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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포커스]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제주 개발론’ 

친기업·친서민 두 마리 토끼 다 잡겠다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사진 전민규 기자
주민과 투자자의 이익, 민간과 공공의 가치가 양립하는 성장 추진… 외딴섬 제주도를 한·중·일의 중심이자 국제 교류의 요충지로 만들고 싶어

▎원희룡 제주지사는 주민과 공공분야에 귀속되는 열매를 키우는 게 제주도정의 목표라고 밝혔다.
“대입 학력고사 수석, 서울대 수석 입학, 사법시험 수석합격.”

원희룡 제주도지사를 떠올릴 때면 ‘대한민국 3대 수석’이라는 타이틀이 늘 떠오른다. 서울대 법대 82학번인 그는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뛰어들면서 휴학과 복학을 거듭해 대학 졸업장도 8년 만에 받았다. 그래서 한때 고향에서는 “제주도가 낳은 천재 원희룡이 서울 가서 좌파가 됐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였다.

그런 그가 1990년대 초 동구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와 함께 삶의 방향을 틀어 사법시험에 합격(1992년), 검사에 임용된다. 외환위기는 그의 인생 진로를 또 한 번 바꾼 계기였다. 나라가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아래 놓인 1998년 8월 부산지검 마약담당 검사로 일하고 있던 그는 사표를 내고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이 결정을 두고 “IMF 때는 많은 국민이 구조조정을 당했다. 심장을 들었다 놓아버린 것 같은 아픔과 충격이 와 닿았다”고 그는 돌이켰다.

1999년 개혁적 보수를 표방하며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에 입당한 그는 이듬해 서울 양천 갑에 출마해 당선된 이래 내리 3선에 성공했다. 그는 저서 <무엇이 미친 정치를 지배하는가?>(2014년 2월 발행)에서 “나는 사회가 인간의 탐욕을 동력삼아 발전한다는 생각에 더 동의했다”고 밝혔다.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이 진화의 동력이 됐다고 본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 곳곳에서 증명된다. 이 탐욕과 동력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이를 악이나 개조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이런 생각들은 운동권에 깊숙이 들어와 있던 전체주의적 철학과의 결별을 고한 90년대, 내 30대의 치열한 고민이자 결론이었다. 한나라당을 선택하게 된 중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제주도민의 주도권(主導權)을 키우는 사명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당시 당선이 확실시되자 가족과 함께 사진 촬영에 응한 원희룡 제주지사 후보. / 사진·뉴시스
그는 집권여당의 사무총장과 최고위원을 지내는 등 3선 국회의원이자 개혁적 보수 정치인으로서의 위상을 다졌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는 정치인생 12년간의 무능을 반성한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2014년 저서에서 자신의 정치인생을 언급, “나는 실패했다”고 선언했다. “3선 국회의원을 하는 동안 단 하루도 마음이 흔쾌하고 갈등 없는 날이 없었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이는 당의 보수적 체질을 바꾸고 소장 개혁파의 주장을 세력화하는 데 실패한 탓이라고 부연했다.

원 지사는 2년여의 공백기를 거쳐 2014년 지방선거에서 자신의 어머니와도 같다고 말한 제주도의 지사선거에 뛰어들었다. 제주도민의 지지를 받아 승리한 그는 60여 만 제주도민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행정수장이 됐다. 젊은 시절부터 워낙 유명세를 탄 데다 도민의 기대를 한껏 받는 터라 도정을 펴는데도 하나하나 배경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친다.

지난 11월초에는 제주도민의 오랜 숙원사업의 하나인 제2 제주공항의 입지가 서귀포 성산읍 일대로 정해졌다. 국토교통부는 4조1천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제2 제주공항을 2025년에 개항한다는 방침을 확정, 발표했다. 원 지사는 “제주개발의 청사진이 새롭게 그려지게 됐다”며 기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와의 인터뷰는 10월 21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제주도청 서울사무소에서 진행됐으며, 제2 제주공항 개발계획이 발표된 후 일부 내용은 서면 인터뷰로 보충했다.

제2 제주공항의 건설은 제주도민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나?

