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새 연재 |김승중 교수의 ‘그리스 문명의 결정적 순간’] 고대 그리스인의 시간 혁명과 운명관 

카이로스, 확신할 수 있는 삶의 유일한 방식! 

김승중 캐나다 토론토대 희랍미술고고학과 교수 seungjungkim@gmail.com
인간세상의 찰나, 즉 짤막한 현재의 시간이 계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예측 불가능한 주관적인 시간 ‘카이로스’가 인류 생명의 근원에 깃들어

▎멀리서 바라다본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언덕. 인간의 능력과 노력을 상징하는 카이로스가 응축된 공간이다. / 사진·중앙포토
4월호부터 김승중 토론토대 교수의 예술을 통해 본 ‘그리스 문명의 결정적 순간’을 연재한다. 김 교수는 미국 유학 중 천체물리학과 예술사고고학을 전공해 각각 박사학위를 받은 독특한 지성이다. 고대 그리스 미술에서 시간과 시간성의 개념을 집요하게 천착하며 자신만의 학문세계를 구축했다. 그리스 문명의 결정적 순간을 예술작품을 통해 드러내자는 것이 이 연재를 기획한 의도다.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김 교수의 창조적 글쓰기는 인류 문명의 시원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시한다.

시간, 그것은 대체 무엇일까? 일찍이 기원후 세기의 신학자이며 히포(Hippo)의 주교였던 성 아우구스티누스(Saint Augustine, AD 354~430)가 이렇게 대답했다. “아무도 나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나는 시간이 무엇인지 아주 잘 안다. 그러나 누군가가 나에게 시간이 무엇이냐고 묻는 순간, 나는 그 대답을 모르게 된다.” ‘시간’이란 마치 블랙홀과도 같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빠져나오지 못하고 의문만 증폭되는 개념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러한 시간의 불가사의한 특성을 간접적으로나마 신에 대한 경외감으로 승화시켰다. 거의 2000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한탄이 새삼 새롭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말할 때 두 가지 단어를 사용했다. 그것이 바로 이른바 흐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다. 이 두 가지 개념은 바로 고대 그리스인들이 생각하는 두 종류의 시간, 즉 객관적인 시간과 주관적인 시간을 의미했다. 그리고 이와 같이 성격이 다른 두 개의 시간의 개념은 각각 신격화(divine personification)되어 그리스인들의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상대성이론과 철학적 시간개념의 변화


▎토론토대에서 강의 중인 김승중 교수. 그의 컬럼비아대 박사학위 논문에서는 그리스 예술에 나타난 시간관에 대한 깊은 연구가 이뤄졌다. / 사진제공·김승중
이 두 가지 시간개념은 결국 이원론적 사상을 토대로 발전된 서양문화의 전반적인 특성과 상통하였다. 그러므로 고대문명 시기 이후 잊혀진 카이로스는 근세기에 들어서서 다시 우리의 인식 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두 가지 종류의 시간이 존재한다? 언뜻 보기에 도대체 무슨 말인지 감을 잡기 힘들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17세기 계몽운동(Enlightenment)으로 탄생한, 뉴턴 역학의 성과라고 말할 수 있는 과학적인 카르테지안 타임(Cartesian tim)을 궁극적인 사실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서양 근대역사의 근본이라 말할 수 있는 실증주의적 토대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양자물리학이 등장함으로써 철학적인 시간의 개념도 변하기 시작하였다.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이나 마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 또는 에드문드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과 같은 20세기 초의 인간의 의식세계를 집요하게 파고든 철학자들이 흔히 논하는 현상학적 시간(phenomenological time)이 바로 그러했다. 이 현상적이고 주관적인 시간이야말로 유니버설한 뉴토니안 시간 못지않게 리얼하다고 주장함으로써 그들은 새롭게 시간 개념에 대하여 기여했다. 그런데 이러한 시간개념의 역사에 있어서, 서양 근대사를 전문적으로 논하는 학자들도 대부분이 의식하지 못하는 대목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러한 20세기의 시간개념 양분 현상이 바로 고대 희랍의 사상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카이로스’라는 용어 자체가 1930년대 전후로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 독일 태생의 미국 신학자. 조직신학의 창시자)에 의해 신학적인 개념으로 굳혀지게 되었고, 따라서 카이로스의 원래 의미가 제대로 연구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동안 많은 사상가가 이 점을 간과하게 된 것이다.

