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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차세대 자동차 경연장, 2016 베이징모터쇼를 가다 

첨단 무장한 ‘중국차 굴기(倔起)’에 세계가 ‘깜짝’ 

베이징=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전기·자율주행 등 차세대 자동차 대거 선보이고 대형화 경향 뚜렷해져… ‘카피캣’ 이미지 털어낸 중국차 업체들 혁신적 모델로 경쟁력 다진다

▎‘2016 베이징국제모터쇼’는 중국 자동차에 대한 세계인의 선입견을 털어버리는 계기가 됐다. 중국은 신기술로 무장한 첨단 친환경 자동차들을 선보이며 기술력을 과시했다. 중국 치루이(Cherya)자동차의 전기차 콘셉트카 FV2030(왼쪽)과 무사고 자율주행 2000㎞에 성공한 창안자동차의 무인차 루이청(오른쪽).
4월 25일부터 5월 4일까지 11일간 베이징 국제전람센터에서 열린 ‘2016 베이징모터쇼’는 첨단기술로 무장한 차세대 자동차들의 경연장이었다. 중국 로컬 브랜드의 성장세도 두드러졌다. ‘이노베이션 투 트랜스포메이션(Innovation to Transformation: 변화를 위한 혁신)’이란 주제에 걸맞게 혁신적인 면모가 강조됐다. 모터쇼가 열린 현장에서 자동차의 미래를 가늠했다.

4월 25일 아침, 베이징 시내에서 북쪽으로 20㎞가량 떨어진 모터쇼 행사장을 향해 출발했다. 하늘은 잿빛이다. 악명 높은 스모그보다 꽃가루가 더 문제다. 봄이 되면 중국은 꽃가루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다. 가로수로 심은 포플러(楊树:양수)가 만들어낸 솜뭉치 같은 꽃가루가 함박눈처럼 바람에 날린다. 마스크를 하지 않고 잠시 바깥에 있으면 이내 목과 코가 따가울 정도다.


자동차로 40분을 달려 전시장에 도착했다. 이날은 모터쇼 행사를 언론에만 공개한다. 그런데도 입구 주변에는 일반 시민들로 붐볐다. 취재진을 안내한 가이드는 “출입증 거래가 암암리에 이뤄진다”고 귀띔했다. 금속탐지기 검사 등 엄격한 보안검사를 거쳐 행사장 안으로 들어섰다. 베이징국제전람센터는 면적 2만6000㎡로 축구장(7140㎡) 3개를 합친 것보다 넓은 규모다. 8개 구역으로 나뉜 전시장에 2500여 개의 완성차와 부품업체가 참가했다. 전시된 차량만 1179대에 달한다.

오전 9시. 서쪽 2구역에서 웅장한 음악이 터져 나왔다. 중국 토종 자동차회사인 창안자동차(長安汽車)의 발표회가 시작된 것이다. 부스 주변은 중국 현지 언론뿐만 아니라 외신 취재진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창안차의 소개 영상은 자율주행차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 회사는 4월 13일 충칭을 출발해 시안, 장저우를 거쳐 베이징모터쇼 행사장까지 2000㎞를 사고 없이 자율주행하는 데 성공했다고 이날 밝혔다. 창안차가 선보인 자율주행차는 대표 중형 세단 루이청(Raeton)을 기반으로 했다. 카메라와 레이더, 고정밀 지도 등이 탑재됐다. 보쉬와 바이두, 칭와대학교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창안차는 1862년에 설립됐다. 중국 4대 자동차 메이커로 꼽힌다. 성장세가 무섭다. 창안차가 발표한 1분기 순이익은 26억7300만 위안(약 47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16% 증가했다. 이런 실적을 반영한 듯 창안차의 발표회는 자신감과 활기가 느껴졌다. 프레젠테이션에 나선 주화룽(朱華榮) 창안차그룹 부총경리는 “루이청은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는 유일한 무인자동차”라면서 “2018년에 자율주행기술을 적용한 자동차를 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2020년까지 1000여 명의 지능형 자동차 연구인력을 모으고, 50억 위안(한화 약 8830억원)을 투자하겠다고도 밝혔다.

중국차의 변신이 무섭다. 대놓고 표절하던 ‘카피캣(copy cat)’의 오명이 언제적 얘기냐는 듯 첨단 기술과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무장한 신차를 속속 선보인다. 베이징모터쇼는 중국 자동차업체들의 자신감을 대변하는 듯했다. 안방에서 벌인 행사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모터쇼는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차린 ‘굴기(倔起)의 자축연’을 방불케 했다.

