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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경기도경제단체연합회 공동기획(마지막 회)] 드레스덴에서 배우는 기업과 도시의 상생조건 

‘문화’가 있는 도시에 기업과 인재 몰린다 

폐허 딛고 일류 기업도시 된 드레스덴의 저력은 정체성과 문화… 산·학·관이 육성한 지역인재가 도시를 부흥시키는 원동력

▎전쟁의 폐허 속에서 엘베강의 기적을 일군 독일 드레스덴은 문화와 첨단과학산업이 공존하는 독일 제일의 기업도시로 꼽힌다. 드레스덴의 성공은 우리의 기업도시 정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엘베강변에서 바라본 드레스덴 구도심의 야경이 고풍스럽다. / 사진·중앙포토
기업도시의 지속가능성은 기업과 도시의 조화를 통해 보장된다. 기업을 위해 기존 도시를 허물고 새 판을 짜는 것보다 양자의 조화와 조합이 도시의 시너지를 높인다. 이런 조화 속에서 전통과 규제는 대립하지 않는다. 도시의 정체성을 극대화하면서 기업활동을 보장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세계가 주목하는 기업도시 모델인 독일 드레스덴이 이를 증명한다. 저마다 ‘글로벌 중심도시’를 표방하는 국내 기업도시들에 드레스덴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엘베의 피렌체’, ‘유럽의 발코니’, ‘바로크의 진주’. 독일 작센주의 주도(州都) 드레스덴을 일컫는 말이다.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건물들로 그득한 도시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말들이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해졌다. ‘유럽의 실리콘밸리(실리콘 색소니·Sillicon Saxony)’라는 말이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작센주의 영어식 명칭인 ‘색스니’를 합친 신조어다. 여행자들은 드레스덴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독일로 걸음을 재촉하고, 기업가와 행정가들은 잿더미 속에서 IT 중심도시로 부활한 드레스덴의 저력을 눈으로 확인하려고 눈길을 준다.


▎드레스덴 북쪽의 첨단산업클러스터인 미나폴리스. 프라운호퍼연구소를 비롯해 마이크로·나노분야의 유명 연구소와 기업들이 들어서 있다.
지난 11월 4일 드레스덴을 찾았다. 체코의 수도 프라하를 통해 약 두 시간 반을 자동차로 달렸다. 프라하와 드레스덴의 거리는 독일의 수도 베를린과 비슷한 거리(180여㎞)에 있다. 드레스덴 북부를 통해 들어서자 은색으로 빛나는 현대식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독일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미나폴리스’다. 독일 최대 응용과학기술연구소인 프라운호퍼연구소와 벤처기업 지원기관인 나노센터 등이 이곳에 입주해 있다. IT, BT, NT, 태양광기술 등 신기술산업과 관련된 연구기관과 기업들이 집약돼 있는 곳이다.

드레스덴의 산업클러스터는 4개로 나눠진다. 미나폴리스(마이크로·나노전자기술)·바이오폴리스·사이언스폴리스·매트폴리스(소재기술)가 그것이다. 4개 클러스터에 1500여 개 기업이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지멘스, 모토롤라, 폭스바겐, 인피니온테크놀로지 등 글로벌 기업도 이곳에 있다. 근로자만 5만여 명이 있다. 독일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드레스덴 공과대학을 포함해 10개 대학과 47개 연구소가 이 도시에 포진해 있다. 산·학·연의 집약지라고 할 만하다.

동쪽으로 좀 더 달리니 드레스덴 중앙역이 나온다. 이곳은 쇼핑의 중심지다. 중앙역에서 도심으로 향하는 길에 쇼핑센터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그중 알트마르크트 갈레리에 백화점은 독일 내에서도 손꼽히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독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세계의 관광객들이 반드시 거쳐가는 코스로도 유명하다. 제 발로 찾아오는 외국인에게서 벌어들이는 외화도 상당해 보인다. 쇼핑센터를 지나면 옛 작센공국의 고도(古都)가 모습을 드러낸다. 엘베강변을 끼고 평지에 늘어선 고건축물들의 웅장함이 방문자를 압도한다. 츠빙거 궁전에서부터 라파엘로의 작품을 소장한 것으로 유명한 드레스덴국립미술관 등 시내 구역 전체가 르네상스 시대를 옮겨다 놓은 듯하다. 현대와 전통이 공존하는 도시의 경관은 이질적이지 않고 묘한 조화를 이룬다.

