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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마키아벨리가 들여다본 2016년 한국정치 

“최고통치자는 독존 아닌 공존의 운명 타고난 사람” 

김경희 성신여대 교양교육대학 교수
마키아벨리에게 자유는 부국강병의 핵심 요건… 승자독식의 구조를 제어하고자 했던 그의 의지와 통찰 주목해야
마키아벨리는 마키아벨리즘과는 전혀 다른 권력의 측면에 주목했다. 자유와 평등 상태에서 시민들의 연대와 헌신을 활성화시키는 이른바 ‘관계적 권력’이다. 지도자의 권력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열정에서 나온다. 다시 말해 ‘자유와 평등’에 기반한 권력이다.


제 20대 국회의원을 뽑는 2016년 4·13 총선은 그 결과를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일반 유권자뿐만 아니라 정치학자들도 놀랐다. 야권의 분열 속에 여당이 무난히 과반수를 얻을 것으로 다들 바라봤다. 반면 야당인 더민주는 호남에서의 부진으로 참패를 예상했고, 국민의당은 원내교섭단체 구성 여부가 관심거리였다. 그런데 개표결과는 그런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더민주는 제1당이 되었고, 국민의당은 예상을 뛰어넘는 선전을, 새누리당은 참패한 것이다. 유권자인 국민은 절묘한 교차투표를 통해 더민주에게는 지역구 의석을, 국민의당에게는 정당투표를 통한 다수의 비례 대표 의석을 주었다. 여소야대 국회를 만들어준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문제는 다차원의 갈등이 첨예화되고, 인구절벽과 신성장 동력의 부족 등으로 인한 공동체 활력의 침체로 볼 수 있다. 세대간, 지역간, 이념간 그리고 계층간 갈등이 심각하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할 유일한 방법은 제대로 된 협치 즉 공치(共治)라는 것이 국민이 요구한 것이다. 이러한 국민의 뜻에 마키아벨리 정치사상은 어떤 통찰을 보여주는가?

근대정치사상의 시조로 잘 알려진 마키아벨리는 상업자본주의가 발전하기 시작했던 르네상스기에 피렌체 공화국에서 활동했다. 공화국에서 자치를 수행했던 시민들은 중세의 신정정치와 도덕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의 실재론적 사고를 펼쳤다. 마키아벨리는 유럽 강대국의 전장(戰場)이 되어버린 이탈리아의 상황 속에서 조국 피렌체의 위기와 그 극복을 사고했다. 따라서 마키아벨리 정치사상의 정수는 권력과 힘에 대한 사고이다. 마키아벨리즘은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이 정당화되고, 권모술수 또한 용인된다는 주장이다. 이는 위기 시에 생존을 사고했던 마키아벨리에게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강대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신의를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자파 이익의 추구를 위해 등 뒤에서 칼을 꽂는 혼란의 시기에 마키아벨리는 위기극복의 폭력을 인정했고 그것이 마키아벨리즘의 악명을 낳은 것이다.

권력의 관계론적 특성에 주목하다


▎대한민국 권부의 상징 청와대. 최고통치권자는 부와 권력을 독점한 엘리트층의 독존의 정치를 제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마키아벨리즘과는 전혀 다른 권력의 측면에도 주목했다. 자유와 평등 상태에서 시민들의 연대와 헌신을 활성화시키는 이른바 ‘관계적 권력’이다. 마키아벨리즘적 권력은 폭력을 수반한 강권이다. 이것은 매우 신중히 그리고 단번에 효율적으로 행해져야 한다. 폭력과 강권이 천천히 반복적으로 행해지면 분노와 저항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강권은 문제 해결사로서 군주나 폭군을 통해 행사되는 독단적인 권력이자 폭력이다. 반면 마키아벨리는 권력의 관계론적 특성에도 주목했다.

지도자의 권력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수와 열정에서 나온다. 한 나라의 힘은 건전한 중산층 시민이 다수를 이루고 시민의식으로 연대할 때 강해진다. 따라서 마키아벨리는 ‘강권’을 이야기할 때 ‘폭력사용의 효율성’을 논하지만, 관계론적 권력을 이야기할 때는 ‘자유와 평등’을 언급한다.

