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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럴 아츠의 심연을 찾아서] 정열과 보수주의의 이중주 시칠리아 팔레르모 

영화 <대부>와 마피아의 고향이자, 가장 비(非)이탈리아적인 이탈리아의 상징… 극단적 공포와 어둠으로 드리워진 세상이기에 한층 더 아름답게 표현된 고장 

글·사진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로마, 밀라노에 이어 이탈리아 3대 오페라하우스로 불리는 팔레르모의 마시모 극장.
1970년대 이래 지금까지 가장 많이 그리고 꾸준히 팔리는 베스트셀러 영화 DVD는? 각자 염두에 두는 영화가 있겠지만 미국 아마존닷컴에 따르면 영화 <대부(Godfather)> 3부작 시리즈가 최정상에 있다고 한다. 1972년의 <대부1>, 1974년의 <대부2>, 1990년의 <대부3>에 이르는 시리즈물이 아마존닷컴 영화 DVD 분야 최정상이다. 크리스마스나 추수감사절 같은 휴일용 선물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3부작을 한꺼번에 구입할 경우 대략 90달러 선이다. 전체 549분 영화 속에 담지 못했던 미편집 상태의 영상도 즐길 수 있다.

자타가 공인하듯 <대부> 시리즈는 그 모든 영화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명작 중 하나다. 애잔하면서도 신비스러운 엔니오 모리코네와 니노 로타의 음악을 배경으로 하면서, 로버트 드니로, 말론 브란도, 알 파치노로 이어지는 세계적 배우들의 명연기를 실감할 수 있는 영화의 백미(白眉)에 해당한다. 반대자에 대한 무자비한 복수는 물론, 형과 친구를 죽이는 살인극조차도 심오한 예술로 착각하게 만든다.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대부 중독증 아니 대부라는 컬트의 평생 신자(信者)로 변할 듯하다. 한 번 보고 잊어버리는 할리우드 영화가 아니다. 보고 또 봐도 항상 새롭다. 대사 하나에 철학이 있고, 행동 하나에 땀과 피의 냄새가 진동한다. 감독 프란시스 코폴라의 놀라운 연출력을 증명하듯, 그 어떤 장면을 가위로 잘라서 본다 해도 기억에 영원히 남을 아름다운 한 장면으로 와 닿는다.

시칠리아를 이탈리아 영역 밖으로 보는 이탈리아인들


▎1. 시칠리아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리의 카드놀이. / 2. 영화 <대부>는 시칠리아를 세계에 알린 이탈리아 최고이자, 최악의 소프트 파워에 해당한다.
<대부>는 3대(代)에 걸친 마피아 스토리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지만, 마피아의 출발점인 이탈리아에 관한 얘기와 장면이 영화 곳곳에 넘친다. 여러 가지 장면 중에 마이클 콜레오네 역을 맡은 알 파치노가 암살을 피해 도망가 있던 곳의 풍경과 문화는 특히 인상 깊다. 시칠리아다. 창이 없는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긴 엽총과 함께 생활하는 남성들, 무슬림 여성을 연상케 하는 검은색 옷으로 뒤덮인 여성들, 부모와 마을사람들의 감시 아래 이뤄지는 남녀 교제, 마치 결사조직 같은 강인한 인간관계와 신의를 거슬린 자에 대한 잔인한 보복….

필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의 공통분모로 생각하지만, 이탈리아에 관한 가장 강렬한 이미지의 출발점은 영화 <대부>에 있지 않을까? 간단히 말해 ‘<대부>=이탈리아’라는 말이다. 인간관계에서부터 풍경과 문화, 신앙과 사랑 심지어 에스프레소 커피와 같은 일상사에 이르는, 대부 속에 등장하는 모든 것이 ‘이탈리아 이미지’의 원형(元型)처럼 와 닿지 않을까? 이탈리아에 한 번도 안 가보고, 현지 친구가 한 명도 없다 하더라도 이탈리아에 관한 모법답안으로 <대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흥미롭게도 이탈리아인들은 ‘<대부>=이탈리아’로 보는 외부의 시선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시칠리아 주민이라면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대부>가 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영화냐고 반문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탈리아는 남북으로 1185㎞에 걸쳐 길게 이어진, 장화의 나라다. 남북 사이의 문화·언어·음식이 사뭇 다르다.

