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과 북한주민 대상으로 생방송 진행하는 MC와 유사…
북한이 민감해 하는 심리전 펼치고, 해빙기에는 남북 병사 간 우정 쌓이기도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지난해 ‘8·25 합의’ 이후 중단했던 대북 확성기 방송을 1월 8일 재개했다. 방송에는 주로 남한의 발전상과 북한의 실상, 김정은 체제에 대한 비판 메시지를 담는다. / 사진·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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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6일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남북 병사들이 대치하는 휴전선에 다시 긴장감이 감돈다. 국군은 핵실험에 대한 대응 조치의 일환으로 최전선 11곳에 설치된 대북 확성기 방송을 1월 8일 낮 12시부터 일제히 재개했다. 북한도 이에 대응해 대남 전단지(삐라)를 뿌리고 무인기를 띄워 긴장감을 증폭시켰다. 군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북 확성기 방송을 지속하기로 했다. 남북이 비무장지대(DMZ)를 사이에 두고 고도의 신경전을 펼치는 양상이다. 지난해 8월 목함지뢰 도발이 있은 이래 4개월여 만의 일이다.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우리 군의 1차적인 대응 수단이다. 무력이 수반되지 않지만 북한군과 주민들을 상대로 한 심리전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총성 없는 전쟁’이라고 불린다. 잇단 보도로 국민들에도 친숙해졌지만 대북 확성기 방송의 운용실태나 구체적인 임무와 활약상은 베일에 가려진 부분이다.확성기 방송요원의 역할은 군내의 기밀사항 가운데 하나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휴전선을 따라 최전방에 있는 사단의 GP또는 GOP의 방송스피커를 통해 실시된다. 이때 대북 확성기 방송 임무를 수행하는 요원은 ‘방송병’과 ‘대면병(對面兵)’으로 분류된다. 방송병은 DMZ 철책에 설치된 대북 확성기를 통해 정부가 FM라디오로 송출하는 ‘자유의 소리(VOF: Voice of Freedom)’ 방송을 내보내는 역할을 맡는다. 주로 음악과 뉴스 프로그램을 방송한다.대면병은 한 발 더 나아가 철책에서 육성을 통해 대북 심리전을 편다. 대면병은 방송병과 달리 고지대에 설치돼 있는 ‘고가(高架) 초소’에서 북한군을 상대로 말 그대로 대면 방송을 한다. 이들은 쌍방향 대화를 유도함으로써 긴장감을 완화시켜 남한의 실생활을 알리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홍보한다.방송병이 북한군과 북한주민 등 불특정 다수에게 일방적인 방송을 들려주는 ‘DJ’라면, 대면병은 특정 대상(북한군과 북한주민)을 향해 방송을 진행하는 ‘MC’와도 같다. 벙커 안에 있는 방송병은 밖으로 노출되지 않지만, 대면병은 상대의 표정이나 동작까지도 육안으로 살펴가면서 육성으로 대화한다. 그때그때 상대의 심리를 잘 읽어내고 적절한 논리로 대응하는 것이 임무의 관건이다. 이들 대면병에게는 생방송에서 요구되는 고도의 순발력과 어휘력이 요구된다.