중국 업체, 세계 최초 2000㎞ 무인주행 성공


▎중타이(衆泰)자동차의 전기차 ‘E200’
중국 업체들이 내놓은 자동차의 상당수는 전기차와 스마트카였다. 비야디(BYD·比亞迪)는 7종류의 전기자동차를 대거 선보였다. 가정용 전기차 충전시설도 함께 내놨다. 비야디는 중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 1위 업체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지난해 비야디는 전기차 6만3000대를 팔아 시장 점유율 31%를 차지했다. 세계 시장 점유율로는 11%다. 이 밖에 베이치(北汽)·상치(上汽)·둥펑(東風) 등 대부분의 중국 업체가 전기차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자동차 공업’과 ‘IT산업’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가 자동차 선진국의 일만은 아니었다. 중국의 가전제품 제조업체 러에코(LeEco)는 자율주행 전기 콘셉트카 ‘러시(LeSee)’를 내놨다. 전면 그릴과 본넷을 강조하고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군더더기를 없앴다. 구체적인 스펙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목표 속도가 시속 209㎞에 이른다. 앞서 러에코는 애스턴마틴과 전기차 양산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2018년에 전기차(라피드E)를 양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라피드E는 800마력에 최대 주행 가능 거리가 321㎞로 알려졌다. 테슬라가 2017년 말에 보급할 예정인 ‘모델3’와 비교해도 별반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중국 최대 인터넷업체 바이두는 창안차와 손잡고 자율주행, 스마트카 개발에 뛰어들었다. 모터쇼를 찾은 영국 바이어는 “중국의 자동차 발전 속도가 예상을 뛰어넘는다. 이젠 ‘카피캣(copy cat)’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됐다”고 놀라워했다.

중국 업체들이 전기차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 덕분이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중국 제조 2025’ 보고서에 따르면 전기차가 10대 전략산업에 선정됐다. 2020년까지 연간 전기차 생산능력을 200만 대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 담겼다. 지난해 중국에서 생산된 전기차는 20만 대를 넘는다. 누적 판매량으로도 비야디가 테슬라를 제치고 세계 1위(6만3000대)를 차지하고 있다.


▎러에코(LeEco)의 자율주행 전기차 ‘러시’
이는 중국의 대기환경 정책과도 무관치 않다. 중국은 베이징·상하이·선전 등 대도시에서 신규 차량 등록을 제한하고 있다. 각 도시마다 대수를 정하고 번호판을 추첨하거나 입찰을 통해 등록을 받는데, 비용이 한화로 2000만원에 이를 정도다. 다만 전기차 할당량은 예외로 하고 있고, 여유가 있어서 전기차 등록은 쉬운 편이다. 그래서 베이징 시내에선 테슬라의 중형 전기차인 모델S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도로를 다니는 오토바이들은 이미 전기모터 방식이 대중화된 지 오래다. 현지 가이드는 “재력을 갖추고 당장 차가 필요한 이들이 시내 주행에 필요한 세컨드카로 전기차를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국 로컬 브랜드들은 전기차를 개발하는 게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 자동차 개발보다 훨씬 유리하다. 내연기관의 경우 이미 유럽과 미국, 일본, 한국 등 글로벌 메이커들이 축적한 기술력을 따라잡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막 불붙기 시작한 전기차 개발경쟁은 아직까지 무주공산이다. 현장에서 만난 국내 한 자동차업체 관계자는“중국의 자동차 개발 기술이 위협적으로 성장한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아직까지 내구성이나 안전성 등 기본기에 있어선 충분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첨단 기술을 갖췄다고 해도 안정성과 시장의 신뢰를 얻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테슬라모터스가 출품한 SUV전기차 ‘모델X’
하지만 다른 시각도 있다. 중국 내수시장에서 로컬 브랜드들의 점유율이 무섭게 늘어나고 있어서다. 중국 내수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새로운 ‘블루 오션’으로 주목받는다. 이 때문에 글로벌 브랜드들은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이번 모터쇼에서도 이런 흐름이 뚜렷했다.

특히 글로벌 브랜드들에게 중국 내 전기차 보급은 사활이 걸린 문제나 다름없다.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중국 내수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26.8%(2460만 대)에 달하는 데다 7년 연속 세계 최대 시장 자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내수시장에서 로컬 브랜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41% 수준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중국 로컬브랜드들의 기술력이 시장에서 검증된다면 시장 점유율이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터쇼 현장에서 또 한 가지 두드러진 특징은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의 비중이 높아진 점이다. 거의 모든 업체가 신형 SUV 모델을 선보였다. 지난해 중국에서는 SUV 판매량이 600만 대를 넘어섰다. 2014년보다 50% 넘게 급증한 수치다. 포스코경영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 내 SUV 판매량은 2012년 이후 연평균 46%씩 증가해왔다. 그중에서도 중국 브랜드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SUV 시장 점유율을 60%까지 끌어올렸다. 중국 업체의 SUV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소득 수준이 낮은 중서부 지역 소비자들을 급속히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자녀 정책을 폐지하고 아이를 두 명까지 낳을 수 있도록 한 중국의 인구 정책 변화도 SUV 구매를 촉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때문에 글로벌 메이커들은 중국인의 취향에 맞춰 새로 디자인한 현지 전략 모델을 대거 출품했다. 몸집을 키운 모델들이 주를 이뤘다. 폭스바겐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기반의 대형 럭셔리 SUV 콘셉트카 ‘T-프라임 콘셉트 GTE’를 선보였다. 아예 이름을 ‘베이징 콘셉트’라고 지었다. 전기 모드로 최대 50㎞까지 주행 가능하고, 친환경·최첨단 기술을 앞세웠다.

