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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 새누리당을 ‘대선절벽’에서 구한 반기문의 뚝심 

목표 정해지면 누구도 못 말려!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비행기마저 빨리 달리게 하는 등 일처리 철두철미… 비난받을 운명 알면서도 유엔의 내부개혁 밀어붙여

▎5박6일간의 방한 일정을 소화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부부가 5월 30일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 2004년 3월 2일. 반기문 외교통상장관 일행을 태우고 인천공항을 이륙한 대한항공 여객기는 미국 워싱턴을 향해 전속력으로 날았다. 엔진의 출력을 한껏 높여 예정보다 한 시간 일찍 덜레스 국제공항에 닿을 수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린 반 장관은 곧바로 백악관으로 향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애당초 반 장관의 방미 일정표에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 약속 같은 것은 잡혀 있지 않았다. 출국 당일 아침 인천공항으로 가는 승용차에서 주미 한국대사관으로부터 ‘부시 대통령 면담이 잡혔으니 오전 11시20분까지 백악관으로 가라’는 연락을 받았다. 낭패였다. 반 장관이 탄 비행기의 워싱턴 도착 예정시각은 오전 10시10분. 아무리 서둘러도 워싱턴 공항에서 백악관까지 1시간 10분 내에 가는 것은 혼잡한 교통사정을 감안하면 불가능에 가까웠다. 당시 수행했던 김숙 북미 국장이 이 사정을 비행기 사무장에게 알렸고 비행기가 초고속으로 운항한 끝에 면담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고 반 장관이 기자들에게 밝혀 세상에 알려진 에피소드다.

당시 정황과 관련해 김숙 전 유엔대사는 “부시 대통령 예방은 우리가 먼저 요청한 게 아니었다”면서 “참여정부 1년 동안 훼손된 한미동맹을 복원하는 반 장관의 역할을 기대하고 미국 측에서 먼저 배려해준 사례였다”고 밝혔다. 당시 청와대에서 반 장관과 함께 일한 박선원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은 같은 사안을 두고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박 전 비서관은 “비행시간 단축은 반 장관이 현장에서 도출한 결론”이라며 “그가 목표를 정하면 집요한 면이 있다는 걸 거듭 깨닫게 해준 사건”으로 기억했다.

# 2016년 5월 25일. 이날 제주도 서귀포의 롯데호텔에서 열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초청 관훈클럽 간담회는 예정시각보다 1시간 반이나 늦게 시작됐다. 반 총장의 제주공항 도착이 계획보다 1시간 이상 지연된 탓이다. 세계 인도주의 정상회의가 열린 터키 이스탄불에서의 출발이 늦어졌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반 총장은 10여 년 전과 달리 이날은 12시간 정도 날아오면서 서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초청한 중견언론인 모임 관훈클럽 관계자들이 시간에 쫓긴 나머지 간담회가 겉돌지나 않을까 마음을 졸였다. 주인공은 맨 마지막에 나타나는 법인가? 시간이 늦은 만큼이나 화려하게 등장한 반 총장은 대한민국의 정치지형을 뒤흔드는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내 나이가 어때서”에서 드러난 속내


▎5월 25일 제주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반기문 총장 부부. 그의 방한에 국내·외 비상한 관심이 모아졌다.
그는 “내년 1월 1일이면 한국사람이 된다”면서 “한국 시민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는 그때 가서 고민해, 결심하고 필요하면 조언을 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유엔 사무총장에서 돌아오면 국민으로서의 역할을 더 생각해보겠다”고 언급해 총장 임기를 마치고 대선 출마를 적극 검토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2017년 대선과 관련한 종전의 반 총장 발언 수위는 “남은 총장 임기 동안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많이 도와달라”던 선을 한 번도 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관훈클럽 간담회에서는 “사실 국가(한국)가 너무 분열돼 있다. 정치지도자들이 국가통합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 “누군가 대통합을 선언하고 국가통합에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등 국내 정치의 속살을 파고드는 발언이 이어졌다. 심지어 자신이 줄곧 대선주자로 주목받는 현실에 대해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았고 노력한데 대한 평가가 있구나 하는 자부심을 느끼고 자랑스럽고 고맙게 생각한다”고 응답해, 속내를 거침없이 드러냈다는 반응을 자아냈다. 간담회에서는 내년 대선을 기준으로 한다면 역대 대통령 중에서 최고령군에 속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건강에 대한 질문에 반 총장은 “1년에 하루라도 아파서 결근하거나 감기에 걸려 쉰 적이 없을 정도로 체력 같은 건 별문제가 안 된다”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반 총장에게 이날은 역사적인 날로 기억될지 모른다. 5박6일 동안의 방한(訪韓) 일정의 첫 단추를 꿴 이날 한국의 정치에 돌풍을 몰고 와서 그렇다.

