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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한계 부딪힌 개성공단 입주기업, 근로자들의 아우성 

“생색내기용 정부 지원은 그만!”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유동자산 국가 인수 등 특단 대책 없으면 기업 연쇄 부도 우려...기본 생계 유지 못해 가정 파괴되고 자살 기도하는 가장도 나와

▎3월 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중소기업중앙회 그랜드볼룸에서 개성공단근로자협의회 발대식이 열렸다.
올 봄 일부 중·고교 입학식에는 교복을 구하지 못한 신입생들이 사복을 입고 등교하는 이른바 ‘교복 대란’이 벌어졌다. 그 이유가 황당했다. 교복품귀 현상이 벌어진 것은 뜻밖에도 지난 2월 10일 개성공단의 폐쇄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전국의 중·고교에 교복을 공급키로 한 교복 메이커들은 본의 아니게 계약 불이행이라는 사태에 직면했다. 덩달아 이들 교복 메이커들에 완제품을 납품하던 개성공단 입주기업들도 교복의 생산과 반출이 중단된 탓에 납기를 채우지 못한 책임을 떠안게 됐다. 개성공단 폐쇄로 인해 교복 생산업체-교복 메이커-학생들이 맞물려 교복 품귀 현상을 빚은 것이다.

서울 영등포 소재 의류제조업체인 ㈜만선도 이 사태에 한 몫했다. 만선은 원청업체(바이어)들에게서 원단을 공급받아 교복을 납품하는 개성공단 입주기업이다. 개성공단이 갑작스레 문을 닫는 바람에 8만 벌에 달하는 교복 완제품을 고스란히 두고 나왔다. 제품 원가만 60억원을 웃돈다며 성현상 만선 대표는 한숨을 내쉬었다.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성 대표는 물품을 주문한 바이어들에게 납품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책임까지 져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의 입장에 선 셈이다. 보통 만선에 교복 생산을 주문하는 바이어들은 원단과 함께 납기를 제시한다. 개성공단 폐쇄로 납품이 중단되면서 원단 대금 결제를 촉구하는 내용증명서가 5통이나 성 대표에게 날아들었다. 이중에는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바이어들이 보낸 청구서도 있었다. 교복을 납품하지 못했으니 미리 가져간 원단 대금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원청업체들이 청구한 금액이 30억원에 달했다. 교복 완제품과 원자재가 모두 개성에 묶인 만선 입장에서는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피해자면서 가해자로 내몰린 상황


▎개성공단 내 공장에서 작업 중인 북한 근로자들.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측 근로자는 5만 명을 웃돌았다.
성 대표는 “아마 대금을 결제하지 못하면 십중팔구 소송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정부든 어디든 특단의 조치를 해주지 않는다면 만선은 파산이 우려된다”고 호소했다. “일단은 살아 남는 게 우선이지만, 용케 생존한다고 해도 기업 입장에서 생명줄 같은 원청업체와 소송으로 간다면 향후 재기도 막막할 따름이다.”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중단(2월 10일)에 이은 북측의 개성공단 남측 인원 추방(2월11일)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조치에 개성공단 기업인들과 근로자들은 하나같이 ‘멘붕상태’에 빠져들었다. 그 충격파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뼈아프다. 기업인들은 만선처럼 유무형의 재산손실과 거래처와의 갈등을 겪고, 근로자들은 권고사직에 따른 생활고에 시달린다고 개성 공업지구지원재단 관계자는 전했다.

개성공단기업협회(회장 정기섭)에 따르면 개성공단 입주 업체는 123개. 이들과 함께 일하는 협력업체는 5000~6000개를 헤아린다. 종사자 수는 6만~7만 명에 이른다. 123개 입주기업과 소속 근로자 2000명은 공단 폐쇄의 직격탄을 맞는다. 입주기업 123곳의 피해규모가 고정자산(설비투자 등) 5688억원, 유동자산(재고품 및 원부자재 등) 2464억원에 달했다. 영업을 못해 생기는 미래 손실은 포함되지 않은 금액이라고 협회 측은 설명했다. 여기에다 원청업체의 클레임까지 더해진다면 손실의 폭은 더 커진다.

