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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대선과 국가개조의 시대정신(1)] 김종인-남경필 특별대담 

“독일 국가모델에서 협치 배운다” 

사회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정리 김포그니 기자 glutton4@joongang.co.kr / 사진 박종근 기자
대한민국 권력 재분배는 수도 이전 통해 시도할 수도… 라인강의 기적 일군 독일 초대 경제수장 에르하르트 리더십에 공감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대통령 권력을 내각과 반대당에 분배하는 ‘협치형 대통령제’를 개진했다.
<월간중앙>이 연속토론 대기획 ‘2017 대선과 국가개조의 시대정신’ 연재를 시작한다. 유력한 차기 국가 리더들이 내년 대선의 주요 어젠다를 놓고 집중토론하는 기획이다. 첫 회는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대담이다. 제1야당의 대표와 여당 유력 대선후보가 만나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월간중앙>의 야심 찬 대선기획에 독자의 열렬한 관심과 참여를 기대한다. <편집자>

7월 8일 오후 김종인 더민주 대표와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만났다. <월간중앙>이 기획한 <김종인-남경필 특별대담-2017 대선의 시대정신>을 통해서다. 남 지사가 김 대표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을 방문했다. 두 시간에 걸쳐 이뤄진 토론을 통해 두 사람은 “제왕적 대통령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점에 공감했다.


▎에른스트 에르하르트 전 독일 총리. 전후 독일 경제정책을 이끌며 ‘라인강의 기적’을 일군 주인공이다.
독일 국가모델에 대한 두 사람의 공통된 관심이 토론이 이뤄지는 데 중요한 매개가 됐다. 독일 민주주의는 ‘연정체제와 사회적 시장경제’로 개화된 체제다. 김 대표의 경제민주화 지론도 이런 맥락 안에서 파악될 수 있다. 남 지사의 전매특허가 된 ‘협치 정치 브랜드’도 독일 국가모델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김 대표는 독일 뮌스터 대학에서 경제학 석·박사를 받았다. 논문 주제도 ‘개발도상국에 있어서 분배 및 재분배 정책의 기능성과 한계’였다. 독일 유학 시절 김 대표는 경제학뿐 아니라 정당과 선거제도 등 독일 정치에 대해서도 깊이 공부했다. 독일 사회 전반에 대한 방대한 지식은 그 공부 과정을 통해 축적됐다.

남 지사의 정치·경제관을 관통하는 단어도 ‘독일’이다. 그는 지난 2013년 국회에서 60여 명의 의원과 새로운 국가모델을 연구하는 모임을 만들고, 독일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지난 4월 독일 바이에른주를 방문해서는 초대 부수상과 경제장관을 지낸 루트비히 에르하르트의 사진을 직접 찍어오기도 했다. 남 지사는 취임 후 최초로 한국판 ‘연정’을 실시했고, 영감을 준 인물로는 독일의 메르켈 총리를 꼽았다. 남 지사의 ‘공유적 시장경제’도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에서 따온 개념이다. 바로 에르하르트의 중심 사상이다.

김 대표가 여권에 몸담았을 때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돈독했다. 남 지사는 김 대표의 경제민주화 철학에 깊이 공감했고, 김 대표는 남 지사를 여권의 차기 지도자 감으로 후한 점수를 줬다. 2012년 대선 때 김 대표는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맡았고, 남 지사는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의 대표를 맡았다. 아마도 두 사람은 정치와 경제 등 다양한 국가이슈에 대해 속 깊은 대화를 많이 나눴을 것이다.

“대선 후 지금의 3당 체제 무너진다”


▎김종인 더민주 대표는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이 계승되는 것이 독일 국가모델의 강점”이라 말했다.
김 대표는 올해 1월 더민주 비상대책위원장(당시)을 맡고 난 후에도 남 지사를 챙겼다. 1월 중순 남 지사와 저녁을 같이하며 “올해부터 내년까지 대선 구도는 크게 소용돌이 칠 것이다. 지금과는 아주 다를 테니 당장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는 덕담 이상의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차기 대선을 향한 두 사람의 광폭행보가 이번 토론을 통해 더욱 주목을 받게 됐다.

