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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빛고을 광주, ‘자동차산업밸리’에 사활 걸다 

70% 임금, 광주발(發) 제조업 혁명은 성공할까 

장원석 이코노미스트 기자
광주 광산구, 전남 함평군 빛그린 산업단지에 추가 38만 대 생산단지 조성되면 100만 대 시대 열려… 지역경제 생산유발효과 11조8천억원, 수출유발효과 56억3천만 달러, 부가가치유발효과 2조6천억원 등 기대

▎자동차는 광주 전체 제조업 고용의 23.6%를 차지하는 중추 산업이다. 하늘에서 바라본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전경. / 사진·중앙포토
국내 자동차산업의 분기점은 1967년이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현대자동차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든 해다. 그는 미국 포드와 합작한 코티나가 실패하자 차라리 직접 만들겠다며 고유모델 개발에 나섰고, 그로부터 9년 뒤인 1976년 1월 포니를 세상에 내놨다.

이후 40년 사이 현대차는 한국을 넘어 세계 무대를 누비는 글로벌 브랜드가 됐다. 그 중심엔 1968년 착공을 시작한 울산공장이 있었고, 현대차의 역사를 따라 울산은 국내 자동차산업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양적으로는 울산이 우위에 있으나 그보다 먼저 상용차를 생산한 공장이 있었다. 1965년 광주에 설립된 아시아자동차 공업이다. 국가 재건 방안의 하나로 자동차산업 육성을 꼽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뜻에 따라 만들어진 곳이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기공식에 직접 참석해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할 것’이라며 공을 많이 들였다고 한다. 초기엔 주로 트럭을 위탁 생산했지만 1970년엔 이탈리아 피아트와 합작한 피아트124를 출시해 현대차와 경쟁하기도 했다. 경영난으로 1969년 동국제강에 매각된 아시아자동차공업은 1976년 기아산업으로 다시 주인이 바뀌었고, 1999년엔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이 됐다.

박 대통령 부녀(父女), 대를 이은 광주와의 인연


▎1965년 1월 아시아자동차공업(현 기아자동차 광주 공장) 기공식에 참석한 박정희 전 대통령. / 사진제공· 자동차산업밸리추진위원회
그로부터 정확히 50년 뒤인 2015년 1월 27일 박근혜 대통령은 광주과학기술원에서 열린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 참석했다. 현대자동차가 주도하는 이 센터는 친환경 자동차와 창조경제의 접목을 시도하는 곳이다. 박 대통령은 “광주는 경기 둔화와 내수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다”며 “이러한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대기업과 상생하고, 광주의 ‘무등 정신’을 창조경제에 접목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가 광주는 물론 한국경제가 나아갈 창조경제의 앞날에 큰 빛이 될 것으로 믿는다”며 “정부도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자세로 지원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두 대통령이 대를 이어 광주 자동차와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자동차산업은 광주 경제의 중추다. 2013년 기준으로 14만8천 명이 자동차 관련 업종에 종사한다. 광주 전체 제조업 고용의 23.6%다. 관련 매출 역시 11조9천억원으로 전체 제조업 매출의 40.6%를 차지한다. 사실상 자동차가 도시를 먹여 살리고 있다고 과언이 아니다. 그 중심에 연간 최대생산량 62만 대 수준의 기아차 광주공장이 있다.

그럭저럭 먹고 살 만해 보이지만 속은 그렇지 않다. 2012년 광주의 1인당 지역 내 총생산액(GRDP)은 1910만원으로 16개 광역자치단체 중 15위다. 자동차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산업 인프라가 없는 탓이다. 청년 고용률(2014년) 역시 34.8%로 최하위 수준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어두운 전망이 도시 전체에 감돌고, 시민들은 일자리가 없어 수도권으로 떠나는 청년들을 바라보며 가슴 아파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정찬용 광주자동차산업밸리추진위원장은 “광주가 디트로이트가 될 것인지, 슈투트가르트가 될 것인지 중대 기로에서 있다”고 말한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는 1980년대 말까지 벤츠·IBM·보쉬 등 굴지의 다국적 기업을 비롯해 약 14만 개의 기업이 활동하고, 독일 경제의 약 15%를 담당했던 산업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1993년 통일 후폭풍이 밀려오자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게 됐다. 수출이 줄고, 제조업 투자도 31%나 줄어들었다. 동시에 11만 명이 일자리를 잃으면서 실업률이 9%대까지 치솟기도 했다. 1980년대까지 ‘위대한 자동차 도시’로 불렸던 디트로이트가 자동차 업체들의 엑소더스(대 탈출)가 시작된 1990년대 이후 위기에 처한 것과 양상이 비슷했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 디트로이트는 파업과 분쟁을 되풀이하다 결국 파산에 이르러 ‘폐허의 대명사’가 됐지만 슈투트가르트는 기업과 노동자가 연대해 끊임없는 혁신에 나선 덕분에 예전의 명성을 되찾았다.

