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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취재] 건물주들의 행복지수는 얼마나 될까 

“임차인 구하기 고민 많아도 빌딩부자 로망보다 화려한 건 없다” 

최영진 중앙일보 부동산 전문기자
자산 포토폴리오 차원에서 빌딩 소유는 최적의 선택… 불경기 공실률, 임대수익의 70∼80%에 이르는 세금, 관리비용이 가장 큰 고민

▎한국 사회에서 빌딩이란 말이 주는 뉘앙스는 대단하다. 빌딩도 장소와 규모에 따라 품격이 다르지만 빌딩 주인은 대단한 부자로 인식되고 실제로도 그런 측면이 있다.
서울 남산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면 수많은 건물이 눈에 띈다. 저 많은 건물은 다 누가 갖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한편으로 왜 나는 지천에 깔린 빌딩 하나 없을까 괜스레 우울해진다. 빌딩 하나 갖고 있으면 얼마나 든든하겠는가 말이다. 빌딩 소유자라고 하면 일단 엄청난 부자로 인식된다. 그만큼 빌딩이 주는 뉘앙스는 대단하다. 하지만 빌딩도 빌딩 나름이다. 가격으로 치면 대형 아파트나 단독주택 한 채 값 보다 못한 빌딩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에게 받아들여지는 감도는 다르다. 외견상으로 볼 때 빌딩의 자산가치가 훨씬 높아 보인다. 빌딩 하면 일단 가격이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은 될 것 같다. 빌딩을 갖고 있다고 하면 사람이 달리 보이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사실 아무리 초라한 빌딩이라도 몇 십억 원은 한다. 물론 지역이 어디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서울 바닥에서는 그렇다. 문제는 빌딩의 기준을 어떻게 삼느냐는 것이다. 사무실 용도라면 1, 2층짜리도 빌딩이라고 해야 할지 헛갈린다.

빌딩의 사전적 용어부터 살펴보자. <두산백과사전>에는 “영어로는 일반적으로 건물·가옥을 뜻하나, 한국에서는 특히 사무실용의 철근 콘크리트 또는 철골구조 등에 의한 중층(中層) 이상의 대형 건축구조물을 말한다. 또 이 밖에 큰 규모의 은행·호텔·학교·병원·주거용 건축물을 빌딩이라 하기도 한다”라고 돼 있다.

그렇다면 중층의 개념은 무엇인가. 건축용어에서는 중충은 3~5층, 10~15m 정도를 말한다. 고층은 5~6층에서부터 14~15층 규모를 의미하고 그 이상은 초고층이라고 부른다. 이를 감안하면 빌딩이라는 명패를 붙이려면 적어도 3층 이상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1층 면적이 아무리 넓어도 빌딩소리는 못 듣는다. 이렇게 정의를 하고 보니 볼품없는 빌딩이라도 값어치가 제법 나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더욱이 빌딩은 일반 주거지가 아닌 상업지역에 있는 경우가 많아 땅값만 해도 엄청나지 않겠나? 이것저것 따져볼 때 빌딩 소유자는 부자임은 틀림없다. 빌딩주는 뭔가 달라 보이는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사람의 수준을 꼭 돈으로 따질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빌딩도 장소와 규모에 따라 대접의 품격이 다르다. 그래도 고층 건물로 불리는 14층 이상은 돼야 빌딩주로서의 대접을 제대로 받지 않을까? 대로변에 있는 번듯한 건물이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전국에 고급스러운 14층 이상의 빌딩은 얼마나 되는지 확실치 않다.

우리나라의 전체 건물 개수는 2014년말 현재 총 691만 1288개 동이다. 여기에는 아파트와 같은 주거용에서부터 상업용·공업용·문교 사회용 등 건물이라고 하는 것을 몽땅 포함한 숫자다. 공공업무시설·관청 등과 은행건물·오피스텔·일반 업무용을 포함한 광의적인 업무시설은 총 3만1400개 동이고 이 중 순수 민간 사무실은 1만1378개 동이다.

우리가 말하는 크고 작은 빌딩이라는 게 전국에 1만여 개가 있다는 얘기다. 1만 동이라 하면 선뜻 상상이 안 된다. 서울에는 4천여 동의 사무실 건물이 존재한다. 이보다 훨씬 많을 것 같은데 통계상의 수치는 생각보다 적어 보인다. 아마 순수 일반 업무용 건물만 쳐서 그런 것이다.

