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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정치] 전 세계 강타하는 ‘트럼프 현상’의 뿌리는? 

글로벌 시대 ‘미국병’의 그림자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퍼시픽21’ 디렉터
언뜻 보면 품격과는 거리가 먼 미국판 카우보이 같은 인물, 그러나 어느 틈엔가 공화당 예비 대선주자 중 선두로 ‘우뚝’… 한국 경제 나빠질수록, 청년실업 늘어날수록, 헬조선 신자들 증가할수록 ‘순혈 탈레반’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 공화당 대선 경선후보는 여성비하 등 막말 논란을 일으킨다. 그럼에도 그는 공화당 경선에서 40% 안팎의 지지율로 선두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도널드 트럼프(70) 미 공화당 대선 경선후보는 여성비하, 인종주의 등 거침없는 막말로 논란의 중심에 선다. 그럼에도 그는 공화당 경선에서 선두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지지율도 40%에 가깝다. 트럼프의 인기에는 중대한 의미가 담겨 있다. 그의 행보는 일부 ‘침묵하는 계층’을 대표한다. 차마 드러내기 힘든 자신의 속내를 트럼프가 속 시원하게 외쳐주는 것이다. ‘트럼프 현상’이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된다.

선거철이다. 이합집산하는 한국만 아니라, 미국도 대통령 선거철이다. 아무리 미국 대통령 선거에 무관심하더라도 도널드 트럼프에 관한 얘기는 한 번쯤 들었을 듯하다. 부동산 재벌로 TV 방송을 통해 “You are fired(너 해고다)”라는 유행어를 남긴, 세계적 셀리브리티(Celebrity·유명인) 중 한 명이다. 미녀 부인과 딸을 가진, 강력한 입심과 희한한 헤어스타일을 통한 캐릭터로 유명하다. 실제 뉴욕 캐릭터 가게에 가보면 트럼프 인형도 볼 수 있다.


▎트럼프는 미국인 아버지 프레드 트럼프와 스코틀랜드인 어머니 메리 앤 사이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 사진·중앙포토
전체적으로 보면 품격과는 거리가 먼 돈의 화신(化身)과 같은 미국판 카우보이 같은 인물이다. 무식할수록 말이 많고 목소리도 올라간다. 특이한 캐릭터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다는 장점은 있지만, 어느 틈엔가 정치판에 가서 선두주자에 올라섰다고 한다. 인종차별주의자에다 백인지상주의 극우정치가로 알려지는 듯하더니, 예비선거를 앞두고 1, 2위를 다툰다. 공화당 당원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를 봐도 공화당 후보자들 가운데 최고의 인기를 달리는 인물이다.

도대체 미국이란 나라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변화(Change)’를 키워드로 내세운 무명의 흑인,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오른 것이 7년 전이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인이 환호했던 ‘변화’의 결과가 백인지상주의 극우정치가의 등장에 불과하단 말인가?

아직 갈 길이 먼 대통령 선거지만, 어떻게 해서 트럼프 같은 인물이 미국 정치를 대표하는 인물에 올라선 것일까? 민주당세(勢)에 밀려 정신을 못 차리는 공화당이라곤 하지만, 그래도 전 세계 보수주의의 맏형으로 자리 잡은 미국이 어떻게 날 선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것일까? 세상의 정치가 미쳐 날뛰는 것은 알지만 미국에서조차 자정(自淨) 장치를 상실한 채 굴러가고 있단 말인가?

필자는 1996년 클린턴 제2기 선거의 주역인 선거 컨설턴트 딕 모리스와 관계가 깊다. 미국만이 아니라, 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선거의 컨설턴트로서 모리스의 일을 도와주고 있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4년마다 벌어지는 미 대선은 세계에서 벌어지는 최대·최고(最高)·최다·규모의 글로벌 이벤트일 듯하다. 미국 인구 3억 명만이 아닌, 전 세계 70억여 명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가 4년마다 벌어지는 글로벌 이벤트로 결정된다.