볼거리와 다양한 도시 기능을 모두 갖춘 덕에 드레스덴을 꽤 거대한 도시로 오해할 수 있지만, 드레스덴은 지방의 소도시에 더 가깝다. 인구는 53만여 명이다. 면적은 328.3㎢로 대전광역시(539.7㎢)의 3분의 2, 인구 110만 명인 수원시(121㎢)의 세 배 정도다. 이곳이 독일의 주력 기업도시로 떠오른 건 20여 년에 불과하다.

드레스덴은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2월 13일, 미·영 연합군의 대규모 폭격으로 폐허가 됐다. 시민 3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도시의 90%가 파괴됐다. 재건의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였다. 동독에 속한 뒤 드레스덴은 정체성을 상실한 변방의 가난한 도시로 전락했다. 동독 정부가 드레스덴의 파괴된 문화유산 위에 현대식 건물을 집중적으로 건설하면서 이도 저도 아닌 난잡한 모양을 갖게 됐다.

잿더미에서 부를 일군 노하우는 ‘파격 지원’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드레스덴 시청 타워에서 바라본 시내 전경. 연합군의 대폭격으로 도시의 90%가 파괴됐다. 통일 전 드레스덴은 동독 지역 중 가장 낙후된 도시였다. / 사진·중앙포토
별다른 산업기반도 갖추지 못했다. 시민의 3분의 1 정도가 실업자였을 정도였다. 드레스덴이 속한 작센주는 1990년대 1인당 GDP가 1만 달러에 불과했다. 유럽에서 20여 년간 여행가이드업체를 운영해온 고대훈 씨는 “드레스덴은 일본의 나가사키처럼 종전 후에도 사실상 버려진 도시나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드레스덴이 재건의 기회를 맞이한 건 1989년 독일이 통일되면서다. 독일 연방 정부는 1991년부터 2004년까지 매년 850억 유로씩 1조2400억 유로를 동독 지역에 투자했다. 동독지역에 진출하는 기업에는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줬다. 주정부가 특히 공들인 분야는 응용과학 분야였다. ‘드레스덴 시스템’이라 불리는 작센주정부의 드레스덴 부흥계획은 응용연구소를 설립해 사이언스파크와 연계된 첨단벤처 유치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오늘날 드레스덴에 조성된 4개의 클러스터는 이런 계획의 결과 물이었다.

연방과 주 정부의 계획에 따라 막스프랑크연구소와 프라운호퍼연구소, 라이프니츠연구소 등 독일에서도 명성 높은 연구소들이 잇따라 설립됐다. 연구소가 설립되자 관련된 기업들이 앞다퉈 공장과 연구소를 옮겨오기 시작했다. 현재 드레스덴에는 첨단연구소와 대학, 첨단기업들이 유기적으로 호흡하며 연구성과를 비즈니스로 연결하는 주축을 담당한다. 드레스덴은 정보통신 부문 유럽 1위, 기계부품 및 나노재료 부문 독일 1위, 태양열에너지 분야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과거로의 회귀정책’이 ‘기업도시로 진화’ 불러


▎지난해 4월 드레스덴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가 프라운호퍼 연구소를 찾아 ‘나노 다이아몬드’ 등 첨단융합연구 성과물을 둘러보고 있다.
독일 연방정부와 작센주정부의 파격적인 혜택이 이 같은 드레스덴의 화려한 부활을 견인했다. 1994년 지멘스가 13억 유로를 투자할 때 주정부는 4억 유로를 지원했다. 1995년 드레스덴에 반도체공장을 건설한 미국 반도체 기업인 AMD가 2004년 24억 유로를 투자해 공장을 신설할 때에도 연방 정부와 주정부는 4억8천만 유로를 지역개발 촉진 차원에서 지원했다. 2001년 인피니온(독일 반도체 기업)도 공장을 설립하면서 신축비용의 20%에 해당하는 2억1900만 유로의 보조금을 지원받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이전기업에 대한 세금 일부 면제나 행정처리 기간 단축과 같은 소극적 지원에 그치는 한국의 풍토로 비춰볼 때 드레스덴의 기업유치 정책은 기업 특혜에 가깝다고 할 만큼 파격적이었다”고 말했다.

