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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특집 | 인물초점] 친박계와 동거에 들어갈 유승민의 미래 

발광체인지, 반사체인지 입증할 때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친박계의 ‘왕 따돌림’ 이겨내고 지지율 올리는 게 과제…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당권에 도전하지는 않을 듯

▎20대 총선 대구 동을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5번 기호를 받은 유승민 의원
유승민 의원(무소속, 대구 동을)은 20대 총선 국면에서 언론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은 정치인으로 손꼽힌다. 청와대와 친박계의 온갖 견제를 다 뚫고 20대 국회 입성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결국 실패한 유 의원 솎아내기에 올인한 대가로 총선 참패라는 성적표를 손에 쥔 셈이다.

그가 새누리당에 복귀한다. 원내 제 1당 지위 확보가 시급한 새누리당은 여권 성향 무소속 당선자들의 복당을 허용키로 했고, 이들에 묻혀 당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당의 주류인 친박계 핵심부는 유 의원이 총선을 망쳤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유 의원 공천 배제의 총대를 맨 이한구 의원은 총선 직후인 4월 15일 “유 의원이 명예롭게 물러날 수 있게 불출마선언 등을 할 시간을 주며 기다렸다”며 “만일 그때 유 의원이 결단을 내렸다면 정부도, 당도, 자신도 좋았을 텐데 왜 끝까지 출마를 고집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여권 총체적 위기상황의 진원지로 유 의원을 지목한 것이다. 당이 유 의원을 강압적으로 배제하기에 앞서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주저앉아주는 모양새를 기대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탈당 후 무소속으로 당선돼 돌아오는 유 의원이 달가울 리 없다. 그렇다고 유 의원만 쏙 빼고 복당을 허락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치 컨설팅 민의 박성민 대표는 “총선 결과 대구·경북의 권력은 유 의원에게 넘어가는 것 같다”면서 “새누리당이 유 의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새누리당 속내를 추정했다.

그가 복당하더라도 당분간은 ‘외톨이’ 신세가 되리라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새누리당은 여전히 친박계가 다수이자 주류를 이룬다. 주류의 눈밖에 난 그가 평소 표방해온 따뜻한 보수, 개혁적 보수로 당을 바꾸는 작업도 한계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유 의원은 총선 직후 기자회견에서 “새누리당 안에도 나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많다”고 ‘외로운 섬’으로 고립되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 그는 이에 더해 “새누리당 전체가 변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생각한다”면서 “이 부분에서는 누가 몇 명이 함께 하느냐를 걱정하지 않는다”고 명분과 원칙에 입각해 대처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해 유 의원과 정치적 행보를 같이해온 새누리당 의원은 “유 의원은 보수의 개혁과 당내 민주화 이 두 가지 관점에서 새누리당의 길을 찾는다”고 말했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이대로 가선 안 된다는 원칙이 있고 그 틀에서 역할을 하는 게 박 대통령을 돕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선거운동 기간 내내 박 대통령을 걸고 넘어지거나 친박계 전체를 싸잡아 공격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새누리당은 저를 버렸지만 용서하겠다”고 화해를 청했다. 나아가 “앞으로 박 대통령을 똑바로 모시는 ‘정박(正朴)’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정박(正朴) 국회의원’이라는 표현은 유세과정에서 만난 고령의 노인이 메모지에 손수 적어 온 문구라고 유 의원은 전했다.

관심 초점에서 벗어나자 지지율도 하락


▎4월 13일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는 유승민 의원(오른쪽). 지지자들이 유 의원의 압도적인 당선 예측을 기뻐했지만 그의 표정은 담담하다.
당내 주류의 견제와 냉대 속에서 목표를 성취하자면 지지율에 기반한 존재감을 확보해야 한다. 총선에서 생존함으로써 대구·경북의 미래 주자로서의 입지를 다졌다고는 하나 보수 진영 전체의 동의를 얻었다고는 보기 어렵다.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지만 기반은 취약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총선 투표(4월 13일) 마감 직후에 실시한 여야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도 유 의원 지지도는 하락세를 보였다. 유 의원은 4.7%의 지지를 얻어 전체 6위를 차지했다. 이는 같은 기관의 1주일 전 조사결과(4.8%)와 비슷하지만, 새누리당 탈당 이후인 3월 28~30일의 조사결과(7.1%)보다는 확연히 줄어든 수치다.