김 대표는 “내년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현재의 정당체제가 무너지고 양당 체제로 회귀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김 대표는 또한 “진정한 협치의 정치, 다당제 실현 등은 대통령제 하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개진했다. 남 지사가 최근 제안한 ‘헌법개정을 통한 수도 이전’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방안’이라며 지지 입장을 밝혔다. 김 대표는 “수도권 집중은 엄청난 비용을 유발하며, 국가 효율성을 현저하게 떨어뜨린다. 국가 차원의 대책이 모색되어야 할 시점”이라 부연했다.

남 지사는 4년 중임 대통령, 의석에 비례해 각 정당 국회의원이 입각하는 ‘협치형 대통령제’를 개진했다. 그는 ‘협치형 권력구조’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20대 국회가 올해 안에 선거법과 관련 제도의 손질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복합선거구제 등 다당제 출현이 가능한 선거법이 만들어지면 결국 이 선거법이 헌법 개정의 기폭제로 작용할 것”이라 전망했다.

김 대표는 남 지사의 ‘협치형 대통령제’가 “내각제처럼 운영되는 대통령제라 볼 수 있다”면서 그런 시스템이 우리 현실 정치에서 실현되기 위해선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그럴 바에는 대통령과 내각의 역할이 분명하게 규정되는 내각제가 더 바람직하며, 국민들의 정치 인식도 내각제를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이미 성숙해 있다”고 진단했다.

제1 야당 대표와 여당의 광역자치단체장이 만나 공개적인 토론을 한다는 게 전례 없는 일이다. 게다가 남경필 지사는 새누리당의 차기 대선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어 만남의 의미가 묘하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이하 김종인): “내가 남 지사를 대통령 만들어주기 위해 이 자리에 부른 것이다.”(일동 폭소)

남경필 경기도지사(이하 남경필): “이 회동이 여야 협치 정치의 시작, 그 상징적 사건이 되었으면 좋겠다.”

개헌 논의의 봇물이 터졌다. 두 분 모두 최근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남 지사는 개헌을 통한 수도 이전을 개진했는데.

김종인: “수도 이전은 지난 정권 때 위헌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개헌을 통해야만 가능해졌다. 수도권이 너무도 비대하다.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한 지역에 살면서 국토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는 없다. 나의 문제의식도 남 지사와 같다.”

남경필: “김 대표와 내가 우려하는 것은 권력의 집중이다. 서울 등 수도권에 집중된 기득권이 문제다. 이 기득권의 철폐는 경제민주화와 같은 맥락이다. 수도권에 돈과 권력이 다 몰려 있는 현상을 이제 해체하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의 수도 이전론은 기득권 깨자는 생각이 근저에 깔려 있다. 불통의 상징 청와대, 특권의 상징 국회를 경제와 분리시키자는 것이다. 서울은 경제수도로, 세종시는 정치수도로 삼으면 된다.”

수도권 민심 이반하면 더민주는 폭삭 망해


현직 경기도지사로서 놀라운 제안이다. 수도권 유권자들이 과연 좋아하겠나. 김종인 대표의 정치 기반도 서울로 봐야 하는 것 아닌가?

김종인: “수도권의 규제를 완화해달라는 요구가 봇물을 이룬다. 토지 용도를 변경해달라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하면 국가의 균형발전이라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수도권 집중은 엄청난 비용을 유발하며, 국가의 효율성을 현저하게 떨어뜨린다. 세종시의 어정쩡한 기능을 봐라. 비효율적이다. 지지 기반을 떠나 남 지사의 수도 이전론은 수도권 과밀을 해결하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남경필: “경기도 각 지자체의 모든 플랜과 정부와 협의한 택지 개발 등을 근거로 시뮬레이션 해보니 2020년 경기도 인구는 1700만이 된다. 수도권에 3000만 명이 모여 사는 시대가 도래한다. 전 인구의 60%다. 끔찍하지 않나? 수도권 사람들 결코 행복하지 않다. 전 국민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나라는 대수술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을 리빌딩해야 한다. 기득권을 깨고 대한민국 공간을 재구성해야 하는데 그 핵심이 수도 이전이다. 권력이 몰리는 곳에 사람도 모인다. 공간의 구조조정을 통해 권력의 구조조정을 이루자는 것이다. 2010년 국회의원 시절에도 국토 균형발전을 위해 청와대와 국회, 대법원을 옮기는 수도 이전을 제안한 바 있다.”