막말 내뱉을수록 올라가는 인기의 ‘역설’


▎트럼프와 그의 세 번째 부인인 멜라니아 트럼프. 멜라니아는 슬로베니아 출신의 모델이다. / 사진·중앙포토
아직 시작이지만 대략 선거 막판에 접어드는 올해 10월쯤 되면 전 세계 5천여 개의 미디어가 워싱턴에 몰려든다. 미국의 정책만이 아니라, 자국에 관련된 정치·경제·군사 관련 스토리를, 새로 탄생될 대통령을 통해 살펴보자는 의미에서 글로벌 실황중계에 들어간다. 아직 1월 중순(필자가 글을 쓴 시점)이지만 2016년 대선의 하이라이트는 트럼프다. 당초 선거를 통해 돈이나 벌려던 사이비 탤런트형 정치가로 받아들여지던 인물이다. 지식인일수록 무시하는 것이 당연한, 깡통 셀리브리티로 해석됐다.

워싱턴 정치의 특징이지만, ‘구체적인’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 기본이다. 피에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욕받이’ 적을 선보이기는 하지만, 결코 ‘구체적’인 상대를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정부의 규제정책에 반대한다”는 말은 워싱턴 정치가 누구나 떠드는 슬로건이다.

그러나 정부의 어디, 누구를 지칭하는지 애매하다. “상무성 내 규제통제위원회 같은 조직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규제정책의 온실이기 때문이다”와 같은 생각이 ‘구체적인’ 적의 예(例)이다. 트럼프는 자신에게 비수를 꽂을지도 모를 ‘구체적인’ 적을 만들어가면서 세(勢)를 모아가는 인물이다. 간단히 말해 막말 선동꾼이다.

“멕시코는 사람들을 보내고 있지만 좋은 사람을 보내는 게 아니다. 문제 있는 사람들이 주로 온다. 마약·범죄·강간범 등 말이다. 일부 좋은 사람도 있다고 안다.”(2015년 9월 30일 이민정책 토론회에서) 필자를 포함해 미 대선을 지켜본 사람들의 상식이지만, 당락의 열쇠는 중남미 출신인 히스패닉들이 쥐고 있다. 백인이나 흑인·아시아인의 경우 민주·공화에 대한 호불호가 분명하고, 선거에도 잘 안 나간다.

히스패닉은 다르다. 자신들의 이해증진을 위해 정치참여가 활발하다. 지지자 표 몰아주기도 유명하다. 히스패닉은 현재 미국 전체 3억 가운데 5300만 명으로 약 16.5%에 달한다. 흑인은 전체 인구의 12.5% 정도다. 미국 최대의 마이너리티(Minority·소수자 집단)다.

불법이민자만도 1200만 명에 달한다. 식당 부엌에서의 감자 깎기와 그릇 세척, 사무실 청소, 겨울철 제설작업과 여름철 잔디 깎기에 동원되는 이른바 3D 업종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다.

2012년 대선을 보면 대략 민주당 지지자가 7할 정도다. 이민문제에 민감한 것은 물론, 복지문제에도 남다르다. 민주주의의 상식이지만 질(質)에 앞서 일단은 수(數)다.

트럼프와 함께 공화당 선두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텍사스 주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 플로리다주의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은 히스패닉계 정치가다. 그러나 트럼프는 기존 대선의 최대변수를 ‘구체적인’ 적으로 돌린 인물이다. 멕시코 출신자는 미국 내 히스패닉 인구 가운데 가장 많다. 남미의 작은 나라를 타깃으로 한 것이 아니라, 아예 히스패닉의 대형(大兄)을 상대로 한 막말이다. 멕시코 정부가 항의성명을 내고, 수많은 미국 내 히스패닉 단체가 난리를 친다. 그러나 트럼프의 인기는 올라간다.