당연히 슈투트가르트의 길을 따라야 하겠지만 여건은 만만치 않다. 자동차 업계의 국내 투자는 저조하다. 저렴한 인건비, 환율 리스크 해소를 위해 대부분의 자동차 업체가 지산지소(생산 지역에서 바로 소비하는 전략)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 때문에 2006년 384만 대였던 국내 자동차 업체의 국내 생산량은 2014년 453만 대로 17.8%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해외 생산량은 101만 대에서 441만 대로 무려 337%나 늘었다.

자동차 메카로 거듭나기 위한 프로젝트 가동


▎박근혜 대통령이 올해 1월 27일 광주과학기술원에서 열린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 참석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자동차 창업 아이디어존을 둘러보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하지만 자동차 업체로서도 마냥 해외 생산만 고집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단순 조립은 해외에서 하는 게 여러 면에서 유리하지만 앞으로는 ‘양’보다 ‘질’에서 승부가 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은 대량생산에서 친환경 융복합 산업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독일 폴크스바겐의 디젤엔진 배출가스 조작 사건 이후 그런 움직임은 더욱 빨라지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 대부분이 자국 생산 비중을 줄이지 않는 이유다. 국가적 사업인 연구개발(R&D) 역량을 키우고,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국내 생산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기도 하다.

바로 이런 수요를 국내로, 광주로 돌려 자동차 100만 대 생산도시를 조성하자는 게 광주의 계획이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광주 지역 ‘자동차 100만 대 생산도시 조성사업’의 추진을 약속했다. 최근 이 구상이 조금씩 속도를 내고 있다. 자동차 100만 대 생산도시의 큰 그림은 자동차 생산과 서비스, 관광을 망라한 대규모 산업밸리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핵심은 자동차 전용 산업단지와 집적화 단지다. 친환경 차량 생산 라인을 추가로 유치해 광주 지역 자동차 생산량을 최대 100만 대로 늘리면서 고부가 핵심부품 산업과 생산 네트워크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100만이란 숫자가 가진 의미는 크다. 생산 규모가 작으면 부품업체들이 굳이 광주에 터를 잡을 필요가 없다. 연 50만 대 이상을 꾸준히 생산하는 기아차 공장이 있지만 울산 등 다른 지역에 비해 광주가 부품산업과의 연계성이 떨어지는 이유다. 그러나 100만 대 정도로 덩치가 커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만들어 운송하는 것보다 현지 생산이 더 싸다고 판단하면 자연히 옮겨 온다.

최종일 조선대 경제학과 교수는 “광주의 자동차 제조업과 엔진 및 부품 제조업은 다른 지역의 산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며 “광주에 부품과 완성차를 망라하는 클러스터를 만들 경우 다른 지역의 생산 증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기아자동차를 중심으로 광주 지역 자동차 생산이 2013년 47만 대에서 100만 대로 늘어날 경우 광주 지역경제의 생산유발효과는 11조8천억원, 부가가치유발효과는 2조6천억원, 수출유발효과는 56억3천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자동차 복합 서비스 단지도 만든다. 판매와 출고, 서비스를 한데 모아 국내에 없는 새로운 애프터 마켓을 열겠다는 구상이다. 인근엔 자동차 테마파크를 지어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신재형 자동차산업밸리추진위원회 부위원장은 “한국이 세계 자동차 강국으로 성장했지만 자동차를 활용한 관광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하다”며 “각 브랜드, 각 국가별로 역사관과 전시관을 마련한 엑스포 개념의 자동차 테마파크를 만들어 새로운 볼거리, 즐길거리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본격적인 사업 추진을 앞두고 광주시는 전국 광역 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자동차산업과를 신설한 데 이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자동차산업밸리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연봉 3천만~4천만원 수준 일자리 늘려야


계획은 나무랄 데 없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대규모 국책 사업이, 지방자치단체의 외부 유치사업이 대부분 그렇듯 명분만으론 한계가 있다. 기업이 스스로 공장을 짓고, 생산량을 늘릴 수 있을 만한 구체적인 유인책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윤장현 광주광역시장이 내놓은 카드가 바로 ‘광주형 일자리’다. 광주형 일자리의 핵심은 노·사·민·정이 대타협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적정 임금(보통 임금 수준의 70~80%)을 받는 일자리를 늘리자는 것이다. 기업은 적정 임금에 따라 경영 효율성을 높이고, 근로자는 연봉 3천만∼4천만원대의 중간수준 임금을 받는 대신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받는 구조다.