이번 총선으로 3당 체제가 성립됐다. 좋든 싫든 이 체제가 개혁의 출발이다. 여기에 어떤 의미 부여를 할 수 있을까.

김종인: “국민들이 ‘의식적으로’ 3당 체제의 출현을 원했던 것은 아니다. 더민주와 새누리가 짜증나는 정당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더민주 입장에선 호남에서 패배하고도 수도권에서의 압승으로 제1야당이 됐다. 이건 행운이었지만 아주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수도권 민심이 이반하면 더민주는 폭삭 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남경필: “3당 체제 성립은 양당체제는 그만 봤으면 좋겠다는 국민의 집단지성이 작용한 결과로 생각한다. 영남과 호남의 공고한 기반을 토대로 적당히 싸우면서 기득권 챙기는 양당 구조의 종언을 명한 것이다.”

3당 체제는 과연 최적화된 체제인가. 국민이 바라는 생산적 협치를 담보할 수 있을까?

김종인: “3당이 아니라 4당이라 해도 대통령 중심제 아래서 진정한 협치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선진화법 때문에 법안을 제대로 통과시키려면 1당과 2당이 합해야 하는 구조다. 3당이 어떤 당과 연합해도 180석을 만들 수 없는 것이다. 협치를 제대로 하고, 다양한 국민의사를 반영하려면 현재의 정당구조가지고는 안 된다. 게다가 내년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현재의 정당체제가 무너지고 양당 체제로 회귀할 가능성이 크다.”

남경필: “김 대표의 견해에 공감한다. 이번 총선 국민들의 선택은 제도를 바꾸라는 것이다. 그래서 개헌이 필요하다. 이번 국회에서는 개헌 논의의 전단계로 선거구제 개편을 논의해야 한다. 올해 안에 완결하는 게 좋다. 개헌이라는 큰 어젠다로 가기 위한 격발기(trigger)가 바로 선거구제 개혁이다. 소선구제와 중대선거구를 혼합한 복합선거구제의 도입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복합선거구제는 국회의원의 다양한 기득권을 보장해주는 제도인 것 같기도 하다.

남경필: “개혁은 기득권을 가진 사람을 설득하지 못하면 실패한다. 거기에 기득권을 가진 사람을 변화로 이끄는 방향성이 있어야 한다. 절묘한 수가 복합선거구 안에 담겨 있다. 시골에서는 소선거구제를 하고, 예를 들면 수원과 같이 50만에서 100만 명 이내에 드는 도시는 2명에서 한 4명을 뽑고, 서울 같은 경우는 권역별로 나눠 대선거구를 하자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개헌 원할 수 있다


▎6월 13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20대 국회 개원식. 민의를 수렴해 국가개조의 중책을 실천해야 하는 책무를 부여받았다
헌법 개정 전에 선거법과 관련 제도를 고치는 게 올바른 수순일까?

김종인: “선거법 개정도 헌법 개정과 패키지로 논의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남경필: “개헌과 상관없이 선거법 개정은 국회의원들이 동의하면 가능하다고 본다. 양당제를 깨고 지역주의 정당을 그만둔다는 취지의 개정이라면 대통령의 의지와도 별 상관없이 추진할 수 있다.”

최근 두 분 모두 개헌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김 대표는 내각책임제를, 남 지사는 대통령 중임제와 정당 의석비례 각료 배분의 권력구조를 제시했다. 어떤 차이가 있나?

남경필: “‘협치형 대통령제’라고 네이밍했다. 한국형이라고도 할 수 있는 특수한 형태다. 원내 제1당에게 총리를 주고 각 정당의 의석수에 따라 장관을 배분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각 당에서 차출된 장관들과 함께 국정을 잘 리드할 수 있을까?

남경필: “지금처럼 청와대 수석 비서관들이 내각을 컨트롤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대통령은 비서가 아니라 각료들과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비서는 서포터의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은 거꾸로 수석들이 장관을 지배하는 구조인데, 이를 고쳐야 한다. 대통령의 리더십을 인정하면서 국정의 중심을 대통령과 장관으로 설정하자는 것이다.”

