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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트렌드] ‘재패나이제이션(Japanization)’ 시대의 개인 생존법 

“부채는 줄이고 현금 자산, 해외투자는 늘려라” 

이상건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상무
일본이 경험한 저금리·저성장·고령화 피하기 어려워… 일본 반면교사 삼아 국가·기업·개인 새로운 극복방안 모색해야

▎일본 증권회사 지점의 주식 시세판 앞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지나가는 일본의 노인 투자자. 저성장 시대 일본사회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한 장면이다. / 사진·중앙포토
최근 증권가에서 ‘재패나이제이션(Japanization)’이 화두로 떠오른다. ‘경제의 일본화(日本化)’를 뜻하는 신조어다. 재패나이제이션은 일본이 겪고 있는 혹독한 장기 불황이 다른 나라로 확산되는 것을 의미한다.

1980년대 말과 90년대 초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거품붕괴로 촉발된 일본의 장기 불황은 ‘잃어버린 20년’이란 표현이 나올 정도로 혹독했다. ‘잃어버린 20년’은 1990년대 이후 일본 경제의 실패를 상징하는 표현이 됐고, 이는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극히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한 나라가, 그것도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 대국 중 하나가 20여 년이 넘게 불황의 터널에서 신음한 예는 드문 일이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빠지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초저금리 정책을 펼치면서 일본이 ‘잃어버린 20년’ 동안 겪었던 일들이 비단 일본만의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제 일본뿐 아니라 유로존 등 주요 국가들이 일본처럼 장기 불황, 구조적인 저성장, 저금리 국면에서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초고령 사회 일본화의 징후는 두렵다


▎초저금리 시대에는 월세수익 등 현금이 나오는 수익형 부동산 상품이 유익하다. 사진은 원룸주택이 집단적으로 건설돼 있는 경기도 평택시 서재지구 주택가. / 사진·중앙포토
인구 고령화도 일본화를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주제다. 일본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된 나라다. 2006년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가 넘어가는 ‘초고령 사회’에 세계에서 제일 먼저 도달했다. 고령화가 경제에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 면이 더 많다는 것은 이제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특히 생산가능 인구(총인구 중 만 15세 이상 64세 이하 연령에 해당하는 인구)의 감소는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주요한 원인이다. 탄력적인 이민정책이 가능한 미국이나 캐나다 등을 제외한 영국, 독일, 스페인 등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2000년대 들어 생산활동 인구의 감소를 겪고 있다. 고령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가장 먼저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자국(自國)의 일본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인구 고령화 문제다. 일부 비관적 입장을 견지하는 이들 중에는 고령화를 두고, ‘경제의 보이지 않는 암살자’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결국 재패나이제이션은 장기불황, 구조적 저성장, 저금리, 고령화 등을 특징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일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이유는 현재 드러나고 있는 경제 현상이 일본과 비슷한 양상을 띠기 때문이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릴 정도로 세계에서 보기 드문 고성장 시대를 구가했던 한국 경제는 낮은 경제 성장률에 신음하고 있고, 1%대 금리 시대를 맞아 투자자들은 어떻게 자산운용을 해야 할지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고령화는 더 심각하다. 우리나라도 앞으로 10년 뒤인 2026년에는 국민 5명 당 1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특히 속도가 문제다. 일본이 36년 걸려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반면, 우리는 이를 10년이나 앞당긴 26년 만에 초고령 사회에 도달하게 된다. 고성장, 고금리, 풍부한 젊은 노동력을 특징으로 했던 한국 경제가 이제는 저성장, 저금리, 고령화라는 새로운 도전 과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물론 한국이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갈 것이냐’는 이견이 많은 주제다. 거의 똑같다고 할 정도로 유사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 걸어간 길과 우리가 현재 걷고 있는 길이 만나는 지점을 살펴보는 것의 의미가 절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선행 경험 중에서 일차적으로 참고해야 할 것이 고령화 문제이다.

