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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홍사덕의 문명수필 

“시간이 없다. 남과 북이 행동해야 한다” 

홍사덕
북한 핵·미사일 동결할 경우 남한이 국제사회 대북 제재를 풀도록 설득해야… 남한의 여윳돈 북한에 돌리면 북한 경제의 활로 열고 남한도 청년실업·저성장 해소

▎남북 분단으로 끊어졌던 동해선이 57년 만인 2007년 다시 이어졌다. 당시 시범운행에 나선 동해선 북한 열차가 금강산역을 출발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강원도 제진역을 향해 달리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난 옛날사람이라 손으로 썼소이다.” 문명수필가 홍사덕(72) 씨는 오랜만에 펜을 들었다며 보내온 육필 원고 맨 앞장에 이런 글을 남겼다. 그는 북핵과 미사일 문제에 가로막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남북관계에 대한 단상을 수필 형식으로 풀었다고 했다. 북한 핵 문제는 폐기보다는 동결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는 게 더 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도 실행에 옮겨질 때 더 큰 울림을 남긴다고 강조했다. 원고를 넘겨받은 이틀 후 북한 수소폭탄 실험 발표(1월 6일)가 있었으나 필자는 내용을 수정할 필요가 없다고 알려왔다.

얼마 전 TV에서 재미있는 프로를 봤다. 부부가 된 남북한의 남녀 여러 쌍이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사회자가 탈북자 여성에게 남쪽 남자들에 대한 인상을 물었다. 순간 걱정이 되었다. 오랫동안 탈북자들 뒷바라지를 해와서 무슨 답이 나올지 짐작이 갔던 것이다.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 이후 전방지역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이 재개되는 등 남북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아니나 다를까 바로 그 말이 나왔다. “남한 남자들은 뭐랄까, 간사해요. 말하는 게 도무지 간사해서….”

북한 출신 남녀가 일제히 “맞아, 맞아” 하자 남측의 신랑들은 머쓱하고 계면쩍은 표정이 역력했다. 분위기를 바꾸려고 노련한 사회자가 남측 남편 가운데 한 사람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아주 솜씨 있게 처리해줬다.

“상대방 입장을 배려해서 완곡하게 말하니까 그렇게 들린 모양이지요.”

그때였다. 연극에서 장길산역을 맡으면 딱이겠다 싶은 북녘 출신 청년이 부인에게 하는 말이 오롯이 전파를 탔다. “야, 말 한번 진짜 잘한다야!” 그 바람에 모두 웃음이 터졌고 민망했던 국면은 그럭저럭 넘어갔다.

북한 동포들의 직정적인 말투와 성격 그리고 행동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덕분에 통일의 길이 막히지 않았음도 사실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그들이 우리가 미국에 기대듯이 중국이나 러시아에 기울어졌더라면 통일의 길은 이미 막혀버렸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통일은 대박’이라지만 후속 설명이…


▎지난해 8·25 남북고위급 합의를 도출해낸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홍용표 통일부 장관, 김양건 당시 북한 노동당 비서,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오른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 사진제공·통일부
충칭(重慶)시 인구 2800만보다도 적은 북한을 중국이 단일 시장으로 편입, 통합시키는 것은 사실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 그랬더라면 한반도 통일은 몽고와 내몽고의 통일만큼이나 지난해지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 동포들은 고난의 행군 때 그 호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자립·독립 경제를 지켜내었다. 북한 동포들에게 우리는 마땅히 감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요즘은 자주 260년 전에 죽은 몽테스키외의 혜안에 감탄과 찬사를 보낸다. 그는 <법의 정신>에서 남북한 주민의 성격 차이를 아주 리얼하게 썼다. 추운 지역과 농사하기 좋은 따뜻한 지역 주민들의 성격차이를 쓴 대목에서다. 중국 북부지방 사람들이 도전적인데 반해 남부지방 사람들이 게으르다고 쓴 다음 한반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남한 사람들은 북한 사람만큼 용감하지 못하다”(Those in the south of Korea, have less bravery than those in the north.)

