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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한국에서 무슬림으로 산다는 것 

원죄 아닌 원죄를 안고 사는 맑은 영혼 

글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사진 오상민 기자 oh.sangmin@joins.com
파리 IS 테러 이후 반이슬람 분위기 확산, 국내 무슬림 사회도 ‘초긴장’… 인신공격과 폭력, 사회적 차별 피하려 신앙 숨겨야 하는 ‘비극’

▎2015년은 한국인 무슬림들에게도 잔인한 한 해였다. IS 테러 공포가 다시 한번 몰아치면서 무슬림에 대한 배타적인 분위기가 확산됐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이슬람서울중앙성원.
#한국인 이슬람교 신자(무슬림)인 김영은(가명·18) 양은 더 이상 히잡을 두르지 않는다. 불심이 깊은 가정에서 혼자 무슬림으로 개종한 김양이 어느 날 어머니와 쇼핑 길에 나섰다. 히잡을 두른 채였다. 갑자기 50대의 남성이 달려와 “마귀가 씌었다!”고 소리치며 들고 있던 책 모서리로 김양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악!” 김양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머리를 감싸 쥐며 주저앉았고 옆에 있던 어머니 박경자(40대) 씨는 대경실색을 했다. 집에 돌아온 박씨는 울면서 딸에게 당부했다. “네 종교에 대해 뭐라고 한 적이 없지만 이번엔 딸을 둔 엄마의 입장에서 말해야겠다. 안전을 위해서라도 밖에서는 절대 두르지 않겠다고 약속해라.” 김양은 “요즘은 행인의 시선만 받아도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며 진저리를 쳤다.

#“야, 이 테러리스트야! 너네는 왜 사람을 죽이고 다니냐?” 히잡을 두르고 거리를 지나가던 최진희(가명·31) 씨도 길거리에서 낭패를 당한 적이 있다. 생면부지의 행인이 다짜고짜 시비를 걸어왔기 때문이다. 최씨는 “‘왜 무슬림이면 다 테러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따졌더니 주변의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보더라”며 “행여 봉변을 당하지는 않을까 등줄기가 오싹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현종(가명·25) 씨는 지난해 가족들이 모두 무슬림으로 개종했다. 내친 김에 다니던 회사에서도 나와 할랄식품 사업에 뛰어들 참이었다. 친구들에게 어렵게 사업 이야기를 꺼내자 대뜸 “개종했다고? 너도 IS 가담할 거냐?”라면서 친구들의 조롱을 샀다. 한국인 김군의 IS 가담 보도가 이어질 즈음이었다. 이씨는 “테러라는 선입견 때문에 이슬람이 갖는 종교로서의 본질이 간과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2015년은 한국인 무슬림들에게도 잔인한 한 해가 되었다. IS 공포가 전 세계적으로 다시 한번 몰아쳤다. 11월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Islamic State, 이슬람국가)가 주도한 테러로 130명이 희생돼 전 세계가 경악했다. 프랑스는 IS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핵 추진 항공모함 샤를 드골 호를 시리아 연안에 급파했다. 영국도 공습을 확대하고 독일도 가세했다. 미국은 이라크와 시리아에 ‘특수임무 원정대’를 파견하기로 했다. 이 분위기에 편승해 극우정당이 득세했고 반 이민 정서도 확산되는 추세다. 영국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는 “기성 정치권에 명함도 못 내밀던 ‘외국인 혐오(xenophobic) 정당’들이 달라진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공화당 대선 유력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심지어 “테러를 막기 위해 무슬림의 입국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11월 18일 테러를 찬양하던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가 검거되면서 “더 이상 한국도 안전지대가 아니다”라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검거된 외국인 노동자는 북한산을 배경으로 테러 단체의 깃발을 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 혐의를 받았다. 2004년 이라크 김선일 씨 피살, 2007년 아프가니스탄 샘물교회 봉사단 피랍 사건, 2015년 1월 한국인 김군 IS 가담 사건 등 멀게만 느껴졌던 중동지역의 테러 공포가 이제는 우리 사회의 일부로까지 유입되는 느낌이다.

기자의 카메라조차 두려워하는 무슬림들


▎이슬람성원의 예배실에서 한 무슬림이 기도를 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위치한 이슬람서울중앙성원. 1월 8일 찾아간 성원에는 정체 모를 긴장감이 감돌았다. 서울에서 유일이자 국내 최대의 이슬람사원을 찾는 무슬림들의 표정은 어딘가 굳어 있었고 발걸음은 무거워 보였다. 지난해 6월 이곳을 찾아갔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슬람서울중앙성원의 ‘주마’(금요 예배)가 있는 날. 얼어붙은 날씨처럼 예배 분위기도 가라앉아 있었다. 건물 밖으로는 주문과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스밀라(신의 이름으로)”,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 예배를 올리던 무슬림들은 대부분 고개를 돌리거나 자리를 피했다. 중동권의 여성 무슬림(무슬리마)들은 히잡에 가려진 큰 두 눈으로 잠시 응시하더니 곧 예배실로 사라져버렸다.