남북 경제협력사업은 안보 정세에 영향을 크게 받기에 정부나 입주기업 모두 안전판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그래서 경영외적인 문제로 손실이 발생할 경우 손실의 일부를 남북협력기금에서 보상해주는 제도가 바로 경제협력사업보험(경협보험)과 교역보험이다. 통일부로부터 남북 협력기금 운용을 위임받은 수출입은행이 담당하는 공적보험이다.

개성공단 입주기업 중 경협보험에 가입한 기업은 개성공단 고정자산의 90%까지 70억원 한도로 보장을 받는다. 정부는 경협보험금 지급액이 최대 33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유동자산에 대한 피해를 보전할 방도가 막막하다. 유동자산은 교역보험이 보상하지만 교역보험에 가입한 입주기업은 단 한 곳도 없다. 개성공단에 묶인 유동자산 보전 방안을 놓고 정부와 기업이 신경전을 벌이는 배경이다.

개성공단기업협회는 정부 발표와 달리 현장에서는 보상이 턱없이 미흡하다고 전한다. 경협보험이 고정자산의 90%까지 보상한다고 하지만 이는 최대치를 말할 뿐 실보상율은 50% 안팎에 그친다는 주장도 했다. 정부가 말하는 보상액 3300억원 중 정부와 공공 투자액을 제외한 민간 부문은 2300억~2400억원 대에 그친다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선 개성에 묶여 있는 유동자산 5688억원까지 더하면 전체 보상률이 50%에도 못 미친다는 계산이 나온다는 것.

“이것도 영업손실이나 향후 발생한 손해배상 비용은 빠진 것”이라고 개성공단기업협회 김서진 상무는 강조했다. “정부는 유동자산 피해를 정부 예산으로 보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실행 의지는 알 길이 없다. 지원 의지가 담겼다기보다는 국민정서를 의식한 제스처가 아닌가 한다. 개성에 동결된 재고품과 원부자재에 대한 지원책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연쇄 도산 등 심각한 결과를 빚을 수도 있다.”

잇따를 손배소송 때문에 걱정이 태산


▎2013년 당시 개성공단 내 신발업체인 삼덕통상의 근로자들이 단체로 체조를 하고 있다.
부산 강서구에 있는 신발제조업체 삼덕통상의 문창섭 회장도 고민에 빠져 있다. 삼덕통상은 개성공단에서 근로자 2800명을 고용해 연간 300만 켤레의 신발 반제품을 생산해온 개성공단 내 최대 기업이다. 개성공단에서 만든 신발 반제품 국내 반입이 막히면서 부산 공장의 생산라인도 가동을 멈췄다가 최근에서야 부산 지역에서 일부 반제품을 조달해 조업 재개를 모색한다. 또 금융권으로부터 투자자금을 지원받아 베트남에 대체 공장 건립을 추진 중이나 갈 길이 멀다는 입장이다.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당장 유동성이 문제다.

개성공단기업협회 2대 회장을 역임한 문창섭 삼덕통상 회장은 “지금은 말을 아끼지만 때가 되면 회사에 관해 정리된 입장을 밝힐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그는 “4월을 넘기면서 뭔가 방안이 나오길 기대하지만 그도 안 되면 또 다른 결심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며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에 주문을 내는 원청업체(바이어)들도 피해를 입긴 마찬가지다. 원청업체란 개성공단 입주기업에 주문자상표부착(OEM) 외주를 맡기는 회사로 대기업, 중견기업들로부터 중소기업까지 다양하다. 개성공단 폐쇄 이후 입주기업으로부터 납품을 제때 받지 못해 국내외 거래선에 물량을 대지 못하는 경우가 속출한다. 국내 다른 기업이나 해외 생산설비로 납품물량을 돌리는 과정에서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개성공단에서 납품받는 물량을 대체할 만한 업체를 서둘러서 찾자면 인건비, 생산비가 오르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수요는 그대로인데 개성공단이라는 공급처가 사라짐으로써 나머지 공급처의 몸값은 치솟게 마련이다. 원청업체는 이런 추가 비용이나 납기 도과에 따른 책임, 거래선과의 신뢰관계 훼손 등 유·무형의 손실을 떠안는다. 원청업체들은 정부 눈치와 여론의 동향을 살피느라 당장 행동에 나서지는 않더라도 언젠가는 개성공단 입주기업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게 될 것이라는 게 개성공단기업협회측의 우려다.