우선 그 두 개념 각각의 희랍어 의미를 살펴보자. ‘흐로노스’는 우리가 잘 아는 베테랑 할아버지, 시간의 아버지(Father Time), 즉 누구나 인식할 수 있는 객관적인 시간을 의미한다. 반면, ‘카이로스’는 완전히 반대의 이미지로서, 날라리 청년 ‘뉴 키드 온 더 블록(new kid on the block)’ 즉 예측 불가능한 주관적인 시간이다. 객관적인 시간이라는 것은 바로 아이작 뉴턴이 얘기하는 시간의 특징(aquabiliter fluit) 즉, 강의 물이 항상 일정하게 흐르듯, 우주의 천체가 똑딱거리는 시계에 맞춰 4분마다 정확히 1도를 돌아가듯, 그렇게 영원히 고정된 시간이 바로 흐로노스이다. 그렇기 때문에 흐로노스는 나이가 많고 오랜 전통을 지녀온, 아주 코스믹한 신적인 존재인 것이다.

<주역>적 시간은 모두 카이로스다


▎델포이 아테네 여신의 신전. 고대 그리스 건축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꼽힌다. / 사진·중앙포토
그에 반해서 주관적인 시간 ‘카이로스’는 흔히 ‘기회(oppor tunity)’라고 번역되기도 하는데, 이는 일정하게 움직이는 시계의 바늘이 상징하는 바, 의미가 결여된 고정적 흐름의 시간이 아니다. 카이로스는 바로 의미로 가득한 시간, 이른바 ‘시간’이라기보다는 ‘때’, 그것도 아무 때가 아니고 아주 ‘적절한 때(right timing)’를 의미한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러한 ‘때’는 항시 변할 뿐만 아니라, 개개인에 따라 그 인식이 다르기 때문에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다. 카이로스라는 주관적인 시간의 개념은 어떻게 보면 심오한 동양적 사상과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주역>적인 시간은 모두 카이로스적 냄새를 피운다. 본질적으로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한없이 복잡하고 어려운 개념이다. 그럼 이제 이 난해한 개념을 미술과 문학을 통해 그 실마리를 풀어가보자.

어떠한 물건도 다 담을 수 있는 빈 그릇처럼, 모든 이벤트를 함유할 수 있는 비어있는 시간이 흐로노스라면; 의미가 이미 부여된 사건들로 가득 찬 역사의 시간(모멘트moments)이 카이로스인 것이다. 혹은 이렇게 볼 수도 있다: 흐로노스가 신적인 우주의 영원한 시간이라면, 카이로스는 인간세상의 찰나, 즉 짤막한 현재의 시간이다. 인간의 역사는 영원한 우주의 시간에 비교하여 말하자면 한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카이로스는 항상 젊은 청소년(ephebe)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BC 5세기 중반에 처음으로 카이로스가 제우스의 막내아들로 등장하게 되면서 곧 인간세상에 중점이 놓인 이 시간개념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그렇다면 왜 카이로스가 하필이면 BC 5세기경에 들어서서야 중요한 개념이 되었는지, 또 이 카이로스가 고대 그리스인들의 사회생활에 얼마나 방대한 역할을 했는지를 살펴보자.

그리스 고대역사의 시대구분론에 있어서 폴리스 아테네 중심의 최전성기를 나타내는 클래시컬 피리어드, 즉 고전시대(Classical Period: BC 5세기 전반~BC 4세기 후반) 동안에 수많은 신과 영웅이 조각상으로 표현되었고, 또 이들은 도자기 등 미술문화의 전반에 끊임없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의 인간화된 모습, 즉 신과 인간 모두 근본적으로 공통된, 그리고 의학적으로 사실적인 신체를 가진 모습을 띠고 나타나는 것 또한 그 당시 사상의 밑바탕이 된 ‘로고스적인 휴머니즘(Humanism)’의 궁극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전성기 동안에 그 많은 조각상과 미술품 중 시간의 개념이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된 것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드물다. 더구나 흐로노스의 모습은 이 당시 미술에서는 아예 찾아볼 수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중시할 점은 시간의 신 흐로노스(Chronos)는 비슷한 이름을 가진 제우스의 아버지, 타이탄(Titan)인 크로노스(Kronos: 열두 타이탄 중의 막내, 레아와의 사이에서 제우스를 낳았다)와는 다른 별개의 신이라는 것이다. 흔히 학자들 중에서도 이 둘을 혼동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고대 후기에 이 흐로노스와 크로노스가 그 음이 비슷한 연유로 서로 정체성이 동화된 까닭일 확률이 높다. 고대 그리스의 최전성기 때 미술로 승화된 시간의 개념은 바로 흐로노스가 아닌 카이로스이다. 흐로노스가 아닌 카이로스를 택한 이유는 그만큼 카이로스가 그들의 일상생활에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BC 4세기의 조각가 뤼시포스(Lysippos)가 처음으로 우리에게 카이로스의 이미지를 인간의 모습으로 선사하였다. 뤼시포스는 헬레니스틱 시대인 4세기의 3대 미술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BC 370~315 기간 동안 활약).