자유는 주종적 예속이 없는 평등한 상태다. 반면 주종적 관계는 자의적 지배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불평등과 폭력을 수반한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상태는 각 시민이 권력에 참여하여 지배를 배제하는 정치제도와 법제도를 만들 때 가능하다. 그것이 곧 공화국이다. 마키아벨리는 견제와 균형의 제도를 통해 권력자의 전횡을 방지하고, 시민의 자유로운 삶을 보장해야 한다고 보았다. 마키아벨리에게 자유는 부국강병의 핵심 요건인 것이다. 다시 말해 자유와 평등 속에서 시민들은 자신과 국가의 역량을 배가시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힘은 최첨단 무기나 물질적인 부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상황에 따라 배가되거나 반감되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신명과 활력에 대한 문제다. 관계적이며 구성적인, 따라서 굉장히 정치적인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피렌체는 시민들 사이의 내분으로 끊임없는 정변 속에 있었다. 정치 엘리트 간의 갈등에 더해 엘리트와 일반 시민들 사이의 불신과 대립은 음모와 모반을 일상으로 만들었다. 정치권력과 부를 소유한 엘리트는 일반 시민을 믿지 못했다. 따라서 무기를 그들에게 주어 시민군을 편성하지 못했고 자신들의 부를 기반으로 한 용병 고용을 통해 전쟁을 맡겼다.

분열과 반목은 부와 정치권력의 불평등한 분배와 독점에 기인했다. 이는 서로 믿고 신뢰할 공적인 법체계의 부재로 인해 심화되었다. 문제해결은 법이 아닌 사적인 폭력을 통해 수행되었다. 부와 권력을 지키기 위해 권모술수와 폭력을 사용했던 것이다. 법률은 권력투쟁에서 승자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공공선 대신 사적 이익이 행동의 기준이 되며,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공간으로 사회는 변해버린다. 이렇게 독점과 배제는 불신을, 불신은 질시와 증오를, 증오는 불통을 낳는다. 결국 공동체는 해체되어버리는 것이다.

자유의 수호자로 평민층이 더 적합하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 바깥쪽 회랑에 서 있는 마키아벨리 동상.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무력해진 피렌체 국가의 문제를 시민들 간에 팽배한 불평등과 부자유에서 찾았다. 부와 권력을 독점한 층과 그것에서 배제된 평민층 간에는 주종적 지배관계가 성립된다. 정치와 법률체계가 자유와 평등을 수호할 수 없게 되자, 시민들 간에는 불신과 불통만이 남았다. 이의 극복을 위해 마키아벨리는 승자독식의 구조를 제어하고자 했다. 소외되고 배제된 약자층을 보호하여 다시 국가의 주체로 만들고, 너무 많은 부와 권력을 가진 층은 그 힘을 줄이는 것이다. 서로 균형을 맞추는 길이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국가 공동체를 구성하는 핵심 세력에 주목했다. 그들은 귀족 즉 엘리트층과 평민층이다. 이들은 가진 것이 다르기에 생각도 차이가 나며 갈등하고 대립할 수밖에 없다.

마키아벨리는 귀족보다는 평민층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평민들이 분란의 씨앗인 귀족보다 공동체의 주역이자 자유의 수호자로 더 적합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한쪽이 다른 쪽을 배제하면 오만과 부패가 엄습하게 되어 있다. 귀족이건 평민이건 어느 한쪽에 의한 독점적 지배는 견제와 균형이 사라져 불통과 극단으로 흐르게 된다. 마키아벨리는 이들이 모두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마키아벨리에게 자유와 평등은 획일적으로 똑같은 것을 갖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개성과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각기 다른 재능을 인정하고 그것이 계발되고 공동체에 의해 쓰임을 받을 때, 그 공동체는 비로소 활력 있고 강한 나라가 된다고 본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독점과 배제로 발생하는 불통이 아니라, 분점과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소통이다.