원청업체-개성공단 입주기업-협력업체의 산업 생태계 전반에 피해가 발생하고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개성공단기업협회는 “7개월간 공단 가동이 중단된 2013년에도 원청업체들이 줄줄이 입주기업에 손해 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면서 “거래를 유지하고자 원청업체의 요구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수용하는 기업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기업 관계자들이 안타까워하는 대목은 이른바 사향산업 생태계가 이번 개성공단 폐쇄로 인해 아예 자취를 감출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봉제산업은 인건비 상승으로 국내에서는 이미 설 자리를 거의 잃었는데, 저임금 노동력이 풍부한 개성공단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은 케이스에 해당한다. 국내에서 봉제공장을 차리는 일은 채산성이 맞지 않아 대부분 해외로 빠져나갔다가 다시 개성공단에 둥지를 튼 경우가 많다. 가까스로 이어진 명맥이 완전히 끊어질 운명에 처할 수 있다는 게 이들 기업측의 설명이다. 개성공단기업 협회에 따르면 입주기업 123 곳 중 절반이 넘는 70개가량이 봉제 관련 기업이다. 이들로 인해 남측의 크고 작은 협력업체들이 하나의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했다고 한다. 협회 관계자는 “개성공단은 봉제뿐만 아니라 여타 노동집약 산업의 재생 모델인데 참으로 안타깝다”면서 “이는 국가적으로 큰 손실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의류제조업체인 만선의 성현상 대표는 “정부가 국내 봉제·의류 산업 보호를 등한시한다면 명품을 제외한 모든 의류 산업이 장기적으로 소멸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개성공단 제품 무단 유출? 북한이 설마”


▎구글 어스에 잡힌 북한 개성공단의 고해상도 위성사진.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애를 태우게 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개성공단의 사정에 감감한 상황에서 가끔씩 나오는 북한 발(發) 보도가 마음을 더욱 조리게 한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이 현지에 남겨놓고 온 완제품이 빼돌려져 북한에서 유통·판매된다는 보도가 대표적이다. 모 공중파 방송은 기업들이 미처 챙겨서 가져오지 못한 의류, 구두 같은 제품이 평양과 지방의 백화점과 상점 등에서 유통된다는 뉴스를 내보냈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도 양말과 신발 등 개성공단 제품들이 장마당에서 판매되는 것을 목격했다는 북한 주민의 증언을 소개한 바 있다. 북한이 3월 10일 개성공단 내 남측 자산을 완전히 청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개성공단 내 완제품과 중간재가 유출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하겠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인 나인JIT은 여성 속옷과 스포츠웨어를 생산해왔다. 이 기업이 개성공단에 남겨둔 재고품과 원부자재 가액은 수십억 원 대에 이른다. 나인JIT의 이희건 대표는 개성공단 폐쇄 이후 입주기업 제품들이 북한에서 유통된다는 보도에 대해 “북한발 소문은 진위를 확인할 방도가 없지만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유통기한이 정해진 식품이라면 어차피 버려질 것이어서 처분하는 데 반대하지 않지만 의류나 신발은 사정이 좀 다르다. 계절을 넘긴 이월상품으로 제값을 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식품처럼 버려질 것이 아니다. 그는 개성공단 내에서 생산한 의류, 신발류가 북한 내에서 무단 유통된다는 언론 보도를 접하고 나서 “제품을 ‘땡처리(재고품을 헐값으로 급히 판매)’하는 한이 있어도 자산의 일부라도 건져야 하는 입장”이라며 “북한이 그 제품들을 내다 판다면 손해는 고스란히 우리 같은 업체들이 떠안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성공단기업협회 김서진 상무는 개성공단 제품이 북한 시장에서 유통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예상했다. 개성공단에는 북측에서 개성시인민위원회, 군당국,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등 여러 기관이 얽혀 있어 평양 당국의 지시가 없이는 물품의 무단반출이 어려운 구조다. 더구나 북한은 개성공단을 동결하고 청산하겠다고 밝힌 이상 북측 관련법에 따라 청산절차를 밟아야 한다. 북한은 3월 10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담화를 통해 “북남간 경제협력 및 교류사업과 관련한 모든 합의들을 무효로 선포하고 남측 기업들과 관계 기관의 모든 자산을 완전히 청산해버릴 것”이라고 밝혔다.

