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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다이사쿠 칼럼]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 씨의 예술관 

“바이올린으로 표현할 마음이 정말 많습니다” 

이케다 다이사쿠 창가학회인터내셔널 회장

▎1992년 4월 도쿄에서 이케다 다이사쿠 SGI 회장 부부와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 씨가 만나 대화하고 있다.
‘바이올린의 현자’ 메뉴인 씨는 음악이 곧 자신인 사람이었다. 그를 안내하자 “아, 꽃이 환상적으로 아름답습니다”, “일본 분들은 마치 꽃에 말을 걸 듯이 꽃을 사랑합니다”라며 섬세하게 감정을 전하는 목소리와 세련된 언행으로 인사했다.

조촐한 저녁식사를 대접하는데 여성 분이 식사를 내오고 내갈 때마다 “맛있습니다”, “맛있습니다”라고 정중한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누구에게도 상냥한 사람일 것이다. 목소리에 마음이 담겨 있었다.

‘상냥함’, 거기에 인간이라는 증거가 있지 않을까. 어느 작가가 말했다. ‘상냥하다는 말에는 뛰어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남의 아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인간으로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열 살이면 신동, 열다섯 살이면 천재, 스무 살이 넘으면 보통사람’이라고 하는데 신동이 그대로 위대한 인물이 된다면 그 훌륭한 본보기가 예후디 메뉴인 씨일 것이다.

일곱 살에 독주를 시작해 열한 살 때는 카네기홀 무대에 섰다. 열세 살 때는 브르노 발터가 지휘하는 베를린필하모닉과 함께 연주했다. 아인슈타인 박사는 이 소년의 연주를 듣고 감동한 나머지 무대로 뛰어 올라가 메뉴인을 끌어안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역시 하늘에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상냥한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1992년에 만났을 때 메뉴인 씨는 일흔다섯 살이었다. 만나기 수년 전부터 회견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아인슈타인 박사의 일화를 말하자 “박사는 작은 곤충에서도 ‘신’을 발견하는 분이었습니다. 따라서 제 연주가 특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하고 겸허하게 대답했다.

내가 “아인슈타인의 관점은 모든 생명에 ‘불성’이 있다고 보는 대승불교와도 통합니다. 위대한 과학자의 뛰어난 직관입니다” 하고 말하자 메뉴인 씨는 수긍하며 중요한 말을 했다. “인간은 어른이 되면서 여러 가지 지식을 습득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 지식이 동정이나 격려와 같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방해하는 벽이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 지식이 사람을 오만하게 만들고 망치는 불행이 너무나도 많다.

“저는 아직도 어딘가 어른답지 못한 구석이 있습니다. 냉정한 분석보다 직관이 앞서는 듯한…”

수줍은 듯한 말 속에 어른의 총명함과 아이의 순수함이 섞여 있었다. 유연하고 천진난만한 동심을 지켜온 진정한 강자라고 나는 느꼈다.

상냥한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메뉴인 씨는 몹시 바쁠 터인데 아직도 온 힘을 다해 인권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메뉴인 씨는 위대한 지휘자 푸르트벵글러의 명예 회복을 위해 힘썼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나치스 독일 아래서 유대인을 구했는데도 불구하고 전쟁이 끝난 뒤에 ‘나치 협력자’라고 규탄받았다.

“저는 유대인입니다. 유대인이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하는 연주회에서 솔로로 연주한다는 사실을 세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습니다.”

유대인들은 어떻게 그렇게 바이올린 연주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지 물었다. “오랜 세월 탄압받았던 유대인에게는 바이올린으로 표현해야 할 ‘마음’이 정말 많았습니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며 피눈물을 흘렸다.

내가 발표한 평화제언도 예전부터 숙독했다고 한다.

“유엔의 환경개발 구상에 찬성합니다.”, “세계 사람들의 선의를 모을 세계 기구가 필요합니다.”, “전 세계 사람이 국가나 민족을 초월해 ‘인류를 구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이야기하는 모습,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입니까.”, “세계는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간 ‘힘의 균형’을 회전축으로 한 옛날 사고방식은 이제 버려야 할 때가 왔다. 메뉴인 씨는 자신의 이기주의, 국가의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지도자를 두고 ‘권력은 오래 군림하는 사이에 인간을 잊고 만다’고 엄히 말했다.

