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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취재] 일본의 다문화정책에서 배운다 

“특별대우보다 ‘공생(共生)’ 돕는 것이 해법”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한국은 지난해 다문화가족 80만 명을 돌파하며 ‘다문화국가’로 진입… 일본은 중앙정부가 지원하고 지자체·시민사회 주도하면서 ‘더불어’ 강조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2020년 국내 다문화가족은 100만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최근 다문화 자녀세대가 성장하면서 겪는 갈등도 적지 않다. 다문화 현상을 미리 겪어온 일본은 이런 갈등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 사진·중앙포토
‘단일민족’ 국가로 알려졌던 한국은 최근 20년 새 다문화 국가로 급속히 변모하고 있다. 국내 다문화가족은 지난해 80만 명을 돌파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2020년 다문화가족은 100만 명을 헤아리며 다문화자녀 가운데 군 입대 대상이 된 다문화 장병도 4000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달 다문화가족·자녀 지원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황교안(58) 국무총리는 “2006년 다문화 정책이 처음 수립된 이후 최근까지 다문화가족이 우리사회에 잘 정착하도록 지원하는 시기였다면 앞으로 10년은 다문화 자녀가 국가 경쟁력에 기여하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기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문화 자녀세대가 성장하면서 겪는 갈등도 적지 않다. 정부가 다문화 정책의 방향을 정착 지원에서 다문화 자녀 지원으로 튼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와 같은 다문화 현상을 미리 겪어온 일본은 이런 갈등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숙명여대 다문화통합센터와 함께 일본 나고야·하마마츠를 방문해 한국만큼 단일민족 신화가 굳건한 일본이 다문화가족의 차세대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들여다봤다.

‘언어’ 집중 지원해, 사회적응 출구 찾게 해

2월 18일 오후 6시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 호우세이 아파트 단지. 아파트 1층의 공용 공간에 마련된 자그마한 교실을 찾았다. ‘らくらく日本語 校室(편안한 일본어 교실)’이라는 문패가 붙은 교실에서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곳은 지역 비영리단체(NPO) 인도카이(東海) 생활지원 센터가 운영하는 일본어 교실이다. 다문화가족이나 이민 온 외국인의 자녀를 대상으로 일본어를 가르친다. 이날은 NPO 활동가 4명과 대학생 자원봉사자 2명이 6명의 다문화 자녀를 지도하고 있었다.

“켄, 여기 이 나라가 어디지?” 활동가 다나카 사토코(53·여) 씨가 지구본을 가지고 노는 닌메이 켄(5)에게 일본어로 질문했다. 켄의 부모는 중국인이다. 켄은 나고야에 위치한 도요타 본사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따라 2년 전 일본으로 이민 왔다. 켄은 지구본을 들여다보고는 제법 또렷한 일본어로 대답했다. “여기는 우리나라에요. 중국!”

다문화 자녀는 이 교실 안에서 저마다 다른 활동을 하고 있었다. 활동가와 봉사자가 일대일로 붙어 가르치기 때문에 수준별 학습도 가능하다. 활동가 다나카 씨는 “이 동네에는 부부 중 한쪽이 중국 출신인 다문화가족이나 일자리를 찾아 나고야로 이민 온 중국인이 많이 모여 산다. 다문화 자녀의 경우 일본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해 학교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들을 돕기 위해 5년 전에 비영리단체를 결성했다”고 말했다.

나고야시 내에만 이렇게 ‘다문화 공생’을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단체가 30곳을 넘는다. 2년째 이 교실에서 활동가로 일하는 하나이 치요(38·여) 씨는 다문화가족 당사자다. 2001년 일본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일본인으로 귀화했다. 아들(11)과 딸(8)을 둔 그는 매주 아이를 데리고 이 교실을 찾는다. 현재 활동가 하나이 씨는 중국어와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만 일본에 이주했을 당시 낯선 말과 문화에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고 한다.