김 상무는 이와 관련해 “우리가 알기로는 남측 정부 자산은 압수되지만 민간 자산은 지금도 동결된 상태”라며 “압수가 아닌 동결 상태에서 물품을 빼돌리는 행위는 심각한 사안으로 전적으로 북한이 배상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면서 이들 보도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북한도 어쨌든 국가라고 봤을 때 물품을 빼돌리는 건 국가가 민간의 자산을 도둑질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개성공단에는 북측의 여러 기관이 관여하고 있어 크로스체킹 시스템이 작동한다고 본다. 개성공단 상품이 북한 안에서 이미 유통된다는 소식통의 제보 내용은 신뢰하기 어렵다.”

개성공단기업협회는 개성공단 제품이 무단 유통될 가능성을 낮게 보는 두 가지의 정황을 제시하기도 했다. 첫째, 지난 2013년 상반기에 개성공단 가동이 일시 중단됐을 당시에는 단 한 건의 제품 유출도 없었다는 점이다. 둘째,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공간 주변에 울타리가 설치돼 있어 출입구 외엔 왕래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협회에서는 설령 개성공단 상품이 북한에 유통된다 하더라도 진품이 아닌 짝퉁일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둔다. 같은 상품이라도 중국산보다는 남한산(개성공단 제품)을 더 쳐주는 현실에서 중국산이 개성공단 상품으로 둔갑했으리란 추론이다. 김 상무는 “중국산을 개성공단 제품이라고 해도 누가 진위를 알겠느냐”며 “북한에서는 남한 제품이 더 비싼 가격에 팔린다”고 전했다.

개성공단이 막히자 기업들은 백방으로 뛰며 자구노력을 펼친다. 개성공단을 대체할 해외 생산기지 확보에도 나선다. 4월초엔 개성공단기업협회 소속 일부 기업이 베트남을 찾아갔다. 베트남 같은 제3국에서라도 조업을 재개하기 위해서다. 비싼 인건비 때문에 국내 생산은 아예 포기하고 노임이 비교적 싼 동남아로 눈길을 돌리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이희건 대표는 “급한 대로 해외 생산에 매달리지만 세계 어디를 눈 씻고 봐도 개성공단만 한 곳을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개성공단은 입지적으로 기동성·접근성이 뛰어난 데다 근로자들의 경우도 언어와 문화에서 큰 차이가 없어 소통 측면에서 외국과 비교 자체가 안 된다. 얼굴 표정만 봐도 근로자의 기분을 읽어낼 수 있고 이직률도 낮아 기술과 품질이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개성공단 중단은 고정·유동 자산의 몰수라는 재산적 측면 외에 이 같은 최적의 생산 환경을 포기해야 하는 무형의 손실을 낳았다.”

영리를 최우선시하는 기업인 입장에선 지리적으로 가깝고 비용적으로도 효율적인 개성공단을 놔두고 제 3국에서 공장부지와 근로자들을 찾아나서야 하는 것은 속이 탈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 대표는 “아직도 개성공단이 다시 열린다면 들어가겠다는 기업이 많다”고 주변의 분위기를 전했다.

나인JIT도 생산라인의 95%를 개성공단에 두었다. 나머지 5%에 불과한 국내 생산라인으로는 납품 물량을 대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해외 생산라인을 찾아서라도 물량을 맞춰야 할 처지다. 하지만 해외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할 경우 20~30%의 추가 비용을 발생하게 된다고 이 대표는 추정했다. 이런 부담을 안고서라도 납기를 맞추는 게 개성공단 입주 기업이 당면한 현실이기도 하다. 원청업체로부터 발주가 끊기면 개성공단의 재개 여부를 떠나 기업의 회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생산라인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쏟는 것이다. 나인JIT은 과거 해외생산 경험이 있어 이런 환경의 급변이 낯설지만은 않다. 해외 사업의 인맥과 노하우를 활용해 대처가 가능하지만 해외생산 경험이 전무한 업체들은 막막할 따름이다. 용케 해외에서 생산라인을 확보했다고 해도 제품의 품질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입주기업 근로자 1600명도 ‘안절부절’