김종인: “남 지사 생각은 내각제처럼 대통령제를 운영하자는 얘기인 것 같다. 막상 대통령이 된 사람들은 굉장히 이행하기 어려운 시스템이다. 내각제처럼 제도적으로 딱 묶어놓지 않으면 어렵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대통령은 내 손으로 뽑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뽑게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국가를 운영하는 내각은 총리한테 맡겨 총리가 연정을 하면서 끌고 가는 형태가 바람직하다. 그러니까 총리직은 능력 없는 사람은 수행할 수 없다.”

개헌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정치인이 많아졌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대선 유력주자들이 반대하면 힘든 것 아닌가?

김종인: “박 대통령이 임기 중 개헌을 원할 수도 있는 정치지형이 성립될 수도 있다. 세상에 고정된 것이 어디 있나? 그러나 대통령 출마를 원하는 사람들이 내각제 반대하는 건 맞다. 그리고 내각제가 되려면 현재 국회의원들의 수준이 굉장히 높아져야 한다. 현재 우리 국회의원들이 내각을 구성할 정도의 수준에 도달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내각제를 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의 수준은 영원히 올라가지 않는다. 국회의원이 내각을 담당하려면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 아마도 국회의원들이 내각을 점유하게 되면 지금보다 더 능력 있는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민도가 낮으면 내각제 못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국민의 정치인식은 충분히 성숙돼 있다. 이번 총선 때 수도권의 민심을 보며 그런 판단을 하게 됐다.”

남경필: “우리 대통령제의 폐해 중의 하나가 정책의 연속성이 없는 것이다. 같은 정당이 연속해 집권해도 이전 정부의 정책은 다 폐기한다. 우리가 독일의 연정과 협치 정치에서 배워야 할 것이 정책의 연속성이다. 대통령제 하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김 대표 말대로 국회의원의 자질도 큰 문제다.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국회의원이 도의원, 시의원과 똑같은 일을 한다. 국회의원이 아침에 일어나 청소하고 지역구 행사 다니고 상가를 다닌다. 국정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어디 있겠나? 중대선거구제를 만들어 어느 정도 단위를 이루어 국정을 고민하고, 정책연구를 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일상이 되어야 한다.”

아데나워와 에르하르트, 독일 협치의 위대한 전통


▎1. 샤를르 드골 프랑스 대통령(왼쪽)과 콘라트 아데나워 서독 총리는 2차대전 후 양국 화해를 추진해 독일 통일의 기반을 조성했다. / 2. 1960년대 중반 에른스트 에르하르트(맨 오른쪽) 총리가 독일 농부를 만나 대화하며 격려하는 장면.
두 분의 공통점은 독일 국가모델에 대한 관심이다. 초대 총리 콘라트 아데나워와 부총리 루트비히 에르하르트의 ‘정권 내 협치’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종인: “두 사람은 정치적인 견해가 달라서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무려 14년간이나 같은 정권 안에서 일했다. 아데나워는 전후 프랑스와 관계를 복원하는 ‘서방정책’에 몰두했고, 에르하르트는 경제 부흥을 이끌었다. 독일 국가모델의 가장 큰 강점은 정파 간 연정의 정신,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은 계승된다는 일관성이다. 대통령제 하에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꿈이다.”

남경필: “루트비히 에르하르트는 라인강의 기적을 이끈 사실상의 경제 지도자였다. 그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정치 지도자 중의 한 명이다.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를 힘차게 추진한 에르하르트의 소명의식과 책임감은 경이로운 것이다. 우리 정치인들이 그런 자세를 배우고 실천했으면 좋겠다.”

정치 성향이 달랐던 아데나워와 에르하르트가 14년이나 같이 일했다는 것이 놀랍다. 이 같은 협치의 정치를 배태한 독일 정치 시스템의 근간이 궁금하다.