무슬림들이 많이 살아서 ‘한국의 작은 이슬람’으로 불리는 이태원의 우사단 길도 활기를 잃었다. 할랄푸드(이슬람 율법에 맞게 가공된 음식) 음식점들은 이전과 달리 한산하다. IS 테러 여파로 식당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확 줄었기 때문이다. 할랄 가게에서 일하는 중동지역 무슬림 무함마드(가명·30대)는 “(지난 해 초) 김군의 IS 가담 사건 때처럼 오가는 사람이 부쩍 줄어들고 매출도 떨어졌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IS는 지금 우리가 믿는 종교(이슬람)를 상대로 모욕적인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아랍어 강사인 한국인 무슬림 임혜영(가명·29) 씨는 분통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다. “사건만 터졌다 하면 타종교인들이나 취재진의 질문이 쏟아진다. IS는 무슬림이 아니며 명칭 때문에 이슬람 전체가 매도 당한다.” 임씨는 “코란에는 ‘하나님은 생명을 고의든 실수든 죽이지 말라’고 명시돼 있다”고 덧붙였다.

날로 증가하던 국내 무슬림 사회가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한국사회의 무슬림 수는 해마다 증가해왔다. 1990년대 외국인 노동자 유입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1964년 3700명에 불과하던 국내 무슬림 규모는 2014년 20만4500명으로 껑충 뛰었다. 이중 한국인 무슬림은 약 4만 명으로 추산된다. 명지대 아랍지역학과 안정국 교수에 따르면 해외 거주 무슬림 공동체는 개척자→ 연쇄이주→ 가족 이주→ 무슬림 신세대의 출현 등 4개의 발전 단계를 거친다. 한국은 현재 3단계로 진입 중으로 국내 무슬림 공동체도 점점 확산되는 추세다.

이에 비례해 이슬람 문화를 대하는 한국 내 배타적인 분위기도 확산된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10년 “고용허가제 송출국가에서 이슬람 국가를 제외해달라”, “이슬람 국가의 유학생을 받지 말라”, “이슬람 사원 첨탑 건설을 승인하지 말라” 등 178건의 민원·제안을 접수했다. 지난해 12월 11일 권익위에 확인한 결과 “통계수치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매년 이슬람 집단에 대한 민원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구촌 곳곳에서 자행되는 IS 만행의 여파가 국내 무슬림들에게도 여과 없이 전달된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부터 혐오와 비방을 담은 공격이 난무한다. 우선 가장 피해가 극심한 곳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다. 지난해 12월 10일 인터넷 블로그에는 전북 익산의 할랄식품산업단지 공사를 막아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모든 무슬림이 테러분자는 아니지만, 테러범은 거의 모두 무슬림”이라며 그는 “할랄 인증으로 인한 수입이 테러자금으로 유입되니 할랄푸드 반대를 위해 지속적으로 항의전화를 해달라”고 촉구했다.

“이슬람 사원 때문에 위험” 악성 댓글로 몸살


▎파리에서 일어난 IS 테러로 130명이 희생되며 전 세계가 경악했다. / 사진·중앙포토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IS 관련 기사마다 무슬림을 공격하는 악성 댓글이 이어지는 것은 기본이다. 이슬람교에 대한 원색적인 적대감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이슬람(신자들)은 성전이란 미명하에 과격해질 요소가 있는 자들이다. 소속된 사회에 이슬람이 소수일 때는 언제나 평화를 외치며 자신들을 숨기지만 이슬람이 확산되면 본색을 드러내는 자들이다. 나라의 법보다 자신들의 이슬람법을 우선한다.”

“기독교의 십자군전쟁, 스페인 포르투갈의 남미원주민 학살, 나치의 홀로코스트, 미국 인디언 학살, 흑인노예 착취, 이스라엘의 민간인 폭격 모두 기독교 문화권에서 일어났다. 기독교든 이슬람이든 테러리스트의 깊은 본심은 일치한다. 일정 머릿수 이상이 되는 순간 폭력성이 드러날 거고 대규모 테러가 발생할 것이다. 소수라서 숨죽이고 눈치 보고 있는 것일 뿐이다. 저들은 극도로 폭력적이며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어떻게든 상대를 해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위험한 이유는 한남동(이태원) 이슬람 사원 때문이다. 코란에 이슬람교 이외에 타 종교인들을 죽이라고 적혀 있는데, 이슬람교도들이 거기서 밤낮 코란을 읽다가 서울 시내로 나와봐라. 잘못하면 서울도 위험하다.”