▎남북경협의 상징으로 2007년부터 본격 가동돼온 개성공단 전경.
입주기업뿐 아니라 근로자들도 요즘 죽을 맛이다. 한때 개성공단 입주기업 근로자의 80%가 해고됐다고 알려졌다. 3월 말 개성공단근로자협의회가 잠정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입주기업 근로자 1600명 중 재직 근로자가 900여 명, 유급휴직자가 130여 명, 무급 휴직이 210여 명, 권고휴직 80여명, 자진 퇴사가 80명에 달했다고 한다. 입주기업들의 사정이 호전되지 않으면 직장을 떠나는 근로자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마련이다. 노동계에 따르면 개성공단 입주기업 근로자의 80%가 권고사직 대상으로 분류된다는 얘기도 있다.

이 과정에서 생각지도 않은 비난의 화살이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에 쏟아졌다. ㈜녹색섬유의 박용만 대표는 “공단 폐쇄로 가뜩이나 힘든 기업인들이 이제는 악덕기업주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2007년부터 개성공단에서 섬유제품을 생산해온 녹색섬유는 2014년에는 공장을 증축하는 등 개성공단에 올인하다시피 했다. 기업의 운명이 경각에 달린 마당에 고통을 근로자들에게 전가한다는 비판은 참기 어렵다는 게 박 대표의 하소연이었다. 근로자와 기업주 모두 고통 지수가 증가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3월 말 개성공단 근로자 고용안정을 위한 휴업·휴직 수당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이 직원을 해고하지 않고 고용을 유지하면 기존의 고용보험의 고용유지지원금(월 129만원)에다 남북협력기금에서 월 65만원을 더 지원한다는 게 골자다.

근로자들은 두 가지 측면에서 불만을 쏟아낸다. 우선, 이미 해고된 근로자들은 이러한 지원책에서 제외된다는 점이다. 어떤 사유로든 회사를 떠난 근로자들에겐 정부 지원책은 그림의 떡이다. 해고된 근로자는 복직을 해야 고용유지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이들 해고 근로자들의 복직을 반기지 않는다. 매출이 줄거나 거의 없는 상황에서 근로자에게 월 15만원가량 들어가는 4대 보험금도 짐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현재의 지원 액수가 턱없이 낮다는 것이다. 입주기업들의 근로자들은 상당수가 40~50대 가장이다. 월 300~400만원 이상을 벌던 근로자가 20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가계를 이끌어가기는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개성공단근로자협의회는 정부가 내놓는 대책이 “국민 여론을 무마하고 근로자들을 지치게 만들어 목소리를 잦아들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비난했다. 협의회는 이미 지급능력을 상실한 기업주를 대신해 정부가 근로자들의 보상을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용환 개성공단근로자협의회위원장은 “정부의 정치적 결정으로 문닫은 개성공단 입주기업은 근로자 입장에서는 평생직장의 개념이 강했다”며 “과거 공공기관 및 조선산업 구조조정의 경우처럼 입주기업 퇴직자에게는 2년 치의 급여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입주기업 근로자들의 사정은 한계상황으로 내몰린다. 가정을 꾸리고 씀씀이가 정해진 이들이 200만원이 채 안 되는 고용유지지원금 등으로 연명하자면 극도로 내핍생활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개성공단 전면 가동중단이 정부의 정치적 결정임을 백분 수긍하더라도 정부에 의해 생존권을 박탈당했다는 분노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30대 중반 미혼여성 근로자의 분노

개성공단 유통기업인 A업체에서 영업과 총무파트 사무원으로 일하다 권고사직 당한 K씨(여·47). 그는 4월 8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개성공단 근로자 피해보상집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정부 정책을 강하게 성토했다. 정부가 내놓은 실직자 지원방안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고 목청을 높였다. 정부는 실직자의 생계지원을 위해 직업훈련 생계비를 빌려주기로 했다. 1인당 1000만원 한도 내에서 월 100만원 자금을 연리 1%의 저금리에 대출한다는 내용이다.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던 K씨는 이 제도를 이용하고자 은행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매달 일정기간 재취업 교육을 그것도 1년 동안 받아야만 돈을 빌려준다는 말에 허탈감을 느낀 채 뒤돌아서야 했다고 한다. K씨는 “일자리를 알아보기에 급급한 처지에 100만원 빌리자고 매달 재취업 교육을 받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정부의 긴급생계비 지원도 나같이 실업급여를 받는 사람에겐 해당되지 않는다는 답변에는 울화통이 터졌다”면서 다음과 같이 심정을 토로했다.

