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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두테르테 필리핀 차기 대통령의 ‘범죄와의 전쟁’ 

법보다 주먹 앞세운 독재? “피비린내 나는 자리 될 것”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필리핀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대통령, 취임 6개월 안에 강력범죄 척결 약속… “썩은 정치인과 공무원, 군 쓸어 버리겠다”고 공언, 소수 정치가문과의 전쟁으로 이어질까

▎‘필리핀의 트럼프’로 불리는 그는 막말 후보로도 빈축을 샀지만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됐다. 전문가들은 19세기부터 이어져온 필리핀의 ‘가문정치’에 피로를 느낀 국민들이 두테르테를 당선시켰다고 분석한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차기 대통령의 별명은 ‘더티 해리(Dirty Harry)’다. 더티 해리는 범인들을 끝까지 추적해 사살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미국 할리우드 영화를 말한다. 두테르테는 실제로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섬에 있는 다바오시의 시장으로 재임하면서 자경단을 운영하며 재판 절차를 거치지 않고 마약상 등 범죄자 1700여 명을 처형했다. 그 자신도 중국인 소녀를 유괴해 성폭행한 납치범 3명을 직접 총살한 적이 있다고 실토했을 정도다.

두테르테는 5월 9일 실시된 필리핀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인 민주필리핀당(PDP-Laban)의 후보로 출마해 집권 여당인 자유당 소속 마누엘 로하스 전 내무장관과 무소속의 그레이스 포 상원의원, 야당인 통합민족당의 제조마르 비나이 부통령을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두테르테는 전체 투표자의 39%인 1500만여 표를 얻어 23%의 득표율로 950만여 표를 획득해 2위를 차지한 로하스 전 내무장관을 600만여 표가 넘는 큰 차이로 따돌렸다.

두테르테는 6월 30일 대통령에 공식취임한다. 초법적 살인 행위까지 저지른 인물이 투표라는 민주적 절차를 거쳐 국가 최고 지도자에 선출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두테르테는 애초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군소 후보였다. 선거 유세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두테르테는 강력 범죄가 기승을 부렸던 다바오시에서 초법적인 범죄 소탕을 벌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지도가 급상승했고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1945년 필리핀 중부 레이테에서 태어난 두테르테는 고등학교 시절 2차례나 퇴학당하고 3번째 학교에서 졸업할 정도로 반항 기질이 강한 문제아였다.

초법적 범죄소탕 검사출신으로 대통령에 당선


▎필리핀은 매해 총기 거래, 부패, 마약, 매춘, 살인 등 강력범죄가 빠르게 증가하며 치안이 가장 불안한 국가 중의 하나로 꼽혀왔다.
산베다 대학 법대에 들어간 후 마음을 잡고 공부해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뒤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중반 다바오시에서 지방검사를 지냈다. 올해 71세인 두테르테는 다바오시 부시장을 거쳐 1988년 시장에 처음 당선됐으며, 중간에 하원의원 시절을 빼고 7차례나 당선돼 22년간 시장으로 재직했다. 가장 큰 업적은 한때 범죄가 만연해 있던 인구 150만 명의 다바오시를 필리핀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이자 상업도시로 변모시켰다는 것이다.

민다나오 섬은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반군 활동 때문에 필리핀 내에서도 치안이 불안한 지역으로 손꼽힌다. 시장 선거 때 “다바오를 범죄 없는 도시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두테르테는 자신의 공약을 실천했다. 강력한 테러 진압과 마약 소탕 작전을 벌였고, 민다나오 섬의 이슬람·공산 반군과 평화협상에 나서기도 했다. 특히 그는 강력범들에게는 ‘무관용(Zero Tolerance)정책’을 적용해 엄격하게 처벌함으로써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이런 과거 경력(?)이 언론을 통해 자세히 보도되자 유권자들은 두테르테를 비판하기보다 오히려 환호했다.

필리핀 국민들은 그동안 강력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데도 공권력이 제대로 척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상당한 불만을 표시해왔다. 지난해 상반기 필리핀에서는 88만 건의 범죄가 발생했는데, 한 해 전의 같은 기간보다 46% 늘어난 숫자다. 이 중 살인·강간 등 강력범죄도 35만 건에 이른다. 통계청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범죄 발생 빈도도 2012년 226건에서 2014년 1004건으로 증가해 5배 가까이로 뛰었다. 경찰의 만연한 부패와 간단한 절도사건 하나를 처리하는 데에도 몇 개월에서 몇 년까지 걸리는 열악한 사법시스템 때문에 범죄는 갈수록 늘어갔다. 두테르테는 바로 이 점을 부각시키면서 치안 불안에 떠는 필리핀 국민의 마음을 움직였다.

