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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인터뷰] 원조 요정에서 아시아 ‘디바(Diva)’로 떠오른 가수 바다 

“나, 북두칠성처럼 오래 사랑받는 스타 될 거야! ” 

글 김포그니 기자 pognee@joongang.co.kr / 사진 오상민 기자 osang@joongang.co.kr
한국 음악사에서 가장 모범적인 아이돌 가수로 평가받아… 뮤지컬 배우로도 눈부신 성공, 최근 중국 진출 후 아시아의 아이콘으로 도약

▎최근 바다는 중국에도 진출해 제 2의 음악인생을 시작했다. 지난 1월 중국에서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인기 음악프로 <마이왕정빠>에 한국 가수로는 처음 출연해 대륙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1996년 이수만 SM 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자신이 처음으로 기획한 남자 아이돌그룹 ‘H.O.T’가 국내에서 초대박 성공을 거두자 좀 더 큰 꿈을 꾸게 됐다. 국내를 넘어서 세계적인 여자 아이돌그룹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스타성은 물론이고 음악성을 갖춘 멤버가 필요했다. 그때 이수만 대표가 1년 동안이나 전국을 돌며 가수지망생들을 샅샅이 뒤진 끝에 발견한 소녀가 바로 바다(본명 최성희)였다. 안양예고 2학년에 재학 중일 때, 학교축제에서 단상에 올라 장혜진의 ‘내게로’를 부르는 모습을 이 대표가 지켜봤다고 한다. “어린 여자애가 구슬픈 발라드를 부르면서 발로 박자를 맞췄다. 그런 광경은 처음 보았다”며 그녀와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그런 바다가 걸그룹 ‘S.E.S’의 리드보컬로 영입되기까지 남다른 사연도 있다. 이 대표는 이 어린 소녀가 거대기획사의 ‘러브콜’에 당연히 응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뜻밖의 반응이 나왔다. 바다는 자신의 꿈이 아이돌보다는 ‘진짜 가수’라며 단칼에 거절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대표는 “언젠가 하고 싶은 음악을 꼭 할 수 있게 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삼고초려 끝에 바다를 ‘S.E.S’의 리드보컬로 세울 수 있었다. 예상대로 그녀는 다른 아이돌 가수와는 달랐다. 출중한 보컬 실력뿐만 아니라 직접 작사를 하기도 하고 편곡에도 소질이 있었다.

음악평론가들도 “가수 바다는 국내 아이돌의 가장 모범적인 케이스”라고 평한다. 탄탄한 보컬 실력이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1세대 ‘원조요정’ ‘S.E.S’는 한국음악사에서 가장 앨범을 많이 판 여성그룹으로 기록돼 있다.

복사꽃 마을에서 태어난 소녀


▎2008년 걸그룹 ‘S.E.S’ 데뷔 10주년 기념식 모습. 1세대 ‘원조요정’ S.E.S는 한국음악사에서 가장 앨범을 많이 판 여성그룹으로 기록돼 있다. 왼쪽부터 바다, 유진, 슈. / 사진·중앙포토
S.E.S 활동 당시 바다 씨가 직접 쓴 가사가 주목을 많이 받았어요. 10대 소녀답지 않게 어떤 ‘비극의 감성’을 표현했는데, 어떻게 그런 가사를 쓸 수 있었는지 궁금해요.

“유년 시절 글을 쓰는 게 저한텐 하나의 놀이였던 것 같아요. 일곱 살 무렵 아버지를 따라 당신의 친구 분인 시인 구자룡 선생님 댁에 자주 갔어요.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마당을 지나면 저 먼발치 하늘에서 노오란 햇볕이 쏟아졌어요.

두 분이 담소 나누는 동안 옆방 서재에서 온갖 시집을 다 접했던 것 같아요. 아마도 그때부터 글을 끄적이며 쓰게 됐던 것 같아요.”

직접 쓴 것 중에 가장 기억나는 가사는 뭐에요?

“제 솔로앨범 중에 <헤어지기 전에>라는 곡이 있어요. 이 곡의 가사를 적으면서 머릿속으로 어떤 장면을 떠올렸어요. 여기 한 남녀가 있어요. 손을 잡고 나란히 걷고 있지만 어쩐지 여느 때 같지 않아요. 여전히 사랑의 체온을 가지고 있던 여자는 문득 깨닫게 되죠. 손을 잡고 있는 건 자신뿐이라는 걸.