“내 이름은 카이로스… 모든 것을 정복하는 시간”


▎철학자 플라톤(왼쪽)과 파르테논 신전. 플라톤은 카이로스만이 인간에게 궁극적인 결정권을 부여한다고 말했다. 불과 9년 만에 완성된 장엄한 파르테논 신전을 통해서도 인간사에 미치는 카이로스의 작용을 감지할 수 있다. / 사진·중앙포토
뤼시포스는 알렉산더 대왕이 가장 사랑한 공식 아티스트로도 유명하며, BC 5세기 고대미술의 이상적인 카논(Canon: 수치·비율의 표준)을 더 실질적인 비율로 갱신한 창조적이며 혁명적인 조각가로 알려져 있다. 이 뤼시포스가 조각한 카이로스는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걸작이었다. 어느 고대 작가는 뤼시포스가 알렉산더 대왕에게 시간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하여,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간언하는 맥락에서 카이로스의 이미지를 조각했다고 전하기도 한다.

많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작가가 카이로스의 아름다운 모습과 그 의미의 중요함을 찬양해왔기에, 그 뛰어난 예술성과 상세한 모습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면면히 전승되어 내려온 것이다. 그중에 특히 BC 3세기 초의 시인 포시디포스(Posidippos: 마케도니아에서 태어난 신 코메디 시인-New Comedy poet)가 우리에게 빼어난 해학적인 묘사를 전한다. 살아 숨쉬는 카이로스 조각상이 지나가는 나그네와 대화하는 형식으로 전개되는 이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그네: 그대는 누구이며, 어떤 조각가가 그대를 창조했느뇨?

카이로스: 내 이름은 카이로스… 모든 것을 정복하는 시간… 뤼시포스가 날 만들었지.

나그네: 그대는 왜 까치발을 들고 있느뇨? 발목에 달린 날개는 또 무엇인고?

카이로스: 난 항상 날뛰어 다니니까, 바람과 함께 날아다니고….

나그네: 손에 든 칼은 대체 무엇인고?

카이로스: 그건 내가 어느 칼날보다 더 날카롭다는 것을 뜻하는 거지.

나그네: 아~ 그리고, 그대 머리 스타일이 특이한지고… 앞머리가 특히 긴 이유는 무엇인고?

카이로스: 그건 당연히 누가 나를 처음 만날 때 확 잡아챌 수 있게 해 주려고….

나그네: 아니, 그런데 왜 그대 뒤통수에 머리털은 하나도 없고 대머리인고?

카이로스: 그건 말이지, 나를 한번 지나치면 아무리 나를 붙잡고 싶어도 뒤에서는 절대로 붙잡을 수 없게 하려고 그런 거지. 바로 당신 같은 사람들한테 교훈을 주기 위해 조각가가 나를 만들어서 이렇게 대문 앞에 세운 것이라네.(참조 정보: www.kairotopia.com)

뤼시포스의 원작인 카이로스 동상 자체는 아쉽게도 현재 잔존하지 않지만 우리에게 전해진 이러한 문헌들과 후기 그리스·로마시대 비석 등에 양각된 모습에서 카이로스의 원래 모습을 이렇게 재현할 수 있는 것이다.

