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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 인터뷰] 한국정치 ‘대수술’ 구상하는 정의화 전 국회의장 

“박근혜 정부에선 개헌 어려워… 대선후보들이 공약화해야” 

글 최경호 기자 squeeze@joongang.co.kr / 정리 나은경 인턴기자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 5월 말 퇴임과 함께 싱크탱크 ‘새 한국의 비전’ 열고 ‘빅 텐트’ 펼쳐
■ 창당한다면 11~12월 유력, 진보·중도·보수 모두 아우를 큰 판 만들 터
■ 손학규와는 언제든 만날 수 있고, 이재오와는 말 맞춘 듯 생각 똑같아
■ 대통령제는 수명 다해, 더 큰 대한민국 담으려면 이원집정부제가 적합
■ 대선 출마 암시한 반기문 사무총장의 5월 방한행보는 득보다 실이 커

정의화(68) 전 국회의장은 신경외과 의사 출신이다. 뇌 수술만 3500번가량 집도(執刀)했다. 15대 총선부터 부산에서 내리 5선을 한 그는 지난 19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을 지냈다. 청와대와 여당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여당의 법안 단독처리를 저지하며 ‘의회주의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퇴임 무렵 정 전 의장은 ‘새 한국의 비전’이라는 싱크탱크(Think Tank)를 출범시켰다. 그는 개헌과 정계개편 등 정치 ‘대수술’을 구상하고 있다.


5월 말 임기를 마친 정의화 전 의장은 곧바로 싱크탱크를 출범시켰다. 박형준 전 국회 사무총장, 이수원 전 국회의장 비서실장, 이명우 전 국회의장 정무수석 등이 중심이 돼 ‘틀’을 다지고 콘텐트를 가다듬고 있다.

정 전 의장은 새누리당 출신이지만 ‘새 한국의 비전’에는 야권 출신 인사가 많다. 참여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가까운 최상용 전 주일대사, 국민의정부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지낸 정덕구 니어(Near)재단 이사장, 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 김동철 국민의당 의원, 조해진·권은희 전 새누리당 의원 등이 함께하고 있다.

정 전 의장의 행보를 보는 시선은 둘로 갈린다. 우선, 중도·통합의 ‘빅 텐트’ 아래 국민의당과 연계하고 나아가 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 이재오 전 새누리당 의원 등까지도 합세해 정계개편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반면에 현실적으로 지역기반이 약할 뿐 아니라 정 전 의장의 파괴력이 2% 부족한 것 아니냐는 비관론도 있다.

그러나 8월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새누리당의 친박·비박, 더민주의 친노·비노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새판짜기’를 외치는 손 전 고문이 정계복귀를 선언한다면 지각변동 가능성이 있다. 그럴 경우 “중도세력의 ‘빅 텐트’를 펼쳐 새 정치의 마중물이 되겠다”는 정 전 의장이 ‘태풍의 눈’으로 부상할 수도 있다. 7월 12일 서울 여의도 ‘새 한국의 비전’ 사무실에서 정 전 의장의 개헌 구상과 정계개편 가능성 등에 대해 들었다.

“국회의원이 하나의 직업이 돼버렸다”


▎퇴임을 앞둔 정의화 국회의장이 5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마지막 공식일정을 마친 뒤 손을 흔들며 차량에 오르고 있다.
퇴임 후 한 달여가 지났는데 어떻게 지냈나?

“재충전이 필요했다. 미국에 여행도 다녀왔고 좀 놀았다. 그래도 나라 걱정은 많이 하고 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나라가 굉장히 어렵다.”

5선 의원 출신으로 국회의장까지 지냈는데 20년간의 소회가 남다를 듯하다.

“처음 여의도에 올 때 수술복 하나를 들고 왔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잠옷 대신 수술복을 입고 잤다. 나라의 중심인 머리를 수술하겠다는 의지로 여의도에 왔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면 인턴·레지던트 등 수련기간을 거친다. 초선의원은 수련기간인 셈이다. 그래서 처음 4년 동안에는 정치를 했다기보다 정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재선의원은 전문의사인 셈인데 그렇다고 해서 다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3선 의원은 웬만한 수술은 혼자 집도가 가능한 수준이다. 3선을 거쳐 4선 국회부의장, 5선 국회의장을 지냈다. 국회의장이라면 의사로서 가장 어려운 단계, 어떤 수술도 해낼 수 있는 수준에 올라선 것 아니겠는가?”