김종인: “독일은 과거의 잘못을 냉정하게 반성하는 기조 위에 헌법을 만들고 공화국을 재건했다. 독일의 시스템은 독일 사람들끼리만 결정한 게 아니다. 승전국의 영향이 매우 컸다. 나치와 같은 체제가 다시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 주변국의 최대 관심사였다. 히틀러와 같은 사람이 나와서도 안 되고, 바이마르 공화국의 혼란했던 내각이 되어서도 안 되었던 것이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 내각제의 단점과 나치의 폐해를 동시에 지양한 것이 오늘 날의 독일 헌법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 헌법에 의해 좋은 지도자가 많이 배출됐다. 초대 아데나워 수상과 에르하르트 부수상이 정치와 경제를 조화시켜가며 독일 부흥을 주도했다. 대단하다고 본다. 처음부터 정적 같았던 두 사람이 같은 내각에서 그토록 오래 일했다. 이견이 있더라도 국가를 위해 인내한 것이다. 독일 협치 전통의 위대함을 볼 수 있다.”

남경필: “김 대표 말씀처럼 과거 독일은 경제정책 실패로 인한 바이마르 공화국 붕괴와 국가사회주의 등장으로 커다란 역사적 교훈을 얻었다. 독일은 19세기 후반부터 빈부 격차, 도시근로자의 빈곤, 독점재벌의 등장 등 자본주의 폐해가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경제질서의 형성을 전적으로 시장에만 맡길 수 없다는 교훈을 줬다. 자유주의를 옹호했던 리더들은 그 기간 망명 또는 반 망명의 상태에서 목숨을 걸고 토론했고, 그 결과물이 독일 정치·경제 체제의 근간을 이뤘다.”

아데나워를 전후(戰後) 독일의 국부와 같은 인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루트비히 에르하르트의 역할에 더 높은 평점을 주는 것인가?

김종인: “독일 경제부흥의 기초를 닦은 것은 역시 에르하르트다. 강단도 있고 실력도 출중했다. 그는 1948년 화폐개혁 당시 서방측 점령지역의 경제 총수 역할을 했다. 화폐개혁을 단행할 때 자신의 경제정책과 사상을 한꺼번에 발표해 당시 군정 당국을 놀라게 했다. 가격 통제와 배급제와 같은 조치를 상의 한번 없이 철폐했다. 군정사령관 명령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헌병한테 붙잡혀가기도 했다. ‘패망한 나라에서 무슨 시장경제냐’는 군정 경제전문가들의 힐난을 들었지만 그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군정장관과 담판할 때 ‘나를 처벌할 권한은 있어도 내 머리를 바꾸지는 못한다’는 말로 대항했다. 에르하르트의 그런 용기와 소신이 오늘날 독일 경제질서의 기본이 된 것이다.”

남경필: “에르하르트 총리와 같이 ‘체제를 만드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 나는 전후 독일을 풍미한 질서자유주의에 주목한다. 질서자유주의는 시장경제체제를 중시하면서도 경제질서를 전적으로 시장에만 맡겨두면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없다고 보는 관점이다.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의 바탕이 되는 철학이다. 정부가 적절한 규칙과 제도의 틀을 만들어 공정한 경제질서를 창출해야 하는 것이다.” 독일 정치·경제 시스템의 성립 과정은 결코 간단치 않을 것이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역사는 독일 국가모델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김종인: “독일은 유럽의 다른 열강보다는 좀 늦게, 1871년에 통일 국가를 형성했다. 지금은 유럽에서 가장 효율적인 경제, 가장 안정된 정치 시스템을 갖춘 나라가 됐다. 사회적으로도 두드러진 불평, 불균형이 없는 나라다. 우리나라와 같이 분단을 겪고, 또 통일을 이룬 나라이기도 하다. 별 자원이 없다는 측면에서 우리와 흡사한 측면이 많다. 독일의 경제발전도 처음에는 국가가 주도했다. 그것마저 우리와 비슷하다. 역사와 환경이 비슷한 정치·경제의 선진국으로서 우리 정치인들이 주목하는 나라가 바로 독일이 아닌가 한다. 독일은 1945년까지는 민주주의하고는 거리가 먼 나라였다. 독일 통일을 이끈 비스마르크는 의회와 의회주의를 멸시했던 사람이다. 당시 의회도 있고 정당도 있었지만 실질적인 민주주의 국가는 아니었다. 그러다가 1차대전 패전 직후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한번 해보자고 해서 만들어진 게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이다.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 제정은 헌법학자가 주도했다. 헌법에 모든 것을 다 규정해놓으면 민주주의가 된다고 생각했다. 자유주의 좌파 출신 법률가 휴고 프로이스가 이 헌법을 초안했다. 주로 스위스와 영국 헌법을 참고했다. 이 헌법은 종래의 비스마르크 헌법과는 달리, 민주주의 원리의 바탕 위에서 독일국민의 통일을 지도이념으로 하고, 다시 사회국가적 이념을 가미한 특색 있는 헌법이다. 인간다운 생존(생존권)을 보장하면서 경제조항을 규정함으로써 20세기 현대 헌법의 전형이 되었다. 1933년의 히틀러 정권에 의한 수권법(授權法)을 비롯한 일련의 입법에 의하여 사실상 폐지되었으나, 그후 세계의 민주주의 여러 나라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연대와 협력이 일상화된 독일 정치


