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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 인터뷰] 새누리당 잠룡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회개혁론 

“부자를 보는 적대적 시선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글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 정리 유정우 인턴기자 / 사진 김현동 기자
기업의 경영권·의결권과 부의 사회적 환원 빅딜 가능한 시스템 만들어야 할 때… 바람직한 리더십 가진 당대표 선출 위해 소장파와 함께 고민 중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개헌 논의가 사회적 격차와 불평등을 해소하고 기본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8월 9일로 예정된 새누리당 전당대회 당권 경쟁과 관련해 “국민들은 공익은 뒷전인 채 계파의 이익을 다투는 새누리당의 꼴도 보기 싫어한다”면서 “지금 추세로 가면 새누리당은 외면당할 것”이라고 당권 경쟁에 나선 친박계와 비박계를 동시에 비판했다.

오 전 시장은 나아가 “새누리당 전당대회의 배후에 (총선 패배의 책임이 있는) 서청원·김무성 전 대표가 있다는 식의 언론보도가 나온다”면서 “불행하게도 새누리당은 국민의 사랑을 받기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서청원 전 대표의 당권 도전과 관련해서는 “특정인의 실명을 거론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총선에서 대패한 것에 대해 정치인이라면 본인 스스로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오 전 시장은 7월 14일 있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지난 4·13총선 때 서울 종로 선거구에서 낙선한 이후 그가 언론과 공식 인터뷰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선 진로 고민이 깊어… 정권재창출 기여할 것”


▎2015년 4월 서울 관악을 보선 새누리당 후보 지원에 나선 오세훈 전 서울시장(오른쪽). 올 4월 총선에서도 같은 당 후보의 지원 유세에 나섰다가 오히려 자신의 지역구에서는 역풍을 맞았다.
각종 여론 조사에서 여권 잠룡 중 1, 2위를 다투는 오 전 시장에게 내년 대선 국면에서의 거취를 물었다. 그는 “아직 결심이 서지 않았고 고민이 깊다”면서도 “큰 틀에서는 새누리당 후보가 다음 정권을 차지하도록 직·간접적으로 기여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생각은 가지고 있다”며 대선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총선 패배 후 정국 현안에 대해 언급을 피해온 오 전 시장은 사회 이슈에 대해선 적극적인 의사를 밝혔다.

사회 양극화 해소와 관련해 그는 “재벌이 부의 사회적 환원이라는 결단을 흔쾌히 내리도록 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상속 및 기업 의결권 제도의 합리적 개선을 강조했다. 기업 오너들이 명예롭게 사회에 공헌을 하는 법적·제도적 환경 조성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향도 함께 밝혔다.

개헌 문제에 대해서도 “무턱대고 권력구조를 바꾸다간 더 큰 재앙을 부를 수 있다”고 전제, “사회구조 개혁 차원에서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헌법 정신에 반영해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방향으로의 개헌 논의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7월 14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에 있는 오 전 시장 개인 사무실(가칭 ‘고르고 바른 사회 만들기 연구소’)에서 시작된 <월간중앙>과의 인터뷰는 점심시간을 넘겨 3시간 이상 이어졌다. 그는 총선 패배의 참담함, 이후의 막막함, 새 진로 모색의 고단함을 우리 사회가 처한 상황의 엄중함에 녹여 차분한 어조로 풀어냈다.

4월 총선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떨어져 본 선거였다. 어떤 일이 벌어지던가?

“달라진 현실을 절감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낙선인사를 하고 다닐 즈음인 5월 초 ‘종로구민의 날’ 행사에 여당 원외당협위원장 자격으로 초청받았다. 연설 기회가 주어지면 신세 진 분들께 감사 인사라도 드릴 요량으로 미리 30초 정도의 멘트도 가다듬었었다. 구청장, 국회의원, 자매도시의 단체장과 구의회 의장까지 6, 7명이 나설 때까지 차례가 오지 않았다. 맨 마지막에라도 불러주겠거니 했는데 막판에 연단을 싹 치워버리더라. ‘아 내가 처한 현실이 이런 거구나’라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

사전 여론조사에서 월등히 앞섰기에 낙승을 기대했을 텐데, 패인은 뭐였나?