이 아이디어는 독일 볼프스부르크에서 얻었다. 독일 니더작센주 볼프스부르크는 인구 12만 명 정도의 소도시지만 토요타와 세계 자동차 1~2위를 다투는 폴크스바겐 본사 공장이 있는 곳이다. 시민 5만 명이 폴크스바겐과 그 협력회사에서 일하고 있으니 사실상 폴크스바겐의 도시다.

그러나 기업과 도시의 공생이 늘 평화로웠던 것만은 아니다. 1990년대 중반 원가 상승과 경기 침체로 실적 압박에 시달리던 폴크스바겐 경영진은 공장 해외이전을 모색했다. 인건비 절감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였다. 노조는 반발했고, 이에 1998년 페터 하르츠 폴크스바겐 노무 담당 이사는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지 않는다면 노조는 무엇을 할 것이냐?”는 화두를 던졌다.

고민 끝에 노조를 비롯한 시민들은 양보를 택했다. 이후 본사와 분리된 유한회사 ‘아우토(Auto)5000’이 설립됐다. 실업자 5천 명을 채용하고, 연봉을 5천 마르크(약 3500만∼4천만원) 수준에 맞추는 조건이었다. 직원들은 폴크스바겐 본사 직원보다 20% 적은 임금에도 만족했다. 그들에겐 안정된 고용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후 투란·티구안 등의 생산이 활기를 띠면서 좋은 실적을 냈고, 2009년 본사와 합병했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서 상생을 택한 결과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다.

이 광주형 일자리의 첫 실험이 바로 자동차산업밸리에서 이뤄진다. 광주시는 현재 62만 대인 기아차 광주공장 최대 생산규모를 100만 대로 끌어올리면서 연봉 4천만원 정도의 광주형 일자리를 1만 개가량 확보한다는 계획을 세웠놓았다. 광주뿐만 아니라 국내 자동차 업계는 현대·기아차 등 완성차 업체와 협력업체 간 임금 격차가 매우 크다. 광주의 경우 기아차 생산직 직원 8천여 명의 평균 연봉이 8천만원가량이지만, 협력업체 직원 1만 명의 연봉은 4천만원 정도다. 기아차 광주공장과 연관이 없는 광주 하남산단 중소기업 근로자의 평균 연봉은 3천만원에도 못 미친다.

광주시 관계자는 “광주는 물가가 비싸지 않고, 아파트 가격도 수도권에 비해 매우 저렴한 편”이라며 “연봉 3천만원 이상만 보장된다면 일하겠다는 청년들이 많은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만 보내는 건 어른들이 할 도리가 아니라는 게 시민들의 정서”라고 지적했다. 정 위원장은 “노사를 비롯해 시민과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거버넌스를 구성해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면 충분히 가능하다”면서 “임금을 조금 낮추면서 고용을 늘리려는 이 시도가 성공하면 공장 증설은 물론 해외로 떠났던 공장이 국내로 유턴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석탄 도시’ 일본 기타큐슈의 대변신


▎자동차산업으로 도시를 재생한 성공 사례로 꼽히는 일본 기타큐슈의 닛산 공장. / 사진제공·자동차산업밸리추진위원회
광주형 일자리는 볼프스부르크와 폴크스바겐처럼 기업과 도시가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한국식 고용 모델을 만들고, 이를 저성장에 몸살을 앓고 있는 국가 제조업 전체로 확산시켜보자는 원대한 포부가 담겨 있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노사관계와 생산방식의 혁신을 지향하는 신규 투자를 유치하고, 이해당사자 간의 연대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합리적 방안”이라며 “왜곡된 노동시장의 문제점을 해결하면서 사회통합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미 광주와 비슷한 조건에서 성공한 모델이 있다. 바로 일본 기타큐슈(北九州)다. 광주와 기타큐슈는 여러 면에서 닮은 곳이 많은 도시다. 면적이 약 490㎢로 광주(500㎢)와 거의 같고, 1차 산업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돼 공업화가 느렸던 점 또한 닮았다.

사실 1990년대까지 기타큐슈의 주력 산업은 석탄과 제철이었다. 하지만 경기 침체로 기업이 떠나기 시작하면서 도시는 심각한 실업과 공동화에 직면했다. 다행인 건 다가올 위기를 미리 내다본 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들은 기존 산업을 대체할 수단으로 자동차를 택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자동차 산업을 키우기 시작했는데 1973년 닛산자동차가 후쿠오카 칸다미치에 자동차 공장을 세우고, 1976년 닷트선트럭을 생산한 게 시발점이었다.