대면방송 하는 초소마다 3명 배치돼대면병들이 방송하는 초소들은 북측 초소와 불과 1㎞ 안팎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상대 초소의 병사들의 움직임까지도 육안으로 관찰되는 가까운 거리다. 일반적으로 북측 초소에는 ‘반미’, ‘주체조선’ 같은 구호가 눈에 띄기도 한다. 방송 확성기 소리는 보통 10㎞까지 전달되지만 바람이 부는 날에는 더 멀리 있는 북측 마을에서도 방송이 전파된다.국방부는 이들 대북심리전단의 편제나 규모에 대해서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 국방부 관계자는 <월간중앙>의 취재 요청에 대해서도 “작전보안상 우리 군의 활동에 제한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공개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취재는 주로 현역 시절 대면병으로 복무한 제대 장병들을 통해 이뤄졌다.“대면병은 사단 수색대대 소속으로 사단의 통제를 받지만 국정원으로부터 북한 동향 및 실상 등에 대한 자료를 제공 받는다. GP를 운영하는 최전방 초소에 100여명 안팎이 근무를 하는데 북한군 초소와 가장 가까운 곳은 700미터도 안된다고 한다.” 2000년대 초 서부전선의 한 수색대대에서 대면병으로 복무한 안정환(가명·30대) 씨의 설명이다. 안씨는 “대면방송을 할 수 있는 초소마다 보통 3명의 병사가 짝을 지어 배치돼 임무를 수행했다”고 덧붙였다.대면병의 선발과 관련해서는 특별한 기준이 없다. 임무의 특성상 일반적으로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병사 가운데 차출되는 경우가 많다. 대면병 1인이 직접 원고를 쓰고 방송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병력 충원은 주로 신병교육대에서 이뤄진다. 4주차 훈련병들을 대상으로 심리전단 소속 장교와 부사관이 훈련병 면접을 통해 뽑는다. 차출되더라도 부대 배치를 받기 전까지는 자신의 소속과 임무를 알지 못한다. 안씨는 훈련소에서 자신과 함께 대여섯 명의 동료가 면접을 봤다고 말했다. 그는 “극한의 고통을 참을 수 있느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대답한 기억이 난다. 대학에 다니다 군입대했지만 과거 웅변 대회 수상경력이 참작됐으리라고 짐작할 뿐이다. 그는 훈련소 퇴소 후 수색대대로 자대배치를 받았고, 엄격한 신원조회를 거쳐 긴장감이 감도는 DMZ 내의 경계초소(GP) 근무를 명령받았다.대면병들은 자대에 와서 2주간 특별교육을 받게 된다. 이 교육과정에서 대북 심리전의 의의, 글 쓰기, 대응논리 개발 법 등을 습득한다. 모든 방송원고는 자신이 직접 쓰는 것이 원칙이다. GP 안에 있는 3인 1실의 대면병 숙소에는 원고 작성에 필요한 다양한 책과 텔레비전이 비치돼 있다. 물론 선임병들이 남겨둔 방송원고도 남아 있다.원고의 주제는 주로 신문을 읽고 정한다. 대면병이 순발력 있는 심리전 방송을 하기 위해서는 시사 뉴스에 밝아야 하기 때문이다. GP에는 이틀에 한 번씩 부식차량이 들어오는데 대면병들에게 필요한 신문도 함께 배달된다. 주제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체제의 우수성, 경제발전 상황, 축제, 국제관계 등이다.대면방송을 하는곳은 평상시에는 전투중대원 두명이 북한군 초소를 감시하는 고가초소로 크기는 한 평(3.3㎡) 남짓하다.투명한 대형창문이 있고 대면방송 외에 북한군들의 움직임을 볼수있는 망원경이 구비돼 있다. 대면병은 망원경으로 북한 병사의 반응을 살피면서 방송을 한다. 방송 일정은 오전 10시, 11시 반, 오후 5시 등 하루에 세 차례 30분씩으로 정해져 있다. ‘자유의 소리’ 방송시간과 겹치지 않은 시간대다.안씨는 대면방송을 처음 하던 날을 잊지 못한다. 오금이 저린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마이크를 잡고 철책을 사이에 둔 북한 초소를 바라보는 순간 북한군이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아연실색해 있는 안씨에게 옆에 있던 선임병이 덤덤한 목소리로 한마디했다. “일부러 저러는 거야. 안 쏠 거니까 걱정 말고 그냥 읽어도 돼.”한편 국가안보나 체제와 관련된 민감한 주제는 대부분 아침방송에서 이뤄진다. 국정원과 합동참모본부가 제공하는 북한 관련 심리전 자료를 기초로 작성한다. 매뉴얼에 따라 대응논리가 조금씩 다르다. 총격도발, 화공도발, 귀순 유도 등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된다. 돌발상황을 대비한 방송은 일정부분 녹음을 해두기도 한다.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011년 11월 경기 연천군에서 총격도발이 있었을 때 대면병은 즉시 “현재 비무장지대에서 총격도발하고 있는 인민군은 포격을 즉시 중지하라”는 경고방송을 내보냈다.