왜 우리는 빌딩주인을 부러워하나?


▎서울 강남 삼성동 주변의 빌딩 숲. 서울에서 임대료가 가장 비싼 지역은 도심권이고, 그 다음은 강남·여의도·기타 지역 순이다.
서울의 총 건물 수는 63만4천여 동인 점을 고려할 때 순수 사무실 빌딩은 전체 건물의 1%도 안 된다. 전체 건물 가운데 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이 65.8%로 가장 많다. 이것과 비교하면 사무실 건물 수는 매우 적게 느껴진다. 그래도 서울에 사무실 빌딩이 4천여 개 동이 된다는 것은 결코 적은 수는 아니다. 여기에다 일부 상가 등이 포함된 기타 업무용까지 치면 거의 6천 개 동가량 된다.

자, 이쯤에서 빌딩의 가격은 얼마 정도 되는지 알아보자. 규모와 장소에 따라 가격차가 심하다. 서울 강남 요지에 있는 5층짜리 건물이 은평구 연신내 사거리에 있는 10층 규모 빌딩보다 더 비싼 경우가 있다. 자산관리회사(PM)인 신영에셋이 조사한 최근 빌딩 거래가격을 보면 도심지역의 경우 평균 7천억원가량 되고 강남권은 5400억원, 여의도권 3900억원, 분당권 1900억원 수준이다. 신영에셋이 조사한 것은 주요지역의 연면적 6600㎡ 이상인 큰 빌딩 위주다. 그야말로 빌딩소리를 들을 만한 대형 규모들이어서 가격대가 높다.

이 정도 금액이라면 빌딩주를 부러워할 만하지 않겠는가? 수천억 원 대의 자산가이니 그럴 만도 하다. 이런 큰 건물은 대부분 자산가의 소유이거나 부동산펀드 또는 리츠(REITs, 부동산투자회사)가 갖고 있다. 강남 일대는 개인 자산가 소유의 건물도 제법 있지만 최근엔 건물 금액 단위가 커져 개인 자산가가 접근하기가 어려워졌다.

일반 개인 자산가는 대개 중소 건물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요 몇 년 사이 1백억원 대 미만의 중소건물을 찾는 개인 자산가가 매우 많아졌다는 소리도 들린다. 그래서 가격도 올랐다. 3.3㎡당으로 치면 중소건물이 훨씬 높다. 연면적 6600㎡이 넘는 큰 건물은 2천만~3천만원 대인데 반해 중소 규모는 이보다 높은 편이다.

개인 자산가들이 중소빌딩을 찾는 이유는 자금 여력이 그 정도라는 이야기다. 돈이 더 많으면 큰 것을 사겠지만 그럴만한 수준은 못 된다는 의미다. 왜 자산가들은 빌딩을 선호할까. 요즘 같은 초저금리 시대에 마땅히 투자할 상품이 없어서다. 주식은 개인이 취급하기에는 좀 두렵고, 그렇다고 금괴나 채권류를 사는 것도 한계가 있다. 자산 포토폴리오 차원에서 여러 상품을 대상으로 분산투자는 하겠지만 그래도 우선으로 꼽는 투자상품은 빌딩이다. 안정적인데다 건물 하나에 큰돈을 묻어둘 수 있어서다. 자산관리가 간편하다는 뜻이다.

부동산펀드와 리츠가 빌딩가 큰손 됐다

게다가 고정으로 임대수익을 거둘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 가격도 오르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주식과 같은 투자상품은 보유 중에 값이 떨어져 손실을 볼 염려가 많지만 빌딩은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적다. 또한 빌딩주라고 하면 어디에서든 무시당할 일이 없고 이미지도 좋아 개인 자산가들이 눈독을 들일 만하다. 최근 연예인들이 빌딩 매입에 열을 올리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일 것이다.

부동산 개발 초창기에는 개인이 빌딩을 짓는 경우가 많았다. 도로변 땅을 개인들이 대거 매입했다. 이들은 중간에 땅을 팔기도 하고 직접 빌딩을 짓기도 했다. 현재 개인 소유의 빌딩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빌딩 부자는 의외로 많다는 얘기가 들린다. 한 개인이 50개의 빌딩을 갖고 있다는 얘기도 회자된다.

