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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중 교수의 ‘그리스 문명의 결정적 순간’(3)] 영웅을 위한 죽음의 소나타 

궁극의 영광, 클레오스를 만드는 신성한 매개체 

김승중 캐나다 토론토대 희랍미술고고학과 교수 seungjungkim@gmail.com
그리스 영웅은 초인적인 특성으로 숭배의 대상… 불멸의 영웅이 존재함으로써 인간은 이상(理想)을 추구하는 열정을 간직하게 된다
그리스 영웅은 신과 인간의 경계를 넘나든다. 이른바 휘브리스(hubris, 오만)라는 죄를 짓는다. 그들은 인간과 신의 세계를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영웅의 본질이다. 죽음을 통해 그 본질은 더욱 강화된다.


▎이탈리아 남단의 그리스 식민지에서 발견된 도기화 (BC 5세기 말). 아킬레우스(Achilleus)가 왼쪽 상단에서 죽은 패트로클로스(Patroklos)를 애도하며 앉아 있다. 싸우기를 계속 거부했던 아킬레우스는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이 복수를 위해 싸울 수밖에 없다. <일리아드>에 진술된 장면이다.
최근 미국 팝의 전설이라 불리는 프린스(Prince, 1958∼2016)가 57세의 나이로 돌연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예상치 못했던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국내외의 수많은 음악 팬에게 충격을 주었으며, 불명의 사인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그의 죽음을 절절히 애도하게 하였다. 전설적인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1958∼2009)이 상업적인 팝계의 제우스(Zeus) 신과 같은 존재였다면, 신비로운 중성의 이미지를 지닌 프린스는 언더그라운드 뮤직(underground music)의 왕자, 즉 제우스신의 아들, 지하세계를 넘나들며 성(性)적인 경계도 가로지르는 디오니소스(Dionysos)와도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프린스의 이야기는 결코 단발적인 예가 아니다. 이는 고대 그리스 문명의 영웅 숭배 관습과 상통하는 현상으로, 우리 사회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히어로(hero)라 하면 고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영웅’을 지칭하며 여러 가지 뜻을 함축한다. 한 평범한 이야기의 주인공도 히어로라고 불리는 반면, 디씨 코믹스(DC Comics)와 마블 코믹스(Marvel Comics)가 쏟아내고 있는, 요즘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슈퍼맨, 배트맨 등 우주를 지키는 슈퍼히어로(Superheroes)들도 이에 속한다.

물론 일반적으로 볼 때 프린스와 같은 뮤직 아이콘보다는 슈퍼맨과 배트맨 같은 캐릭터가 당연히 고대 그리스 신화를 치장했던 헤라클레스와 같은 영웅들에 대응하는 존재라고 생각될지 모른다. 그러나 지난호에도 지적했듯이 고대 그리스인들의 ‘역사/신화’의 관념은 우리가 생각하는 양분되는 상대적 개념이 아닌, 오히려 상통하는 선상에 놓인 개념이다. 현대의 슈퍼히어로는 엄밀하게 허구의 픽션 인물이라는 전제 하에 인식된다는 점에서 고대 그리스의 영웅들과 전적으로 다르다. 또한 슈퍼히어로는 대중을 위해 자기희생 정신을 발휘하는 구세주와 같은 정체로서, 고대 그리스의 영웅의 패턴과는 다르다. 소테르(Soter)적인 기독교 구원론으로 충만되어 있는 미국전형의 모델이다. 그러므로 엄격히 말하자면, 프린스와 같은 실제의 인물이 고대 그리스의 영웅의 개념과 더욱 부합한다. 특히 그리스 전역에 존재하였던 역사적인 인물들이 신화적인 영웅을 모델로 삼아 영웅으로 추대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그러하다.