두테르테가 내건 공약들 중 핵심은 “취임 6개월 안에 범죄를 뿌리뽑겠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경찰 3000명을 증원하고 급여를 갑절로 늘리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그는 또 범죄 용의자와 범죄 조직원이 체포 과정에서 저항할 경우 경찰에게 사살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범죄 소탕작전에 군대를 투입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그는 군대에서 저격수와 명사수를 동원해 범죄자들을 죽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성년자 야간 통행금지… 어기면 부모에 ‘유기죄’ 적용도


▎필리핀 앙헬레스에서 경찰관이 순찰을 돌고 있다.
특히 군인과 경찰이 직권 남용으로 기소되면 옷을 벗기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마약상을 붙잡는 경찰관이나 군인에게는 최고 300만 페소(7644만 원)의 포상금을 주겠다고 공약했다. 포상금 규모는 소규모 마약상 5만 페소(127만 원), 마약 조직의 관리자급 100만 페소(2548만 원), 마약왕 300만 페소로 차등화했다. 그는 마약상을 죽은 채로 잡든 산채로 잡든 적어도 100명의 시신에 대한 포상금을 줄 수 있을 정도의 자금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마약 매매에 연루된 경찰관이 자진 사퇴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경고했다. 두테르테는 또 ‘미성년자 야간 통행금지 조치’ 도입 계획도 제시했다. 18세 이하 미성년자가 오후 10시 이후 보호자 없이 외출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어길 시에는 해당 청소년의 부모를 ‘유기죄’로 체포해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공공장소에서 흡연을 금지하고 오전 2시 이후 술집에서 술을 파는 것도 금지할 계획이다.

선거 기간 중 유세에서 그는 “대통령이 되면 모든 범죄자를 처형하겠다”, “범죄자 10만 명을 죽여 물고기 밥이 되도록 마닐라 만에 버리겠다”, “마약상을 수용할 장례식장이 더 필요할 것이다”, “피비린내 나는 대통령 자리가 될 것이다”, “자식이라도 마약을 하면 죽이겠다”는 극단적인 발언을 내뱉기도 했었다. 그는 2006년 가톨릭계의 반발로 폐지된 사형제의 부활도 추진할 계획이다. 인구의 83%가 가톨릭 신자인 필리핀에선 1987년 사형제를 없앴다가 1993년 살인과 아동 성폭행, 납치 범죄에 한해 이를 부활시켰지만 2006년 다시 폐지됐었다. 심지어 그는 “강도, 살인, 성폭력 범죄자들은 두 번 교수형 해야 한다”면서 “총알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총살형보다 교수형이 낫다”고 말하기도 했다.

필리핀은 1946년 미국의 식민 지배를 벗어난 뒤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가장 잘나가는 국가로 도약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입은 피해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고, 자원과 농산물이 풍부한 덕분이었다. 또 20년간 권력을 장악했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을 몰아낸 1986년 ‘피플 파워’는 한국과 태국, 대만의 민주화운동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필리핀은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에서 후진국으로 전락했다.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한국의 10분의 1 수준이고, 월 평균 수입이 23달러(2만2000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극빈층이 전체 인구의 35%를 차지한다.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 재임 기간 연평균 6%대의 높은 경제 성장을 이뤘지만 고질적인 빈부격차는 완화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으며 범죄는 여전히 만연하고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필리핀 국민은 대부분 범죄를 뿌리뽑으려면 강력한 통치와 공권력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두테르테가 천명한 ‘범죄와의 전쟁’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라몬 카시플레 필리핀 정치 분석가는 “유권자들은 필리핀의 만연한 부정부패와 범죄를 척결할 강력한 지도자를 원했다”고 진단했다. 필리핀 국민들은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처럼 부정부패와 범죄를 막고 국민들을 이끌 강력한 지도자를 택한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후보시절 막말로 필리핀의 ‘트럼프’란 비판도