1990년대 들어 산업발전과 함께 기업이 사옥용도로 건물을 직접 짓기도 하고 매입도 했다. 대형 건물의 경우 개인보다 기업 소유가 더 많았다. 그랬던 기업은 요즘 들어 사옥을 파는 분위기다. 기업의 경영상태가 어려워 진 탓도 있지만 부동산에 큰 돈을 묻어두기보다 이 자금으로 본업을 더 키우기 위해서다. 부동산값 상승폭이 둔화돼 본업 수익보다 못하다는 뜻이다.

원래 산업시대 초기에는 부동산을 통해 자본을 마련했다. 삼성·현대와 같은 큰 기업도 부동산 장사로 돈을 벌어 제조업을 일궜다. 선진국 기업들도 초창기에 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렸으나 지금은 달라졌다. 건물주는 대개 리츠나 부동산펀드다. 큰 기업 중에도 사옥을 갖기 보다는 세 들어 사는 경향이 짙다. 펀드들은 3~7년 단위로 임대빌딩을 운용하다 다른 펀드에 넘긴다. 펀드 투자자는 임대수익에서 배당을 받고 나중 건물을 팔아 생기는 차익도 공유하게 된다.

우리의 빌딩임대 시장도 선진국의 형태를 닮아가는 것 같다. 빌딩가의 큰손은 개인 자산가나 법인이 아니라 부동산펀드와 리츠다. 아직은 부동산펀드의 규모가 선진국에 비교할 때 작은 수준이지만 매년 관련 시장의 성장세는 커지는 추세다. 부동산펀드 수탁액은 이 제도가 생겼던 2004년 9천억원에 불과했으나 올해 7월말 현재 33조6천여 억원으로 불어났다. 리츠도 크게 늘었다. 신설 연도인 2002년에 3천억원 규모였으나 지금은 7조원 대로 증가했다.

앞으로 부동산펀드와 리츠 규모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여 빌딩시장은 이들의 손에 좌지우지 될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펀드나 리츠는 자금 확보가 쉬워서 그렇다. 그동안 부동산펀드는 주로 금융회사의 자금으로 이뤄졌으나 앞으로는 개인 투자자도 참여할 것으로 보여 펀드시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부동산펀드는 호텔이나 상업시설에 투자를 많이 했으나 최근엔 업무시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임대빌딩의 투자 수익성이 높다고 판단해서다. 게다가 큰 자금으로 임대빌딩만큼 수익을 낼 만한 상품을 찾기가 쉽지 않아 업무용 건물은 앞으로 주요 투자상품이 될 소지가 많다. 부동산펀드 운용을 맡고 있는 자산운용사가 관리하는 임대빌딩의 투자 수익률은 보통 연 4~6%에 이른다. 그것도 안정적으로 임대수익이 들어와 다른 상품에 비해 경기 변동에 따른 리스크가 적은 편이다. 경기 사이클에 따라 수익률은 달라지지만 그래도 다른 투자상품에 비해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수익성 측면에선 상가보다 훨씬 못해


▎서울 강남 소재 한 연예인이 소유한 빌딩. 빌딩주라는 지위는 어디서든 무시당할 일이 없고 이미지가 좋아 연예인 같은 자산가가 선호한다.
임대빌딩의 임대료는 천차만별이다. 각기 사정에 따라 임대료가 책정되기 때문이다. 한국감정원 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평균 월 임대료는 서울의 경우 ㎡당 2만500원으로 조사됐다. 우리에게 익숙한 평(3.3㎡)당으로 환산하면 6만7650원이다. 건물 연면적이 1천 평이라면 6억7천여 만원이 나온다는 소리다. 중소형보다 대형건물의 임대료가 높다. 3.3㎡당 중소형 임대료는 5만8740원이지만 대형은 8만1180원이다.

서울에서 임대료가 가장 비싼 권역은 도심권이고 그 다음은 강남·여의도·기타지역 순이다. 도심권의 3.3㎡당 평균 임대료는 8만520원으로 서울 평균보다 19% 비싸다. 대형빌딩은 9만5700원이다. 강남권은 평균치가 7만290원, 대형 8만190원이고 여의도권은 평균값이 6만720원, 대형빌딩은 7만5900원이다.