고령화는 인구구조의 변화를 의미한다. 인구구조의 변화는 경제적 토대, 즉 소비자·생산자의 변화를 낳고, 크게는 국가 정책의 변화를 낳는다. 예를 들어 소비자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일본 종이 기저귀 시장이다. 일본은 2011년부터 성인용 기저귀 판매량이 아기용 기저귀 판매량을 앞질렀다. 일본 주류(酒類) 회사들은 M&A(기업 인수 및 합병)를 통해 적극적으로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노인인구가 많아지면 아무래도 맥주 등 술 소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업 입장에서 국내 시장에만 머무르면 시장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기업 성장을 도모하기가 쉽지 않다. 국내 시장의 한계를 뛰어넘는 방법 중 하나는 해외로 나가는 것이고,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방법 중 하나가 M&A다. 예를 들어 일본의 대표적 주류회사인 산토리는 2014년 미국 위스키 업체 ‘빔’을 1조6500억 원에 인수하는 등 적극적으로 M&A를 통한 영토 확장을 하고 있다.

고령화는 주택시장에 부정적 영향 미친다


▎지난해 12월 박근혜 대통령을 접견하기 위해 청와대를 방문한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 대표단 일행. 한일 경제인의 공통된 고민은 저금리·저성장·고령화 시대의 경제운용이다. / 사진·중앙포토
인구구조의 변화로 인한 가장 논쟁적인 영역이 부동산 시장 전망이다. 일본의 6대 대도시 상업용 부동산과 골프장 회원권 가격 등은 1980년대 말 고점 대비 한때 각각 -83%, -93%까지 하락했다(2007년 말 기준). 오히려 반 토막 난 주식시장은 선방한 셈이다. 인구구조 측면에서는 주택시장도 미래가 밝은 편은 아니다. 주식과 부동산과 같은 자산시장에서 중시하는 인구는 35∼54세 인구이다. 이 연령대는 가장 왕성한 경제활동을 하는 나이대다. 미국과 일본의 경험이 보여주는 것은 이들 인구가 정점을 찍은 후에 주택시장이 장기 하락세에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일본은 1990년을 최고점으로 35∼54세 인구가 줄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2011년에 이미 정점을 찍고 하향세로 돌아섰다.

부동산 시장을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주택시장을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변수 중 하나가 인구구조인데, 한국의 주택시장은 인구구조가 부정적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반론도 만만찮다. 부동산 시장은 인구구조만으로 설명할 수 없고, 금리, 경제 성장률, 규제 완화 등 다양한 변수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또한 제주도에서 볼 수 있듯 외국인 투자가에게 문호를 여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세계 부동산 시장의 바로미터라고 하는 영국 런던의 고급 주택시장의 수요층은 영국인보다는 러시아나 아랍의 석유 부호들인 것처럼 말이다.

또 하나의 반론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일본 부동산 경기침체는 주식 버블 붕괴와 함께 왔다는 것이다. 부동산과 주식 버블이 함께 꺼지면서 자산의 대파괴가 일어났다. 1990년부터 2005년까지 토지와 주식가격 하락으로 발생한 국부 손실이 무려 1500조 엔이나 된다.(<대침체의 교훈>, 리처드 C. 쿠 지음) 우리 돈으로 무려 1경이 넘는 돈이 15년 사이에 증발한 것이다. 일본처럼 부동산 시장이 대침체의 길을 걷게 될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그러나 인구구조가 과거처럼 부동산 시장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일본은 1990년대 중반, 처음 0%대 금리 시대가 열렸다. 자본주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금리란 돈의 가격인데, 금리가 0%라는 얘기는 돈을 빌려주더라도 시간의 대가(代價)인 이자가 없다는 얘기다.

통상적인 경제 환경에는 금리가 낮아지면, 즉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 돈을 빌려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하고 소비를 해야 한다. 기업도 금리가 0%이면, 돈을 빌려 성장할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 조달 비용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초저금리인데도 개인은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하지 않았고, 기업도 투자를 늘리지 않고, 오히려 부채를 갚아나갔다.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디플레이션 때문이다. 디플레이션이 일어나면, 실질 부채가 더 커진다. 디플레이션 환경에서는 인플레이션과 달리 물가가 하락하기 때문에 화폐의 실질가치는 올라간다.

