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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특집│긴급진단] 3당 할거 시대, 박근혜-비박 대선주자들의 위태로운 동거 

“대통령에게 의존하는 순간 경쟁력 사라진다”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친박 대선주자들 몰락으로 여권 대선 새판 짜기 불가피… 김무성, 유승민, 반기문, 안철수 등 범(汎)보수 후보 암중모색 돌입

▎4월 14일 오전 국회 새누리당 대표실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해단식에 참석한 김무성 대표가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며 대표직을 사퇴하고 있다.
“정당과 국회, 정치권이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지 않고 대권을 꿈꾸는 몇몇 욕심쟁이에 의해 그르쳐졌다.”

전남 순천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된 이정현 의원은 총선 다음 날인 4월 14일 한 방송과의 전화 통화에서 민심 이반과 여당 총선 참패의 원인을 이렇게 진단했다. 그는 나아가 “대한민국 정치를 바꿔야 한다는 명령을 엄중하게 받아들인다”면서 “정말 민심이 왜 이렇게 됐는지 솔직담백하게 받아들이고 근본적으로 고치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은 마침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일부 당 지도부가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아침 일찍 당직 사퇴의사를 밝힌 날이다. 이 의원은 이와 관련해 “그게 문제”라며 언성을 높였다. 선거 결과에 정치인들이 너무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는 게 한국 정치의 오랜 폐해라는 비판이다. 그는 “선거만 끝나면 (정치인들이) 촐싹거리고 콩 볶듯 한다”면서 “선거에 나타난 민심을 정확하게 진단하려 들지 않고 우선 피하고 도망간다”고 이날 사퇴한 김무성 대표와 당 지도부를 겨냥한 듯한 발언을 했다.

이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 정무수석, 홍보수석을 역임하고, 최고위원으로 활동하는 당내 대표적 친박 인사의 한 사람이다. 총선 종료와 동시에 그가 공개리에 지목한 ‘대권을 꿈꾸는 욕심쟁이들’, ‘선거가 끝나면 우선 피하고 도망가는 정치인’이 누굴 뜻하는 걸까? 정치를 조금이라도 지켜본 사람이라면 박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로 지목한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선거 다음 날 패배 책임을 지겠다며 사퇴한 김무성 전 대표를 손에 꼽을 것이다.

이 의원의 발언이 친박계 전체 의사를 대변한다고 단정키는 어렵지만 총선 책임소재에 대한 친박계 핵심의 기류와 일정부분 맞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 의원은 총선 당일 당권 도전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친박계의 한 전략통은 “이번 총선은 유승민, 김무성 두 사람이 차례로 재를 뿌린 격”이라며 “이들에 대한 ‘안티’ 정서는 쉽게 희석되지 않을 것 같다”고 친박계 내부의 분위기를 전했다. 비호감을 넘어 적대감을 주는 인물로 각인된 듯하다는 것이다.

비호감 이상의 적대감을 사는 유력 주자들


▎총선 선거기간 새누리당사 외벽에 걸린 현수막. 새누리당은 ‘문제는 국회다’ 등 패기 넘치는 구호를 담았으나 총선 후 대국민 사과를 하게 됐다.
더구나 김 전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입은 내상(內傷)이 크다. 안방 격인 부산·경남·울산에서 모두 13석을 놓쳤다. 특히 18석의 부산에서는 더민주에 무려 5석을 빼앗겼다. PK(부산·경남)의 맹주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친박계에서는 현역 의원 위주의 공천이 부산 민심의 이반을 낳았다고 공격한다. 100% 상향식 공천이 현역의원에게 유리하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된 만큼 김 전 대표로서는 뼈아픈 손실로 기록될 것이다. 또 새롭게 등장한 국민의당이 선전함으로써 여야 3당이 의회권력을 나눠 갖는 시대로 돌입했다. 전체 선거 패배의 책임론에다 새누리당 텃밭의 일부를 야권에 내준 실책으로 인해 그의 대선가도에 황사가 자욱하게 드리운 형국이다.

