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스타 포커스] LPGA 본격 데뷔 앞둔 ‘메이저 퀸’ 전인지 

“성적 부담 없어요. 즐길 준비는 돼 있죠!” 

양준호 서울경제신문 기자 miguel@sed.co.kr
지난시즌, 한·미·일 메이저대회만 5승 거둬 ‘덤보슬램’ 별명 얻어… 올해 LPGA 투어 합류, 8월 리우올림픽 출전 두 마리 토끼 쫓는다

▎‘메이저 퀸’ 전인지가 US 여자오픈 우승컵을 들고 2016년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 사진제공·박태성 사진작가
2015년은 ‘전인지(22·하이트진로)의 해’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미·일 투어 8승 중 메이저대회에서만 5승을 거두며 일약 ‘메이저 퀸’에 등극했다. 여세를 몰아 전인지는 올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 데뷔한다. 지난해 연말 <월간중앙>과 만난 전인지는 “즐거운 마음으로 즐길 준비가 돼 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LPGA 투어는 최근 새 시즌을 전망하는 ‘2016시즌 가이드’를 홈페이지에 게재하며 두 명의 사진을 실었다. 박인비와 전인지(22·하이트진로)였다.


▎전인지가 지난해 12월 중국 하이난섬 하이커우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현대차 중국여자오픈에서 1번홀 티샷 전 코스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 사진제공·KLPGA
박인비는 지난해 커리어 그랜드슬램(메이저 4개 대회 석권)을 달성한 ‘골프여제’. 올 시즌을 마치면 명예의 전당에 입회하게 돼 있어 시즌 전망에 박인비의 얼굴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전인지는 올해 LPGA 투어에 데뷔하는 신인이다. 미국 투어가 쟁쟁한 미국선수들을 놔두고 전인지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파격이다. 그만큼 ‘슈퍼루키’ 전인지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뜻으로 읽힌다.

전인지의 2015시즌은 그보다 더 화려할 수 없었다. 한국 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5승,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에서 2승, LPGA 투어에서 1승을 챙겼다. 이 가운데 US 여자오픈을 포함해 메이저대회 승수만 5승이다. US 여자오픈 우승으로 올 시즌 LPGA 투어 진출권도 얻었다. 한·미·일 메이저대회 한 시즌 석권은 전인지가 처음 쓴 신기록이다.

전인지는 인터넷 팬클럽 회원이 5천 명을 훌쩍 넘고 대회장마다 노란 모자를 맞춰 쓴 ‘삼촌부대’의 응원을 받는다. 국내외에서 ‘전인지 신드롬’이 필드를 강타한 한 해였다.

새 시즌 미국에서는 신인으로 돌아가지만 전인지는 상금·대상(MVP)·최소타수·다승왕까지 국내 투어 4관왕에 ‘한·미·일 메이저 퀸’ 타이틀을 자랑하는 ‘무늬만 신인’인 셈이다. 당연히 신인왕 1순위로 꼽힌다.

세계랭킹 10위로 한국선수 가운데는 6위인 전인지는 국가별 최대 4명이 나갈 수 있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도 기대할 만하다. 세계랭킹 포인트가 낮은 국내 투어를 주무대로 하면서도 세계 톱10에 든 전인지라 포인트가 높은 미국 투어에서는 세계랭킹을 끌어올리기가 한층 수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연말 <월간중앙>과 만난 전인지는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 매년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계속 말해왔는데 2015년보다 더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큰 스트레스”라며 “미국 투어 첫해는 상금랭킹 톱10에 든다면 스스로 잘했다고 칭찬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도 저도 아닌 성적을 내기는 싫다”며 “철저한 준비로 2015년 못지않은 활약을 보이겠다”고 덧붙였다. 미국 팜스프링스와 올랜도에서 전지훈련을 마친 전인지는 2월부터 LPGA 투어 대회에 출전하며 ‘제2의 골프인생’을 향한 첫걸음을 뗀다.

“브리티시 오픈만은 꼭 제패하고 싶어”


▎전인지가 지난해 10월 KB금융 스타챔피언십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노란 모자를 쓴 전인지 팬클럽 ‘플라잉 덤보’ 회원들이 눈에 띈다. / 사진제공·KLPGA
지난해와 올해를 하나의 키워드로 정리한다면 어떻게 말하겠어요?