“외부 지원유세가 화근이 된 듯하다. 당시 나는 서울시 선거대책본부장으로 다른 지역구 지원 유세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종로 유권자 입장에서는 후보자가 자기 눈에 안 띄면 선거운동을 안 하는 것이 된다. 오세훈이 종로가 아닌 다른 선거구에 유세하는 모습을 TV와 신문을 통해 접한 유권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벌써 자기 선거는 다 이겼다는 생각에 외부로 나도는구나’라는 심증이 형성되게 마련이고 상대 후보도 이를 잘 파고 들었다. 게다가 공천 파동 당시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여당 후보 중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오세훈이 대선주자로도 1등, 상대 후보에게 10% 이상 앞서고 있으니 오만하다’는 비판적 견제심리가 작동하기 좋은 상황이었다. 막판 표심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하는 것 아닌가?

“사전에 생각은 했었다. 그래서 선거 초기 사흘 정도 열두세 군데를 몰아서 지원유세에 나섰다. 그리곤 내 선거에 전념하려고 했었지. 그게 또 실수였다. 그 뒤로 선거 기간 내내 자료화면이 TV 방송을 탔다. 그게 상대 후보의 공격과 맞물리면서 안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본다. 진박 마케팅, 경선 후유증 등도 악재로 작용했다. ”

8월 9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새 지도부가 꾸려진다. 차기 당 대표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을 정리하자면?

“계파 싸움에 찌든 새누리당을 국민은 외면한다. 지금도 새누리당은 편을 갈라 엄청 싸우지만 나라를 위해 그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에 매몰돼 다툰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꼴도 보기 싫은 것이다. 지금 새누리당은 ‘니들이 알아서 해라’는 식의 무관심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차기 당대표의 리더십은 여기서 나온다. 새누리당은 나라와 국민의 이익을 실현하는 방법을 놓고 계파가 경쟁하는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지금 돌아가는 모양새로 볼 때 그런 기대가 충족될 것 같은가?

“불행하게도 반대로 돌아가는 듯하다. 언론보도 등을 보면 예전의 친박, 비박으로 서로 다투고 전당대회의 배후에 (선거 패배의 책임이 있는) 서청원·김무성 전 대표가 있다는 식이다. 국민의 사랑을 받기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다.”

반기문, 다른 주자에게 없는 엄청난 경험이 자산


▎2010년 7월 서울시장 취임식에 참석한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왼쪽)과 부인 송현옥(가운데) 씨가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친박계의 좌장 격인 서청원 의원의 전당대회 출마설이 확산된다.

“실명을 거론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차원에서 얘기하면 감정만 쌓인다. 본인 스스로 생각하면 된다. 총선 패배 후 처음 치러지는 전당대회다. 새누리당은 국민에게 굉장한 걱정을 끼쳐드리는 바람에 대패했다. 정치인이라면 그 점을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오 전 시장은 리얼미터 7월 첫 주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새누리당 소속 인사 중에서 1위(7.2%)를 차지했다(여권 1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당적이 없음). 원외에 있음에도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지지율의 동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감사한 만큼 책임감이 무겁게 와 닿는다. 개인에 대한 기대감이라기보다는 새누리당 당적으로 국회의원, 서울시장을 역임한 게 자산이 된 것 같다. 또 정치적 경험과 저의 시행착오에서 오는 업무 역랑 등에 대한 기대가 반영됐다고 할까?”

내년 대선에 나갈 의향이 있나?

“먼저 지역구에서 떨어진 사람이 (대선에서) 전국적으로 평가받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민이 많다. 전국 253개 선거구 중 한 곳에서 진 것이지만 종로는 ‘정치 1번지’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여기서 선택을 못 받았다는 게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고민이 깊은 상황이다. 지난 3개월은 자성의 시간이자 숙고의 시간이었다. 선거에서 국민들이 내게 준 메시지의 의미를 정리하면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쉽게 결론을 낼 수 없다.”