“25년 된 숙원사업이 해결된 것이다. 제주도는 대통령에게 건의도 하고 국토교통부 문턱이 닳도록 찾아가서 설득하고 협의했다. 제2 제주공항은 제주의 새 관문이자 경제의 출발점, 제주도민의 교통수단이자 대외 소통의 창구로 기능하게 된다.”

현재 제주공항은 밀려드는 국내외 관광객들로 포화상태를 이룬 상황이라고 들었다. 제2공항이 완공되면 어떤 효과를 기대하나?

“제주공항 이용객 수가 연말까지 2500만 명에 달할 전망이다. 제2 제주공항이 건설되면 제1 공항과 합쳐 총 4천500만 명이 드나들게 된다. 제주의 경제규모도 그만큼 성장하게 되면서 공항 주변지역의 발전도 촉진될 것이다.”

신공항 건설에 따라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주민의 보상문제도 고민이겠다.

“보상문제는 우리 마음대로 정하지 못한다. 정부 지침이 내려올 것이다. 다만, 갑자기 이사를 가야 한다거나 토지 보상문제, 소음 피해 등은 제주도가 주민의 입장에서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최강의 대책을 세우도록 할 것이다.”

평소 ‘제주도민의 주도권(主導權)을 키워나가는 것이 내 사명’이라 했다. 어떤 관계에서의 주도권을 뜻하나?

“제주도는 도민 자본이 취약하다. 일자리 창출도 도민 자본의 형성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이미 제주도에 와 있는 자본의 편을 드는 게 아니라 도민 자본을 형성하는 노력을 각별히 기울이겠다는 말이다. 사회적 경제기업 양성이나 여성 지위 향상도 그 일환이다.”

기업은 이윤 극대화를 꾀하게 마련인데, 그런 발상을 하게 된 이유는?

“이윤 극대화는 기업의 입장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부동산 개발, 분양하고 손을 털고 떠나는 식의 난개발은 이윤 극대화는 보장할지언정 주민의 삶과는 괴리된다. 기업도 앞으로는 적정이윤 추구를 통해 공공과의 조화를 이뤄야 한다. 기업의 제주도 투자는 도민과 상생하는, 도민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투자여야 한다. 지속가능한 개발을 보장하는 투자가 제주도가 추구하는 개발방식이다.”

도정(道政)의 향배가 점점 더 궁금해진다.

“현재 대한민국 전체가 성장의 한계에 직면해 있다. 젊은 세대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놓았다. 행복지수나 삶의 질이 바닥인데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 아닌가? 제주도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변방에 소외됐던 제주도가 새로운 글로벌 시대, 아시아 시대에 즈음해 발전의 전기를 맞고 있다. 사실 제주도에 무슨 돈이 있나. 그런데도 기회가 왔다. 제주도가 가진 ‘자원’을 자본화, 성장 동력화하는 데 성패가 좌우된다. 성장의 실체를 만들고, 도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제주도는 개발의 여지가 많은 미지의 세계인가?

“제주도는 힐링의 장소로 각광받는다. 관광객, 이주민들은 몰려드는데 공항·항구 시설이 부족하고 대중교통이나 IT(정보기술) 인프라도 확충해야 한다. 제주도가 가진 성장의 기회를 키워야 한다.”

그 성장의 기회란 어떤 개념인가?

“정리하자면 ‘트래픽(통행, 통신)’을 자원화하자는 것이다. 제주도는 과거 외딴섬이자, 변방의 귀양지였다. 지금은 중국의 부상과 함께 한·중·일 3국의 중심에 있는 교통의 요지라는 지정학적 관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국제교류의 요충지가 되는 셈이다. 예전에 불리했던 변방적 요소가 현대에 와서는 중요한 자원이 자리하는 역전의 스토리가 전개되는 곳이 바로 제주도라고 하겠다.”

‘자원’의 ‘자본화’는 지역의 대세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은 유네스코가 정한 뛰어난 경관 등의 기준을 만족시키며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 사진·중앙포토
손에 잡히는 콘텐츠의 예를 든다면?