서울에서 빌딩별 임대료가 가장 높은 건물은 서울 종로구에 있는 그랑서울이다. 지하 7층에 지상 24층 규모로 3.3㎡당 14만2100원이다. 그 다음은 ▷태평로 서울파이낸셜센터(SFC) 13만원 ▷중학동 더 케이트윈타워 12만7300원 ▷청진동 디 타워 12만7천원 순이고 ▷수하동 센트원 ▷광화문 교보빌딩 ▷한강대로 LS용산타워 ▷남대문로 서울스퀘어 빌딩은 각각 12만원 대로 그 뒤를 잇는다. ▷서린동 영풍빌딩 11만8700원 ▷신문로 흥국생명 11만7천원도 임대료 순위 10위권에 든다. 임대료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는 서울그랑 빌딩은 연면적이 17만5537㎡로 전체 면적이 모두 임대됐다고 가정할 경우 월 임대료 수익은 75억5900만원 규모다.

빌딩의 투자 수익률은 어떨까? 한국감정원 자료를 보면 2분기 전국 오피스 투자수익률은 1.5%에 불과하다. 이는 임대료에서 얻어지는 수익과 빌딩값 상승에 따른 수익을 합친 것으로 생각보다 높지 않다. 지역별로는 부산이 1.63%로 가장 높고 그 다음은 인천·경기가 각각 1.6%, 울산 1.58% 수준이다. 권역별로는 홍대·합정권이 2.3%로 전국에서 가장 좋게 나타났고 분당 2.2%, 종로 2.19%, 부평 2.07%, 서울 공덕역 2.02% 순이다. 전국에서 2% 대 수익률이 나오는 권역은 단 6곳에 불과하다. 수익률 2%대는 저축금리 수준밖에 안돼 투자가치는 형편없는 수준이다. 빌딩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수익성은 상가 부문보다 훨씬 못하다.

그 원인은 우선 경기침체 여파로 공실률이 크게 높아지고 이에 따라 임대료까지 뚝 떨어진 탓이다. 여기에 공급도 넘쳐나 건물임대시장의 형편은 말이 아니다. 오피스 빌딩의 수익률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공실률은 어느 정도일까. 올해 2분기 서울지역의 전체 공실률은 10.2%에 달한다. 대형건물의 공실률(10.6%)이 중소형(10%)보다 좀 높다. 아마 임대료가 비싸서 그런 것 아닌가 생각된다.

권역별 공실률 사정은 임대료가 비싼 도심권이 가장 심각하다. 도심권의 평균 공실률은 11.1% 수준이고 대형건물은 12%에 달한다. 강남권은 전체 평균이 11% 이지만 대형건물은 6.1%로 상대적으로 성적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중소형 규모는 12.4%로 매우 높다. 보통 대형의 공실률이 더 높은데 반해 강남권은 중소형 빌딩의 사정이 더 안 좋다. 여의도는 전체 공실률이 9.1%이고 대형빌딩은 빈사무실이 많아 공실률이 13%나 된다. 중소건물은 6.4% 수준이다.

건물 공실률이 이 정도로 악화된 적은 별로 없었다. 서울지역의 2006년도 2분기 공실률이 2.8%였던 점과 비교하면 상황이 너무 안 좋다. 2013년 1분기에도 6.2% 수준이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 나빠지는 형국이다. 사무실 임대시장이 최악의 국면을 맞고 있다는 얘기다.

외환위기 전후에는 12~19%까지 치솟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2000년 대 들어 벤처붐으로 사무실 수요가 급증하면서 공실률은 1~2%대로 떨어졌다. 건물 임대시장이 가장 활기가 넘쳤던 시기라고 하겠다. 지방의 공실률은 더욱 심각하다. 대전은 22.8%로 치솟았고 인천·광주도 18% 대로 높은 편이다. 부산·대구·울산도 15~16%대다. 반면 경기도는 5.5%로 괜찮은 편이다.

지금까지 검토한 내용을 보건대 빌딩임대업의 내부 사정은 겉모습과 딴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건물주의 애환도 적지 않을 듯싶다. 경기가 이렇게 나쁜데 얼마나 걱정이 되겠는가 말이다. 걱정 정도가 아니라 금융비용 때문에 골머리 앓는 사람이 적지 않다. 건물 가격 절반 정도를 대출받은 경우는 이자 내느라 애 좀 타지 않을까? 투자 수익률이 1%대 중반 정도 되면 임대료 받아서 이잣돈 내기 바쁘다.

무엇이 건물주를 가장 힘들게 할까?