평소 민감한 질문을 요리조리 잘 빠져나간다고 해서 ‘기름 장어’라는 별명이 붙은 그가 보여준 직설적인 화법은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이었다.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둔 발언을 작정했다는 관측이 증폭됐다. 2년 전 ‘국내 정치 관련 관심 시사 보도는 아는 바도 없고 사실이 아니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직무수행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으니 국내 정치 보도를 자제해주길 바란다’ 등의 보도자료를 내던 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대응이다.

관훈클럽 간담회는 총선 후 첫 반 총장 방한이라는 계기와 맞물려 국내외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관훈클럽 패널들도 의미 있는 답변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을 느꼈다고 한다. 간담회에 참석한 관훈클럽의 한 관계자는 “간담회 서두에 나온 ‘신체 나이’ 질문에 반 총장이 ‘내 나이가 어때서’라며 속내를 내비치면서 이후 메가톤급 답변이 줄을 이었다”고 대선 거취 관련 발언이 쏟아지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당초 관훈클럽 간담회는 ‘비정치’-‘비공개’라는 조건 하에 성사됐지만 현장은 온통 정치에 관한 문답으로 장식됐던 것이다. 반 총장의 사실상 대선출마 선언은 이런 경로를 거쳐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이튿날인 5월 26일 반 총장은 전직 외교장관 및 전·현직 외교부 인사들과 조찬을 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전날 발언이 “과잉 확대 해석됐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관훈클럽 간담회에서의 발언이 큰 파장을 몰고 온 데 따른 숨고르기 내지 수위조절 발언쯤으로 간주됐다. 이번 제주 방문에는 반 총장의 측근으로 불리는 김원수 유엔 사무차장, 오준 주유엔대사, 김숙 전 유엔대사 등 이른바 반기문 사단의 주요 멤버들이 총집결했다. 그 자체로도 정치를 하겠다는 메시지를 품어내고 남는 행보였다.

여론조사기관들도 반 총장이 포함된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종전까지는 반 총장 측의 요청에 따라 지지도 조사에서 반 총장은 빠져 있었다.

여권 지지층을 각성케 하다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 총장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한국갤럽이 6월 7~9일 전국 성인남녀 1002명을 상대로 실시한 대권주자 지지율 조사(표본오차 95%±3.1%p)에서 반 총장이 1위에 올라섰다. ‘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반 총장을 꼽은 응답자가 전체의 26%로 가장 많았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16%로 뒤를 이었으며,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10%로 3위에 머물렀다. 반 총장은 고향인 충청권(38%)과 대구·경북(30%), 부산·울산·경남(31%)은 물론 인천·경기(25%)와 호남(22%)에서도 수위를 차지했다.

총선 전만 해도 반 총장은 정치적 모호함 그 자체였다. 여권 부동의 1위 잠룡으로 주목받지만 그의 의사를 확인할 방도가 없었다. 그래서 김우석 미래전략개발연구소 부소장은 “반기문 대안론이 끊임없이 나오겠지만 여전히 ‘긁지 않은 복권’이나 마찬가지”라고 유보적 평가를 내린 적도 있다. 5박 6일 방한 이후 반 총장의 역할을 보는 시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김 부소장은 “반 총장의 방한은 새누리당이 불임정당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면서 여권 지지층을 각성케하는 효과를 낳았다”고 분석했다. 또 고만고만한 여권의 잠룡들도 나름의 역할을 갖고 대선 가도에 뛰어들 의욕과 동기를 일깨우는 계기도 제공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보수 진영에 긍정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원포인트일지라도 여권의 내분을 막고 균열을 봉합하는 데 성공했다”고 반 총장 방한의 함의를 정리했다.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중추적 역할을 여권의 한 인사는 ‘반기문 효과’로 크게 네 가지를 들었다.