“제주도가 갖고 있는 청정의 자연과 물, 바람 등을 방문객들이 만끽하도록 하겠다. 예컨대 2030년까지 도내 운행 차량 모두를 전기차로 바꿔 ‘탄소제로 제주’를 만드는 게 기본 목표다. 또 제주 전역을 와이파이(Wi-Fi)와 사물인터넷으로 연결해 제주도 자연환경, 관광자원, 농산물에 대한 관광객, 주민의 접근성을 극대화한다. 이런 방식으로 자원을 자본화한다는 것이다.”

그 성과를 지역민과 투자자들에게 고루 분배하는 장치를 강구했나?

“개발과 성장의 열매가 투자자에게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기존의 방식은 곤란하다. 주민과 투자자의 이익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민간기업과 공공분야의 가치가 양립하는 개발 전략을 추진하겠다. 도민에게 지분과 주도권을 강화하는 자본화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도민자본을 주축으로 한 투자 촉진과 새 성장동력의 창출과 같은 개념을 정책에 반영토록 주문한다. 제주도정의 목표는 주민과 공공분야에 귀속되는 열매의 비중을 키우자는 것이다.”

개별 사업에서 그 개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투영되나?

“신화역사공원 사업을 보자. 제주의 역사·신화·문화에다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와 유럽의 역사·신화·문화를 핵심테마로 하는 복합 리조트 테마파크 건설사업이다. 이 사업에는 휴양과 요리, 쇼핑 등 위락시설도 포함된다. 고용과 소비의 새로운 창출이 기대되는 대규모 개발 투자가 이뤄진다. 이 사업에는 몇 가지 조건이 따라붙는다. 복합 리조트 테마파크 운영 인력(고위직 포함)의 80% 이상을 도민 중에서 채용하고, 농축산물도 현지에서 조달토록 하는 등 신화역사공원의 고용과 물품 조달에 이르기까지 현지화하도록 못박았다. 고급인력 육성 차원에서 해외연수도 의무화했다. 이의 이행 여부를 면밀하게 들여다볼 참이다. 기업의 이윤 극대화 추구 행위가 아무런 견제장치 없이 방치되어선 안 된다.”

생태도시 제주도의 롤모델이 있나?

“제주도가 홍콩이나 싱가포르와 다른 점은 한라산과 청정 자연이 있다는 것이다. 홍콩, 싱가포르는 이런 자연환경을 인공적으로 만들 수도 없다. 그래서 굳이 따진다면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같은 유럽의 절경을 자랑하는 고급 관광지를 들 수 있겠다. 이 환경과 연결되는 핵심 가치가 ‘청정’과 ‘공존’이다. 이는 제주도민의 뜻이기도 했다. 한라산과 같은 천혜의 환경 속을 전기자동차가 누비는 100% 청정에너지 도시가 바로 제주다. 여기에 국제 교통요지로서의 교류를 활성화하고 각국 문화를 결합·창조하자는 게 제주도의 미래 청사진이다. 전기자동차와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모델이 되는 섬, 문화·예술의 요람이 되는 섬이 제주도다. 홍콩과 싱가포르 같은 교역 중심의 도시국가와는 결이 확연히 다르지 않나? 제주도의 모델은 어디서 베껴오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창조하는 것이다.”

모든 개발은 제주의 경관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원칙을 세운 것으로 알고 있다. 당초 56층으로 예정됐던 제주 시내의 드림타워가 첫 타깃이 됐는데.

“번화가의 드림타워는 경관을 해치고 교통난을 유발하는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결국 층수를 낮춰 개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제주도민들도 그 결정의 불가피성을 잘 알고 있고, 정책적 의지와 노력을 이해하고 있다.”

원 지사는 저서 <무엇이 미친 정치를 지배하는가?>에서 이런 고백을 했다. “나도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에 돌을 던지고 피를 흘리며 민주화 대열에 앞장섰지만, 같은 나이에 중동에서 피땀 흘리며 일해 달러를 벌어온 선배들, 그들의 노고를 바탕으로 이룩한 현대적 산업화, 완전 고용에 가까운 경제발전 그리고 그 바탕에서 성장한 우리 기업들을 보면 무엇이 더 어렵고 가치 있었던 일인가에 대해 쉽게 답하기 어렵다.” 그의 사상의 거처, 현실 인식의 관점을 설명한 대목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산업화 세력은 민주화 세력을, 민주화 세력은 산업화 세력을 상호 인정하는 것이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자기 고백이자 자기 선언이 필요하다.”

