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심층취재

Home>월간중앙>특종.심층취재

[심층분석] 취업 레드오션에 빠진 동병상련의 한·일 청년 

“한국은 스펙, 일본엔 ‘매뉴얼’이 지옥” 

김경철 일본 코단샤(講談社) 뉴스잡지 부문 서울통신원
일본, 중소기업 부당 노동행위로 청년 과로사 급증… 대기업 입사는 한국보다 일본이 더 어려워

▎한국 대학생들이 취업활동에서 가장 힘을 쏟는 부분은 단연 ‘스펙’이다. 취업준비생 1인당 평균 5.2개의 스펙을 준비하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일본 후생성의 발표에 따르면 2015년 4월 현재, 일본의 대학 졸업자의 취업률(취업희망자 대상)은 96.7%로 2008년 리먼 쇼크 이전의 수준으로 회복했다고 한다. 구직을 희망하는 대졸자의 약 97%가 직장을 얻을 수 있다니 한국 젊은이들에게는 부럽기 그지없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 내용을 살펴보면 대기업에의 취업은 “여전히 어려운 형편”이며 “취업률은 상승했으나 고용환경은 개선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 후생성의 분석이다.

더구나 이 경이적인 통계에는 한국인은 잘 모르는 숫자의 마술이 숨어 있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대학졸업 예정자를 우선 채용하는 관습이 있어 대학생들은 어떻게든 학교 재학 중에 입사를 확정받기 위해 4학년 신학기부터 본격적인 취업 레이스에 뛰어든다. 그리고 12월이 넘어가도록 회사로부터 내정(입사확정)을 얻지 못하게 되면 다음 연도 채용을 노리고 휴학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하면서 졸업을 유예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12월이 넘어가면서 취업 희망자 수가 급속히 줄어들게 되고 이때부터 취업률이 급등하게 되는 것이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A코씨는 꿈에 그리던 영화사에 취직했다. 처음부터 매스컴업계 지망생이던 A코씨는 방송국과 대형영화사의 면접에서 연거푸 떨어져서 실의에 빠져 있던 참이라 뛸 듯이 기뻤다. A코씨가 입사한 영화사는 외국의 아트영화를 수입·배급하는 회사로 규모가 큰 곳은 아니지만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즐거웠다. 그러나 A코씨의 행복은 6개월 만에 악몽으로 변했다. 매일 밤 12시 넘도록 남아서 ‘서비스잔업’(수당이 없는 잔업)을 하고 휴일에도 영화 홍보를 위해 영화관에 마련된 부스에서 티켓을 팔아야 하는 등 쉬는 날도 없이 혹사당했다. 직장 상사에게 과로를 호소해봤지만 돌아오는 말은 “요즘 젊은 애들은 정신상태가 글러먹었다”는 핀잔뿐이었다. 결국 A코씨는 과로로 인한 불안증세와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6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A코씨의 옛 직장은 일본에서 이른바 ‘블랙회사’로 불리는 곳이다. 블랙회사란 말하자면 “하면 된다” 정신을 강요하고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휴가를 사용할 수 없도록 무언의 압력을 가하고 10명이 해야 할 일을 2~3명이 하도록 채찍질하는 기업이다. 인건비 삭감을 위해 사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전제주의적인 기업문화로 사원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블랙회사가 급증했다. 일본의 취업전문 사이트에서는 매년 블랙회사 대상을 선정, 공개하고 있다. 전 산업성 장관이 블랙회사 퇴치에 앞장서는 사회단체를 만들고, 후생성이 나서서 대기업 중에 블랙회사에 해당되는 기업명단을 공개하고 행정지도를 명하는 등 고용환경 개선에 부심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취업환경 속에서 블랙회사를 선택하게 되는 젊은층의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블랙회사 선택 젊은이들의 피해 급증


▎2014년 3월 일본 도쿄 소재 한 기업에서 치러진 신입사원 입사식. 모두 검은 정장 일색으로, ‘매뉴얼’에 충실한 일본 청년의 취업 풍속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2014년 4월 24일 오전 8시 50분, 야근을 마치고 자전거로 귀가하던 24세의 와타나베 코타 씨가 전신주에 충돌해 사망했다. 원인은 졸음운전으로 밝혀졌는데 와타나베 씨는 당일 22시간을 근무한 후 퇴근하는 길이었다. 그가 근무하던 회사는 식물을 이용한 자연주의 콘셉트로 유명백화점과 호텔 등의 인테리어를 제공하는 디자인회사다. 와타나베 씨는 2013년 대학을 졸업한 후 6개월간의 아르바이트를 거쳐 2014년 3월에 정사원으로 입사했다. 아르바이트 기간을 포함해 그의 초과근무 시간은 한달 평균 100시간, 많을 때는 130시간을 넘기도 했지만, 사망 후에 유족이 밝힌 와타나베 씨의 월급명세서에는 기본급 5만 8천 엔뿐, 잔업수당 등은 한 푼도 없었다.