여성에 대한 막발과 비하도 빼놓을 수 없다. “얼굴을 봐라! 누가 저 얼굴에 표를 줄까? 상상이나 할 수 있나. 저런 얼굴을 가진 대통령?”(2015년 9월 9일 인터뷰 도중 칼리 피오리나 공화당 대선후보가 TV화면에 등장하자 던진 발언)

경쟁자인 상대방 후보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던진 발언으로, 피오리나는 물론 여성 인권운동가로부터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멕시코 막말에서 보듯 트럼프는 승승장구한다. 놀라운 것은 후보자 피오리나에 대한 공화당원의 반응이다. 트럼프의 막말에 맞서 매스컴 여기저기에서 오르내렸지만, 그나마 한 자릿수이던 피오리나에 대한 인기는 거의 제로점으로 추락한다. ‘트럼프의 저주’다.

미국 대통령 역사를 전후(前後)로 나눌 인물?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2004년에 이어 대권 재수에 나선 그는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에 도전한다. / 사진·중앙포토
필자는 모리스의 일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미국 대통령 선거를 5번째 지켜보고 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지금까지의 대선 역사를 통해 트럼프 같은 인물을 본 적이 없다.

1992년 클린턴은 백악관으로 들어가는 즉시 애완견을 키우기 시작했다. “워싱턴에서는 개를 키워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유명한 얘기를 남긴다. 개를 키운다는 것은 개에 대한 얘기와 함께 현실적인 논쟁거리를 피한다는 의미다. 적을 만들고 상대를 흥분시킬 설전을 벌이는 것보다 쿨(Cool)하게 개에 대한 얘기나 하면서 품위 있게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가자는 것이 워싱턴 정치의 특징이다.

그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멕시코와 대통령후보 여성에 대한 막말은 가장 비(非)워싱턴적이다. 그런데 국민들은 박수를 보낸다.

버지나아주 주지사 출신이자, 이후 상원위원으로 나간 조지 앨런이란 정치가가 있다. 오바마 이름이 오르내리기 이전부터 공화당 대통령후보로 거론된 정치가다. 버지니아주에 한국인이 많이 살기에 특히 한국과도 친분이 많은 정치가다.

필자도 가까이서 봤지만 키가 크고 아주 사교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2006년 여름 중간선거를 통해 한순간에 사라진다. 이유는 ‘마카카(Macaca)’라는 단 한마디 때문이다. 캠페인 도중 인도인을 보면서 마카카라고 지칭한 것이 유튜브에 뜨면서 상원의원 당선 직전에 좌초한다. 마카카는 ‘아프리카의 원숭이’를 상징하는 비속어다.

사실, 트럼프가 벌이는 막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10년 만에 강산이 변한 것이 아니라, 미국 정치문화가 바뀐 것이다. 결론적으로 트럼프를 대하는 워싱턴 정치평론가들의 분석은 울림 없는 메아리로 전락한다. 기존의 워싱턴 정치프레임이 통하지 않는 정치가가 바로 트럼프다.

신문·방송에서 ‘막말제조기’ 트럼프를 규탄하는 소리가 비등할수록 인기가 올라가는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워싱턴 포스트>는 1월 4일자 보도에서, 트럼프를 통해 미국 정치를 전후(前後)로 나눠야 할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지식인일수록 트럼프를 자기도취형 무뇌(無腦) 선동가로 볼 듯하다. 필자는 정반대로 본다. 트럼프는 철저히 머리를 쓰면서 계산하면서 말하는 정치가다. 필자가 본 트럼프에 대한 인상이 그렇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모리스와 함께 일하던 중 우연히 트럼프를 만난 적이 있다. 2002년 뉴욕의 포시즌스 호텔(The Four Seasons) 레스토랑이다. 지금은 많이 변했겠지만 57번가 포시즌스 호텔 레스토랑은 아주 특별한 곳이다. 쉽게 말해 뉴욕 이스테블리시먼트(Establishment·기득권층) 전용 레스토랑이다.

100% 뉴욕커이자 유대인인 모리스 덕분에 알게 됐지만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손님들 서로가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모두 백인에다 정장차림이다. 손님 중 아시아인은 필자 혼자였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고령의 중국인 웨이터가 나타났다.