먼저 총선 참패로 피폐해진 여권의 대권 경쟁에 불꽃이 재 점화될 가능성을 불어넣었다고 했다. 새누리당은 총선 참패 후 기존의 잠룡들이 사실상 궤멸된 상태로 내몰리면서 대선 전망을 상실했다. 김무성 의원은 대표직을 사퇴하면서 2선으로 물러났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낙선의 여진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보수 주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지지도 조사에서 반 총장에 이어 2위를 달리곤 했던 유승민 의원은 공천파동 와중에 탈당, 당외(黨外) 인사의 신분으로 전락했다. 새누리당의 분열과 정계개편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마당에 반 총장이 등장함으로써 여권은 안정화로 가는 전기를 마련한 셈이다. 오 전 시장은 반 총장의 대선 관련 발언에 대해 “여권의 후보군이 많지 않은데 반 총장이 그렇게 적극적인 의사 표시를 한 건은 여러모로 국민에게 희망을 드린 것”으로 평가했고, 김 전 지사도 “반 총장을 비롯한 훌륭한 분들이 당으로 많이 와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절박한 상황”이라고 반색했다. 반 총장 방한을 계기로 새누리당이 ‘대선절벽’에서 빠져나오는 양상이다.

총선이 가져온 여소야대 정치지형에서 순식간에 야권으로 쏠릴 듯하던 공직사회의 기류도 다시 균형을 잡아간다는 게 이 여권 인사의 진단이다. 반 총장은 여야를 통틀어 차기 주자군 지지율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상당기간 선두를 고수할 가능성도 있다.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가 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보수 진영은 흔들리는 공무원들의 집단심리를 다잡는 효과를 본다.”

덩달아 총선 이후 본격화하리라던 박근혜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도 일단 동결 국면에 접어드는 양상이다. 나아가 핵분열을 거듭하리라던 새누리당도 내부 결속과 전열 재정비에 필요한 시간을 벌게 됐다고 이 인사는 분석했다.

반기문은 ‘치명적인’ 국제 정치의 수장


▎2012년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이해찬 당시 민주통합당 대표(오른쪽)와 만난 반기문 총장. 최근 이해찬 의원은 반 총장의 대선 도전에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야권이 반 총장 견제에 나서는 건 예정된 수순이다. 반 총장 방한 직후인 6월 초 미국을 방문한 이해찬 의원은 반 총장의 대선 출마 가능성과 관련해 “내가 정치를 하면서 외교관을 많이 봤지만 대선 후보까지 간 사람은 없었다”며 빗장을 걸고 나왔다.

이 의원은 비록 공천 탈락과 함께 더불어민주당을 탈당, 무소속 신분이지만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이자 친노 진영의 중심 인물이다. 갈등이 심한 정치에 외교관 캐릭터는 맞지 않다는 이유를 댔다. 그는 “정치인은 물에 빠지면서도 건너가야 한다. 하지만 외교관은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지 않는다”면서 “(반 총장도)국내 정치를 하는 데 과연 적합한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고 ‘반기문 대망론’을 일축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참여정부 시절 반 총장이 외교통상장관일 때 총리를 지내 서로가 잘 아는 사이다.

반 총장 이한(離韓) 이후 대외 발언을 자제하던 국내 친반(親潘, 친반기문) 인사들이 이 의원의 발언에 발끈하고 나섰다.

“이해찬 의원(세종시)은 유엔 사무총장의 역할이 뭔가를 너무 모른다. 대통령의 지시를 전달하는 단순한 외교관과 달리 역사를 창조하는 막강한 세계적 지도자다.” 충청권 재경 인사 모임인 ‘백소회’ 총무를 맡고 있는 임덕규(80) 월간 디플로머시 회장의 말이다. 백소회는 1992년 충청권 출신 인사들이 ‘백제의 미소’를 줄여 만든 친목모임이다. 임 회장은 같은 충청권인 이 의원이 ‘반기문 대망론’에 공연히 딴지를 건 것처럼 받아들이는 듯했다.