그때까진 공장 하나가 전부였지만 1992년 닛산이 제2공장을 짓고, 토요타가 미야와카 진출을 결정하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경쟁이 시작되자 제대로 불이 붙었다. 닛산과 토요타가 앞다퉈 생산 규모를 늘려가기 시작했고, 신차도 이곳에 몰아줬다. 2004년 소형차 전문 브랜드 다이하츠까지 가세해 최대 규모 공장을 세웠다. 닛산은 2000년 공장 내 전용부두를 갖췄고, 토요타 역시 2000년대 중후반 엔진공장과 하이브리드 부품공장을 연이어 세웠다. 지난해 기타큐슈의 자동차 생산량은 처음으로 150만 대를 돌파했다. 닛산(65만 대)과 토요타(43만 대)가 중심이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에 몰리는 청년들 보면 가슴 아파”


완성차 공장이 자리를 잡자 부품업체들도 몰려들었다. 이 지역 부품업체 수는 2013년 989개(1·2·3차 합계)에 달한다. 완성차의 진출과 생산 규모 확대에 따라 규슈 밖에 있던 부품업체의 진출이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향토 기업과 역내 진출 기업이 각각 절반이다. 박태훈 오사카시립대 교수는 “완성차 업체의 생산라인 증설에 따라 1차 부품업체의 생산량이 함께 증가했고, 이에 따라 2차·3차 부품업체가 동반 진출을 택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이 이곳을 선택했을 땐 분명 명확한 이유가 있었을 터다. 기본적으로 정부 후원이 있었다. 일본 정부는 1961년 부터 탄광이 없어지는 지역에 대한 임시조치법을 시행해 약 40년간 각종 지역산업진흥정책을 폈다. 정부 보조금을 늘리거나, 세율을 인하해주는 방식이었다. 이 같은 지원책 덕분에 기타큐슈는 자동차산업으로의 전환 과정에서 든든한 실탄을 확보할 수 있었다. 2003년 후쿠오카현은 기타큐슈 지역 자동차 100만 대 생산거점 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광주의 자동차산업밸리추진위원회와 유사한 개념이다.

이 위원회는 닛산·토요타 등 완성차 업체에 증산을 요청하는 동시에 설비 투자금의 일부를 보조하는 방식으로 부품 업체를 적극 유치했다. 불과 3년 후인 2006년, 목표는 150만 대로 상향됐고, 2013년엔 180만 대로 올려 잡았다. 지방정부 역시 규슈 동서남북을 잇는 고속도로망을 정비하고, 물류 인프라를 짓는 등 직간접인 지원사업을 펼쳤다. 다이하츠 공장을 유치할 때 중앙 정부의 지원을 받아 공장부지와 전용 부두를 건설해 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박 교수는 “무엇보다 큰 장점은 바로 낮은 임금”이라며 “닛산과 토요타 모두 이 지역에 진출하면서 독립법인을 설립해 통일된 임금 압박에서 벗어났다”고 말했다. 실제로 두 회사는 본사나 도쿄·나고야(일본 자동차 생산의 각각 25%를 담당하는 최대 생산지역)보다 약 20% 낮은 임금 체계를 실현했다. 닛산 규슈의 경우 닛산 본사 종업원보다 월 평균 임금이 80만원가량 적다. 닛산 규슈 관계자는 “물론 직원의 능력에 따라 더 받을 수 있지만 평균적으로 닛산 본사보다 적게 받는 게 사실”이라며 “이는 지역의 부동산 가격과 물가 등을 감안한 임금 정책으로 직원들 사이에 임금 격차에 따른 거부감은 없다”고 설명했다. 윤 시장이 주목한 부분도 바로 이점이다.

닛산과 토요타는 기타큐슈 공장에서 고가의 차량을 주로 생산한다. 토요타는 프리미엄 브랜드인 렉서스 6개 차종을 이곳에서 만든다. 인건비를 줄이면서, 비싼 차를 만든다는 건 이익률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대신 기업들은 낮은 임금이라는 최고의 ‘당근’에 고용으로 화답했다. 버는 만큼 생산량을 늘리고, 고용을 창출해 또다시 재투자하는 방식의 건전한 생태계가 만들어진 셈이다.