주문을 받을 당시 중국인 웨이터의 묘한 눈초리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당시 트럼프는 부인과 함께 식사하고 있었다. 모리스가 워낙 유명했기 때문이겠지만 직접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필자도 얼떨결에 악수를 했지만 엄청난 체구에다 그렇게 큰 손을 가진 사람은 처음 보았다. 웃으며 인사하던 정다운 목소리도 인상 깊다. 마음이 따뜻한 캐릭터란 느낌을 받았다.

알고 보니 모리스와 트럼프의 아버지는 비즈니스 관계로 서로 잘 알고 있었다. 어릴 때 뉴욕 브루클린에서 함께 자란 친구라는 것이다. 당시 모리스의 예언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저 친구 어릴 때부터 머리가 비상하다. 한마디, 한마디 전부 기억하고, 계산하면서 내뱉는다. 언젠가 대통령 선거에 나올 것이다.” 모리스는 당시에 이미 힐러리가 대통령 선거에 나올 것이라고 예언하던 사람이다. 트럼프에 대한 모리스의 평가만이 아니라 필자가 직접 경험한 것으로 봐서도 무뇌 선동가와 거리가 멀다.

프린스턴대 “공화당 대선후보로 선출될 것”


▎뉴욕 군사학교(중학교) 시절의 트럼프. / 사진·중앙포토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기존에 없는 트럼프발(發) 정치가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을까. 앞서 비쳤듯이 트럼프가 대통령에 오를지는 아무도 모른다. 2007년 공화당 후보자 예비선거 당시 보여준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에 비교하는 사람도 있다.

줄리아니는 예비선거가 열리기 직전에는 줄곧 선두였다. 그러나 막상 뚜껑이 열리자 마이크 허커비에게 역전된다. 제대로 된 싸움도 한 번 해보지 못하고 거품인기 속에서 좌초한다. 그에 반해 정평 있는 프린스턴 대학의 선거 컨설티움(election.princeton.edu)은 트럼프 대망론(論)에 손을 들어준다. 여러 상황을 종합해볼 때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오를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결과를 지난해 말에 공표했다.

본인의 부정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공화당 후보전(戰)에서 떨어진다고 해도 독립 무당파로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선거 마지막까지 종잡을 수 없을 것이다. 당선되지 않을 요소도 많지만 거꾸로 당선될 가능성도 많은 인물이다.

사실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당락 여부가 아니다. 이미 ‘트럼프 현상(Trump Phenomenon)’으로 굳어진 트럼프 정치가 갖는 향후 의미에 주목한다. 당선될 경우 트럼프 현상이 미국과 전 세계로 확산되겠지만, 설령 당선이 안 된다고 해도 트럼프 현상은 미국 정치에 계속해서 남을 것이다.

개인적 판단이지만 미국 국내와 국제정세를 살펴보면, 2015년 가을부터 불기 시작한 트럼프 현상을 기반으로 더 크고 더 강력한 바람이 일 것으로 확신한다. 트럼프 현상, 트럼프 정치는 일회성이 아니다. 앞으로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 결과라 볼 수 있다. 이유는 트럼프가 아니라 미국이란 나라 자체가 갖고 있는 ‘미국병’에서 비롯된다.

미국병의 출발은 비(非)미국적인 요소에서부터 출발한다. 글로벌 시대에 맞춰 미국은 전 세계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다. 중국제 저가상품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이고 정보가 모인다. 원래부터 이민대국으로 성장한 미국이지만 세계를 향한 오픈 사회는 한층 더 속도를 더해간다.

21세기 ‘미국병’의 근간이 되는 티파티

문제는 오픈 사회, 글로벌 시대에 적응을 못하는 사람들이다. 간단히 말해 내부정보를 통해 100억 달러대의 이익을 올린 방글라데시 출신 뉴욕의 해지펀드가 등장한 반면, 미국 남부의 공장은 중국제 상품에 밀려 문을 닫아야 하고, 흑인의 경우 히스패닉 경비원 때문에 일자리를 잃어버리게 된다. 경제적, 사회적 소외자들이 생기게 된다.