그는 2011년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그해 7월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 나서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 내건 조건의 하나가 ‘친서민 정책’이었다. 그는 변화를 낳을 수 있는 총선 공천, 당 계파 대립 해소와 함께 친서민 정책을 확대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그의 언명을 보면 친기업, 친서민적 면모를 동시에 추구한다.

제주의 땅값 전반적 상승 불가피


▎세계 7대자연경관으로 선정된 제주도 북동쪽 구좌읍의 해변 모습. 원희룡 지사는 제주도의 모든 개발은 자연 경관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입장이다. / 사진·뉴시스
성장담론에 대한 입장은 뭔가?

“경제성장은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주제다. 나를 포함해 공동체의 살림을 책임지는 입장에서는 언제나 유의하는 게 바로 성장이다. 맹자도 말했듯이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가능하다. 일정한 생산(生産)이 있으면 마음이 변(變)치 않는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고. 사람들이 각박해지는 것도 먹고 사는 문제 때문이다. 부의 분배가 제대로 안되고 형평을 잃으니까 문제가 생긴다. 항산을 중심에 놓고 공정하게 분배하는 일이 중요하다.”

제주도 땅값이 많이 올랐는데 앞으로도 더 오를까?

“제주도는 매년 5% 이상 경제가 성장한다. 여기에다 공항, 항만 시설 확충에 대대적인 투자가 진행될 예정이어서 제주도 경제활동과 연결된 분야의 부가가치가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전반적인 토지 가격의 상승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중국자본 등 투기성 자본도 많이 들어와 있다고 들었다.

“토지 자체의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성 자본이 들어오면서 유동성이 과잉된 측면도 있다. 스스로 투자의 귀재라고 여기는 이들은 이 점을 노릴 텐데 그건 알아서 할 일이다. 반면, 제주도가 추구하는 개발 방향과 부합하는 콘텐츠에서 기회를 찾는 투자자라면 아직도 땅값 때문에 사업을 못할 정도는 아니다.”

중국자본이 제주도를 잠식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부동산 개발만을 목적으로 하는 외지인 투자에는 제주도가 강한 제동을 걸고 있어 그런 투자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대신 관광이나 에너지와 같은 콘텐츠가 명확한 사업, 즉 지속적인 경제활동이 수반되는 사업에는 투자를 장려하고 있다. 한마디로 난개발을 부추기는 부동산 투기에는 빗장을 걸고 제주의 가치에 걸맞은 콘텐츠 투자는 적극 권장하는 쪽으로 투자의 내용과 질을 관리하고 있다.”

제주도의 국제학교가 전국적인 관심을 끄는 것 같다.

“제주영어교육도시 내 국제학교는 상급학교 진학률이 우수하고 학부모들의 만족도 또한 높다. 수도권 학생들도 이곳 국제학교에 입학하는 사례가 많다. 국제학교는 제주 거주인구를 늘리는 역할을 하기에 제도적 측면에서 국제학교를 확대하는 노력을 강화해나갈 계획이다.”

국제학교 확대를 위해 어떤 후속 조치를 준비하나?

“학교 부지나 학부모들이 거주할 주택은 확보돼 있지만 투자 유치가 여의치 않다. 제주도 내 국제학교의 경우 학교 운영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을 학교 설립목적에만 사용하도록 한 까닭이다. 투자자들에게 이익배당이 안 돌아간다는 말이다. 이에 국제학교의 잉여금 배당을 허용하는 법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중이다. 학교법인에 투자한 주주가 투자 성과를 합법적으로 배당받을 수 있게 된다. 학교 재정을 충실히 한다는 전제 위에서 적정한 투자 이익을 배당한다면 우수 국제학교 유치에도 탄력이 붙을 것이다. 법안이 빨리 통과돼 제주도 국제영어학교의 전성기가 앞당겨졌으면 한다.”