반 총장과 45년 지기라고 자신을 소개한 임 회장은 2006년 유엔 사무총장 선거 당시 주한 외교 사절들이 참여하는 반사모(반기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장을 맡아 우호 여론 조성에 힘을 보탰다. 반 총장과 그만큼 오랫동안 가까이 지낸 인물이다. 임 회장은 “반 총장은 국내 정치가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치열하고 치명적인 국제 정치의 수장”이라며 “상대방을 없애거나 민족을 말살할 수도 있는 국제 무대에서 매일같이 결단력, 조정력, 정치력을 발휘하는 이가 바로 반 총장”이라고 옹호했다. 국내 정치를 좀 했다는 이 의원 같은 이들이 반 총장을 피상적으로만 이해한다는 표정이었다.

임 회장은 반 총장의 진면목을 알게 하는 사례로 코트디부아르 내전 상황을 소개했다.

2011년 대선 결과에 불복해 내전을 일으킨 코트디부아르 대통령이 유엔평화유지군과 프랑스군의 지원을 받은 반군에 체포된 적이 있었다. 유엔평화유지군의 이례적인 전투개입이 사태의 종결을 앞당겼다. 정부군의 공격으로 민간인은 물론 유엔사무소 직원 11명이 다친 게 도화선이 됐다. 반 총장은 유엔 헬기까지 동원해 정부군을 제압했고,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당시 대통령에게 프랑스군의 참여를 요청하기도 했다.

“선거 결과 거부하는 세력은 세계 평화의 파괴범”


▎5월 29일 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한 반 총장.
그때 상황과 관련해 임덕규 회장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 “자칫하다가는 내전 간섭이라는 역공을 부를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반 총장에게 특정국가의 선거에 무력을 행사해도 되는 근거를 물었다. 이에 반 총장은 ‘국제 평화를 이루자면 민주주의가 발전해야 하고, 그 민주주의의 핵심은 선거다. 민주적인 선거 결과를 부정하는 이는 세계 평화의 파괴범이므로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야 한다’는 논리를 펴더라. 그는 자신의 신념과 행동에 단호한 인물이다.”

임 회장, 박진 아시아미래연구원 이사장 등에 따르면 반 총장은 내전에 개입해 남수단의 독립을 이루고, 미얀마 민주화에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래서 2012년 미얀마 방문시 미얀마 국회 사상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는 기회도 가졌다는 것이다.

박 이사장은 1983년 하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 석사과정에서 반 총장을 만났다. 반 총장도 당시 외무부 국제연합 과장직을 마치고 같은 과정을 밟고 있었다. 대학원 수업은 리딩(과제물 읽기)과 케이스 스터디(사례 연구) 중심으로 돌아갔다. 당시 마흔 줄에 들어선 반 총장도 나이 어린 후배들과 스터디 그룹을 꾸렸다고 한다. 반 총장은 스터디 그룹에 제출해야 할 숙제를 단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다는 게 박 이사장의 기억이다. 박 이사장은 “케네디스쿨 수업은 읽어야 할 자료가 방대한데 밤을 새워서라도 자신이 맡은 분야를 깔끔하게 정리해서 스터디 멤버들과 공유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돌이켰다. 박 이사장은 반 총장을 일러 ‘기본적으로 성실하고 부지런할 뿐만 아니라 요행을 바라지 않는 철저한 준비형’으로 소개했다.

그는 반 총장이 얼마나 집요하고 치밀한가는 다음과 같은 사례에서도 엿볼 수 있다고 했다. 반 총장은 당시 만난 케네디행정대학원 동료들에게 지금도 연말연시 연하장을 보낸다고 한다.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으나 30년 세월이 지난 동문들에게도 ‘제(弟) 반기문’이라 서명한 연하장을 보낸다”고 전했다.

그도 유엔 사무총장직이 화려한 외교관의 자리로 본다면 오산이라고 지적했다. 외교와 정치는 별개라는 국내 정치권 일각의 견해에 반론을 폈다. “유엔은 세계 각국이 치열하게 들이대는 정치의 현장이다. 유엔의 목표인 빈곤·기아·질병 퇴치를 위해 전쟁을 치른다. 유엔의 수장은 화려한 외교관이 아니라 엄청난 정치적 결단과 행보가 요구되는 고독한 자리다. 개발도상국 독재자, 내전의 지도자와도 만나 담판하고 양보와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런 건 유려한 외교적 언사로 이뤄지지 않는다.”