상대 ‘약올리기’ 작전으로 때로는 유치한 반격
▎철책을 사이에 두고 대면병들은 북한군과 쌍방의 체제선전을 주고받는다. 이 과정에서 남북의 병사들은 젊은이로서 교감을 느끼기도 한다. 사진은 서부전선 25사단 남방한계선 철책선 야경. / 사진·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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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이 남쪽의 방송을 듣고 확성기로 대응방송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북쪽의 전력난이 워낙 심해 대응방송이 뜸하다. 그럴 경우 손으로 글자를 그려서 말하기도 한다. 사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휴전선 일대는 서로 맞불을 놓은 듯한 남과 북의 확성기 굉음으로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북한의 전력 사정이 급격히 악화된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상황은 달라졌다. 낡은 북쪽 스피커는 ‘노인의 마른기침과 같은 쇳소리’를 힘겹게 토해냈다. 북한군의 방송 출력은 남한 방송에 그 소리가 묻힐 정도로 초라했다.어떻게 보면 대면병은 외롭지 않은 보직이다. 맞은편에 자기와 같은 역할을 하는 북한군 카운터파트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 병사도 남쪽 방송에 질세라 큰 손동작으로 글자를 만들어 응수한다. 남한 대면병도 북한 병사의 메시지를 읽고서는 매뉴얼에 따라 준비한 원고로 반격한다. 대면병들은 북한군의 손동작을 읽어내는 방법도 훈련받는다.안씨는 북한군의 손동작을 통해 북한 욕을 처음 배웠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북한체제나 김정일 독재를 비판하면 북한군은 꼭 손으로 욕을 했다”고 했다. 손으로 큰 원을 그리더니 중간에 주먹을 넣는 모양인데, 남북한이 다르지 않았다.남북관계 뉴스를 알려주는 것 또한 대면병의 일이다. GP의 북한군은 남한 뉴스를 잘 믿지 않았다. 서해교전이 발발했을 때도 “야, 우리 전쟁 났다”며 방송하자 북한군은 어리둥절해하며 손글씨로 ‘거짓말’이라고 썼다. 대면병은 가명을 쓴다. 신분을 노출하지 않으려는 조치다. 또 군복 대신 밝고 화려한 색깔의 트레이닝복을 입고 초소에 올라간다. 감색 바탕에 빨간색 줄무늬 등 멀리서도 눈에 잘 띄는 복장이다. 군복은 휴가와 외출 시에만 착용한다.대면방송을 할 때 사용할 수 없는 말도 있다. 외래어와 높임말이다. 순우리말을 쓰는 건 북한군이 알아듣기 쉽게 하기 위해서인데, 키스는 ‘입맞춤’으로, 분홍 립스틱은 ‘분홍 입술물감’으로 바꿔 말하는 식이다.또 친근감을 주고자 친구를 대하듯 반말을 사용한다. ‘자유의 소리’ 방송은 아나운서가 녹음을 한 것이라 대부분 존댓말을 쓰지만 대면 방송은 얼굴을 맞대고 하기에 개인적인 질문도 유도하면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친구는 몇 살이야? 고향은 어디야?” 물론 이런 사적인 교감은 규정에 없다. 하지만 체제 홍보의 방식에서 신변잡기식 대화는 허용된다. “공과 사가 따로 없는 전방 생활에서 모든 것이 긴장감을 낮추고 상호간의 이해를 높이는 유익한 수단이 된다”고 안씨는 말했다.대면심리전은 상대를 자극하는 게 주요 목표 중 하나다. 공세와 회유 양면전략을 구사한다. 한국을 지칭할 때는 ‘자유 대한’이라고 쓴다. ‘자유’의 나라인 걸 강조하기 위해서다. “잘 있었어? 우리 자유 대한의 기업 삼성에서 새 손전화가 나왔대. 훨씬 더 작아졌고 새로운 기능을 더했다고 해. 이번 산천어 축제에서 몇 십만 명 몰린 것 봤어?”라며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런데 너희 북한 주민들에게는 자유가 없지 않아?”라면서 북한 체제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방식이다.대면 방송이 늘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 같지는 않다. 때론 유치한 말싸움을 벌이곤 한다. 상대를 자극하는 방식 중 가장 흔한 것은 ‘약올리기’다. 예를 들어 남한군이 “오늘 점심에 갈비가 나왔는데 너무 맛있었다”고 하면 북한군은 “우리는 질려서 안 먹는다. 세 끼 갈비만 먹다 보니 이가 아파 먹지 못한다”고 대꾸한다.북한의 대남 심리전도 비슷하다. “우리 개성에 나는 유명한 인삼 맛 아나? 몸에 정말 좋다네. 먹고 싶으면 당장 월북하게. 배터지게 먹을 수 있다네. 부러우면 어서 오라우.”2000년 귤농사가 대풍을 맞으면서 가격이 폭락하는 일이 있었다. 남아도는 귤은 모두 군대로 흘러 들어갔다. 하루가 멀다 하고 귤이 박스 채로 제공됐다. 입에 물려서 도저히 먹지 못할 정도였다. 정부는 남아도는 귤을 북한에 보냈다. 북한 대면병이 남한에서 온 귤인 줄도 모르고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이 주셨다”고 자랑했다. 이에 안씨는 내무반에 쌓아둔 귤 박스를 가져와 북한군이 보란 듯이 통째로 쏟아냈다. 안씨는 “우리는 귤이 처치곤란일 정도로 넘쳐나. 너희가 먹는 귤은 우리가 준 거니 잘 알고 먹으렴”이라고 약을 올리기도 했다.