도정의 핵심 기조의 하나로 ‘협치(協治)’를 내세웠는데.

“제주도는 공공부문의 지출이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크다. 다분히 관(官) 주도의 업무 처리가 관행화했다. 앞으로는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 민간부문의 참여를 유도하고 보장함으로써 민관이 함께 일하는 모델을 창출하고자 한다.”

제주도청과 도의회가 예산안 처리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이유에선가?

“제주도에는 그동안 일명 ‘재량사업비’ 명목으로 의원들에게 배분되는 예산이 있었다. 공식 항목에는 없지만 수많은 돈이 의원들에게 배분돼 지역민원 사업 등에 활용됐다. 의원들이 선심성으로 사용하던 것으로 이상하게도 도지사 동의나 협의 없이 집행되는 관행이 통용돼왔다. 제주도청의 집행부가 이런 관행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논란이 빚어졌다. 도민의 혈세를 기준과 절차도 없이 의원들이 마음대로 쓰겠다는 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문제에서는 물러설 생각이 전혀 없다.”

선심성 예산삭감 방침은 양보 못해


▎대선 도전은 국민이 그 문을 열어줄 때만 가능하다고 말하는 원희룡 지사.
변화와 개혁을 위해서는 지나칠 수 없는 문제인데, 반발이 적지 않을 듯하다.

“이는 최소한의 개혁을 하는 것이다. 제주도는 국제사회의 흐름 속에서 아주 중대한 계기를 맞고 있다. 더 혁신적이고, 더 개방적이며, 더 새로운 일들을 해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일도 제주도민이 허용하는 만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사회 운동가는 여론을 환기하고 주장을 전파하면 되지만 정치가는 정책을 통해 현실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 예산 개혁을 비롯한 제주 경제구조 개편에 반드시 전제돼야 할 게 바로 도민들의 동의다.”

제주도의 거대한 미래 청사진이 기틀을 잡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까?

“과업을 완수하려면 끝이 없다. 임기 4년으로는 당연히 부족하다. 임기동안 최선을 다하고 그 다음 임기를 할지 여부는 도민들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지역발전을 꾀하는 도지사 역할을 전직 국회의원의 입장에서 평가한다면?

“공직사회는 관료집단으로서의 특성이 있다. 예산과 인원, 지침이 주어지면 기본적인 일은 안정적으로 해낸다. 하지만 정확하게 주어진 과업 그 이상의 일은 하지 않는 듯하다. 도지사직을 수행하면서 제주도청이 만약 기업이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갖게 된다. 공직사회에 안주하는 순간 매번 하던 일만 되풀이하는 데 그친다. 관료집단의 힘을 잘 활용할 때 개혁도 성공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 시대가 열린 이래 역대 제주지사가 모두 1940년대 초반 출생인데 원 지사는 1964년에 태어났다. 지사도 세대교체를 한 셈인데 특별한 어려움은 없나?

“그런 일은 없다. 남녀노소 소통을 잘해야 하고, 어른에 대한 예의를 중시하는 전통도 있고 해서 그런 부분을 잘해야 하는데 늘 부족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은 있지만…. 그렇다고 나이 갖고 뭐라 하진 않는다.”

그는 2012년 총선 불출마에 즈음한 자신의 심경을 “나와 나의 주장은 새누리당의 보수 체질을 숨기는 장식품일 뿐”이라고 저서에서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더 이상 실패하지 않도록 정치의 틀을 바꾸는 데 자신의 미래를 걸겠다고 단언했다. 그는 “국민의 삶의 문제 속으로 다시 들어갈 것”이라며 “거기서 정치의 의제와 해결 방안을 고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회의원 시절 개혁 소장파 정치인으로 불렸다. 지금 새누리당에는 소신발언이랄까 치열한 문제의식을 가진 의원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만약 국회의원들이 (정부·여당 내) 모든 현안에 뜻을 같이 해서 날 선 발언을 하지 않는다면 나쁘지 않다고 본다. 그런데 예를 들어 헌법기관으로서 국민의 의견을 정확히 대변해야 하는 국회의원들이 공천문제에 연연해 누군가의 눈치나 보며 몸을 사린다면 그건 직무유기라고 본다.”