‘새 한국의 비전’이라는 싱크탱크를 출범시켰는데.

“지금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문제들 가운데 더 지속될 경우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인구문제(저출산·고령화), 통일문제, 과학발전 등이 있다. 국회 내에 미래전략연구원, 국회미래연구원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정부와 새누리당이 예산을 이유로 반대하는 바람에 성사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내 손으로 만든 것이 ‘새 한국의 비전’이라는 연구소다. 내가 영원히 이 일을 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 씨를 뿌리면 언젠가는 싹을 틔우고 뿌리내릴 것이다.”

정 전 의장은 ‘새 한국의 비전’을 5월 26일 발족시켰다. ▷외교·통일 ▷교육 ▷노동 ▷경제 ▷복지 분야 등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연구소 성격을 띤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정 전 의장이 신당 창당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정치가 국민을 두려워하고, 그 눈높이를 맞추려 노력해야 한다. 국민의 긍지와 자존심을 세워주면서 국가 발전을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점점 소명의식이 옅어지고 있다. 국회의원이 하나의 직업이 돼버렸다. 또 다른 병을 꼽는다면 대화와 타협 부족이다.”

정 전 의장이 구상하는 ‘빅 텐트’란 무엇인가?

“내가 연구원을 만든다고 하니까 ‘신당을 창당하려나 보다’, ‘정의화가 대선에 출마하려고 싱크탱크를 만드는구나’ 이런 시선들이 많았다. 사실은 별개의 문제다. ‘새 한국의 비전’은 보수든 진보든 중도든, 이념을 떠나 말 그대로 ‘큰 텐트’다. 다 같이 모여서 지혜를 짜고 비전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신당 창당에 나서는가?

“‘목하고민 중’이라고 답변하겠다. ‘한다, 안 한다’라고 지금은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기존의 고비용 저효율 정당, ICT(정보통신기술) 시대에 걸맞지 않은 정당을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다.”

창당한다면 그 시기는 언제가 되나?

“대략 11~12월로 본다. 왜냐하면 대선을 1년 정도 앞둔 시점이 되면 기존 정당들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그런 상황을 봐가면서 내 구상과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 고민하고 있다. 물론 창당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지역감정 해소와 통일에 기여할 터”


▎올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36주년 기념식에서 만난 정의화 국회의장과 손학규 전 더민주 고문이 악수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가?

“지금 거론되는 대선후보들 중 훌륭한 분은 많다. 하지만 딱히 누구와 함께하겠다는 생각은 없다. 따뜻하고 창의적이며 합리적인 보수, 그러면서 스펙트럼을 넓혀 중도우파까지 포용하는 정당을 염두에 두고 있다. 국민들의 여망이 내 생각과 같다면 성공할 것이다. 하나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줄기를 만든다. 시간을 갖고 씨앗을 뿌릴 것이다.”

손학규 전 더민주 고문, 이재오 전 새누리당 의원 등도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이들과의 연대 가능성은?

“내가 구상하는 나라,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비전을 공유할 수 있다면 손을 잡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재오 전 의원은 개헌, 선거제도(국회의원), 권역별 비례대표 등 여러 면에서 나와 말을 맞춘 듯 생각이 같다. 이렇게 뜻을 맞출 수 있다면 같이할 수 있다. 손 지사(전 고문)가 한나라당 소속일 때는 아주 가까웠다. 그런데 (2007년에) 그가 떠난 뒤로는 사석에서 만난 적은 없다. 문자메시지도 주고받은 적이 없다. 아무래도 연대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지만 손 지사 쪽에서 ‘옛정이 있으니 한 번 만나자’고 한다면 흔쾌히 만날 것이다. 그러다 접점을 찾으면 연대도 할 수 있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특히 이재오 전 의원은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 개헌을 목표로 창당을 구상하고 있다.