리얼미터는 지역언론과 제휴해 대구·경북 여론 추이를 면밀히 조사했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유 의원에 대한 대구·경북 주민들의 정서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와 별개로 인간 유승민에 대한 동정심, 정치인 유승민에 대한 기대감 등이 혼재돼 있다”고 풀이했다. 또 유 의원의 중앙 무대에서의 영향력 확장 가능성에 대해서는 “유승민 계보는 다 낙선하고, 전국 지지율도 오르지 못하고 소폭 하락했다”며 “전체 추이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유 의원의 지지율은 박 대통령 및 친박계와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점에서는 고점을 찍었다가 새누리당 대구 동을 무공천으로 유 의원의 당선이 기정사실화하면서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총선이 시작하기도 전에 싱거워진 유 의원의 선거는 관심권에서 벗어났다. 덩달아 지지율도 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유 의원은 지난해 4월 원내대표 취임 후 첫 국회 대표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증세 없는 복지’를 주장해온 박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대통령과 집권당의 오기 정치에 핍박받는 정치인으로 비치면서 동정여론도 일었다. 박 대통령을 비롯한 친박계의 사퇴 압력 공세에 노출된 게 일약 대선주자 반열에 오른 한 계기가 된 셈이다.

친박계, ‘이슈를 제공하지 않겠다’


▎3월 30일 대구시 동화사 주지 능담 효광 종사 진산식(취임법회)에 참석한 최경환 의원과 유승민 의원이 악수하고 있다.
당시 야당에서조차 “박 대통령이 유승민 원내대표를 일부러 키워주려고 작정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며 고개를 갸웃할 정도였다. 대구 현지에서도 박 대통령과의 갈등이 유 의원이 도약하는 디딤돌이 됐다는 견해가 나온다. 대구·경북녹색연합 이재혁 공동대표는 “유 의원은 지난해 4월 대통령과 맞서기 전에는 인기가 그리 높다고 볼 수 없는 정치인”이라면서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대응을 잘 못하는 바람에 유 의원의 대중적 인기가 치솟았다”고 반사이익론을 폈다.

이제 새누리당 내 친박계는 유 의원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를 깨우쳤을 법하다. 친박계의 한 분석가는 “그가 당에 복귀하더라도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겠느냐”면서 “본인의 평소 스타일이나 친박계의 대응양식으로 봐서는 당분간 양측이 부닥칠 일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친박계가 유 의원을 애써 ‘무시’ 내지는 ‘방관’해 이슈를 만들지 않으리라는 분석이다.

유 의원도 총선 국면에서 재미만 본 건 아니다. 유 의원을 따르다 컷오프(Cut off, 공천 배제)된 현역 의원 중에는 무소속 출마 권유를 뿌리치며 유 의원과 거리를 두는 이도 없지 않았다. 유 의원이 동료들이 무참하게 ‘공천 학살’당하는 국면에서도 정면 대응하지 않고 잠행한 데 따른 서운함의 표출이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다들 말 못할 속사정이야 있겠지만 정치적 반대파에게 유사시 생사를 같이하기 어려운 정치인이라는 공세의 빌미를 준 건 사실이다.

정치인의 힘은 세력에서 나온다. 그가 주변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끌어모으느냐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그의 측근 의원은 “당장 살아야 하니까 다른 줄에 서거나 정치적 견해를 상당부분 같이하는 의원들이 당에도 있다”면서 “유 의원이 옳았다는 건 총선 결과가 말해주므로 동조 세력이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작 유 의원은 새누리당 입당 후의 행보에 대해 말을 아낀다. 새누리당 전당대회가 열려도 당권에 도전할 일은 없으리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유 의원은 정권과의 불화에 접어들기 전에는 자기 입장이 분명했고, 현안에 대한 이해력도 뛰어났다. 하지만 선거기간 중에 만난 유 의원은 너무 분명하고 솔직하게 말할수록 불편해진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앞으로도 말을 아낄 가능성이 점쳐지는 이유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급박하게 돌아간다. 총선 패배 후 비상이 걸렸다. 당 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 등 지도부가 사퇴하는 통에 비대위 체제로 굴러간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리더십을 세우고 헝클어진 전열을 재정비하는 것도 큰 숙제다. 야심을 가진 정치인이라면 이렇게 큰 판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 비대위 활동, 원내대표 선출, 전당대회 개최 등 당의 운명을 좌우할 행사에서 그가 어떤 역할을 할 지 관심사다. 친박계의 한 인사는 “유 의원은 이제 독자적으로 빛을 내는 발광체(發光體)인지, 아니면 반사체(反射體)에 불과한지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201605호 (2016.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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