“2015년은 ‘덤보슬램’이 아닐까 싶어요. 팬들이 재미있게 지어주신 건데 마음에 들고 기억에 남아요. 미국 무대 도전의 첫해인 2016년은 즐기는 게 키워드예요. 대회가 있는 그 주에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회가 아니면 미국 곳곳을 언제 또 가보겠어요. 현지의 숨겨진 로컬 식당에도 가고 유명한 곳도 놀러 다니며 즐거운 마음으로 즐길 준비가 돼 있거든요. 그렇다고 이도 저도 아닌 성적을 내기는 싫어요. 잘하려고 가는 거잖아요. 무아지경에 빠져 골프를 쳤던 경험이 몇 번 있어요. 그렇게 치면 성적이 훨씬 좋더라고요.”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아기 코끼리 ‘덤보’가 전인지의 별명이다. 한 시즌 한·미·일 메이저대회 석권 기록을 팬들은 덤보슬램이라 부른다.

미국의 낯선 코스 적응이 관건일 텐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원래 한국형 잔디보다 외국 잔디가 오히려 저와 잘 맞아요. 실제로 국내 투어 첫해 첫 승을 올렸던 코스랑 2년차에 두 번째 우승했던 코스의 잔디가 모두 외국 잔디에 가까웠어요. 2015년에 LPGA 투어 대회들을 몇 차례 경험해보면서 ‘아, 같은 외국 잔디라도 이런 잔디에서는 이런 기술이 필요하구나’하는 것들을 많이 배우기도 했어요. 물론 전혀 새로운 코스를 경험할 일이 더 많겠지만 새로운 것들에 대한 기대감이 오히려 더 큽니다.”

적응이 쉽지 않을 수도 있어요

“아직 두려움은 없는 것 같아요. 힘들고 외로울 때가 있을 거라는 말을 먼저 LPGA 투어에서 뛴 언니들에게 많이 들었어요. 한국에서는 잘 안 풀릴 때면 학교 친구들을 만나서 긍정의 기운을 받곤 했는데 미국에선 그럴 기회가 없을 것 같아 걱정스럽기도 하죠. 하지만 외국 선수들도 꽤 많이 사귀어놓았어요. 현재는 두려움보다는 새 무대에 대한 궁금증이 더 많다고 보면 돼요.”

미국 데뷔 첫해 몇 승 정도를 생각하는지 궁금한데요.

“지난해는 정말 ‘사고를 쳤다’는 말이 떠오를 만큼 잘했어요. 매년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계속 말해왔는데 2015년보다 더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큰 스트레스예요. 그래서 상금랭킹 톱10 안에만 든다면 스스로 잘했다고 칭찬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장 우승하고 싶은 대회는 브리티시 여자오픈이에요. 꼭 2016년이 아니더라도 투어 생활하는 동안 브리티시 여자오픈은 꼭 제패하고 싶어요.”

“선수이기 이전에 여대생, 최고 학점은 3.8”


▎지난해 7월 하이트진로 챔피언십에서 캐디와 주먹을 맞부딪치는 전인지. 전인지의 캐디는 북아일랜드 선수 출신의 데이비드 존스다. LPGA 투어 도전도 존스와 함께한다. / 사진제공·KLPGA
혹시 개인적으로 롤모델로 삼는 선수가 있나요?

“아널드 파머(미국)요. US 여자오픈에서 우승했을 때 그가 보내온 편지를 받고 크게 감동했어요. 그와 같은 삶을 살고 싶어요.”

파머는 마스터스 4승 등 메이저대회 7승을 포함해 미국 프로골프(PGA) 투어에서 62승을 쌓은 전설적인 골퍼다. 전 세계에 300개 이상의 골프 코스를 설계했으며 플로리다에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아널드 파머 메디컬 센터’도 세웠다. 2004년 골프선수로는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 훈장을 받기도 했다. PGA·LPGA 투어에서 첫 승을 거둔 선수에게 친필 축전을 전하는 파머는 전인지에게도 축하 편지를 보냈다.

아직 대학생인데, 투어활동에 문제는 없나요?

“3학년(고려대 사회체육학과) 마쳤죠. 1학년 때는 굉장히 의욕이 넘쳐서 과제를 스스로 찾아서라도 제출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2015년에는 해외를 많이 오간 탓에 조금 소홀했어요. LPGA 투어를 뛰게 되면 학교생활을 지금처럼은 못하겠지만 최선을 다할 거예요. 그동안 가끔 해외 투어 대회에 갔을 때도 친구들이 정리해서 보내준 강의 내용으로 공부하고 과제도 제출했어요.”

학교에서 들은 강의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요?