마키아벨리가 2016년 한국정치를 들여다본다면 어떤 진단을 내릴까? 부와 가난이 특정 집단 내에서 세습되는 재봉건화가 진행되면 개인의 능력보다는 가문이 우선시되는 사회가 도래한다.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재봉건화 현상을 신랄하게 비판한 인물이다. 르네상스 후기로 갈수록 상공업을 통해 자본을 축적한 귀족들은 토지와 성곽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산업에 재투자하는 것을 위험하다고 본 것이다. 이들은 기업가에서 지주로 회귀하려 했다. 마키아벨리는 토지 수입으로 일하지도 않고 사치스럽게 살며 성곽을 보유한 이들을 자유로운 시민정부에 적대적이고 해로운 자로 규정한다. 이들은 신민을 보유하고 이들 위에 군림하려고 들기 때문이다.

부와 권력의 신분제 사회가 되면 사회의 활력은 고사된다. 아무리 노력해도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없다면 누가 노력을 경주하겠는가? 대신 운과 연줄대기 등의 사사화가 판치게 된다. 노력보다 태생이라는 행운적 요소가 더 중요해지면 저축 같은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는 과정보다는 로또나 투기 등을 통해 일확천금이나 요행을 노리는 사행성 풍조가 횡행하게 된다. 아울러 혁신이나 창조를 통한 가치 창출보다 지대추구적 보수화 경향이 일어난다.

마키아벨리가 보기에 문제의 핵심은 자유와 평등이다. 공정한 경쟁 무대를 만들고, 승자독식의 불비례 구조를 법률로 제어해야 한다고 믿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젊은이들이 좌절과 패배감 속에서 쉽게 자포자기한다. 다양한 형태의 갑질이 사회적 관계의 약자들에게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공정한 게임의 룰이 사라진 곳에 마키아벨리즘적인 권모술수와 패권의 정치가 나타나게 된다.

권력은 소유가 불가능하다


▎4·13 총선 때 투표를 통해 정치권의 무능과 탐욕을 심판한 국민의 손.
이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표출된 것이 이번 총선의 결과이다. 정당한 법절차가 아닌 권모술수를 통해 자기 파벌, 나아가 자기 당이 권력을 독점하려고 한 모습에 국민이 반응한 것이다. 독존은 겉보기에는 강해 보이나 그보다 약한 것은 없다. 이것이 마키아벨리가 보여준 권력론의 핵심이다. 부나 권력은 독점되면 부패하기 마련이다. 부패의 표지는 사사화(私事化)다. 공공선보다는 당파나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려 한다. 공개적이지 않고, 밀실의 야합을 선호한다. 쌍방적이지 않고 일방적이며, 들으려 하지 않고 지시하려고만 한다. 독선적이기에 나누려 하지 않고 혼자 가지려고 한다. 나에게 집중시키려 하니 주변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소통은 사라지고 불통만이 남으니 공감력이 떨어져 분노만이 남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권력을 소유할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데 기인한다. 그런데 권력에 정통한 마키아벨리는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권력은 관계적이기에 소유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권력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오는 것이다. 권력은 소유 불가능하기에 손아귀에 쥐려고 할수록 멀어지게 마련이다. 권력은 관계적이기에 배가되기도 반감되기도 한다. 한 가족이지만 불화를 겪으면 집안이 풀이 죽어 있거나 아무도 없는 듯 적막해진다. 하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화목해질 때 활기로 가득 차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정치엘리트들은 독점의 유혹, 즉 권력을 장악하고자 하는 욕구를 느끼기 쉽다. 장악하고자 하면, 권모술수와 강권 그리고 폭력의 정치에 매혹당한다. 그것이 빠르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이 대목에서 부패한 국민과 그렇지 않은 국민을 언급한다. 부패한 국민이 있는 곳에서는 군주제가 적당하지만 건전한 시민들이 있는 곳에서는 공화제가 더 맞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다당제를 택하면서 기존 정당이 보여준 오만과 독단의 정치를 심판하였다. 대한민국 국민은 자유와 평등의 정치를 택한 건전한 시민인 것이다.

이제 20대 국회는 자파의 이익을 위한 야합이나 독단적인 정치를 지양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됐다. 국민이 협치와 공치를 원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권력분점의 정치를 수행해야 할 것이다. 권력을 나누면 그 담지자들이 참여 속에 책임을 느껴 전력을 다하게 된다. 독점은 한 사람만 만족하고 나머지는 불행하다. 나머지가 불행해지면 만족했던 한 사람마저도 위태롭고 불행해진다.