이 글을 굳이 인용한 데는 이유가 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북한이 자존·독립을 지켜내는 게 언제까지 가능할지 불안해서다. 중국은 이미 G2국가다. 과거 그 비슷한 지위에 있었을 때 중국이 한반도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살펴보면 모골이 송연해지기 때문이다.

먼저 쿠빌라이 때의 일이다. 추밀원의 마희기(馬希驥)라는 대신이 건의한 내용이다. 원사(元史)에 나오는 기록이다. “고려는 원래 신라·백제·고구려 3국으로 갈라져 있던 나라다. 번진은 갈라져 있어야 제압하기 쉽다. 고려왕으로부터 지방별로 호구 조사대장을 제출받아 왕을 하나 더 세우는 게 좋겠다.” 일본 원정을 빌미로 출병한 다음 고려 땅에 몇 개의 군현을 두자는 다른 대신의 의견에 맞서서 상주한 내용이었다.

원은 결국 함경남도 영흥에 쌍성총관부를, 평양에 동녕부를 두고 자비령 이북을 직할지로 병탄했다. 공민왕이 힘들게 이 땅을 수복했지만 조선왕조가 시작되자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이 옛날 원나라 땅을 내놓으라고 해서 다시 한번 애를 먹였다. 임진왜란 때 강화담판에 나섰던 심유경이나 그로부터 300년 후 조선의 종주권을 지키려 했던 리훙장(李鴻章)의 인식은 완전히 일치했다. 리훙장의 말은 기록으로 남아 있다.

“조선은 우리나라(大淸)의 울타리입니다.”

통일과 관련된 남북 지도자들의 말씀 가운데 단연 으뜸은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은 대박”일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어떤 동맹도 민족보다 나을 수는 없다”가 그 다음이 아닌가 싶지만 ‘통일대박’에 비하면 레토릭에서나 미래지향성에서나 뒤처진다. 북한 지도자들의 통일담론은 늘 전쟁을 배경으로 전개된 것이어서 안 듣느니만 못한 게 대부분이다.

그런데 “통일은 대박이다”라고 크게 외친 이후 기묘한 일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왜 대박인지를 묻는 질문도, 왜 대박인지를 들려주는 설명도 일절 없는 것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에 질문도 설명도 없는 것과 비슷한 정황이다. 그러나 이 둘은 본질이 다른 명제다. 질문과 치열한 토론이 있어야 실천계획이 나오는 정치·사회·경제·문화의 통합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통일이 대박인 이유는 엉뚱한 데서 다소 괴이한 방식으로 나왔다. 10년 만에 4200%의 수익률을 올렸다는 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가 “전 재산을 북한에 투자하고 싶다”고 말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김일성이나 김정일 시대라면 투자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2007년 이래 싱가포르에 둥지를 틀고 있는 그의 눈에 김정은은 “개혁·개방을 시작했고”, 풍부한 자원과 양질의 저임금 노동력이 있는 북한은 지상 최고의 투자적격지로 비쳐졌다는 얘기다. 김정은에게는 불유쾌한 소리겠지만 남한과 합쳐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았다.

로저스는 인도 투자에 대해 거의 악담 수준의 전망을 내린 반면 대(對)중국 투자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었다. 한데 그런 그가 북한이 중국보다 더 폭발적인 성장을 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중국은 1980년부터 2010년까지 30년 사이에 13% 이상 성장한 햇수가 6년, 10~13% 성장이 9년, 8~10% 성장이 9년인 경이적 기록의 나라다.

김정은, 덩샤오핑의 포석을 따르다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유엔 안보리의 추가적인 조치를 포함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사진·중앙포토
로저스가 김정은이 개혁·개방을 시작했다고 판단한 것은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몇 가지 정보를 살펴본 끝에 내린 결론이 아닌가 한다. 김정은은 집권하자마자 농업개혁에 착수했다. 그것은 덩사오핑(鄧小平)의 농업개혁이나 1980년대 중반 베트남에서 했던 것과 닮은꼴이었다. 농가마다 논밭을 나눠서 맡긴 다음 나라에 30~40%를 바치고 나머지는 마음대로 처분토록 허용하는 내용이었다.