“스포츠마케팅 관련 수업이요. 정말 귀에 쏙쏙 들어왔어요. 대회를 준비하는 입장이나 선수 관리해주는 분들의 고충을 이해하게 됐죠. 그렇게 보기 시작하니 대회에 나가는 게 더 재미있어지기도 했어요. ‘대회장의 이런 부분을 신경 쓰면 갤러리 입장에서 재미있겠다’ 이런 생각도 들고요.(웃음) 선수로서 경기를 출전하기 위한 것뿐 아니라 다양한 시선으로 대회를 바라보니 스트레스도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어요. 나중에 그쪽 일을 할 기회가 생기면 마다하지 않을 거예요.”

학점은 잘 받았어요?

“학업에 소홀했던 3학년 성적은 비밀이에요.(웃음) 하지만 진짜 열심히 했던 1학년 때는 3.8(4.5 만점)까지 받아 봤습니다.”

아무래도 대학생활을 일반 학생들처럼 즐기지는 못하죠?

“운동선수라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친구들이랑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자’고 휴대폰 메신저로 얘기는 하면서도 지키기는 늘 힘들어요. 동아리 활동을 못한 게 가장 아쉬워요. 스킨스쿠버를 정말 하고 싶었는데 스쿠버 동아리방 문 앞까지 갔다가 돌아왔거든요. 가입만 해놓고 한 번도 활동 못 할 것 같아서요.”(웃음)

혹시 남자친구 있어요?

“없어요. 친구들에게 ‘연애 세포가 아예 없느냐’, ‘20년간 연애 안 해보면 순간이동 가능하다고 하더라’는 등의 놀림도 받았어요. 물론 그동안 호감이 가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다 호감 갖는 수준에서 끝났어요.”

남자친구로 골프선수는 어때요?

“그건 절대 아닌 것 같아요.(웃음) 열 살 터울의 언니가 있는데 ‘CC(캠퍼스 커플)는 안 된다’, ‘골프선수는 안 된다’는 얘기를 머릿속에 박힐 정도로 많이 들었거든요. 운동선수 말고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이면 좋겠어요.”

내가 봐도 좀 예쁘다고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면요?

“하하, 정말 그런 건 없어요. 근데 이런 경우는 있었어요. 팬들이 가장 예쁘게 나오는 각도의 사진만 모아서 인터넷 팬카페에 올려주셨더라고요. 그걸 보고 ‘아, 이렇게 하면 정면에서 찍히는 것보다는 그래도 낫겠구나’ 하고 생각했었어요. 정면보다는 그나마 옆얼굴이 자신 있거든요.”(웃음)

외모에서 자신 없는 부분이 있어요?

“스스로 볼살이 단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주변 분들은 트레이드마크라고 얘기해줘요.”

가장 큰 일탈? “한나절 잠수 타는 거요”


▎함평골프고 시절의 전인지. 대회를 마친 뒤 후련하다는 듯 환하게 웃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요즘도 경기할 때 틈틈이 수학 문제를 푸나요?(웃음)

“(웃음)아뇨. 시간이 나면 드론(무인비행기)을 날려요. 대회장에도 가져가거든요.”

전인지는 초등학교 때 수학경시대회 대상을 탔을 정도로 수학을 잘했다. 지능지수(IQ)가 138이다. 열 살 터울의 언니는 수학 교사 출신이다.

드론 말고 요즘 즐겨 하는 게 또 있어요?

“나노블럭이요. 집에 진열장이 있는데 한 층은 유명 건축물, 한 층은 동물 블럭으로 채워져 있죠. 셀 수 없이 많아요.”

골프 말고 좋아하는 스포츠는?

“농구와 아이스하키를 좋아해요. 정기 고연전을 통해 좋아하게 됐어요. 3년간 매번 대회 일정이랑 겹쳐서 직접 보진 못했는데 꼭 한 번 현장에서 응원을 해보고 싶어요.”

하루 동안 완벽한 자유가 주어진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요?

“하루는 너무 짧아요. 어디 가보려고 해도 차에서 시간을 다 보내야 하잖아요. 2박3일은 필요해요. 공기 좋은 곳에 가서 쉬면서 잠도 푹 자고 그러고 싶죠.”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해본 가장 큰 일탈을 꼽는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휴대전화 꺼놓고 ‘잠수’ 탔던 것?(웃음) 지난해 9월쯤이에요. 머리 좀 비우고 싶어서 무작정 혼자 걸었어요. 저녁도 김밥집에서 혼자 먹고…. 근데 금방 쓸쓸해지더라. 그래서 바로 집으로 돌아왔죠.”

전인지는 태권도선수 출신인 아버지의 권유로 초등학교 5학년 때 골프를 시작했다. 10년 넘게 골프채와 씨름하고 있는 셈이다. 아버지 전종진 씨는 일찌감치 자식 중 한 명은 운동을 시켜야겠다고 결심했고 전인지를 점찍었다.

