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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화제] 이케아 신드롬’ 1년 

“시장 더 키우고 라이프 스타일도 바꿔” 

박재원 서울경제신문 기자
한국 진출 1년 만에 ‘메기효과’, 2015년 가구시장 2년 전보다 2조원 증가한 10조원대 기록… 중국산 가구 수입 역대 최고치 기록 등 국내업계 위협 요소는 여전해 상존

▎현대리바트의 ‘리바트스타일샵 분당전시장’에서 손님들이 프라이팬을 살펴보고 있다. 최근 가구업체들은 가구는 물론, 다양한 홈퍼니싱(Home Furnishing) 제품을 구비한 대형 매장을 출점하고 있다. / 사진제공·현대리바트
2014년 12월에 세계 최대 규모로 문을 연 이케아 광명점. 개점 직후 첫 번째 주말에는 오전 11시가 되기도 전에 최대 수용인원인 5600명의 인파가 쇼룸(Show Room)을 가득 채워 화제가 됐다. 가족과 연인, 친구끼리 삼삼오오 이곳을 찾은 고객들은 정원 초과로 입장이 통제됐지만 쇼룸을 둘러보려고 긴 줄을 서기도 했다. 매장은 커녕 주차장 진입하는 데도 1시간이 넘게 결렸다는 사람이 넘쳐났다. 이날 이케아 광명점을 찾은 고객 수는 4만5천 명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

‘가구공룡’으로 불리는 스웨덴 가구 브랜드 ‘이케아(IKEA)’의 힘을 실감나게 한 일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저렴한 가격’과 ‘세련된 디자인’으로 사랑받는 이케아의 한국시장 진출 과정은 ‘교통대란’, ‘상생 불통’, ‘국내 가격차별’ 등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소비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케아의 한 관계자는 “여러 논란이 수없이 재생산되면서 가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이케아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가구도 특별하지만 마케팅 방법도 특이하다. 이케아의 콘셉트는 ‘단순한 가구’가 아닌 ‘라이프 스타일’을 판다는 것이다. 덕분에 결혼 시즌이나 이사철에 집중됐던 가구 소비패턴은 이케아 진출 1년 만에 180도 바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선 이케아 ‘한국 진출 1년’을 ‘메기효과’라고 정의한다. 메기 한 마리를 미꾸라지 어항에 집어넣으니 미꾸라지들이 메기를 피해 다니느라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생존력이 강해졌다는 의미다.

창고형 매장으로 꾸며진 이케아 광명점은 매장 면적만 5만9천㎡(연면적 13만1550㎡)에 달한다.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인 이곳은 전 세계 이케아 매장 가운데 가장 크다고 한다. 가구는 물론 각종 생활용품을 비롯해 미트볼, 볶음밥과 같은 음식까지 판매한다. 가구 판매 품목만 8600여 개. 매장을 둘러보고 끼니를 해결하다 보면 한나절이 훌쩍 지난다. 매장에서 만난 김봉준(45) 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쇼룸도 둘러보고 점심도 먹을 겸 이케아를 찾았다”며 “생각했던 것보다 매장이 크고 판매하는 물건이 다양해 하루 종일 둘러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왜 ‘이케아 스타일’에 열광하나


▎엄마·아빠와 나란히 세수하고 양치할 수 있게 꾸며진 세면대. / 사진제공·이케아
이케아 진출 1년 동안 매장을 찾은 누적 방문객 수는 1천만 명에 이른다. 한 통계에 따르면 이케아 광명점 고객 중 70%가 물건을 사지 않고 구경만 하는 ‘윈도쇼핑(Window-Shopping)’을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쇼핑몰의 가수요 고객이 30~40%에 머무르는 점을 감안하면 지갑을 여는 고객은 적은 편이다.

하지만 이케아의 매력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인터넷쇼핑몰의 발달로 손쉽게 가구를 구입하는 시대가 됐지만 여전히 집 안에 들이는 가구 하나를 구매할 땐 많은 고려를 해야 한다. 가구 매장을 둘러보고 심사숙고한 끝에 고가 가구를 구매하는 전통적인 구매패턴에서 벗어나 소소한 생활소품 하나라도 직접 구매하는 습관이 ‘이케아’의 등장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값싸고 세련된 이케아 가구·생활용품의 강점이 소비자들의 인테리어에 대한 의식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굳이 가구를 사지 않더라도 쇼룸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고 가구가 하나의 매개가 돼 즐길거리를 마련한 셈이다.