디플레이션으로 화폐의 실질가치가 올라가면, 사람들이 투자를 하기보다 빚을 갚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빚을 갚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급여 등이 올라서 돈을 더 많이 벌거나(소득 증가)이고, 다른 하나는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올라서 돈을 버는 것(자산가치 상승)이다. 그런데 일본은 저성장으로 국민의 소득이 늘지 않았고, 주식과 부동산 버블의 붕괴 이후 자산가치도 오르지 않았다. 빚을 갚아나가는 게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었던 것이다. 기업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노무라종합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 리처드 쿠는 ‘대차대조표 불황’이란 개념으로 이런 현상을 설명한다. “국내 자산 가격의 폭락이 대차대조표에 남긴 거대한 구멍 탓에 기업의 대부분 순자산이 마이너스 상태였다. 기업의 최우선 순위는 이윤의 극대화가 아닌 부채의 최소화가 된다.”

저금리는 이자 소득의 감소를, 저성장의 소득의 감소 내지 정체를 의미한다. 경제가 성장해야 국민소득이 늘어난다. 만일 소득이 늘지 않고, 주가와 부동산은 게걸음을 하고, 디플레이션으로 화폐가치가 떨어지면, 투자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은 넓지 않다. 현금으로 들고 있거나 부채를 갚는 게 효과적이다. 바로 일본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실제 수치를 보더라도 일본은 주요 선진국 중에서 가계자산에서 현금 및 예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편이다.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이 각각 35.5%, 29.4%, 26.8%, 13.3%인데 비해 일본은 50.4%(2007년 말 기준)을 기록하고 있다.

일본과 똑같지 않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일본이 경험한 저금리·저성장·고령화를 현재로서는 피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고전적인 경제학적 처방은 생산성을 높이고, 경제구조를 혁신하는 것이다. 고령화로 생산활동 인구가 줄어들면, 이에 대한 대안은 ‘생산성 향상’뿐이다. 생산성 향상은 혁신으로부터 나온다. 경제학자나 경영학자가 저성장에 대한 대안으로 생산성과 혁신을 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사회적 차원에서는 IT(정보기술)나 바이오, 로봇산업과 같은 성장 분야에서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내는 쪽으로 자원을 할당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차원의 리더십도 중요하다. 일본 불황의 원인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리더십의 실종이다. 어려워도 좋은 리더가 있으면, 국민들이 참고 견딜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정치권과 리더십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는데, 이는 걱정스러운 대목 중 하나다. 여기서는 이런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대안보다는 개인들이 재패나이제이션의 전형적인 특징인 저금리·저성장·고령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특히 가계자산운용에 초점을 맞춰보고자 한다.

고령화 시대에 왜 해외투자인가?


▎최근 서울에서 열린 ‘국제 부동산 투자 박람회’에서 투자 설명을 듣고 있는 관람객들. 국내 성장률이 답보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개인도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이 보장되는 해외투자에 눈 돌릴 필요가 있다. / 사진·중앙포토
우선 부채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이미 1천조 원을 넘어섰고, 수치가 발표될 때마다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저성장 국면에 진입함에 따라 실질 국민소득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늘고 있지 않다. 버는 돈은 그대로이거나 줄고 있는데 빚이 늘고 있는 구조다. 부채는 영원하지 않다. 언젠가는 상환되어야 한다. 특히 명심해야 할 점은 역사상 대부분의 금융위기는 부채와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 과도한 부채를 해결하지 않으면, 시장은 반드시 위기라는 폭력적인 형태로 부채 문제를 해결한다.

우리나라의 부채구조는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외환위기 전에는 국가와 개인은 잉여 저축 상태였고, 기업들의 부채가 많았다. 고성장 시대에 국내 대기업은 ‘순환출자’와 ‘금융권 대출’이라는 두 가지 지렛대를 통해 급성장했다. 이런 레버리지에 기반한 성장 방정식에 일격을 가한 것이 IMF 금융위기였다. 그 이후 기업은 부채를 줄여나갔고, 돈을 벌면 회사 내에 쌓아두기 시작했다. 통계를 보면, 외환위기 이후 기업과 개인들의 호주머니 사정이 크게 변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가계 저축률은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국가의 평균치인 5.3%에도 못 미치는 3% 대인 반면, 기업 저축률은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1980년대와 90년대에는 11~12% 정도였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크게 증가하기 시작해 2008년 16.8%, 2010년 19.7%를 기록했다.

