방의 대표주자 저우융캉(周永康) 전 상무위원 등 보수파를 부패혐의로 처벌하는 반부패 캠페인을 통해 반발을 제압했다.

하지만 ‘지도의견’ 속에는 국유기업 내 공산당 조직의 지위를 법제화하는 등 공산당의 통제 강화로 연결될 수 있는 내용도 포함됐다. 완전한 시장경제에 부합하는 자유화에는 미치는 못하는 근본적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결국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유물을 완전히 떨어내지 않겠다는, 혹은 떨어낼 수 없다는 의미다.

이런 개혁 작업이 가뜩이나 침체기에 있는 경기에 단기적으로는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구조조정은 고용 불안을 비롯한 고통을 동반하는 법이다. 국유기업이 통폐합 등의 구조조정에 들어가면 ‘철밥그릇’이라 불리던 국유기업의 일자리를 잃는 이른바 ‘샤하이’(下海)를 당하는 직원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고용 불안은 소비 심리를 더욱 얼어붙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중국 주식은 국유기업 개혁안 발표 직후에도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그렇다고 사활이 걸린 중국경제의 개혁을 멈출 순 없다. 시진핑-리커창 체제의 개혁이 과연 실효를 거두고 연착륙할 수 있을까. 아니면 중국 경기가 바닥으로 추락해 글로벌 경기 침체의 진원지가 될 것인가. 경제분석 전문회사인 IHS글로벌인사이트의 라지브 보스워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국경제는 조정기를 거치고 있다. 구조적인 변화를 겪으며 경기 사이클상 하강 국면에 있다. 현재 경착륙 가능성은 25% 정도다. 최근 주가 추락 때문에 경착륙 확률이 조금 높아졌다.” 하지만 이 역시 하나의 견해일 뿐 정답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중국경제의 향방은 중국 정부의 단기적인 거시정책 조정과 중장기적 개혁 작업의 성과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가 숨죽여가며 중국을 지켜보고 있다. 최악의 재앙이 닥칠 가능성, 혹은 그 확률에 대해선 예측이 엇갈린다. 하지만 분명한 것도 한가지 있다. 한동안의 경기 하강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전문가 대다수의 견해가 일치할 뿐 아니라 중국 당국도 이를 인정한다. 러우지웨이 재정부장은 “향후 5년간 구조전환의 진통기가 온다. 고난의 조정과정이 될 것”이라며 중국 정부의 구조개혁 의지를 강조했다. 그는 “과잉생산과 재고과잉의 해소에는 수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중국경제의 침체로 타격을 받는 나라로는 한국이 첫손에 꼽힌다. 모든 분야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아졌기 때문이다. 과도한 의존도를 줄이는 노력을 하면서 안전띠를 단단히 죄야 할 시점이다.

- 예영준 중앙일보 베이징 특파원

201510호 (201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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