2012년 1월 토스카나 앞바다에 관광유람선이 침몰한다. 배를 머리고 도망간 악명 높은 선장이 글로벌 뉴스메이커로 떠오른다. 당시 필자는 토스카나피엔자(Pienza)에 머물고 있었다. 현지에 머물면서 알았지만, 외국인은 전혀 모른 채 이탈리아인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던 ‘장발의 멋쟁이 선장’에 대한 핵심 정보가 하나 있었다. 나폴리타노(Napolitano·나폴리 출신)라는 점이다. 신문·방송 그 어디에서도 발설하지 않았지만, 선장이 던지는 나폴리 특유의 사투리를 통해 이탈리아인 모두가 알고 있었다. 매일 텔레비전을 통해 선장의 변명이 울려 퍼지지만, 이탈리아인들은 나폴리 출신이란 점 하나만으로도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시칠리아는 세계 열강들의 전리품

캐릭터나 근무자세라는 면에서 나폴리는 외국처럼 받아들여지는 듯했다. 나폴리 출신이 들으면 화를 내겠지만, 느리고 변명이 많고, 생산성과 효율성이 낮으며 거기에다 부정부패까지 가세한 곳이 나폴리다. 나폴리는 축제나 신년 뉴스에 등장하는 재해 관련 단골메뉴로도 유명하다. 필자도 몇 번이나 경험했지만, 축하용 폭죽놀이가 거의 광적이다. 엄청난 폭죽이 터지면서 화상을 입거나 심지어 숨지는 사람도 등장한다. 중·북부 이탈리아에서는 개인적 차원의 길거리 폭죽놀이가 극히 드물다.

“차라리 과거 2000년 전 로마 땅인 리비아를 참고로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시칠리아를 이탈리아의 원형으로 본다고 말할 경우 나타날, 보통 이탈리아인들의 반응이다. 시칠리아는 나폴리보다 더한, 이탈리아의 이방지대(異邦地帶)다. 나폴리와 시칠리아는 18세기부터 함께 통치된 지역이기도 하다. 유럽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른 세력판도가 시칠리아와 나폴리의 운명이었다. 그러나 당시 나폴리는 이탈리아 일부라는 의식 하에 자신의 운명을 감내했다. 시칠리아는 다르다. 아예 이탈리아와 무관한 독자적 영토라는 의식이 한층 강했다. 한국에서 보면 나폴리나 시칠리아나 별 차이가 없을 듯하다. 현지에 가면 전혀 다르다. 이탈리아 남부에 가는 사람에게 전하는 얘기지만, 나폴리와 시칠리아를 ‘절대로’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양쪽으로부터 욕을 얻어먹기 십상이다.

시칠리아로 향했다. 거의 20년 만의 두 번째 방문이다. 처음 찾았을 때는 ‘<대부>=시칠리아=이탈리아’라는 구도 아래 움직였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자동차로 1주일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낸 것이 전부다. 마피아 그림자를 찾으려 헤맸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하다. 기억에 생생한 것은 싱싱한 채소와 수산물로 가득 찬 팔레르모의 발라로(Ballaro) 시장뿐이다. 시장에서 막 요리한 삶은 문어의 ‘강렬한’ 맛은 한동안 혀끝을 맴돌았다.

올해의 두 번째 여행은 과거의 무지에서 벗어나, 그동안 축적한 경험과 공부를 기반으로 이뤄진 것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느껴지지만, 20~30대 시절의 여행에 비해 얻는 것이 ‘훨씬’ 많다. 효율·경험·지식을 통해 젊을 때 놓쳤던 부분들을 어렵지 않게 잡아낼 수 있다. 문제는 체력일 듯하다. 목적지에 도착한 뒤부터는 걷고 또 걸어야 한다. 시칠리아는 자동차가 없으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어렵다. 나폴리발 페리에 렌터카를 싣고 시칠리아로 들어갔다. 밤 8시 나폴리를 출발해 아침 6시 팔레르모에 도착한다.