이들을 대표하는 목소리가 ‘티파티(Tea Party) 운동’이다. 영국인 차에 대한 세금을 매길 때 반대하고 일어선, 미국 독립운동의 출발점이 된, 보스턴 차(茶)사건의 정신을 계승하자는 것이 티파티 운동이다. 2009년부터 길거리에 나서면서 미국 정치사에서 이름을 올린다.

원래 길거리 정치는 민주당이나 리버럴(Liberal)들의 전유물이다. 보수주의나 공화당은 기득권자로 알려져 있다. 길에 나설 이유가 없다. 티파티는 기득권자로서 보수주의 공화당과 무관하다. 1970년대 베트남 시위에서처럼 아스팔트에서 싸우는 전사(戰士)는 민주당계다. 초기의 티파티는 반(反) 오바마와 반민주당 운동에 나선다. 시간이 흐르면서 공화당에도 불만을 갖는 제3의 독립된 세력으로 변해간다.

이들은 주로 저소득층 백인에다 농촌에 살고 대형트럭을 몬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교회도 가면서 지역활동에 적극적이란 특징도 갖고 있다. 편견적인 얘기일지 몰라도 필자의 눈에는 비만자가 많다는 것도 공통점 중 하나다. 워싱턴에서 벌어지는 티파티 집회에 가보면, 한국에서 본 적이 없는 엄청난 비만자들이 모여 있다. 사실 이들의 주거지는 미국의 ‘실질적인 파워’를 구성하는 핵심지역에 해당된다.

실질적인 파워란 군인이다. 미군 해병대나 보병의 주된 학력은 고졸이다. 고졸 중퇴자도 많다. 미국은 고등학생 3명 중 1명이 중간에 학교를 그만둔다. 이들은 후에 군에 가서 돈도 벌고 기술을 익히면서 사회에 재출발한다. 고급장교에 오르지는 못하지만, 직접 가서 싸우고 피를 흘리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애국심은 물론, 퇴역군인 모임에서의 파워도 상당하다. 미군을 구성하는 ‘실질적 파워’가 거꾸로 미국 내에서 가장 뒤처진 부류로 취급된다.

티파티는 바로 그 같은 배경과 응어리의 결정체이자, 21세기 ‘미국병’의 근간이 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소외의 원천을 메디컬 케어(Medical Care)와 같은 선심성 정책, 이민자 양산, 중국 나아가 한국이나 일본에 대한 특혜, 종교의 자유를 가장한 이슬람에 대한 애매한 정책에 있다고 비난한다.

이러한 정책 때문에 미국이 약하게 되고, 더불어 미국의 ‘실질적 파워’들도 뒷방으로 쫓겨나게 됐다고 말한다. 오바마는 바로 그 같은 미국의 약화를 의도적으로 주도하는 반미(反美)의 선두주자라 비난한다. 오바마의 중간 이름인 후세인을 거론하며 흑인 대통령이 무슬림이란 유언비어도 유포한다.

워싱턴에 머무는 필자는 수시로 티파티 관계자들과 만날 수 있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이 전부 옳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뭔가 뒷방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문·방송은 티파티라고 하면 독일 나치스를 연상하는 듯한 글과 영상으로 도배해서 보도한다. 그럴수록 티파티 결속력은 한층 더 강화된다.

정치판에서 사라진 백인 유권자 끌어낸 인물


2016년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 흥미로운 것은 티파티 이름이 별로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트럼프 현상이라고 하면 전체적으로 티파티의 이념과 비슷하다. 그러나 트럼프 현상을 티파티와 직접 연결해 해석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상원의원 크루즈가 있기 때문이다.