일본 후생성에서는 2014년부터 과로사방지법을 제정, 시행하고 있는데 이 법에 따르면 시간외 근무시간이 한 달 80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과로사의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매년 1만 명 이상이 과로사 혹은 과로로 인한 자살로 사망하고 있으며 과로사 방지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블랙기업의 퇴출과 근무환경 개선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근무환경이나 대우가 월등히 좋은 대기업에 대한 일본 ‘취준생’의 선호도는 우리나라 못지않다. ‘마이나비’라는 일본 최대의 구직 사이트가 약 2만 명의 대학생(2016 졸업예정자)을 대상으로 조사한 취직하고 싶은 기업은 문과계(인문계) 1위가 JTB그룹(여행사), 2위가 HIS(여행사), 3위가 ANA(항공사), 이과계(자연계)의 인기기업은 1위가 도요타 자동차, 2위가 아지노모토(식품), 3위가 가고메(식품)로 나타났다.

그러나 일본에서 대기업에 취업하기 위해서는 우리보다 훨씬 좁은 문을 뚫어야 한다. 일본의 경제전문지 <동양경제 온라인>의 기사에 따르면 과자, 유제품 등을 생산하는 종합 식품회사로 취준생들에게 인기 높은 메이지그룹의 경쟁률은 2750대 1로 복권당첨보다 어려운 확률이라고 한다. 이 밖에 모리나가 유업이 533대 1, 가고메가 308대 1, 산토리 홀딩스가 275대 1 등 식품관련 회사의 경쟁률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그 이유는 학생들의 선호기업들이지만 채용인원이 한 자릿수에서 수십 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꿈에 그리는 대기업 취직을 위한 그들의 도전은 인턴십부터 시작된다. 일본에는 대학생의 조기취업활동을 금지하는 조치가 마련되어 있다. 빠르면 2학년부터 취업활동에 전념하며 학업을 등한시하는 학생들로 골머리를 썩던 대학들이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에 기업의 채용시기를 늦춰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그 후로 게이단렌에서는 대학생들이 취업활동을 공식적으로 개시할 수 있는 날을 언론을 통해 고지하고 있다. 현행은 3학년 12월부터 대학생들의 취업활동이 해금되는데, 내년부터는 3개월 더 늦춰지게 된다.

인턴십은 취업활동 해금 전인 3학년 8월경부터 시작된다. 일본의 인턴십은 기본적으로 무보수로서 1~2주일 정도의 단기간에 걸친 기업연수다. 복수의 인턴십 체험이 가능하며 인턴십이 끝나면 4학년 4월부터 각종 회사설명회에 참가하여 정보를 입수하는 한편, 엔트리시트(ES)를 교부받아 작성에 들어간다. 일본의 엔트리시트는 우리나라의 입사지원서와 비슷한 형식으로 지원동기와 자기PR을 적는 란으로 구성되어 있다. 토요타 자동차의 2014년도 문과계 신입사원용 엔트리시트의 내용을 잠깐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대학에서 전공한 테마와 그 내용을 기술하시오.(지도교수에 대해서는 15자 내외, 구체적인 테마 내용은 200자로 간결하게 설명하시오)

2. 대학시절에 가장 중점을 두고 활동한 분야는 무엇인지 기술하시오.(활동분야 설명은 15자, 구체적 내용은 400자)

3. 대학시절 팀을 만들어 성과를 낸 경험을 기술하시오.(경험 내용은 15자, 팀내 역할은 15자, 구체적인 설명은 400자)

4. 지원동기와 하고 싶은 업무를 기술하시오.(400자)

5. 주위로부터 당신은 어떤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습니까(30자),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150자)

천편일률의 ‘리크루트 패션’이 횡행한다


▎1. 지난 6월 손정의 소프트뱅크 대표이사 회장이 세계 최초의 감정인식 로봇 ‘페퍼’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일본 취업준비생에게 소프트뱅크 같은 대기업의 입사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 2. 전자기판을 조립하고 있는 일본의 고령 근로자. 일본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청년 취업 확대와 고령자 근로기간 연장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취준생들이 엔트리시트의 작성에서 내용만큼이나 중요시하는 것이 어떻게 제출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각종 취업사이트에서 자세한 매뉴얼을 제시한다. 1. 서류는 접지 않는다. 2. 서류는 클리어파일에 끼워 넣어서 봉투에 넣어 서류가 구겨지거나 비에 젖지 않게 한다. 3. 봉투는 흰색의 A4사이즈를 사용한다. 4. 우편접수 시에는 제일 앞에 서류의 내용과 자기이름과 소속, 받는 사람, 인사말 등이 첨가된 송부장을 끼워 넣는다. 5. 직접 내사하여 제출할 때는 접수원과 눈을 맞춰 인사한 후 제출한다 등등.