하나이 씨는 “일본 사회는 상당히 폐쇄적이라 외국인이 일본 사회에 완전히 녹아 들기는 힘들다”며 “나처럼 일본어를 잘하는 외국인이라도 그건 마찬가지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이주 초반 지역시민이 이끄는 비영리단체로부터 일본어 학습 등 다양한 지원을 받은 결과 잘 적응할 수 있었다”며 “이제는 내가 직접 다문화가족을 돕고 싶어 활동가로 참여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일본의 전체 인구에서 이민자(중장기 거주 외국인 포함)가 차지하는 비율은 1.1%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는 가장 낮은 편이다. 그러나 나고야시는 일본 평균보다 2.5배가 많은 외국인 비율을 자랑하는 다문화 도시다. 나고야시에 따르면 중국 출신이 2만 명, 한국·북한 출신이 1만 8000명에 달한다.

이 밖에도 브라질·페루 등으로 이민을 떠났던 일본인의 후예인 ‘일계인(日系人)’과 유흥업소에 취업하기 위해 ‘풍속비자(연예인 비자)’를 받아 입국한 필리핀 여성도 상당수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카메 나츠야 나고야시청 국제교류 과장은 “나고야에 살고 있는 외국인은 6만8114명으로 전체 시민의 3% 정도를 차지한다”며 “일본 지자체 가운데 가장 외국인이 많다”라고 설명했다.

원하면 학교 교실까지 언어지원 봉사자 파견


▎일본의 다문화 자녀는 초등학교 입학 전에 1주일간 지역 학교를 통째로 빌려서 ‘ぴよぴよ(삐약삐약)’ 클래스를 체험한다. 미리 학교를 다녀보고 실제로 입학을 했을 때의 심리적 압박감을 줄이기 위해서다. / 사진·중앙포토
나고야시는 2012년 1차 다문화공생추진플랜 5개년 계획(2012~2016년)을 발표했다. 다문화가족에 언어·방재(지진 대피 요령 등) 교육을 지원하고 주거·일자리 등 생활 환경을 개선하는 게 주요 목적이다. 현재 2차 플랜(2017~2021년)을 만들기 위한 위원회가 조직돼 활동 중이다. 2차 플랜에는 사회 정착뿐만 아니라 다문화가족이 지역사회에 녹아 들어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구체적인 목표가 포함될 예정이다.

오카베 국제교류과장은 “나고야시는 세계적인 자동차기업 ‘도요타’ 본사가 위치해 공업이 발달하면서 20~30년 전부터 근로자, 결혼이민자 등 외국인이 많이 유입된 곳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결국 우리가 추구하는 다문화 공생은 외국인이 문제없이 일본인과 함께 어우러지는 것, 특히 다문화 자녀가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돕자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나고야 시는 다문화가족 관련 비영리단체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최근 이주한 다문화가족을 비영리단체와 연결해 일본어 교육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례로 다문화 자녀가 학교에 입학할 경우 학교 측은 나고야시 관할 교육원을 통해 다문화가족 학부모와 심층 상담을 우선 진행한다. 교사는 학부모와의 심층 상담을 통해 해당 다문화 자녀의 수준에 적합한 일본어 수업을 제공한다. 이 수업은 일반적으로 생활에 꼭 필요한 서바이벌 일본어를 가르치는 초급 단계부터 중급 단계, 교과서에 나오는 학습 언어를 배우는 고급 단계까지 세 단계로 구성된다.

우선 첫 3개월은 관할 교육원 내에서 집중 교육이 기본적으로 이뤄지며, 다문화 자녀가 원한다면 학교 내 교실에 언어지원 봉사자가 파견되기도 한다. 이른바 맞춤형 통역이 지원되는 것이다. 보통은 일대일 전담 통역가가 하루 종일 다문화 자녀 옆에 붙어 수업 내용을 보조하는 식이다. 이 밖에도 일본어가 서툰 다문화 부모를 대상으로 한 지원도 있다. 다문화 부모 전용 언어 코디네이터가 그것이다.