연구소를 따라 이전한 대기업의 뒤를 따라 관련 중소기업들이 옮기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반도체 칩 생산과 관련된 기업만 760여 개가 드레스덴을 중심으로 포진해 대규모 반도체 단지를 형성했다. 이곳에 1만6천여 명의 고용과 연간 20억 유로의 매출이 발생하고 있다. 드레스덴 진흥청에 따르면 전체 기업의 80%는 중소기업이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비즈니스 생태계인 셈이다. 대학교수와 과학자, 연구원 등 고급 인력 비율이 전체 일자리의 20%에 달할 만큼 일자리의 질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기업화된 도시에는 번영이 찾아왔다. 드레스덴은 독일에서 유일하게 가구당 부채가 0원이다. 드레스덴의 1인당 GDP는 6만 달러를 넘는다. 재건사업 직전인 20년 전보다 6배나 성장한 것이다. 경제 활력을 나타내는 1인당 구매력 지표는 2001년부터 매년 7% 이상씩 증가하고 있고, 2008년에는 8.6%를 기록했다. 통일 직후 20%를 넘었던 실업률도 2014년에 7.9%로 떨어졌다. 출산율은 대도시인 프랑크푸르트, 뮌헨을 제치고 5년 넘게 1위를 지키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앞서 있고, 집적화가 잘돼 있는 대덕연구단지만 하더라도 정부출연기관과 대학교·지자체·산업체가 따로 노는 게 현실이다. 30여 개 출연 연구소에서 매년 쏟아져 나오는 공급자 중심의 특허출원을 수요자인 기업들이 외면하고 있는 이유를 드레스덴에서 찾아야 한다.” 이승완 대덕이노폴리스벤처협회장의 지적이다.


▎드레스덴에 있는 폭스바겐 투명유리공장에서 기술진이 자동차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부유해진 도시는 이내 문화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드레스덴은 기업도시이면서도 축제의 도시로도 이름 높다. 딕시랜드페스티벌은 세계적인 재즈 축제로 꼽혀 매년 50만 명이 몰려든다. BRN 페스티벌 기간에는 거리마다 콘서트가 열리고 맥주가 넘쳐나 거리 전체가 파티장이 된다. 매년 11월부터 열리는 크리스마스 시장(슈트리첼마르크트)은 세계의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드레스덴을 방문한 이날 쇼핑센터의 공터에는 슈트리첼마르크트 행사장을 알리는 대형 크리스마스트리 설치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드레스덴시에 따르면 박물관 52개, 미술관 40여 개, 오페라하우스 37개, 도서관 80개가 드레스덴에 있다. 문화와 예술이 비즈니스와 어우러져서로 시너지를 내고 있는 것이다. 기업과 주택가, 상업지역으로 삼분된 국내의 여러 기업도시와 가장 대비되는 점이다.

드레스덴의 부흥이 우리 정부와 지자체의 기업도시 정책에 시사하는 건 ‘도시의 정체성 보존과 기업생태계 조성의 조화’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큰 파급력을 갖는다는 점이다. 드레스덴의 도시정책은 현대를 무너뜨리고 땅 속에 파묻힌 과거를 되살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과거를 무조건 뒤엎고 그 위에 첨단을 쌓아 올리는 우리의 도시 정책과 반대 방향이다. 정윤희 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에 따르면 드레스덴의 도시재건계획은 ‘통합된 도시개발 콘셉트(INSEK)’에 근거해 추진됐다. ▷도시의 정체성을 복원하고(문화), ▷첨단산업 유치를 통해 먹거리를 확보하며(경제), ▷과밀을 억제하는 인구 및 주택정책(생활)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