처음 골프연습장에 갔을 때는 공을 맞추지도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전인지는 5시간 넘게 채를 놓지 않는 집념을 보였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힐 때쯤 공을 맞추기 시작했다. 전북 군산에서 태어난 전인지는 충남 서산과 제주, 전남 보성·함평 등으로 학교를 옮겨 다니며 골프를 배웠다. 현재는 성남시 판교동에서 산다. “좋은 골프장과 코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 다녔다”는 게 아버지 전씨의 설명이다.

골프는 보통 ‘있는 집’에서 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전인지 가정은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하던 무역업이 부도를 맞아 어머니가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작은 식당을 운영하며 어머니가 번 돈으로 전인지는 골프를 했고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중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 상비군, 고등학교 1학년에 국가대표가 됐다. 전인지는 지난해 KLPGA 투어 시상식에서 “가족의 희생을 잘 알고 있다. 이 상은 가족에게 바친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팬들에게서 들은 최고 칭찬 “당신은 나의 빛”

골프가 지긋지긋했던 기억도 있을 것 같아요.

“그 정도는 아니고요, 조금 미웠던 적은 있어요. 지난해 조금 유명해지면서 ‘이런 게 유명세인가’ 느낀 적이 있었는데 그때 골프가 좀 싫었어요. 곳곳에서 인터뷰나 각종 요청이 쏟아져 들어왔는데 몸이 하나라 다 응해드리지 못했거든요. 출전 대회 선택에서는 주최사에 서운함을 드린 경우도 있었고요. 그런 과정에서 저를 둘러싸고 사실과 다른 말들이 나돌기도 해 괴로웠어요. 근데 그때 처음으로 ‘골프가 아니었더라면 내가 이런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결국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 계기가 된 셈이죠.”

최근에 인터넷 개인방송이 인기를 끌고 있어요. 만약에 개인방송을 맡게 된다면 어떤 주제로 할 것 같아요?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 편이 아니라 정말 어려울 것 같아요. 실제로 그런 TV 프로그램에 나가게 된다면 요리연구가 백종원 씨나 마술을 하는 방을 기웃거리지 않을까요? 친구들 사이에서 ‘허당’이라는 얘기도 가끔 듣는 편이라서요.”(웃음)

많이 잘 땐 몇 시간까지 자봤어요? 잠을 못 잤을 때도요.

“많이 잔 건 모르겠고 1시간밖에 못 잔 적은 있어요. 보통 대회가 끝난 일요일 밤에는 잠을 잘 이루지 못하거든요. 매주 대회 일정 때문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들어서 그런지 쉬는 날도 늦잠을 못 자는 편이에요.”

전인지의 버킷리스트는? 죽기 전에 이것만은 꼭 하고 싶다는 게 있나요?

“아직 골프에서 이루고 싶은 것도 다 이루지 못했어요. 정말 큰 목표 한 가지가 있긴 한데 지금 밝힐 수는 없어요. 이제 그 목표를 향해 한두 발 내디뎠을 뿐이니까요. 골프만 잘한다고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지켜봐 주세요.”

책을 많이 읽나요, 아니면 TV를 많이 보나요?

“팬들에게 책 선물을 진짜 많이 받거든요. 그런데 죄송하게도 다 읽은 건 별로 없어요.(웃음) TV는 한 달에 한 번 켤까 말까 하고요. 골프채널도 마찬가지예요. 친구들이 인터넷에 나온 저와 관련한 내용을 캡처해서 휴대전화로 보내주면 확인해보는 정도?”

지금까지 들어본 최고의 칭찬을 꼽는다면?

“‘당신은 내게 빛과 같은 존재다’라는 말이에요. 지난해 US 여자오픈 때 반딧불이의 무리를 보고 ‘나도 누군가에게 빛과 희망이 돼야지’라고 다짐했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가슴이 뭉클했어요. 골프장에서 일하던 어떤 분이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으셨는데 너무 가슴이 아파서 자필 편지랑 사인을 보내드렸더니 그렇게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전인지는 US 여자오픈 뒤 암 환자를 돕는 뉴욕주 랭카스터 지역 자선단체에 1만 달러를 기부했다. 앞서 일본 투어 살롱파스컵 우승 뒤에는 동일본 대지진 피해자를 위해 3천만 원을 내놓았고 최근에는 팬들이 모은 2천만원에 같은 액수를 더해 국내 재단에 기부하기도 했다.