“가서 잘 살고 나 잊지 말라우”국경일 같은 큰 행사가 있는 때는 양측이 경연을 펼친다. 북한은 김일성 부자의 생일, 인민군 창건일, 노동당 창건일 등에 대남 확성기 출력을 높여 화려한 공연을 중계한다. 남한도 마찬가지다. ‘GP의 날’ 같은 행사 때면 초소 공터에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한바탕 잔치를 벌인다. 대면병, 한복을 차려 입은 여군, 끼가 많은 일반병을 섭외해 춤과 노래를 시킨다. “우리는 이만큼 잘 먹고, 잘 놀고, 잘살고 있다”는 홍보다.대면병 초소에는 여군도 투입된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초소 근무를 하는 여군 하사관의 첫마디는 비음이 약간 들어 간 “인민군 오빠!”다. 여성 대면병의 목소리가 울리면 맞은편 북한 초소에서 대면병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온다. 기다렸다는 듯 남쪽 초소로 시선을 고정한다. 일부는 망원경으로 남측 초소를 관찰하는 등 재미난 풍경이 연출되곤 한다.원점타격을 향해 서로 총구를 겨누고 있는 상황이지만 항시 긴장만 흐르는 건 아니다. 20대 병사들 사이에는 그들만의 동질감과 민족적인 교감이 존재한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나 볼 법한 우정이 휴전선을 사이에 둔 남북의 대면병들 사이에도 싹틀 수 있다는 말이다.어느 날 초소에 오른 안정환 씨는 북한군 초소에서 작은 소동을 목격했다. 병사들이 고라니를 잡으려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등 호들갑을 떨었다. 그 장면을 망원경으로 관찰하는 안씨는 마이크로 고라니가 숨은 위치를 알려줬다. 고라니를 포획한 북한군은 손글씨로 크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왔다.이러다 보면 정이 깊어진다. 안씨는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했다는 ‘광철이’를 떠올렸다. 그는 광철이에게 “여동생 있어? 예뻐? 통일되면 소개시켜줘”라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음악은 감성에 호소하는 매우 훌륭한 수단이다. 북한군은 들어본 K팝이 나오면 ‘계속 틀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댄스곡에 맞춰 북한군들은 박수를 치거나 어깨를 들썩이기도 한다. 남한 대면병들은 가끔 북한 노래를 직접 불러주기도 한다. 안씨는 “우리가 북측 노래인 ‘휘파람’, ‘반갑습니다’ 등을 부르면 북한군들은 굉장히 반가워한다”고 말했다. 때론 대북확성기를 통해 남북 병사들이 장기를 둔다. 장기판에 번호를 적어놓고 서로의 말을 놓아주며 남북 대항전을 치르는 식이다.대면병들의 수칙 중 하나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북한의 대응이나 역공에도 발끈하거나 흥분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안씨는 마지막 방송 때 감정을 주체하기가 어려웠다. GP에서 철수하는 날 그는 북쪽 대면병에게 “나 이제 철수한다. 그동안 즐거웠다”고 인사를 건넸다. “이제 고향에 가는 기야?”라는 답이 돌아왔다. 안씨가 “그래. 잘 있어. 넌 군생활 얼마나 남았느냐?”고 묻자, “아직 7년이나 더 남았스라우(북한군의 의무복무기간은 10년이다)”라 대답했다. 북한군은 뜸을 좀 들이다 덧붙였다. “가서 잘 살고 나 잊지 말라우.” 그 말에 왈칵 눈물이 쏟아진 안씨도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1월 8일 대북 확성기 방송이 재개된 이후 무력 없이 북한을 압박하는 대북심리전의 중요성이 재차 부각됐다. 지금도 대면병들이 초소 위에 다시 올랐는지는 알 길이 없다. 중요한 것은 남북 대면병의 무기는 총이 아닌 마이크였다는 점이다. 적군과의 대화를 통해 얻은 것은 비무장지대의 평화였다.-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