언어 코디네이터는 한국어·중국어·필리핀어(타갈로그어)·포르투갈어·스페인어·베트남어를 구사하는 이민자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이곳에서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는 필리핀 출신 시마모토 매리언(38·여) 씨는 8년 전 일본인 남편과 결혼해 귀화했다. 시마모토 씨는 말한다.

“이주 초기에 가장 힘들었던 게 일본어에 서투른데다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생기는 외로움이었다. 교육원에서 일본어 수업을 들으며 차츰 적응했고 코디네이터로 일하면서 일본 사회와 필리핀 교민사회 양쪽에 네트워크가 생겼다.”

그는 자신의 일곱 살 난 아들을 ‘하프(혼혈·half)’라고 표현했다. 사카모토 씨는 “우리 아이는 하프인데 교육원의 언어 지원 덕분에 필리핀어·영어·일본어 세 가지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나고야시에서는 하프로 자라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곳 교육원은 나고야시에 위치한 각 학교가 학부모에게 보낼 가정통신문을 6개 국어로 번역하는 업무도 맡고 있다.

나고야시에서 110㎞가량 떨어진 시즈오카현 하마마츠시도 일본 내에서 외국인 비율이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일례로 지난해 7월 기준 전체 인구 80만8824명 중 2.6%(2만 949명)가 외국인으로 조사됐다.

취학 전에 젓가락·일본식 변기 사용법도 가르쳐


▎‘삐약삐약’ 클래스의 모습. 대학생 자원봉사자가 시종일관 다문화 자녀 옆에 붙어서 등교에서부터 학교의 화장실 이용방법 및 급식 지도까지 돕는다. / 사진·중앙포토
인구 80만 명의 작은 도시 하마마츠시가 다문화 도시가 된 바탕에는 ‘피아노’가 있다. 글로벌 피아노 브랜드인 ‘야마하’, ‘가와이’, ‘스즈키’가 하마마츠시에 본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해 화제가 된 피아니스트 조성진(22)이 2009년 이곳에서 열린 하마마츠 콩쿠르의 최연소 우승자가 되면서 처음 이 도시의 이름이 국내에 알려지기도 했다.

유명 피아노 생산업체에서 일하기 위해 외국인이 몰려 들면서 자연히 다문화가족이 늘었다. 특히 20세기 초 브라질 등 남미로 이민을 떠났던 일본인의 후손이 많이 거주 중이다. 그렇다면 하마마츠시는 어떤 다문화가족 정책을 운영하고 있을까?

나고야시의 경우처럼 하마마츠시 역시 시에서 운영하는 다문화공생센터가 다각적인 다문화 지원을 진행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비자 문제부터 자녀 교육·주택·일자리까지 모두 이곳에서 지원한다. 센터가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기보다는 각 분야에 전담 상담원을 두고 다문화가족의 요구를 파악해 지역 내 서비스 제공자에 연계하는 방식으로 지원이 이뤄진다.

이 센터에서 만난 필리핀 여성 폴라 진(37) 씨는 “귀화 절차를 알아보러 왔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에 일자리를 찾아왔다가 일본인 남편을 만나 결혼한 지 9년째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폴라 씨는 “곧 동네 소학교(초등학교)에 입학 예정인 딸(7)이 일본어는 유창한데 아직 한자를 잘 모르고, 일본 문화에도 익숙하지 않아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한 상담원은 그에게 지역 내 비영리단체 ‘위시(WISH ·Wide International Support in Hamamatsu)’를 소개했다. 위시는 올해로 11년째 다문화자녀를 대상으로 입학 전 예행연습을 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주로 지역 대학생 자원봉사자가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다문화 자녀는 매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1주일간 지역 소학교를 통째로 빌려서 ‘ぴよぴよ(삐약삐약)’ 클래스를 체험해볼 수 있다. 미리 일본 초등학교를 다녀보고 실제로 입학했을 때 심리적 거리감을 줄이기 위해서다.