올해 경기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출전해야 하는 국내 투어 대회도 많은데.

“지난해 US 오픈 우승하고 나서 그때 당시는 ‘내가 미국에 꼭 가야 하는 건가. 한국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투어 생활하는 게 좋은데’라는 생각을 했어요. 조금 더 미루고 싶은 마음이 컸거든요. 부모님도 한국에서 즐겁게 투어 생활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고요. 그런 고민을 한 끝에 결국 미국 진출을 결정했어요. US 오픈을 우승하고 나니까 세계랭킹이 올라가 있어서 올림픽 출전 기회도 눈앞까지 와 있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큰 무대 도전을 안 한다는 것은 아쉬움과 후회로 남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미국 진출을 결심했어요. 상반기에는 LPGA 투어 적응에 중점을 둘 계획이에요. 시즌 초반 이후의 대회 출전 일정은 더 신중하게 짤 계획이에요.”

어깨 상태에 대한 불안감은 없나요?

“국내 투어에 데뷔한 2013시즌에도 어깨 부상 탓에 시즌 일정을 완주하지 못했어요. 스윙에 안 좋은 버릇이 있는데 반복되다 보니 어깨에 무리가 간 것 같아요. 그때 4개월 가까이 목이 안 돌아갈 정도로 고생했어요. 훈련 가 있는데 다른 친구들이 연습하는 동안 저는 치료만 받고…. 별의 별 부정적인 생각이 들고 정말 힘들었던 시간이었어요. 그래서 2년 차 때는 몸관리에 굉장히 투자했어요. 월요일에는 꼭 운동치료와 재활마사지를 받았는데, 그런 덕분인지 통증을 한 번도 느끼지 못했어요. 지난해에도 틈틈이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면 다른 선수들처럼 5~6주 연속 대회에도 나가고 그랬을 거예요. 그런데 후반기에 어깨 통증(극상견 염증과 견관절 충돌 증후군)이 시작됐어요. ‘관리에 소홀했기 때문에 통증이 찾아온 거구나’ 싶어요. 미국 무대 진출을 앞두고 일찌감치 미국으로 들어가는 것도 몸 만드는 데 시간을 투자를 하기 위해서예요. 시즌이 시작돼도 컨디션 관리를 최우선으로 삼을 생각이고요. 스트레칭을 게을리하지 않고 물리치료와 마사지도 거르지 말아야죠. 휴식일에는 충분히 쉬면서 시즌을 치르면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봐요.”

“20~30년 뒤에도 현역선수로 뛰고 싶어”


▎전인지가 하이트진로 챔피언십 우승 뒤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전인지는 세리머니가 화려하지 않은 편인데 상대 선수를 배려하기 위함이다. / 사진제공·KLPGA
지난시즌을 거치며 개인적으로 가장 발전한 부분이 있다면?

“샷이 생각대로 되지 않아도 스코어를 관리하는 능력이 좋아졌다고 생각해요.”

경기 중에 표정이 별로 변화가 없는 편인데, 샷이 안 되어서 경기 중에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날 때는 없나요?

“화낸다고 상황이 바뀌는 것은 아니잖아요.(웃음) 한 번은 파 퍼트를 놓치자 캐디분이 ‘버디를 해야 하는 홀이었다’며 아쉬워하더라고요. 그럴 때 저는 오히려 이렇게 생각해요. ‘어차피 지나간 홀이지 않나. 다음 홀부터 같이 집중하자고 오히려 기운을 내자’ 이렇게요.”

안정된 몸통 스윙 때문에 샷에 편차가 적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죠? 스윙할 때 생각하는 딱 한 가지를 꼽으라면?

“‘나싱(nothing)’. 스윙할 때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샷 하기까지의 동작을 보면 어드레스 취하기 전까지 시간이 비교적 오래 걸려요. 느린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드레스 직전부터 스윙까지의 시간은 매우 짧아요. 확신을 잡아놓고 들어가기 때문에 어드레스부터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아요.”

올림픽의 해가 밝았어요. 어떤 꿈을 꾸나요?

“올림픽이 많은 동기부여가 될 것입니다. 한 나라에서 많아야 4명이 나갈 수 있는데 선수로서 태극마크를 달고 대회에 출전한다는 자체가 의미 있을 것 같아요. 올림픽 출전을 위한 도전 자체도 재미있을 거예요.” 20~30년 뒤 전인지 선수는 뭘 하고 있을까요? “그때까지도 현역선수로 남아 있는 게 목표예요. 할 수 있을 때까지 골프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 양준호 서울경제신문 기자 miguel@sed.co.kr

201602호 (2016.01.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