‘천천히 걸어요. 더 천천히/ 식사도 하고 영화도 봐요./ 그대 나에게 하려는 얘기/ 헤어지기 전에 말해도 되죠./ 그냥 웃어줘요./ 지금은 안 돼요’”

그녀는 저 멀리 남쪽 깊은 바다의 섬 ‘완도’에서 태어났다. 매년 4월이 되면 동네 어귀마다 연분홍 빛 복사꽃이 넘치게 피어났다. 흐드러진 분홍 물결이 드리워진 마을에는 그 어떤 피로감도 존재하지 않았다. 창(唱)을 하던 그녀의 아버지는 틈만 나면 저 멀리 잔 섬들을 오가며 물방개질을 쳤다고 한다.

“아버지는 거침없는 자연인이었어요. 편찮으셨다가도 물질 한번이면 생기를 되찾곤 하셨죠. 그 특별한 회복 탄력성을 제가 그대로 물려받았어요.”

열세 살이 될 무렵 가족과 함께 서해 앞바다 소래포구로 터전을 옮겼다. 잔잔한 서해 앞바다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포도 향이 코끝으로 밀려들어왔다. 한국의 ‘칠레’인양 시퍼런 포도밭이 펼쳐진 이곳에서 그녀는 이따금씩 여류(女流)의 노래를 불렀다. 친구들은 늘 바다 앞에서 구슬픈 노래를 부르고 때로는 춤을 추기도 하는 그녀를 ‘바다’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기만의 특별한 독립성과 음악인으로서의 자존심이 이 무렵 형성된 것 같다고 그녀는 회고한다. 그래서일까? 이수만 대표를 기획사 사장으로 대하던 동료 가수와 달리 바다는 때때로 이 대표를 찾아가 “사장님, 이 외국앨범 한번 들어보세요. 저는 언젠가 이런 음악을 하고 싶어요”라며 당돌한 제안을 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바다를 마주할 때만큼은 기획자가 아닌 그간 잠시 잊었던 음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게 됐기에 적잖이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수만 선생님은 은인 같은 분”


▎사진·중앙포토
둘의 우정은 특별했다. 후에 이 대표는 ‘S.E.S’ 4집 활동 당시 실험적인 곡 을 후속곡으로 사용토록 허락하며 바다와의 약속을 지킨다. 은 시대를 너무 앞서나간 곡이었기에 여자 아이돌그룹의 노래로는 적당하지 않다는 반대 의견이 절대적이었지만 이 대표는 “바다가 원하는 음악을 하게 해줘라”라고 답했다. 결국 이 곡을 기점으로 ‘S.E.S’는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국내 아이돌 음악사의 굵직한 획을 그었다.

S.E.S 활동 당시를 회상해보면 아쉬웠던 장면은 없나요?

“1990년대 후반 일본 활동을 시작하면서 너무 힘들었어요. 그때는 한류라는 것도 없었고요. 그런데 이수만 선생님이 이번엔 미국에 가자는 거예요. ‘바다야, 넌 미국에서 가수 하는 게 더 어울려’라면서요. 한국과 일본을 병행 활동하느라 진이 빠져 있었는데 미국이라니요. 정말 엄두가 안 났어요. 고개를 절레절레 하니까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알아. 너 나중에 후회할거야.’ 지금은 인정해요. 이수만 선생님, 그때 미국 갈 걸 그랬어요.”(웃음)

2002년 5집 앨범을 끝으로 S.E.S는 해체됐어요. 대형 기획사를 나와 홀로서기 해야 했을 때 두렵지 않았나요?

“대형 기획사 안에서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어요. 안정된 환경이 제공돼서 감사했지만 이 편함이 내 자신을 부패시키지 않을까, 불안하기도 했죠. 그래서 홀로서기에 도전하게 됐어요.”

그때 이 대표와 갈등설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런 건 전혀 없었어요. 이수만 선생님은 저한테 은인과 같은 분이에요. 사랑을 너무 많이 주셨어요. 아빠가 너무 오냐, 오냐 하면 딸아이는 그 사랑을 가끔 잊어버리곤 하죠. 나중에 좀 더 나이 먹고 그런 생각이 들곤 했어요. ‘S.E.S’에서의 나를 만들어줬던 그분의 마음을 아주 가끔은 나도 모르게 기만했던 건 아닌가, 하고요.”

솔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반응은 S.E.S 시절보다 뜨겁진 않았어요. 그때 심정이 어땠어요?

“가수는 대중의 반응에 매몰되지 않고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부르는 존재죠. 우리의 임무는 여기까지예요.(웃음) 쉽게 말해 음악이란 그 시대를 충분히 즐긴 사람의 몫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명의 누군가가 제 노래를 듣고 즐거워했다면 그걸로 근사한 일 아닐까요?”