시칠리아는 지중해의 중간기착점에 해당된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육지가 자전거 산책로라 할 때 바다는 페라리 고속도로에 해당된다. 아스팔트로 다져진 넓은 도로도 없는 상황에서 육지를 통해 이동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모험과 준비를 해야만 한다. 산을 넘어야 하고, 말이나 마차와 같은 이동수단에 대한 관리에서부터 먹을 것과 잠잘 곳은 물론, 곳곳에 출몰하는 도적에 대한 준비도 해야 한다. 시간도 오래 걸린다. 바다는 육지에 비해 훨씬 간단하다. 큰 배 안에다 음식이나 필요한 도구를 전부 저장할 수 있다. 육지보다는 도적을 만날 가능성도 적다. 날씨와 항로에 대한 준비가 철저할 경우 바닷 길은 쾌속 고속도로에 해당한다. 시칠리아는 그 같은 지중해 고속도로의 중간 기착지에 해당된다. 세계를 움직인 파워들이 지중해 진출과 더불어 한 번씩 시칠리아에 들른다.

희극과 비극을 모두 안고 있는 ‘마시모 극장’


▎마시모 오페라하우스에서 5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가리발디 극장.
기원전 8세기 고대 그리스가 본격적으로 식민지 개발에 나선 이래, 카르타고와 로마에 이어 비잔틴에 예속된다. 8세기에는 이슬람권에 들어갔다가 11세기 들어 바이킹의 노르만이 새로운 주인으로 등장한다. 13세기 프랑스에 잠시 속했다가 15세기부터 스페인 합스부르크 통치하에 들어간다. 18세기초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Piemonte)의 사보이(Savoy)공국이 통치하지만 곧이어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와 스페인 부르봉 왕가가 새 주인으로 나타난다.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들어서면서 나폴리를 점령하지만, 시칠리아까지는 오지 않는다. 나폴레옹은 시칠리아를 유럽이 아니라 생각했다. 덕분에 스페인 부르봉 왕가가 지배를 지속한다. 1860년 붉은 셔츠로 무장한, 이탈리아 통일의 주역 가리발디가 시칠리아를 점령한다. 이듬해 이탈리아 통일이 선포된다. 1963년 프랑스 칸영화제 그랑프리 작품인 <레오파드(The Leopard, 이탈리어 원제: Il Gattopardo)>는 1860년 시칠리아가 스페인 부르봉 왕조를 몰아낼 당시의 상황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버트 랭카스터, 알랭 들롱이 등장하는, 장장 200분에 달하는 긴 영화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통일 당시의 분위기와 저물어가는 구세력의 흔적을 비교하면서 볼 수 있는 이탈리아 관련 필수 명화다.

건축물 관람과 체험은 시칠리아에 들른 가장 큰 이유다. 필자는 건축이나 건축학과 전혀 무관하다. 그렇지만 인류 문화·문명·역사를 통틀어 건축이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알고 있다. 여행을 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지만, 건축이야말로 인류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하나로 엮는 총합체로 와 닿는다. 인간의 기본욕구이자 요구인 의식주는 주, 즉 바깥과 차단된 인공적인 공간을 통해 이뤄진다. 내부의 공간을 통해 문명·문화·역사가 발전해나간다. 주의할 부분은 건물과 건축의 차이다. 각자 다르게 해석하겠지만, 필자에게 있어서 건물은 기능성에 주목하는 공간에 해당된다. 예술·문화·역사·가치와 무관한, 경제성에 입각한 공간이다. 건축물은 기능성·경제성을 초월한다. 신이 내려올 때 한 번쯤 들를 수 있는 곳, 인간의 착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건축물의 범위 안에 들어갈 수 있다. 기능성·경제성에 주목하는 인간적 관점의 건물은 시간이 흐를수록 추해진다. 물론 가치도 떨어진다. 더 좋은 기능과 더 싼 가격의 건물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부수고 허무는 과정의 연속이, 형이하학으로서의 건물이 가질 운명이다.

건축물은 다르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와 아름다움이 더해진다. 신의 목소리가 함께하고, 인간의 희로애락이 투영된 형이상학으로서의 신성한 공간이다. 건축물은 관람만이 아니라 체험이 필요하다. 체험이란 건축물만이 아니라, 주변의 문화, 역사, 현지인들과의 교류를 통한 분석이다. 입체적 관찰인 셈이다. 건물은 적당히 눈으로 살피는 관람으로도 충분하다. 시칠리아는 그 같은 영혼의 공간으로 메워진, 건축물·건축사·건축인의 성지(聖地)에 해당된다. 수많은 파워가 오가면서 그들이 추구하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건축물로 구현해 선보였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양식에서부터, 비잔틴 스타일과 이슬람 양식, 노르만·스페인·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 네오클래식에 이르는, 유럽 전체 건축사가 모여 있는 유일무이한 공간이 바로 시칠리아다.