핑계 없는 무덤없다고 비박계는 친박계에 책임을 돌린다. 김 전 대표조차 4월 14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탈당해 당선된) 무소속 의원들을 통해 공천이 잘못됐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컷오프(Cut off, 경선 배제) 등 강압적 수단에 의한 물갈이가 패배의 한 원인임을 시사했다. 또 사퇴의 변에서 “정치는 오직 국민만 바라보고 국민만 두려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이 국민 마음은 안 읽고 ‘박심(朴心, 박 대통령 의중)’만 바라봤다는 반성 겸 자책으로 받아들여졌다. 김학용 대표 비서실장은 “공천만 제대로 했으면 과반도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며 “책임 있는 사람들이 왜 침묵하는지 모르겠다”고 친박 책임론을 제기했다. 이런 발언들이 책임 공방으로 비화되자 김 전 대표가 급거 진화에 나섰다. 그는 “내 측근을 인용한 총선 책임 소재 발언이 나오지 않도록 선거와 관련된 발언을 일절 금하고 있다”며 단속에 나섰다. 양측이 더 이상의 충돌은 피했지만 서로의 속내를 다 드러내고만 상황이다. 영남일보 박재일 정치에디터는 총선 결과와 관련해 “박근혜 정부의 새누리당은 보수진영의 외연을 넓히기는커녕 거의 자해(自害)에 가까운 편가르기로 스스로의 영토를 축소시켰다”고 평가했다.

대선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김 전 대표는 불행 중 다행(?)인 상황이다. 경쟁자들이 아예 회복하기 힘든 치명상을 입었다. 언제든지 실전 투입이 가능했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서울 종로), 김문수 전 경기지사(대구 수성갑), 안대희 전 대법관(서울 마포갑) 등 거물급 후보가 줄줄이 고배를 마셨고, 경남지사를 지낸 김태호 의원은 불출마를 택했다. 낙선한 3인의 잠룡은 당분간 암중모색기에 접어들 전망이고, 김 의원은 원외로 밀려나면서 언론 노출 빈도가 줄어들 게 자명하다. 20대 총선이 ‘새누리당 잠룡(潛龍)들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반면, 유승민 의원은 탈당 후 무소속으로 살아 돌아왔다. 18, 19대 총선에서 연거푸 낙천했던 김무성 전 대표도 이번에는 만신창이의 몸이지만 6선 고지에 올랐다. 김 전 대표, 유 의원 모두 친박계로부터 비토되고 있지만 현역으로는 이들 두 사람이 보수진영의 대선주자 영역에 남아 있다. 친박계 좌장인 최경환 의원, 수도권의 간판으로 떠오른 나경원 의원도 대선에 도전할 순 있지만 아직 대선주자로서의 명함은 낯설다. ‘예비군’으로 남아 있는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 지사 등 새누리당의 차세대 그룹이나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 등 거물급 인사는 중앙 정치권과 거리가 멀다. 다만 새누리당에서 대선주자 세대교체 바람이 세게 분다면 광역단체장들이 급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김무성, 초식남(草食男)에서 다시 마초남으로?


▎1. 박근혜 대통령이 4월 1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 2.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총선 참패 책임 공방이 일자 측근들에게 함구령을 내렸다. / 3. 4월 13일 당선이 유력해지자 꽃다발을 목에 걸고 지지자들에게 인사를 하는 유승민 의원.
청와대와 친박계가 선호하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충청권에서 새누리당이 선전하면서 여전히 강력한 대안으로 거론된다. 대선주자 지지율에서는 여권 부동의 1위를 달리는 점도 ‘반기문 대안론’에 힘을 실어주는 배경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번 총선 결과는 그에게도 비보다. 박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과 리더십이 이완된다면 정치권 내 기반이 취약한 반 총장에게는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높은 지지율과 알려진 경력 외에 현실 정치의 경쟁력을 입증하거나 스스로 검증대에 오른 적도 없는 반 총장은 정치적 모호함 그 자체이기도 하다. 김우석 미래전략개발연구소 부소장은 “반기문 대안론이 끊임없이 나오겠지만 여전히 ‘긁지 않은 복권’이나 마찬가지”라면서 “그의 경쟁력을 말하는 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두고 미래를 논하는 격”이라고 비유했다.

문재인·안철수·박원순 같은 주자를 여럿 거느린 야권에 견줘 새누리당은 심각한 인물난에 처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4월 13일 총선 투표 마감 직후 실시한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특별조사가 이런 사정을 잘 말해준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22%)와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16.7%)가 1, 2위를 차지했으며, 김 전 대표와 오세훈 전 서울 시장은 나란히 10.9%로 공동 3위에 그쳤다. 1주 전 같은 여론조사보다 김 전 대표는 1.6%포인트, 오 전 시장은 4.9%포인트가 줄었다. 문 전 대표와 안 공동대표에게 지지층이 쏠린 반면, 김 전 대표와 오 전 시장은 두 자릿수 지지율 붕괴를 걱정할 판이다. ‘불임정당’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당지지율도 2.1%포인트 하락한 31.8%를 기록했다.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교체한 2012년 2월(31.9%) 이후 4년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총선 직후 본격적인 대선 행보에 나설 것으로 예측되던 김 전 대표는 모든 정치일정을 중단하고 진로를 원점에서 재검토한다. 선거 패배의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김 전 대표가 대선 행보에 나선다면 당 안팎의 거부반응과 역풍을 자초할 공산이 크다.