그녀는 오히려 자신과의 싸움이 힘들었다고 했다. 음악에 있어서는 늘 일등이었기 때문이다. 예고와 대학 입시에서 수석이었고 가수로 데뷔한 첫 주에 1위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일등’은 그녀의 또 다른 이름과 같았다. 때문에 솔로 데뷔 후 가요프로 순위에서 1위에 오르지 못하자 당혹스러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일이 막혔을 때는 일로 풀어야 한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바다는 “20대 때 술을 안 마셨어요. 콜라로 즐거움만 취하고는 취한 친구들을 택시 태워 보내는 일을 도맡아 했죠.(웃음) 술도 안 했으니 얼마나 열심히 일만 했겠어요”라고 말했다.

동년배의 다른 가수가 신드롬 격 인기를 구가했을 때 초조하진 않았어요?

“누구에게나 ‘차례’가 있다고 생각해요. 비록 그 당시 무대의 중심에 내가 서지 못했다 해도 무대 밑에서 관조하면서 얻는 깨달음이 있거든요. 자기 차례가 오기 전까지는 누구나 관객석에 있어요. 내 차례가 됐을 때 내가 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내 차례가 끝나면 다시 관객석에 내려와서 박수도 치는 거고요.”

성당 앞에서 춤추던 소녀, 뮤지컬 여왕 되다


▎바다는 2003년 <페퍼민트>로 뮤지컬 배우로 데뷔한 뒤 <브로드웨이 42번가> <금발이 너무해> 등에 잇따라 출연했다. 배우로서 큰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8년 <노트르담드파리>를 통해서다. 당시 그녀는 1500대 1의 오디션 경쟁률을 뚫고 주인공 ‘에스메랄다’ 역을 거머쥐었다. / 사진·중앙포토
솔로 활동을 하면서 별안간 뮤지컬 창작극 <페퍼민트>에 출연하게 돼요. 갑자기 뮤지컬은 왜 시도했어요? 어떤 초석을 닦고 싶었던 건가요?

“누구를 위한 희생이라는 건 없어요. 다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죠.(웃음) 다만 뮤지컬은 제가 원래 꿈꾸던 길이었고 여기에 도전했을 때도 ‘어렵더라도 포기 않고 늘 성장하는 모습을 후배에게 보여주자’, 그런 마음가짐은 분명히 있었던 것 같아요. 이왕이면 누가 봐도 퍽 멋있는 선배가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문제는 그렇게 되기까지 가시덤불과도 같은 길을 걸어야만 했어요. 당시 아이돌 가수가 뮤지컬에 도전하는 경우는 없었거든요. (옥)주현이도 없었고, 아이비도 없었죠. 제가 처음이었어요.”

뮤지컬에 도전한지 5년 만에 제2회 뮤지컬 어워즈에서 <노트르담드파리>로 여자인기상을 수상했어요.

“제겐 굉장히 특별한 작품이에요. 사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수녀가 될 준비를 했었어요. 성당 앞에서 때로는 노래하고 춤을 추기도 했죠.

열렬한 카톨릭 신자로서 뮤지컬 <노트르담드파리> 여주인공 ‘에스메랄다’를 접하고 운명을 느꼈어요. 어떻게 보면 저와 비슷하지 않았나 싶어요. 성당 앞에서 춤을 추는 여자라니.(웃음) 딱 저잖아요.”

<노트르담드파리>는 인물의 내면이 복잡한 작품인데 어떻게 해석했나요?

“스토리를 들춰보기 전에 작가의 내면을 먼저 훑어봤어요. 원작을 쓴 작가 빅토르 위고 본인은 자신이 무신론자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유신론자가 아니었을까 생각돼요. 이를테면 꼽추 콰지모토에게 물을 주는 그녀(에스메랄다)의 모습은 마치 ‘성모마리아’ 같지 않았나요? 학춤을 추는 모습은 ‘막달라 마리아’같았고요.

저는 이게 실화라고 생각하고 연기했어요. 당시에 처절한 아름다움으로 마녀사냥 당한 여인 한명 없었을까요, 문득 그런 상상이 들었죠. 빅토르 위고는 아마도 무신론자인 체 하며 종교를 잘못 받아들인 자로부터 서러운 죽음을 당한 그녀를 위로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요. 저 역시 그녀를 위한 일종의 ‘씻김굿’이라 받아들이고 역에 몰입하게 됐죠.”