고대 그리스 영웅의 조건은 ‘반신반인’


▎피터 폴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유화 <파리스의 판결>. 세 여신 모두 아직 목동인 파리스에게 누가 제일 아름다운지 물어보며 공물을 제시한다. 파리스 뒤에 헤르메스가 서 있으며, 파리스는 오른손 안에 황금사과를 쥐고 있다.
여기서 특별히 주목할 점은 영웅을 만드는 과정에서 죽음이 하는 역할이다. 왜 이번 주 빌보드에 탑10 앨범 중 5개나 프린스의 앨범이라는 진기록이 나왔으며, 바로 사망 전 주에 고작 5000개의 앨범을 팔았던 그가 죽음과 더불어 며칠 만에 100만 장을 팔았을까? 죽음이 가져오는 현상이 영웅의 정체에 있어서 도대체 무슨 의미를 함축하는 것일까? 그리스 신화의 영웅 중에 영웅, 트로이 전쟁의 빛나는 전사 아킬레우스의 이야기가 그 무엇보다도 전형적인 예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가 한 유명한 예언이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전해진다. 여신 테티스는 아들이 영웅이 되기 위한 조건을 제시하는데, 여기서 죽음 자체가 필수적인 요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궁극적인 영광, ‘클레오스(kleos)’를 이루기 위해서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죽음이 예언된 전투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한때의 죽음이 영원한 클레오스를 가져온다 할지라도, 확실히 보장된 순조롭고 오랜 삶을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 선택조차 결코 대의를 위한 희생정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고, 개인의 영광과 사랑하는 동료의 살해로 인하여 불타오른 복수의 심정, 즉 아킬레우스의 신적인 분노(menis)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실 이러한 아킬레우스의 과장된 분노 자체가 <일리아드> 전편의 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히 영웅이라 함은 보통사람들과는 구별되는 무언가 특출한 성격을 지닌 인물을 말한다. 그 뛰어난 성격이 무엇인가에 따라 영웅의 정의 또한 달라진다. 통념적으로 희생정신이 가장 대표적인 현대 영웅의 조건이라고 한다면, 고대 그리스 영웅의 필수조건은 그와는 전혀 무관하다. 이는 바로 대부분의 영웅이 정의 그대로 반신반인(hemi-theoi), 즉 부모 한쪽이 신이나 여신이고, 다른 한쪽이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반인의 조건은 곧 죽음을 필수 전제로 하는 반면에, 반신의 조건은 초인적인 특성을 영웅에게 부여한다. 아킬레우스는 그리스의 가장 뛰어난 전사로 알려져 있었고, 제우스 신의 아들 헤라클레스는 초인적인 힘을 과시하는 인물이었다. 또 제우스의 딸 헬레나(Helene)는 “1000척의 군함을 출동시킨 얼굴(a face that launched a thousand ships)”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 절세의 미녀였다. 스파르타의 왕비였던 그녀는 새파랗게 젊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Paris)와 눈이 맞아 달아난다. 그 결과가 바로 그 전설적인 10년의 처참한 트로이 전쟁이다. 그만큼 그녀가 형용할 수 없는 신적인 아름다움을 지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초인적인 특성 자체로도 충분히 영웅으로서 숭배의 대상이 되었고, 그들의 도덕적인 성격이나 행동은 2차적인 요인이었다. 그리하여 헬레나가 남편을 버리고 도망치는 ‘몹쓸 짓’을 했다는 것은 신기하게도 그녀가 지닌 초인적인 아름다움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 듯하다. 오히려 그녀의 미가 그만큼 세상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그리스의 여성은 헬레나를 영웅으로 받들고 그녀에게 공물을 바치며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헬레나의 행동은 그녀 자신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헬레나의 기구한 운명은 이미 세 여신 사이에 벌어진 하찮은 말다툼에서 비롯되었다.

영웅은 도덕적인 모범과는 상관없어


▎그리스의 도기화(BC 5세기 초) 술잔인 카일릭스(kylix)의 모양. ‘파리스의 판결’이 주제다. 왼쪽에서부터 헤라(Hera), 아테나(Athena), 그리고 아프로디테(Aphrodite) 세 여신이 헤르메스(Hermes)를 따라 옥좌에 앉아 있는 파리스 왕자를 찾아간다. 하프를 쥔 파리스는 목동으로 자라났고, 아프로디테가 오른손에 든 화관은 그가 승자임을 암시한다.
제우스의 부인인 헤라(Hera), 지적인 전사의 여신 아테나(Athena), 그리고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 사이의 경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을 뽑아야 하는 역할을 맡게 된 인물이 공교롭게도 파리스였다(파리스의 판결, ‘The Judgment of Paris’). 물론 그는 순진한 목동답게 자신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선사하겠다는 아프로디테의 꾐에 넘어갔고, 미의 상징인 황금사과(golden apple 혹은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던진 것이라 하여 불화의 사과 ‘apple of discord’라고도 불린다)는 결국 아프로디테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다. 그녀의 수제자 헬레나, 즉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그리하여 애초부터 파리스와 눈이 맞게 되어있었던 것이다. BC 5세기 중반의 소피스트(Sophist) 고르기아스(Gorgias)의 에세이 <헬레나를 찬송하는 글>(Encomium of Helene)은 웅변술을 가르치기 위한 텍스트인데, 이는 바로 처음부터 끝까지 조목조목 이유를 들어 왜 헬레나는 잘못이 없는지 듣는 이로 하여금 그녀의 결백함을 믿도록 설득시키기 위하여 쓰인 글이다.