마시모 극장(Teatre Massimo)은 수많은 시칠리아 내 건축물 가운데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이다. 시칠리아 최고 중심인 팔레르모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 나폴리 배를 타고 들어가거나 비행기로 가는 여행객이라면 마시모를 반드시 접하게 된다. 네오클래식풍의 오페라와 발레 전용극장으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유럽 전체에서 셋째로 큰 오페라 극장으로 전부 7층으로 구성된, 1350개 좌석을 갖고 있다.

오페라 극장의 역사를 보면 원래 1층 플로어는 가장 싼 싸구려 공간에 해당한다. 의자가 따로 없이 서서 보는 ‘시장(市場)형’ 공간이다. 시장형이라 말한 이유는 잡담하면서 와인도 마시고 음식도 시켜서 먹는, 말대로 동대문 시장판이 오페라 극장 1층 플로어의 원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돈이나 신분이 있는 사람들은 2층부터 이뤄진 상층 박스석에서 관람한다. 아래 시장판 플로어에다 침을 뱉거나 푼돈이나 먹다 남은 음식을 던지기도 했다. 마시모 극장이 탄생하던 1897년의 1층 플로어는 그 같은 시장형 공간에 지나지 않았다. 1층 플로어를 가득 채운다는 가정 아래 극장을 만들었다. 전부 3000명의 관람이 가능했다고 한다.

마시모 극장은 1861년 이탈리아 통일의 결과물에 해당한다. 통일 직후인 1864년 팔레르모 지도자들이 초대형 극장을 하나 세우기로 결의한다. 역사적으로 시칠리아는 착취의 대상에 불과했다. 시칠리아인 스스로가 주역으로 나서 역사를 만든 것은 기원전 8세기 이전의 멀고 먼 기억에 불과하다. 초대형 건축물의 대부분은 시칠리아인을 위한 것이 아닌, 지배세력을 위한 전리품에 불과했다. 교회의 경우 시칠리아인들도 이용했겠지만, 크고 넓은 공간은 현지인과 유리된, 권력자들만을 위한 특별지역이었다. 이탈리아 어디를 가도 성(城)이 드물다. 성이 없다는 것은 적이 공격해올 경우 지도자와 시민 모두가 함께 나와 싸운다는 의미다. 왕이나 귀족이 숨을 만한 밀폐된 성이 아예 없다. 시칠리아는 다르다. 곳곳에 크고 장엄한 성이 존재한다. 성은 적에 대한 방어용 목적만이 아니라, 현지인 시칠리아인과 외부에서 온 권력자 사이를 가르는 것이 경계선이기도 했다.

베르디의 작품과 이탈리아인들의 삶의 구도


▎시칠리아의 상징 중 하나인 노새 마차. 화려한 장식을 한 시칠리아 캐릭터가 잘 드러난 명물이다.
유럽 어디를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오페라 극장이지만, 19세기 말까지 시칠리아에는 전무했다. 마시모 극장은 수천 년간 지속된 억압의 역사를 끝낸, 역사적 상징물에 해당된다. 가리발디와 함께 통일을 이끌어 낸 주역답게, 시칠리아인 모두를 행복하게 해줄 기념비적 초대형 공간을 만들자는 의도 하에 3000명 수용 규모의 마시모가 탄생된 것이다. 왕이나 귀족에 비해 교양이나 매너는 부족했겠지만, 모두가 하나라는 의도 아래 탄생된 시민의 전당이 바로 마시모다. 건립 즉시 공연된 오페라는 통일 이탈리아의 왕에 올라선, 빅토리아 애마누엘레 2세에 헌정된다.

필자가 마시모 극장에 주목한 이유는 20년 전 기억에서 비롯된다. 당시 마시모는 보수하는 중이었다. 1974년 보수공사에 들어간 이래, 무려 20여 년 이상 방치된 역사적 건축물이 바로 마시모의 당시 모습이었다. 전부 철책으로 둘러싸인 채, 여기저기 쓰레기들로 뒤덮인 폐가(廢家)처럼 비쳤다. 시칠리아인은 물론 이탈리아인 전체가 입을 모아 비난하던, ‘시칠리아병’이 당시 마시모 주변을 넘실거렸다. 원래 3년 만에 끝내기로 한 보수공사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길어진다. 5년을 넘겨 10년, 이어 15년에서 20년으로 한없이 이어진다. 돈 먹는 하마로 변해가던 때가 필자의 방문시기였다. 보수기간이 늘어난 것은 부정부패, 즉 마피아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예산을 축내면서 중앙정부의 보조금에 이어, 지방정부 돈까지 가로챈다. 마피아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누구 하나 나서는 이가 없었다.