대선을 생각만 하고 재는 정도인가, 아니면 적극적인 의향을 갖고 있나?

“그런 의문이 당연히 들 것이다. 사실 아직 결심이 서지 않았다. 다만 큰 틀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보수정당, 새누리당을 이른바 개혁적 보수,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미래지향적 정당으로 바꾸고, 그 정당의 후보가 다음 정권을 창출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반드시 기여하겠다는 원칙론적 생각은 분명히 갖고 있다.”

본인이 직접 그걸 할 수도 있고 남을 통해서 할 수도 있다는 말인가?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두고 분명히 기여하겠다. 지금 단계에서는 그 이상 말씀드리기 어렵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뜨기 전에는 오 전 시장 지지율이 10%를 웃돌았다. 반 총장의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국민적 지지도가 높은 후보군이 되셨는데 기대가 크다. 남다른 경험은 남다른 생각을 만들어 내고 남다른 실행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평생을 직업 외교관으로서 국익의 최일선에 섰을 것이고 유엔의 수장으로 국제적 이슈에 천착해왔다. 다른 주자들이 갖지 못한 엄청난 경험을 자산으로 가졌다. 그의 경험과 시행착오는 국가 리더에게 큰 장점이 되리라 기대한다.”

10년 동안 해외에 머물러 국내 물정에 어둡지 않을까?

“아마 국내 이슈에 대해서는 우리만큼 고민이 깊지는 않을 것 같다. 워낙 출중한 역량을 가진 분이라 국내에 들어와서 금세 보충하리라 믿는다. 국민적 공감대가 그분으로 모아진다면, 새누리당 후보로 선출된다면 당연히 도울 것이다.”

박 대통령, 사회통합·국민통합 리더십 기대 못 미쳐


▎2007년 1월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서울시당 당사 이전식 및 신년인사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맨 왼쪽),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운데)도 함께했다.
새누리당에는 차세대 대선주자들이 많다. 오 전 시장을 비롯해 남경필 경기지사 등도 대선 출마 가능성이 점쳐진다. 소장파 주자들 간의 대선 연대, 후보 단일화도 가능한가?

“단일화 얘기는 아직 이르다. 뜻을 같이하는 분들이 많다. 당권 경쟁과 관련해서도 바람직한 리더십을 가진 당 대표의 탄생 방안을 놓고 함께 고민 중이다. 과거 소장파 정치인 모임인 ‘미래연대’와 같은 인연이 지속되고 있어 그런 일들은 자연스럽게 진행될 것이다.”

유승민 의원은 19대 국회에서 사회적경제기본법을 발의하는 등 ‘정의로운 보수’, ‘따뜻한 보수’ 노선을 표방한다. 또 지난해 4월 국회 원내대표 연설에서는 ‘새누리당은 서민과 중산층의 편’, ‘중(中)부담 중(中)복지’ 등을 주장했다. 오 전 시장도 크게 보면 같은 맥락 아닌가?

“그런 주장을 세상에 내놓는 형태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원내대표로서 연설을 하면서 갑자기 개인의 정치관, 정책관을 충격적인 형태로, 도발적인 형태로 제시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국회의원 개인의 연설이 아닌 원내 대표의 연설이므로 새누리당 원내대표로서의 입장이 반영됐어야 했다. 오해의 소지는 분명 있었다. 어쨌든 그가 가지는 문제의식에는 공감한다. 이 시대를 사는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그 부분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해법을 말하는 데 있어서 각도는 다를 수 있겠다. 어떤 순서와 공감대, 상징적인 노력을 거쳐 새누리당과 국가정책을 개선하는가에 있어서는 방법론의 차이가 있다.”