승부를 다툰다는 점에서 정치와 축구는 크게 다르지 않다. 전력이 부족할 때는 수비에 치중하면서 역습을 노리는 게 상책이다. 이 시점에 선제공격에 나서는 경우 자멸을 재촉할 뿐이다. 새누리당은 반성하고 자중하면서 때를 기다려야 할 시점이다. 김 전 대표도 “저부터 더욱 신독(愼獨,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언행을 삼간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전 대표가 벌써 나설 이유는 어디에도 찾기 어렵다. 어차피 여권에는 두드러진 대선주자가 안 보인다. 친박계에서 반기문 유엔총장을 추대하고자 해도 그는 연말까지는 미국에 있다. 야권 주자들의 독주에 몸이 단 보수진영에서 김 전 대표를 비롯한 잠룡들의 등장을 요구하는 시점이 오게 마련이다. “새누리당 잠룡들은 한동안 여론의 추이를 살피다가 ‘전면에 나서라’는 여론을 타고 자연스레 대선 가도에 뛰어드는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서성교 바른정치연구소장이 분석했다.

친박계가 ‘대권을 꿈꾸는 욕심쟁이’에 비유한 김 전 대표는 공천 과정에서는 이를 악물었다. 평의원 시절의 그는 거칠고 힘을 내세운다는 뜻에서 ‘마초남’의 이미지로 통했고 정가에서는 ‘무대(무성 대장)’로 불렸다. 풍채나 외모에서 뭔가 한칼 할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 까닭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런 이미지는 쑥 들어가고 여당의 ‘초식남(草食男)’ 정도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풀을 뜯어먹는 양처럼 온순하고 점잖은 정치인 말이다. 2014년 7월 당 대표 취임 당시 ‘수평적 당청관계’를 외치던 기세등등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주요 현안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다가도 청와대의 날 선 반응에 움찔하며 번번이 꼬리를 내리곤 했다. ‘30시간 법칙’의 정치인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청와대와 맞서 자기 뜻을 세우다가도 30시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물러선다는 것이다. 자신이 표방한 100% 상향식 공천이 무너지는 가운데에서도 마냥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막판 ‘옥새투쟁’을 벌여 혼선을 가중시켰다는 공격을 받았다.

새누리당 공천 국면에서 5개 지역 무공천을 선언하고, 부산 영도로 낙향한 이른바 ‘옥새투쟁’은 그나마 김 전 대표가 청와대를 향해 자기 목소리를 낸 거의 유일한 사례 정도로 받아들여진다. 30시간의 법칙은 깨지지 않았다. 약 26시간 뒤 김 전 대표는 5개 지역 중 3개 지역 공천을 확정해줬다. 절반의 성공이자 실패인 셈이다.

집권여당의 무기력함은 ‘초식화 새누리당’, ‘비전 제로의 보수진영’으로 이어졌고 4·13총선 대패(大敗)를 초래했다. 김 전 대표는 선거 전부터 진작에 당 대표 사퇴를 예고했었다. 그는 3월 30일 관훈클럽 토론에서 “선거 승패와 관계없이 뒷마무리를 잘하고(대표직을) 사퇴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무참한 총선 패배에 아연실색한 그는 관훈클럽에서 장담했던 뒷마무리(수습)를 할 경황도 없이 총선 다음 날 당직을 내려놓았다. 의석 낙폭(146→122석)만큼이나 충격이 컸던 탓이다.

“청와대가 옥죄어 온다면 또 맞설 것”


▎지난 3월 한 언론사 창간 기념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과 김종인 더민주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당초 김 전 대표 측은 총선에서 선전할 경우 홀가분하게 대표직을 던지고 대선행(行) ‘마이웨이’에 나설 참이었다.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면 5월 초 20대 국회 새누리당 원대대표 선출까지 매듭지은 뒤 평의원 신분으로 돌아온다는 그림을 그렸었다. 19대 당시 새누리당의 첫 원내대표 선출이 5월 9일 이뤄졌듯이 말이다.