금융회사, 특히 은행들은 기업 여신이 줄어들자 개인에 눈을 돌렸다. 금리는 낮아지기 시작했고, 부동산 가격은 폭등했다. 가계부채가 증가하기에 좋은 토양이 만들어졌다. 이 과정을 통해 한국사회의 부채 구조는 그 중심축이 기업에서 국가와 개인으로 넘어왔다. 외환위기 국면에서는 기업의 부채를 국가와 개인이 떠안았지만 국가와 개인의 부채를 떠안을 곳이 마땅치 않다. 기업이 가진 돈을 국가와 개인으로 돌려야 하는데, 이는 세금과 고용 또는 배당 등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경제가 어려우면, 정부는 기업의 세율을 인상하기 보다는 감세를 통한 투자 촉진책을 쓰게 된다. 기업이 투자하고 고용을 하면 좋지만 불황기에는 그 의도가 현실화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 재정도 나빠진다. 경기불황으로 세금이 적게 걷히는데 반해 고령화로 써야 할 곳은 많아진다. 일본은 현재 복지 예산의 80%를 고령자에게 쓰고 있다. 우리나라도 복지로 인한 정부 재정의 악화를 피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 재정을 막는 길은 세금을 더 걷거나 나가는 돈을 줄이는 길밖에 없다. 복지의 본질이 세금이라고 얘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정해진 답은 없다. 얼마나 사회 갈등 없이 이해집단을 잘 조정해 나가느냐가 향후 중요한 과제로 등장할 것이다.

개인 입장에서는 부채 축소가 자산관리에서 선결과제가 되어야 한다. 흔한 말로 빚이 없으면 덜 쓰고 살면 된다. 레버리지를 통해 성장에 투자해서 돈을 벌기가 과거보다 쉽지 않을 것이다.

저금리·저성장·고령화 시대에 자산관리의 키워드를 뽑으라면, 단연 ‘해외투자’와 ‘현금흐름’이 될 것이다.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속해 있는 산업분야가 성장하거나 시장이 확대돼야 한다. 만일 자국 내의 시장이 성장하지 못하면 두 가지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경쟁자를 도태시켜 제로섬 게임에서 승자가 되거나 경기장을 바꿔서 아예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한 마디로 국내에서 압도적인 시장 지위를 차지하거나 해외 진출을 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투자의 원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 시장에서 수익을 낼 기회가 줄어들면, 자본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해외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

디플레이션 시대엔 현금자산이 효자


▎사회 복지시설에서 여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일본 노인들. 일본은 복지예산의 80% 이상을 노인 복지를 위해 사용하는 초고령화 사회다. / 사진·중앙포토
고령화를 감안하면, 해외투자는 사회적으로 더욱 절실하다. 인간은 일정 시점(예를 들어 퇴직) 이후부터 그동안 모아 놓은 자산을 활용해서 살아야 한다. 인간이 늙지 않고 죽기 전날까지 노동을 통해 소득을 올릴 수 없으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인간은 늙고 더 이상 노동을 통해 돈을 벌 수 없는 시기가 온다. 이때 필요한 것은 모아 놓은 자산의 효율적 운용이다. 그런데 만일 이자는 초저금리로 쥐꼬리만 하고, 부동산 시장은 침체 국면이 오고, 주가도 지지부진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때 그 대안 중 하나가 바로 해외투자 비중을 늘리는 것이다. 일본의 선례는 해외투자가 왜 고령화 시대에 사회적으로 왜 중요한가를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2014년 927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이는 세계 10위권 내에 들어가는 규모다. 반면 일본은 550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보였다. 수출보다 수입이 많았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 해외로부터 얻는 이자와 배당소득이 1500억 달러였다. 열심히 제품을 팔아 번 돈 보다 해외의 주식이나 부동산 등에 투자해 벌어들인 돈이 훨씬 많았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해외투자 수익은 106억 달러에 불과했다. 일본은 저금리와 저성장으로 국내 자산의 수익률이 떨어지자 그동안 벌어놓은 돈을 해외에 자산 배분했고, 그 결과 해외 투자로 1500억 달러가 넘는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개인투자자도 해외투자에 대해 더욱 개방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현재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투자 비중은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낮다. 대표적으로 장기 분산투자가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연금자산의 해외투자(글로벌 투자) 비중을 보면, 미국·일본·독일·프랑스 등 주요 국가의 글로벌 투자 비중은 적게는 15%에서 많게는 45%인데, 우리나라는 0.6%에 불과하다. 연금에 투자하는 돈이 100만원이라면, 고작 6천원만 해외에 투자하고 있는 셈이다.