서류평가를 통과하게 되면 필기시험과 면접을 치를 수 있다. 면접은 보통 2, 3차에 걸쳐서 진행되며 직후 기업은 최종적으로 필요한 인재를 선발하여 내정을 통보한다. 평균적으로 5월부터 입사를 위한 서류심사가 실시되고 8월 말까지 각 기업이 지원자에게 채용 여부를 통보하는 스케줄로 이루어진다.

취업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고비는 역시 면접이다. 각 취업 사이트에서도 면접 기술에 대한 전문가나 선배의 조언이 가장 많이 소개된다. 그중 대부분은 ‘리크루트 패션’이라는 복장과 화장술에 대한 매뉴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1. 베스트는 역시 리크루트 슈츠!(감색의 정장으로 여학생은 바지 대신 스커트), 남학생은 사선의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넥타이가 무난하고 여학생은 심플한 블라우스를 받쳐 입는 것이 단정한 인상을 준다. 2. 손목시계를 착용하는 것이 좋은데 글자판은 검은색이나 흰색이 베스트이며 푸른색까지는 무난하게 받아들여진다. 시계벨트는 메탈소재를 사용할 것을 추천!(디지털 시계는 NG) 3. 헤어스타일은 염색·탈색은 금기, 되도록 짧고 단정한 스타일을 추천. 여학생은 페이스 라인이 보이도록 하는 것이 포인트! 뒤로 단정히 묶는 것이 좋은데 너무 높이 묶게 되면 치어리더 같은 인상을 주게 되므로 NG. 4. 가방은 A4 사이즈 서류가 들어갈 정도 크기의 검은색의 무늬 없는 스타일을 지참한다. 5. 여학생의 메이크업은 신뢰감과 청결감을 높여줄 수 있는 방향으로. 구체적으로는 아이라인은 두껍지 않게, 아이섀도는 카키색은 금지(눈이 부어 보임), 펄감이 있는 아이섀도는 섹시해 보이기 때문에 비즈니스 화장술로는 적합하지 않다. 파운데이션은 자기 피부보다 밝은 색은 금지하며, 눈썹은 입술과 눈을 일직선으로 연결한 선에서 마무리해야 지성적이며 신뢰감을 주는 인상이 된다. 입술화장 역시 펄감은 사용하지 않고 핑크와 베이지의 중간색이 무난하고 안정감을 준다….

신학기가 시작되는 4월, 대기업의 본사빌딩이 즐비한 마루노우치(丸の內) 거리는 만개한 벚꽃 아래로 리크루트 슈츠로 몸을 감싼 이른바 취준생이 흘러넘친다. 이들은 취업을 위한 온갖 매뉴얼로 무장하고 같은 옷, 같은 신발, 같은 가방을 메고 똑같은 미소를 띠며 대기업의 문을 두드린다.

한편 날로 심화되는 취업난으로 고통받는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전쟁과도 같은 취업시험을 치러내야만 한다. 통계청의 ‘2015년 3월 고용동향’에 의하면 대졸 실업자 수가 50만명(9.5%)을 넘어서 IMF 이래 최악의 취업상황에 이르렀다. 더구나 한국경제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고학력 남성 청년층(15세∼29세)의 올 1∼8월까지 체감실업률 평균은 27.9%로 실제 실업률의 약 2.9배에 육박한다고 한다. 취업환경이 척박하다 보니 취업을 준비 중인 젊은층에서는 취춘기(취업 사춘기), 인구론(인문계 90%가 논다), 청년실신(청년 실업자나 신용불량자), 장미족(장기간 취업을 못한 사람), 이케아세대(뛰어난 능력과 스펙에도 대우를 못 받는 세대) 등과 같이 비관적인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취업활동에서 가장 힘을 쏟는 부분은 단연 스펙일 것이다. ‘대학내일 20대 연구소’가 취업준비 중인 대학생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취준생들은 1인당 평균 5.2개의 스펙을 준비하고 있으며 취직을 위해 사교육을 받고 있는 비율이 절반에 이른다. 또한 그들이 스펙 교육을 위해 사용하는 돈은 평균 130만원을 넘어선다.