1980년대부터 마피아는 독립된 권력처럼 이탈리아 남부를 장악한다. 1992년 마피아 전담 현직 검사가 대낮에 피살된 사건은 전 세계에 알려진 유명한 사건이다. 마피아 명령에 불복할 경우 누군가에 의해 암살되고, 가족도 피해를 입는다. 이 같은 공포 속에서 모두가 책임을 떠넘기다 보니 마시모의 신장개업은 보수가 시작된 지 25년 만인 1999년 이뤄진다. 마시모는 이탈리아 통일의 흔적인 동시에, 수백 년간 내려온 시칠리아 범죄사의 상징이라 볼 수도 있다.

마시모는 팔레르모의 명동쯤에 해당되는 마케다(Via Maqueda) 거리를 끼고 있다. 정확히 말해 극장의 위치는 팔레르모 베르디 광장(Piazza Verdi) 안에 들어서 있다. 웃는 듯한 모습의 베르디 두상이 극장 왼쪽 정원에 들어서 있다. 1897년 5월 16일, 무려 22년에 걸친 대공사 끝에 탄생된 마시모의 초연 오페라도 베르디 작품이다. 베르디가 만든 28개 오페라 가운데 마지막 작품으로, 코미디에 속하는 팔스타프(Falstaff)다. 젊을 때 희극에서 노년이 되면 비극으로 가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심리일 듯하다. 하지만 비극이 아니라 희극 오페라를 생애 최후의 오페라로 만든 인물이 베르디다. 베르디 개인의 철학이 반영된 작품이기도 하겠지만, 희극적 최후는 이탈리아인 DNA에 새겨진 ‘독특한’ 삶의 구도일지 모르겠다.

겨울이라고 하지만, 섭씨 15℃ 정도로 따뜻하다. 극장 앞 도로에는 두꺼운 뿌리를 드러낸 무성한 나무가 늘어서 있다.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에서 만나기 어려운 기후와 생태가 시칠리아의 특징이다. 오렌지는 기본이고, 해변으로 가면 야자수도 많다. 2016년 시즌을 맞아 마시모는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 4부작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었다. 때마침 세 번째 작품인 <지그프리트(Siegfried)> 공연이 눈앞에 다가왔다. 바그너는 베르디와 더불어 세계 오페라의 양대 산맥이라 볼 수 있다. 베르디의 흔적이 서린 극장에서 바그너의 대표작 <지그프리트> 공연이 이뤄지는 셈이다. 흥미롭게도 아마존닷컴의 오페라 DVD 베스트셀러는 바그너의 ‘반지’ 시리즈다. 영화는 이탈리아, 오페라는 독일이다. 두 나라 국민의 캐릭터를 설명해주는 예술적 증거가 아마존닷컴 베스트셀러 DVD를 통해 확인해볼 수 있다.

2대(代)에 걸쳐 완성된 미니멀리즘의 정수


▎오페라가 끝난 뒤 극장 밖에서 즉흥적으로 이뤄진 거리 콘서트.
<지그프리트>는 무려 4시간에 걸친 장편 오페라다. 쉽게 만나기 어려운 ‘비싼’ 오페라이기도 하지만, 평생 기억에 남을 공연이라 생각하고 찾아갔다. 물론, 오페라를 핑계로 마시모를 안에서부터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남부가 그러하듯 시칠리아 문화는 밤을 통해 이뤄진다. 중·북부 이탈리아인들이 천시하는 시에스타(Siesta) 즉, 낮잠이 일상화돼 있다. 점심식사 뒤 1시간 정도 잠을 자고, 저녁식사도 보통 9시쯤 시작한다. 밤에 여기저기를 거닐면서 쇼핑도 하고 젤라토나 과자를 즐기며 부부동반으로 산보도 한다. 마시모 주변은 밤의 문화로서의 시칠리아의 특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낮에는 별로지만, 어두워지는 순간 사람들로 들끓는다. 과장하자면 팔레르모 시민 65만 명이 전부 마시모 주변으로 몰려오는 듯하다.