총선 과정을 통해 김 전 대표는 많은 심경의 변화를 겪었다고 주변에서는 전한다. 김 전 대표를 잘 아는 정치권의 한 소식통은 옥새투쟁의 예를 들며 “마지막 공천안까지 굴복했다면 김 전 대표 본인의 정치 생명이 끝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뒤의 말은 더 의미심장하다. “역으로 보면 김 전 대표의 정치생명을 끊을 정도로 청와대가 옥죄어 온다면 앞으로도 그렇게 맞설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영도다리행은 박 대통령에 대한 김 전 대표의 ‘독립선언’인 셈이다.

총선 전에 만난 김 전 대표 측근도 그가 결연한 의지를 굳힌 듯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실 2년 동안 대통령이 하자는 대로 다하고 시키는 대로 다 따라 했다. 그래서 무대(김 전 대표)에게 미래가 있었나? 없다고 보여졌기 때문에 영도다리로 갔던 것이다. 앞으로는 박 대통령을 상수로 놓고 정치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을 상수로 두지 않는다? 이 측근은 “앞으로는 ‘박심’이 아니라 민심을 상수로 둔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를테면 지금까지 늘 박 대통령 의중을 충실히 받들고 추종했건만 친박계에게 김 전 대표는 늘 한 방에 훅 보내질 대상으로밖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상황 인식을 굳혔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 측근은 “박 대통령에 의존해 대선 후보가 돼 볼까 하는 순간 무대의 경쟁력은 사라진다”면서 “이제 ‘박심’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초월해서 민심을 향한다는 것”이라고 김 전 대표의 총선 후 스탠스를 예상했다.

오래전부터 새누리당 주변을 배회하는 뜬소문의 하나가 김 전 대표의 각종 ‘아킬레스건’ 관련 얘기다. 그에게 약점이 많아 어떤 건 건드리면 정치생명이 끝장날 수도 있기에 김 전 대표의 대선 도전이 쉽지 않다는 루머로까지 이어진다. 공천 국면에서 불거진 “김무성 죽여버려. 솎아내라고”라고 하던 윤상현 의원의 녹취록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김 전 대표 측근은 “만약 정치생명을 끊을 정도의 자료가 있다면 공천 갈등 국면에서 반대파들이 몇 번은 공개했을 것”이라고 항간의 소문을 일축했다.

문제는 박 대통령과의 관계다. 여권 안팎에서는 김 전 대표가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가 되는 상황을 박 대통령이 반기지 않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이 역시 김 전 대표의 한 측근은 “그건 반기고 안 반기고의 문제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김 전 대표 대선가도에는 반대파들의 여러 가지 방해 요인이 개입하지만 그것 자체가 국민으로부터 많은 비난을 사는 요인이 될 것이다. 당내 민주적 절차에 따라 뽑는 대선 후보 선출에 대해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되니 안 되니 간섭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청와대가 막을 방도가 어딨나?” 김 전 대표 진영의 솔직한 심경을 대변한다고 하겠다.

김 전 대표 진영은 총선 전만 해도 이렇듯 결의를 다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총선 참패로 새누리당이 충격에 휩싸이자 모든 선택을 원점에서 새로 검토한다는 입장을 알려왔다.

새누리당 선거 참패는 김 전 대표에게 책임론이라는 멍에를 지웠지만 박 대통령의 정국 장악력 이완도 함께 가져왔다. 더구나 대선 경쟁자도 여럿 총선에서 탈락했다. 김 전 대표에게 여전히 기회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반사이익만으로는 대선주자가 되는 게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김우석 미래전략개발연구소 부소장은 “일정 정도의 세력과 리더십이 뒷받침돼야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는데 김 전 대표에게 이를 만회할 기회가 올 것인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고 신중론을 개진했다.

전국 2위 득표율 유승민과 TK 아이콘

김 전 대표측도 자생력을 키워서 지지율을 끌어올려야 한다. 하지만 그는 당 대표직을 내려놓았다. 당분간 뉴스에서 사라진다. 여론조사에서 확인되는 정치인 지지도는 100% 단순 노출 효과와 연동된다는 점에서 그는 유력한 노출 수단을 잃게 된 것이다. 칩거 내지는 자숙 상황이 오래가서는 곤란하다. 당장은 패닉 상태의 당을 추스르는 데 협조하고 자성하는 모드를 취하겠지만 적정 시점에 대선 경선 캠프와 싱크탱크를 발족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유승민 의원(대구 동을)은 새누리당 대권 경쟁의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친박계의 공천배제 전략에 밀려 무소속으로 출마한 유 의원은 보수적인 대구에서 최다 득표율인 75.74%를 얻었다. 대구 동을 선거는 김무성 전 대표의 ‘옥새투쟁’으로 새누리당이 후보를 내지 못한 가운데 무소속 유 의원과 더민주 후보간 2파전으로 치러졌다.