도시재건이 구체화된 2000년에 들어서면서 드레스덴은 새로운 건물을 짓는 대신 버려진 옛 건축유산을 복원하는데 힘을 쏟았다. 이를 ‘과거로의 회귀 정책’으로도 부르는데, 2005년말 돔 공사를 마쳐 무려 60년 만에 제 모습을 되찾은 프라우엔교회 복원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복원 정책은 번영했던 중세의 드레스덴을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성공은 관광객을 불러 모았고,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반면 새로운 주택 건설은 최소화했다. 당초 통일 직후 드레스덴이 예상한 도시계획 목표인구는 52만 명.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동독지역의 인구 유출과 함께 드레스덴 인구도 점차 감소하면서 수 차례 조정 끝에 2015년 목표 인구가 48만 명으로 설정됐다. 이 같은 계획에 따라 기존 주택 중 6천 호가 철거돼 녹지로 조성되는 등 주택 건설을 최소화하는 정책을 펼쳤다. 정윤희 책임연구원은 “드레스덴의 도시정책은 신규 주택건설에 치중해온 우리나라의 도시재생과 토지이용정책에 다른 시각의 시사점을 준다”며 “최근 많은 도시가 인구감소 혹은 정체기에 접어들었음에도 여전히 인구 증가를 목표로 도시계획을 수립하는 우리나라 여러 도시가 교훈으로 삼을 만하다”고 지적했다.

지역의 경쟁력은 지역인적자원개발과 R&D 융합


▎드레스덴은 도시재건을 시작한 지 20년 만에 세계 3대 실리콘밸리로 급성장했다. 전체 일자리의 학자·연구원 등 고급 지식기반 일자리가 전체의 20%를 차지한다. / 사진·중앙포토
드레스덴의 도시 재건과 국내 기업도시 정책의 뚜렷한 차이는 또 있다. 바로 ‘지역인적자원 개발’이다. 인적 자원이 기업의 3대 구성요소 중 하나란 것은 교과서에 나오는 상식이다. 하지만 기업을 육성하고 유치하려는 기업도시 정책에서 이런 상식은 늘 배제된다. 자본과 설비를 유치하면 인재는 자동으로 따라올 것이란 오해가 정책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이런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든, 그렇지 않든 현실은 지방 인재의 대부분이 서울 명문대학에 진학해 수도권으로 생활 터전을 잡는 기형적 구조를 고착화돼 있다. 정부의 한 통계에 따르면 베이비붐세대 지방명문고교(경남고·경북고·광주일고·대전고) 졸업생의 55%가 수도권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의 인재 유출과 지방의 기업 공동화를 결코 떼어놓고 볼 수 없는 이유다.