저녁 5시30분이 되자 극장 문이 열렸다. 관람객들이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모피를 두른 여성과 나비넥타이를 맨 정장 남성 등 옷차림이 화려하다. 10대 소년·소녀들도 검은색으로 통일된 정장 차림이다. 1층 플로어에서 보면 필자처럼 넥타이도 안 한 사람은 극히 드물다. 마시모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물을 원형으로 하면서 노르만 스타일을 가미한 건축물이다. 아주 단순한 듯 보이지만, 섬세하고 예민하다. 요즘 유행하는 미니멀리즘(Minimalism), 즉 최소 간단주의가 마시모를 세울 당시의 키워드였던 듯하다.

당대의 유명 건축가인 필리포 바실레(Filippo Basile)가 설계·감수한 것이지만, 건립 도중 사망하면서 아들인 에르네스토 바실레(Ernesto Basile)가 뒤이어 완공한다. 2대(代)에 걸친 작품인 셈이다. 정문은 6개의 초대형 대리석 기둥으로 이뤄져 있다. 고대 그리스·로마 건축물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머리 부분은 삼각형 모양이다. 이집트의 삼각형 피라미드를 압축해, 상층부만 잘라 건축물 입구에 장식한 것이다. 태양을 의식해 만들어진 구조다. 건물 입구 위쪽이 삼각형이 아니라, 뾰족한 모양으로 고깔처럼 훌쭉하게 길게 올라가 있으면 이슬람의 영향을 받았거나 고딕 스타일에 해당한다.

마시모에는 무슬림이나 고딕스타일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창문도 아치형으로 고대 그리스, 로마, 비잔틴으로 이어진 전통 문양이다. 고딕스타일 건축물에서 보듯, 수많은 창문으로 장식된 것이 아니라 좌우 각각 8개만 들어서 있다. 창문의 모양, 크기, 수는 건축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관건이다. 고대 그리스·로마시대의 경우 창문의 수가 많지 않다. 외부의 공격을 고려해 창문을 많이 만들지 않았다. 창문이 크거나 많다는 것은 국력이 강하거나 평화로운 시대라는 의미다.

<대부3> 탄생의 비밀과 마피아의 역할


▎1. 마시모 오페라하우스의 정면 계단은 영화 <대부>에서 암살 장면으로 유명해졌다. / 2. 마시모 오페라하우스를 지키고 서 있는 베르디의 동상.
마시모 극장 위로 올라가는 계단은 영화 <대부>의 신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장소다. <대부3>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돈 콜레오네의 딸이 암살되는 장소다. 마시모는 돈 콜레오네의 아들이 오페라 가수로 등극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장소로 등장한다. 오페라 공연이 끝나자 극장 안에 숨어있던 암살자가 따라간다. 총으로 난사를 하던 중 돈 콜레오네의 딸의 가슴에 맞게 된다.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딸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돈 콜레오네가 비명을 지른다. 두 손을 위로 쳐들며 슬픔을 표현하던 알 파치노의 모습은 영화사에 영원히 남을 명연기에 해당된다.

흥미로운 것은 <대부3>이 나온 것이 1990년이란 점이다. 보수공사가 끝나기 전에 촬영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추정하건대 <대부> 제작팀이 공사 중이던 극장을 아예 통째로 빌려 촬영장으로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공사 중이던 마시모가 당시 마피아의 영향권에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마피아 영화를 찍기 위해 마피아의 도움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돈과 인연이 없지만, 만약 엄청난 돈이 생긴다면 하고 싶은 일이 두 가지 있다. 베니스 북쪽의 산 미켈레(St.Michelle)섬을 바라보는 100명 수용 크기의 비잔틴 스타일 교회와 서울 신촌 어딘가에 100명 공간의 네오클래식풍 오페라 전용극장을 하나 짓고 싶다. 노벨상 수상자, 미슐랭 스리스타 세프, 아카데미 수상자들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해 건축물 공모 당선자를 선정하려는 ‘황당한’ 꿈도 갖고 있다.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70억 인류 모두가 세상을 떠난 뒤라도, 후세들 모두가 아름답고 기억에 남는다고 칭찬해줄 만한 건축물이다. 교회는 신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마음가짐과 생각을 다지는 최적의 장소다. 오페라 극장은 인간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품과 격을 마음껏 올려주는 최상의 공간이다.