극히 제한된 정보이긴 하나 농업개혁은 분명 성공적이었다. 중국이 농업개혁 3년 만에 자급자족하고, 베트남이 3년 만에 쌀 수출국으로 거듭났는데 북한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읽혀졌다. 우선 주민들의 안색이 좋아지고 쌀값이 안정되었다. 외국의 식량지원이 별로 없었는데도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교수 한 사람은 2013년에 50%의 식량증산이 이뤄졌다고까지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2013년 말부터 2014년 사이에는 경제특구 19군데가 지정되었다. 투자자들을 위한 법령 정비도 나름대로 진행되고, 실패로 끝났지만 투자유치설명회도 몇 차례인가 보도되었다. 적어도 수순만은 덩샤오핑의 포석을 충실히 따라 한 셈이었다. 로저스가 김일성·김정일과 김정은을 완전히 다르게 볼 만한 대목들이다.

한데 여기서부터 열차가 삼천포로 빠진다. 그 사이 25군데로 늘어난 경제특구에 도무지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등소평 이후 중국에도 들어갔고 도이모이 이후 베트남에도 들어갔던 외자가 북한에는 거의 한푼도 안 들어간 것이다. 로저스의 돈은 고사하고 투자할 데가 없어서 떠돌고 있는 884조원(지난해 6월 말 현재)의 남측 단기 부동자금 역시 꿈쩍도 안 했다. 솔직히 말해서 7천억 달러가 넘는 단기 부동자금에 비하면 로저스가 투자하겠다는 전 재산은 껌값에 불과했다. 우리한테는 어느 사이엔가 엄청난 완력이 붙어있었다.

여력이 넘치는데도 구경만 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딱 부러지게 설명했다. 늘 그랬듯이 토를 달 수 없는 군더더기 하나 없는 말씀이었다.

“핵을 이고 살 수는 없는 게 아니냐.”

이런 때에 역지사지라는 말을 함부로 썼다가는 반드시 경을 치기 마련이다. 그러나 좋은 결론을 내기 위해서는 도리가 없다. 북한 동포가 아니라 김정은의 입장에서 상황을 볼 필요가 꼭 있기 때문이다. 현시점에서는 핵과 미사일에 대한 김정은의 생각이 김정일의 그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싶다. 이걸 놓치고 나면 모든 게 무너진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카다피, 사담 후세인 그리고 최근 서러움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살아 있는 증거로 여겨지고 파키스탄과 이스라엘은 반면교사로 비쳐질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에게는 김정일과 다른 차이점이 하나 있다. 중대한 차이점이다. 김정일이 핵과 미사일 외에 다른 생존수단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반면, 김정은은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발전을 대안 내지 보완 수단으로 받아들인 점이다. 농업 개혁과 기업소의 자율경영 실험 그리고 소낙비 퍼붓듯이 지정한 경제특구가 그 증거다.

핵과 미사일이라는 장애를 에둘러갈 수 있고 그래서 남측의 잉여자금이 흘러 들어갈 물꼬만 찾아낸다면 북한은 나라 전체가 성장폭발구로 바뀔 것이다. 당연히 북한 동포가 최대 수혜자가 되겠지만 사실은 남측의 경제도 제대로 된 활로를 찾는 셈이 된다. 손바닥만 한 개성공단에 흘러 들어간 원부자재와 견줘보면 상상이 되지 않는가.

사실 미사일이라는 장애를 에둘러갈 길은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분단 70년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정치적 상상력을 보여줬던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44년 전 1972년 7월 4일에 합의·발표한 7·4공동성명에 실린 내용이다.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통일 3원칙 속에 해결의 열쇠는 숨어있었다.