취업에 필요한 ‘8대 스펙’에 얽매인 청춘


▎대기업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한 대학 졸업생의 애잔한 뒷모습. 밥값 아끼려 집과 도서관 열람실 오가며 종일 공부한다. 그렇게 열심히 해도 취업길은 오리무중이다.
서울의 4년제 대학 국제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박준수(26) 씨는 하루에 4시간 이상을 외국어자격증을 따는 데 투자한다. HSK(중국어능력시험), OPIC(영어화회시험), 한자검정시험을 위해 오전부터 종로의 어학원을 배회한다. 어학원 비용만 한 달에 50만원이 넘게 들어간다. 여기에 겨울방학이 되면 국제무역사 자격증 공부를 시작할 계획이고 아프리카 케냐로 어린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단기 해외봉사도 다녀올 생각이다.

“지금까지 유통회사 8군데에 원서를 냈지만 모두 서류전형에서 탈락했습니다. 선배들의 충고를 들어보면 토익 외에도 어학자격증이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영어회화시험과 중국어자격증을 따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어학연수는 작년에 다녀왔고 올해는 해외봉사를 다녀올 생각입니다. 평소에 시간을 낼 수 없어서 자원봉사 시간이 부족하거든요. 친구들은 몽골로 많이 떠나던데 이왕이면 남들이 많이 안 가는 곳이 유리하지 않을까 싶어서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신청을 해놨습니다.”

대학가에서는 취업에 필요한 ‘8대 스펙’이란 말이 있다. 학벌, 학점, 어학연수, 토익, 공모전, 자격증, 인턴, 봉사활동이다.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 지난 10월, 한국의 30대 기업 중 공기업을 제외한 22개 주요 기업의 채용실태를 분석한 결과, 20곳이 신입사원 채용 때 대학 졸업자나 졸업 예정자 이상으로 학력을 제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대상 기업 모두가 자격증과 어학 점수 등 이른바 ‘스펙’을 요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22개 기업 모두가 자격증과 어학 점수 기재란을 두고 있으며, 수상경력이나 해외연수·교환학생 경력을 요구하는 곳도 14곳이나 됐다.

이런 취업환경 속에서 나 홀로 호황을 구가하는 산업이 취업준비생을 대상으로 하는 사교육시장이다. 영어와 함께 외국어 스펙으로 인기가 치솟고 있는 중국어교육시장은 매년 6천억원 규모로 급성장하고 있으며, 영어교육 역시 기존의 토익, 토플 등과 더불어 OPIC, 토익스피킹 등의 영어회화 자격증까지 등장하면서 크게 성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강남과 종로 일대에 면접기술과 ‘자소서’ 쓰는 법 등, 취업전반을 지도해주는 이른바 ‘취업컨설팅 학원’이라는 값비싼 취업 전문 학원이 성행하고 있다. 스토리텔링과 인성, 토론 등 8가지 면접대응 방법을 지도해주고 자기소개서 첨삭 등을 지도해주는 토탈과정을 수강하는 데는 수백만 원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서울 인근의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한송이(25) 씨는 취업 재수생이다. 방송관련업이 꿈인 그녀는 케이블과 종편의 기상캐스터를 지원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탈락 이유가 자신의 학벌에 있다고 판단한 그녀는 눈에 띄는 스펙을 고민하다 한 인터넷 카페가 주최한 워크숍에 참석한 일을 계기로 자비출판을 도와주는 글쓰기 코칭학원에 등록했다. 저서가 있으면 방송업계 진출이 유리하다는 말에 솔깃한 것이다. 1천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학원에 가입했지만 비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1천만원은 코칭비용이고 출판을 위해서는 또 수백만 원에서 1천만원을 내야 한다고 했다. 출판사 정보가 들어있는 다이어리까지 수백만 원에 사라고 강요하는데 더 이상 부모님한테 손을 벌릴 수도 없고 해서 저축은행에서 연이자 30%로 500만원을 대출을 받았다. 지금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로는 돈 갚을 길이 없어서 단기간에 목돈을 벌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고 있는데 그런 일을 찾기가 쉽지 않다.”