지옥은 이미 오래 전에 만원이다. 막장으로 치자면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이 추락한 곳이 세상이다. 얼마나 잔인하고 추한지에 대한 단말마적 경쟁보다, 아름답고 밝고 오래가는 삶을 살고 싶다. 교회와 오페라 극장은 그 같은 생각을 가능하게 해주는 몇 안 남은 공간일지 모르겠다. 최고의 가수들로 구성된 아름다운 오페라를 초대형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 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소주잔에 목청을 높이는 것도 좋지만, 조용히 앉아 자신과 세상과 신을 생각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마시모는 필자가 만난 오페라 극장 가운데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는 공간이다.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는 순간, 완벽한 아름다움에서 느껴지는 팽팽한 긴장감이 온몸에 스며든다. 7층 높이의 박스석 때문인지 무대와 극장이 하나로 연결된 듯하다. 고급 주단과 실크로 장식된 의자도 인상 깊다. 앞 사람의 머리 때문에 무대 전체를 보기 어려운 것이 1층 플로어지만, 넓은 공간 덕분에 편하게 관람했다. 의자 크기의 경우 그 어떤 극장보다도 큰 듯하다.


▎영화 <대부>에서 알 파치노 가족이 방문한 마시모 오페라하우스 내부.
역설의 논리로 채워진 시칠리아


▎바그너 오페라 <지그프리트>가 끝난 뒤의 파이널 인사. 관중들은 박수를 대신해 야유로 답했다.
바그너의 <지그프리트>는 21세기 현대판으로 바꿔 연출됐다. 힙팝 차림에다 곰 인형을 좋아하는 마마보이가 각색된 지그프리트의 이미지다. 영웅 지그프리트와 새 삶을 열어갈 브린휠데(Brünnhilde)는 섹시한 모습의 노출증 여성으로, 방랑객(Wanderer)으로 가장한 신(神)은 동성애자 같은 이미지로 등장한다. 가수가 객석에서부터 등장하거나, 무대의 조명을 아예 아래로 바짝 내려 오페라 소품으로 쓰는 식의 새로운 시도도 특이했다.

대체적으로 무난한 수준이지만, 지그프리트가 끝날 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을 접할 수 있었다. 엄청난 야유다. 무대에 인사하러 나온 가수들에게 뭔가 따지듯 소리를 질러댄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오페라 가수를 향한 비난을 처음으로 목격하게 된 것이다. 이유는 마마보이 지그프리트에서부터, 동성애자 신과 같은, ‘너무 앞서간’ 현대식 연출에 대한 반발이 아닐까 싶다. 마피아의 도시 시칠리아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보수적이면서도 가장 정열적인 곳일 듯하다.

오페라가 끝난 시간은 밤 11시쯤이다. 바깥은 밤의 도시답게 아직도 흥청거린다. 때마침 달도 보름이다. 오페라 휴식시간 동안 즐긴 프레세코 와인과 시칠리아 특유의 강력한 디저트 맛 때문에 취기와 포만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대부3>의 영화 속 장면을 생각하며 바그너 오페라를 본 탓에, 지그프리트의 노래보다 대부의 주제곡이 한층 더 머리에 떠오른다. 신비와 신성으로 특징 지워지는 바그너의 오페라보다, 배신·증오·복수·암살·이별·사랑으로 채워진 베르디의 작품이 더 한층 인상 깊게 와 닿는 이치와 일맥상통할 듯하다. 극단적인 공포와 어둠으로 드리워진 세상이기에, 한층 더 아름답게 표현될 수 있다는 ‘역설의 논리’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마시모가 시칠리아 마피아의 본거지인 팔레르모 한복판에 서 있는 이유 역시 바로 역설의 논리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마지막으로 <대부3>에 등장하는, 돈 콜레오네의 아들이 아버지에게 되묻는 질문 하나를 소개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시칠리아)에서 어떻게 그렇게 잔인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나요?” 이탈리아가 가진 아름다움의 절정을 이해하고 싶다면, 먼저 시칠리아 팔레르모 마시모 극장에 들르길 권한다. 어둡고 차갑지만, 활기차고 아름답다.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 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 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201603호 (2016.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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