폴라 씨의 딸도 이번에 이 클래스를 신청했다. 한 대학생 자원봉사자가 시종일관 아이 옆에 붙어서 등교에서부터 학교에서 화장실 이용 및 급식 지도까지 돕는다. 현재 자원봉사자로 활동 중인 시즈오카 대학 2학년 다카하시 노리(23) 씨는 이렇게 말했다.

“학교에 입학했을 때 다문화가정 자녀가 받는 충격은 꽤 큽니다. 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일상다반사거든요. 예를 들면 종이로 된 우유갑을 따는 일이라든가, 젓가락으로 급식을 먹어본다든가, 일본식 변기에 쪼그리고 앉아 볼일 보기 등 일본 아이에게는 사소한 일상이 다문화 자녀에게는 스트레스가 될 수 있죠. 그런 것들이 쌓이면 결국 학교에서 위축되고 친구 사귀기를 힘들어하고 점점 학교와 멀어지게 될 수 있어요.”

지자체·시민사회 주도로 ‘더불어’ 강조


▎한국 다문화 정책은 중앙정부 주도로 진행된다. 2000년대 들어 중국·베트남 등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이 늘어나면서 생긴 다문화 자녀들을 우리 사회에 통합시킨다는 게 주요 목표다. / 사진·중앙포토
이어 노리 씨는 “아이들이 가슴 쭉 펴고 학교 생활을 즐기고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400여 명의 지역 다문화가정 자녀가 위시에서 운영 중인 이 클래스를 거쳐갔다.

위시는 직접 모금활동을 벌여 운영비의 일정 부분을 마련하기도 한다. ‘야마하’, ‘엔테츠 백화점’ 등 지역 내 유명 기업이 주로 다문화 지원단체를 성원하고 있다. 이 밖에도 위시는 결혼 이주 여성의 일자리 창출 사업도 지원하고 있다. 히사노 호리 위시 대표는 “결혼이주 여성들을 홈 헬퍼(우리의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딸 수 있도록 지원한 뒤 거동이 불편한 외국인 노인과 연결해주고 있다. 브라질 출신 여성에겐 서로 말이 통하도록 브라질 출신 노인을 연결해주는 식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들 비영리단체 이외에도 시가 직접 지원에 나서기도 한다. 하마마츠시 교육위원회는 다문화가정 자녀가 학교에 입학하면 일본어 수준에 따라 추가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게 숙련된 일본어 학습지도사를 지원한다. 또한 지진·해일 등 재해가 발생했을 때 대피 요령과 응급의료서비스도 안내하고 있다. 일본답게 세심하고 실용적인 교육을 제공하는 셈이다.

이처럼 일본의 다문화 정책은 중앙정부가 아닌 지자체가 주도하는 게 특징이다. 행정부보다는 의회가 강한 일본 사회 만의 특징이기도 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이선 박사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중앙정부를 중심으로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굉장히 빠르게 추진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각 지역별로 맞춤형 지원이 어렵고, 민간 참여도가 떨어진다는 단점도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의 경우 지역별로 그 지역에 어떤 부류의 외국인이 많느냐에 따라 다문화 정책의 색깔도 완전히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런 실정을 자랑하듯 이시즈카 요시아키 하마마츠시청 국제과장은 “협동·창조·안심 세가지 기치를 내걸고 이민자와 외국인의 정착·공생을 돕고 있다. 일본인과 함께 협동하고, 차세대를 육성하고, 동일본대지진 같은 대형재난 대책을 세우는 게 우리 시 다문화 정책의 목표”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시즈카 국제과장은 다문화가족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점에 대해 언어와 의료 서비스를 꼽았다. 우선 의사소통이 안 되다 보니 직장 얻기가 힘들고, 건강보험 가입자는 의료비의 20%만 부담하는데 반해 미 가입자인 다문화가족은 의료비를 전액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녀 교육문제도 빠질 수 없는 애로사항 중 하나다. 이시즈카 국제과장은 일본이 왜 다문화가족을 상대로 한 일본어 교육에 힘을 쏟고 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민자 가정 자녀의 경우 의무교육 대상이 아니다 보니 학교에 취학 자체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본어도 모국어도 둘 다 안 되는 사람으로 자랍니다. 일본어의 경우 말은 할 줄 알아도 쓰지도 읽지도 못하게 되는 거죠. 자연히 고등학교 진학률이 떨어지고 일본인 가정 자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이 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악순환의 늪에 빠지는 거죠.”