금빛으로 찬란한 카이로스의 꽃다운 모습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하였다. 공 위에 한 발끝으로 균형을 잡고 있는 모습은 그만큼 카이로스가 날렵하다는 의미다. 게다가 손에 들고 있는 날카로운 칼날 위에 저울까지 올려놓아 밸런스를 잡고 있는 기이한 포즈를 이와 같이 거뜬히 취하는 모습을 일별하는 순간, 우리는 카이로스가 실은 얼마나 교묘한 개념인지 곧바로 느낄 수 있다. 아슬아슬한 균형을 힘들게 잡고 있는 카이로스는 그가 상징하는 ‘적절한 때’가 그만큼 아슬아슬하고 잡기 힘든 것임을 의미한다. 카이로스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알아볼 수만 있다면, 그 긴 앞머리를 확 낚아챌 수 있으련만…. 가장 적절한 기회라는 것은 그만큼 알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그의 대머리 뒤통수만 바라보며 안타깝게 놓친 기회를 한탄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 우리가 흔히 일상생활에서 말하는 “타이밍이 전부다” 라는 속언조차 이 카이로스의 중요성을 여지없이 나타내주는 것이다.

카이로스의 순간이야말로 승패의 관건


▎금빛으로 찬란한 카이로스의 꽃다운 모습.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은 모습에서 그가 상징하는 ‘적절한 때’의 절묘한 순간을 인식할 수 있다. / 사진제공·김승중 ©The Lysippan Kairos 3D-SeungJung Kim and Dave Cortes 2012
고대 그리스인들의 일상에서 카이로스가 다스리는 영역은 한없이 넓었다.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Sophist)들이 그렇게도 중시하는 레토릭(Rhetoric: 연설의 기술)에서도 카이로스는 가장 중점적인 역할을 하였다. 올림픽 게임에서는 운동선수들이 경기 전에 카이로스에게 제물을 바치며 기도를 하였다. 그들에게는 카이로스의 순간이야말로 승패의 관건이었기 때문이다. 히포크라테스의 의학 문헌에 수시로 등장하는 카이로스는 바로 이 현상적인 치료의학을 가능하게 하는 주인공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이 카이로스야말로 원칙적으로 배울 수 없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연설가는 관중에 따라 어떠한 말을, 정확하게 어느 시점에 어떻게 해야만 자지러지는 웃음을 터트리게 할 수 있는지, 운동선수는 그 발을 언제 어느 지점에 어떻게 디뎌야 가장 멀리 뛸 수 있는지, 의사는 환자의 성별과 나이에 따라 어떤 병에는 어떤 약을 언제 얼마나 먹여야 치료할 수 있는지 등등의 문제들이 모두 카이로스가 다스리는 일이었다. 그런데 각각의 경우가 너무나도 다양하기 때문에 규칙을 배워서 적용하는 방법으로는 도저히 이 카이로스를 터득할 수 없고, 오직 오랜 경험과 연습으로만 직각적으로 정복할 수 있다고 하였다.

플라톤은 이렇게 말하였다. “인간세에서는 카이로스(kairos)와 튀케(tyche: 운명이나 행운을 나타내는 말인데 대부분 긍정적 의미로 쓰인다. 4세기부터 컬트의 대상이 되었다) 이 두 가지 신이 모든 일을 다스린다.”(Laws 709b) 튀케는 찬스의 신이다. 그러므로 이 튀케를 우연, 혹은 운, 혹은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운에 따라 생겨난다. 기회가 생길 때 그 기회를 제대로 잡아야 하고, 그에 따라 승부가 판결 난다는 것이다. 운이 없으면 기회가 안 생기고, 기회가 생겨도 잡지 않으면 무의미하지 않은가?

튀케가 인간의 힘으로는 조정할 수 없는 우연적 현상이라면, 카이로스는 반대로 인간의 능력과 노력을 상징한다. 즉, 오직 카이로스만이 우리에게 궁극적인 결정권을 부여한다. 인간의 이러한 선택의 자유 또한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Greek democracy)의 핵심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저 없이 카이로스라는 개념이야말로 BC 5세기 그리스문명의 중심사상이라 말할 수 있다. 민주의 토대를 이룬 휴머니즘의 가장 아름답고 혁명적인 표현이라고 공언할 수 있는 것이다.