‘자동차 100만 대 생산도시 조성사업’과 ‘광주형 일자리 모델’에 거는 광주 시민의 기대는 크다. 직접 만난 시민들의 반응 역시 뜨거웠다. 자동차 3차 부품업체를 운영하는 김동선(61) 씨는 “아직까진 괜찮지만 앞으로 기아차가 국내 생산을 줄일까 걱정이 많다”며 “완성차 업체가 생산을 많이 늘려서 우리처럼 작은 부품업체들도 생계에 지장이 없도록 지역 경기가 좋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정민선(52) 씨는 “아르바이트생 구하는 공고를 붙이면 하루 만에 20대 청년들이 30명가량 문을 열고 찾아온다”며 “광주가 참 살기 좋은 도시지만 젊은이들이 일할 곳이 없고, 벌이가 불안정한 것 같아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미온적인 현대·기아차 끌어들일 ‘당근’은?


▎토요타 기타큐슈 공장의 생산 라인에서 한 직원이 부품을 점검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생산성이 가장 높은 공장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 사진제공·토요타
목표는 뚜렷하지만 갈 길은 멀다. 일단 첫 번째 고비는 예비 타당성 조사다. 정부는 사업비 500억원 이상 규모의 신규 사업을 추진할 때 사업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선행 조사를 실시한다.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한 취지다. 조만간 광주시가 한국 개발연구원(KDI)에 의뢰한 ‘자동차 100만 대 생산도시 조성사업’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가 발표된다. 광주시 측은 통과를 자신하면서도 조심스러운 눈치다. 결과가 좋을 경우 국회 상임위원회에 상정돼 있는 사업 설계비용 10억원을 포함해 최소 100억원 이상의 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 광주시는 국회에 관련 예산 353억원의 확보를 요청한 상황이다. 반대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사업 추진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재도전은 가능하지만 그만큼 늦어지고, 사업 규모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

광주 입장에선 중앙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 박태훈 교수는 “완성차 업체가 새로운 라인 증설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요인은 공장 부지의 매입과 인프라 시설의 구축”이라며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 이러한 시설을 마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물론 ‘자동차 100만 대 생산도시 조성 계획’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업 추진 자체는 어렵지 않을 전망이다.

문제는 규모다. 얼마나 화끈한 지원을 끌어내느냐가 관건인데 이 때문에 윤 시장은 최근 국회와 정부 곳곳을 방문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청년 일자리 문제가 광주에 국한된 것이 아닌 만큼 국가 전체의 과제로 봐달라는 입장이다. 11월 12일에는 달빛동맹(대구와 광주의 옛 이름인 달구벌과 빛고을의 머리 글자를 딴 것으로 두 지역의 화합과 협력을 의미)을 맺은 권영진 대구시장과 함께 국회를 방문해 예산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더 큰 과제는 기업 유치다. 자동차 생산 대수를 100만 대로 늘리려면 38만 대 이상의 공장을 새로 지어야 한다. 현대·기아차가 가장 유력한 후보다. 그러나 현대·기아차 입장에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현대·기아차는 국내에서 공장을 운영하며 오랜 기간 노사갈등에 시달려왔다. 임금상승 압박은 갈수록 커지는데 굳이 국내 생산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현재까지는 환율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도 해외 생산을 늘리는 게 더 적절하다는 게 경영진의 판단이다. 광주형 일자리에 대해서도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그게 되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 있는 게 사실이다. 낮은 임금에서 출발하더라도 차후에 결국 기존 공장의 임금 수준에 수렴할 것이란 걱정이다.

광주시도 이런 우려를 잘 알고 있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광주형 일자리를 적용할 새 공장은 반드시 기존 노사협상이나 관행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법인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애초에 별도 법인으로 출범시켜 본사와 별개로 운영하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광주시는 독립법인에 시와 시민이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하겠다는 구상까지 내놓았다. 시와 상공회의소 등이 출자하고, 시민이 펀드를 만들어 주주로 참여하는 방식이다. 처음 약속이 끝까지 지켜질 수 있도록 광주 구성원 전체가 보증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렇게 현대차가 끌릴 만한 ‘당근’을 제시하려면 지역 사회 안에서 노조와 시민을 설득해야 한다. 특히 기존 기아차 노조의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광주시는 노·사·민·정 대통합을 담당하는 기구(사회통합추진단)까지 만들고 기아차 전임 노조위원장을 단장으로 초빙했다. 긍정적인 건 최근 당선된 새 노조위원장 또한 광주형 일자리 구상에 공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사회통합추진단을 중심으로 ‘청년들이 떠나지 않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 생각을 함께하고 있다”며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 장원석 이코노미스트 기자

201512호 (201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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