“내가 정치를 통해 꼭 하고 싶은 일이 지역감정 해소, 남북통일에 기여하는 것이라면 이재오 전 의원은 분권형 대통령제를 반드시 추진하고 싶어한다. 앞서 말했던 바와 같이 개헌과 선거제도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이 전 의원과는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개헌 전도사’를 자처하는 이재오 전 새누리당 의원은 신당 창당 추진과 함께 헌법 개정을 위한 범국민운동을 펼칠 계획이다. 그는 “내년 대선을 바뀐 헌법으로 치르려면 적어도 올해 말까지는 여야가 개헌에 합의하고 내년 4월 재·보궐 선거에서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면서 “정당운동과 국민운동 양 축으로 정치권 합의를 압박하겠다”고 설명했다. ▷4년 중임제 분권형 대통령제 ▷중대선거구제와 다당제 ▷총리는 국회에서 선출 ▷내각 구성은 국회에 진출해 있는 여야 의석 수대로 연정(聯政)해야 한다는 것이 이 전 의원의 주장이다.

정 전 의장은 대표적인 개헌론자다. 어떤 방식으로, 언제, 어떻게 이뤄져야 한다고 보는가?

“개헌 내용은 권력구조·지방분권·교육 등 사회 변화에 따른 여러 가지를 함의해야 한다. 권력구조만 봐도 이원집정부제, 내각제, 4년 중임제 등 아주 복잡하다. 따라서 물리적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개헌은 어렵다. 졸속으로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차기 대선에 출마하는 사람들은 ‘내가 당선되면 취임 1년 이내 개헌을 추진하겠다. 그리고 이원집정부제로 권력구조를 바꾸겠다’는 공약을 내세워야 한다. 그러면 2018년 개헌이 가능하다. 그것을 위해 지금부터 논의는 시작해야 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남북관계 개선 기회 많이 놓쳐”


▎정의화(왼쪽) 후보와 황우여 후보가 2014년 5월 23일 국회에서 국회의장 후보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장 앞에서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을 보면 후보 시절에는 하나같이 개헌을 공약했다가 집권 후에는 유야무야하지 않았나?

“지나가는 얘기로 ‘내가 되면 해볼게’ 이런 식이 아니라 ‘저 홍길동이가 당선되면 반드시 개헌하겠습니다’라고 대표공약으로 내세워야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운하 공약처럼 말이다.”

왜 이원집정부제여야 하나?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자는 주장도 있는데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중임제를 하면 레임덕 현상을 약화시킬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본다. 지금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세상에서 대통령에게 권한을 집중시켜주고 국가를 끌고 나가게 하는 것은 무리다. 미국을 제외하고 대통령제를 시행하는 나라를 보면 대체로 후진국이거나 독재국가다. 시대가 바뀌었듯이 대통령과 내각이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 대통령은 외교·안보·국방을, 총리는 나라살림을 맡는 것이다. 내각제를 시행하려면 공무원사회가 보다 반듯하게 자리 잡아야 하고 국회의원들의 수준도 더 높아져야 한다. 대통령제에서 내각제로 바로 가는 게 좋겠지만 과도기적 기간에는 이원집정부제가 맞다고 본다.”

개헌이라는 화두가 ‘빅 텐트’가 될까?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새 한국의 비전’을 위해 개헌을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 전문가와 국민들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래서 좌파든, 우파든, 중도든 개헌이 필요하다는데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았나. 이렇게 보면 이미 빅 텐트가 펼쳐진 것이다. 이제는 중대선거구제로 전환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당제로 가야 한다. 다당제가 돼야 연정이 가능하다. 말로만 연정·협치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남북관계가 경색돼 있다는 지적이 많다.

“참으로 안타깝다. 내 장인과 장모가 북한사람들이다. 장인은 평양에서 의과대학을 나왔다. 나 역시 북한에 병원 하나 만들어서 후학들 가르치고 환자 치료하는 게 꿈이다. MB정부 임기가 2년 정도 남았을 때의 일을 하나 공개하겠다. 내가 임태희 대통령실장을 통해 대통령과 독대 신청을 했다. ‘남북의장회담을 추진할 테니 도와달라’고 했다. 그때 이 전 대통령은 ‘조금만 기다려달라. 지금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얼마 뒤 ‘돈봉투 사건’이 터졌다. 돌아보면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좋은 기회가 많았는데다 놓쳤다.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 북한에서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 김기남 비서 등 실세들이 조문을 오지 않았었나? 고구마 줄기를 당길 찬스가 여러 번 있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개성공단 폐쇄도 성급했다고 본다. 좀 더 시간을 갖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에 따라 국제적 압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이젠 정말 답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을 때까지 버텼으면 어땠을까.”