▎필리핀과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어와 두테르테 차기 대통령의 대중 외교에 큰 관심이 쏠린다. 2014년 미군과 합동 군사훈련을 하는 필리핀 해병대.
하지만 두테르테의 강경한 통치가 자칫하면 필리핀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실비아 클라우디오 필리핀대 교수는 “필리핀의 높은 범죄율은 빈곤, 사회적 차별, 성적 불평등 등 경제·사회적 문제에 의한 것”이라면서 “경제 발전 없이 6개월 내 단속과 처벌에만 의존해 해결하겠다는 두테르테의 정책은 실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 포츠머스대 톰 스미스 교수도 “두테르테는 언론의 철저한 검증이 없었기에 부패한 체제에 맞선 사람으로 포장됐다”면서 “미국 공화당의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는 기행과 독설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지만 두테르테는 과거 독재자처럼 철권통치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큰 차이”라고 지적했다.

인권단체들도 두테르테가 강력한 범죄소탕 정책을 추진하면서 사법체계를 무시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 경우 자칫하면 법보다 주먹을 앞세운 독재자로 군림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일각에선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계엄 시절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필리핀 인권위원회는 두테르테의 성폭행 관련 발언이 여성인권 헌장과 관련법을 어겼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두테르테는 선거 유세 중 1989년 다바오 교도소 폭동사건 때 수감자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된 호주 여성 선교사에 대해 “그녀는 아름다웠다. 시장인 내가 먼저 해야 했는데”라고 막말을 했었다. 두테르테는 이를 비판하는 호주와 미국 대사에게 “입을 닥쳐라”라면서 외교관계 단절까지 경고하기도 했다. 인권위원회의 지적에 대해 두테르테는 “나는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고 있다”며 인권위원들에 입을 다물고 사퇴할 것을 주장했다. 두테르테는 “아내 외에 여러 명의 애인이 있다”고 자랑했고, “비아그라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법도 제대로 지키지 않고 민주주의와 인권도 존중하지 않는 두테르데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필리핀은 소수 유력 가문이 부와 권력을 독점하는 현상이 강한 국가이다. 역대 대통령도 대부분 소수 유력 가문 출신이다. 평범한 가정 출신이 정계에 진출하는 것은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찾아보기 어렵다. 한마디로 ‘개천에서 용이 나기 어려운 사회 구조’에서 유력한 소수 가문 출신이 그동안 출세가도를 독점해왔다. 필리핀 정계를 좌지우지하는 유력 가문으로는 아키노, 마카파갈, 로하스 등이 꼽힌다.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의 모친은 1986년 대통령에 당선된 코라손 아키노다. 코라손 아키노 전 필리핀 대통령은 남편 베니그노 아키노 주니어 상원의원이 1983년 독재자 마르코스에게 암살당하자 정치가로 변신해 필리핀 최초 여성 대통령이 됐다. 2009년 8월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아들인 베니그노 아키노 3세는 2010년 5월 실시된 대선에서 당선되면서 세계 최초의 모자(母子)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마카파갈은 ‘부녀(父女) 대통령’을 탄생시킨 가문으로 유명하다. 필리핀 두 번째 여성 대통령에 오른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전 대통령은 필리핀 9대 대통령이었던 디오스다도 마카파갈의 딸이다. 그녀는 2001년 조지프 에스트라다 13대 대통령이 사임하자 나머지 임기를 승계해 14대 대통령에 취임했고 2004년 대선에서 당선됐다.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은 부정부패로 중도 퇴진했다. 두테르테와 대선에서 경쟁한 로하스 전 내무장관도 유력 정치 가문 출신이다. 로하스 전 내무장관은 1946년 필리핀 독립 공화국 초대 대통령을 지낸 동명의 마누엘 로하스 전 대통령의 손자이자 게리 로하스 전 상원의원 아들이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도 루손섬 북부의 명문가 출신이며 그의 부인인 이멜다 역시 중부지역의 명문가인 로무알데스가 출신이다. 이멜다는 2010년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장녀인 아이메 마르코스는 일로코스 주지사에 당선됐으며 장남 페르디난드는 주지사와 하원의원을 거쳐 상원의원을 지냈으며 이번 선거에 부통령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가문세습 정치에 반기 든 필리핀 민심