박근혜 정부 국정운영 3년 반의 공과를 평가해 본다면

“많은 국민이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에 실망한 것은 사실이다. 원칙을 중시하는 강력한 리더십에 대한 기대감에서 대통령으로 선택했는데 바로 그 점에서 국민들이 실망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산적한 난제를 푸는 유형이 ‘나를 따르라’는 식에 가깝다. 시대적 화두인 ‘소통’에서 후한 점수를 못 받는 것에서 더 나아가 소통의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또 사회통합, 국민통합 측면에서 큰 점수를 주기 어렵다. 아버지 대에서는 ‘파이를 키워놓고 보자’는 논리가 유효했고 실제 많은 성과도 냈다. 박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아버지 대의 양극화, 지역격차 같은 사회적 모순을 보듬어 안고 해소하는 리더십을 내심 기대했었다. 3년 반이 지난 지금의 현실에서 보면 그 부분에 특별하게 신경 쓰는 모습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 점이 안타깝다.”

긍정적인 성과를 짚자면?

“긍정적인 측면도 많다. 북한의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단호한 의지를 표명하고 이명박 정부에 이어 흔들림 없는 대북 강경책을 구사하는 점은 매우 높게 평가한다. 오해하지 말라. 이렇게 말하면 내가 국방·안보에서 일명 ‘꼴보수’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겠지만 ‘북한을 도와주자’, ‘햇볕정책을 쓰자’고 해서 반드시 합리적인 정치인인 건 아니지 않느냐. 정권의 대북·안보 정책의 우월성을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고 보는 사람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이 있었기에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강경책이 그만큼의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없었다면 다음 정부의 햇볕정책도 효용이 떨어질 것이다.”

서울시 미세먼지 주범은 4000대의 관광버스


▎정계 입문 전의 오세훈 변호사는 방송 활동을 통해 유명세를 탔다.
총선과정에서 보여준 새누리당의 분열상을 보면서 여권 핵심부에 정권 재창출 의지와 능력이 있는가라는 물음이 보수진영에서 제기됐다.

“박 대통령이 정권 재창출에 과연 관심이 있는가라는 생각을 갖게 할 정도라면 새누리당이 국민의 사랑을 받는 데 (대통령이) 기여하는 바가 별로 없다는 말이다. 새누리당과 대통령은 한몸이고, 정권 재창출도 새누리당이라는 모태를 통해서 이뤄져야 한다. 이번 총선을 거치면서 많은 이들처럼 나도 아쉬움을 느꼈다.”

다시 말해 박 대통령이 정권 재창출에 무심하다고 보나?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대통령의 국정철학도 새누리당이 계승해야 유지되는 법이다. 그래서 무관심, 무성의할 수는 없다.”

당심(黨心)과 민심(民心)이 따로 놀 때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결정하는 요소는?

“보수층만 총결집해서 정권 재창출이 되겠나.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는 중간층, 중도층을 끌어 안아야 가능하다. 당원들이 과거처럼 국회의원, 당협위원장이 원하는 방향으로 쏠리지 않는다. ‘누가 민심을 잡을 후보’인지, ‘누가 본선 경쟁력을 가진 후보’인가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이다. 당심과 민심이 분리되면 (민심을 등지면서) 당심을 따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

서울시가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으로 몸살을 겪는다. 서울시장 재임기간 동안 액화천연가스(CNG) 버스 보급 확대 등 대기오염 저감 행정을 펴지 않았나?

“공공재는 투자한 만큼 국민 편익을 증진한다. 나는 취임후 맑은서울본부를 만들고 당시 수조 원을 투자해 서울시 시내버스 9000대의 경유 엔진을 CNG 엔진으로 교체했다. 25개 구청에 예산을 지원해 도로 물청소차를 구매·운영토록 했다. 미세먼지 농도를 58㎍/㎥에서 48㎍/㎥로 낮췄다. 제주도의 미세먼지 농도가 43㎍/㎥인 점을 감안하면 획기적인 저감이다. 내가 떠나고 서울시의 맑은서울본부도 사라졌다. 도로 물청소 관련 예산과 인원도 줄었다고 안다. 공공재의 특성은 관리의 손길이 느슨해지는 순간 반드시 악화된다. 게다가 서울시 관광객 1000만 명 시대를 맞아 매일 시내를 돌아다니는 관광버스 4000대가 모두 경유차다. 이들 관광버스 엔진도 CNG로 바꿔야 미세먼지 농도가 줄어들 것이다.”