▎2012년 10월 2일 독일 통일 22주년을 하루 앞두고 미군과 소련군복을 차려입은 두 남성이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남 지사는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와 함께 특히 연정 시스템에 매혹된 것 같다. 독일 연정과 사회적 시장경제는 어떤 점에서 탁월한가?

남경필: “독일 연정은 안정된 정부를 구성하는 데 목적이 있다. 온건 다당제 경향의 정당정치가 발전한 나라가 독일이다. 연대와 협력이 일상화되어 있다. 제도적으로 연정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독일의 총리는 의회에 들어가는 순간 네 발로 걷는다’는 말이 있다. 1949년 이후 지금까지 독일 총리는 8명밖에 배출이 안 됐다. 총리마다 굉장한 장기집권을 했지만 의회에 들어가는 순간 네 발로 걸을 정도로 의회와 분권이 잘 되어 있다. 우리가 이것을 배워야 한다. 기민당·사민당 할 것 없이 전임 정부가 했던 사업을 승계하는 전통이 확립돼 있다. 국가가 해야 하는 장기적인 사업은 10년, 20년 추진해야 하는데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의 연속성이 보장된다. 독일은 역사적으로 분권의 나라다. 그런데 우리는 역사적으로 중앙집권적 경향이 강했다. 국회에 많은 권력을 주는 것에 대해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장점을 잘 조화시켜 우리의 국가 체제를 바꿀 필요가 있다. 초대 수상 아데나워는 독일 역사상 최초로 연정이 필요 없을 정도의 대승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연정을 선택했다. 독일 전후 정치사의 가장 빛나는 명장면이다. 그런 정신을 우리 정치인도 가졌으면 좋겠다.”

김종인: “2차대전 승전국들은 독일이 큰 나라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독일을 농업국가로 만드는 계획도 했었고, 심지어는 독일의 역사책을 다 불살라서 과거를 모르게 하자도 얘기도 나왔다. 여기서 경제 총책 에르하르트의 역할을 우리가 다시 봐야 한다. 에르하르트가 1940년대 말 통제경제를 철폐하는 순간, 독일 경제에 숨통이 트였다. 물건이 시장에 나오고 부엌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라인강의 기적’의 시작이라고 나는 본다. 경제를 책임진 사람은 에르하르트처럼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한다. 경제이론에 대한 지식이 중요한 게 아니다. 상황인식을 제대로 해서 뭔가 새로운 걸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 나라의 경제를 맡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도 독일에서 제일 먼저 시작했다. 1947년 스위스 신자유주의 클럽을 결성한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의 생각은 가급적 시장경제 원리에 맡기자는 거였다. 그런데 독일식 신자유주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정부가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겨난 이름이 ‘사회적 시장경제 체제(social market economy)’다. 시장 경제 체제를 보장하면서 시장 자체가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정부가 해결한다는 논리다.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그대로 두면 사회와 시장이 다 깨진다. 자유시장, 사회조화 원칙이 합쳐지는 것이 독일인이 말하는 사회적 시장경제다. 2차대전 이후 시장경제를 가장 잘한 나라가 독일이다. 심지어 레이건 대통령도 ‘최소한 독일만큼의 시장경제는 해야 하지 않느냐’ 이런 얘기를 했다. 독일은 시장경제 전혀 안하고 2차대전 이후 사회주의 경제를 했다고 말하는 학자와 정치인들이 있는데, 그건 무지의 소치다.”