10~20대 청춘을 가수로서 정신없이 달려왔어요

“10대 때는 꿈을 꾸는 그 자체였고, 20대 때는 부딪히는 시기라 생각하는 대로 잘 안됐어요. 그래도 포기 않고 진득하게 하다 보면 실력이 늘어요. 연애도 괜히 잔꾀부리는 것보다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만 사랑하는 게 낫듯이 모든 일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항상 순수함이 답인 것 같아요.”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연예인으로 활동하면서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부분은 뭔가요?

“세상과 교감하며 놀지 못했던 것이 아쉽죠. 친구를 만나도 우리 집, 차 안, 그렇게 늘 작은 박스(box) 안에서 놀았어요. 매니저 오빠가 운전까지 해주시니까 혼자서 뭘 해본 적도 없는 거예요. 서른이 넘어서야 여행을 가봤어요. 친구와 동해바다에서 사적으로 놀아본 건 처음이에요. 한 겨울이었지만 바다에서 가자미도 잡고 모래성도 쌓았어요. 정말이지 눈부시게 행복했어요.”

연예인으로서 자기만의 가치관이 있나요?

“유대인 속담 중에 ‘웃지 않으려면 가게 문을 열지마라’는 말을 좋아해요. 저는 연예인이기 때문에 일단 대문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는 세상이라는 ‘가게’ 문을 연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길에서 마주치는 무명의 고객을 실망시켜서는 안돼요. 만약 오늘 우울한 영화를 보고 혼자 분위기를 잡고 싶다면 집에 있는 게 더 낫다는 거죠.”

자기 관리를 잘하는 연예인으로 바다 씨가 주로 꼽혀요. 지난 20년간 잡음 한번 없이 건전하게 활동해왔는데.

“대중가수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사람들의 추억 속에 있을 수밖에 없어요. 학창시절 TV에서 보던 제가 망가져 있으면 마음이 왠지 서글퍼지지 않겠어요. 그래서 제 또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더 밝은 마음으로 건강히 활동하려고 노력해요. 음악 실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귀감이 될 만한 건강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도 대중에 대한 예의인 것 같아요.”

JTBC <마녀사냥> 등 주요 프로그램에 출연해 솔직한 입담으로 시청률을 크게 올려놓았어요. 사생활을 털어놓으면서도 망가지지 않는 균형 감각이 뛰어난 것 같아요.

“‘나는 육감이 아니라 천감이 열리는 여자’, ‘남자친구에게 돈 빌려준 적 있다’는 말로 시선을 받은 건 맞아요.(웃음) 연예인이라면 적당한 선까지는 대중에게 보여드려야 해요. 물론 여기서 중요한 건 반드시 솔직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야만이 비로소 진정한 교감이 이뤄지는 것 같아요.”

JTBC 프로그램 중에 출연해 보고픈 작품이 있어요?

“손석희 사장님을 만나보고 싶어요. <뉴스룸>에 출연하게 되면 <마녀사냥> 때보다 더 솔직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웃음)

뮤지컬에 이어 최근 바다는 바다 건너 중국에 진출해 제 2의 음악인생을 시작했다. 지난 1월 중국에서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인기 음악프로 <마이왕정빠>에 한국 가수로는 처음 출연했다.

<마이왕정빠>는 아시아의 실력파 가수들을 초청해 경연을 펼치는 중국판 <나는 가수다>로 바다는 이 프로에서 최종 2위를 차지했다. 바다는 결선 경연에서 배우 장국영의 연인으로 유명했던 홍콩가수 매염방의 곡 ‘석양지가’를 선곡했다. 그는 매염방이 암으로 사망하기 전 마지막 콘서트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등장했던 전설의 무대를 완벽하게 재연해 중국 시청자를 눈물짓게 만들었다.

웨딩드레스 입고 중국을 눈물짓게 한 사연


▎그녀는 “음악 실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귀감이 될 만한 건강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도 대중에 대한 예의인 것 같다”라고 말한다.
최근 중국 음악계에 진출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다른 나라의 언어를 외워서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게 사실 두려웠지만 본질적 마인드는 똑같아요. ‘승패와 관계없이 인생에서 뭔가에 도전해봤다’는 기록을 남기는 게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어린 시절 소래포구에서 학교 다닐 때 육상선수였거든요. 대단한 결과를 내진 못했지만 모든 걸 걸고 저 먼 바다를 바라보며 뛰었어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 이렇게 나만 알고 있는 뿌듯한 기록으로 남아 있죠. 그때 일등이라든지 승패만 생각해 도전하지 않았다면 지금 제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을 거예요.”

바다는 “인생에 있어 최고의 가치는 긍정적인 도전”이라고 말했다. “긍정적인 도전을 계속하면 어떤 일이든 이룰 수 있는 확률은 높아 질 수밖에 없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바다 씨의 노래를 들으면 감정이 그대로 전해진다는 평이 많아요. 실제로 노래 부를 때 어떤 생각을 해요?