북한 국방위원회 대변인은 2011년 6월 1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5월 9일부터 중국 베이징에서 있었던 남북 비밀접촉의 내용을 공개했다. 국방위 대변인에 따르면 베이징 접촉에는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 홍창화 국정원 국장, 김천식 통일부 정책실장 등이 나갔다. 이들은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 문제가 타결되면 5월 하순 정상회담을 위한 남북 장관급회담을 열고, 6월 하순 판문점에서 1차 정상회담, 그로부터 두 달 뒤 평양에서 2차 정상회담, 내년 3월 서울 핵안보 정상회의에서 3차 정상회담 개최를 북측에 제안했다고 국방위 대변인은 밝혔다. 국방위 대변인은 남측 당국자들이 이 같은 제안 내용을 전하며 “제발 딱한 사정을 들어달라고 구걸했다”며 “돈봉투까지 거리낌 없이 내놓고 그 누구를 유혹하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정부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북한은 추가 폭로를 통해 “우리가 돈봉투를 던지자 김태효의 얼굴이 벌개졌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으로 복귀할 생각은 없나?

“의장직에서 퇴임하면 자동적으로 복당된다. 여전히 당원으로서, 상임고문으로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행사가 있으면 참석해서 건배사나 축사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역 의원이 아닌 이상 내가 새누리당의 혁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 또 새누리당은 굉장히 무기력해지고 부패했다. 보수가 지녀야 할 창의성,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배려 같은 것이 퇴색했다. 아직까지 탈당계를 제출하지는 않았지만 적당한 시기에 당을 떠날 것이다.”

부산 출신으로 유독 호남에 애정이 많은 정치인이다.

“나는 스스로 휴머니스트라고 생각한다. 좁은 땅덩어리가 남북으로 나뉜 것도 서러운데 동서로까지 갈라져서야 되겠는가? 동서화합도 되지 않는데 남북통일이 되겠는가? 1974년 전주예수병원을 시작으로 김제군 용지면 보건지소장 등 해수로 4년 정도 전북에서 지냈다. 그때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전북사람들은 매우 소박하면서도 전통을 지키려는 양반적 기질을 갖추고 있었다. 크게 매료됐었다. 경상도에서 왜 욕하는지 모르겠더라.”

정 전 의장은 국회의원이 되기 5년 전인 1991년부터 ‘영호남 민간인협의회’를 결성했다. 그는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에 광주문화재단 사무총장 출신인 김성 씨를 영입했을 정도로 호남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4·13 총선 전에도 광주의 주요 인사들이 정 전 의장에게 광주 지역구 출마를 권유했을 때 고민이 깊었다고 한다.

“대통령 주위에 군 출신 많아 논리 밸런스 떨어져”


▎제17대 총선 부산 중·동구에서 당선된 정의화 한나라당 후보가 주민들을 찾아 큰절을 하고 있다.
20대 총선 직전까지 광주 지역구 출마설이 들렸는데.

“4년 전 19대 총선 때 친박이 아니라는 이유로 나를 공천에서 배제하려 했다. 그때 장관 출신 3~4명, 대학 총장 출신 5~6명 등 광주 유력인사가 연판장을 만들어 정홍원 공천심사위원장에게 ‘정의화를 공천하지 않는 것은 호남 푸대접입니다’라고 호소했다. 이번 총선 직전에 4·19 기념사업회의 초청을 받아 행사에 참여했는데 광주지역 지인들이 그 자리에서 ‘20대 국회의원 출마를 광주에서 하기 바란다’고 쓰인 액자를 줬다.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광주에서 살지도 않은 내가 그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한다는 것이 내 신념과 맞지 않았다. 그분들을 설득하느라 힘들었다.”(웃음)

정치권에 중도 바람이 불고 있다. 중도가 내년 대선에서도 화두가 될 것으로 보는가?

“그동안 대통령선거를 보면 중도가 좌우로 나뉘어 51대 49, 52대 48 대결로 치러지지 않았나? 그렇기 때문에 내년 대선도 2파전으로 치러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분명히 중도를 표방하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그렇다고 중도만으로는 아닐 것이다. 중도가 보수 일부와 진보 일부를 아우르는 확장성을 갖고 등장할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차기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 돼야 한다고 보는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를 안보 측면에서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대통령 주위의 인물들 가운데 군 출신이 많다. 그러니까 논리의 밸런스가 떨어질 가능성이 큰 것이다. 사드는 미국·중국·러시아는 물론이고 동북아 전체의 문제일 수 있다. 경제 의존도를 보면 한·미, 한·일 교역량을 합친 것보다 한·중 교역량이 더 클 뿐 아니라 우리는 대중 무역을 통해 매년 400억 달러 정도의 흑자를 보고 있다. 그래서 이런 일(사드 배치)을 하려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을 만날 때마다 ‘북한을 좀 자제시켜달라’, ‘우리도 어렵다. 중국이 강하게 해서 사드 이야기가 나오지 않게 해달라’고 했어야 했다.