전설의 헤라클레스(Herakles)도 역시 도덕적인 모범이라는 개념과는 아주 거리가 먼 인물이다. 그는 무엇을 하든 보통 인간의 범위 안에서 하는 법이 없고, 좋거나 나쁘거나 관계없이 과장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특징적이다. 헤라클레스는 새엄마 격이 되는 여신 헤라의 노여움을 샀기에(물론 이것도 절대 헤라클레스의 잘못이 아니고 남편인 제우스가 바람을 피운 탓이다) 그녀가 유도한 광란의 상태에서 아내며 자식들이며 자기 가족 전체를 살해하는 끔찍한 일을 저질렀으며,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자식을 수많은 여인으로 하여금 낳게 했다. 델피 사원에서 신탁을 구하지 못했을 때 성물인 아폴로신의 삼각대를 배짱 좋게 훔치려다 아폴로신과 싸움질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대담한 인물이다. 신과 인간과의 경계를 넘어서는 이러한 행위는 이른바 휘브리스(hubris: 오만이라고 보통 번역되는데, ‘신들의 눈밖에 벗어나는 행위’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뜻이다)라고 하여 보통 천벌을 받을 만한 일이지만, 헤라클레스와도 같은 반신반인의 영웅들은 오히려 그러한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과 신의 세계를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어떻게 보면 휘브리스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그 경계를 더욱 분명하게 정의하는 것이 영웅의 본질이라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광적인 살인마로 변신한 아킬레우스


▎스페를롱가(Sperlonga) 동굴의 센터 피스인 오디세우스(Odysseus)와 폴리페모스(Polyphemos)의 조각상. 술을 마셔 곯아 떨어진 폴리페모스의 외눈을 오디세우스와 그의 선원들이 찌르려는 순간을 포착했다.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의 젖줄 스카만드로스(Scamandros) 강의 수호신인 크산토스(Xanthos)의 노여움을 사게 돼 세 차례나 죽임을 당할 뻔했다. 그러나 다른 신들이 보다 못해 개입해서 그는 죽음을 모면했다. 헤라클레스도 아폴로신과의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고 뻔뻔하게도 신성한 삼각대를 빼앗아가려는 것을 제우스신이 친히 번개를 내리쳐 중지시켜야 했다고 전한다. 그들과 같은 반신반인들은 보통 신들도 쉽게 이기지 못하는 불굴의 존재임에 반하여, 유일하게 인간인 영웅 오디세우스(Odysseus)-꾀가 특출난 것으로 유명한 전설의 이타카(Ithaca)의 왕-는 반신의 영웅들과 달리 휘브리스를 저지른 대가를 아주 톡톡히 치른다.

그것도 아킬레우스나 헤라클레스와의 행동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가벼운 찰나의 실수였는데도 과도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Homer’s Odyssey) 중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인 키클롭스(Cyclops)의 동굴에서의 탈출하는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10년간의 전쟁이 드디어 막을 내리고 고향인 이타카를 향해 항해를 하다가 표류 중에 도착한 섬이 바로 외눈의 거인 폴리페모스(Polyphemos)가 사는 곳이었고, 그의 동굴 속에 포로가 된 오디세우스는 폴리페모스의 저녁밥이 되고 있는 선원들과 탈출을 하기 위해 꾀를 짜낸다. 술을 만들어 먹여 곯아 떨어져있는 거인의 외눈을 찔러서 장님으로 만들어 놓았다. 냄새를 가리기 위해 한 명씩 양들의 배 밑에 매달려서 이동하며 더듬거리는 장님 거인의 손길을 무사히 피해 탈출에 성공한다.