원 지사는 정국 현안에 대해서도 직언하는 편인가?

“나는 행정의 책임을 진 단체장이다. 예컨대 동성애 문제에 대해 견해가 있다고 다 뛰어들어 의견을 밝히는 행위는 행정 책임자로서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이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이슈가 되는 족족 견해를 밝히는 자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 않나. 국회의원은 국민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는 통로라는 면에서 그 직무에 충실을 기하는 모습이 요구된다.”

공천 연연해 몸 사리는 국회의원은 직무유기

3선의 국회의원 출신으로 잠재적 대권주자로서 주목을 받는다. 대북정책과 통일 문제에 대한 의견을 말해달라.

“안보는 튼튼해야 한다. 북한이 도발하면 강력하게 응징해야 한다. 감히 도발을 못 하도록 철저한 대비태세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 이와 더불어 북한이 국제질서 속으로 걸어 나오도록 교류의 기회와 동기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자면 우리가 북한의 지도자 및 정치세력과 대화를 해야 하며 북한 주민의 민심도 우리 쪽에 유리하도록 조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북한 주민이 통일에 대한 공포심을 품는다거나 통일돼봤자 2등 국민밖에 안 된다고 여기게 되면 통일보다는 중국에 붙어버리는 게 낫다는 여론이 북한사회에 퍼질 수 있다. 통일이 언제 어떤 형태로 성큼 다가올지 모르지만 여러 가지 상황에 미리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의 외교·안보 당국자들은 북한을 적극적으로 끌어 안으려 들지는 않는 것 같다.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나?

“안보에 만전을 기한다는 이유로 대화나 교류를 동결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주체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 같다. 교류·협력은 지금보다 훨씬 더 확대돼야 한다. 쉽게 말해 북한 주민들이 남한이나 개방된 외부세력과의 경제협력을 통해 자본주의와 자유세계의 공기를 쐬도록 물량공세라도 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개헌 문제는 어떻게 보나?

“이미 <무엇이 미친 정치를 지배하는가?>라는 저서에서 그 문제를 밝혔다. 권력구조는 대통령 직선제를 살리되 내각제를 가미하자는 것이다. 대통령직선내각제다. 정당과 정당이 타협해서 연립정부를 세울 수 있는 권력구조로 가자는 말이다.”

내년 20대 총선 후 개헌 논의의 전망을 한다면?

“개헌 논의야 정치인의 자기 세일즈용으로 늘 있어왔다. 우리나라에서는 4·19 혁명이나 1987년 민주항쟁처럼 헌정체제 자체가 공격을 받을 때에나 개헌이 가능했다. 그렇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지금 시점에서 개헌을 하자면 19대 대선을 앞두고 여야가 함께 공약을 제시해 당선자로 하여금 바로 실행에 옮기도록 해야 한다.”

차기 대선주자로서 물망에 오르는데 본인의 생각은?

“준비된 인물이 많을수록 국가 운영은 잘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보다는 국가운영을 항상 고민하고 자기관리에 엄격하고 훈련하는 이가 많이 배출되면 국가의 리더십도 질적으로 고양된다. 그런 면에서 저를 잠룡(潛龍)으로 불러주시니까 나름의 일정한 사명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개인의 계획대로 이뤄지는 건 아니다. 개인의 욕심을 앞세워 부정 출발하다가 망한 이가 어디 한둘인가? (대선 도전은) 국민이 그 문을 열어줄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명리학자 조용헌 씨는 <월간중앙> 2015년 3월호에 게재한 글에서 원 지사를 일러 “조선시대 같으면 대사간(大司諫)으로 아주 적당한 팔자”라고 언급했다. 왕에게 직언하는 벼슬의 우두머리로 제격이라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원 지사에게 이런 평가에 대한 반응을 떠보았다. “판단이나 어떤 발언 같은 게 비교적 분명하고 그런 쪽의 기능이 발달했다는 분석으로 이해한다. 그 점을 잘 살릴 수 있다는 뜻인 것 같은데 실은 나도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겠더라.”(웃음)

- 글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사진 전민규 기자

201512호 (201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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