▎미국·필리핀 등은 중국이 영유권 분쟁지역 안에 군사용 시설을 조성한 데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필리핀의 ‘가문 정치’ 역사는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은 1898년 스페인으로부터 빼앗은 필리핀을 통치하면서 유산가(有産家)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했다. 그러자 몇몇 가문은 투표권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더욱 강화하면서 공직은 가문의 상속물이 되고 말았다. 독립 이후 각 정당은 정책과 비전을 공유하는 이념 집단이 아니라,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토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집단이 됐다. 각급 선거는 유력 가문들의 세력 대결이나 다름없었고 정당 정치도 지역 토호 간의 쟁투로 변질됐다. 이 같은 가문 정치는 필리핀이 7000여 개의 섬으로 나눠져 지역 색이 강한데다, 오랜 식민지 기간 동안 식민 당국과 결탁한 토호 세력들이 부와 권력을 세습했기 때문이다. 아이메 마르코스는 “필리핀의 정치 체제는 친족과 혈연관계의 결속에 따라 작동된다”면서 ‘가문 정치’가 필리핀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인정했다. 이 때문에 필리핀은 제도상으로만 민주주의가 도입돼 있을 뿐 실제로는 사회계층 간 이동이 거의 없는 봉건국가라고 볼 수도 있다. 정치권을 장악한 유력 정치 가문들은 정당에 상관없이 인기 있는 지도자에게 붙었다가 조금이라도 인기가 떨어지면 쉽게 배반하고 돌아선다.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지도자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지방 귀족인 정치 가문들은 관리구역의 경제권은 물론이고 주요 공직도 독차지한다. 대대손손 세습된 권력 덕분에 유력 가문 출신 정치인들은 부패나 비리를 저질러도 정계에 복귀하는 일이 다반사다. 오죽하면 “정치 가문의 힘은 국가보다도 강하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뉴욕타임스(NYT)는 필리핀의 40여 개 정치 가문이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76%를 장악하고 있다면서 하원의원의 80%, 지방자치단체장 대다수가 정치 가문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 고리를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소수 유력 가문이 주기적으로 권력을 넘겨받듯 국가를 지배하는 가문 정치가 필리핀의 발전을 막고 부패를 낳은 주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두테르테가 대통령이 된 것은 필리핀 국민들이 권력을 독점해온 정치 가문들에 대해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두테르테는 “나는 특권층의 자식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면서 정치 가문들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을 자신에 대한 지지로 유도했다. 두테르테는 “난 아무런 배경도, 후원자도 없다”며 “썩은 정치인과 공무원, 군을 모두 쓸어 버리겠다”고 공언했다. 두테르테는 농민을 위해 토지제도 개선을 약속하고 지역별로 10억 페소(250억원)를 투자해 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필리핀 저명 작가 미겔 시주코는 “국민들은 범법자뿐만 아니라 소수 정치 가문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다”면서 “두테르테가 당선이 된 것은 바로 이런 민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리처드 헤이다리안 마닐라 살레대 정치학과 교수도 “소수 정치 가문 출신들이 주도해온 필리핀 정치에 피로감을 느낀 국민이 두테르테를 선택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두테르테 자신도 세습정치를 해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두테르테의 딸 사라는 대선과 함께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99.6%의 득표율로 3년 임기의 다바오시 시장에 당선됐다. 두테르테가 대선에 출마하면서 다바오시 시장 자리가 비게 되자 딸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그의 아들 파올로는 다바오시 부시장에 당선됐다. 사라는 2010년에도 다바오시 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당시 두테르테는 ‘시장 3회 연임’ 제한 규정에 걸리자 사라가 대신 시장 선거에 나섰다. 두테르테는 부시장에 당선돼 딸 밑에서 일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3년 뒤인 2013년 다시 시장 자리를 차지했다.

필리핀에서는 대통령만 6년 단임제이고 나머지 선출직은 상원의원 2회, 하원의원 3회 등 연임 횟수를 제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 가문은 가족 구성원들이 선출 직위를 바꿔 출마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계속 차지하고 있는데, 두테르테도 예외는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정치 무대가 중앙인지, 지방인지에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두테르테의 부친도 1950년대 다바오 주지사를 지냈다. 두테르테가 다바오시 시장이 된 것도 부친의 정치적 후광 덕분이었다.