그는 지난 4월 총선에서 처음으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2000년 정계에 입문한 이래 처음 지는 선거를 치렀다. 당시 TV 방송프로그램에서 잘 나가던 젊은 오세훈 변호사는 2000년 16대 총선에서 화려하게 정치 무대에 등장했다. 불법 대선 자금 수수(일명 차떼기 사건) 파문 등으로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이 여론의 질타를 받던 2004년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그는 2006년 서울시장선거에서 재기에 성공했다. 2010년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한 그는 2011년 무상급식 조례 주민투표가 개표요건을 채우지 못하자 시장직을 던졌다. 이후 5년간의 외유와 강연 등으로 야인생활을 이어간 그는 올 4월에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정치적 전환점을 잡으려 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그는 진로를 쉽게 결정할 수 없어 고민을 거듭하지만 마음의 근본에는 변화가 없다고도 했다. 늘 대한민국을 보다 나은 사회로 업그레이드하고,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나라를 만드는 데 모든 역량을 쏟아붓겠다는 꿈을 품었다. 그래서 나름 저술과 강연을 통해 방안을 제시하고 준비 작업에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마음의 준비도 없이 야인(野人)이 된 셈인데.

“나락으로 떨어진 느낌보다 더 안타까웠던 건 국회에 가서 정말 하고픈 일을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국회에서 그렇게 하고 싶었던 일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양극화 해결이다. 스웨덴 발렌베리 모델을 통해 국부 창출을 꾀하고 양극화를 해결하고 싶었다. 둘째 과학기술 발달에 대한 국가적인 대응책을 모색하는 것이다.”

왜 발렌베리 모델에 주목하나?

“발렌베리 가문은 스웨덴 국부의 30~40%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의 재벌과 같은 시스템에다 부의 집중도는 더 심하지만 국민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 가능케 하는 시스템 덕분이다. 이 가문은 기업을 거의 공익법인화했다. 매년 벌어들이는 수익의 상당부분이 가문이 설립한 공익재단을 통해 국가 운영에 필요한 사회사업, 사회 간접자본에 투입된다.”

상속제 보완해 기업 의결권에 변화 줘야


▎2011년 8월 무상급식 조례 주민투표의 개표가 무산되자 시장직 사퇴를 선언하는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
한국에서도 그런 모델이 통할까?

“상속제도를 보완하고 기업 의결권 제도에도 변화를 주면 가능하다. 한국에서는 자식에게 기업을 물려주자면 부의 상당 부분을 세금(상속세 최고세율 50%)으로 내야 한다. 경영권 행사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일정수준 돈을 벌면 기업가정신은 뒷전이고 편법으로 자식들에게 넘겨줄 궁리를 하게 되는 이유다. 경영 외에 다른 방향으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현실을 방치할 이유가 없다. 사회는 기업에 합법적인 부의 상속만으로도 경영권 확보가 가능한 환경을 제공하고, 대기업은 창출한 부를 국민 전체의 삶의 질 향상에 쓰도록 하면 된다.”

‘금수저’라는 말이 있을 만큼 부의 대물림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기업이 3세대 경영으로 내려오면 창업과 확장을 중시하던 할아버지, 아버지와 달리 사회적 명예를 더 중시하는 단계로 접어든다. 아직도 1, 2세대 경영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면 실감나지 않겠지만 3, 4세대들과 대화해보면 사회적 존경과 명예를 물려주고자 하는 재벌이 많다. 국민은 재벌을 존중하고 재벌은 부를 국민을 위해 쓰는 공감대와 사회적 시스템을 정착시키자는 말이다. 지금은 부자를 보는 시선이 적대적이다. 이런 상태를 언제까지 끌고 갈 것인가? 자산, 소득의 격차가 벌어지는 현 상황을 방치하면 할수록 적대감만 쌓인다. ‘어떻게 진심으로 존경하고 위해주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어떻게 빈부격차를 줄일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정부와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이다.”