테러로 인한 국제적 비난과 편견이 아니더라도 국내 무슬림들은 종교적 이유로 불편하고 힘겨운 삶을 감내해야 한다. 한국인 무슬림들은 일상적인 조직생활에서도 고충을 겪는다. 그래서 직장을 얻을 때도 종교를 밝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용일(가명·46) 씨는 “대놓고 차별하지는 않더라도 무슬림이라고 말하면 고용주가 난색을 표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말했다. 일반 식당에서 근무하던 무슬림 박순영(가명·40대) 씨는 “이슬람 율법은 술과 고기를 금한다”면서 “사장에게는 알레르기 때문에 체질 상 술과 고기를 멀리한다고 둘러댔다”고 직장생활의 불편함을 토로했다.

회식 자리는 더 좌불안석이다. 무슬림 신자들은 술과 고기가 기본인 모임에서 제외되기 십상이다. 임혜영 씨는 “처음에는 자리를 함께해보지만 아무래도 동료들이 불편해 한다”며 “어느 순간부터인가 회식에서 배제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동료들과 멀어지게 되면서 이직을 하거나 본인 사업체를 갖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전언이다.

김용일 씨는 일반 중소기업을 다니다가 승진에서 계속 밀리며 결국 사표를 내야 했다. 그는 “회식자리부터 제외되다 보니 동료랑 다음날 할 얘기도 없고, 업무에도 지장을 주었다”며 “테러 사건이 터지고 나면 (내 앞에서) 이야기 하기를 꺼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중에는 괜히 무슬림인 것을 밝혔나 후회가 됐다”고 덧붙였다. 이직을 고려하던 그는 결국 할랄식품업계로 전향했다.

학교 생활에서도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박경진(가명·19) 군은 17세 때 학교에서 자신이 무슬림임을 밝혔다가 곤란함을 겪었다. 박군은 학교에서 유일한 무슬림이었다. 그렇다고 독실한 무슬림은 못 됐다고 한다. 돼지고기 식단 위주의 급식을 매번 피하기 어려워 가리지 않고 먹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친구들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감수해야 했다. “너 이거(돼지고기) 먹으면 안 되지 않아?”라는 질문이 쏟아졌다. 박군은 “이슬람이 유별난 종교라고 생각들 하는지 남들과 조금만 다른 행동을 해도 ‘너희 종교는 억압적이다, 테러를 일으킨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아 상처를 받거나 다툼을 벌이는 일도 생겨났다”고 말했다.

‘살라(salah,예배시간)’를 아예 지키기가 어려웠다. ‘살라’는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 있는 성지를 향해서 북서쪽으로 하루에 다섯 번 기도를 하는 의식이다. 박군은 “수업 중간에 기도를 하겠다고 나갈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가장 괴로운 시간은 아무래도 종교에 관련된 토론 수업이었다. 박군은 “테러나 종교 분쟁 등 국제사회 이슈로 토론을 하면 마치 혼자 싸우는 기분이 들어 답답했다”고 토로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군대에서도 무슬림은 자신의 종교를 당당히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국방부 측에 병사들의 종교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 자료를 요청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정보라 공개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상당수의 소수 종교자는 자신의 신념을 되려 감추고 지내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고 말했다.

2014년에 제대한 김성준(27) 씨도 군 복무시절에 자신의 종교를 밝히지 않았다. 그는 “집단 생활을 할 때 종교를 밝히는 게 불편했다”며 “2년 복무 기간 중 돼지고기를 안 먹어도 되는 때가 상병·병장 시절로 기억된다”고 돌이켰다. 김씨는 “지휘관이 다른 종교인인 경우 군 생활이 편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진로 선택과 결혼 때도 좌절감 맛봐


▎무슬림들은 “IS와 무슬림은 엄연히 다르다”고 항변한다. 한국인 무슬림 신자 중 한 명은 “왜 유대교도가 수염을 기르면 신앙을 실천하는 것으로 보고 무슬림이 수염을 기르면 극단주의자로 부르느냐”고 반문했다. / 사진·중앙포토
종교가 개인의 삶을 규정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슬람의 경우 그 정도가 센 편이다. 이런 까닭에 젊은 무슬림들은 아예 아랍어나 아랍 문화권으로 자신의 사회생활 진로를 잡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슬람의 문화가 존중받는 일터에서 일하고 싶은 희망 때문이다.

외국인 고등학교를 다닌 박경진(가명·19) 군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공부한다. 이슬람 법(샤리아)를 전공하고 싶다는 박군은 “한국에 돌아와 무슬림이 일하는 곳에서 분쟁을 해결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며 “진학하면 전공뿐 아니라 종교 공부도 빠질 수 없는데, 졸업 후에는 한국에서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천우(가명·30) 씨는 말레이시아에서 이슬람 금융전공으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유학생이다. 이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이슬람에 입교한 뒤 아랍어 과에 진학해 이슬람 문화에 대해 배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진로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젊은 한국인 무슬림들에게 또 다른 장벽은 결혼이다. 이슬람 전통에 따르면 무슬림은 무슬림과 결혼해야 한다. 한국인 무슬림끼리 만나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한국인이 외국인 무슬림과 결혼하면서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부부가 모두 무슬림인 경우에는 결혼 후 온 가족이 개종한 사례가 대부분이다.