사드 배치가 확정되자 후보지로 거론됐던 곳에서는 일제히 반대집회가 열렸다. 사전에 이 문제에 대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버락 오바마의 담대한 희망>이라는 책 제목처럼 차기 대통령은 담대해야 한다. 또 이제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 중 비범한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 안보뿐만 아니라 국제정세, 외교 등의 능력도 두루 갖춰야 한다. 대통령은 소통이 잘되고 소탈해야 한다. 70년대에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왔는데 그분들은 그 나이에 이미 정치경험이 20년 이상 됐었다. 국회의원 몇 번 했다고 해서 (대통령의) 자격을 갖추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경륜과 경험이 있어야 한다.”

현재 거론되는 잠룡들에 대해 평가해달라. 어떤 사람을 도울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유보하겠다.”

지난 5월 방한 이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친박 이미지가 강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득보다는 실이 컸던 것 같다. 대권에 뜻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측면에서는 득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시기적으로 보면 실이 많았다. 친박과 TK(대구·경북), 충청만 껴안으면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일부의 관점은 극히 정치공학적이다. 반 총장의 방한 일정과 그 기간 그가 한 말을 살펴보면 손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행보가 상당히 정치적인 행위들이었기 때문이다. 내년 봄에 (이런 행보를) 하는 편이 나았으리라고 본다.”

“바라는 바를 남김없이 만족시키면 안 돼”

얼마 전 강연에서 킹메이커로 나설 의사를 내비쳤다고 하던데.

“이렇게 해석해줬으면 좋겠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중 ‘수신’과 ‘제가’는 어느 정도 했고, 국회의장을 2년 했으니 ‘치국’도 경험했다. 그러나 ‘평천하’는 하늘의 몫으로 남겨둬야 한다. 내가 뭐 그리 뛰어나다고 평천하까지 하겠다고 나서겠는가. 공자는 지불가만(志不可滿·바라는 바를 남김없이 만족시켜서는 안 됨)이라고 했다.”

정 전 의장은 7월 1일 부산 동서대 센텀캠퍼스에서 열린 한국정치학회 하계 학술대회에 참석해 ‘의정 20년의 에피소드와 향후 10년 보답의 정치’를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마음을 비웠다. 제가 바라는 분이 있으면 모든 능력을 다해서 그분을 세워, 중환자실 속에서도 호흡곤란 상태에 이른 우리나라를 구해내겠다”고 말했다. 대선 출마보다는 킹 메이커 역할에 무게를 두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차기 정권 탄생에 기여하게 된다면 어떤 역할을 맡고 싶나?

“남북통일을 위한 화해·협력에 기여하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은?

“퇴임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나라가 총체적 난국에 빠져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국민들이 실망하고 힘들어한다. 가치보다 물질이 앞서고 이기심이 중심이 되는 사회가 되고 있다. 행복해지려면 이타적이고, 물질과 정신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가 돼야 한다. 121년 전에 동학운동이 일어났는데 고종황제는 그것을 난으로 규정짓고 청나라 군대를 불렀다. 이를 빌미로 일본군도 투입됐고, 결국 이 땅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고종이 전봉준 등을 불러서 이야기를 들었다면 답이 있었을 것이다. 자주적으로 해결했다면 나라를 빼앗기지도 않았을 것이고, 분단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드 배치도 충분한 설득의 과정을 거쳤어야 했다. ‘국민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사드를 배치하자’는 주장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참았어야 했다. 이런 과정 없이 속전속결로 결정하다 보니 후유증이 생긴 것이다. 내가 싱크탱크를 만든 것은 국민에게 보답하고 싶기 때문이다. 의장 임기가 끝났다고 가버리면 나야 편할지 몰라도 국민에게 죄의식이 느껴진다. 내년 대선 때까지만이라도 노력하다가 사라질 것이다.”

- 글 최경호 기자 squeeze@joongang.co.kr / 정리 나은경 인턴기자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201608호 (2016.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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