“정부는 실효성 없는 대책을 나열하면서 근로자 맞춤형 지원방안이라고 홍보한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주변에서는 지원도 많은데 뭔 엄살이냐고 나를 타박한다. 결국 정부가 국민 여론을 무마하고자 개성공단 근로자들을 기만하고 있는 것 아니냐.”

K씨는 칠순을 바라보는 모친과 단 둘이 사는 미혼여성 가장이다. 공단이 문닫기 전에는 한달 240만원 가량의 월급으로 생활비와 모친의 의료비를 충당하면서 그럭저럭 생계를 꾸려왔다. 당뇨병으로 고생하는 모친은 합병증으로 신장마저 나빠졌다. 엎친 데 겹친 격으로 안구팽창 수술까지 받았지만 상태는 더욱 나빠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는 고가의 치료제와 통원비 등을 치르다 보니 생활이 말이 아니다.

개성공단이 문을 닫으면서 실직자 신세가 된 그는 퇴직금과 매달 나오는 실업 급여로 입에 풀칠을 하지만 앞날이 걱정이다. 일자리를 알아보지만 급여가 맞지 않아 선뜻 재취업도 못한다. 대부분의 회사가 월 급여 130~140만원을 제시했다. 특별한 기술 없이 경리, 총무, 사무보조원으로 일하는 여성이 받는 평균급여 수준이다.

“나 같은 사람은 어딜 가도 그 정도 밖에 못 받을 것 같은데 그 돈으로 어머니 의료비와 생활비를 도저히 감당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른다. 주야간 2교대 근무는 그나마 급여가 후한 편이지만 몸이 성치 않은 어머니를 밤에 혼자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 기가 막힌다.”

재취업을 위한 몇 곳에서 제시한 급여 130~140만원은 그가 6년 동안 일했던 전 직장의 초봉과 비슷한 수준이다. 자신의 급여가 한순간에 6년 전의 신입사원 수준으로 줄었다는 생각에 눈앞이 아찔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개성공단 중단에 따른 A업체의 구조조정은 K씨의 경제력을 반 토막 내고 만 것이다.

생활 자금난 겪으며 극단적인 선택하기도


▎지난 3월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직원들이 개성공단 중단에 따른 기업 실태 신고서의 접수 업무를 보고 있다.
근로자 가운데는 어려워진 상황을 비관해 자살을 기도한 사람도 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에 식자재를 공급하며 식당을 운영해왔던 B업체 대표 C씨는 3월 하순 다량의 수면제와 신경안정제 등을 복용하고 목숨을 끊고자 했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 이후 일터를 상실한 데다 극도의 자금 압박에 시달려온 것이 이유였다. 다행스럽게 부인에게 일찍 발견돼 경기도 안산의 한 병원에서 응급조치를 받은 뒤 목숨을 건졌지만, 그 뒤로는 대인기피증 등으로 아예 집밖을 나서질 않게 됐다.

연매출 15억원에다 종업원 4~5명을 둔 이 업체는 국내에 별도의 사업기반 없이 개성공단에 올인했다. 개성공단 폐쇄 이후 기업 활동이 전면 중단됐다. 이 업체에 외상으로 물품을 대준 거래처로부터 대금을 갚을 수 있느냐는 문의가 줄을 이었다. 반면,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에서 받을 돈은 끊겨 자금 흐름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직원 월급에다 사무실 경비, 각종 대금 결제 등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C씨는 평소 우울증 증세로 복용하던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한 움큼씩 삼키기에 이르렀다. 회복 후에도 대외적인 접촉을 기피하던 C씨는 <월간중앙>과의 전화 통화에서 “사업을 지속할 수 없는 처지인데다 집에 돈 한 푼 갖다 주지 못한다는 절망감이 엄습했다”고 심경을 피력했다.(아래 박스기사 참조)