정치적 노선과 별개로 친노 진영에서 평가하는 반 총장의 실무능력은 박하지 않다. 노무현재단의 기획위원으로 있는 박선원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은 참여정부 시절 외교보좌관, 외교통상장관으로 일한 반 총장과 외교·안보 분야에서 호흡을 맞췄다. 정부 초기에는 한미관계를 놓고 정부 내에 동맹파와 자주파간 논쟁과 알력이 외부로 노출되는 등 불협화음이 잦았다. 반 총장이 청와대 외교보좌관을 거쳐 2004년 외교통상장관에 취임한 뒤로는 논쟁에 말려들지 않고 한미관계 안정화에 기여했다고 박 전 비서관은 돌이켰다. 1970년 외시에 합격한 대선배로 조직 장악이 순조로웠고, 노무현 대통령의 의중에도 정통했기에 내부 업무 협조가 매끄러웠으리라는 분석이다.


▎충북 음성군 원남면의 반 총장 생가 뒤편에 조성된 반기문평화랜드
참여정부 1년 동안 한미관계가 이런저런 사유로 원활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이라크 파병, 주한미군 기지이전, 주한미군 감축, 북핵 문제 등에 혼신의 힘을 다해 부시 행정부와 공통분모를 찾고 우리의 국익에 맞는 정책을 구사하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박 전 비서관은 “당시 대외정책을 푸는 데 있어 대통령 측근 참모들은 전투적인 기풍으로, 관료 출신인 반 장관은 전문가적 관록으로 주어진 역할을 다 했다”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그를 유엔 사무총장으로 밀어준 것도 신중하고 무난한 일처리를 평가한 결과”라고 말했다.

유엔으로 간 반 총장도 음양으로 참여정부에 힘을 보태줬다고 한다. 2007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세력에 의해 국내 교회 교인 23명을 피랍당하는 사건이 터졌을 때다. 중동 현지에 급파된 한국 대표단이 이동 수단이 없어 발을 구를 때 유엔 전용기를 활용할 수 있었던 것도 한국 출신 유엔 사무총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게 당시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아시아가 배출한 반 총장에 대한 서구 언론의 평가는 야박한 편이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둔하다(the dullest)’, ‘역대 최악의 한 사람(among the worst)’ 등으로 반 총장을 묘사했다. <뉴욕타임스>의 ‘힘이 없는 관측자’나 <월스트리트저널>의 ‘유엔의 투명인간’이라는 평가도 반 총장에게는 뼈아플 수 있다.

훌륭한 유엔 사무총장이 되는 법, ‘3 to 5’


▎새누리당은 4월 총선 참패로 비상대책위 체제로 전환했다. 반 총장의 방한을 계기로 새누리당은 전열 재정비에 들어갔다.
이태식 전 주미대사, 박진 이사장 등 반 총장을 잘 아는 인사들은 적극 엄호에 나선다.

반 총장이 추진한 인사, 조직 부문의 유엔 개혁이 내부의 반발을 산 결과와 무관치 않다는 입장이다. 이들에 따르면 반 총장은 총장 취임 초 오전 8시 출근을 고집했다. ‘9 to 5’(나인 투 파이브)에 익숙한 유엔 직원들이 불편해지는 건 당연한 이치다. 게다가 ‘순환보직’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면서 관행에서 기득권을 누리던 세력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발생하는 오해와 악감정이 반 총장 평판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오히려 일을 많이 해서 탈이 났다는 지적은 다음과 같은 사례에서도 충분히 유추해볼 수 있다. 박선원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은 2007년 겨울 유엔에서 만난 반 총장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취지의 얘기를 전해 들었다고 한다. “총장이 되고 역대 사무총장에게 인사를 갔다. 한 전임 총장은 내게 이렇게 조언했다. ‘훌륭한 유엔 사무총장이 되려면 오후 3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라.’ 유엔 공무원들은 일을 챙기고 업무에 관여하는 총장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로 들렸다.”

반 총장은 전임 총장의 말과는 반대로 움직였다고 박 전 비서관은 전했다. “당시 반 총장은 그렇게 못하겠다고 하더라. 그는 워커홀릭이기 때문이다. 그때 벌써 반 총장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으리라는 느낌을 받았다. 반 총장은 늘 웃으면서 나이스하게 응대하지만 직원들은 거부감을 가졌을 법하다.”