이러한 고리를 끊기 위해 하마마츠시는 2009년부터 ‘미취학 제로작전’이란 사업을 시작했다. 그 결과 지난해 기준 취학연령이 됐는데도 학교에 가지 않은 다문화 자녀 아동은 단 1명에 그쳤다.

일본계 브라질인들의 U턴으로 다문화정책 시작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의 편집장 이시즈카 유키오 씨는 “일본은 한국만큼 단일민족 신화가 강한 나라로 이민에 대해 폐쇄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지만 일단 들어온 이민·귀화자에 대해서는 불편 없이 정착해 더불어 ‘공생’할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기조로 정책을 펴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다문화 전문가 다수는 일본의 다문화 정책이 한국의 그것과 결정적으로 차이 나는 대목이 바로 이런 ‘공생’ 마인드라고 설명한다. 일본의 경우 ‘공생’ 마인드를 쉽게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로 그만의 역사적 배경도 한몫한다. 일본계 브라질인처럼 과거 남미 등 해외에 이민을 갔다 다시 돌아온 이들이 주로 일본의 다문화가족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 다문화가족은 애초에 ‘다시 돌아온 일본의 핏줄’인 것이다.

아이치슈토쿠 대학의 마츠모토 가즈코 교수는 “1990년 외국인입국관리법이 개정되면서 100여 년 전 남미로 목화 따러 이주했던 일본인 3~4세들이 일본에 들어와 일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했다. 이들이 대거 이주해오면서 일본 다문화 정책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한국은 산업화 시대 ‘근로연수생’이란 이름으로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외국인 근로자가 유입됐다. 하지만 ‘다문화’란 화두가 사회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중반 결혼이주 여성이 대거 유입되면서부터다.

때문에 한국 다문화 정책의 수혜자는 주로 결혼이주 외국인이 포함된 다문화가족이다. 최근 국내에서는 저출산·고령화 추세 심화에 따라 이러한 이민을 적극적으로 장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해 12월 확정된 정부의 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서도 이 같은 주장이 일부 담겼다.

하지만 한국과 비슷하게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앓고 있는 일본은 다른 의견을 내놓고 있다. 도카이 다문화사회 지원센터를 운영 중인 도이 요시코 대표는 “일본 정부는 저출산과 다문화 공생을 절대 연계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요시코 대표는 “아무리 저출산이 심각하더라도 외국인 이민을 늘려 이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은 적절치 못하다. 일본의 다문화 정책은 어디까지나 이민자가 일본에 사는 동안 사회 내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함께 잘 살아가도록 돕자는 것이지 이들을 일본인으로 흡수 통합하겠다는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흡수가 아닌 공생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문화 공생’이란 용어는 1995년 고베 대지진 당시 시민들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요시코 대표는 20년 전 끔찍했던 대지진 사건을 회상하며 말했다.

“당시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지만 일본어를 할 줄 모르는 외국인의 피해가 굉장히 컸습니다. 시민들 사이에서 ‘외국인들도 같이 살아나가야 한다’며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죠. 이때 처음 나온 ‘다문화 공생’이란 단어를 정부(총무청)가 차용해 외국인 정책의 이름으로 붙인 겁니다.”

이렇게 시작된 일본의 다문화 공생 정신은 사회 전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들에게 특별한 혜택을 주지는 않지만 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게 이 정책의 핵심이다.

관 주도보다 지역의 맞춤형 지원정책이 ‘효과적’

반면 한국 다문화 정책은 중앙정부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급격히 늘어난 중국동포·베트남 등에서 건너온 결혼이주여성과 자녀를 우리사회에 통합시킨다는 게 주목표다. 정부가 이끌다 보니 정책의 추진 속도도 매우 빠르다. 관련 법이 4개나 되며 2007년 이후 전국에 210개 다문화지원센터가 생기는 등 단기간에 관련 인프라가 확대되어 왔다.