이처럼 개성공단 기업주와 근로자 모두 일반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고충을 겪고 있지만 뚜렷한 해법이 없어 보인다. 앞서 살펴봤듯이 경협보험의 의한 피해 보전에는 한계가 있다.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결과를 낙관하지 못한다. 과거 남북경협사업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5·24 조치(천안함 폭침에 따른 대북 제재)’ 이후 대북사업체들의 피해가 발생했더라도 정부는 손해배상, 손실보상의 책임이 없다고 판시한 바 있기 때문이다. 피해보상 특별법 제정 또한 통일부가 “기업 피해에 대한 신속한 지원을 어렵게 할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개성공단 자산을 모두 사들여 국유재산으로 관리하는 게 타당하다는 의견이 대두됐다. 대한변협 남북교류협력소위원장으로 활동 중인 한명섭 변호사는 3월 23일 열린 ‘개성공단포럼’에서 정부의 개성공단 자산 전량 인수 방안을 제시했다. 한 변호사는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은 대북 정책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것으로 봐야 하므로 입주기업의 손실은 정부가 보상을 해주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상당수 개성공단 기업들도 정부가 북한 땅에 묶인 자산을 사들여 기업들의 활로를 열어주기를 바란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경협보험을 통해 고정자산 피해는 일부 보상받지만 유동자산은 교역보험에 가입한 기업이 없어 보상길이 막혀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입주기업피해 실태 조사가 끝나는 4·13 총선 이후 적정 수준의 유동자산 피해보전 기준을 마련한다는 방침으로 알려졌다.

-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박스기사] 인터뷰 | 개성공단 폐쇄 후 음독자살 기도 유통업체 대표 C씨 - “돈줄이 막히니 숨을 쉴 수 없었다”

위 세척후에도 간 손상이 심했다던데 어떤가?

“몸은 많이 좋아졌다. 사람 만나는 게 힘들어 외출이나 외부인과의 전화 통화를 피하는 편이다.”

왜 그런 선택을 했나?

“먹고 살려고 시작한 사업이 느닷없이 중단되면서 절망감과 분노를 누를 수 없었다.”

개성공단에서는 어떤 일을 했나?

“개성공단 남측 주재원들이 이용하는 식당(180여 평)을 운영했다. 한국인이 이용하는 식당은 두 곳인데 우리 식당이 훨씬 규모가 컸다. 또 북측 근로자들에게 지급되던 떡국, 냉면 같은 물품도 공급했다.”

공단 폐쇄 후 어떤 일이 벌어졌나?

“미래가 불투명하기도 했지만 현실적으로 돈줄이 꽉 막혔다. 식당업 하면 관련 업체들에게서 외상으로 식자재를 사들이게 된다. 공단이 계속 가동되면 외상을 안고 가다가도 문을 닫는다니까 사방에서 빚독촉이 들어왔다. 반면 입주기업들의 대금 결제는 차일피일 미뤄졌다. 종업원 인건비, 운영 경비, 창고 임대료 등 당장 돈 나갈 데는 많은데…. 평소의 우울증까지 겹쳐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음독 사건을 청와대 등 정부에서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고 하던데.

“정부 쪽에서 두 번 다녀갔다. 오간 얘기를 있는 그대로 다 못하겠다.”

2013년 개성공단 중단 때 우울증 생겨

개성공단은 북한의 근로자 철수 조치로 2013년 4월부터 9월까지 중단된 바 있다. 이때도 공단에서 같은 사업을 하던 C씨는 우울증을 얻어 최근까지도 신경안정제, 수면제 등에 의지했다.

개성공단이 다시 열린다면 들어가겠나?

“잘 모르겠다. 개성공단 입주기업 상당수가 베트남 등 인건비가 저렴한 나라로 공장을 옮긴다고 들었다. 대기업들도 이제 개성공단 입주기업에게서 납품받는 걸 꺼릴지도 모른다. 공단 가동이 저렇게 들쭉날쭉한데 누가 좋아하겠나.”

정부가 여러 지원책을 내놓지 않나?

“저리로 자금을 빌려준다고 하던데 그게 나중에 다 빚으로 쌓인다. 실비 보상을 해주거나 뭔가 실효성 있는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재기 계획은?

“내 입장에서는 국내 사업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설령 개성공단이 정상화한다고 해도 적어도 1년 이상이 걸릴 텐데 앞으로 어떻게 버틸지 눈앞이 캄캄할 따름이다. 오래 몸담은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난 심정이다.”

201605호 (2016.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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