얼마 전 서울에 주재하는 매우 중요한 나라의 대사가 “북한이 현상태에서 핵과 미사일을 동결한다면” 그 중요한 나라와 북한이 직접 대화할 수도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불필요한 파장을 염려해서인지 언론에 알리는 것은 안 된다고 했지만 즉흥적인 얘기가 아니라 미리 작성된 연설문 속에 담겨 있던 내용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두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1999년 10월의 페리 프로세스와 남북한의 개탄스러운 나태에 대한 분노였다.

핵과 미사일 논의에 ‘자주’가 빠져 있다


▎북한 수소폭탄 실험 직후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맨 왼쪽)등 핵심 측근과 함께 평양 평천혁명사적지를 시찰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다 아는 얘기지만 윌리엄 페리는 1994년 국방장관 시절 1차 북핵위기가 터지자 영변 핵시설의 정밀폭격을 위해 동해에 항공모함을 진입시키고 미군 4만 명의 증파를 계획했던 인물이다. 카터 전 대통령의 어깃장 놓는 평양 방문과 김영삼 대통령의 반대로 이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요컨대 그는 비둘기스러운 인물은 아니었다.

그런 그가 클린턴 대통령 임기 말인 1999년 10월 북한과 3단계 북핵·미사일 해결 방안에 합의했다. 1단계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중지와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해제, 2단계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중단, 3단계는 북한과 미국·일본의 수교 및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었다. 이 계획은 후임 부시 대통령의 유아독존식 외교정책으로 휴지가 되고 말았으나 클린턴이 임기 끝내기 전에 평양 방문을 희망했을 때 김정일이 까닭 모를 오산으로 거절하지 않았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를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계획 중의 하나였다.

어쨌든 주요국 대사의 연설을 듣는 순간 페리 프로세스의 1·2 단계를 단번에 해치울 구상이 아닌가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확신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좀 더 묻고 싶었으나 이런 경우 외교관에게 더 분명한 답변을 기대하는 것은 북극에서 장미밭을 보려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에 그만 접었다.

그래서 저절로 남북한의 개탄스러운 나태에 대해 화가 났던 것이다. 44년 전에 합의·공포한 민족통일의 제1원칙이 ‘자주’였다면 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해서도 자주적인 논의가 있었어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 첫걸음은 17년 전 페리 구상 때나 지금이나 핵과 미사일의 현상태 동결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 당사자들은 그 첫걸음에 대해 지금까지 운도 떼지 않았다.

사실 핵폭탄은 열 개를 가지고 있으나 100개를 가지고 있으나 효용에는 아무 차이가 없다. 대가만 커질 뿐이다. 중국이 북한에 대해 노골적인 불쾌감을 보이는 이유도 미국의 대 중국 미사일 방어망 구축이 거의 전적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을 빌미삼아 진행돼왔다는 점에 있다. 미 국방부 산하 미사일방어청(MDA) 예산이 해마다 75억 달러 전후로 무난히 의회를 통과하는 것은 북한이라는 핑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중국이 화를 내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어쨌든 짐 로저스가 관찰한 대로 김정은은 김정일과 달리 개혁·개방에 나섰다. 톈안먼사태에도 불구하고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의지가 확실했듯이 국내 정치의 비민주성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의 개혁·개방 의지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보여진다. 남은 과제는 어떻게 투자유치를 성공시키고 그 결과를 통일로 연결하느냐이다.