남경필 지사, 유승민 의원 등 새누리당의 개혁적 정치인이 말하는 보수 혁신과 김종인 대표의 경제민주화는 무엇이 같고 다른가?

남경필: “특권적 경제세력을 규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대한민국 경제를 축구경기에 비유하자면 스트라이커는 삼성·현대 등 대기업, 공격형 미드필더는 판교 첨단기업과 스타트업, 수비형 미드필더는 전통적 중소기업이라 볼 수 있다. 거기에 수비수는 은퇴자와 자영업자를 들 수 있고, 골키퍼는 저와 같은 공직자들이다. 대기업은 잘하고 있다고 보지만 반칙을 해선 안 된다. 스트라이커만 있다고 해서 경기를 이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기업 위주 경제성장은 필연적으로 양극화와 잠재 성장률 둔화를 가져온다. 미국식 시스템의 한계가 온 것이다. 양극화는 청년실업과 저출산의 원인인데, 이를 해결하지 못한 채 장기 저성장의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정치·경제 시스템의 근본적 개혁 없이는 저성장 국면을 돌파하기 힘들다. 이것이 보수 혁신의 대강이라고 생각한다.”

보수주의자들의 문제는 보수의 정의를 내릴 줄 모른다는 것


김종인: “우리나라 보수주의자들의 문제는 보수의 정의를 내릴 줄 모른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세계적인 거대한 변화를 일으킨 사람들은 거의 다 보수주의자들이다. 20세기 초 미국 공화당 대통령을 지낸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사례도 그렇다. 19세기 말 미국은 거대 기업들이 군림하는 자본주의 전성기였다. 1890년에 셔먼 반(反)독점법이 제정됐지만 연방정부는 법을 집행하지 않았고 재벌들은 지주회사를 통해 막강한 트러스트를 형성했다. 1902년 3월, 루스벨트의 명령에 따라 미국 법무부는 철도재벌 제임스 힐과 금융재벌 JP 모건을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정부가 드디어 독점 재벌에 대해 칼을 들이댄 것인데, 이를 계기로 사람들은 루스벨트를 ‘독점기업 파괴자(trust buster)’로 불렀다. 이렇듯 보수주의자는 보수를 지키기 위해서 혁신하는 것이다. 보수주의는 기본적으로 자유주의 사상에 입각한 것이다. 그 자유를 지키려면 자유를 조금 양보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유가 지켜지지 않는다.”

독일의 정치모델은 어떻게 보면 타율적으로 주어진 것이었는데, 나름대로 훌륭한 제도로 정착시킨 것 같다. 독일은 유럽 연합의 명실상부한 리더, 세계적인 통일강국으로 성장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남 지사는 정치 지도자의 능력과 소명의식을, 김 대표께서는 통일 독일의 시너지와 파워를 설명해줬으면 좋겠다.

남경필: “독일 사례를 지켜보면서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의무를 생각하게 된다. 지역구 관리하고 당선 한 번 더 하는 게 아니라 에르하르트처럼 소신껏 자기의 철학을 지켜내고 새로운 체제를 만드는 소명감이 필요하다. 독일적 맥락에서 차기 대통령은 연정합의서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다. 권력은 나눌수록 커진다. 연정이 내년 대선의 정치적 어젠다라면 ‘협력하라’는 시대정신이 될 것이다.”

김종인: “독일이 가장 모범적인 민주국가가 된 것은 역설적으로 2차대전에서 완전히 패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통일 전 서독으로도 아주 강력한 나라였다. 독일이 통일 이후 더 막강해진 이유는 시장과 인구가 커졌기 때문이다. 제조업의 경쟁력이 워낙 막강하니까 통일의 효과도 더 컸다. 그래서 나의 지론이 통일은 비용으로 따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그 순간이 오면 싫든 좋든 해야 하는 것이 통일이다. 독일, 대단한 나라다. 19세기의 산업구조를 갖고 21세기에도 경쟁력을 갖췄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도 잘 새겨야 한다.”


▎토론을 마치고 기념 촬영한 김종인 더민주 대표(오른쪽)와 남경필 경기도지사. 두 사람은 “제왕적 대통령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점에 공감을 표시했다.
- 사회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정리 김포그니 기자 glutton4@joongang.co.kr / 사진 박종근 기자

201608호 (2016.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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