김숙 전 유엔대사도 이에 공감했다. 그는 “반 총장이 당선인 시절부터 주변에서 그런 권유를 받은 게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조언대로 쉬엄쉬엄 일을 했다가는 본인의 건강이 안 좋아지리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는 반 총장이 평소 우스갯소리처럼 되뇌었다는 말에 투영해보면 이해가 간다. “요즘 잠에서 깨면 지구에 별일은 없나, 70억 인구는 안녕하신가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그리고 해외 각국을 돌아다니는 게 일이다 보니 시차가 사라진 듯하다. 그냥 자면 그 곳이 내 집과 같은 느낌이다.” 그에게는 일하지 말고 쉬라는 게 더 힘든 일인 셈이다.

반 총장과 함께 근무했거나 가까이 지낸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가 그리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라는 인상이 그려진다. “반 총장이 대선에 나선다면 자질 측면에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레벨을 가진 후보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진보진영 인사도 있다.

“만약 대선에 나선다면 철저한 준비를 할 양반”

일각에서는 반 총장의 측근 김숙 전 유엔대사가 서울 도심에 사무실을 내고 사전 준비작업을 한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이에 대해 김 전 대사는 “그건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인 일을 하려고 작은 오피스텔에 책상 하나, 컴퓨터 하나 둔 게 전부”라며 “제3자 입장에서 잘 모르고 하는 얘기들일 뿐”이라고 반 총장 관련설을 부인했다. “반 총장은 유종의 미를 거두고자 연말까지는 총장 업무에만 집중한다고 말했다. 그리해놓고 국내에서 남 몰래 어떤 일을 꾸민다면 입바른 소리를 했다는 빈축을 사게 마련이다. 전혀 그런 일은 없다.”

그럼에도 주변의 적지 않은 이들이 반 총장의 대선 출마에 방점을 둔다. 반 총장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성일종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반 총장의 방한 효과에 대해 “우리에게도 국가를 믿고 맡길 만한 지도자가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줬다”고 평가했다. 성 의원은 반 총장의 내년 대선 도전 확률이 높아졌다고 본다. 성 의원은 “빈곤·의료·기후·일자리·핵·경제 등 인류가 당면한 모든 문제를 다뤄본 이가 반 총장”이라며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에 대처할 수 있는 지도자인 반 총장에게 여야를 막론하고 눈길을 주고 있다”는 추켜세웠다.

박진 아시아미래연구원 이사장은 반 총장의 제주 발언에 그렇게까지 불타는 권력의지가 담겼다고는 보지 않으면서도 “나라에 대한 깊은 사명감, 책임감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유학시절의 인연뿐만 아니라 반 총장의 외교부 후배(11회 외무고시 합격)이자 국회의원(3선),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으로도 반 총장과의 접촉면이 넓다. 그는 “오랜 세월 겪어본 반 총장의 캐릭터로 볼 때 만약 대선에 나선다면 철저한 준비를 할 양반”이라고 평했다.

그렇다고 반 총장에게 따라다니는 대선 경쟁력 관련 의문 부호가 지워지는 건 아니다. 온실 속에서 자란 외교관이 거친 정치판에서 잘 버텨낼지 갸우뚱하는 이들도 많다는 말이다. 김우석 미래전략개발연구소 부소장은 “반 총장 자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론이 있을 수 있다”면서 “그가 새해 들어대선 레이스에 뛰어들지는 여전히 유동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새누리당 간판으로는 대선 국면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고 그렇다고 독자세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한계가 있다.”

반 총장이 내년 대선을 겨냥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물밑 작업이 진행될 공산이 크다고 서성교 바른정책연구원장은 내다봤다. 대선이란 게 외교 분야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 등 제 분야의 인맥과 정책이 동원되는 총력전이다. 선거에 임박해 급조된 캠프를 꾸리기보다는 시간의 여유를 두고 차분히 준비하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이라고 서 원장은 말한다. “효율적인 국정운영이라는 관점에서도 국가를 이끌 지도자의 준비는 빠를수록 좋다. 미리부터 정책을 연구하고 뜻을 함께하는 인재들을 구해야 한다. 그래야 집권 후 ‘회전문 인사’, ‘돌려막기 인사’와 같은 함정을 피해간다.” 앞으로 대선까지는 1년 6개월 정도 남았고 6개월 뒤에는 그가 돌아온다.

-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201607호 (201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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