북핵 폐기는 북한 경제성장 후 자연스레 될 것


▎북한의 4차 핵실험 발표로 남북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1월 초 개성공단에서 나오는 화물트럭이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를 건너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우리 정부가 만약 좀 더 능동적인 자세를 취한다면 어떻게 될까. 가령 미국 등 우방과 긴밀히 상의해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현상태에서 동결할 경우 유엔과 주요국의 대북 제재를 풀도록 설득하면서 북한을 이끌어가는 방식이다. 17년 전 유효했던 페리 프로세스가 지금 와서 헛소리 취급을 당하지는 않을 게 아닌가. 이런 방안이 받아들여지기만 한다면 청년실업과 성장 정체에 빠진 우리 경제도 단번에 살아날 길이 나올 것이다. 1960년대 같은 시기에 건설된 경부고속도로가 비슷한 규모의 일본 도메이고속도로 8분의 1 돈으로 1년이나 먼저 완공되었듯이 북한에서의 생산과 건설 투자는 분단된 상태에서 진행하는 게 최소비용 최대효과를 거둘 것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우리는 7천억 달러 규모의 단기 부동자금을 갖고 있다. 잔뜩 당겨진 활시위처럼 투자기회만 노리고 있는 돈이다.

최근 들어 박 대통령은 물론 많은 전문가가 강조했듯이 평화통일의 구체적 방식은 체제전환과 민주화다. 그리고 어떤 여건이 되어야 체제전환과 민주화가 이루어지는가는 1990년 소련 붕괴 이후 이른바 공산국가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공업화와 산업화로 탄탄한 중산층이 형성된 나라에서는 물 흐르듯이 그리고 예외 없이 체제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1989년 현재 1인당 GDP가 3천 달러 이상인 나라에서는 시장경제·자유선거·복수정당제가 봄날 개나리 피듯이 자연스럽게 도입되었다. 동독·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불가리아가 그들이다. 동독은 자유선거로 탄생한 의회가 독일연방에 들어갈 것을 결의해서 아예 통일까지 단숨에 해냈다. 이들이 1인당 GDP 3천 달러를 넘긴 것은 공업화 덕분이었다.

1인당 GDP 2천 달러 내외의 국가에서는 시끄러운 과정을 거치면서 힘겹게 체제전환이 이루어졌다. 루마니아·폴란드·우크라이나가 여기에 든다. 공업화가 미진해서 중산층이 단단하지 못했고 그 결과 내부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불충분했기 때문이다. 1인당 GDP 1천 달러 이하의 나라에서는 사실상 공산당 독재가 그대로 계속되었다. 알바니아와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 몽고·중국·북한·베트남이 여기에 해당한다. 단 하나의 예외도 없었다.

이 같은 현상은 비공산권에서도 나타난다. 공업화·산업화에 성공한 개발독재는 자신이 키워낸 중산층에 의해 변화되었다. 스칼라피노 교수는 그 전형적인 예가 박정희 대통령이라고 설파한 바 있다. 산업화에 실패했던 인도네시아 수하르토가 30년 넘게 집권하고 아예 산업화 의지조차 없는 아프리카 등 제3세계 독재자들이 장기집권에 성공한 것은 중산층과 민주화의 함수관계를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지금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번영을 구가하는 헝가리의 2015년 1인당 GDP는 1만4천 달러인데 반해 북한은 2천 달러 정도로 추계된다. 그러나 핵·미사일 동결로 미국과 유엔의 경제제재가 풀리고 남측의 여유자금이 쏟아져 들어가면 북한은 아마 10년 이내에 현재의 헝가리 수준에 도달할 것이다. 로저스의 말대로 중국보다 더 빠른 성장잠재력에다가 자연스럽게 진행될 남북한의 경제·시장통합 효과가 승수작용을 할 터이기 때문이다. 욕먹을 각오를 하고 하는 말인데, 핵 폐기는 그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리라고 본다. 경제제재는 북한에게 치명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글로 쓰기에는 좀 뭣한 얘기지만 요즘은 자주 강증산이 예언했다는 ‘만국활계 출어남조선(萬國活計 出於南朝鮮)’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이미 우리는 아무것도 없던 나라가 30년 만에 멋진 나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150여 개 못사는 나라에 보여줬다. 여기에 남북한이 평화적인 통일을 이루어낸다면 전 세계 분쟁국가에 활계(活計)를 제시하는 셈이 된다. 강증산은 1909년 작고했으니까 남조선이라고 부를 만한 상황이 생겨나기 36년 전에 생을 끝냈다. 신기한 만큼이나 욕심나는 예언이 아닌가.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 평양이 되기 전에