드레스덴을 지탱하는 인적자원은 드레스덴공대에서 배출되는 4만여 명의 우수한 연구인력이 중심이 되고 있다. 이들은 학업을 마침과 동시에 대부분 지역의 경제체제에 편입된다. 누구보다 지역 기업들의 요구를 잘 알기 때문이다. 지역의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이 수많은 공동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서로를 전략적으로 잘 이해하는 훈련이 돼 있는 탓이다. 유수의 연구소, 기업과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실용적인 연구 감각과 실력을 축적한 대학의 교육시스템은 더욱 정교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우수한 인재로 기업과 연구소로 진출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인재 육성이 선순환을 이루는 것이다. 단순히 드레스덴공대, 혹은 지역 기업과 연구소 각자의 명성만으로는 이런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기 어렵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스스로 육성하고, 인재가 원하는 기업의 역량 강화에 참여하는 것이 오늘날의 드레스덴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반면 국내에서 인재 육성은 정부의 몫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지배하고 있다. 지자체는 기업만 유치하면 자기 역할을 다 했다고 여긴다. 대학들은 지역 기업들이 원하는 인재를 육성하고 기업의 연구개발에 참여하기보다 대기업 취업실적을 자랑으로 삼는다. 지역의 기업들도 지역사회와 연대해 필요한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수많은 산학연 프로그램이나 민관 협력 연구개발 프로젝트가 지역과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실용적인 결과물로 탄생하지 못하고 먼지 덮인 논문으로 사장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알고는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지역인적자원개발에 관한 정책적인 고민을 해오고 있다. 교육 과학기술부는 2010년 포항공대에 의뢰한 연구(‘지역HRD와 R&D 연계를 통한 지역발전 모델 유형에 관한 연구’)를 통해 “R&D(연구개발)와 HRD(인적자원개발) 정책이 별개의 체제로 분리 시행돼 지역이 주도하는, 지역사정에 맞는 R&D 추진에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는 2000년 이후부터 인적자원개발정책을 국가주도와 지역주도로 구분해오고 있지만 실효를 거두진 못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문제의식이 지자체로 확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자체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지역 인적자원개발이 국가에 의해 주도되는 역설적인 상황에 빠진 셈이다. 지역에서 인적자원을 담당하는 거점기관들 사이에도 손발이 맞지 않고 있다. 테크노파크(TP), 지역특화센터, 산학협력단, 지방연구중심대학 등 지역인적자원개발을 위한 기관과 인프라는 충분하지만 이들 사이에 정책적 연계나 공동프로젝트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 보니 지역의 협업 파트너 기관들끼리 지원금 확보 경쟁을 벌이거나 고가의 연구 기자재와 설비를 자랑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어떤 연구성과를 올렸고, 어떻게 비즈니스로 연결했는지 후속 정보는 거의 없다. 심지어 지자체와 기업이 프로젝트 예산을 지원하고도 중앙정부와 사업 수행기관이 R&D 과제를 직접 추진해 돈을 댄 지자체와 기업은 알지 못하는 웃지 못할 일이 생기기도 한다.

경기도의 산학연 사업을 담당했던 한 공무원은 “지자체는 정부로부터 예산을 타내 지역의 대학이나 연구소에 던져주고 할 일 다했다는 식이고, 돈을 받은 연구자들은 지자체와 정부에 제출할 보고서만 제출하면 그만이란 식으로 졸속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관행이 고쳐지지 않고 있다”며 “이렇게 얻은 연구 결과를 기업이 활용하려 해도 특허권 문제 때문에 쉽게 제품 개발에 활용하지 못한다”고 귀띔했다.

지역산업구조 개편은 지역이 주도해야


▎드레스덴의 성공 비결은 도시의 정체성과 문화의 토대 위에 지역과 대학, 연구소, 기업이 공동으로 인재를 육성한 데서 찾을 수 있다. / 사진·중앙포토
그나마 국내에서도 독일의 모델에 근접한 기업도시정책이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추진한 혁신도시 정책과 공공기관 지방이전이 그 예다. 잘만 다듬으면 각 지역의 특성에 걸맞은 산업구조 개편과 민·관 협력을 도모할 수 있다. 여기에 지역인적자원 개발정책이 더해지면 드레스덴의 선순환을 국내에서도 체감할 날이 머지않아 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극복해야 할 근본적 한계는 있다. 혁신도시와 공공기관 지방이전이 모두 지역 안배라는 정치적 논리로 중앙정부에 의해 시작된 태생적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지자체와 지역의 기업, 연구소, 대학이 합의할 수 있는 산업모델을 확정해야 한다. ‘대못을 박아놔서 바꿀 수 없다’는 체념적 논리로는 화려한 수사로 치장한 기업 도시의 비전을 이룰 수 없다. 지역의 산업구조를 고려하지 않고 주력업종을 유행에 따라 수시로 바꾸는 지자체의 근시안적 태도도 금물이다.

무엇보다 드레스덴이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지역의 정체성을 보존하는 것이다. 드레스덴이 잿더미가 된 문화유산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주택과 공장을 지었다면 지금처럼 세계가 주목하고 사랑하는 일류도시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문화는 도시의 이력서다. 도시의 이력서가 매력적이어야 기업이 손을 내밀고 사람이 찾아온다. 기업이 선호하는 입지와 환경은 간단하다. 우수한 인재와 그 가족이 의료, 교육, 쇼핑,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매력이 넘치는 도시, 이것이 기업도시로 가는 일등조건이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201512호 (201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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