김진혁(가명·22) 씨는 이집트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코슬림(Koslim, 한국인과 무슬림을 합친 용어)이다. 원래 어머니 집안은 천주교였던 터라 어머니가 결혼의 개종한 사실을 아직까지도 비밀에 부치고 있다고 한다. 김 씨는 “결혼은 꼭 무슬림과 하고 싶다”며 “가족들이 개종을 하면서 받는 상처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2년 전 개종을 하고 평범한 남성과 연애하던 박가영(가명·33) 씨는 결국 가치관의 차이로 헤어졌다. 개종을 결심했을 때부터 부모님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박씨는 “부모님은 ‘대체 결혼은 언제 하려고 하느냐’며 말리셨다”며 “한국 사회에서 무슬림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같은 종교인이 아니라면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슬람이 ‘일부일처제’가 아니라는 편견도 작용한다. 하지만 한국인 무슬림 사회는 ‘일부일처제’를 적용받는다. 국내법에 먼저 귀속되기 때문이다. 이슬람 교리에서도 일부일처제를 선호한다고 한다. 국내 25명의 이맘(Imam, 성직자) 중 유일한 한국인인 이슬람서울중앙성원 이주화 이맘은 12월 13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코란에서 또한 일부일처를 최선으로 보고 있고 현재 무슬림 중 2%가 안 되는 사람들만이 둘 이상의 부인과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다처의 경우는 과거 전쟁 때문에 대를 잇지 못했던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문화와 연관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심각한 차별에도 무슬림들은 왜 가시밭길을 감수하는 걸까? 한국인 무슬림들에게 이슬람교의 가장 큰 특징을 물으면 “평등의 종교”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계급의 차별이 없고 모두가 동등하다는 것. 임혜영 씨는 “일반의 오해와는 달리 이슬람은 여성에게도 평등하며 성원에서만큼은 빈부의 차도 없이 모두가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받는다”며 “(종교가) 불편하게 한 적은 있어도 힘들게 한 적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천우 씨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만난 많은 무슬림이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누구보다 교리를 실천하면서 사는 모습은 존경심을 가질 만하다”고 말했다.

코란에는 ‘살인하지 말라’고 써 있다


▎심각한 차별에도 무슬림들이 가시밭길을 감수하는 이유는 ‘평등의 종교’여서다. 주마(금요일 예배)를 드리고 있는 이슬람 신자들.
전 세계 이슬람 신자는 ‘IS와 무슬림은 다르다’며 항변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IS와 무슬림이 같다는 편견을 버리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12일(현지시간) 라디오 주례연설에서 “무슬림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이슬람국가(IS)를 돕고 미국의 국가 안보를 해친다”며 “전 세계 무슬림이 이슬람에 대한 왜곡된 해석을 거부해야만 하는 것처럼 우리도 모든 형태의 편협함을 거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혜영 씨는 “왜 유대교도가 수염을 기르면 신앙을 실천하는 것으로 보고 무슬림이 수염을 기르면 극단주의자라고 부르느냐”고 반문했다. 이천우 씨 또한 IS에 대해서 “무슬림과 IS가 같은 테러단체로 분류되는 것은 매우 불쾌하다”며 “(IS가) 이슬람을 믿고 이름을 악용하는 것은 맞지만 이슬람권 국가 내에서도 IS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정부차원에서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평등의 종교’를 믿고 따르는 신자들의 믿음과는 달리 ‘이슬람은 테러종교’라는 낙인이 찍힌 한국에서 한국인 무슬림들은 평등이란 가치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살아간다. 이들은 평소 자신의 종교를 밝히기를 꺼린다. 포교 활동에도 나서지 않는다. 히잡(hijab, 머리를 가리는 스카프)을 두르지 않고 카타야(Ketayap, 머리를 가리는 남성용 모자)을 쓰지 않은 채 IS테러 공포가 다시 잠잠해지길 기다릴 뿐이다.

어느 한국인 무슬림 신자가 내민 코란 5장 32절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만일 누군가가 지상에 아무런 해악을 끼치지 않은 한 사람이라도 죽인다면 그것은 전 인류를 죽인 것과 같을 것이며 만일 누군가가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면 그것은 전 인류의 생명을 구한 것과 같은 것이니라.”

- 글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사진 오상민 기자 oh.sangmin@joins.com

201602호 (2016.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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