앞서 통일과 관련된 말씀 가운데 “통일은 대박”이 으뜸이라고 말했지만 그러나 정치인의 명언은 그게 실현되거나 실현을 위해서 몸부림쳤을 때만 훗날까지 남는다. “앞으로 10년 안에 사람이 달에 착륙하도록 하겠다”는 케네디의 말,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던 나폴레옹의 명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철과 피”라던 비스마르크의 외침,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던 김영삼 대통령의 절규가 두고두고 울림을 갖는 것은 그들이 행동했기 때문이다.

분명 대박이 될 통일에의 장도에 지금은 핵과 미사일이 길을 가로막고 있다. 그걸 포기하면 곧바로 나락에 떨어진다고 믿는 집단에게 포기하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은 ‘통일대박론’을 명언으로 만들어 줄 방향이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44년 전에 보여줬던 무한지평의 정치적 상상력이 곁들여져야 비로소 명언이 될 것이다.

미국의 번영은 서부 개척으로, 러시아의 부상은 동부 진출로 이루어졌다. 20세기 후반에 섬광처럼 빛났던 한반도 남부의 영광은 북쪽으로 뻗어가야 장엄한 마무리를 하게 된다. 애팔래치아 산맥 너머를 서부라 부르다가 태평양까지 질주했던 미국처럼, 우랄 산맥 너머를 동부라 하다가 캄차카까지 내달렸던 러시아처럼, 북한 너머 시베리아·중앙아시아를 관통하는 유라시아 실크로드를 개척하는 게 젊은이들의 꿈이 되어야 한다.

정초에 나온 어느 일간지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너무도 참담했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 “남북통일 서두를 것 없다”가 69%였다. 찬찬히 그 이유를 뜯어보니까 이른바 ‘통일비용’이라는 요언에 홀린 때문이었다. 어리석음을 탓하기에 앞서 우리 기성세대가 당연한 일을 알려주지 못한 데에 대한 통절한 반성이 앞섰다.

미국 서부 개척의 완결판은 2860㎞의 대륙횡단철도 건설이었고 러시아의 동부 확장 굳히기는 9288㎞의 시베리아횡단철도 건설이었다. 엄청난 건설비가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다. 통일 준비단계에서 북한의 경제특구에 많은 돈이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일 뿐이다. 후기산업사회를 거쳐 정보사회 완숙기에 들어선 남측에는 투자처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돈이 쌓여 있다. 투자를 안 하고 못하니까 청년실업은 이제 일상화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 모든 문제의 타개책이 바로 엎어지면 코 닿을 북쪽에 있는데 중국가서 공장 짓는 것은 투자이고 북한에 공장을 지으면 비용이라니 이 노릇을 어찌 한단 말인가.

일이 틀어지거나 어려운 지경에 빠졌을 때 사람들이 제일 자주 쓰는 수법은 탓할 만한 대상을 찾는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은 미국에 모든 책임을 돌렸다. 선전매체뿐만 아니라 주민들도 거의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이게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이미 북한 동포들은 남쪽이 얼마나 잘사는지를 알고 있다. 얼마나 매정하고 냉정한지에 대해서도 생각이 깊어지고 있다. 탈북자들의 한결같은 증언이다.

앞서 지난 1천 년 간 중국의 지도자들이 한반도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살펴봤다. G2를 넘어 G1을 지향하고, ‘중국의 꿈’에 열광하는 현재의 중국이 예전과 달라졌을까. 만리장성의 동쪽 끝을 평양이나 원산까지 주욱 그어낸 동북공정은 어떤 뜻을 함축하고 있는 것일까.

시간이 없다. 시간이 별로 없다. 행동해야 한다.

- 홍사덕

201602호 (2016.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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