▎지방 중소도시의 빌딩 중 상당수는 시설이 낡고 공실률이 높아 소유주의 고민이 크다.(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 없음)
사정이 이런데도 빌딩주가 부럽다는 말이 나올까? 아마 속사정을 알고 나면 건물 임대업도 쉽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된다. 물론 장사가 잘될 때 많이 벌지 않았느냐고 말 할 수 있다. 번 돈을 잘 축적해놓았더라면 사정이 안 좋을 때 꺼내 쓰면 된다. 그러나 일이라는 게 이론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돈 잘 벌 때는 번 돈을 재투자했거나 아니면 다른 용도로 사용해 여윳돈이 없는 경우가 흔하다. 번듯한 건물은 있는데 실상은 형편없다는 뜻이다.

돈 문제 말고도 걱정거리는 수없이 나온다. 먼저 건물 보수 문제다. 완공된 지 오래된 건물은 손볼 데가 많아진다. 특히 상·하수도와 관련이 있는 배관설비가 가장 골치 아프다. 좀 오래전에 지은 건물은 배관을 교체하기 어렵게 설계돼 있다. 심한 경우 배관이 콘크리트 속에 묻혀 있어 물이 새면 그 부분을 왕창 뜯어내는 공사를 해야 한다. 보일러와 엘리베이터도 10~15년 지나면 새것으로 바꿔야 한다. 중간중간에 고장도 생긴다. 그때 즉각 고쳐주지 않으면 큰 사단이 벌어진다. 다음은 서울 강남구 역삼역 근처 7층짜리 건물주의 얘기다.

건물주는 관리 비용을 아끼기 위해 관리를 직접 했다. 평소 일이라곤 건물 청소 상태라든가 보안 및 경비 사항만 점검하면 된다. 이 업무만 잘 돌아가면 별로 할 일이 없다. 빈 사무실이 생기면 부동산에 내놓고 세입자를 구해달라고 하면 된다. 그래서 평일에 지인들과 골프를 자주 갔다. 그러다 한 번 큰 사고가 터졌다. 한참 운동을 하고 있던 중에 건물 경비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4층 사무실 화장실이 고장 나 물이 계속 넘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어떻게 할 방도가 없어 운동을 그만두고 급히 사무실로 올 수밖에 없었다. 전화로 수리업자에게 지시해 물이 새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대응이 늦었다. 그런 일로 인해 세입자들로부터 엄청난 원성을 샀다. 당장 짐을 빼겠다는 업체까지 나왔다. 건물 관리 비용은 투자수익률과 연관이 있다. 공실률이 낮을 때는 큰 걱정이 없으나 빈 사무실이 많아지면 이런 경비도 큰 부담이 된다. 결국 빌딩 하나 갖고 있어 봐야 남는 것은 별로 없고 관련 종사자에게 좋은 일 해주는 꼴이라고 말한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람도 있다. 역삼동 K빌딩 주인은 빈 사무실을 채우기 위해 치과병원을 유치했다 혼쭐이 났다. 용도변경 허가를 받지 않고 치과를 들였다고 당장 원상복구하든지 벌금을 내라는 관청의 호령이 떨어졌다. 공무원과 숱한 언쟁을 벌였지만 막무가내였다. 규정이 그렇게 돼 있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건물주는 건물에 무슨 규제가 그렇게 많으냐고 항변한다. 공실이 생겨도 마음대로 세입자를 유치할 수 없다니 말이 되느냐고 하소연한다.

그렇다. 건물 용도라는 게 있다. 일반 사무실에는 근생시설 용도인 영업관련 업종을 마음대로 들일 수 없다. 사무실 용도 변경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허가라는 게 별것 아니다. 건축사사무소에 맡기면 사무실 도면 하나 작성해 관청에 접수하는 일이다. 대개 건당 수백만 원의 수수료가 나간다. 건물주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건축사를 거쳐야 한다. 그래서 용도변경 업무는 건축사 일감 만들어주는 제도라는 지적도 나온다.

소방관련 사안도 참으로 괴롭다. 세든 업체가 잘못해 벌어진 소방 관련 문제는 일단 건물주 책임이다. 나중에 시시비비를 가리게 되지만 우선 건축주에게 화살이 돌아온다. 세금문제도 큰 부담이다. 세금이 지나치게 많다는 소리다. 임대수익의 70~80%가 각종 세금과 부담금으로 나간다고 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임대료나 관리비 누락을 통해 탈세를 일삼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빌딩 임대업, 좋은 세월 다 갔나

임대료와 달리 관리비를 높여 이를 비자금으로 돌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지금도 그런 건물주가 없다고는 장담할 순 없다. 관리비가 턱없이 비싼 곳은 그럴 여지가 있다. 임대료는 순수하게 소득으로 잡히지만 관리비는 그야말로 비용이기 때문에 빼돌리기가 쉽다. 그래서 관리비를 둘러싼 분쟁도 적지 않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게 장난을 쳤다간 큰 낭패를 본다. 직원이 이런 사실을 세무당국에 알려 보상금을 받으려고 들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그동안 벌어놓은 돈 다 날리게 된다는 것이 전문가의 조언이다.