저성장과 저금리가 구조화되면 ‘현금흐름’의 가치도 더욱 중요해질 가능성이 높다. 저성장과 저금리는 저물가를 의미한다. 우리나라가 일본처럼 디플레이션이란 악순환에 빠지지 않더라도 물가가 과거처럼 오르지 않는 디스인플레이션이 될 것으로 보는 전문가가 최근 들어 부쩍 늘었다. 한국은행이 ‘인플레이션 파이터’에서 ‘디플레이션 파이터’로 자신의 정체성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

물가가 하락하거나 오르더라도 미약한 수준이라면, 현금의 상대적 가치는 더 높아진다. 인플레이션 시기에 물가 상승으로 인해 화폐가치가 떨어지는 것과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디플레이션 혹은 디스플레이션의 시기가 오면, 현금을 만들어 내는 자산은 더욱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부동산에서는 확실한 임대 수익이 가능한 자산이나 주식시장에서는 안정적인 배당금을 지급하는 기업이 주목을 받게 된다. 현금흐름에 대한 선호도의 증가는 인구 고령화와도 관계가 있다. 은퇴를 하고 나면, 급여와 같은 생활비가 필요하게 되는데, 생활비를 꾸준하게 지급할 수 있는 자산은 월세(月貰)처럼 현금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금융상품에서도 일본의 경우에는 판매순위 상위 랭킹을 월지급식 펀드가 차지한다. 이들 월지급식 펀드의 투자 지역은 일본이 아니다. 금리 0%에 가깝기 때문에 일본보다 금리가 높은 나라의 채권에 투자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주식형 펀드가 주류를 차지하고, 월지급식 펀드는 아직 규모가 일천하다. 자본시장 입장에서는 월지급식 펀드가 주류를 이루기보다는 주식형 펀드를 중심으로 다양한 해외투자 상품이 팔리는 것이 더 유리하지만 앞으로 우리나라가 어떤 양상을 보일지는 두고 볼 일이다.

소비생활에 있어서도 커다란 변화가 예견된다. 저성장이라고 모든 소비를 중지하거나 싼 것만 찾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일정 정도 물질적 삶의 수준을 경험하면, 그 아래로 소비하기가 힘들다. 따라서 소비에 있어서 ‘선택과 집중’이란 전략을 쓰게 된다. 한정된 자원(수입)에서 자신이 가치 있게 생각하는 부분에 할당하는 것이다. 좋은 집을 사지 못하면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로 인테리어를 하거나, 명품은 아니더라도 일정 정도의 질(quality)이 보장되는 물건을 사는 식이 대표적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작은 사치’라는 개념의 소비가 늘고 있는데, 이것도 선택과 집중 소비의 현상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좋아하는 디저트는 비싸더라도 먹는 반면, 식사는 저렴한 비용으로 해결하는 식이다.

저성장 시대에도 소비의 질은 떨어지지 않아

당연한 얘기지만 소비의 변화는 유통 구조의 변화를 수반한다. 고도 성장기와 인구 증가 시기에는 백화점과 대형 할인점이 유통업의 강자로 등장했지만 저성장기에는 작은 물건을 편하게 사는 편의점이 성장세가 더 높은 편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이런 흐름을 반영해 편의점 관련 주식의 상승세가 나타나기도 했다.

우리나라가 반드시 일본과 동일한 궤적으로 발전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내수보다는 수출 비중이 높고, 또한 중국의 성장이란 기회 요인이 있다. 주식과 부동산 버블 붕괴를 동시에 경험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우리나라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 펼쳐질 것이다. 저금리·저성장·고령화라는 흐름은 구조적이며 장기적인 변화이기 때문이다. 저금리·저성장·고령화라는 부분적인 변화가 전체적인 변화를 낳을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생존전략이 필요하다. 이제는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 국가와 기업과 개인 모두가 새로운 생존전략을 짜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럴 때다.

이상건 -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증권방송 <와우TV(현 한국경제TV)> 기자, 중앙일보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기자를 지냈다. 2005년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현 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 겸 팀장으로 입사해 지금은 상무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 <부자들의 개인 도서관> <돈 버는 사람은 분명 따로 있다> 등이 있다. TV 프로그램과 강연회를 통해 ‘은퇴 후 잘 사는 법’을 전파하고 있다.

201511호 (2015.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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