그가 자신의 지역구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음으로써 TK(대구·경북) 정치권의 새로운 ‘아이콘’이 됐다는 게 현지 지역정치 전문가의 분석이다. 그는 한 발 나아가 “‘따뜻한 보수’, ‘합리적 보수’를 표방해온 유 의원이 새누리당 보수 혁신을 통해 한국 정치의 새로운 패러다임 구축에 성공한다면 더 큰 미래를 대구·경북과 함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구·경북의 ‘미래 자산’인 유 의원은 잠룡들이 대거 낙선한 새누리당의 새 대안도 가능하다는 게 지역 정치권 일각의 분위기다.

새누리당은 4월 14일 열린 긴급최고위원회의에서 유 의원처럼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7명의 복당을 허용키로 의견을 모았다. 총선 참패하고도 새누리당이 편가름에 몰입한다면 내년 대선까지 야당에 내어줄 수 있다는 보수진영 내 공멸의 위기감이 작용한 결과다.

새누리당 친박계가 비토하는 김 전 대표와 유 의원이 자의든 타의든 상대적으로 유망한 대선주자군으로 분류되는 건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이들의 부상은 박 대통령의 레임덕을 가속화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친박계가 대선 캠페인이 조기 점화되는 걸 극력 막으려 할 것으로 보는 이유다. 친박계에는 마땅한 대선 후보가 없다. 외부에서 빌려와야 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이 주목받았던 것도 이런 이유다. 이번 총선에서 오 전 시장이 고배를 마심으로써 친박계의 선택지는 더 좁혀졌다.

보수층에서 안 대표 호감도 증가한다면?


▎새누리당 대구·경북 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최경환(오른쪽) 의원이 4월 14일 대구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선거 결과에 대해 사과 입장을 밝혔다.
여당이 총선에 패배한 이상 박 대통령의 임기 말 권력누수는 구조적으로 불가피해 보인다. 여소야대에서 대통령은 국회라는 제도적 권력에 의해 제약받는다. 4대 개혁 관련 법안과 예산 등 어떤 안건도 새누리당 단독으로 처리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이 개각 등 인적 개편 카드를 꺼내 들더라도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자면 야당이 동의해줘야 한다. 심지어 야당은 국회의장, 상임위원장 등 국회 요직에 대한 우선권을 행사할 뿐만 아니라 국무총리, 국무위원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는 의결정족수(재적의원 과반 찬성)를 채울 수 있다.

야당과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38석을 가진 국민의당 협조 없이는 새누리당(122석)과 더민주(123석) 모두 법안처리 요건인 과반을 채울 수 없다.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4월 14일 새누리당과의 사안별 협력 가능성에 관한 질문에 “반대할 것은 반대하고 협업(協業)할 것은 협업할 것”이라고 문을 열어놓았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1, 2당을 상대로 선택적 공조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도 정책 제휴를 모색한다면 보수 성향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더 편할 수도 있다. 역사는 되풀이되는 걸까?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후반 당시 야당인 새누리당에게 ‘연정(聯政)’을 제안했다. 이때는 한나라당의 거부로 무산됐다. 이제는 박 대통령이 야권에 협조를 구해야 할 처지다. 서성교 바른정치연구소장은 “참여정부 시절의 연정 제안은 진보와 보수의 결합이지만, 지금의 새누리당과 안철수 대표는 보수의 범주에서는 겹치는 부분도 있다”면서 “법안 등 각종 원내 현안 처리과정에서 절충의 여지가 넓은 편”이라고 말했다.

정당간 협업이 현실화한다면 캐스팅보트를 쥔 안 대표의 위상과 역할이 더욱 부각된다. 이 과정에서 안철수 대망론도 탄력을 받게 된다. 진보정권에서 고위 관료를 지낸 동교동계 인사는 이와 관련해 “향후 정계재편 과정에서 다당제가 심화된다면 TK 중심의 박 대통령 세력과 호남 중심의 안철수 정당이 영호남 화합 차원의 연대를 모색하지 않는다는 법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안 대표가 지역화합, 동서통합의 연결고리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나아가 “안 대표가 정당별, 정책별 선택적 제휴를 통해 국익을 도모한다면 보수층에서도 그의 호감도가 올라갈 수 있다”고 이 인사는 말했다. 3당 체제의 출현으로 내년 대선 구도가 오리무중의 상황으로 빠져 든다.

-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201605호 (2016.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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