국제사회는 두테르테가 추진할 외교 정책에 주목한다. 후보시절 잇단 막말과 기행으로 우려를 낳았던 두테르테는 외교의 문외한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특히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놓고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은 두테르테의 외교 정책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두테르테는 5월 22일 기자회견에서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와 관련, 아키노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미국을 안심시켰다. 두테르테는 “우리는 서방 제국의 동맹”이라면서 “중국의 점령에 영향을 받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과 함께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발언은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아키노 대통령의 외교노선을 계승하겠다는 뜻으로 일단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은 남중국해에 함정과 항공기를 파견하는 ‘항행의 자유작전’을 벌이면서 중국을 견제하고 있고 아키노 대통령의 필리핀 정부는 미국과 ‘확대 방위협력협정’을 맺고 자국의 군사기지 5곳에 미군 주둔을 허용했다.

두테르테는 주둔비용 등과 관련한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5월 17일 두테르테와의 전화 통화에서 “미국은 민주주의와 인권, 법치, 포괄적인 경제 성장을 포함한 각 분야에서 필리핀과의 동맹을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테르테도 “양국간 협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자”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이 대통령에 취임하지도 않은 두테르테에게 직접 축하 전화를 한 것은 두테르테의 친중국 행보를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두테르테가 범죄소탕 과정에서 재판 등 사법절차를 무시하고 인권유린을 자행할 경우 대외정책에서 인권 문제를 중시하는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남중국해 문제 풀 대중(對中) 외교의 향방에 주목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5월 30일 두테르테에게 축전을 보냈다. 시 주석은 축전에서 “양국 선린우호와 호혜협력을 심화하는 것은 양국 지도자 공동의 책임”이라면서 “양국이 공동으로 노력해 양국관계를 건강하게 발전하는 궤도로 다시 돌려놓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시 주석의 축전은 중국과 필리핀이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이뤄진 유화 제스처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 강화를 위해 인공섬 건설과 군사시설 배치 확대 등의 조치를 해왔으며 필리핀은 상설중재재판소(PCA)에 남중국해 분쟁을 제소하고 미국, 일본 등과의 군사 공조를 강화하며 맞서왔다. 두테르테는 그동안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에 대해 친미·반중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대화 창구는 열어둘 것이라며 관계 개선에 임할 생각을 밝힌 바 있다. 두테르테는 “중국이 만든 남중국해 인공섬에 제트 스키를 타고 가서 필리핀 국기를 꽂겠다”면서도 “경제적 대가를 조건으로 중국과 직접 협상할 수 있다”며 기존 친미 노선에서 선회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실제로 두테르테는 중국에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여왔다. 그는 “나의 외조부는 중국인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중국 혈통이 있다”면서 “많은 중국인이 오래전에 필리핀으로 와서 경제와 사회에 중요한 공헌을 해왔고 나는 이런 중국 혈통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두테르테는 축전을 보내온 시 주석을 ‘위대한 주석’이라고 칭송하기까지 했다.

중국 언론들은 두테르테가 과거 다바오시 시장 자격으로 수 차례 중국을 방문했고 투자·무역 등에서 중국과 협력 강화에 주력해왔다고 보도했다. 중국 언론들이 두테르테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는 등 긍정적 논조의 기사를 게재하고 있는 것은 중국 정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중국 정부는 필리핀의 새 정부가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에 대한 독자적인 해법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두테르테 정권의 외무장관으로 내정된 퍼펙토 야사이는 “필리핀은 오랜 안보동맹인 미국과 거리를 두지 않으면서도 어느 나라에도 아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야사이 내정자는 “중국과의 양자대화를 제외하고는 남중국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다”면서 “상설중재재판소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이를 존중하는 동시에 중국과 스카보러 섬(중국명 황옌다오, 필리핀명 파나탁 섬) 영유권 문제를 놓고 양자협상을 벌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카보러 섬은 중국과 필리핀이 영유권을 다투고 있는 곳으로, 2012년 4월 양국이 해상 대치까지 한 이후 중국이 실효지배하고 있다.

두테르테가 향후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아·태 지역의 주도권을 놓고 패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세력 판도도 변할 수 있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FT)는 필리핀이 지정학적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스러운 지역에 있지만 두테르테는 세련된 외교를 위한 인내심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면서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공격적인 주장을 다루는 데 크게 실수할 위험성을 노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두테르테는 필리핀의 외교를 미국 편중 상태에서 균형 있는 상태로 복원해야 한다며 두테르테가 중국과 필리핀 관계를 얼마나 회복시킬지는 시간을 갖고 지켜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무튼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놓고 오락가락하는 발언을 계속하는 두테르테가 대통령 취임 이후 어떤 입장을 보일지에 따라 아·태 지역의 세력 구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201607호 (201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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