여가부가 직접 운영하고 있는 다문화 지원 센터에서는 결혼이민자와 다문화 자녀에 대한 한국어 교육, 가정방문 부모 교육, 취업 지원, 이중언어 교육 등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어린이집 이용 등 복지 서비스에 있어서 우선순위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지역사회나 시민단체의 참여가 전무하기 때문에 사회·지역주민과는 격리된 채 센터가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를 받는 데 그치는 단점도 있다.

지역 주민이 동참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다문화 지원정책 확대에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가부 조사에 따르면 “사회적 차별을 받은 경험이 있다”는 다문화가족의 비율은 2009년 36%에서 2012년 41%로 갈수록 늘고 있다. 자녀의 학력 저하, 따돌림 피해 등도 심각한 수준이다. 여성정책 연구원 김이선 박사는 “한국어 교육 지원을 통해 예전에 비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다문화 자녀는 줄었지만 여전히 친구 한 명 사귀지 못하는 등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현상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한국도 일본처럼 다문화 정책을 펴는 부처를 하나로 통일하고 지자체 중심으로 지역별 상황에 맞는 맞춤형 정책을 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윤광일 숙명여대 다문화통합연구소장(정치학과 교수)는 “정책만 놓고 봤을 땐 우리가 일본보다 훨씬 앞서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다문화 관련 예산을 총괄하는 부처 없이 법무부·여성가족부·보건복지부· 교육부 등 여러 부처가 백화점식으로 정책을 쏟아내 중복 지원되는 요소가 너무 많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윤 소장은 이어 “공무원이 직접 떠먹여 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장려하고 다문화가족이 사회와 유리되지 않게 하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일계 브라질인(日系ブラジル人)’은?


▎사진·중앙포토
‘일계 브라질인(日系ブラジル人)’은 브라질로 이민간 일본인 후손을 말한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보사노바 가수 오노 리사도 브라질에서 태어난 일본계다. 브라질은 현재 재외일본인이 가장 많이 사는 나라다. 브라질에 사는 일본계는 약 150만 명이며 페루 등 인근 남미 국가로 이주한 일본계도 상당수다.

일본인들의 브라질 이주는 1908년에 시작됐다. 790명의 일본인 농부들이 카사토 마루 호를 타고 고베항을 출발해 브라질로 향했다. 당시 브라질에서는 대규모 커피·목화 경작이 이뤄졌다. 19세 중반까지만 해도 브라질 농장주들은 아프리카 출신 흑인 노예를 활용해 농장을 운영했다. 아프리카 내 민족운동 등으로 1850년대부터 노예 수급이 끊기자 브라질 정부는 아시아로 눈을 돌렸다.

처음 브라질 땅에 발을 디딘 일본인들은 상파울루 주변 커피농장에 정착했다. 일본과 완전히 다른 기후는 이들에게 견디기 힘든 시련이었다. 초창기엔 풍토병에 걸려 숨지는 이들도 상당했다. 이들은 인종차별을 겪으면서도 특유의 성실함을 무기로 부를 일구어냈고, 속속 브라질 주류 사회에 진출했다. 이민 20여 년 만에 농장을 인수해 농장주가 되는 일본인도 등장했다.

브라질인과 결혼해 가정을 이루는 사례도 폭증했다. 먼저 건너간 이들의 성공 스토리가 일본 내에 전해져 ‘브라질 드림’ 붐이 일기도 했다. 이렇게 1960년대까지 브라질로 건너간 일본인은 22만 명을 헤아린다. 일본이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뒤로는 브라질에서 역이민 바람이 불었다. 일본 정부는 1990년 귀국을 원하는 이민자 후손에게 영주권을 주는 법안을 마련했다. 일본 내 일본계 브라질인은 지난해 말 30만 명으로 중국계와 한국계 다음으로 많다.

201604호 (2016.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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