크루즈는 오바마의 메디컬 케어 정책에 반대하면서 연방 정부 셧다운(Shut Down, 업무중지)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 덕분에 반오바마의 선봉에 선 티파티로부터의 지지를 받으면서 현재 선두주자에 올라선 상태다. 하버드대 출신으로, 어머니가 쿠바, 아버지가 스페인 출신이기 때문에 히스패닉 표를 모으는 데도 유리하다. 전면적인 이민정책 수정이 아닌, 부분 개정을 내세우기 때문에 합법적 지위를 가진 히스패닉 계로부터의 지지도 높다.

그러나 크루즈가 티파티 공인 후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정치평론가들은 트럼프와 티파티는 가까운 시일 내에 접점을 가질 관계라고 해석한다. 크루즈가 사라질 경우 대안으로 트럼프가 떠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티파티는 정치체제로서의 구도와 무관하다. 심정적으로 티파티지만 직접 나서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다. 티파티에 대한 언론의 ‘차별’이 두려워 공식적인 모임에 안 나가는 사람도 많다. 트럼프 연설 참가자는 바로 그 같은 사람들에 해당된다. 다시 말해 조직화된 티파티 멤버가 아니라, 비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개별화된 ‘티파티 심리’가 트럼프 연설장에서 볼 수 있다.

따라서 트럼프는 티파티를 포함한, 티파티 이상의 지지와 파워를 가진 후보라 볼 수 있다. 실제로 트럼프는 정치판에서 사라진 백인 유권자를 끌어낸 인물이란 평가도 받고 있다. 2008년과 비교할 때 2012년 선거에 참가한 백인은 700만 명이 줄었다고 한다. 오바마에 실망한 유권자들로, 이미 오바마의 승세가 굳어진 상황에서 아예 선거에 나서지도 않은 의도적 무관심층이다. 이들이 트럼프에게 다가선 것이다.

트럼프 현상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매스컴 팔방미인’ 트럼프 캐릭터를 빼놓을 수 없다. 2016년 대통령 선거를 통해 신문·방송 등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인물은 힐러리나 다른 공화당 후보가 아닌 바로 트럼프다.

대부분의 신문·방송은 트럼프를 공격하면서 시청률과 부수를 올리는 데 주목한다. 그런 불편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줄기차게 언론에 등장한다. 사회자가 공격하면 보다 큰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항변한다. 매스컴이 찾기 때문에 행하는 것도 있지만 트럼프 본인도 출연에 남다르다. 근본적으로는 트럼프 이름이 오르는 것만으로도 독자와 시청자가 늘어난다는 점에서 트럼프 열기가 신문·방송을 강타하고 있다.

매스컴을 통한 트럼프 열풍이 어느 정도인지는 빅데이터를 통한 새로운 정치분석구도인 ‘2016년 텔레비전 추적(television.gdeltproject.org)’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CNN·FOX·CNBC·Bloomberg를 비롯한 미국 내 9개 케이블 전문 TV에 언급된 후보자의 이름을 추적, 빅데이터를 통한 하루 단위의 통계 결과다. 현재 미국 언론이 빈번하게 인용하는 디지털 통계이기도 하다.

지난해 12월 14일부터 한 달간에 걸친 결과를 보자. 트럼프와 민주당의 힐러리를 비교해 살펴보자.

트럼프의 경우 대략 하루에 최하 30번 많으면 50번을 넘어선 빈도로 등장한다. 티파티의 지지를 받는 크루즈는 어떨까? 가장 많은 것이 하루 17번 정도이고 적을 때는 3번 정도에 그치기도 한다. 루비오는 많을 때 16번을 조금 넘기고, 보통 때는 7번 이하로 언급된다.

한국 신문에서는 당선이 굳어진 것처럼 여겨지는 힐러리는 어떨까? 많아야 30번, 적으면 10번 이하로 언급되는 경우도 있다. TV를 보면 트럼프 현상은 거의 압도적이다. 민주당 후보전이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만, 힐러리를 절반 이하의 상태로 압도한다.