인간을 잊은 지도자는 아이와 같은 ‘유연한 마음’을 잊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현대는 인간으로서 소박한 바람을 깔보고 조소하는 오만한 마음을 당연하게 여긴다.

핵억지론이 한창이던 무렵, 인간끼리 무기를 들이대고 서로 꼼짝도 하지 못하는 상태를 평화라고 부르자는 학자들도 있었다. 도리와 인간성에 어긋난 이론을 ‘전문적인 자료’로 요란하게 장식해 자랑스레 이야기했다. ‘이상하다’고 말하면 ‘국제정치의 현실’을 모르고 유치한 몽상에 잠겨 있는 사람이라고 비난받는 풍조마저 있었다. 안데르센의 <벌거벗은 임금님>에 나오는 어른들을 보고 웃을 자격이 있는 사람을 찾기 힘든 시절이었다.

지식만으로는 현명해질 수 없다. ‘마음’이 없으면 지혜로 깊어지지 않는다.

세계는 너무나도 뻔뻔해지고 말았다. 메뉴인 씨는 ‘세계에 예전 같은 정중함, 고요함이 사라지고 말았다’고 한탄했다. 그런 세계에서 예술이야말로 인간성에 눈뜨게 한다. 기계처럼 딱딱하게 굳은 마음을 풀어준다.

‘낮에는 마을을 청소하고 밤에는 사중주를’

메뉴인 씨는 “낮에는 마을을 청소하는 사람들이 밤에는 사중주를 연주하는 세계가 우리가 꿈꾸는 세계입니다.” 하고 말했다. ‘대중에게 음악을’, 내가 1963년에 민주음악협회(민음)를 창립한 이유도 문화로 민중의 마음의 대지를 윤택하게 가꾸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미(美)에 대한 공통된 감정으로 세계를 잇고 싶었다.

예술은 ‘명령’할 수 없다. 마음이 마음에 외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권력과 정반대다.

‘마지막 탱고왕’이라고 부르는 아르헨티나의 오스왈도 푸글리에세 씨와 만났는데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서민의 마음을 억누르는 사람과는 감연히 싸우는 것이 문화계에 종사하는 사람의 책임입니다.”

예술은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는다. 예술은 괴로움이 가득한 인생을 위로하고 희망을 보낸다. 예술과 하나가 된 일류 예술가도 뽐내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뽐내는 마음, 남을 깔보는 교만함, 그것은 문화와 가장 먼 마음이다.

1951년, 메뉴인 씨의 첫 일본 방문으로 일본인은 오랜만에 제대로 된 유럽음악을 만날 수 있었다.

문예평론가 고바야시 히데오 씨는 “나는 전율을 느끼고 눈물도 흘렸다.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음률인가. 나는 내가 얼마나 굶주리고 있었는지 분명히 알았다”라고 썼다.

함께 회견한 사람 중 한 사람이 그 콘서트에 간 추억을 말했다.

“첫 월급이 4000엔이던 시절에 입장료가 1500엔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럼 이것을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더니 마치 요술을 부리듯 메뉴인 씨의 손끝에 1000엔짜리 지폐가 나타났다고 했다.

메뉴인 씨의 장난기 어린 얼굴에는 ‘유연한 마음’으로 한평생 꿋꿋이 투쟁한 고귀함이 아름다운 선율처럼 떠올랐다.

이케다 다이사쿠 - 1928년 1월 2일 도쿄 출생. SGI(국제창가학회)회장. 창가대학·창가학원·민주음악협회·도쿄후지미술관·동양철학연구소 등 설립. 유엔평화상·한국화관문화훈장 외 23개국 28개 훈장, 세계계관시인 등 수상 다수. 전 세계 대학으로부터 366개의 명예박사·명예교수 칭호 수여. 토인비 박사와 대담집 <21세기를 여는 대화>를 비롯한 저서 다수.

201607호 (201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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