현재 기업은 법인세 인상 얘기만 나와도 경기를 일으킨다.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기업들이 발렌베리 가문처럼 흔쾌히 대부분의 수익을 사회에 환원할까?

“기업의 수익을 강제로 뺏는다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압력 때문에 억지로 환원한다는 느낌도 줘서는 안 된다. 사회적 분위기가 갖춰지면 기업인들은 명실상부한 존경을 받고, 자본주의가 국민 모두를 위한 시스템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말이다. 패러다임의 전환은 순식간에 온다. 10대 재벌 중 한 군데만 발렌베리 가문처럼 솔선수범하면 사회적 분위기가 확 바뀔 것이다. 그것을 정치적 리더가 해야 할 일이다. ‘부유세를 걷어서 나눠주겠다’는 발상은 부자들의 거부감만 자극할 뿐이다.”

오 전 시장은 7월 하순 개헌 관련 저서를 펴낸다. 변호사이기도 한 그가 한국사회에서 개헌은 어떻게,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찰을 담았다고 했다. 개헌과 관련해 정치권이 권력 구조 개편에만 과도하게 몰입한다고 비판하는 그는 사회적 격차와 불평등을 해소하고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하는 개헌을 통해 국민들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는 논지를 폈다.

오세훈이 생각하는 개헌이란?

“개헌에 권력구조의 변화만이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 등 실질적인 내용을 담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어 ‘동일노동 동일 임금’은 현재 근로기준법의 원칙이지만 사문화되다시피 했다. 같은 노동을 하더라도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는다. 같은 중소기업이라도 비정규직보다 정규직이 더 많이 받는다. 현재 대기업 정규직은 중소기업 비정규직보다 세 배 이상 많은 임금을 받는다고 한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헌법정신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종류의 노동을 같은 시간과 강도로 제공하면 적어도 비슷한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도록 헌법정신이 선도해야 한다. 이런 개헌에는 적극 찬성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헌법정신에 담아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2014년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한국국제협력단(KOICA) 자문단의 일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정치권 개헌 논의가 겉돈다고 했는데.

“권력구조 개편만 놓고 본다면 4년 중임제를 바람직하다고 본다. 대통령제의 시행착오 때문에 권력구조 개편은 필요하다. 하지만 새로운 권력구조는 새로운 시행착오를 유발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우리는 투쟁 일변도의 국회를 바꾼다고 국회선진화법을 도입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19대 국회가 최악의 국회로 전락했다. 헌법의 권력구조를 바꾸는 것도 똑같은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즉, 우리는 제도를 바꾸는 데 신중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구조만 바꾼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제도를 바꿨으면 제도의 운용에도 힘써야 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헌법 정신에 넣으면 노동 유연성을 바라는 기업들이 긴장할 것 같다.

“우려할 필요가 없다. 헌법에 ‘인간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는 조항이 있지만 모두가 행복해지는 건 아니다. 헌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처벌할 수는 없다. 이런 게 바로 명목적 가치다. 하지만 명목적 가치일지언정 헌법적 가치로 끌어올리면 대통령, 공무원들은 그걸 위해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할 것이다. 즉, 시대정신으로 자리매김한다.”

오 전 시장은 기업과 노동에 관한 자신의 주장이 반발을 불러올 수도 있음을 잘 안다. 보수진영은 부를 빼앗긴다는 생각에 섭섭해하고, 진보진영은 ‘부자 편든다’는 오해를 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 양극화를 완화하고 불어나는 복지 수요를 감당하자면 반드시 넘어서야 할 산과도 같다는 입장이다. 한국사회가 이에 대한 지혜를 모아보자는 의미에서 모색적인 아이디어로 제안한다고 오 전 시장은 덧붙였다.

- 글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 정리 유정우 인턴기자 / 사진 김현동 기자

201608호 (2016.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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