보통 TV는 후보자를 직접 불러들여 단독 인터뷰나 방송으로 보낸다. 트럼프는 영상이 아니라, 음성으로 TV 매체를 지배하는 인물이다. 워낙 시청률이 높기에 전화로 연결해서라도 실으려 한다. 미국 TV를 보면 트럼프가 동시에 여기저기 전화로 연결해 겹치기 출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방송으로 다져진 탄탄한 경력이 대통령 선거를 통해 충분히 빛을 발하고 있다.

테러는 트럼프의 인기를 끌어올리는 가장 큰 원인이다. 오바마의 미국은 평화 컨설턴트에 불과하다. 피를 흘리는 전투에 미군을 파견하는 일은 ‘더 이상’ 없다. 연두교서에서 ‘북한 핵’에 대해 단 한번도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너무도 당연하다. 글로벌 컨설턴트 미국은 평화를 사랑한다. 문제는 당사자들이 처리해야 할 당신들의 문제에 불과하다. 멀리는 우크라이나, 가까이는 시리아에서의 이슬람국가(IS)에 대한 미국의 대응을 보자. 말만 앞설 뿐 행동이 없다.

트럼프는 미군을 보내 전부 쓸어버리겠다고 말한다. 이슬람 신자들의 미국 내 출입을 전면 금하고, 이슬람 사원 안에 감시 비디오를 설치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천동지할 막말이지만, 국민들은 ‘트럼프, USA’를 환호하면서 박수를 친다.

트럼프의 발언에 항의를 하던 히잡 차림의 무슬림 여성은 다른 참가자들의 야유와 함께 쫓겨난다. 한국계 하버드학생이 트럼프에게 항의 발언을 했다고 하지만, 2016년 그 같은 일을 벌였다가는 목숨을 걸어야 할지 모른다. 트럼프의 연설 장은 글래디에이터의 콜로세움으로 변해가고 있다.

테러, 미 대선 좌우할 제1의 이슈 될 수도

지난해 12월말 CBS와 <타임>의 공동여론조사 결과 미국인의 79%가 가까운 시일 내에 미국 내에서 테러가 일어날 것이라고 답했다. 응답자의 89%는 자생적 테러리스트에 의해 자신들의 동네가 공격받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한다.

IS의 테러는 프랑스를 넘어 독일 심지어 터키와 인도네시아로 영역을 확산하고 있다. 미국이 예외일 수는 없다. 실제 지난해 12월 2일 캘리포니아주 샌버너디노시에서 14명의 시민이 숨지는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 3명 중 한 명이 파키스탄계 무슬림이며 또 다른 한 명은 이 무슬림의 처(妻)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오바마는 테러라는 말을 극도로 아끼면서 무슬림과의 충돌을 피하려는 데 주력했다. 사건이 터지는 즉시 트럼프는 오바마의 애매한 자세를 비판하면서 미국 내 이슬람신자들을 전부 등록제로 특별 관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군으로 일하는 무슬림조차 특별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문·방송은 트럼프를 비난했지만, 국민들은 오바마의 애매한 자세에 불만을 터뜨린다. 가정이지만, 미국 내에서 큰 테러가 터질 경우 트럼프의 인기도 올라가게 돼 있다. 테러는 유럽만이 아니라, 미국 대통령 선거의 향방을 결정짓는 제1 이슈로 자리 잡고 있다.

공화당 예비선거는 아이오와주에 이어 2월 7일 뉴햄프셔주, 이어 2월 20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2월 23일의 네바다주, 이어 3월 1일 남부의 12개 주가 동시에 치르는 이른바 ‘수퍼 튜스데이(Super Tuesday)’를 통해 당락이 결정될 듯하다. 3월 초가 되면 공화당 대통령 후보자의 윤곽이 드러난다는 의미다.

트럼프가 최고 지지자로 올라설 경우 트럼프 현상은 한층 더 강력해지고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앞서 강조했듯이, 트럼프가 진다고 해도 트럼프 현상은 3월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떤 과정을 통해 패할지에 따라 독립후보로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공화당으로서는 같은 보수주의자들의 경쟁이란 측면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로 받아들일 만하지만, 트럼프는 ‘미련 없이’ 공화당을 넘어선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자임할 전망이다.