대한민국은 진퇴양난의 상황을 맞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은 여전히 무능과 무기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당시 이탈리아의 상황과 비슷하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에 무관심하고 권력을 혐오하는 시민들을 다시 추슬러 정치의 주체로 세우고자 했다. 그들을 정치에 참여시켜 정치권력의 일부를 나눠주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발성과 책무를 지우는 것이다. 이것은 부와 권력을 독점하여 대물림으로 재생산되는 엘리트층의 독존의 정치를 제어하는 데서 시작된다. 독존의 정치 대신 공존의 정치를 추구하면 비로소 국가는 강력해진다.

마키아벨리는 강력한 국가를 유연한 체제를 갖춘 나라로 규정한다. 당시 피렌체는 상업자본주의의 발달로 유럽에서 제일 잘사는 국가였다. 하지만 강한 군사력을 가진 알프스 이북의 나라들이 나타나자 속수무책으로 유린당했다. 재부(財富)가 힘의 원천일 때 무력을 갖추지 못했기에 전쟁의 상황이 도래했을 때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유연하게 상황의 변화에 대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국가 공동체의 유연함은 시민들의 참여와 연대를 통해 달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독존의 정치를 뺄셈 나아가 나눗셈의 정치로 바라보고, 덧셈 나아가 곱셈의 정치로서 공존의 정치를 주장했다. 그것은 바로 자유와 평등의 체제 속에서 공동체 구성원들이 동료 시민으로서 연대하여 서로 돕고 국가에 헌신하는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권력은 나눌수록 더 강해진다


▎마키아벨리의 집무실. 이탈리아 피렌체 정치·행정의 중심이었던 베키오 궁전 2층에 있는 공간이다.
권력은 쥐는 순간 약화되고, 나누는 순간 강화된다는 공존의 정치가 바로 이번 국회에서 요구되는 정치형태다. 양당체제보다는 3당, 4당 체제가 다양한 국민의 요구와 문제를 더 잘 대변할 수 있다. 급변하는 세계에 유연한 체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정치에 잘 반영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갈등이 제대로 잘 표출되어야 한다. 말의 향연이 필요하다. 양당체제는 야합도 가능하다. 그러나 3당, 4당 체제에서는 어렵다. 물론 국민의 감시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다수의 당을 국회에 보낸 것은 독단적인 정치를 하지 말고, 현재 대한민국의 위기를 같이 헤쳐나가라는 것이다. 현재의 문제는 독단과 독존의 정치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협치는 단순히 협력하라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 갈등과 대립의 지점을 드러내 같이 고민하고 그 담지자인 국민의 문제를 공동으로 풀어나가는 것이다. 갈등이 내재하는 공동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놓고 토론과 숙의를 통해 같이 풀어나가는 과정이, 국민과 정치인이 함께하는 공치인 것이다. 문제를 같이 고민하고 그 해결에 같이 참여하는 연대의 정치를 펼치는 것이다. 국민은 마키아벨리즘을 거부하고, 마키아벨리가 통찰했던 활력의 정치를 펴라고 주문한다.

지금 독존의 정치가 아닌 공존의 정치가 요구되는 것은 우리나라가 공동체 존립의 분수령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독존의 정치는 불비례성과 배제를 특징으로 한다. 일부의 이해관계나 그들의 문제가 과도 대표되고, 그 이외의 것들은 과소 대표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국민들이 20대 국회를 다당제로 만든 것은 대한민국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불비례성과 과도대표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특히 약자나 소외계층의 문제가 과소 대표되는 것은 반드시 극복되어야 하는 문제다. 왜냐하면 이미 사회에서 빈부격차와 그것의 대물림으로 계층간 격차가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헌법의 기본 가치인 자유와도 연관된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가진 재능과 활력이 커지고, 나아가서는 국가 전체의 활기와 생동감을 회복해야 한다. 이것이 마키아벨리가 피렌체에 바랐던 것이다.

김경희 -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마키아벨리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신여대 교양교육대학 교수로 있다. 저서로 <공화주의> <공존의 정치: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새로운 이해> 등이 있다.

201606호 (201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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