그동안 오디세우스는 폴리페모스에게 자신의 이름이 ‘아무도 아님’(nobody)이라 말해주었다. 오디세우스에게 눈을 찔려 고통을 당하면서도 폴리페우스는 범인을 ‘노바디’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모두 안타까워하며 “자기 잘못이니 할 수 없네”라며 혀를 쯧쯧 차는 동료들의 반응에 그는 얼마나 분통이 터졌을까! 그런데 이 광경을 멀리서 바라보며 떠나는 오디세우스는 결정적인 찰나에 오만의 죄를 저지르고 만다. “다음에는 누가 물어볼 때 오디세우스가 너를 이렇게 했다고 말하거라!”라고 당당하게 소리친다. 그가 배를 타고 멀어져가는 동안, 폴리페모스는 자신의 아버지인 바다의 신 포세이돈(Poseidon)에게 분노에 찬 간절한 복수의 기도를 올린다. 그래서 결국 오디세우스는 이타카에 돌아가지 못하고 10년 동안 방랑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바로 포세이돈의 노여움 때문이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그리스 역사상 가장 중요한 문학작품이다. 이 두 작품의 주인공인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 또한 가장 전형적인 에픽 히어로(epic hero)다. ‘에픽 히어로’라 함은 많은 고대 문화의 전통적인 대서사시의 장르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영웅을 지칭한다. 인도의 크리시나(Krishna)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Sumer) 지역에서 나온 길가메시(Gilgamesh) 등과 같은 영웅들이 이에 속한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비교하여 볼 때, 그 내용과 구조, 그리고 에픽 히어로인 두 주인공의 정체와 본성이 명확히 대조되는 양식을 띤다.


▎1. 그리스의 도기화(BC 5세기 초) 술잔인 스키포스(skyphos). 아킬레우스의 텐트를 찾아온 프리암(Priam)이 아들의 시신과 교환할 공물을 바치며 카우치에 기대어 누운 아킬레우스를 향해 애걸한다. 고기덩어리들이 걸린 상 밑에 내팽개쳐진 헥터(Hektor)의 시신은 아직도 무참하게 피범벅이 되어 있다. / 2. 오디세우스가 이타카에 돌아와 결정적인 순간에 궁전에 눌러앉은 청혼자들을 모조리 죽이는 장면. 죠바니 바티스타 카스텔로의 1560년 작품이다.
우선 <일리아드>는 트로이 전쟁 중에 일어난 일을 중점으로 다루며 <오디세이>는 전쟁이 모두 끝난 이후에 한 영웅의 귀향(nostos) 이야기를 다룬다. 두 서사시 모두 간접적으로는 10년 동안 일어난 이벤트를 다루지만 둘 다 모두 함축된 시간의 구조를 보인다. <일리아드>는 전쟁이 시작된 지 벌써 10년 가까이 된 어느 날을 시점으로 한, 거의 전쟁이 끝나갈 무렵 아킬레우스를 주인공으로 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전한다.

죽음을 택해 불멸의 명예 얻은 아킬레우스


▎고대 메세네의 스타디움에 딸려 있는 히어로온. 보통 히어로온은 영웅으로 추대되는 인물의 무덤이기도 하다.(BC 1세기경)
처음에는 아킬레우스가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Agamemnon)에게 첩을 빼앗긴 김에 분통이 터져 그를 위해 싸우기를 거부하지만 결국은 그의 친구이며 동반자인 패트로클로스(Patroklos)가 트로이의 왕자 헥터(Hektor)의 손에 죽는 것을 계기로 광적인 살인마와 같은 모습으로 변신한다. 그의 초인적인 분노는 수두룩하게 쌓인 적의 시체들로도 삭이지 못하고, 불타는 복수심에 겨워 트로이의 영웅 헥터를 처참하게 살해하고 그의 시신을 훼손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에는 어둑한 밤을 타고 아킬레우스의 텐트를 몸소 찾아온 트로이의 왕 프리암(Priam)에게 그를 죽이기는커녕 그의 아들의 시신을 돌려준다. 새삼 아킬레우스의 불타오르는 분노가 연민의 정으로 전환되는 것으로 <일리아드>는 막을 내린다.

<오디세이>도 10년의 방랑이 매듭지어질 즈음에, 오디세우스가 20년 동안 떠나 있던 이타카의 왕실의 상황을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이제 어른이 되어버린 아들 텔레마코스(Telemachos)가 아버지의 생사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어머니 페넬로페(Penelope)의 곁을 잠시 떠난다. <일리아드>가 한 달 정도의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을 순서대로 다루는 반면, <오디세이>는 플래시백의 형식으로 10년 동안의 오디세우스가 방랑한 일들을 모두 다룬다. 그리고 <일리아드>는 아킬레우스가 전사하고 트로이가 멸망하는 전쟁의 결말을 전혀 다루지 않지만, <오디세이>는 그토록 기다리던 오디세우스의 귀향이 카타르시스적인 결말로 종결된다.