이케아가 내세우는 것은 ‘박리다매(薄利多賣)’다. 값비싼 가구를 지양한다. 유학생들이 해외에서 짧은 기간 사용하고 버릴 가구를 구매할 때 주저 없이 이케아 매장을 찾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담 없이 사용하고 고민 없이 쓰다 버린다.

이케아가 국내에서 판매하는 10개 가정용 가구 제품 중 9개가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1개국의 평균 가격보다 비싼 것으로 밝혀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이케아를 찾는다. 마음에 드는 물건의 제품명과 제품번호를 메모해야 하는 수고로움은 낯선 경험으로 대체된다. 직접 가구를 조립해야 하는 불편함은 DIY(Do-It-Yourself) 열풍을 일으켰다.

이케아는 또 점차 음식사업을 확대해 매장을 찾는 즐거움을 더하고 있다. 최근에는 채식주의자들을 위해 전 세계 매장에서 ‘베지 볼’을 판매한다. 이케아 음식사업부의 관리이사인 미카엘 라 쿠르는 “우리의 목표는 우리 가게에 더 많은 사람이 방문하도록 하는 것”이라면서 “베지 볼은 우리 고객에게 더 많은 음식 선택권을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케아의 음식사업 부문은 2014년 이케아 전체 매출의 5% 수준인 15억 달러(약 1조636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추후 소프트 드링크와 냉동 요구르트도 판매할 예정이다.

이케아는 여세를 몰아 2016년 초 국내 2호점인 이케아 ‘고양점’의 착공에 들어간다. 2018년에는 서울 강동구 고덕 상업업무복합단지에도 이케아 매장을 신설하는 등 2020년까지 점포를 4개로 확대할 계획이다.

국내 가구업체도 덩달아 ‘콧노래’


▎체리쉬는 쇼룸을 고객의 실제 주거공간처럼 꾸밈으로써 제품 구매는 물론 일상에서 활용 가능한 공간 연출 방법을 손쉽게 접할 수 있도록 매장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소파로 공간을 분리한 3인 가족 거실. / 사진제공·체리쉬
이케아가 국내에 진출한다는 소식에 일각에서는 국내 가구 업체들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하지만 최양하 한샘 회장은 당시 “제품 품질, 고객 서비스 부분에서 (한샘이 이케아보다) 앞선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이케아가 많은 장점을 가진 데 비해 대형매장에 한정된 비즈니스 모델, 택배·시공서비스 부재 등 단점도 있다”며 “반면 한샘은 택배·시공서비스는 물론 직매장, 인테리어, 온라인, 홈쇼핑 등 다양한 유통채널을 갖추고 있고 이케아보다 품질도 좋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의 이런 자신감은 2015년 한 해의 실적에서도 나타난다. 한샘의 3·4분기까지 매출은 1조2429억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31.2%나 늘었다. 과감한 투자, 공장 자동화를 통해 가격경쟁력을 갖춘 한샘은 이케아 고객들이 대부분 생활용품을 구매한다는 점을 고려해 생활용품 전문 매장 ‘한샘홈’을 새롭게 론칭하는 등 묘안을 짜냈다.

전체 판매 품목 가운데 10%에 불과했던 생활용품 비중도 점차 끌어올리고 있다. 대규모 매장으로 유명한 이케아 광명점과 경쟁하기 위해 대형 직영점 비중도 늘렸다. 2014년 8월 개장한 대구범어점은 연면적 9200㎡의 크기를 자랑한다. 한샘 관계자는 “현재 전국 7곳에 마련된 대형 직영점을 2020년까지 15개로 늘릴 계획”이라며 “이케아가 국내에 입점하기 전부터 대형 매장을 늘리고 중소 도시에 매장을 입점시키는 등 유통 채널을 강화한 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한국가구산업협회에 따르면 부동산 경기침체, 내수불황 등 소비자들의 지갑이 닫히면서 2013년 연 8조원 규모로 줄었던 국내 가구시장은, 2015년 말까지는 2009년 수준인 10조원대를 회복할 것으로 내다본다. 지난해 2조5천억원 규모였던 소품 분야도 이케아 효과에 힘입어 대폭 시장이 커질 전망이다.

가구업계 관계자는 “이케아 덕분에 생활소품 등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업체들이 앞다퉈 생활소품 전문 브랜드를 출시하고 있다”며 “당분간 인기는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대리바트도 생활소품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샘이 만든 ‘한샘홈’과 같은 생활소품 전문 브랜드 ‘리바트 홈’을 출시하기도 했다. 현대리바트의 2015년 매출 역시 전년도의 4912억원보다 100억원가량 늘어난 5084억원을 3·4분기까지 기록했다. 현대리바트 관계자는 “1600개 수준인 생활소품군을 2020년까지 5500여 개로 늘릴 계획”이라며 “생활소품 매장도 2020년까지 60곳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까사미아도 울산·포항·김해·진주·마산 등 전국 각지 대리점을 확장했다. 경쟁사들 몸집이 커진 까닭에 이 회사 역시 체급을 맞춰 높이고 있다.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것에서 벗어나 가구를 느끼고 즐기는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직영점에서만 운영되던 까사미아 레스토랑 ‘까사밀’도 일부 대리점까지 확대해서 운영한다.

