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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언어학적 재능이 재해석한 신의 메시지 

 

성경이란 텍스트 안에서 은유되는 진리의 편린을 좇는 여행… 비교종교학에 능통한 저자의 역량 유감없이 발휘된 책

종교에 대한 회의와 불신이 가득한 시대다. 혹세무민의 세뇌가 횡행하고, 마치 주식회사처럼 운영되는 종교단체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영성(spirituality)’과 같은 말에 머리를 흔든다. 객관적 진리를 담을 수 없는 신비주의에 정신을 의탁할 순 없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 신자가 급감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온 지도 오래다. 니체는 “이 세상에 크리스찬은 단 한 명 존재했는데, 그는 2천 년 전에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고 냉소했다. 이런 냉소에 공감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난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성경을 생명력을 소진한 텍스트로 보아선 안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 종교학자에 의해 매우 진지하게 제기된 외침이다. 서울대 종교학과 배철현 교수가 최근 펴낸 <신의 위대한 질문>과 <인간의 위대한 질문>이다. 두 권의 책 모두 지난 3년에 걸쳐 <월간중앙>에 연재된 글을 모은 것이다.

한국에서 기독교의 성경을 이 정도 수준으로 해석한 책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기적과 같은 일이다. 비교종교학과 비교언어학에 능통한 배 교수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성경이란 텍스트에서 생명력을 발견하려는 그의 염원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배 교수는 우리에게 종교적 맹신으로부터 해방될 것을 주문하며, 성경이란 텍스트 안에서 은유되는 진리의 편린을 좇을 것을 제안한다.

<신의 위대한 질문>은 기독교의 구약성서, <인간의 위대한 질문>은 신약성서를 ‘질문’ 중심으로 풀어간다. 신이 인간에게, 인간이 신에게 서로 제기하는 질문들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나는 어디에 있느냐’, ‘모든 것을 버리고 고향을 떠날 수 있나’, ‘나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등등. 신은 우리에게 명령하기보다는 질문하는 존재다. 그 앞에서 무릎 꿇고 회개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세미나를 통해 함께 진리를 추구하는 배움의 파트너다.

예컨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 중 하나인 ‘회개’를 탐문해보자. 저자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를 그리스어 원문의 정신에 충실하게 번역하면 이런 뜻이 된다고 알려준다. “네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네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을 바꾸어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성찰하라는 것이다.

만일 니체가 배 교수의 이 책을 읽었더라면 과연 공감했을까? 그리스어와 라틴어에 능통했던 니체가 성경을 어떤 텍스트로 읽었는지도 궁금하다. 니체의 반그리스도주의가 어떤 맥락을 통해 형성되었는지, 배 교수의 언어학적 재능은 능히 포획할 수 있을 것 같다. <마태복음> 14장 14절에 보면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서,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 가운데서 앓는 사람들을 고쳐주셨다”고 돼 있다. ‘불쌍히 여김’의 원어는 ‘내장을 쥐어짜는 아픔을 느낌’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처지가 안 되고 애처롭다’ 정도를 넘어선 처절함이다. 새로운 느낌의 텍스트가 탄생하는 것이다. 하버드대에서 세계 최초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 고전문헌학을 동시에 전공한 저자의 학문적 스펙트럼이 놀라울 따름이다.

-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201601호 (20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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