가장 애가 타는 건물주는 완공된 지 오래된 건물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엘리베이터도 없고 시설도 낙후된 건물은 세 놓기가 참 힘들다. 건물 구조가 구식인데다 설비도 옛 것이면 세입자 구하기가 정말 어렵다. 임대료를 싸게 해도 너무 낡은 건물은 다들 외면한다.

에어컨 시설 좋고 전기 및 인터넷 설비가 잘 갖춰놓은 신식 건물이 수두룩한데 굳이 구식 건물에 입주하려는 들겠느냐는 이야기다. 이런 건물은 현대식으로 고치자니 돈이 너무 많이 들고 그냥 두자니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돈을 들여 리모델링을 할 경우 투자금 대비 수익률이 낮아 오히려 손해다. 그럴 바에야 그냥 두는 게 더 낫다. 문제는 경기가 나빠 임대가 거의 안 되면 큰 일이다. 관리비나 각종 공과금도 제대로 충당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건물주라고 다 부러운 대상만은 아니다. 말이 사장이지 빚만 잔뜩 갖고 있으면 오히려 사장을 안 하는 게 낫다. 건물주 가운데 이런 처지에 놓은 경우가 없지 않다. 더욱이 임대건물 주인이 부동산펀드나 리츠 운용사로 바뀌면 개인 건물주 입장에서는 별로 좋은 것은 아니다.

자산운용사나 자산관리회사(PM)가 운용하는 임대건물의 운영방식은 개인과는 완전 다르다. 이들은 빈 사무실이 생기더라도 임대료를 깎는 일은 거의 없다. 대신 프리 렌트(free rent)라는 이름으로 몇 달치 임대료를 면제해주는 방식을 취한다. 개인 건물주는 빈 사무실을 채우기 위해 임대료를 깎아주는 일이 많다. 그렇게 했다가 기존 세입자와의 형평성 문제로 곤혹을 치르기도 한다. 또 PM사가 관리할 경우 세입자 유치가 잘된다. PM사의 주요 수입원이 세입자 유치에 따른 수수료여서 적극적인 영업을 벌인다. 특히 시장의 네트워크가 잘 돼 있어 개인보다 훨씬 유리하다.

건물 임대시장의 장단기 전망은 어떨까? 지금은 경기가 안 좋아 공실률도 높고 임대료도 떨어지지만 좀 지나면 나아지지 않겠느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저성장 기조가 지속되는 한 건물 임대수요는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 더욱이 그동안 공급이 너무 많았고 앞으로도 큼직한 개발 프로젝트가 대기하고 있어 경쟁력 없는 건물은 임대시장에서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두꺼비빌딩을 소유하고 있는 정용덕 회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건물이 오래되면 수리비 등이 끊임없이 들어가고 세입자 관리가 제대로 안 되면 질 나쁜 세입자가 들어와 두고두고 애를 먹인다. 임대료를 제때 안 내는 일도 벌어지고 이에 따라 명도소송을 통해 내보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명도소송은 금방 이뤄지는 게 아니라 6개월에서 1년 정도 시간이 걸린다. 그런 문제로 인해 개인이 관리하던 것을 관리 전문업체에게 맡기면 남는 게 별로 없다. 공실률이 10% 선을 넘어가면 각종 부대비용과 세금 부담으로 오히려 적자다. 빌딩 임대업도 좋은 세월 다 갔다. 이제 사양길로 접어드는 것 같다.”

정 회장의 말을 곱씹어보면 지금까지 품었던 건물주의 환상은 많이 걷히게 된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 사회에선 우울한 건물주보다 화려한 건물주가 훨씬 많지 않겠나 싶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 “다음 생에서는 건물주로 태어나고 싶다”는 세입자들의 아우성이 떠오른다.

- 최영진 중앙일보 부동산 전문기자

201510호 (201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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