고전적 그리스 문명은 로마시대를 거치고 중세기로 접어들면서 형해화되고, 교조화되었고 그 발랄한 정신이 많이 잊혀져갔다. 지금 우리가 그나마 알고 있는 것들조차 본래의 모습 그대로 우리에게 고스란히 물려져 내려온 것이 아니다. 고전문명을 처음으로 되찾았다는 르네상스 시대의 많은 문학과 철학문서 등이 아랍권 문화를 거쳐 여러 번 재번역이 되었다는 사실을 흔히 망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고대문명과 언어는 현대시점에서 대부분 재구성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세기경부터 점차로 고고학적인 발견이 시작되었고 고문서 연구가 축적되면서, 고대문명에 대한 이해가 폭넓은 지평을 획득하게 되었다. 고문명의 이해는 21세기부터 오히려 그 본질로 진입할 수 있는 다양한 루트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차원의 시간개념이 필요하다


▎카르나크 신전은 수백 개의 거대한 원형 돌기둥 위에 정교한 파피루스 꽃받침 문양을 장식했다. 고대 이집트의 이러한 건축양식은 그리스의 이오니아식, 코린트식 건축양식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 사진·중앙포토
희랍어 문서들과는 달리 로마시대의 라틴어 문서에는 카이로스라는 이름이 직접 등장하지 않고, 템포리스(Temporis), 또는 오카지오(Occasio)라는 표현으로 바뀐다. 즉 로마시대의 시간의 신 또는 기회의 개념으로 번역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결국 카이로스라는 청소년은 그냥 단순히 시간이라는 개념에 동화되거나, 아예 ‘기회’ 라는 개념 자체로 탈바꿈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로마시대의 오카지오는 여신이었다. 그 반짝하는 찰나의 시간을 상징하는 카이로스라는 청년은, 시간의 개념으로서 흐로노스와 쌍벽을 이루었던 그 영화를 상실했고, 인간의 모든 문화를 둘러싼 그런 중대한 역할에서 차츰 주변적인 인물로 잊혀져 갔다. 카이로스가 뒤쳐지면서 흐로노스가 시간의 유일한 개념으로 그 자리를 독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 바람에 서양문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체계적인 과학적 사고가 발달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겨났을지도 모른다. 영문의 모든 시간에 관련된 용어가 ‘흐로노(chrono: 영어로는 크로노라고 발음한다)’라는 어근을 사용할 뿐이며(chronology, chronometer, chronicle 등), 카이로스(kairos)를 어원으로 둔 시간에 관련된 용어는 하나도 없다는 사실만 보아도, 흐로노스의 모노폴리(독점)는 그만큼 분명하다. 어떻게 보면 20세기에 들어서서 카이로스와도 같은 현상학적이고 주관적인 시간을 되찾기 위해서는 고차원의 체계적인 현대물리학이 발전되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흐로노스적 시간에 바탕을 둔 뉴턴의 물리학의 기초가 없이는 아인슈타인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카이로스는 그간 어차피 잊혀져야만 했을지도 모른다. 카이로스를 20세기에 와서 되찾기 위해 카이로스는 잊혀져 있어야만 했다는 이 역사적인 아이러니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물레방아가 돌아가듯 반복되는 이러한 역사의 패턴에, 롱 듀레(long durée: 지속성)라는 다른 차원의 시간개념, 혹은 주기적인(cyclical time concept) 시간개념이 도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역사를 바라보며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운다. 그러나 인류 문명의 발달과정이 일직선상에서 한 방향으로만 흘러간다는 생각 자체가 너무도 단순하고도 유치한 낙관론의 소산이다. 역사라는 장에는 수많은 것이 즉각적으로 사라지고 또 나타난다. 또 잊혀지고 되살아나기도 한다. 그것이 하나의 흐로노스의 실로 꿰질 수는 없다. 정보통신의 시대에 사는 우리는 인간세의 모든 것을 기록하고 보존할 수 있다고 오만한 착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은 오직 카이로스일 뿐이다. 지금 바로 이 시간에 충실한 삶, 우리가 숨쉬는 순간순간이 모두 과거·현재·미래가 몽땅 담긴 카이로스의 찰나일 뿐이다. 우리는 그 카이로스의 삶을 살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너무도 카이로스의 타이밍을 상실해오기만 한 조야한 역사가 아닐까? 이제 우리는 우리 민족의 카이로스를 주체적으로 회복해야 할 그 ‘때’에 서 있다.

김승중 - 서울대학교 천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했다. 프린스턴대 천체물리학과에서는 우주론을, 콜롬비아대학에서는 예술사고고학과에서는 희랍미술을 전공해 각각 박사학위를 받았다. 콜롬비아 박사과정에 들어가기 전에는 버지니아대학에서 미술사학 석사코스를 밟았다. 이 시기 다양한 현지발굴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고고학의 생생한 지식을 얻었다. 현재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희랍미술고고학을 가르치고 있다.

/images/sph164x220.jpg
201604호 (2016.03.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