이케아 1호점이 시작된 광명에는 까사미아 가구와 소품으로 가득한 비즈니스호텔도 짓는다. 호텔 방을 쇼룸처럼 꾸며 고객들이 자사 제품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2011년 4월 압구정 직영매장 옆에 비즈니스호텔 ‘라까사’를 세운 바 있다.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건자재 업체도 함박 웃음을 짓고 있다. KCC가 대표적이다. KCC는 인테리어 브랜드 ‘홈씨씨인테리어’ 매장을 2015년에만 7개 열었다. 2015년 8월 서울 서초동 KCC 본사 1층에 개장한 ‘홈씨씨 인테리어’ 1호점은 주부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최근에는 대구달서점을 열어 포항, 창원, 마산 지역 고객까지 공략한 상태다.

반발했던 ‘가구거리’도 생존전략 모색

하지만 이케아 매장이 들어선 광명시의 가구업체들은 여전히 볼멘소리를 한다.

“이케아보다 비싸네요?” 광명가구거리에 위치한 소규모 가구업체들은 하루에도 이런 얘기를 수시로 듣는다고 한다. 가구원자재, 무료배달 등 이케아와 다른 점들을 소개할 여유도 없이 듣는 얘기란다. 이케아의 한국시장 진출로 경기도 광명지역 가구점 상인 2명 중 1명은 매출이 줄었다고 호소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이케아 광명점 개점에 따른 지역상권 영향실태’를 6개 관련 업종 중소상인 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이케아 입점 이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매출이 줄었다는 응답이 55%였다. 이들의 평균 매출감소율은 31.1%에 이른다. 매출이 감소했다고 응답한 비중이 높은 업종으로는 ▷가정용 직물제품 소매(76.9%) ▷가구소매(71.8%) ▷식탁 및 주방용품 소매(71.4%)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케아가 가구전문점이라는 기존 인식과는 달리 침구 등 직물제품 및 주방용품 소매점의 매출감소 비중이 매우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들 상인들은 이케아 입점이 광명지역 상권에 도움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84%가 ‘아니다’라고 응답했다.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로는 ▷‘매출하락에 따른 경영상황 악화(78.0%) ▷지역자본의 역외유출(38.1%)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중국산 가구 수입이 크게 늘어난 것도 우려할 점이다. 관세청은 2015년 초 가구 수입액이 6억4600만 달러로 2014년 동기 대비 16% 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 기간 중국산 가구 수입액은 4억2200만 달러로 전체의 67%를 차지했다. 중국산 가구 수입이 급증한 이유는 이케아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케아는 국내에 생산 공장을 두지 않고 모든 제품을 중국 등 해외에서 만들어 판매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게를 접고 다른 일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한 가구업체 사장은 “가구 품질이나 무료 배송·설치·애프터서비스 등에 드는 비용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이케아가 싸다고 예약을 취소하거나 매장을 방문해서도 이케아와 단순 비교하는 손님이 많다”며 “비용 절감을 위해 물류창고도 없애고 주변 업체끼리 공동 용달·사다리차를 이용하면서 살 길을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영세업체들은 머리를 맞대고 생존의 문제를 고민한다. 인천의 한 가구매장은 복잡한 유통과정을 없애고 소비자와 생산자 간의 ‘직거래’ 방식을 채택해 소비자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매한다. 가구생산업체 100여 곳이 ‘소비자공동가구협동조합’을 꾸려 중간 마진을 생략한 것이 비결이다.

매장 구성을 바꾸거나, 온라인 주문을 활성화해 대형 가구 매장이 아니어도 클릭 한 번이면 주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곳도 있다. 이케아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직접 조립의 불편함, 비싼 배송 비용 등을 이용해 마케팅을 펼치는 사례도 늘어간다. 업계 관계자는 “이케아 매장이 계속 늘어날 전망이어서 대형 가구업체는 물론 영세업체들도 자신만의 강점을 개발하고 있는 과도기”라면서 “1년 새 국내 가구업계가 몰라보게 변화했다”고 분석했다.

- 박재원 서울경제신문 기자

201601호 (20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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