방랑자 노인으로 가장하여 돌아온 오디세우스가 페넬로페의 구혼자들과 하는 활쏘기 경기에서 드디어 정체를 드러내며 아무도 못하는 활줄을 성공적으로 달고 그들을 물리치는 장면은 언제 다시 읽어도 참으로 통쾌하기 그지없다. <오디세이>의 결말은 영웅의 성공적인 귀향만큼 정절을 지킨 페넬로페의 고결함을 주제로 한 내용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페넬로페의 이야기와 헬레나의 이야기가 뚜렷하게 대조가 된다는 점이다. 페넬로페는, 남편이 있어도 외간 남자와 달아난 헬레나와는 정반대로, 남편이 없을 동안에도 결혼을 청하러 온 구혼자들을 꾀로 지연시키며 남편을 끝까지 기다렸다.

2000년 후에도 프린스는 영웅의 명예를 유지할까?


▎1. 터키 남서지방에 사갈라소스 (Sagalassos)라는 헬레니즘 도시에 있는 히어로온. 알렉산더 대왕을 영웅으로 모시는 전당으로 추정된다. / 2. 아테네의 폭군을 죽인 티라니사이드 (Tyrannicides) 조각상. 왼쪽 중년의 인물이 아리스토게이톤 (Aristogeiton)이고 오른쪽의 젊은이가 하모디어스(Harmodios)다.
페넬로페는 시아버지의 장례 수의를 먼저 짜야 한다는 핑계로 4년 동안 낮에 짠 것을 밤에는 다시 풀어가며 재혼의 결정을 지연시킨다. 즉, 남편의 영리함과 상통하는 페넬로페의 꾀로 인해 그녀에게도 남편 못지않은 클레오스를 가져온다. 반면에 헬레나의 클레오스는 그녀의 신성한 아름다움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트로이가 멸망하면서 그녀의 남편,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Menelaos)는 아내를 찾으면 기어코 죽이겠다고 굳건한 결심을 했다. 그러나 10년 후 그녀를 다시 본 그 운명적인 순간에 증오의 마음이 확 수그러들어 다시 그녀를 아내로 받아들였다고 한다(비극의 작가 유리피데스는 농담조로 그녀가 옷을 들쳐 맨 가슴을 보여줘서 그의 마음을 바꾸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그들은 스파르타로 돌아가 왕과 왕비 노릇을 하면서 오랜 부와 영광을 누리며 어진 통치를 했다고 전한다. 이렇게 메넬라오스의 마음이 변하는 이야기가 희한하게도 그리스 도기에 자주 보이는 주제이고, 가끔 해학적인 표현도 보인다. 그 유명한 파르테논 신전에도 이 이야기가 표현되어 있다. 여기서 헬레나 옆에 그녀의 수호신 아프로디테가 보이는 것도 물론 우연이 아닐 것이다.