스펙과외가 고금리 부채 부른다


▎지난여름 경북대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주최 ‘2015 주요 그룹 지역인재 채용설명회’. 학생들의 긴장된 표정에서 청년 취업의 높은 장벽을 실감할 수 있다.
스펙과외나 각종 생활비를 위해 높은 금리로 빚을 내고 있는 청년들도 급속히 늘어난다. 신용회복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20대 개인 워크아웃 신청자 수는 1957명으로 전년 동기(1649명)보다 18%나 증가했다. 세대별로 개인워크아웃 신청자를 분석한 결과 20대 연령층에서만 유일하게 매년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20대의 49.4%가 제2금융권 대출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담보나 직업이 없어서 은행권 대출이 힘든 취업준비생들이 고금리의 제2금융권의 유혹에 쉽게 빠져서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경우도 적지 않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올해 말까지 20대 개인 워크아웃 신청자가 7천 명을 돌파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들어서 무분별한 스펙 쌓기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높아지자 많은 대기업들이 입사 시에 스펙을 보지 않겠다는 이른바 ‘노스펙’을 선언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취업과 진로를 지도하는 한국경영리더십컨설팅의 김형환 대표는 스펙에 의존하는 젊은이들의 취업활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취업을 수능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토익점수가 얼마니까 어느 회사까지 지원할 수 있고, 학벌이 이 정도니까 저기는 안 되고 하는 방식으로 스펙에 맞춰 입사할 회사를 고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기업이 보는 것은 지원자들의 스펙이 아닌 일하려는 의욕이다. 어느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지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를 먼저 생각해보고 그에 맞는 경험치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

한 대기업의 인사담당자 역시 입사지원서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은 스펙이 아닌 ‘성실성, 자신감, 사회성’이라고 강조한다. “해외봉사를 다녀오고 공모전에 합격하는 등의 반짝 경험보다 적어도 1년 이상 꾸준히 한 가지 일에 몰두했던 자기관리 경험이 있는 인재를 선호한다. 토익점수가 높은 것보다 영어는 서툴어도 모르는 외국인에게 볼펜 한 자루를 팔 수 있다는 자신감이 중요하다.”

청년층의 취업난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가장 심각한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인생의 출발점에서부터 어긋나버린 청년층들을 위한 대책에 정부도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좀처럼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햇살론, 청년희망펀드, 임금피크제 등 우리 정부가 내놓고 있는 청년 일자리 활성화 대책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처방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청년실업은 실업 상태에 있는 당사자에게 큰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줄 뿐 아니라 국가와 사회에도 상당한 짐이 되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이 추정한 바에 따르면 25세 청년이 1년간 실업 상태로 있을 경우 그 1년간 못 받는 봉급, 즉 단기 소득은 약 3700만원 감소하고, 평생 소득은 약 2억 7천만원 감소한다고 한다. 개인의 소득 감소는 국가 소득과 세금의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청년실업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에도 문제다.

취업보다 창업에 눈 돌리는 중국 청년

기획재정부는 지난 7월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대책’을 통해 3년간 20만 개 이상의 일자리 기회를 창출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이 중 과반 이상의 일자리가 청년인턴, 직업훈련, 일·학습병행 등의 비정규직으로 실효성에 의문에 제기되고 있다. 청년 실업자가 올해 4월말 현재 44만5천 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20만 개의 일자리는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수의 전문가는 청년실업의 근본 원인이 경기불황 등의 경제문제보다 ‘초고학력 사회가 빚어낸 노동시장의 미스매치(수급불균형)’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양질의 일자리와 노동인력 간의 불균형은 더욱더 벌어질 것이고 청년실업은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으리란 지적이다. 김형환 대표는 청년실업의 해결책으로 창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중국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해보면 학생들의 질문 대부분이 창업에 관한 것이다. 취업에만 관심을 갖는 우리나라 청년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대기업 취업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장래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내가 잘하는 분야에 도전해보는 정신이 필요하다. 10년 후 우리나라의 우수한 인재들이 좋은 기업에 취직해 있을 때 그 기업의 소유주는 중국인이 될 수도 있다.”

이기석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는 청년창업 기업에 기업의 투자가 부족한 이유로 ‘심각한 정보의 비대칭(information asymmetry) 현상’을 지적한다. 우리나라 거의 모든 대학과 연구소에 설치돼 있는 창업보육센터에 축적된 소중한 기업정보가 거의 활용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은 일자리를 창출하거나 이윤을 창출하는 기관이 아닌 교육·연구기관이라는 고정관념도 문제다. 이 교수는 “미국 스탠퍼드대 인근 실리콘밸리, 하버드대와 MIT대 인근의 128가길 주변이 얼마나 많은 고급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인재들의 열기와 열정으로 뜨거워야 할 우리나라 소위 ‘SKY대’ 인근이 쇠락한 고시원과 음식점, 커피점으로 채워져 있는 현실이다. 이 같은 모습이 대량 실업, 빈곤, 창업이란 청년 경제의 현주소를 웅변하고 있다.

- 김경철 일본 코단샤(講談社) 뉴스잡지 부문 서울통신원

201601호 (2015.12.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