“안 되는 것을 억지로 채우려 하기보다는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제가 외국어에 약해요. 당연히 팝송이나 중국 노래를 부를 때 발음이 완벽하지 않죠. 하지만 이 곡이 갖고 있는 감정이 뭔지는 읽어낼 줄 알잖아요. 그 느낌을 청중에게 잘 전달하려고 집중해요.”

음악은 바다 씨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음악은 언제나 저를 특별하게 만들어줬어요. 음악은 제게 고향이고 친구죠. 예쁜 옷이면서 빛나는 유리구두이기도 해요. 예쁘게 치장하고 있지 않아도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이 쳐다봐주죠. 그렇게 음악이 있는 한 저는 특별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S.E.S 멤버였던 유진과 슈가 다 결혼했어요. 본인도 언젠가 결혼할 생각이 있나요?

“아마도 불혹의 나이를 넘어봐야 (결혼)하고 싶어질 것 같은데요?(웃음) 사실 결혼보다는 자연이 더 그리워요. 다양한 나라를 열심히 오가며 활동했던 아이돌 가수의 특성인지도 모르겠어요. 나돌아 다니다 보니 고향이 그리운 거죠. 이효리 언니도 요즘 바닷가에서 살잖아요. 저도 언젠가는 바다가 있던 그 공간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생각 자주해요.”

최근 10대 아이돌 가수가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어요. 어떻게 생각하나요?

“요즘 아이돌 후배를 보면 그룹에서 ‘리더’ 혹은 ‘귀여움’을 담당하는 친구도 있고, ‘섹시’를 맡은 친구도 있어요. 이렇게 각자 맡은 캐릭터가 있지만 저는 그 안에 ‘스피릿(spirit 영혼)’이 담겨 있길 바라요.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이런 말이 나와요. ‘자신의 이름을 잊어버리면 안 돼.’ 작가 버지니아 울프도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했고요. 이렇듯 누구에게나 자신만이 구현해낼 수 있는 독창적인 세계가 있어요. 우리 후배들도 너무 연예계가 요구하는 기능적인 측면에만 함몰되지 말고 틈틈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였으면 좋겠어요. 내가 누군지, 내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 말이에요.”

“늘 아름답게 살고 싶어”


▎2008년 바다는 뮤지컬 <노트르담드파리>로 주요 시상식에서 여자인기상을 독식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미녀는 괴로워>로 제3회 더뮤지컬어워즈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사진·중앙포토
‘소녀시대’의 서현도 그랬고 바다 씨를 존경한다는 후배가 참 많아요. 특별히 눈여겨보는 후배가 있어요?

“서현이는 나 말고도 존경하는 사람 많은 것 같던데.(웃음) 원래 가수 수지가 라이벌이었는데 (성)유리가 자신의 라이벌이라고 점찍는 바람에….(웃음) 그래서 최근 설현으로 바꿨어요. 여성미가 굉장한 친구인 것 같은데 언제 한번 같이 밥이라도 먹으면서 이야기 나눠보고 싶어요. 설현아, 연락해라.”(웃음)

무대에서 호흡을 맞춰보고 싶은 후배가 있다면요?

“참 잘 맞을 것 같다는 후배는 있어요. ‘슈퍼주니어’의 려욱이 그래요. 내면의 순수성이 돋보이는 친구에요. 그게 그의 음악이 궁금한 이유에요.”

앞으로 어떤 가수가 되고 싶나요?

“사랑 받는 만큼 공손해지고 싶어요. 스타는 도도해야 한다는 건 잘못된 생각인 것 같아요. 하늘에 별을 보면 변덕 없이 은은하게 빛나잖아요. 가장 사랑받는 별 ‘북두칠성’도 늘 한결 같이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공손하게 빛을 내고 있어요. 저는 그런 대중가수가 되고 싶어요.”

그래도 살면서 분명 힘든 일도 또다시 생길 텐데요.

“힘든 일은 언제나 생길 수 있죠. 하지만 자기 환경은 자신이 만드는 거잖아요. 소설가 헤르만 헤세의 <정원 일의 즐거움>에서 이런 말이 나와요.

‘나는 유감스럽게도 쉽고 편안하게 사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는데, 그건 아름답게 사는 것이다.’

결국 삶의 아름다움은 자신 안에서 찾을 수 있다는 거죠.”

- 글 김포그니 기자 pognee@joongang.co.kr / 사진 오상민 기자 o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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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호 (2016.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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