두 서사시의 주인공인 영웅도 더 다를 수가 없다. 반신인 아킬레우스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초인적인 전사인데 반해, 거의 전체가 인간인 오디세우스(그 역시 신의 핏줄을 약간 이어받기는 했다. 증조할아버지가 헤르메스이므로 비교적 먼 조상이라 할 수 있다)는 비상한 머리를 자랑한다. 항상 꾀(metis: 컨닝, 기술)가 많아 모든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그는 트로이 전쟁을 이기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바가 있다. 바로 트로이의 목마(Trojan Horse)가 오디세우스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뒤꿈치를 제외하고는 불사의 반신 아킬레우스는 그 자리에서 죽음을 택했기에 그의 클레오스를 이루었고, 인간인 오디세우스는 반대로 오랜 세월을 생존하여 성공적으로 귀향한 대가로 클레오스를 찾았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모든 그리스 영웅의 공통적인, 그리고 궁극적인 조건은 죽음이다. 인간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이벤트는 오히려 영웅으로서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계기인 것이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으로 으뜸가는 헤라클레스의 경우를 보면 죽음이 궁극적으로는 불멸의 상징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2과업으로 유명한 헤라클레스는 평생 헤라의 노여움으로 인한 과업 수행을 끊임없이 견뎌내야 했다. 그의 이름 자체도 헤라(Hera)와 클레오스(kleos)의 두 가지 단어로 비롯된 것을 보면 그만큼 헤라 여신의 역할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헤라 여신 때문에 수행해야 했던 과업을 통해 헤라클레스는 클레오스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 또한 처참한 광경이었을 것이다. 그의 부인 데이아네이라(Deianeira)가 질투의 심정을 이기지 못해 히드라(Hydra)의 독이 묻은 옷을 사랑의 미약으로 착각하고 헤라클레스에게 전달한다. 그 옷을 입은 헤라클레스는 온 피부가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끼며 옷을 찢어내려고 할 때 오히려 살점이 뭉텅뭉텅 뜯겨나갔고, 결국에는 장작더미를 쌓아 지나가는 이에게 불을 지피게 하고 거기에 뛰어 들어간다. 이렇게 자신을 산 채로 화장시켜버리면서 한탄하는 구절이 있다. 수많은 불가능한 과업을 수행한 자신에게 어떻게 이런 고통을 주는가? 어찌하여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바로 예수가 십자가에 박혀 말한 유명한 구절 “주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3일 만에 부활한 예수와도 같이 헤라클레스는 그 자리에서 올림포스로 상승하게 된다. 그래서 헤라클레스는 허물을 탈피하는 뱀처럼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서 영웅으로서는 유일하게 올림포스 신들과 더불어 불멸의 새로운 존재를 만끽한다. 헤라의 친딸인 헤베(Hebe: 젊음의 여신)와 신성한 결합을 이루어 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전한다. 결국 죽음은 영원한 삶을 이루는 결정적인 전제라 볼 수 있다.

헤라클레스는 예수와 같이 죽음으로서 신격화되었지만, 아킬레우스의 경우도 죽음으로 초래된 클레오스가 비유적으로는 불멸의 정신을 뜻하는 것이다. 카톨릭교의 전형적인 영웅의 역할을 하는 성자(saint)를 생각해보아도 그러하고, 순교자(martyr)의 개념은 더더욱 그러하다. 이들 모두가 죽음을 통해 다음 단계로 이동하고 그 과정에서 불멸의 요소를 우리에게 남긴다.

이러한 패턴은 신화를 떠나 실제로 적용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적인 인물들이 종종 죽음을 맞이한 후에 공식적인 영웅으로 추대되었는데, ‘공식적인’ 영웅이라 함은 바로 그를 중심으로 한 컬트(cult)가 생긴다는 것이다. 영웅을 숭배하는 히어로 컬트(hero cult)는 다름 아닌 컬트의 장소(shrine)가 지어지고 의식(ritual)이 행해진다는 것을 말한다. 의식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여러 종류의 제물을 바치는(sacrifice) 행위다. 폭군을 암살하여 민주주의 설립에 기여했다는 하모디오스(Harmodios)와 아리스토게이톤(Aristogeiton) 두 사람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들은 BC 514년에 폭군 히피아스(Hippias)를 암살하고 현장에서 붙잡혀 사형 당했다. 하지만 몇 년이 채 안 돼 그들의 이미지로 동상이 세워지고, 영웅으로 추대돼 그들의 컬트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들이 바로 최초로 아테네의 아고라(agora)에 동상이 세워진 역사상의 실제 인물이다.

엄격히 말하면 그들이 죽음으로써 공식적인 영웅으로 추대가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히피아스를 내리치기 직전의 액티브한 포즈로 지금 우리에게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프린스 같은 ‘영웅’들이 2000년이 지난 후에도 클레오스를 누릴지는 알 수 없다.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도 고대 그리스 시대와 다름없이 불멸의 영웅이 항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영웅들은 우리의 잠재된 능력을 반영하며 더 높은 이상을 바라보게 하는 신성한 매개체인 것이다.

김승중 - 서울대학교 천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했다. 프린스턴대 천체물리학과에서는 우주론을, 콜롬비아대학 예술사고고학과에서는 희랍미술을 전공해 각각 박사학위를 받았다. 콜롬비아 박사과정에 들어가기 전에는 버지니아대학에서 미술사학 석사코스를 밟았다. 이 시기 다양한 현지발굴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고고학의 생생한 지식을 얻었다. 현재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희랍미술고고학을 가르치고 있다.

201606호 (201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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