필자는 2016년 미 대선을 통해 흐름을 통해 곧 닥칠 한국 정치의 변화를 예측해본다. 미국 정치 따라 하기 풍조다.

먼저 힐리러가 내세운 정책을 보자. 준비된 대통령으로서의 이미지를 내세우는 힐러리는 아주 구체적인 부분의 정책까지 다룬다.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사회주의 성향의 정책이다.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퍼주기 복지’ 같은 개념이다. 대학생에 대한 무이자 장기 학자금 융자에서부터, 부자들에 대한 세금인상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힐러리의 사회주의 정책은 경쟁자로 떠오른 버니 샌더슨의 무차별 사회주의 정책에 대한 대응이다. 민주당 정책은 누가 더 사회주의 정책에 더 적극적인지가 관건이다. 필자가 알고 있던 자본주의 미국의 모습과 전혀 반대로 가는 정책들이다.

‘아큐파이 월스트리트(Occupy Wall street)’가 등장한 것은 2011년이다. 불과 5년 만에 ‘아큐파이 금수저’에 대한 정책이 힐러리에 의해 구체화되고 있다. 지나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오바마 이래 미국은 사회주의 국가로 변해가고 있다. 흙수저·금수저는 한국만이 아니라, 미국 나아가 지구 전체를 아우르는 모순에 해당된다.

인간 보호본능이 트럼프 현상으로 발현


▎트럼프의 배타적 이민정책의 뿌리는 어릴 적 부유했던 환경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를 우주로 보내자’는 해시태그(#)가 붙은 합성사진. / 사진제공·페이스북 캡처
2016년 한국에서의 수저론은 화두(話頭)로서의 불평·불만에 그치는, 일회성 한풀이에 불과하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부터는 야당만이 아닌, 여당도 수저론에 동조하는 구체적인 정책을 내세울 것이 불을 보듯 뻔해진다. 미국 민주당의 사회주의 정책들은 최적의 교훈이자 명분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둘째는 트럼프 현상이다. 필자는 가까운 시일 내에 한국판 트럼프 현상이 등장할 것으로 단언한다. 이미 시작됐지만, 난민보호법을 둘러싼 한국 내 분위기를 보면 트럼프 현상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로 와닿는다.

최근 한국 국회의 난민지원법 논의 과정을 보면, 한반도 ‘순혈 탈레반’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법안을 주도하는 필리핀 출신 국회의원 이자스민에 대한 유형·무형의 비난도 엄청나다고 한다. 단순히 외국인에 대한 반대만이 아니라, 조선족·탈북자·중국인 나아가 통일시대를 앞둔 북한동포에 대한 배척이나 편견도 이미 시작됐거나 강화될 전망이다.

문제는 인터넷에서만 떠도는 이 같은 목소리를 ‘누가, 언제 공식적으로 터뜨리는가’라는 부분이 될 것이다. 한국 경제가 나빠질수록, 청년실업이 늘어날수록, 헬조선 신자들이 증가할수록 ‘순혈 탈레반’도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재료가 넘치는 상황에서 이들의 목소리를 한자리에 모아 정치 세력화하는 일만 남았다.

‘순혈 탈레반’의 출현을 설마 하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인권대국으로 통하던 프랑스·네델란드·독일의 경우를 보면 생각보다 빠른 시기에 그같은 현상을 목격할 수 있었다. 테러가 있었기 때문에 그같은 유럽에서도 순혈주의 세계관이 등장했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테러가 일지 말라는 법은 없다. 테러 한 방에 국민적 정서가 확 바뀌는 것이 21세기 지구촌 상황이다.

트럼프는 물 건너 미국의 해괴한 현상이 아니다. 글로벌 시대가 낳은 풍요 속의 어두운 그림자가 트럼프 현상의 ‘주범’일지 모르겠다. 미국인의 마음만이 아니라, 미래가 불투명한 모든 인간의 보호본능이 바로 트럼프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퍼시픽21’ 디렉터

201602호 (2016.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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