더 크고, 더 넓게… SUV에 열광하는 중국


▎1. 현대자동차는 베르나의 중국 전략모델인 ‘위에나’ 콘셉트 모델을 선보였다. 위에나 전속모델인 가수 지드래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2. 기아자동차의 소형 하이브리드 SUV인 ‘니로’
메르세데스-벤츠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쿠페형 SUV ‘더뉴 GLC쿠페’를 내놨다. 전면부 흡기구 그릴을 키워서 육중함을 선호하는 중국인의 취향을 고려했다. 이 모델에는 중국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아울러 휠베이스를 늘린 신형 E클래스도 처음 공개했다. 차체 길이가 기존 E클래스보다 14㎝ 더 길어졌다. 이것 역시 크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중국인들의 취향에 맞춘 것이다. BMW도 중국 시장에 특화된 소형 SUV ‘뉴 X1’ 롱휠베이스 버전을 공개했다. 재규어도 XF 롱휠베이스 버전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한국 대표 메이커들도 전략 모델들을 내놓으면 중국인 취향 공략에 나섰다. 현대차는 전기차 및 하이브리드 아이오닉과 중국형 쏘나타 하이브리드를 전시했다. 중국형 베르나(현지명 ‘위에나’) 콘셉트 모델도 최초로 공개하고 2014년 10월에 출시해 지금까지 15만여 대를 판매한 소형 SUV ix25도 출품했다. 현대차 공개 발표에는 베르나 전속모델인 가수 지드래곤을 보려는 이들이 1000명 넘게 몰리면서 주최측이 통제에 나서기도 했다. 현대차 중국 합작법인인 베이징현대 이병호 총경리(부사장)는 “친환경 기술과 함께 현대차만의 미래 모빌리티 철학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이동 수단과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아차가 최초로 공개한 하이브리드 소형 SUV 니로에도 관심이 집중됐다. 니로는 SUV에 친환경적이라는 점이 더해져 모터쇼 행사장을 찾은 중국인 젊은이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 니로는 최대 출력 105마력의 하이브리드 전용 1.6 카파 GDI 엔진과 최대 출력 43.5마력의 모터가 적용됐다. 현대차 관계자는 “다양한 형태의 전략형 소형 모델을 내세워 멋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중국의 20~30대 젊은이들을 겨냥했다”고 말했다.

중국시장 점령하려면 품질·가격 양면전략 승부해야

여전히 눈에 띄는 시장의 한계는 있다. ‘고급’과 ‘보급’의 경계가 뚜렷하다는 점이다. 독일 3사 등 글로벌 톱 메이커들이 지키고 있는 고급차 시장은 난공불락이다. 보급형 시장에선 중국의 독자 브랜드들이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중국 정부도 자국의 자동차 업계를 육성하는데 더 힘을 쏟고 있다. 과거에 중국 업체들의 기술력과 경쟁력이 낮았을 때에는 외국 업체들과 합작 법인을 설립하는 방식으로 기술력을 흡수하는 정책을 펼쳐왔다. 외국 업체가 중국에 공장을 세우려면 반드시 중국 업체와 50대 50으로 지분을 나눈 합작법인을 설립해야 했다. 그런데 이런 합작법인 수요가 크게 줄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자동차 업체들의 판매량은 1730만6000여 대였다. 3년 동안 판매 증가량이 400만 대나 된다. 이 중 상하이자동차(SAIC)는 지난해 590만2000여 대를 팔아 세계 시장 점유율 6.4%를 기록했다. 788만 대를 팔아 세계시장 점유율 8.5%(세계 5위)를 기록한 현대·기아차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둥펑자동차는 3.1%, 창안차는 3%지만 점유율 상승세가 괄목할 만하다.

국내 자동차업체 관계자는 “자동차 구매력이 높은 도시인의 경우 고급차를 살 만한 재력을 갖췄거나 보급형에 만족하는 서민층으로 구분된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품질에 대한 중국 소비자들의 안목과 요구가 높아지는 것도 시간문제”라며 “한국의 자동차 메이커가 중국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가격 면에선 글로벌 톱 브랜드들을, 품질 면에선 중국 로컬 브랜드들을 압도하는 양면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 베이징=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1606호 (201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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